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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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윤보인
“뭐어? 연변이라고? 연차를 내고 거기를 가요?”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회사 대표에게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조 실장이 끼어들었다.
“갈 수도 있지 않겠어?”
“거길 왜 가요?”
“으음.”
굳이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조 실장은 팔짱을 끼고 나에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캐물었다. 내가 별말이 없자, 회사 대표인 자기 오빠를 쳐다보면서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거기 가 본 적은 없는데, 조선족 많지? 또 뭐 있어?”
“백두산 있잖아요.”
고작 동갑인 놈에게 머리를 조아려 가며 매달 월급을 챙긴 지 벌써 2년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입사 초반에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모욕에 무시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걸 겪었다. 원래 회사 생활이 개 같은 데다 남의 돈 받아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는 인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알겠어. 연차 써.”
대표가 냉담하게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거 얼마 만에 쉬는 거냐? 주말 끼고 이틀 연차 내면 총 4일을 쉬는 건데, 연변에 가서 종희도 만나고 양꼬치도 먹고 술도 마셔야지. 그래 봤자 먹고 노는 일뿐이었지만, 하필 종희 년이 중국에서 그것도 연변에서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서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빠는 그야말로 개판인 인생을 살았는데, 여동생이라도 타국에서 잘 지낸다면 멀리서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 내 나이 마흔이 넘었고, 그동안 가까운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이제 정신 좀 차리고 회사를 다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에 있는 개 두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논현동 단독주택이 짱이야. 저 집구석은 얼마나 하려나?”
회사 맞은편 주택은 세월 가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잘 만나서 그래. 부모 말고 그 위 세대.”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나 오대길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얼마나 잘 만났는지, 돈도 많고 땅도 많아서 이거 친일파 활동을 했나, 남몰래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 활동을 했어도 남들만 모르면 되지,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과거 할아버지가 어울렸던 사람들이 은행장, 정치인 등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서울의 중심가 뚝섬이며 성수, 왕십리 지역의 땅을 사들였고 할머니와 본인의 외아들, 그러니까 내 아버지에게 많은 땅을 증여했고 그 덕에 나까지 웃음꽃이 피게 되었다. 돈이라는 게 참 좋은 것이어서 어릴 적부터 걱정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너 초장 끗발 개끗발이라는 말 알지?”
삼십 대 중반 내가 폭삭 망했을 때, 어릴 적 친구 조소득이 전화를 걸었다. 이거 뭐, 놀리나?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가난뱅이 새끼가 갑자기 연락을 해? 그놈이 강남에서 사업체를 차리고 잘 나간다는데, 지 동생 조장미를 경리로 두고 중국과 일본, 미국과 남미를 돌며 대기업과 손잡고 승승장구한다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고 전화했어? 끊어.”
“아니, 끊지는 말고.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일하는 거 어때?”
그것참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달콤한 말 속에는 언제나 독약이 들어 있는 법. 처음에는 믿지 않았고 그래봤자 유령 회사거나 바지 사장이겠지, 그렇게 의심했다.
“야, 그런 병신 새끼가 사장이 되냐?”
“뭐, 구멍가게 사장도 있으니까.”
어릴 때 한동네 살면서 어울렸던 고지식이 조소득의 소식을 전하는데, 내가 망해 버렸다는 사실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왕십리에서 오씨 집안의 귀한 아들, 이 오대길을 모르는 놈이 있냐? 하지만 그것도 과거일 뿐, 그 집안을 말아먹은 당사자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긴 시간 한량으로 살아온지라 동네 조무래기들 휘여잡고 공부와 담쌓고 지내서 할머니는 마음고생을 했다. 매번 말썽만 부리고 학교에서 부모 모셔 오라는 소리를 들으니 할머니는 근심이 늘어갔다. 어떻게 씨 종자가 잘 못 되었는지, 내 조상들은 그야말로 품위 있고 많이 배웠다는데, 그들과 다르게 촐랑대고 남들 놀려먹기 좋아하는 성미인지라 아무리 애를 써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조소득과 조장미, 그들의 할머니가 우리 식구의 눈치를 보며 공동 화장실을 오갈 때, 그야말로 거지꼴로 다니며 학교에 낼 육성회비가 없어 조소득이 학교에서 달려와 울음을 터트릴 때, 나는 밖에서 그 소리를 엿들었다.
사실 조소득과 조장미 사이에 조길선이라는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런데 그 애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고 그들 가족이 밤새 통곡하고 신을 원망하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인명이 재천이라 해도 둘째가 갑자기 사라지니 동네 사람들은 그들 남매를 애처롭게 바라보았지만, 얼마 후 그들의 아버지가 땡중이라고, 노름이나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고, 나도 모르게 그들 남매를 깔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세월 흐르고 조소득이 성공해서 강남의 도곡동 100평짜리 아파트에 산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릴 적의 원한이라든가 가난이라든가 그 무엇이 그들을 성장시킨 것인지 모르지만 그놈이 어떻게 살든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제안 앞에서 나에게 얼마의 돈이 들어올지 궁금했다.
조소득은 월 350은 챙겨 준다며 무심히 말했다. 그거 괜찮은데? 그동안 인간들에게 다 뜯기고 알거지가 되었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물론 4대 보험은 되겠지? 내가 물었을 때, 그거 안 되는 회사도 있냐고 그놈이 대답했다. 나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세금 빼면 월 300 정도 될 텐데, 카드값 빼면 남는 게 있나? 그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근데 나 오대길이 자존심을 버리고 어릴 적 친구 놈 밑으로 기어들어가 비위를 맞출 수 있나? 지 동생을 경리로 둔 가족 회사인데? 거기서 감당해야 할 모욕과 치욕이 보통이 아닐 텐데. 지하철을 타고 검은 비닐봉지에 사과 한 알과 소주병을 들고 가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디 갈 데 없으면 무작정 용인의 선산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 부모까지 다 있는 터라, 묘지를 정리하고 쓰레기까지 줍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해 질 녘에 무덤가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으면 인간들 옆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으르렁거리며 남들과 싸워 봤자 남는 것도 없고 내 기질대로 세월아 네월아 흥얼거리며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 한잔 마시고 잠드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보증금 1,000에 월세 45만 원짜리 집에 살고 있자니, 건강도 안 좋아지는 것 같고 나는 결국 조소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알겠다. 니가 제안한 거 할게. 근데.”
