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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 작성일 2022-01-31

이야기

-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유희경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아버지는 모로 누워 계셨다 한들거리는 거미줄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는, 숨어 있단다 거미줄을 건드려 보렴 하지만 나는 무섭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 수십 년째 말라 가면서 아버지는 돌아누웠다 그럴 때의 냄새 그럴 때의 온기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의 등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거미도 아버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어 있을 거라는 가정은 어째서 하지 않았던 것일까 보이지 않으면 숨어 있는 것일까 엉금엉금 기어 문 쪽으로 달아나는 그림자 문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가 거두는 빛의 손 잡아야지 도망칠 수 없도록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에 기억은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아직도 무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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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 겨울의 모자 유희경 모자는 젖어 있다 사내는 모자를 책상 위에 올려 둔다 젖은 모자는 불길하다 모자는 사내의 것이 아니다 날갯죽지에 부리를 묻고 떠는 겨울밤 비둘기처럼 모자는 주인을 잃었다 가엾게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 모자를 쓴 모자의 주인은 눈을 맞으며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모자를 잃어버린 모자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사내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본다 사내는 찾고 있다 거리에는 이마를 내놓은 채 오가는 사람들 눈을 맞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모자를 찾아 돌아가는 중이라고 사내는 생각해 본다 노래 같네 제목을 잊어버린, 나는 이 어둠이 마음에 드네 그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같이 모자는 어둠 속에서 초인종이 울리기를 문밖 어깨에 눈 쌓인 모자의 주인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서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멀리 누가 눈을 치운다 삽이 바닥을 긁는 소리 삽이 돌부리에 걸려 덜컥 멈추는 소리 그러나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모자의 젖음은 말라 가고 있다 사내는 망설이다가 덜 마른 모자를 집어 든다 그것이 머리에 꼭 맞을 것만 같고 사내는 모자의 주인을 찾은 것 같아 불안하다 모자의 주인이 밝혀지면 어둠 속에서 밝혀지고 만다면 사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그치지 않는 창밖의 눈 거리에는 이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모자를 찾아 행복할까 행복할 수 있을까

  • 유희경
  • 20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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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다 유희경 중국 소년이 있는 작은 공원에는 비둘기가 여섯 겨울나무가 스물 그러니 소년은 비둘기를 쫓고 그림자 가늘은 겨울 가지에는 아무것도 앉지 못할 것이며 그저 비껴 나갈 뿐일 것이며 하품하는 사람의 턱처럼 새들은 돌아오고 말 것이며 이것은 우연도 작위도 아닐 것이며 오늘은 춥고 먼지 많은 계절의 평범 중국 소년이 있던 작은 공원에는 비둘기가 다섯 겨울나무가 스물 그러니 소년은 흥미를 잃은 참이고 정오의 빛은 저녁의 색으로 공원을 뒤덮어 갈 것이며 새 중 한 마리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나무는 어디로도 가지 않을 것이며 공원은 남아 있는 것들로 우연도 작위도 되지 못할 것이며

  • 유희경
  •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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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돌 유희경 그것은 안주머니에 있었다 퍽 오래된 외투에 달린 그 주머니는 늘 비어 있다 가을이 지나고 다시 이 외투를 꺼내 입었을 때에도 비어 있었다 아무것 없구나 지난겨울도 나는 안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낸다 이것은 단단하지만 뜻밖으로 가벼워서 어쩌면 단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닷가에 있었다 바닷가에서 여기까지 와서 이것이 되었다 이것은 가벼운 돌이다 바닷가에서 나는 그것을 찾았다 바닷가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주워올 어떤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우리는 주워 올 어떤 것을 찾게 되지 그것은 조개껍데기이거나 한 움큼 모래이거나 말라죽은 불가사리가 되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은 가벼운 돌 나는 왜 그것이 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과 같이 그것은 가벼웠으며 깨질 듯 단단해 있었다 나는 가벼운 돌의 약력을 생각해 본다 동글동글하며 미끌미끌한 나는 이것을 당신에게 건넨다 이것이 그것으로 되길 바란다 뜻밖으로 가볍게 들어오고 물러나는 바닷가의 그것이 되길 바란다 나의 안주머니는 이번 겨울도 아무것 없이 비어 있겠지만

  • 유희경
  •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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