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을 타자
- 작성일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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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을 타자
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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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겁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먼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토요일이면 걸어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호숫가의 트럭 카페에 가서 삼천 원짜리 커피를 사 먹거나,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정자에 가서 가끔 맥주 한잔을 마셨다. 그게 나에겐 여행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최근에 그 장소들을 잃어버렸다. 먼저 정자에 불이 났다. 정자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문 옆에 있었다. 학교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해서 늘 숨을 헐떡이며 등교를 해야 했다. 여름에는 교복 겨드랑이가 땀에 젖곤 했다. 교문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고 거기에는 운동기구와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거기서 매일 철봉을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늘 철봉을 했다. 그리고 지각을 하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조금 늦는 거지만 나중에는 아주 많이 늦게 된다고. 이제 운동기구는 없어졌고, 아마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겠지만, 정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면 나는 그곳에 갔다. 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닭 다리 모양의 과자와 맥주 한 캔을 샀다. 맥주는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너네는 공부해라. 나는 맥주나 마시지.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몰래 맥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졌다. 텀블러 안에 술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통쾌했다. 바람까지 불어 주면 근심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정자에 불을 낸 사람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시험을 망쳐 기분이 우울한데 정자에서 사람들이 웃고 있는 걸 보니 화가 나서 그랬다고 뉴스에서 아이는 말했다. 나는 불에 탄 정자 사진을 찍어 민정에게 보냈다. ‘헉, 낙서도 사라졌어?’ 민정이 물어서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정자 기둥에는 연경의 낙서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거기서 치킨을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 우리 학교는 점심시간에 몰래 나가 치킨이나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는 게 유행이었다. 그날 연경은 닭 다리를 우리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정자 기둥에 이런 낙서를 남겼다. ‘닭 다리 양보한 사람은 평생 복 받을 것!’ 연경은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닭 다리 과자를 살 때 꼭 프라이드맛만 샀다. 핫숯불바베큐맛은 절대 먹지 않았다. 민정에게 새로 정자가 지어지면 같은 자리에 같은 낙서를 하자고 말했다. 민정이 꼭 그러자고 답을 보냈다. 그날 밤에 나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훌라후프를 하는 꿈을 꾸었다. 땀에 젖은 겨드랑이를 보며 서로 웃었다.
삼 년 전, 나는 엄마의 병간호를 핑계로 고향에 왔다. 그 전에 나는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상사인 경리실장이 횡령을 하고 잠적하는 일이 생겼다. 동료 직원과 함께. 퇴근 후 우리 셋은 자주 어울렸다. 우리는 같은 먹방 유튜버를 좋아했다. 그래서 새 영상이 올라오면 같이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먹곤 했다. 사건이 터지고 나는 위궤양과 불면증에 걸렸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 둘이 연인이었다는 것을 혼자만 몰랐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공범으로 오해받을까 봐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랬는데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위암 초기였고 수술을 하면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사표를 썼다. 고향으로 내려온 나는 암에 좋은 음식을 검색해서 매일 요리를 했다. 주로 토마토와 양배추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엄마는 내가 한 음식을 싫어했고 우리는 자주 말싸움을 했다. 그래도 매일 같이 산책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있었다. 