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개의 문제
- 작성일 2025-09-01
- 댓글수 2
별개의 문제
박민경
내가 병주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버즈랑? 의외다.
버즈는 친구들이 붙인 병주의 별명이었다. 맞다. 〈토이 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 크고 동그란 눈매에 능글맞은 입꼬리도 닮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도 버즈 그 자체이긴 했다. 친구들이 의외라고 한 것도 이해는 갔다. 병주는 나랑 워낙에 정반대였으니까. 간디와 처칠, 잭슨 폴락과 앤디 워홀, 스폰지밥과 징징이, 기쁨이와 슬픔이처럼···. 내가 나쁘게 말하면 방구석 회의론자이자 소심한 현실주의자라면, 병주는 아침 햇살 같은 낙관과 긍정 엔진을 탑재한 채 지치지 않고 광야로 달려가는 로봇이었다.
성향이 정반대인 커플의 경우, 서로의 영토를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 한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날 때는 느끼지 못한 달콤한 상호 보완성을 경험할 수 있는데 나와 병주가 딱 그랬다. 병주는 나에게 없는 고출력 엔진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감정 기복이 큰 병주의 정서적 지지대 역할이었으므로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자신을 더 나은 사람처럼 느꼈다. 그래선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우리의 관계성이 서로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잭슨 폴락과 앤디 워홀, 스폰지밥과 징징이···) 우리의 핑크빛 미래를 의심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싸우지 않는 커플은 없다는 진리에 불경하게도 코웃음을 치기까지 했다. 우리는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Oh, love is blind···. 어쩌면 사랑이란 두 사람만 맹신하는 종교 같은 걸지도.
하지만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결혼 선배님들이 고꾸라졌다는 그 수렁 맛집에 우리도 보기 좋게 빠져 버렸다. 병주는 체면을 중시하고 있어 보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유명 브랜드와 격식 있는 예단, 누가 봐도 신경 쓴 티가 나는 살림살이에 돈과 마음을 쏟았다. 반면 나는 허례허식이라면 질색이었고 가성비와 실용성이 우선이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고 자주 불거졌다. 싸움은 집을 계약하고 살림을 들일 무렵 극에 달해서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파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냈다면 정말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식이라는 메인 퀘스트를 해치우고 나서는 동지애가 생긴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싸울 기력이 바닥난 탓인지 일단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적과의 공동생활이라는 사회 실험에 자처한 피실험자의 마음으로 신혼집에 입주했다. 서로의 예민함이 빵빵한 풍선과 같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가능한 상대를 긁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 손톱이 드러나는 순간은 찾아왔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만든 음식물처리기였다. ‘오천 원으로 미생물 음식물처리기 만들기’라는 영상을 보고 혹해서 다이소에서 흙과 플라스틱 통 등 필요한 것들을 사 왔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했다. 통에 흙과 미생물을 넣고 잘게 자른 음식물을 섞은 뒤 망을 씌워 바람이 통하는 장소에 두면 끝이었다. 거기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이따금 섞어 주면 자연 분해된다고 했다. 조금 손이 가긴 해도 제대로 된 제품을 사려면 못해도 사오십은 줘야 할 텐데 돈을 아꼈다는 사실이 못내 뿌듯했다.
집에 돌아온 병주가 베란다 한쪽에 놓인 분홍색 플라스틱 통을 발견했다.
저게 뭐야?
뿌듯한 얼굴로 내가 만든 미생물처리기라고 대답하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야. 그냥 하나 사자. 그거 얼마나 한다고.
병주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나머지 남들의 시선이 없을 때조차 보여지는 것에 민감했다. 지금은 비록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지만 한창때 강남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였던 아버지 덕에 8학군에서 학교를 나온 그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탄탄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병주는 그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그들의 성공과 자신의 처지를 끝없이 비교했다. 그래 봐야 괴롭기만 할 텐데 왜 끊어 내지 못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병주는 오히려 묵은 정에 질질 끌려다니는 내가 이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병주의 말에 따르면 자기 친구들은 득이 되는 부류였다. 인간관계는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들과 맺어야 한다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에 돈을 쓰는지 살필 줄 알아야 그들과 같은 레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병주는 내가 만든 미생물처리기 안에서 시체라도 본 듯 작게 진저리를 치며 기어코 한 마디를 더했다.
가진 것보다 더 나은 걸 원해야 거기에 맞춰서 살고 싶어지지 않겠어? 욕심 좀 내. 이게 뭐야.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그는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결제 완료가 뜬 화면을 보여 줬다. 그리고 내 기분을 달래려는 듯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 있게 말했다.