“근데, 뭐?”
“좀 괜찮은 데로 이사 가게 보증금 좀 빌려줄 수 있냐?”
그 제안을 한 다음 헤헤거리며 웃었다. 보증금은 적어도 3,000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 내가 물었을 때, 녀석은 다시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지금 살고 있는 사근동도 괜찮긴 한데, 아무래도 대학가라 시끄럽고 한적한 공원이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내 고향 왕십리가 딱이지. 하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신축 아파트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2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결혼했을 때만 해도 할머니는 나에게 한강 근처에 있는 아파트가 낫다고 하면서 동부이촌동 아파트를 증여해 주었고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할머니는 성수동 4층 건물을 내 명의로 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성수동이 인기가 없었고 공장 지대인 데다 골목이 어찌나 음산한지, 걸을 때마다 아주 우울해질 정도였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한강이 코앞이라는 것,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를 달래듯 갖고만 있게, 라고 다독이듯 말했고 나는 투정을 부리며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할머니는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돌아온 서방처럼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대했다. 그 과한 사랑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집구석에서 많은 걸 누렸지만, 여동생 종희를 생각하면 미안할 지경이었다.
애지중지 빚어 놓은 도자기처럼 귀하게 자란 나와는 다르게 종희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구박을 받았다. 나와 4살 터울이었던 그 애가 물론 성격도 얌전하지 않고 덜렁거리고 음식만 있으면 욕심을 내서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았다. 나에게는 대자대비의 사랑을 베풀면서 종희에게는 눈치를 주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 역시 종희가 어릴 적 놀림을 당해도 야, 덜 떨어지니까 그러고 다니지, 라고 타박을 했다. 종희는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는지 별말이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양아치 흉내를 내며 동네 녀석들과 당구장에서 시간을 때웠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나에게 설악산 봉정암에 가야 한다며 재촉을 했다. 거기 뭐 있어요? 내려올 걸 뭘 올라가요? 그렇게 투정을 부렸지만 결국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렵게 봉정암에 도착한 후 할머니는 불상 앞에서 연신 기도를 했고 나는 절에서 내어 준 미역국을 퍼먹었다. 아휴, 손자가 참 대단합니다. 여기까지 오고요. 불자들이 옆에서 간섭하고 떠들 때,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호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고 재앙이었다.
불행이라는 게 어느 날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 산에서 미끄러지듯이 아니 추락하듯 바위로 떨어지고, 이제 정신 차려야지, 하는 순간 다시 얻어맞게 되는 것임을, 그토록 인생이 혹독한 것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초년 복이 중년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결혼한 직후였다.
어릴 적부터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일찍 결혼을 하고 싶었고 이십 대 중반 비교적 온순한 여자를 만나 식을 올렸지만, 그때부터 아내는 성수동 건물을 자신의 명의로 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부부인데 그러지, 그러면서 결국 사달이 나 버렸다.
명의를 바꾸기 전, 하필 믿었던 친구 놈에게 보증을 섰다가 동부 이촌동 아파트를 날렸고 3년 후에 아내가 성수동 건물을 팔아먹고 혼자 필리핀으로 도주해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종희가 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유산이 그 애에게 한 푼도 가지 않았고 종희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중국으로 떠나 버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소송이라도 할 텐데, 종희는 일절 그런 게 없었다. 그게 우리 사이의 사연이라면 사연일 텐데. 물론 어디에나 나 같은 못난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근데 왜 하필 연변이냐? 베이징도 아니고. 조선족 많은 그 지역에서 너는 뭘 하냐?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으응, 남편이 조선족이야.”
“뭐? 조선족?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뭘 어쩌다가야? 똑똑해. 칭화대 나왔어. 수재야.”
“그런 놈은 어디서 만났어?”
“하얼빈에서, 원래 그 사람은 연길 출신인데, 하얼빈에서 우연히 만났어.”
“흐음, 그렇게 됐군.”
그 외에 자세한 건 묻지 못했다. 물론 내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이후 딸 셋을 낳았고 종희의 남편이 연길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흐음, 무슨 호텔? 고작 여인숙 정도겠지. 종희가 택한 그 조선족 남자를 상상하면서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칭화대를 졸업했다면 머리가 좋을 테고, 사업 수완도 좋을 텐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건물을 지었다니. 그곳 상황이 궁금하긴 했다.
어릴 적 틈만 나면 울음을 터트리던 그 종희가 이제 날개를 달고 사나? 흐음,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섰다. 물론 회사 자금 관리를 하는 조 실장에게 종희에 대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어릴 적 조장미와 종희가 동갑이었고 꽤 어울려 놀았는데, 주인집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조장미는 종희에 대해 상당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너희는 부자여서 이런 과자를 먹는구나?”
고작 싸구려 계란 과자를 먹고 있는 종희에게 조장미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그 애들 사이에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과거, 찢어지게 가난했던 지난날, 그 치욕스러운 생활을 자세히 알고 있는 자를 매일 일터에서 만나야 한다는 게 끔찍했는지, 조장미는 나를 볼 때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내 업무가 출장이 잦은 일이었고 영어도 잘 못하면서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일본을 오가는 일이 많은 터라, 조장미의 사나운 눈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조 실장님, 그렇게 앉으면 목 디스크 걸려요!”
“뭐예요?”
“어허, 허리 좀 피고. 그러다 허리까지.”
