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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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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1


   1994년 봄에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방배중학교는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언덕 위에 위치한 학교로, 작고 아담한 운동장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아마도 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수업 중에 갑자기 앞문이 열렸습니다. 평상시에는 대체로 일어나지 않는,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을 때 생기는 일이지요.

   문지혁, 나와.

   저를 호명한 사람은 학생주임 선생님이었습니다. 머리가 꽤 많이 벗겨진 데다 웃을 때마다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치열 때문에 〈개구쟁이 스머프〉에 등장하는 ‘가가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분이었지요. 본업은 음악 교사였습니다. 주무기는 끝을 다듬은 하키채였고요. 당시 선생님들에게는 저마다 그런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과거형과 과거 완료형의 차이를 가르치던 영어 선생님이 말을 멈췄습니다. 졸던 아이들이 눈을 떴습니다. 체크무늬 양복을 입은 학생주임 선생님이 저를 손으로 지목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저에게 쏠렸지요. 학생주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는 앞문으로 곧장 나가야 할지, 아니면 뒷문으로 돌아 나가야 할지를 두고 아주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수업 중인 영어 선생님께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복도로 나가 뒷문을 닫자 학생주임 선생님도 앞문을 닫고 먼저 걷기 시작했습니다. 설명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계단 쪽으로 걸어갔고 저는 우리가 교무실로 향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직감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교무실은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교무실에 가는 것을 지옥문을 여는 것처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반장 혹은 부반장이었고 전교 학생회의 임원이었으며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모범생이었으니까요. 심부름을 비롯한 다양한 용건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교무실에 드나들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저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네가 문지혁이구나. 용무를 마치고 나면 몰랐던 선생님도 제 초록색 명찰에 새겨진 하얀 이름을 눈여겨보며 말했습니다. 마치 도감 속에 나오는 동물을 실제로 본 어린아이처럼요.

   이번엔 무슨 일일까?

   교실이 있던 3층에서 교무실이 있는 1층까지 내려가는 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부름이라면 매우 중대한 일이거나 아주 급박한 이유일 거라고 짐작했죠. 이를테면 상을 받는다거나, 학교 대표가 되었다거나, 당장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거나··· 그것이 나쁜 일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이 계단을 다 내려가면 제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제 만으로 겨우 열넷인 소년에게 세계란 그토록 단순하고 안온하며 순진한 것이기 마련이니까요.

   학생주임 선생님이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문을 평소보다 세게 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무실에 있던 다른 교사들이 일제히 저를 쳐다보았기 때문만도 아니에요. 공기. 그렇습니다. 그건 공기였어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말 그대로 낯설고 불안한 어떤 투명하고 오염된 공기가 저를 덮쳐 왔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뭔가가 찌릿하면서 저를 통과했어요. 그때 저는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폭풍처럼 거세고 커다란 무엇이 저에게 닥칠 거라는 걸. 그것은 선험적인 감각이었습니다. 당하기도 전에 어떤 체념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순간 이미 저는 제 일부를 내려놓았고, 따라서 잠시 후 가가멜 선생님이 체크무늬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푼 채 하키채를 들고 나타났을 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엎드려.

   선생님에게 몇 대를 맞았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허벅지와 엉덩이가 몹시 아팠고, 맞는 동안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짧게 일어서, 라고 말하고 제가 제대로 엎드리면 다시 때렸습니다. 교무실 바닥을 버티고 있는 두 손등 위로 미지근한 눈물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아픔보다는 수치 때문이었겠지요. 저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써.

   한참을 맞은 다음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빈 종이였습니다. 이번에는 진회색 양복을 입은 교무부장 선생님이 앞에 앉아 있었고 그는 저에게 ‘진술서’라고 적힌 갱지를 몇 장 내밀었습니다. 

   최대한 자세하게. 거짓말하지 말고.

   의자에 닿아 있는 허벅지가 따끔거렸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알지 못했습니다. 뭘 써야 하는 건지. 그래서 물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떤 걸··· 써야 하나요?

   교무부장 선생님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니, 옆에 있던 책 한 권을 제 쪽으로 던졌습니다. 그 책은 인근에 있던 다른 학교의 교지였습니다. S여자중학교. 그걸 보는 순간 지난 여름의 어떤 장면이 짧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치며 말했습니다.