됐지? 그러니까 우리 저거 버리자.
그런 식이었다.
진짜 미생물처리기는 그 이튿날 도착했다. 앞에 서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완전 밀폐는 물론 고온 탈취에 알아서 건조 분쇄까지 해 준다는, 광고 카피처럼 똑똑한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의 눈치를 봐 가며 깨끗하게 헹군 잔반을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
조잡한 걸 두고 보지 못하는 병주 덕에 새살림들은 번쩍번쩍 빛났지만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비빌 언덕이 있는 병주와 달리 내 뒤꿈치는 이미 절벽 끝에 박혀 있었다.
잘 다니던 디자인 스튜디오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내 벌이와 자존감은 평범한 수준에서 아주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처음엔 안면 있는 담당자들이 일감을 물어다 줘서 영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생계유지가 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담당자들도 바뀌고 자연스럽게 일이 끊겼다. 게다가 무서운 속도로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대중화되면서 그림쟁이로서 내 경쟁력이라는 건 심해의 어딘가에 처박힌 꼴이 됐다. 지금 붙들고 있는 그림책 삽화 작업이 계약된 마지막 작업이었고 이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나면 다시 회사를 알아봐야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집 안에서 작업하며 커피값을 아꼈다. 슬슬 더워지는 와중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티다가 병주가 올 때쯤 에어컨을 틀었다. 병주가 제일 싫어하는 청승을 몰래 부지런히 떨었다. 버는 것보다 까먹는 게 많으니 연비라도 좋아야 했다.
병주가 사업 이야기를 꺼낸 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 일 그만두고 사업하려고.
그런 얘길 마치 ‘여기서 내려서 버스 타고 가려고’하는 투로 말해서 나는 얼이 빠졌다. 월급쟁이에서 사업가로 노선 변동을 그렇게 환승하듯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을 아니, 한국을 너무 얕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파격 선언을 해 놓고 병주는 젖은 턱을 손등으로 훑으며 열심히 수박을 먹어 대고 있었다. 붉은 과육이 한참이나 남은 조각을 내려놓고는 곧장 새 조각을 들었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병주는 뼈에 붙은 고기나 과일을 야무지게 먹는 방법을 몰랐다. 이렇게 헤프게 먹어도 등을 맞지 않았던 거겠지. 우리 집은 얄짤없었는데.
엄마는 가족의 잇자국이 남은 수박의 흰 부분을 깨끗하게 발라 그걸로 수박 김치를 담갔다. 그렇다고 엄마가 검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교하게 세공된 동식물 모양의 보석 브로치나 유럽제 식기를 모으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고 화장품도 옷도 고가의 브랜드 제품만 쓰고 입었다. 그러나 식탁에서만큼은 엄격했다. 엄마는 음식을 남기는 것은 물론 요리할 때 버려지는 것도 싫어했다. 가급적 식재료는 가리지 말고 전체를 다 먹을 것. 이것이 우리 집의 규칙이었다. 병주는 생선 눈알과 내장까지 먹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곤 했다(병주는 배부른 까마귀 도련님처럼 흰 살점만 깨작깨작 파먹었다).
다른 점은 먹는 방식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살기 전에는 몰랐던 병주의 습성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소소하게 충격받았다. 그건 일종의 문명 충돌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식민지 삼을 것인가. 한동안 서로 종주국의 깃발을 꽂기 위해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었다(필요한 건 깃발이 아니라 악수와 흐린 눈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은 건 나뿐이었던 걸까. 병주는 아직도 자기 인생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엄연한 생활공동체가 아닌가? 사업을 하겠다면 진즉에 상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병주는 사촌이 소유한 건물을 관리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하는 일에 비해 꽤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결혼식에서 본 사촌은 병주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다. 결혼 축하한다며 병주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두르는 그의 손목엔 애플 워치가 감겨 있었다(병주는 롤렉스 아래로는 시계로 쳐 주지도 않았다). 듣기론 건물이 몇 채나 있다던데 남들 눈은 신경 쓰지 않는 검소함과 정력적인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 미소를 떠올리자 그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게 못내 아깝게 느껴졌다.
갑자기? 무슨 사업?
요식업 쪽으로. 좀 알아봤는데 피자가 괜찮은 것 같아.
피자라니. 병주의 잘난 친구 중 하나가 헛바람을 불어넣은 놈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친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사업 설명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듣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어떻게든 본점을 띄워서 프랜차이즈화하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가맹비만 먹어도 남는 장사라고 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 ‘어떻게’가 빠진 계획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고.