나는 일부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 조장미에게 쏘아붙였다. 사람들을 무척 의식하는 조장미가 나를 째려보았다.
“왜 째려봐요?”
“언제 째려봤다고 그래요?”
“난 또 째려봤는지 알았지.”
그러면서 나는 일부러 조장미의 속을 긁었다.
“근데 연변에 대체 누가 있는데요?”
“으흠, 종희요.”
나는 조장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일부러 떠봤다.
“걔하고 연락을 해요?”
“종희가 먼저 했어요.”
그러자 조장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연변에서 뭐 하는데요?”
“결혼해서 애 낳고 살지요.”
“뭐요?”
조장미는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분명 비웃음이었다. 은근한 깔봄과 무시가 내재되어 있었다. 오래전 집주인의 손녀가 이제는 멀리 중국 연길에서 살고 있다니, 뭔가 기쁨이 차올랐는지 조장미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휴, 뭘 거기까지 갔대요?”
남편이 조선족이라고 말하면 더 깔볼 것만 같아서 더는 언급할 수 없었다.
“잘 살아요?”
“몰라요.”
“얘기 좀 해 봐요, 오빠.”
조장미가 슬쩍 내 자리로 다가와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어허, 여기는 엄연한 회사입니다.”
나는 거리를 두며 애써 조장미를 밀어냈다. 그런데도 그녀는 뭔가 미련이 남았다는 듯 아니 정보를 더 캐내기 위해 내 곁에 머물렀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는데, 의자에 앉자마자 샤넬 가방을 끌어안더니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슬쩍 조장미의 가방을 보면서 저게, 지하고 어울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참에 종희 만나면 저런 거 하나 던져 줄까? 아니지. 호텔 사장 마누라라면 저런 게 대수겠어? 그보다 더한 걸 남편에게 받을 텐데. 그동안 오빠로서 해 준 것도 없는데 저런 가방 하나 사 들고 가면 어떨까? 일이백도 아니고 천오백이 넘을 텐데.
아직 집 보증금도 회사 대표에게 다 갚지 못했는데, 그냥 카드로 사? 나에게 허영이 남아 있어서 온갖 갈등 속에서 시간을 죽여 가며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조 실장님!”
“왜요?”
“그거 짭 맞지?”
나는 일부러 퇴근하는 조장미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질문했다.
“이게 가짜처럼 보여요?”
“으음, 아니야? 백화점에서 샀어?”
그러자 조장미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가 버렸다. 조소득에게 듣자 하니, 과거에 조장미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두 번인가 파혼을 했다는데, 동생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명품 백을 안겼다고 했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조소득의 아내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조소득 같은 오빠가 있어서 차암 좋겠다. 인생에서 곡절을 만나면 위로해 주고. 나는 그들을 보면서 헛기침을 했다.
“아니, 오 대리. 연변이 아니라 이참에 필리핀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회사 대표 조소득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질문했다.
“필리핀은 왜요?”
“왜긴? 찾아야지. 안 찾아?”
“이미 남남 된 지 오랩니다.”
“오 대리, 억울하지도 않냐? 그걸 가만둬?”
억울하지 않기는. 하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나였으면 가만 안 뒀어.”
조소득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내 앞에서 중얼거렸다. 역시 인간이란 남의 불행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결국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할 수 없었다.
조소득은 애써 웃음을 감추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 지금이야 좋겠지. 하지만 어느 시절이고 판은 바뀌게 되어 있고 너라고 그런 배반을 겪지 말라는 법은 없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으로 멀어지는 조소득의 외제 차를 바라보았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기는 해도 과거 아내와의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옷을 홀딱 벗고 침대 위에서 함께 고스톱을 칠 때,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장난삼아 상대를 놀릴 때, 그러면 아내가 기분 나쁘다는 듯 손가락으로 내 뺨을 툭툭 치는데, 그 행동이 과하거나 건방지게 보일지라도 나는 괜찮았다.
슬립 입은 아내의 모습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늘 그걸 입으라고 강요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툴툴거렸다. 다른 색깔 없냐? 이게 다야, 살색. 그거 말고 더 섹시한 색 없어? 없수다. 이렇게 지껄이면서 깔깔댔고 우리만이 알 수 있는 농담을 하면서 화투패를 들여다보았다. 이걸로 사기 치려고 하지 마. 사기는 무슨?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기싸움을 했고 그러다가도 통닭을 뜯어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주말을 즐겼고 베란다에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내가 배신을 당하긴 했지만, 모든 시간들이 다 사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한테 즐거움을 줬으니깐. 역시 자기는 관대해. 아내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나를 알아본 존재가 나타난 거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큰 갈등 없이 삶이 굴러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성수동 건물이 넘어간 후에는 고통스러워서 그 동네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자연인이 되어 한동안 이 산 저 산 지방을 떠돌았다.
상대에 대한 원망보다 나 자신이 얼마나 등신 같은지, 조상들의 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그대로 날려 버렸다는 사실을, 그 치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을 대강 알고 있으면서도 종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라비가 그동안 참 개고생했거든. 너 그걸 아니?”
훌쩍이면서 종희, 어릴 적 그 쫑쫑이를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종희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돈도 없으면서 카드를 긁어서 백화점에서 샤넬 가방을 하나 사 들고 비행기를 타 버렸다.
“공항에는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
“그럼 어디서?”
“시내 카페에서 만나.”
나는 애써 종희에게 말했다.
“그래도 멀리서 오는데, 공항에는 나가 봐야지.”