   지금 니가 그걸 몰라서 물어?


   2


  1993년 여름에 저는 방배동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수학과 영어 수업을 들으며 중학교 2학년 2학기를 기다리는 중이었지요. 인근 여러 학교의 아이들이 섞여 한 반이 되었고 제가 속했던 반에는 우리 학교와 S여중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같은 반 아이들과는 꽤 친해졌어요. 우리는 당시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던 1층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이나 과자, 슬러시 같은 걸 먹거나 학원 바로 뒤에 있던 놀이터에 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L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어느 쉬는 시간에 L은 저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자기가 이번에 학교 교지 편집위원을 맡았는데, 마침 그해가 학교 창립 25주년이라서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특별한 축하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저에게도 한 마디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가볍게 사양하려고 하자, L은 한 마디를 덧붙였어요.

   어차피 익명이야. 네가 쓴 것 아무도 몰라.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 아이가 내민 종이에 결국 한 마디를 적기로 했습니다. S여중에 많이 가 본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 학교를 생각하면 늘 드넓은 운동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반면 방배중학교는 산 위에 지어진 덕분에 운동장이 좁았고, 그 점은 학교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체력장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거리인 100미터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는 대각선으로(그게 가장 긴 거리였습니다) 80미터를 뛴 다음 모두에게 공평하게 3초를 더해서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지금 다시 생각하면 허위로) 작성했습니다. 저처럼 달리기를 못하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는 방식이었지만(사람이 20미터를 3초에 뛸 수 있다니요!) 아마도 정확한 기록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학교에 다니던 저에게 S여중의 운동장, 가로로 뛰어도 400미터가 넘는다는 그 운동장은 우주만큼 광활한 공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었습니다.


   개교 2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그 드넓은 운동장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그리고 아래 덧붙였습니다.


   —슬픈 방배인


   제가 왜 쓸데없이 마지막 문장을 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유머와 페이소스, 자기 비하 같은 것을 첨가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운동장이 좁은, 결코 100미터를 다 뛸 수 없는 학교의 학생이 적어야 더 그럴듯하게(혹은 웃프게) 들릴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어차피 익명이니까?

   제가 적은 두 줄을 읽고 L은 풋, 같은 소리를 내며 살짝 웃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S여중의 교지 편집위원을 제가 쓴 문장으로 몇 초간 만족시켰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금세 그 일을 잊었습니다.


   3


   그러나 진술서 앞에서 저는 그 일을 고통스럽게 기억해 내야만 했습니다. 인생에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하는 청구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던져 준 교지를 펼치자 모르는 이름들이 쓴 다양한 모르는 글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제가 쓴 부분을 찾기 위해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손가락이 떨려서 자꾸 손끝 바깥으로 페이지들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전해 준 정겨운 축하 메시지’ 코너를 열었을 때 저는 한눈에 제가 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개교 2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그 드넓은 운동장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슬픈 방배인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썼으니까요. 놀라움은 그다음 줄에 있었습니다.


   (2학년 1반 문지혁)


   제 이름이 왜 거기 있었을까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실은 지금까지도요. 당시 저희 학교가 아니었던 L이 어떻게 제 반까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로 2학년 1반이었지만 제 기억에 그건 알려 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걸 발견한 순간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그때까지는 이 모든 것이 뭔가 잘못되었거나 완전한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아주 가느다란 희망이 있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심지어 교무실 한구석에 숨어있던 이경규 씨가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외치는 상상마저 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어요.

   이건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저는 제가 불려 온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바로 저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증거도 있잖아요. 범인이 자기 명함을 두고 간 꼴입니다. 저기에 이름을 써 놓다니! 세상 어떤 바보도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저였습니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그 글을 쓰게 된 경위를 육하원칙에 맞추어 쓰라고 하면서 제가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옆에서 토를 달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울면서 썼습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지만 물방울이 떨어지면 갱지는 굉장히 빠르게 젖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종이를 잡아채 가고는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했습니다. 1993년 8월 방배동에 위치한 보습 학원에서 저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새로운 종이 위에 쓰고 또 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은 말랐고 손에는 쥐가 났습니다. 지나가던 선생님들은 혀를 차거나 머리를 건드리거나 막대기 끝으로 제 등을 툭툭 밀었습니다.