병주는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내고 애매하게 돈 많은 집에서 자라다 망해서 그런지 애가 현실 감각이 좀 떨어졌다. 귀한 외동아들의 전형인 그는 자라는 동안 부모로부터 안 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자존심도 자신감도 대단하고 매사에 겁이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경험 없는 일이라면 돌다리가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 보고 건너는 나와는 달랐다. 연애할 땐 그 시원시원하고 강단 있는 모습에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버린 마당에 불길에 뛰어들려는 걸 보고 앉아서 박수만 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병주는 어땠던가. 모두가 가난한 계획이라며 나를 뜯어말리는 와중에 유일하게 응원해 준 사람이 바로 병주였다. 물론 병주는 내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고 해도 두상이 예쁘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할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병주에게 빚진 응원이 있었다. 그건 적어도 한 번쯤은 그의 어리석은 선택에 박수를 쳐 줄 의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아주 비싼 박수가 될 거였다. 나는 한 수 접고 들어가기로 했다.
돈은 어떻게 할 건데. 드는 돈이 한두 푼도 아닐 텐데.
안 그래도 생각해 봤는데 고모한테 한번 얘기해 볼까 해.
병주네 집은 망했지만 그에겐 여전히 친척이라는 비빌 언덕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일곱 형제는 팔도에 흩어져 그 지역에서 나름대로 성공해 금맥을 쥐고 있었고,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팔푼이 조카를 애틋하고 귀엽게 여겼다. 그들은 병주가 손을 벌릴 때마다 발 벗고 나서 주었는데, 나는 그들이 내민 그 손이 병주의 자립심과 현실 감각을 가려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해 왔다. 그렇다고 그 손을 뿌리치자니 그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황금도 거위도 없는 나는 그저 이 진기한 황금알 쇼가 언제 갑자기 막을 내릴까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자기야, 나 진짜 될 것 같아. 예감이 좋아. 당연히 피자도 제대로 배울 거고. 친구가 그러는데 피자는 배우기도 쉽고 많이 남는대. 식자재도 유통가로 넘겨준다는데 이런 기회가 어딨어. 이거 잘 되면 자기도 스트레스 안 받고 그림 그릴 수 있어. 작품 모아서 전시도 하고 학원도 하나 차리고 그러면 너무 좋잖아. 응?
그의 눈은 이미 써 내려갈 성공 신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공한 미래에 고맙게도 나를 초대해 주었다. 병주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성공한 미래를 상상하고 덤벼들었다가 좌절하고 또다시 상상하길 반복했다. 신기한 건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부정 문법을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천진함이 마침내 승리하는 결말을 보고 싶긴 했다.
그래. 해. 대신 제대로 해.
그런 말을 내가 병주한테 할 자격이 과연 있었을까. 앞가림 못하고 있는 건 사실 난데.
*
그해가 가기 전에 경우는 집에서 멀지 않은 상가에 피자가게를 열었다. 배달 매장이라 홀은 없고 주방과 픽업용 테이블 한 개뿐인 작은 매장이었다. 창업 비용은 고모가 댔다. 매출 나오기 전까진 천천히 갚으라며 억 단위 자금을 계좌로 쏴 줬다. 차용증까지 썼지만 사실상 무이자 장기 대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개업일에 맞춰 화분까지 보내왔다. 거대한 아레카야자였다. 찾아보니 공기 청정에 좋다기에 우리는 그 화분을 입구 쪽에 세워 두었다. 화분이 있으니 입구가 산뜻하니 보기 좋았다.
우리 가게의 전략은 ‘브랜드 피자 퀄리티의 동네 피자’였다. 배달 매장이 살아남는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브랜드 메뉴를 카피해서 가성비 있게 팔거나 독보적으로 맛있거나. 우리가 택한 건 전자였다. 병주는 의욕이 넘쳤다. SNS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체험단까지 쓰면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하고 배달앱 상단에 뜨는 광고도 돌리자 점차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리뷰가 달렸을 땐, 캡처한 화면과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민 너구리 이모티콘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너무 맛있다고, 동네에 맛있는 피자집이 생겨서 좋다는 리뷰였다. 나도 그 이미지를 저장해 두었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온 병주는 늘 싱글벙글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주문이 더 늘었다고, 앱에서 순위도 하나 올라갔다고 그런 얘길 즐거운 얼굴로 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매출은 야금야금 꾸준히 올랐다. 오픈 후 얼마간은 병주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만했지만 점차 바빠지면서 나도 점심과 저녁 시간에 나가 손을 보태게 되었다.
