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월 성곽 돌기
- 작성일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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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월 성곽 돌기
손유미
그거 아세요?
윤년 윤유월에 성곽을 한 바퀴 돌면 삼 일만 앓다 죽는다고 합니다
귀신이 쉬는 날,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을 고백하며 지난 왕조의 성곽을 돌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휘휘
내 할머니의 할머니는 그 지복을 누리고자 휘휘 어린 내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강화산성을 기를 쓰고 도셨답니다
머리에는 죽음을 이고
손에는 어린이를 붙들고
중얼중얼
휘휘
나는 그때 내 할머니의 할머니가 고백한,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만
세월도 휘휘
몇 바퀴를 돌아
이미 땅에 묻혀 백골도 흙이 된 지난 세기의 고백
그리고 휘리릭
내 할머니는 내 손을 붙들고 휘리릭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수원화성을 돕니다, 관광열차를 타고
마침 인간의 쉬는 날과 귀신의 쉬는 날이 맞아서
휘리릭
바람에 날아갈까 삶을 누르며
손에는 다음 세대의 손을 붙들고
할머니,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귀신을 속일 수 있을까? 직접 땅을 밟지 않고 말이야
이다음 세대야, 팔십 년을 넘게 살아남으면 귀신 속이는 건 일도 아니란다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 보렴
이 관광열차는 십 분 후면 다시 출발지로 도착할 것이고, 이 열차를 함께 탄 이들은 제각기 돌아가 몇십 년 후 혹은 짧으면 몇 분 후··· 각자의 삼 일을 앓다 죽을까?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야 할 일
그런데 귀신은 무엇으로부터 쉬려나? 묻자,
지겨운 고백들로부터
고만고만한 인간들의 오만함으로부터
짧은 해방 쉬쉬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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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2-01
니트의 농담 이혜미 아니 근데 오늘따라 더 멋지네 미치고 싶은 계절에는 옷을 잘 입었다 불빛처럼 젖은 사람도 있었고 밤마다 액정을 닦던 시간도 있었다 멀쩡한 얼굴로 인사하고 손톱만 깨물다 헤어졌어 기억으로 모습을 모아 둘 수 있다 안심했던 것 같아 남겨진 한때를 바라볼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찍는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장면들이었는데 지나간 사람들은 왜 다 웃고 있을까 보풀처럼 희미해진 얼굴들이 멀어서 더 예뻤다 아름답다는 말은 닿지 못해도 좋다는 뜻이래 근데 이거 혼자 들기엔 너무 무거운 마음인데 조금만 같이 들어 주면 어떨까 사실 미치기는 어렵지 않아 정확히 미치기가 어렵지 제정신이었다면 지금 여기 있겠어? 진작 결혼했겠지 좋았던 건 다 미쳤지 사라진 뒤에도 말을 걸어 멀리를 향해 춤을 추게 해 올 풀린 스웨터처럼 웃었다 제정신으로는 의미도 여기도 틈새의 춤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 관리자
- 2025-12-01
수북이 쌓인 바닥 심지아 나의 말과 멀어지려고 생겨나는 거리에서 단어 그림자 보행자 너의 남은 것 이해가 떨어져 나간 발치에서 흐려지는 발 입이 흘리고 다니는 음절의 분절들 가만한 바람 그것이 나의 근력 단어를 따라 정지한다 거기 와 있고 도착하지 않고
- 관리자
- 2025-1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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