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윤리적으로 지은 집

  • 작성일 2022-01-31

윤리적으로 지은 집

이유운


다락방에는 신이 엎드려 누워 너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도록 유의할 것


(천장의 쥐들이 웃는다)



벽에 붙어서 일어났다
비춰 보는 얼굴


이 얼굴의 나에게 이 목소리가 있다는 게 놀랍고 무서운 일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내가 태어났다는 것
누군가 죽이고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창문을 열고 거리를 바라본다)



길이 썩고 있다
이 거리 마지막 남은 집


이 집은 불법적으로 증축했지만 윤리적으로 지어졌다
이곳에서 사랑 없이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 그 증거


창문을 닫아
게토가 우릴 찾아
여기에 웅크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틀린 말은 아니니까



(계단으로 내려오며 복도 양옆에 걸린
마리아상 열세 개에 모두 입을 맞춘다)



저기 성실하게 죽는 사람들 좀 봐 신기하지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거, 무력하게 사람이 죽는다는 거, 저기 쓰러진 사람도 오늘 아침엔 우리와 똑같은 순서로 영양제를 먹었을 거라는 거……. 울지 마, 이게 모두 다락방에 엎드린 신이 주사위를 굴린 결과라고 생각해 봐 이상하기만 하지 슬프지는 않잖아. 화는 내지 마, 그래, 그래도 신이잖아. 비록 우리가 윤리적으로 지은 집에 몰래 들어와서 우리가 울고 키스하는 일을 훔쳐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해, 그는 우릴 사랑하니까


샷시가 덜컹거려
걸쇠는 오래전에 녹슬었지
벽은 아직 차가워? 밖은 여름인데


나는 손을 모은다


너 배운 기도 있니 네가 여름 성경학교에 다녔기에망정이다
우리 하마터면 지옥에 갈 뻔했는데


문 좀 열까
저기 거리에 사람들이 적당히 죽는다


이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고하라


늘어놓은 금붕어들을 손으로 쥐어
길거리에 늘어선 죽은 자들이
배부를 때까지
먹이고


쓰러지거나
허물어지거나
축복하거나
등으로 걷거나


광장에 사이좋게 머리를 기대고 죽은 연인
그들은 아주 멀리 갔으며


학생들이 너무 멀리 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똑같이 보복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


*) 시몬 베유, 『나 시몬 베유 – 여성, 유럽, 기억을 위한 삶』, 갈라파고스, 2019, 125쪽.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빛의 탄생

빛의 탄생 이유운 그 빛은 희고 둥글었다 끌어안기 충분할 정도로 새로 태어난 아가의 방에 모빌 대신 걸어 두기 좋았다 아가들은 정수리로도 숨을 쉰다잖아, 어쩌면 우릴 정수리로 볼 수도 있을지도 몰라. 언니는 구슬을 꿴 실로 빛을 예쁘게 묶었지만 나누어 앉은 우리의 방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고 우리의 아가는 여름에 태어났으므로 이마에 낙인이 있었다 나는 그걸 손톱으로 벗기고 긁어내고 울고 소리를 지르고 원망을 하고 그랬지만 아무튼 한때 태어나곤 했던 것들이 이 세계에서는 흔들리고 죽곤 하니까 우리 아가 너는 언니가 사서 비닐봉투에 담아 왔었지 검은 입구에서 머리를 빼쪽하게 내민 너를 보며 나는 그 모양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생각했어 조금 징그러웠던 것 같아 우리를 닮았어 언니는 나의 기분과 언니의 목소리를 아가에게 비추어 보았다 끊임없이 성실하고 잔인하게 베고니아 화분을 아가의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베고니아의 꽃말은 사랑을 주는 꽃이라는데 쉼없이 꽃을 피우는 화분을 보면서 아가의 성장이 계속되었다 사랑과 혼란 아가가 자랄 때마다 왜 언니는 우는 걸까 아가가 다 자라서 집을 사주면 좋은 일이잖아 나는 언니가 묶어 둔 빛을 풀었다 그만 자러 가자, 나는 언니의 손을 잡았고 언니는 아가보다 덜 자란 눈으로 자신이 잠든 사이 내가 아가를 가져다 버리지 않을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잔인한 농담 그것을 가늠하는 상스러운 사랑 이해하지? 그럼에도 나는 빛을 믿는 사람을 사랑하기를 그만둘 수가 없고 예리하게 가꿔 온 마음이 어느새 창백해지고 있었다

  • 2022-02-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