병주가 피자를 담당하고 내가 사이드 메뉴인 핫윙을 튀기고 포장했다. 주방이 좁아 두 사람이 움직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피크 타임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병주가 주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테이블에 앉아 피자 박스를 접고 그 위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피자를 든 고양이, 배달하는 토끼, 따봉하는 곰 같은 것들이었다. 손님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고 부탁하면서 병주는 내 눈치를 살폈다. 알량한 내 자존심을 걱정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그림이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었다. 내가 그려 낸 귀여운 동물들은 아주 잠깐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식사가 끝나면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될 거였다. 그 하찮음을 상기하면 손에서 주저 없이 선이 흘러나왔다.
그림책 작업은 막바지 단계에서 정체 중이었다. 꼬마 쥐들이 어두운 쥐구멍을 밝힐 밝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도시를 헤매다 상점가에 있는 트리를 보고 매료되어 트리 가장 위에 달린 별을 훔치는 내용이었다. 쥐들이 트리에 올라 별을 따는 장면을 그려야 하는데, 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고민이었다. 레퍼런스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별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에게 들키거나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훔치고 싶은, 조명보다 밝고 보석보다 빛나는 영롱한 별을 꼬마 쥐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장면은 다 그려 두고 그 별자리만 비워 둔 채로 시간을 까먹는 중이었다. 어쩌면 일을 끝내고 일이 없는 상태가 될까 두려워, 스스로 그 끝을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면서.
*
맛없으면 짖는 개가 나타난 건 개업하고 백 일을 막 넘겼을 때쯤이었다.
마감하고 온 병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상한 리뷰가 달렸다고 했다. 나는 배달앱으로 들어가 우리 가게를 검색했다. 어떤 리뷰를 말하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최근 리뷰를 남긴 게 맛없으면 짖는 개였는데 닉네임대로 리뷰창에 온통 왈왈왈로 도배를 해 놓은 것이다.
이런 류의 콘셉트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비슷한 아이디도 많았다. 맛있으면 짖는 개도 있고, 소도 있고, 매미도 있고··· 뭐, 리뷰를 어떻게 남기는지는 자유니까. 그런데 충격적인 건 맛없으면 짖는 개가 별점을 하나만 줬다는 거였다.
병주는 울상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리뷰가 50개에 평점이 4.9였는데 이 리뷰 하나 때문에 4.8로 떨어졌다고 했다. 리뷰가 적을수록 1점 리뷰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서 평점 하락 폭도 클 수밖에 없다. 평점이 떨어지면서 동네 피자가게 순위에서도 두 계단 밀려났다고 했다. 이 동네에만 피자가게가 30곳이 넘는데 우리 가게는 그중 9위였고, 순위가 내려가면 그만큼 목록에서 스크롤을 더 내려야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문율도 줄어든다는 게 병주의 설명이었다.
고작 리뷰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거라고 나는 병주를 달랬다.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은 없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리뷰들은 다 좋지 않았느냐고. 언젠가 겪을 일이었는데 그게 오늘이었을 뿐이라고. 나답지 않게 설탕을 듬뿍 친 말들을 늘어놨다. 하지만 병주는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남들한테 자신의 결과물을 평가받는 게 병주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쪽으로는 천하의 버즈도 내성이 없는 것이다. 침통한 얼굴로 소파에 무너져 있던 병주는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반짝 살아나서는 내 친구들이랑 친정에 연락해서 포장 주문 좀 넣어 달라고 했다. 피자는 내일 보낼 테니 미리 리뷰 좀 좋게 써 달라고. 피자 사진은 자기가 보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혀를 찼다. 자기 친구들한테는 쪽팔려서 연락도 못 하는 불쌍한 병주.
그래. 이럴 때 묵은 정 도움 좀 받는 거지.
고마워 자기. 나 진짜 자기밖에 없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 뒤로 병주는 포장 상태도 더 신경 쓰고 이벤트 참여용으로 나갔던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물론 튀기는 건 내 몫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맛교수님이 리뷰를 남겼다.
맛은 나쁘지 않은데 오리지널리티가 없어서 B- 드립니다.