“아냐. 됐어. 번거로우니까 절대 나오지는 마.”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거절했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굳이 종희가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반기는 상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충동적으로 구입한 가방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귀찮은 쓰레기로 여기는 건 아닐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도자기보다는 낫잖아? 그림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
그렇게 뻔뻔하게 물을 수도 있었다. 회사 대표 조소득이야말로 돈이 넘쳐 나서 어디서 공수해 온 도자기며 가격을 알 수 없는 그림을 사 모았다. 그때마다, 저거 도굴꾼이 건진 것 같은데?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욕을 먹을 것 같아서 참아야 했다. 남이 사 온 물건은 어찌나 별 볼 일 없어 보이는지, 내가 어렵게 구입한 건 왜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개의 여자들이 이거 보면 환장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오빠 이런 건 필요 없어. 종희가 말한다면, 야, 임마, 당장 안 써도 그냥 갖고만 있어. 그 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보다 종희가 어린 딸들을 줄줄이 데리고 약속 장소로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미안한데 이것들아, 잘 들어라. 니 엄마한테 줄 선물 사 오느라 너희들 건 미처 챙기지 못했구나, 쏘리.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때 챙겨 주마.
그렇게 밀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할지 내심 복잡해졌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종희는 자신의 딸들을 데려오지 않았고 남편과 함께 나타났다.
카페 문이 열리고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몹시 경직되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중충한 검은색 잠바를 입고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종희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면서 한순간 주눅이 들었다. 종희의 모습은 뭐랄까. 에너지가 넘쳤고 밝은 햇살 같았다. 아니 여긴 지중해도 아니고 중국, 그것도 연변인데, 너 어찌 그리도 밝은 얼굴로 살아가냐? 오히려 묻고 싶을 정도였다. 건강함과 활기, 그리고 뭐랄까 동북아 여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생활력의 기운이랄까. 억셈이랄까. 단번에 드러나는 당당함 때문에 나는 몹시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빠, 여기 어떻게 왔어요?”
종희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어떻게 오긴. 비행기 타고 왔지.”
“힘들지 않았어요?”
“야, 당연히. 북한이랑 여기가 좀 가깝냐? 은근 긴장을 했다. 그래도 너를 만난다는 기쁨에.”
갑자기 종희가 말을 가로막았다.
“여기 여기. 우리 남편.”
우리 남편이라는 말이 어찌나 어색하고 낯설게 들리는지, 나는 조선족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키가 큰 데다 체격이 좋았고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건장해 보였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 정도, 무엇보다 딴짓 안 하고 자기 가족만 챙길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야, 쫑희 이년이 보는 눈이 있어서 지 오빠하고 완전히 반대인 남자를 골랐구나. 그래, 한량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박을 하거나 주색잡기에 빠질 것 같지는 않아. 만나기 전에는 막연히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랄까, 거부감 아니 무시 같은 게 있었는데, 그 편견을 비껴갔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나를 대하는 정중한 자세와 태도 때문에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그의 눈빛과 언행은 그야말로 배운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잘 오셨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었고 잠깐 악수를 하는 동안, 나는 그 몇 초 사이에 그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꿰뚫어 보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건 종희와 남자 사이가 무척 좋다는 것, 부부 사이가 아주 끈끈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종희를 바라보는 눈빛은 따스했고 그야말로 여자를 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로서는 낯설고 민망하고 어색해서 어서 남자를 밀어내고 조용한 곳에서 종희와 단둘이 남고 싶어졌다.
“형님, 저희 호텔로 가시죠.”
남자는 너무 자연스럽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나는 어어 하면서,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연변대학 근처에서 출발해서 호텔까지 약 십 분 정도가 걸렸는데, 생각보다 도로가 깨끗하고 잘 되어 있어서 중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지방의 어느 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대전이나 천안 어디쯤. 게다가 한국어로 쓰인 간판을 보면서, 중국과 한국이 다 섞인 것만 같아서 내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동안 어떤 그리움이나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테고, 혈연이라는 것의 복잡함과 쉽게 끊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가 왔다고 조수석에 앉아 남편에게 수다를 떠는 종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 멀리 펼쳐지는 강을 보면서 과연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내가 저 애의 것을 다 빼앗았는데도 저 애는 왜 저토록 명랑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애써 만들어 놓은 착취, 아니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집안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재산을 나에게 다 몰아줌으로써 한 방에 날려 버린 것을, 저 애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운전을 하는 저 조선족 남자는 나를 얼마나 한심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볼까. 속으로는 인간 취급도 안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호텔 앞에서 내렸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저 여인숙 아니 모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10층짜리 호텔이었고 이게 과연 이들의 건물이 맞나, 다 은행 돈이겠지, 그런 의심을 하면서 그들을 따라 호텔로 들어갔다. 직원들은 공손했고 한국말을 할 줄 알았으며 나에게 무척 친절했다. 그들이 건넨 키를 들고 나는 종희와 그 남편을 따라서 9층 객실로 올라갔다.
한국의 여느 호텔과도 비교해서 다를 게 없었고 객실 내부 또한 깔끔하고 꽤 넓었다. 종희의 남편은 인사를 한 뒤 먼저 방을 나가 버렸다. 배려 차원에서 그런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종희는 창가의 커튼을 젖히면서 연길에 대해 소개를 하려 했다.
“아니, 뭐 필요 없고.”
“필요 없어요, 오빠?”
“근데 니가 언제부터 나한테 존댓말을 썼지?”
“아아, 너무 오랜만이어서요. 근데 이 쇼핑백은 뭐예요? 안에 뭐가 들었어요?”
“으음, 김치 들었지.”
“김치요? 농담은.”
“그거 꺼내 봐라.”
종희는 의아하다는 듯 쇼핑백에서 가방을 꺼냈는데,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그거 짝퉁 아니야.”
“진짜예요?”
“백화점에서 샀어.”
“근데 이걸 왜?”
“오랜만에 보는 게 줄 게 있어야지. 빈손으로 오냐?”
“아휴, 말이 안 되잖아요.”
“얼마나 한다고. 나 이제 돈 잘 벌어. 고생 끝났다.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알아?”
“월급쟁이가 벌어 봤자죠.”