   4


   마침내 진술서가 완성되자 교무부장 선생님은 종이를 챙겨 일어났습니다.

   따라와.

   선생님이 향한 곳은 교무실 안쪽의 교장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우 공손한 자세로 노크를 하고 교장실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손짓으로 저를 불렀고 저는 곧 따라 들어갔습니다. 낮은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던 교장선생님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체구가 작고 눈이 가느다란 사내였습니다.

   너는 우리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제가 쓴 진술서를 다 읽어 보지도 않고 교장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넓은 운동장이 그렇게 좋으면 전학을 가. 왜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해. 바로 너 같은 놈들이 학교를 망치는 거다.

   저는 고개를 떨구고 들었습니다. S여중은 여자중학교라서 전학을 갈 수 없다고 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월요일 조회 때 교장선생님께 성적 우수로 표창을 받았던 저였는데, 그건 잊으신 것 같았습니다.

   공부 그까짓 거 잘하면 뭐 하냐.

   아, 잊으신 건 아니었습니다.

   무기정학 감이다, 이거는.

   교무부장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교장실을 나올 때쯤 제 머릿속은 반쯤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무기정학. 이제껏 학교에 다니면서 감히 한 번도 떠올려 보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8:8로 패싸움을 벌였던 무리가 일주일 정학 처분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면 무기정학을 받아야 하는 나의 죄는 어느 정도인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5


   그날 이후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요. 지옥은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우는 저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늘 지목을 당해 대답이나 발표를 하던 저였는데 이제는 그 어떤 선생님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 이름이 무언가에 오염된 것처럼,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는 점점 투명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교무실에는 자주 내려가야 했습니다. 징계가 결정되기 전까지 저는 교무실 한구석에서 계속해서 진술서를 쓰고 고치고 다시 써야 했으니까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저를 맞아 주던 선생님들은 모세가 지나간 뒤의 홍해처럼 두 개의 거대한 파도로 갈라졌습니다. 싸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외면하는 선생님들과 울상을 지으며 안타까워하는 선생님들. 다수였던 전자는 대개 보직을 맡은 영향력 있는 선생님들이었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왜 애 가슴에 못을 박아.

   저와 전혀 가깝지 않았던 여자 체육 선생님은 진술서를 쓰고 있는 저를 바라보며 멀리서 중얼거렸습니다. 희미했지만 그 말은 제 귀에 정확하게 들어왔고 덕분에 한동안 잠겨 있던 제 눈물샘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갱지는 습기에 취약합니다. 이건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소환되었습니다.

   학교에 아버지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저는 이후 교장선생님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저를 불러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혼을 내며 덧붙였습니다.

   네 아버지가 여기 찾아와서 무릎까지 꿇었다 이 말이야. 부모한테 죄송하지도 않아?


   6


   한 달 후 저에 대한 징계 수위가 결정되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반성문을 써서 교장선생님께 검사받기.

   두려워했던 무기정학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정학도 강제 전학도 근신도 교내 봉사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기 때문일까요? 교장선생님이 마음을 바꿨기 때문일까요?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이 작용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태풍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 비로소 남겨진 폐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해하실 수 있나요? 저는 지금 어떤 세계가 최초로 붕괴했던 사건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라는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껍질만 남은 저를 부수는 일이었습니다. 폐허를 치우고 쓰레기를 태우는 일 말입니다. 사전에는 그 행위가 자살이라는 단어로 적혀 있습니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자서전 『빵 굽는 타자기』에서 말했지요. 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라고요. 똑같은 말을 자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살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 나를 찾아옵니다. 때로는 문을 부수고,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세상은 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건 없다고. 편히 쉬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이제 너는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밤마다 내면의 목소리가 저에게 속삭였고 저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거나 가위에 눌리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일상이 파괴되고 머리에는 24시간 반성문의 문구에 들어갈 단어와 문장들만 어지러이 돌아다녔습니다. 눈빛은 초점을 잃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시간들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명찰을 거꾸로 달거나 잊고 두고 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라. 미친개한테. 