호수를 한 바퀴 걸으면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중간에 커피를 파는 트럭이 있었는데, 우리는 반 바퀴를 걷고 트럭 카페의 파라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거기 있으면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 잘 보였다. 트럭 카페가 있는 지점은 오르막이라 사람들이 힘겹게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봐라. 낑낑댄다. 낑낑.”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웃었다. 수술을 한 지 일 년이 지나자 엄마는 제주도로 내려갔다. 엄마는 병원에 있는 매점에서 일을 했다. 디스크나 교통사고 환자가 많이 오는 병원이었다. 아프고 나니 성인용 기저귀를 팔 때마다 나도 저렇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제주도에는 큰이모가 살고 있었는데 큰이모부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에게 내려와 같이 살자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혼자 남은 나는 고향에서 다시 취직을 했다. 토요일이면 호숫가를 산책하고 트럭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낑낑대며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영차영차 하고 속으로 응원을 해 보기도 했다. 가끔은 동영상을 찍어 엄마한테 보내 주기도 했다. 엄마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산방산 아래 작은 놀이동산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바이킹 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엄마도 가끔 동영상을 찍어 보내 주었다. 바이킹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우울증, 암, 자살 예방에 효과가 좋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구경만 하지 말고 매일매일 바이킹을 타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암 고치려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그보다는 구경이 더 낫다고. 구경만 해도 효과가 있다고. 엄마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도 레일바이크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날은 잠을 잘 잤으니까. 그랬는데 레일바이크도 없어지고 트럭 카페도 문을 닫았다. 시에서 호숫가를 새로 정비한다고 트럭 카페 사장님이 말했다. 레일바이크는 정비가 끝나면 다시 운영을 하겠지만 노점인 카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사장님이 커피를 공짜로 주었다. “마지막일지 모르니 선물이에요.” 커피를 마시며 나는 섭섭하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2
고등학교 동창인 지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민정이 연락을 했다. 민정이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부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민정이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지민이 왔었다고 알려 주었다. 둘이 영화를 보는데 내가 민정에게 부고 문자를 보냈고 그래서 지민도 같이 오게 되었다고. 장례식장도 같은 곳이었다. 지민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닭을 튀겨서 그런 것 같다고 지민이 울면서 말했다. 지민의 아버지는 우리 시에 유일하게 있는 4년제 대학교 앞에서 페리카나 치킨집을 했다. 그래서 지민은 절대 그 대학만은 가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지민은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동창들에게 엄마가 위암이라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각선에 앉아 있던 명주가 명함을 주었다. 반찬 가게 명함이었다. “니가 오면 두 배로 담아 줄게.” 명주가 말했다. 명주 어머니가 돼지갈빗집을 해서 명주 생일날 갈비를 얻어먹었던 게 생각났다. "엄마가 작년에 파킨슨에 걸리셨어. 증상이 나빠지기 전에 엄마 손맛을 배우려고. 그래서 반찬 가게를 차렸어." 명주의 말에 모두들 주변에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수학학원 원장인데 수학을 제일 못했던 지혜가 자기 회사 후배 이야기를 했다.
지혜의 회사에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후배가 있었다. 운전하던 아버지는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동승했던 어머니는 병원에서 한 달 후 돌아가셨다. 외동딸이었던 후배는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의 가게를 정리하고, 보험금을 받아 친척들의 빚을 정산했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일상을 살았다. 독한 사람이라고 뒷말을 하는 회사 사람도 있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 그리고 지난주에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어. 2년 만에. 임신을 했더라고. 입덧이 심한데 쌀국수는 괜찮아서 먹으러 왔대.” 둘은 같은 자리에 앉아서 국수를 먹었고, 후배는 지혜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시작은 이랬다. 자신의 생일날 비가 왔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일날도 비가 왔다. 또 어머니의 생일날도 비가 왔다. 아버지 기일 날도 비가 왔다. 모두 비 예보가 없던 날이었다. 퇴근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그때마다 후배는 비를 맞고 퇴근을 했다. 그런 우연이 계속 이어지자 후배는 어머니의 기일 날 우산을 챙겼다. 