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수긍의 색은 회색

  • 작성일 2025-10-01

   수긍의 색은 회색


조우연


   아직이요, 하는 수국을 피워 보려면 그나마

   색부터 배워야 한다네요


   철봉에 매달린 팔을 놓아 버리는 마음을 먹어 본 아이는

   자주 울던 일이 덜한다죠


   새는 죄책감을 알까요

   밤에 듣는 새의 말은 노래라 해 둘까요 울음이라 해 둘까요


   구름은 후회를 할까요

   투명해서 건너의 무엇도 숨길 수 없는 비의 색이 구름의 마음일까요


   무언가 젖어야 물의 색이 보이는 것처럼

   오늘 밤 비가 와서 우리 마음은 색을 가졌습니다


   어두워져서 가까워지는 향기가 있고

   비 그친 그 밤에 우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뜨죠 


   이제 수국의 향을 알게 됐는데


   놓아 버렸나 봐요

   정작 색은 알고 싶지 않네요

추천 콘텐츠

윤유월 성곽 돌기

윤유월 성곽 돌기 손유미 그거 아세요? 윤년 윤유월에 성곽을 한 바퀴 돌면 삼 일만 앓다 죽는다고 합니다 귀신이 쉬는 날,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을 고백하며 지난 왕조의 성곽을 돌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휘휘 내 할머니의 할머니는 그 지복을 누리고자 휘휘 어린 내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강화산성을 기를 쓰고 도셨답니다 머리에는 죽음을 이고 손에는 어린이를 붙들고 중얼중얼 휘휘 나는 그때 내 할머니의 할머니가 고백한,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만 세월도 휘휘 몇 바퀴를 돌아 이미 땅에 묻혀 백골도 흙이 된 지난 세기의 고백 그리고 휘리릭 내 할머니는 내 손을 붙들고 휘리릭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수원화성을 돕니다, 관광열차를 타고 마침 인간의 쉬는 날과 귀신의 쉬는 날이 맞아서 휘리릭 바람에 날아갈까 삶을 누르며 손에는 다음 세대의 손을 붙들고 할머니,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귀신을 속일 수 있을까? 직접 땅을 밟지 않고 말이야 이다음 세대야, 팔십 년을 넘게 살아남으면 귀신 속이는 건 일도 아니란다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 보렴 이 관광열차는 십 분 후면 다시 출발지로 도착할 것이고, 이 열차를 함께 탄 이들은 제각기 돌아가 몇십 년 후 혹은 짧으면 몇 분 후··· 각자의 삼 일을 앓다 죽을까?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야 할 일 그런데 귀신은 무엇으로부터 쉬려나? 묻자, 지겨운 고백들로부터 고만고만한 인간들의 오만함으로부터 짧은 해방 쉬쉬 바람이 분다

  • 관리자
  • 2025-11-01
청화백자

청화백자 손유미 백자에 푸른 학을 앉힌다. 푸른 소나무를 뻗치고. 푸른 솔잎들, 푸른 솔잎들, 손끝을 찌르고 싶은 푸른 솔잎들. 푸른 안료에 붉은 피의 리듬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아, 이 푸른 선은 내 것이다. 이 청화백자는 내 것이고 나는 고유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살아 있는 청화백자에 무엇이든 넣고 싶다. 불로장생하는 무엇이든 넣고 싶어. 드글드글 생명이 끓는다. 생명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독은 익는다. 청화백자 열기에 푸른 모란이 핀다, 다 잡아먹을 듯이 입을 크게 벌리며 활짝. 푸른 모란의 속에는 생명과 범벅된 나의 사랑‧‧‧ 우글우글 나의 욕망들. 나는 천삼백 도가 넘는 가마 속에 나의 생명, 나의 고독, 나의 욕망을 넣는다. 나의 생명, 나의 고독, 나의 지리멸렬함, 나의 분노, 나의 권태, 나의 인내 인내 인내, 나의 사랑, 나의 욕망을 굽는다. 아니 충분치 않다. 나의 수치, 나의 공포, 나의 비관, 나의 좌절, 나의 파렴치함, 나의 살의, 나의 간절함, 나의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음까지 빠짐없이 굽는다. 서로가 서로를 참견하여 균열을 내더라도‧‧‧ 내 것이기에. 아, 이 균열은 내 것이고 나는 비로소 고유하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했다. 이 청화백자를 갖기에 가난하다는 것,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하지 않았어. 학이 어깨 넘어 날아간다. 기를 쓰고 날아간다. 다른 시대에 발견되리라.

  • 관리자
  • 2025-11-01
눈물

눈물 이현아 무덤 나란히 다섯 개. 풀숲이 무성해질 때마다 집안 남자들이 찾아가 깎았던. 이곳은 연안 이씨 가문의 선산이고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은 크고 무겁다. 조상의 무덤을 파 본 적 없지만 무덤 안은 깊을 것이다. 아빠는 그곳에 부모를 묻었을 것이다. 묻다니. 묻는다니. 아빠는 오른쪽 무덤을 가리키며 엄마라 부르고 왼쪽 무덤을 가리키며 아버지라 부른다. 아빠는 무덤 앞에 납작 엎드린다. 나도 납작 엎드린다.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 안은 김장독처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 그곳에서 시체는 천천히 썩어 갈 것 감히 나를 묻다니 나는 무덤 안에 있고 아빠는 내게 납작 엎드린다. 엄마도 오빠도 선생도 친구도 엎드리고 내 남자 친구는 저 옆에 서서 오열하고 내 전 남자 친구도 찾아오고 저들끼리 엄숙하고 슬프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위에 엎드리는 당신들을 보며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만 나는 그저 크고 봉긋할 뿐이다. 당신들은 나를 두고 떠나며 이제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갈 뿐이다. 나는 언덕에서 내려와 밤을 줍고 차를 타고 선산을 떠난다. 아빠가 죽으면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묻어 줄까 태워 줄까 묻고 아빠는 자기를 데리고 다니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차 사고가 났다. 나는 봉안당 안에 있고 이곳은 계약 기간이 20년이라는 관리자의 말과 부모님이 늙으시면 관리를 못 하실 테니 저희가 하겠다는 당신들의 포부와 매년 찾아오겠다는 눈물의 다짐과 이제 당신들은 식사 중 나도 식사 중 내가 죽는다니 난 안 죽어 여긴 봉안당도 선산도 장례식장도 아니고 차 사고 따윈 없었고 아무도 죽지 않았으므로 그곳들은 다 텅텅 비었고 장례 업체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여긴 그냥 극장이야. 죽음에 대한 영화도 아니야.

  • 관리자
  • 2025-11-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