   맞습니다. 하지만 미친개에게 물린 사람이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기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개에게 물린 사람은, 너덜너덜해진 신체의 일부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상태로는 밥을 먹을 수도, 산책을 할 수도, 책을 읽거나 목욕탕에 갈 수도 없습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7


   1994년 8월 21일 일요일 오후, 교회에 다녀온 뒤 저는 당시 가족이 살던 연립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3층이니까 그렇게 높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연립 뒤쪽으로는 깊게 파인 도랑과 주위의 덤불이 있었습니다. 오르막길 거의 꼭대기에 있는 연립이었거든요. 오늘 들은 설교와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맞습니다. 저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한 번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구질구질하게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과 함께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옥상 끄트머리, 건물과 허공을 가르는 난간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늦여름이었고 공기 중에는 습기와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새가 날고 벌레가 울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도랑 쪽으로 내어놓은 두 다리가 가볍게 흔들렸고 그걸 인지하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 이쪽과 저쪽, 현실과 영원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조금만 들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면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거였습니다. 막상 거기 앉아 있으려니 온갖 기억들이 성질 급한 조문객처럼 찾아왔습니다. 14년이라는 짧은 인생에 뭐 그리 기억할 만한 것이 많았을까요. 저는 혼자서 울다가 웃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기도를 드렸다가, 멍하니 저 멀리 보이는 팔래스호텔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기쁘다가 슬프다가 아쉽다가 억울하다가 마침내 조금 쓸쓸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해가 저물었습니다.

   지혁아! 문지혁!

   입구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날카롭고 높은 뾰족한 소리. 어머니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늘 그런 톤으로 저를 부르곤 했습니다. 아마도 한참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는 목소리였겠지요.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을 테니까요. 엄마로서의 어떤 직감이 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화가 나셨던 건지도 모르죠. 핸드폰도 삐삐도 스마트워치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저는‧‧‧.

   놀라서 넘어졌습니다.

   앞이 아니라 뒤로, 순간적으로 난간을 버티고 꼭 잡은 두 손 때문에 옥상 안쪽으로요. 머리가 먼저 땅에 닿았고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먼지와 작은 돌 알갱이 같은 것들이 입으로 들어왔어요. 뒤통수가 너무 아파서 땅을 몇 바퀴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아래쪽에서는 희미하게, 그러나 계속해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와 동생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가세했습니다.

   몇 분 후 저는 제힘으로 일어나 일 층까지 내려갔습니다. 막 집에 들어오려던 가족들은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저를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막았습니다. 동생은 말했습니다. 엄마, 나 배고파.

   집에 들어가 손을 씻고, 머리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저는 가족들이 이미 모여 있는 식탁에 뒤늦게 앉았습니다. 저녁 메뉴는 당근을 많이 넣은 카레였고 저는 당근을 싫어했지만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8


   아직 저에겐 그때 생긴 혹이 남아 있습니다. 만질 수 있다면 만지게 해 드리고 싶군요. 자살이 실패로 돌아가서 어떡하냐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거기서 죽었습니다.

   신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장면은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촌극에 불과하지만 저에게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제가 그 장면 이후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당장 싫어하던 당근이 들어간 카레를 두 그릇이나 먹었잖아요. 옥상 이전의 저와 이후의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제 머리의 혹이 그 증거이자 스티그마입니다.

   가을 학기부터 또다시 학교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다시 예전의 저를 대하듯 저에게 웃고 말하고 농담하고 칭찬했습니다. 저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들을 대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분명한 리스트가 생겼고 더는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원하던 외고에 합격했을 때 학교는 제 이름과 과학고 합격자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인쇄해 학교 정문에 걸었습니다. 하굣길마다 저는 한밤중에 몰래 칼을 들고 기어 올라가 현수막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상상을 했습니다. 오직 담임선생님만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딱 한 번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저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은 잠깐 동안 제 어깨를 지긋이 잡아 주었고 그가 교실을 빠져나간 뒤 저는 아주 오랜만에 울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교장실에 찾아가 반성문을 검사받았습니다. 정적 속에서 교장선생님이 제 반성문을 읽는 동안 저는 열중쉬어 자세로 바닥에 깔린 모노륨 장판만 응시했습니다. 나중엔 그 바닥 무늬의 패턴을 외울 정도가 되었어요. 늘 같은 내용을 쓰면서도 새롭게 읽혀야 했기에 제 한국어 글쓰기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어쩌면 이후 작가를 꿈꾸고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교장선생님의 훈련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께 감사해야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분께 그런 의도가 있었을 리는 없겠지요. 인생이란 그저 아이러니의 불규칙 연속에 불과하니까요. 