“무슨? 걱정 안 해도 돼. 고민 없이 샀어. 어릴 적 니 친구 조장미 알지? 그년이랑 내가 같은 회사잖아. 드럽게 못난 년이 매일 샤넬 백 들고 출퇴근하는데, 그때마다 너 생각나더라. 걔보다야 니가 어울리지. 고급스럽고. 딱이야.”
“딱이에요?”
“구럼.”
나는 일부러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성의니까 무조건 받아. 니가 안 받으면 그냥 여기 두고 간다.”
“알겠어요. 그럼.”
“근데 니 남편이 명품 가방은 사 줬니?”
“몇 개 있어요.”
“오, 이거 있어?”
“같은 디자인은 없어요.”
“그으래?”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너그러운 척 침대에 앉아 창밖의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함과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지 말고 나가서 식사나 해요.”
“그래. 그거만큼 중요한 게 있냐?”
“근데, 오빠 이러다 거덜 나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알겠어요.”
종희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성의를 받아들였다.
“오빠는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자알 지냈다. 너는 어떠냐?”
“보다시피 남편 잘 만나서 애들 키우면서 지내고 있어요.”
“괜찮은 놈 잡았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딱 보면 알지. 나는 그동안 폭삭 망했다가 이제 서서히 일어서고 있어.”
“다행이네요.”
“그간의 일은 말도 마라.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배웠다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기대도 안 했는데 연길,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살기 괜찮아요.”
“애들은?”
“학원 갔어요. 공부 잘해요. 지 아빠 닮아서.”
“너도 똘똘했어.”
“오빠보다는 잘했죠.”
“나야 운 좋게 사랑을 받았을 뿐.”
“그 얘긴 하지 마세요.”
“알았다.”
“오빠 여기까지 와서 지난 일만 얘기하려다 돌아가려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그냥 좀 사과를 하고 싶어서 그러지.”
“18년 만의 사과네요?”
“그런가?”
나는 알고 있으면서 담담히 대꾸했다.
“배우자를 찾아 하얼빈까지 갔니?”
“중국어를 배우러 갔죠.”
“돈은 어떻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가지고."
“잘했구나.”
“그러다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 종희 니가 내 한을 풀었구나. 내가 놓쳐 버린, 조상에게 받은 건물을 니가 다시 세웠구나.”
그러자 종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웃었다.
“이건 남편 건물이죠.”
“니 꺼나 다름없지.”
“오빠 나를 위로하려 여기 왔어요?”
“그냥 뭐.”
다소 쌀쌀맞은 종희를 보면서 이거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샤넬 가방까지 갖다 바쳤는데, 을의 자세로 계속 과거를 사죄하듯이 굴어야 하나. 나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져서 화도 나고 복잡한 심정이 들어서 밖을 내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저년이 대체 언제까지 저럴 거지? 내가 무릎 꿇고 사과를 하리? 눈물을 터뜨리리? 한 사람의 굴욕과 슬픔을, 좌절을 확인하려 하나? 아니지. 내가 저 애한테 빼앗은 게 수십억은 될 텐데, 고작 천오백짜리 가방으로 위로하려 하다니. 종희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었다. 그간의 차별과 억압과 모진 슬픔을 다 기억하고 있을 텐데, 모든 걸 막아 주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딸로 태어나서 그래요.”
종희가 말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분화될 수 없는 게 우리 사이에 있었다. 간극. 그것에 대해 쉽게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니 서로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저 혈연을, 어색함과 침묵을, 묘한 비틀림을, 자본과 극빈을 다른 계급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종희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제 와 모든 걸 돌려놓으려 하는 것도 억지였고 폭력이었다.
“어서 나가서 밥이나 먹자.”
역시 어색할 때는 밥이나 먹는 게 최고였다. 그러자 종희는 짐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방은 여기 두고 가.”
“아니, 비싼 건데 들고 가겠어요.”
종희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쇼핑백을 들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호텔 1층으로 내려갔을 때, 이미 종희의 남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종희의 세 딸이 어색한 듯 장난을 치며 서 있었다. 셋 다 단정하고 차분해 보였다. 딸들 옷차림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흔히 길거리에서 보이는 평범한 아이들 같지 않았으며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났다. 그게 다 돈으로 치장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니 자본이 있다 해도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편함까지 느껴졌다. 그건 내가 갖지 못한 가족이라는 것, 그것 때문이겠지만 아쉬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고급 식당이 아닌 일반 서민들이 먹는 냉면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손님 대접을 고작 이 정도로 하나 싶어서 몹시 실망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식당 주인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으며 침묵했다.
“요즘 한국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종희 남편이 물었다.
“뭐가 어때요?”
나는 일부러 모른 척 조선족 남자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칼부림이 났다고 하던데요.”
“어딜 가나 범죄는 있잖아요? 여기도 있을 텐데. 영화에서 자주 봤어요.”
“형님, 아닙니다. 영화는 과장입니다. 여기는 공안들이 쫙 깔려 있어서 안전합니다.”
“안전해요?”
“여기 연길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택시만 타고 CCTV가 다 있고, 관광객도 많아져서 마음 놓고 길거리를 다닐 수 있습니다. 위험하긴 한국이 위험하지요.”
“뭘 내 나라 한국을 욕하고 그래요?”
“아, 죄송합니다. 욕을 한 건 아닙니다. 제가 왜 욕을 하겠습니까?”
“다만.”
“다만 뭐요?”
나는 애써 공격적으로 말했다.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대통령 욕을 하고 내려오라 그러던데. 여기는 좀 다릅니다.”
“벌써 내려왔잖아.”
“그렇긴 하죠. 여긴 다들 주석을 좋아합니다.”
“아아, 시진핑? 그래요?”
“여기 사람들은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지.”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종희를 비롯해서 남편까지 별말이 없었다.