우리 피자는 솔직히 특색 있는 피자는 아니었다. 직접 소스를 만든다고 써 놓긴 했지만 시판 소스에 향신료와 허브를 몇 가지 첨가한 게 다였다. 그래도 토핑들은 좋은 걸 썼다. 유통기한도 꼼꼼히 지켰고 주방도 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기생오라비처럼 고왔던 병주의 손은 여기저기 데고 베인 상처들로 성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이지 오리지널리티와는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병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평소처럼 피자 칼을 닦다 말고 분하다는 듯 거칠게 조리대를 쳤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오리지널리티가 어딨어? 한 판에 고작 이만 원 돈 하는 피자 배달시켜 먹으면서 오리지널리티 운운하는 게 웃기지도 않나? 그렇게 오리지널리티를 찾고 싶으면 시카고 가서 딥디쉬를 처먹든지. 나폴리 가서 마르게리타를 처먹든지.
이번엔 달랠 말을 찾지 못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꾸역꾸역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미친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도 한때는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서명을 남기지 않아도 어 이거 누구 작품이네, 하고 알아봄 직한 개성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레퍼런스 사냥꾼일 뿐이었다. 별 하나 내 스타일로 그리지 못하는.
별이야 다 똑같잖아.
병주는 별을 그렸다 지우길 반복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별은 그냥 별이었다. 이름 없는 빛의 점. 어디에나 있고 굳이 다르게 그릴 이유가 없는 것. 누군가에겐 똑같은 그 별에 나는 새로운 의미를 새기고 빛을 보태려 하고 있었다. 별이 나를 통과해 다른 빛을 갖길 바랐다. 하지만 그리면 그릴수록 분명해지는 건 붓을 쥐고 있다고 누구나 새로운 의미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건 의욕이나 숙련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나의 방황으로 어둠 속에서 쥐들은 오래 버텨야 했다.
결국 나는 어딘가에서 봤음 직한, 무난히 아름다운 별을 그려 보냈다. 은근히 담당자의 재고를 바랐지만 원고는 수월하게 컨펌이 났다. 마치 처음부터 당신에게 이 이상은 기대한 적 없다는 듯이.
*
맛없으면 짖는 개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 짖고 갔다. 우리 가게를 지나가다 오줌 갈기는 전봇대 정도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개의 주문이 들어오면 병주는 감자튀김도 넣고 핫윙도 넣고 하다 하다 손 편지까지 써 넣었다. 연애할 때도 받아 본 적 없는 편지였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거겠지만 질투가 난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지나가면서 슬쩍 편지를 훔쳐봤다. 내용은 짧았지만 절절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항상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나은 맛으로 언젠가 만족시켜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게 대체 반성문인지 포부인지 짠해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개는 매정했다. 그(혹은 그녀)에게 돌아오는 별점은 항상 1점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혹은 년)이 분명했다. 잇따른 테러에 결국 우리 별점은 4.7까지 떨어졌다. 쟁쟁한 프랜차이즈 매장 사이에서 별점 4.7의 동네 피자가게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놈의 별 때문에 우리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별. 대체 별이 뭐길래. 오래전 밤하늘의 별이 인간에게 길을 안내하고 운명을 속삭였던 때처럼 우리의 일상은 온전히 별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 별점이 5점을 유지하는 날이면 엉덩이춤과 콧노래가 절로 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병주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고,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덩달아 나도 예민해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개는 별의 영향권을 뒤흔드는 가장 거대한 태풍이었다. 아니, 태풍보다 더했다. 진짜 태풍이라면 언제쯤 닥칠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개는 아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우리의 일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으니까. 우리는 놈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휘둘린다는 게. 더 열받는 건 내가 개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 했다는 거다.
개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풀 수밖에 없는? 아니, 개는 음침한 변태일 것이다. 자기 때문에 떨어지는 별점을 보면서 진득한 희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그것도 아니면 개는 그냥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눌러 보고 싶었던 거다. 벌레를 잡듯 죄책감 없이 엄지로 꾹. 예의 바른 손님보다 진상이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걸 소비자의 권리라고 믿게 돼 버린 거다···. 의도가 뭐든 개는 진작에 선을 넘었다.
주문은 눈에 띄게 줄었고 병주는 어두운 얼굴로 주방을 서성이는 일이 많아졌다. 별이 떨어진 하늘이 밝을 리 없었다.