   다만 아이들과 같은 고등학교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동네가 이제 지긋지긋해졌거든요. 저에게 찍힌 낙인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시선으로부터 저는 완전히 분리되기를 원했습니다. 처음에는 과학고등학교 준비반에 들어갔지만 상승하는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물체의 궤적을 계산하는 문제를 틀리고 나서 저는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남은 것은 외국어고등학교뿐이었고 저는 문자 그대로 제 목숨을 걸고 공부했습니다. 이것은 메타포가 아닙니다. 저에게 자살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저 중단되고 유예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저는 저에게 고통을 주었던 선생님들의 이름과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부끄럽고 유치한 생각이지만 언젠가 찾아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세부적인 기억은 그저 스위치가 내려진 것처럼 어둠 속에 묻혔습니다. 영문과 전공 필수 수업에서 읽던 셰익스피어에서 저는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면 용서하게 된다고요.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썼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지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9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마도 이십 대가 거의 끝나 갈 때쯤에 우연한 기회로 중학교 동창들 몇을 만났습니다.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한동안 쓸데없고 유쾌하고 유해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누군가 그 사건을 들춰냈습니다. 

   그때 너 많이 힘들었지. 

   제가 대답하지 않자 술에 취한 동창은 덧붙였습니다. 

   나도 걔네 엄마가 너한테 그럴 줄은 몰랐다.

   어떤 사실은 알고 싶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다가, 잊어버리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이 애초에 알고 싶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을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날 밤 저는 맨 처음 S여자중학교의 25주년 기념 교지를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던 학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가장 오랜 친구, 제가 울고 있을 때 멀리서 달려와 제 등을 두드려 주고 격려해 주었던 K의 어머니였습니다.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했고 리더십이 뛰어났으며 마침내 3학년 봄 전교 학생회장이 된 후에 저를 총무부장에 앉혀 주었던 K. 그러고 보니 K에게는 S여중에 다니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K의 어머니는 교무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목소리 큰 학부모회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분명했는데, 왜 저는 몰랐던 걸까요. 아니, 저만 몰랐던 걸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똑바로 걷기가 어려웠습니다.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밖에서는 한껏 똑똑한 척하지만 저는 여전히 순진하고 멍청하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는 바보 천치에 불과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문자 하나를 보낼 때도 몇 번이고 확인하고 검열하고 다시 쓰는, 그래서 때로는 차갑거나 화가 났거나 무뚝뚝하다는 오해를 받는 제 글쓰기 습관도 결국은 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모든 글을 실명으로 쓰고, 익명으로 쓰는 댓글은 절대 남기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개인적인 이메일이나 편지를, 심지어는 짧고 가벼운 인사나 메시지를 남길 때도 이것이 완전히 공개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씁니다. 이것 역시 제가 얼마나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지를 보여 주는 증거일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저라고,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찌그러진 나입니다. 그 사건에 물린 이후 영원히 너덜너덜한 채로 살아가는 피 흘리는 신체이자 영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번 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저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L은 사실 제 원수가 아니라 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요. 그는 숨기려고 했던, 숨기고 싶었던 제 이름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난 이름 때문에 저는 고초를 겪어야 했고, 그 일을 이제껏 평생 원망하며 살아왔지요.

   하지만 이름을 쓰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일까요? 

   익명 뒤에서 우리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름을 걸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름이란 책임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저는 왜 익명 뒤에 숨으려고 했던 걸까요? ‘문지혁’이라는 제 이름 세 글자 대신, ‘슬픈 방배인’이라는 다섯 글자가 저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대체 무엇으로부터 말입니까? 그것이 실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멍청하고 비겁한 짓에 불과하다는 걸 어쩌면 L과 교장선생님과 K의 어머니와 저를 둘러싼 세계는 한목소리로 저에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에 제 이름을 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말한다.

   “더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질문도 좋습니다.”

   화면 앞에 앉은 남자의 얼굴은 긴장되어 보인다.

