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
- 작성일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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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
민구
위층에 코끼리가 산다
코끼리는 사막이나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데
가족과 서식지를 잃고서 밀렵을 피해
연희동으로 건너온 모양이다
코끼리는 물과 먹이를 구하러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낮에도 걷고 밤에도 걷는 걸까
코끼리 새끼와 싸우러 올라간 적이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았다
멸종위기종이라도 월세를 감당하려면 일해야 한다
통신요금도 내고 데이트 비용도 부담하고
조직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그는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린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고 서성인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니까 과자를 주면 코로 받고
화가 났을 땐 아카시아 나무를 다 뽑아버리며
우연히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코로 사랑 고백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위층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드넓은 초원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쓸쓸하고 공허하다
이럴 땐 코끼리 똥이라도 주워야지
올라가서 따질 말을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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