“무슨 영화를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어, 영화 〈황해〉 있잖아요. 몰라요?”
“압니다.”
“조선족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 열심히 사는 사람도 많고요. 성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럼요. 호텔까지 지었으니 성공했고 말구요. 근데 듣자 하니, 요즘 중국 경제가 폭삭 망했다던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저희는 호텔도 꽤 잘 되는 편입니다.”
“흐음, 자랑이에요? 나도 방귀깨나 뀌는 놈인데.”
나는 종희의 오빠라는 것도 잊은 채, 세 딸들이 쳐다보고 있는데도 뻔뻔하게 말대꾸를 했다. 그러면서 급하게 냉면을 먹었다.
“근데 형님 무척 배고프셨나 봅니다.”
“그럼 안 고프겠어요?”
“형님, 저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이 사람을 얼마나.”
“오해는 무슨 오해요?”
나는 급하게 순대를 먹었다.
“으음, 이게 연길 순대라는 겁니까?”
“아주 유명합니다. 연길 하면 냉면하고 순대, 양꼬치가 유명합니다.”
“알아요. 찾아봤어요.”
“형님, 식사하시고 여기 마사지도 유명한데, 한번 받고 가시죠.”
“마사지?”
“한국보다 가격도 싸고 잘합니다.”
“으음, 우선 좀 먹고.”
처음엔 싸구려 식당이라고 깔봤지만, 냉면과 순대를 먹으면서 그 조합에 아니 그 맛에 한 번 놀라서 좀처럼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요. 이참에 연길까지 왔는데 마사지도 좀 받읍시다. 같이 가요.”
“아닙니다. 형님만 받으세요.”
식당에서 계산하고 나오면서 종희의 남편은 나를 밀어냈다. 결국 종희가 나를 안내해 주기 위해 먼저 옆 건물로 들어갔다. 종희의 남편과 아이들은 급하게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종희는 홀로 남아서 마사지 금액을 계산했다.
“밖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릴게요.”
“그럼, 그렇게 해.”
결국 마사지 가게 직원을 따라서 실내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간이침대에 누워 누군가 내 등과 어깨, 목을 눌러 주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그동안의 피로와 서러움까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조금만 일찍 깨달아도 좋았을 텐데, 이제 와 소용없는 일이었다. 뒤늦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피로와 모욕을 느낄 때마다 근처 병원으로 달려가 수액을 맞았고 그때마다 간호사를 심하게 타박했다.
“이봐요. 제대로 찔러요. 한 번에 못 찔러요?”
“혈관이 잘 안 보여서 그래요.”
“안 보이긴. 파악 팍, 찔러요!”
그렇게 간호사를 나무랐고, 늘 대접을 받으려 하다 보니 어딜 가나 반가운 손님이 되지 못했다.
“으흠, 아주 시원합니다.”
나는 애써 과거를 잊으려는 듯 조선족 직원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사장님, 여기까지 오셨는데 많이 구경하고 많이 드시고 가십시오. 여기 북조선도 가깝습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쏘아붙이자 젊은 직원이 입을 다물었다.
“북한에 가 본 적 있어요?”
나는 다시 직원을 달래듯 물었다.
“그럼요.”
“어찌 갔어요?”
“저는 중국인이니까요.”
“다리는 어떻게 건넜어요?
“버스도 타고 차도 타고.”
“북한에 왜?”
“친척이 있어요.”
“어디?”
“회령.
“어때요? 우린 거기 못 가요.”
“너무 가난해서 다신 가고 싶지 않습니다.”
“흐음. 잘났군.”
“왜요? 사실인데. 여기서 북한 술도 사 가세요. 인삼 술.”
“그건 내가 알아서. 이봐요. 이념을 알아요?”
“그건 몰라. 모릅니다.”
“너는 여기 북쪽의 비바람을 맞고 사는 거야?”
다짜고짜 나는 어둠 속에서 반말을 했다.
“사장님도 참, 북한 사람 만나고 싶으면 식당으로 가 보세요. 사람이 그리운 거라면.”
조선족 직원은 기분이 상했는지 곧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 주머니 속에 있던 돈을 상대에게 찔러 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풋, 하고 웃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문 앞에서 종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요?”
“시원하긴 한데. 근데 여기서 북한이 그렇게 가깝냐?”
“바로 코앞이에요. 고속열차를 타고 15분만 가면.”
“가면?”
“도문이라는 곳에서 바로 볼 수 있어요.”
“내일 오전에 거기나 갈까? 니 남편은 빼고.”
“빼고?”
“어색해서 그래. 근데 둘이 가면 그자가 싫어하겠지?”
“싫기는요. 오빠하고 잠깐 나들이 간다는데.”
“역시 우리 쫑희가 남편을 꽉 잡고 사는구나.”
나는 애써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 집도 멀지 않아요. 같이 갈까요?”
느닷없이 종희가 말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서 거절했다.
“아니야. 호텔이 편해. 근데 아파트냐?”
“그럼요.”
“넓으냐?”
“오십 평정도?”
“이야, 잘된 일이구나.”
“여긴 한국처럼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식구가 많은데 넓은 데서 살아야죠.”
그 말을 하는데, 종희가 무척 다르게 보였다. 과거 심약했던 여자애가 이제는 타국에서, 가정을 지키면서 당당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게 결국 사람을 저렇게 변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 종희의 눈에도 내가 많이 변했을 테지만 그간의 세월을 어찌 설명할 수 없어서 나는 조용히 호텔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계속 침대에서 뒤척였다. 뭔가 꿈을 꾸는 것 같았고 현실과 경계가 사라진 것 같아서, 여긴 대체 어딘가 하는 생각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종희와 함께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연길서역까지 이동을 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기차표 두 장을 들고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종희는 내가 전달한 샤넬 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어쩐지 겸연쩍기도 하고 어색하기만 해서, 저걸 내가 사 준 게 맞나 싶어서, 대체 이 장소와 저 가방이 어울리나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누구도 명품 백을 든 사람은 없었으며 그저 붉은색, 초록색, 알록달록한 옷차림을 한 중국인들뿐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경직이 되고 시장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아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낯설게 쳐다보았다. 아니, 저것들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기차 칸에 불붙으면 어쩌려고 그래?