   “저는 이제까지 정부 정책에 반대해 본 적이 없습니다.”

   “비겁하게 살았다는 뜻입니까?”

   다른 목소리가 답한다.

   “조롱은 삼가해 주십시오.”

   “조롱은 인간들의 것입니다. 우리는 조롱하지 않아요.”

   또 다른 목소리다.

   “지금 하고 계시는 게 조롱입니다.”

   이번에는 한동안 답이 없다.

   “87세. 남성. 문지혁 님. 지금부터 최종 심의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화면에는 스무 개의 박스가 떠 있다. 인공지능 심사관들은 숫자로만 표기된다. 남자는 목이 타는 듯 옆에 놓인 잔을 들어 연신 입을 축인다. 입술 끝이 허옇게 올라와 있다. ‘진행 중_in progress’라고 적힌 상태 창 아래 숫자가 조금씩 올라간다. 1, 3, 9, 16, 34, 51, 67, 82, 99‧‧‧.

   “의견이 정리되었습니다.”

   맨 처음 목소리가 말한다. 남자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2067년 1월 신청자가 심의를 요청한 단행본 원고 「유언」은 실명 출간이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 원고는 신청자의 실명으로 출간될 수 없으며, 만약 자의적으로 출판 혹은 배포될 시에는 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신청자는 1년 이내에 유사한 내용의 원고로 동일한 심의를 요청할 수 없으며, 심의 결과에 불복할 경우 심의 중재위원회에 조정 및 중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굳는다. 남자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찻잔 속 노란 액체를 마신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목소리가 다소 높은 톤으로 답한다.

   “신청인은 그동안 이 사회에 너무 많은 의견을 내왔습니다. 단독 저서만 삼십 권, 이름이 들어간 모든 책을 합하면 백 권이 넘습니다. 어느 한 개인의 과도한 발화는 우리 사회 전체의 언어 체계를 혼란케 하고 왜곡시킵니다. 이것은 모두가 공평하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평등 대원칙에 위배됩니다.”

   “딸들이 쓴 탄원서가 있습니다.”

   “기한을 어겨 도착한 편지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자 이제,”

   맨 처음 목소리가 말한다. 남자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만둔다.

   “심의를 마치겠습니다.”

   화면이 꺼진다.

   남자는 검은 화면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있던 심의관들은 사라지고 거기엔 자신의 얼굴만 남아 있다. 주름지고 늘어진, 흩어진 섬처럼 여기저기 검버섯들이 자리 잡은 버려진 지도 같은 얼굴. 첫째 딸에게 화상 전화가 걸려 오지만 그는 거절 버튼 위에 시선을 고정한다. 마침내 고요가 찾아오자 그는 타고 있던 엑소체어를 움직여 책상 옆 서가로 다가간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석 맨 아래 칸까지 높이를 낮추고 옴니핸드를 뻗어 낡고 변색된 책들 가운데 한 권을 꺼내 든다. 책 표지에는 1993, S여중, 25주년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다. 남자는 책을 펼쳐 무언가를 찾듯 한참을 뒤적이다가, 마침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전해 준 정겨운 축하 메시지’ 코너를 발견한다. 그리고 ‘슬픈 방배인’ 아래, 아무것도 없는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2학년 1반 문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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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6-02-01
도래의 얼굴