우산을 챙기면서도 설마 오늘도 비가 오겠어, 하고 생각했는데 퇴근길에 비가 왔다. 비를 맞지 않았는데 집에 오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그날 밤 독감을 앓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무단결근을 했다. 하루이틀은 무서웠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어떤 배우가 하는 말을 들었다. ‘택시비만 있으면 나가세요.’ 배우는 이십 대에 수백 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때마다 그런 외모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날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마다 배우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주머니에는 늘 만 원이 있었다. 힘들면 택시를 타야지, 그 생각을 하면 마냥 걸을 수 있었다고. “후배는 배우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대.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자신에게 놀라 휴대폰과 지갑만 들고 터미널로 간 거지.” 지혜가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후배는 터미널에 가서 가장 빨리 출발하면서 가장 멀리 가는 표를 달라고 말했다. 직원이 거제도 가는 표를 주었다. 그러면서 직원이 말했다. 자기 남편 고향이라고. 냉면도 맛있고 물회도 맛있고 짬뽕도 맛있다고. 그날 버스에서 후배는 앞자리에 앉은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엿들었다. 울지 않고 이를 빼면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사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사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의 주머니에는 빠진 이가 있었다. 조선소에서 일을 하는 삼촌이 그 이를 배 어딘가에 숨겨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가 멀리멀리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도록. “그 이야기가 너무 예뻐서 후배가 울었대. 세계여행을 할 아이의 이를 상상하자 자기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대.” 그 후로 후배는 여행을 다녔다. 처음 거제를 여행했기 때문에 다음 여행지는 니은으로 시작되는 지명에서 골랐다. 그래서 나주에 갔다. 그다음은 대전. 그런 식으로 일 년 내내 돌아다녔다. “유명 관광지를 간 것도 아니래. 그냥 터미널에서 내려 걸었대. 힘들면 아무 버스를 타고 아무 정거장에서 내렸대.” 그러다 후배는 함안 터미널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동창은 대학 친구의 부친상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터미널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둘은 헤어졌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동창의 말에 후배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농담을 했다. 기역 니은 디귿 순서대로 도시 여행을 하는 중인데 찾아보라고. “후배는 동창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건데 정말로 남자가 찾아다녔나 봐. 고성터미널, 남원터미널, 단양터미널···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에 종일 앉아 있었대. 그러다 영주터미널에서 다시 만났다는 거야.” 그렇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 후배는 지혜에게 말했다. 나중에 힘든 일이 생기면 터미널에 가서 아무 버스나 타라고. 그러면서 지혜가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도 힘든 일이 생기면 아무 버스나 타자.” 철도청에 다니는 남동생을 둔 민정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아무 기차나 타자.” 헤어질 때 지민이 말했다. 사십구재가 끝나면 나도 아무 버스나 타 볼게, 하고.
3
장례식에 갔다 온 뒤로 나는 세계여행을 하는 이빨 귀신 꿈을 종종 꾸었다. 귀신은 세계 곳곳의 놀이공원을 다니며 바이킹을 탔다. 무섭게 생긴 귀신이 바이킹을 무서워하는 걸 보며 꿈속에서 나는 웃었다. 토요일이 되었고, 나는 터미널에 갔다. 그리고 지혜의 후배처럼 말해 보았다. 가장 빨리 출발하면서 가장 멀리 가는 표를 달라고. 그랬더니 매표소 직원이 진주행 표를 끊어 주었다. “진주 좋아요?” 내가 묻자 직원이 가 본 적은 없지만 진주가 고향인 친구가 있다고 했다. “친구 말이 여름에 촉석루에서 낮잠을 자면 좋대요. 한량이 된 기분이 든대요.” 직원이 말했다. 버스에서 나는 민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터미널에서 아무 버스를 탔다고. 한참 후에 민정에게 답이 왔다. ‘힘든 일 생겼어?’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답했다. ‘힘든 일도 없지만 행복한 일도 별로 없잖아. 그 후배처럼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내 말에 민정이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옆자리에 멋있는 남자가 있으면 말을 걸어 보라는 말과 함께 이모티콘을 보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가방에서 ‘대박’이라는 글자를 꺼내는 영상이었다. 그 이모티콘은 민정이 만든 거였다. 대박이 나면 회사를 그만두려 했지만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 가방에는 다양한 단어가 들어 있었다. 개빡. 배고파. 사랑해. 열공. 짜증 나. 나는 답으로 산타할아버지가 두근두근 글자를 꺼내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진주성 매표소 앞에서 팔 년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경수와 나는 스물세 살 때 만나 스물아홉 살에 헤어졌다. 