“야, 쟤들 좀 봐라.”
“원래 그래요. 여긴.”
“그런 게 어딨어?”
“워낙 인구가 많으니까요. 다 통제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이놈의 나라는 참 특이하다니까. 공중도덕 질서라는 게 없어. 게다가 아휴, 저 시끄러운 것 좀 봐라. 사람이 말이야. 교양이 있어야지. 배워야 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그리고 어제 말이야. 니 남편, 조선족 주제에 나를 깔보는 것 같단 말이야. 짱개 주제에.”
“깔보긴 뭘 깔봐요?”
“별말 안 하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내가 사 준 샤넬 가방 보고도?”
“암말 안 하던데요.”
“우리 부자였던 거 그놈도 알아?”
“아휴, 오빠도 참, 시절 다 지났어요.”
“그거야 물론 잘 알지. 하지만 잘 잊혀지지 않는단 말이야.”
“수십 년 흘렀어, 오빠.”
“안다, 알아.”
계속 내 쪽으로 오는 담배 연기 때문에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으음, 근데 좀 무섭긴 하다.”
“뭐가요?”
“북한이 가깝다고 하니까, 공안들이 나를 잡아다가 북으로 넘기는 거 아닐까?”
“그렇게 무서우면서 왜 가고 싶다고 했어요?”
“이런 기회가 자주 없으니까 말이지. 너는 가 봤어?”
“전에 한 번. 뭐, 갈 일이 있어야죠.”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 해요. 내려서 택시 타고 움직일 거예요.”
중국어에 워낙 능숙한 종희 덕분에 도문 역에 내리자마자 택시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얼른 택시에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택시가 언덕을 올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에 차를 세웠다. 그때부터 종희는 나에게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관광객들을 따라 산책로를 조금 걸었을 때, 놀랍게도 산과 강이 펼쳐졌다.
“오빠, 여기, 여기 두만강.”
“뭐야? 왜 이렇게 폭이 좁아? 무슨 하천이야?”
“여기서 사람이 많이 빠져 죽었어요. 넘어오다가.”
“지금은?”
“못 오죠.”
“야, 저기 사람 지나간다. 저기가 어디라고?”
“북한 남양시.”
“여기는?”
“도문.”
“여기까지 너와 함께 오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긴 해요.”
“저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빠가 안됐어요.”
“내가 어때서? 갑자기 여기서 무슨 연민의 정을 품고 그래?”
나는 갑자기 버럭 성질을 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 많은 돈 인간들한테 다 뜯기고.”
“흐음, 그건 부정할 수 없네.”
“내가 찾아 줘요?”
“무얼?”
“오빠 배신한 인간들 찾아서 내가 죽여 줘요?”
“무슨. 종희 니 인생을 살아야지. 그렇게라도 말해 줘서 고맙구나.”
“아니, 왜 그렇게 인생을 살아요?”
느닷없는 종희의 공격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눈앞에 철조망이 있고 두만강이 있는데, 인간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경계가 있는데, 그 초소를 보면서 인간과 인간의 벽이 멀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종희와 나 사이에도 있는 것 같아서 뭔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너어,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는 거야?”
“답답해서 그러죠. 연길까지 왜 온 거예요?”
“니가 초대했잖아.”
그러자 종희가 입을 다물었다.
“이것 봐. 쫑쫑이, 우리가 여기서 지금 이럴 게 아니야. 18년 만에 만났는데, 또 언제 볼지 모르잖아?”
“하긴 그래요.”
“야야, 하늘 좀 봐라.”
“어디요?”
“저어기. 눈발 날린다. 근사해.”
“치이, 뭐가 근사해요?”
“함께 이런 풍경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게다가 바로 앞이 두만강이고. 저 나무들 봐라. 엄청 황량하네. 근데 3월인데도 날이 너무 춥구나. 뼈마디가 저릴 정도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 솔직히 말해 봐라. 돈 때문에 나를 많이 원망했지? 니가 받지 못한 액수 때문에?”
“아휴, 왜 이래요? 한 푼도 받지 않은 건 아니에요. 중국 올 때 엄마한테 유학 자금 조금 받았어요.”
“흐음, 너 지금 날 비웃고 있는 거지? 개놈의 자식이, 잡놈이 죽지도 않고 살아서 여길 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눈발이 날리는데, 나는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미쳤어요?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이래?”
“사람은 술 안 먹고도 미치는 법이야. 너 한국은 언제 올 거야?”
“가요.”
“조선족 놈이 변심해서 깔보면 당장 들어와.”
“변심 안 해요.”
“순진해 빠져 가지고. 사내놈들 믿지 마. 알아들어?”
“알았어요.”
“임마, 여자는 초라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가방도 비싼 거 산 거야.”
그사이 다시 한번 칼바람이 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가 국경에서 말다툼을 했다가 서로를 달래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바람이 불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인 택시 기사가 팔짱을 낀 채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쟤들은 여기서 왜 저래? 싸우려면 지네 나라 가서 싸우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자. 저놈도 춥겠어.”
나는 택시 기사를 의식하며 말했다.
“오빠 혼자 가요.”
“뭐어? 너어 저쪽으로 넘어가겠다는 거야?”
“남편과 자식들이 여기 있는데, 저길 왜 가요?”
“그래. 그러지 말고 다시 돌아가자. 듣자 하니, 연길 양꼬치가 유명하다면서? 가서 그거나 먹자. 근데 나 여기서 살까? 호텔에서 청소 일이나 하면서?"
“헛소리 말아요.”