도래의 얼굴 최정나 한 남자가 길을 걷는다. 남자의 이름은 웅현이다. 웅현은 은행나무길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노랗게 물든 황금 터널 안에서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본다. 바람이 일자 은행잎들이 햇살을 따라 휘돌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웅현은 꽃잎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사귀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위로도 햇살이 부서진다. 바람을 받은 잎사귀들이 다시 허공으로 번져 오르다가 방향을 살짝 틀어 다른 데로 이동한다. 웅현은 눈에 비친 풍경을 화면에 담아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웅현은 얼마 전 도래와 이별했다. 그래서 길에서 스치는 사람이 모두 도래로 보인다. 도래가 홀로 걷고, 도래가 누군가와 함께 걷고,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내려다보고···. 도래는 출몰하듯 나타나 웅현 곁을 스쳐 지난다. 옆에 있는데도 먼 얼굴, 도래가 자신을 불러내는 건지 자신이 도래를 불러내는 건지 웅현은 알 수 없다. 이윽고 수많은 도래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로 변한다. 도래와 함께 떠난 얼굴들, 이름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웅현은 하늘을 본다. 사랑을 놓쳤니? 황금빛 사이로 겹쳐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 있다. 왜 웃는 거지? 웅현은 누군가 보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놀림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웅현은 그들이 남겨진 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렇더라도 역시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을 바꾸고, 곧이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먹먹해진다. 나를 이해해 줘···, 도래의 마지막 말은 웅현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변형되다가 서서히 형태를 찾는다. 빛은 따뜻하고 세상은 노랗게 물들었지. 황금빛 계절이거든. 웅현이 말을 건넨다. 빛의 터널을 나오는 웅현의 눈에 그들이 비쳐 든다. 도래가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웅현의 발걸음은 더디다. 노란빛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거리는 붉은빛에 휩싸인다. 사랑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웅현의 귓가에 닿는다. 여자는 붉게 물든 나무 아래 붉은 낙엽을 밟고 서 있다. 이어 들려오는 맞은편 남자의 웃음소리, 여자가 낙엽을 그러모아 허공에 뿌린다. 그러고는 다시 외친다. 사랑한다고! 붉은색이 그들 주위로 날아올라 빛처럼 흩어진다. 여자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소리칠 기세지만 남자는 계속 웃기만 한다. 웅현은 그들이 붉은 구체 안에 있는 듯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나도 사랑해!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번져온다. 연인이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웅현도 소리 나는 데로 시선을 돌리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고 조금 전까지 머물러 있던 은행나무길이 보일 뿐이다. 웅현은 가벼운 듯 장난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를 아는 듯하다. 웅현은 도래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으며 그녀와 함께였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그러자

  • 관리자
  • 2026-02-01
아직 이른 마음

아직 이른 마음 박하신 섬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성했다. 초여름을 맞는 버드나무 녹음이 무성했고, 고속도로에 바닷가 갯강구들처럼 달라붙은 자동차 정체 행렬이 무성했고, 하늘에 모둠 지은 뭉게구름 떼가 켜켜이 무성했다. 구름으로 말하자면 경부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한숨이 한데 모인 것 같은 풍성함이었고 눅진함이었다. 사이사이 파고드는 여름 볕은 쨍쨍하기만 해서 자동차 갯강구들이 아지랑이 같은 김을 뿜어내며 느릿느릿 익어 가고 있었다. 올여름 재해에 가까운 폭염이 찾아온다고 했다. 창문을 내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끊어야 할 텐데. 지난 건강검진에서 의사는 금연을 강한 어조로 권고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라디오에선 올해 메탄가스와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다시 한번 고점을 돌파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고속도로 솥단지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을 보니 이해가 안 갈 바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차도 노후 경유차라며 폐차를 권고하던데··· 때마침 창밖에서 도로변 축사 냄새가 매연에 엉킨 채 훅 끼쳤다. 과연 오존을 뚫어 버릴 것 같은 유독함이다. 이게 다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앞차 배기의 색깔도 심상치 않다. 그래, 어차피 다 같이 찜 쪄지는 마당에 잘잘못은 논하지 말기로 하자. 이미 벌어진 일과 잃어버린 것. 재해에는 고민한들 거스를 수 없는 면이 있고 그렇기에 말 그대로 재해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건 암 같은 거다. 분명한 업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건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그래, 평일 오전부터 고속도로에 갇혀 소들 방귀나 맡고 있게 된 것도 말하자면 재해 같은, 암 같은 소식 때문이었다. 그건 폭발에 대한 것이었다. 동선의 묘지가 폭발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건 이른 열대야에 허덕이던 어제저녁이었다. 낯선 번호로 수차례 전화가 걸려 온 것인데 상대방은 대뜸, 동선 씨 친구분 되십니까?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을 매봉도 수호행동위원장이라고 간략히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틀림없이 폭발합니다··· 땅속에 매설된 니트로글리세린과 질산암모늄 수천 킬로그램이··· 당신 친구의 묘지를 박살 내 버릴 거라구요···. 상대방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거대한 세력이 묘지를 파괴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호소했다. 그것도 폭약을 심고 아주 섬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고 했다. 그는 동선의 묘소를 지키고 싶다면 나더러 당장 매봉도로 달려오라고 촉구했다. 여기··· 당신처럼 무언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가능하면 내일까지 와 주십시오···. 불가능해도 내일까지 오십시오. 체념하지 않는다면··· 지킬 수 있습니다. 모

