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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 맨

  • 작성일 2025-10-01

   페니 맨

   -The Penny Man


   노인은 길바닥의 페니를 줍지 않는다.

   대신 동전을 살짝 돌려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하늘을 보게 한다.

   ―S. Donovan Mullaney


조인호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은 1센트 페니 동전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50센트를 쪼개면

   25센트가 되고,

   그걸 다시 쪼개면 

   10센트가 되고, 

   그걸 다시 쪼개면

   1센트가 되지만,


   그 지점부터

   1센트는 

   더는 쪼개지지 않는다.


   어떤 강력한 힘이 1센트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형을 떠올린다.


   확실히, 형은 페니를 닮았다.


   한 닢의 페니를

   공중에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오십 퍼센트지만,


   형을 공중에 던져 올린 그 남자는

   동전이 어느 쪽 방향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페니의 앞면에는 돼지 치는 남자를 닮은

   사내가 새겨져 있고,


   형은 늘 그 얼굴을 보며

   ‘돼지 치는 개새끼’라고 불렀다.


   형의 1페니는 

   미국에서 온 선물 자루 속에서

   굴러떨어져 나왔다.


   고아들을 위한 친절한 백인들이 보내 준

   후원 물품 자루에서 나온 

   구리 동전 한 닢,


   그것으로는 무엇도 살 수 없었지.


   만약 형이 눈이 어두운 잡화점 노파를 

   1페니로 속였다면 

   분명 감옥에 갔을 테지만,


   노파건, 사내건, 아줌마건

   다들 1페니를 보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얘야, 장난감 동전으로 사기 칠 생각은 꿈에도 말거라.”


   페니는 형과 이별할 생각이 없는지

   늘 형의 호주머니 안에 있었다.


   애완 생쥐보다도 작은 1페니―


   1페니로 살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미국에서 온 동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방인처럼―

   신기했지만,


   형의 1페니는

   고아원의 형들, 누나들, 동생들

   호주머니 속을 

   홈리스처럼 떠돌아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페니의 가치는 점점 떨어졌고,

   돌고 돌아

   언제나 형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형은 잘 때도

   페니를 잃어버릴까 봐

   몸에 딱 붙이고 잠들곤 했는데,


   다음 날, 언제나 형의 작은 배에는

   돼지 치는 사내의 얼굴이

   꾹 눌려 있었다.


   어느 날, 

   돼지 치는 남자의 얼굴과 똑같은

   사내가 고아원에 찾아와

   형을 데려갔고,


   형의 1페니도

   그날로 사라졌다.


   형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페니 동전 한 닢을 찾기 위해

   교회 헌금통까지 뒤적거린 적도 있다.


   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밑바닥을 

   더듬을 자신도 있었다.


   그게 흙이건 아스팔트건,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블록이건 무엇이든 간에.


   때론 무슬림들이 엎드려 절할 때

   “아자르 씨, 혹시 바닥에 떨어진 1페니 보셨나요?”

   물어볼 생각도 있었다.


   또는 그에게

   “돼지 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느냐”

   물었다가,

   신발로 따귀를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군대에 가서도, 

   철조망 아래를 기어가는 훈련을 받을 때도

   형의 1페니가 혹시 떨어져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땅을 기어갔다.


   “보아라, 이 훈련병처럼 엎드리란 말이다.

   너희가 지옥 바닥까지 기어갈 용기만 있다면

   전쟁에 나가서도 절대 죽지 않는다.”


   시간이 1페니처럼

   굴러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어느새 1페니 속

   돼지 치는 남자가

   사실은 형의 아버지라는 걸 알았지만,


   형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아직도 형이 공중에 던진

   1페니는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고만 있는 것 같았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나도

   그 페니는 아직도 떨어지고 있고,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하는 거야?


   1페니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형의 장례식에 간 것은

   페니를 잊고 지낸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영정 사진 앞에서야

   나는 1페니가 비로소

   어디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형이,

   공중으로 던져 올린 

   페니 한 닢.


   앞면인지 뒷면인지,

   형은 내게 알려 주었다.


  “그건, 앞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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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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