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연옥은
- 작성일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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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연옥은
김현
어디든 가고 싶어서
가야지 하고 보면
남들 다 가는
금수강산
호박엿 장수가
8090히트팝을 틀어 놓고
(셀린 디옹의 마이 하트 윌 고 온 나옴)
가위 흔드는
산에는 늙은 멧돼지
(죽은 멧돼지 이미지 삽입)
멧돼지도 죽기 전에
아이고 스님
한 번 들어가서 날뛰는 절간
절간에는 스님 고기 먹는 어린 스님 그런 스님도 스님이랍시고
염불을 외고 그런 스님에게도 구원을 원하는
중생이여
그런 중생의
죽음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것이
휘청휘청 나부끼는 아침
(바람소리 삽입) 휘파람 불며
둥둥 떠가는
잠시 가만히 지켜보시죠
(한편, 지금 이 순간 다방에는 나란히 앉아 김난도의 트렌드 2022를 읽고 있는 어린 연인. 필기까지 하면서. 웃으면서. “이 사람도 옛날 사람.” “왜?” “요즘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자꾸 쓰잖아.”)
떠돌다가
해 뜨는 강가에 앉네
한때 요즘 사람이었던 이
가까이 있을 땐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더니
애련하게
멀리멀리 가서 돌아보는
강에는
입질하는 붕어
밤새 붕어 잡은 사람
뜬눈으로 사는 어려움은 다들 알 테고
너나 나나(어린 연인도)
알 턱이 없는 건 그렇게 없이
어렵게 살아도 나중엔 남는 건
염원뿐
귤이나 까라 야 이 십장생아
시베리아야 에라 이 쌍화차야
염원이 지나쳐서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으며
영혼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장소 삽입)
죽은 이를 긍휼하면서
염병 속병이 나서
붕어를 고아서 잡수신
중생의 적막강산
어디든 절간이다
스님, 배를 따고 싶은 놈들이 몇 있는데
잠시 가만히 지켜보시죠
달궈진 무쇠 솥뚜껑에 삼겹살을 올리며
(산 멧돼지와 거니는 중생 이미지 삽입)
고기 굽는 스님을 보면서
“트렌드 하네요.”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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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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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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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2021-12-3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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