  • 관리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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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독갤빌런
    최고에요

    잘 읽었습니다. <허리케인 나이트>를 접한 후로 작가님 작품들을 조금씩 찾아보고 있었는데 새로 올라온 작품이 있어 반갑네요.과거와 미래 부분 모두 코즈믹 호러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습니다.실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감을 강제로 느끼게 된 주인공이 새로 태어난 후 여러 글들을 집필했지만, 정작 <유언> 의 실명출간이 막힌 아이러닉한 느낌도 좋았습니다.

    • 2025-03-03 01:23:53
    독갤빌런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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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호
    최고에요

    오랜만에 좋은 단편을 읽었습니다.

    • 2025-03-03 03:50:00
    이승호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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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다곰젤리

    자신의 이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에 답하는 여정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 오롯이 담겨있다. 구조적 관성이 물화된 시대적 배경 안에 기거한 한 주체의 자기 말소적인 지위의 획득 방법은 교내라는, 학교라는 상부 구조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지는 것일 뿐 정작 자신의 존재는 그 안에 지워지면서 잊혀진다. 자신이 학교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도 여전히 그는 우등생으로의 지위는 보전하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우등생-이라는 대우를 받는다. 졸업 때까지 반성문을 제출하는 건 우등생이 아닌 문지혁을 감시하기 위한 체제의 삼엄한 조치이다.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자살 아닌 자살이 실패-이름을 듣고 실패함-로 끝나고 자신의 식습관이 고쳐진 것은 구조의 장막에 가려진 진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난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미래의 노작가 문지혁은 이름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완전히 구조적으로 물화된 존재인 인공지능 심사관들에게 심문을 당하게 된다. 공평하게 이름을 누구나 쓸 권리가 있다는 사법 정책은 다른 말로 누구나 함부로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하지만 노작가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잊고 있었던 잡지 하나를 꺼내들고 -2학년 1반 문지혁-이라고 빈칸에다가 적어넣는다. 현재의 문지혁이 과거의 문지혁에게 진실을 고하기 위해서.

    • 2025-03-30 13:00:56
    판다곰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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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필명명필

    오래전 대학 교양과목 교재인 철학교양서를 읽고 있던 나에게 철학책보다 소설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문학을 권하던 철학과 박사과정 학생이 떠오른다. 이 글은 인권이나 자유니 하는 교양서보다 더 많은 것을 그것도 재미와 감동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스포일러(아래)-------------------------------------------------------------------------------------------------------------------------------------------------------------------------------------------------------------------------------------------------------------------------------------------------살다 보면 누구나 다 느끼겠지만 나도 주인공이 느끼던 자기검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익명이라면 거짓이 아닌 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지만, 실명이나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면 거짓을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움츠러들게 된다. 책임질 말만 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게 자유로운 건 아니다. 주인공이 중학교때 배운건 반성문을 통해 자기검열이다. 친구의 어머니인 학부모회장은 교장을 통해 자기 아들을 위해 주인공을 자기검열하도록 옭아맨 거라고 본다. 주인공의 글이 거짓말이었다면 혼날지언정 자살시도는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꼬투리 잡기에 걸려서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먼 훗날 이걸 깨닫는다.세상이 바뀌고 주인공은 ‘유언’이라는 원고를 실명으로 출판하려 하지만 이번에는 실명을 쓰지 못하는 제재를 받는다. 중학교 시절 누가 쓴 글인지 들통나서 혼났다면, 이제는 누가 쓴 글인지 알면 안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는데 이유는 ‘평등’이라고 한다.예전에는 실명이 드러날까 봐 자유롭게 글을 못 쓰고, 이제 자기검열을 벗어나 실명으로 글을 쓰려 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주인공은 예전 교지에 자신의 이름 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기검열을 반성하고, 지금의 거짓된 평등에 항의하는 의지를 보여준 거라고 본다.

    • 2025-06-18 11:57:06
    필명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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