*
자영업자들이 모인 카페에서는 그런 악질에게 덴 사장들의 울분 섞인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별점을 인질처럼 쥐고 과한 서비스와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이들에 대한 한탄과 분노와 저주가 담긴 글들이었다.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고 아기가 먹을 거니 간을 따로 해 달라거나 오는 길에 담배를 사다 달라거나 집 앞에 놓인 쓰레기를 대신 버려 달라는 식의 황당한 요구도 드물지 않다고 했다. 요청을 거절하거나 무시하면 인질이었던 별은 처참하게 처형당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이유 없이 별점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었다. 차라리 맛이 없다거나 위생이 불만이라거나 배달이 늦었다거나 하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냥 씹던 껌 뱉듯 별 하나를 퉤 뱉어 놓고 가는 것이다. 별 하나는 치욕의 낙인이었다. 스스로 지울 수도 벗을 수도 없는. 아이디만 다를 뿐 개는 어디에나 있었고 그들은 자영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였다. 나는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점주들의 수기를 읽다가 어떤 글을 발견했다. 꾸준히 이상한 요구를 해 오던 손님이 있었는데, 점주가 직접 배달을 가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뒤로는 그런 일이 더는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찾아보니 대면의 힘을 경험한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그렇게 두려워했던 권력이 얼굴을 갖는 순간 놀랄 만큼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졸렬하게도.
그 얘기를 병주한테 해 줬더니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했다. 아차 싶어 나도 얼른 동의했다.
우리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좆같은 새끼.
병주가 아무리 경우가 없어도 욕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상상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체면이 중요한 병주로서는 힘들게 뻔했다. 괜한 얘길 꺼낸 것 같아서 민망해하고 있는데 오히려 병주가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욕해서.
병주가 내 배를 쓰다듬으며 겸연쩍게 웃었다. 안색이 나빴다. 개도 개지만 잠을 줄이고 이른 새벽부터 가게에 나가는 탓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병주는 정말 이 일에 진심을 쏟아붓고 있었다. 한가할 때도 쉬지 않고 소스 배합을 바꿔 가며 연구했고, 시판 소스를 쓰는 대신 홀 토마토부터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캔 안에 든 게 정답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병주의 그런 변화가 놀라웠다. 내가 아는 병주는 뭐든 쉽게 시작하고 쉽게 털어 버리는 사람이었다. 이 사업도 처음엔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잘 되면 좋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는. 뭐든 끝내고 나면(어쩔 땐 끝내기도 전에) 늘 그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새로운 예감이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달랐다.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런 진심을 드러내는 일이 못내 쑥스러웠는지 병주는 멋쩍게 웃으며 우리 가게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리지널리티.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오리지널리티 좋지. 자기만의 것. 인장을 가지게 된다는 건 분명 황홀하고 멋진 기분일 것이다. 나는 〈멋쟁이 토마토〉를 부르며(나는야 소스 될 거야) 소스를 만드는 병주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은근히 반가우면서도 조금 두렵기도 했다.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 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배운 게 있다면 진심은 대체로 사람을 살게 하지만 갉아먹기도 한다는 거였다.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진심이란 없다.
나는 병주가 속물이라서, 겉과 속이 같아서, 철부지라서, 마음에 그늘이 없는 양지의 인간이라서 좋았는데. 그래서 오래 지켜 주고 싶었는데.
나는 토마토 냄새를 풍기며 잠든 병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병주야. 너무 진심이 되진 마.
*
개가 한번 짖고 갈 때마다 깎인 별점을 만회하느라 이벤트를 열고 쿠폰을 뿌렸다. 그러면 주문이 반짝 쏟아졌다. 터진 콩 주머니 사이로 콩 쏟아지듯이. 사람들은 단순했다. 너무 단순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열심히 서비스 핫윙을 튀겼다. 냉동된 핫윙을 급하게 튀김기에 넣다가 팔에 기름이 튀기도 했다. 너무 뜨거워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찬물을 틀어 놓고 팔뚝을 대고 있는 나를 보고 병주가 도우를 빚으며 슬픈 얼굴로 말했다.
자기, 거기 아래 화상연고 있어. 튀김기 쓸 땐 소매 긴 옷 입고 하는 게 나아.
변했다. 변했어‧‧‧. 내가 아는 병주였다면 호들갑 떨면서 얼른 병원 가자고 등을 떠밀었을 텐데. 이게 다 개 같은 개 때문이었다. 나는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에 쓰던 팔 토시를 가져와 꼈다. 기름기를 잔뜩 먹은 토시를 낀 채로 피자 박스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귀여워서 재주문한다는 리뷰를 봤을 땐 솔직히 기뻤지만 어쩐지 좀 서글프기도 했다. 그럼 나는 얼른 호르몬을 탓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5주 차 때였다. 생리가 없어서 혹시나 하고 해 본 임테기에 또렷하게 두 줄이 떴다. 타이밍이 나쁜가, 하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병주는 멍청이 같은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 그 모습을 뱃속에 있는 녀석이 못 본 게 아쉬울 정도였다. 병주는 곧장 나에게 매장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매장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집에서 푹 쉬라고. 처음엔 못 이기는 척 그렇게 했지만 안정기에 접어든 뒤부터는 슬금슬금 다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병주는 혹시라도 누가 임신한 아내를 부려 먹는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내가 곁에 있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다. 나 역시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매장에 나와 있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매장이 빨리 자리 잡아야 자기가 좀 편하게 쉴 수 있을 텐데.