“나 이제 부지런해. 정신 차렸어.”
“흐음.”
“회사 출근도 남들보다 삼십 분 먼저 한다니까. 인간들이 내 인사 안 받아 줘도 신경 안 쓴다. 낙하산으로 들어왔다고 흉보고 비웃어도 실실 웃고 만다니까. 잘 들어라. 이 오빠가 한국사 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며 사는 줄 아냐? 옛날 오대길이 아니야. 한량의 시절 지나고. 그래, 좋다. 망나니 시절 지나고.”
“지났어요?”
“완전히 갔어.”
“오빠, 돈을 목숨처럼 여겨요.”
“알아.”
“남들한테 선물도 하지 말아요.”
“그래, 니가 스승이다.”
그러자 종희는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침묵했다.
“알아. 그 긴 세월 왜 연락 안 했는지 안다. 하지만 혈연이라는 게 뭐냐? 싸우고 난리를 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어지는 거 아니냐? 니가 겉으로 난리를 쳐도, 속이 깊다는 걸 안다. 이 병신 쭉쟁이 오빠를 너그럽게 봐준다는 거.”
“자책 말아요.”
“고맙구나. 춥다. 어서 내려가자.”
나는 종희의 어깨를 두드렸고 혼자 멀찌감치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국인 택시 기사에게 다가가 팁을 더 주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부끄럽다는 듯 웃으면서 50위안을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제야 저 남매들이 싸움을 멈추었나, 상황을 살피면서 그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나는 차창을 조금 열고 한숨을 내쉬었다. 종희는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밖을 보면서도 내 손등을 부드럽게 두어 번 두드렸다.
“울지는 말자. 울지는 말아.”
그러면서도 무슨 일인지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억, 흐으억.”
“아휴, 오빠 차 안에서 왜 이래요?”
종희는 샤넬 백에서 티슈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런 꼴을 보이려는 건 아닌데. 서글퍼서 그래.”
“서글퍼요?”
“인생을 예측하지 못했어.”
“다들 그래요.”
종희가 옆에서 위로의 말을 해주는데도 나는 멈추지 못하고 흐으억 하고 울다가 코를 풀었다.
“택시 기사가 뭐라 생각하든지 말든지, 나는 좀 울어야겠어.”
“그러세요.”
종희는 한동안 나를 내버려두었다.
“연변댁, 아니 연길댁!”
나는 천천히 종희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이렇게 말하니까 좀 웃음이 나지?”
“그렇긴 하네요.”
“그 모든 것들, 고통과 슬픔, 극한과 차별, 그 모든 것들, 지나간 것들 다 잊자, 종희야.”
“그래야죠.”
“지나간 것들, 어제 일까지도 다 잊어야 살 수 있어.”
“그렇긴 해요.”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싸우지 말자.”
“열심히 싸우도록 해요.”
그러면서 종희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택시는 도문 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가야 할 고속열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연변, 아니 연길에 와서 샤넬 백을 건넸을 뿐. 앞서가는 여자가 명품 가방을 멘 채, 시린 바람도 느끼지 못하고 멀어져 가는 걸 지켜봤을 뿐.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뭔가 울먹이는 감정을 느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종희의 말대로 견딜 수 있는 추위였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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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단편소설] 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 -동부이촌동- 윤보인 만약 당신이 늦은 밤 한강변을 보면서, 저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 집이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면,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어느 날 주말 아침이 몹시 우울하다면, 한강 근처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 아파트를 보여 달라고 말해 보라. 부동산업자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이 집의 호가가 얼마인지, 한 달 만에 2억이 올랐다고 말하든 말든, 그냥 떠들도록 내버려 두어라. 직접 그 고가의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는 못하더라도, 미친 척하고 쇼핑하듯 아파트를 둘러보라. 일상이 지루하다면, 그런 취미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몇 달 전에 나는 파산했다. 동업했던 친구를 잃고, 인생이 개판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유니크하게 살고 있다. 경매 입찰일이 다가오면, 세탁소에 맡겨 둔 옷을 찾아오고, 늦은 밤이면 신성하게 기도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은 많을수록 좋다.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동의한다. 파산한 뒤로 불편해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자동차를 팔았으며, 택시는 절대 안 타고, 아니 탈 수도 없으며,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팔았으며 이제는 거의 피난민처럼 살고 있다. 피난민이라. 마음에 든다. 강남으로 출근하는 피난민. 파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운이 좋게도 취직을 했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화장실에 갔을 때, 휴대폰으로 경매 물건이 새로 나왔나 살피면서, 그야말로 노예처럼 살고 있다. 마음에 든다. 망했지만 어쨌거나 유쾌함은 남아 있다. 하, 씨발. 화장실 창밖으로 주차된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보였다. 차 주인이 어떤 놈인지 항상 궁금했다. 나이 마흔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배를 한껏 내민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차 문을 열었다. 저런 새끼가 끌고 다니네. 나는 창가에 서서 중얼거렸다. 롤스로이스는 도망치듯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회사 대표가 일본어로 통화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늘 복리의 마법을 부르짖는 사람이었다. 지난달까지 통장에 30억을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돈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평소의 내 신념이었다. 사기꾼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브라질의 사기꾼, 인도의 사기꾼, 주식 사기꾼, 부동산 사기꾼, 그들도 어딘가에서 하루 세 끼를 먹으면서 살고 있다. 기껏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서 어휴, 다행이다. 집값이 30억이 넘었네. 아직 우리에겐 돈이 많은데, 어떻게 관리하지. 기껏 그런 걱정이나 하면서 그들 또한 살고 있는 것이다. 돈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미친 짓을 한다. 모건 하우절은 말했다. 동의한다. 회사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주식 창을 열고 가격을 확인했다. 어제는 70만 원을 벌었는데, 오늘은 100만 원을 잃었네, 얘기하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 윤보인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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