병주는 남자가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 보수적인 가치관을 굳이 에둘러 말하거나 숨기지도 않았다. 대중적인 감수성을 어설프게 흉내 내지도 않았다. 그는 경제력이 있는 쪽이 가장의 역할을 맡는 게 마땅하다고 믿었고 그 확신은 말투와 태도에서 은근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묻어났다. 예전엔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가두려는 틀처럼 느껴져 은근히 반발심도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병주의 헌신을 마음껏 누렸다.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 병주의 팔 안에서 강아지처럼 마음껏 어리광을 부렸다.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이 서방한테 잘하라고 했다. 밉보이지 말라고. 밥도 잘 챙겨 주고 임신이 벼슬은 아니니 너무 살찌지 않게 관리를 하라고 했다.
엄마는 평생 누구 밑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처녀 적엔 외할아버지 덕에, 결혼 후엔 아빠 덕에 평생 집에서 사랑받고 살림만 하면서 곱게 늙었다. 그러니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란 죄다 그런 것뿐이었다. 남자의 부모에게 잘해라, 남자의 마음이 떠나지 않게 가꿔라―하는 식의.
나는 그런 말보다 차라리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이나 찔러 주길 바랐지만 엄마의 용돈은 죄다 오빠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다. 엄마 아들은 집안의 모든 기대와 지원을 등에 업고 영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고 이혼당한 지금은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명절에나 얼굴을 비추는 그는 엄마를 꼭 닮은 얼굴로 매번 아픈 곳을 찔렀다.
너 아직도 그림 그린다고 깝치냐?
그럼 나도 지지 않고 짖었다. 나는 오빠 한정 미친개였다.
어. 나 아직 깝치는 중이야. 그러는 너는 돈 처먹는 기계잖아. 언제까지 염치없이 처먹기만 할 건데?
그림 그린다고 깝치는 나를 병주가 얕잡아 보지 않아서, 무시하지 않아서,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기름기 앞에 서서 열심히 핫윙을 튀기고 박스에 그림을 그렸다.
핫윙은 4조각에 5,500원. 원재료비에 포장과 조리 인건비, 전기세, 배달앱 수수료를 더하면 원가는 3,000원(병주의 손 편지와 내 박스 그림은 모든 제품의 원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핫윙을 팔면 2,500원이 남는 셈이다. 그 2,500원은 내 자격지심의 값이었다. 적어도 그 몫은 제대로 지켜 낼 생각이었다.
*
비 소식이 있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개가 주문을 넣었다. 잠시 고민하던 병주는 결국 주문을 취소했다. 동일 고객의 반복 클레임은 주문 취소 사유에 해당했다. 점주가 진상한테 꺼내 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진작에 이랬어야 하는 건데.
언젠가 알아주겠지, 이러다가 그만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오래도 참았다. 어쨌든 주문 횟수로만 보면 개는 단골이니까.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존을 위협하는 암 덩어리 같은 존재였고 가게를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주문을 취소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내가 잘했다고 잘게 박수를 치자 병주가 오랜만에 웃었다.
잠시 후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병주는 콧노래를 부르며 피자를 구웠다. 최근 병주가 만든 소스로 바꾸고 나서 주문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우리는 적게나마 안심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하면 다시 별점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만 입을 다물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나는 피자 박스를 꺼내고 피클과 콜라를 미리 비닐에 부려 두었다.
구워진 피자를 박스에 넣고 영수증을 확인하던 병주가 갑자기 얼굴을 구겼다.
왜 그래?
그 새끼야.
아이디는 다른데 주소가 맞다고 했다. 나도 확인했다. 정말로 개의 주소였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주소였다. 말문이 막혔다. 이건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짓이었다. 우리한테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병주는 굳은 얼굴로 한동안 영수증을 들여다보더니 마저 포장을 마쳤다. 그러고는 직접 배달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냥 취소하자.
아냐. 어차피 만든 거니까 갖다주고 올게. 계속 장사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 이 사람도 내 얼굴 보면 이제 그런 짓 못 할 거야.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그래. 사람은 사람이겠지. 적어도 겉보기엔. 나는 그 말을 삼킨 채 마뜩잖은 얼굴로 병주를 바라보았다. 병주가 달래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녀오면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병주가 조수석에 피자를 싣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답했다. 그가 차를 몰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할 타이밍이었지만 개의 주문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해 두었다. 정산을 마치고 포스까지 끄고 나니 가게 안은 빗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의자에 앉아 비를 구경하며 병주를 기다렸다. 고만고만한 겨울비가 아니라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을 기어이 다 떨구겠다는 고집이 느껴지는 억센 빗줄기였다.
나는 배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손바닥 아래로 작은 둔덕이 느껴졌다. 삼십 년 넘게 길쭉하고 마른 몸이었는데 몇 주 만에 몸의 윤곽이 달라지고 있었다. 배 안에 있던 둥그런 치즈가 조금씩 밀려 나오는 모양새로. 거울 앞에 서면 배만 불룩 튀어나온 게 꼭 틀에 맞지 않은 서랍을 억지로 밀어 넣은 것처럼 보였다. 낯설었지만 누가 뭐래도 그건 내 몸이었고 내 것이었다. 별이라는 태명은 그런 마음에서 붙인 거였다. 나만의 별을 가지고 싶었던 마음과 그 별을 꼭 지켜 내고 싶다는 병주의 마음이 겹쳐 있었다. 요즘 나는 부쩍 배에 손을 얹고 말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
별아. 엄마랑 아빠는 소개로 만났어. 처음엔 별로 맘에 안 들었는데 볼수록 좀 귀여운 거야. 쥐뿔도 없으면서 명품 좋아하는 것도 웃기고… 자긴 뭐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아. 지가 슈퍼맨이야 뭐야‧‧‧. 근데, 난 별이가 아빠 닮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용감하거든. 이 세상은 용감하거나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거든‧‧‧.
‧‧‧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밖은 어두워지고 빗줄기도 더 거세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병주가 나간 지 두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비 때문에 차가 막히나.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이번엔 신호음이 끊기기 전에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로 이질적인 정적이 이어졌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정적이었다.
긴 침묵 끝에 병주의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새끼가‧‧‧ 다 장난이었대. 장난친 거래. 자기 관종이라고‧‧‧.
그는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웃음 같은 숨이 흘렀다가 금세 끊겼다. 한 번 더 숨을 내쉬고 혀로 뭔가를 닦듯이 말끝을 뭉갰다.
―우리 피자가 너무 맛있대. 진짜 잘 먹더라.
너 아직 거기야?
―근데 먹을 자격 없잖아. 씨발.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든 건데.
뭔가를 무겁게 끄는 듯한 소리가 짧게 두 번 났다. 그 사이로 칼집을 내듯 거친 숨소리가 끼어들었다.
병주야.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쥔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얼굴에서 열이 확 끓었다 식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불을 끄고 차 키를 챙겼다.
비 때문에 시야가 좁았다. 차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어쩐지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운전을 하는 것처럼. 빗줄기가 작고 집요한 손처럼 차체를 아프게 때렸다. 차는 천천히, 묵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 내가 너무 늦은 거면 어쩌지. 손끝이 차갑게 굳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확신이 없었다. 그 불안 속에서 엉뚱하게도 음식물처리기가 떠올랐다. 정말 늦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것일 거다. 개를 집어삼키고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지게 할 거대하고 똑똑한 구덩이.
상상 속 병주가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됐지? 그러니까 우리 이제 잊자.
그래, 그러자고 너무 쉽게 동의하는 상상 속의 나. 우리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별이를 가진 뒤로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음악을 틀자 오늘 아침에 들으면서 왔던 동요가 명랑한 음색으로 흘러나왔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글쎄. 토끼는 어디를 가고 있었을까. 목적지엔 무사히 도착했을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꼬리가 빠져라 도망치는 토끼를 뒤에서 바라보면서 총을 겨누는 엽사를 떠올리곤 했다. 숨을 멈춘 채 조준경 너머로 토끼의 뒤통수를 겨눈 채 참을성 있게 타이밍을 기다리는 엽사를.
와이퍼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토끼의 둥근 등허리를 그려 내고 있었다. 나는 그 토끼가 최대한 멀리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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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2건
ㅠㅠ 슬프고 오소소하네요..! 가명을 쓰고 타인의 진심을 장난으로 둔갑해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태어나 가장 진실했던 순간들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부정당하는 상황은 누구라도 악인으로 몰아넣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