우리는 학교 앞 스터디카페의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었다. 119 구조 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경수는 고향집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릴 적 경수는 겁이 많았다. 어떤 날은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놀라 울기도 했다. 경수는 그런 자기 모습이 싫었고 그래서 매일 담력 훈련을 하기로 결심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방에는 다락이 있었다. 아들이 죽은 후 며느리에게 화만 내던 할머니는 그 방에서 잠을 자 돌아가셨고 그 후로 아무도 방문을 열지 않았다. 경수는 하루에 삼십 분씩 다락에 올라갔다. 다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허공에 문 하나를 그렸다. 그리고 그 문을 천천히 여는 상상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겁쟁이에서 탈출을 했어요, 그쪽도 무서우면 허공에 문 하나를 그려 보세요, 하고 경수는 말했다. 그러면서 경수는 내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래 이 세상에 해결 못 한 것은 없어. 끝까지 포기 않고 풀면 되잖아.’ 우리가 사귀게 된 뒤로 경수는 종종 그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진주에서 다시 만난 경수는 살이 조금 쪘다. 나를 보고 경수는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 “응,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응. 너도 잘 지냈어?” 경수가 웃었다. 웃으니 작은 눈이 더 작아 보였다. 우리는 진주성을 같이 걸었다. 충무공 김시민 동상을 보면서 이분은 충무공 이순신 때문에 억울하겠는데, 하며 농담을 했다. 걷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는 새를 보았다. 경수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얼마나 목이 마르면 도망도 안 가.” 경수가 속삭이듯 말했다. 곧 다른 새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그 옆에서 물을 마셨다. “이 물이 맛있다고 소문났나 봐.” 나도 경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새가 물 먹는 걸 보았다. 그랬더니 오래전 강릉 여행을 갔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던 날이 생각났다. 같이 신발을 벗어 두었는데 경수의 신발만 사라졌다. 신발을 찾겠다고 경수는 해변을 다 뒤졌고 등에 화상을 입어 며칠을 고생했다. 배불리 물을 마신 새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이내 날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진주성을 걸었다. 남강 위에 떠 있는 유람선을 보고 경수가 말했다. “비 오는 날 타면 괜찮겠다.” 배 위에 한옥처럼 생긴 집이 있었다. 나는 경수에게 자주 가던 정자가 얼마 전에 불에 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가 막 사귀었을 때 경수는 연경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술에 취한 연경이 경수보고 마음에 안 든다며 나랑 헤어지라고 말하는 바람에 경수는 연경을 싫어했다. 그래서 연경이 죽었을 때 나는 잠시 경수를 미워했다. “그 정자에 연경이 고등학생 때 썼던 낙서가 남아 있었어.” 나는 경수에게 말했다. 치킨을 먹고 연경이 남긴 낙서에 대해. 그리고 거기서 몰래 먹던 맥주에 대해. “낙서가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것 같아. 그래서 여행을 온 거야.” 내 말에 경수가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젊은 남녀가 촉석루 계단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부모님?” 내가 물었더니 경수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랑 아빠랑 똑같이 생겼지?” 경수가 물었다. 내가 경수를 처음 봤을 때의 얼굴이 사진 속에 있었다. “요새 나는 부모님이 연애를 했던 사진 속 장소들을 찾아다녀.” 경수가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겨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다. 사이가 나빠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고. 경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짐을 정리하다 사진을 발견했다고 했다. 모두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다. “젊었을 때 우리 엄마도 자주 웃던 사람이었어. 그걸 잊고 있었어.” 나는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촉석루에 도착하자 나는 경수에게 계단에 앉아 보라고 했다. 그리고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찍어 준 사진을 보더니 경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혼자 먹기에는 용기가 필요해서. 같이 먹어 줄래?”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오늘만 똑같은 식당을 다섯 번째 간다는 말을 했다. “진주에 있는 조상님들이 다 배고픈 날인가 봐요.” 기사의 말에 우리는 웃었다. 내가 맛있는 식당인지 물었더니 기사가 안 먹어 봤다고 대답했다. 자기는 일 년에 제사를 열 번도 넘게 지내는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났다고. 그래서 결혼도 못 할 뻔했다고. “게다가 나는 증조할아버지 제삿날이랑 생일이 같아서 미역국 대신 탕국을 먹고 컸어요. 돈 주고는 안 사 먹죠.” 저녁을 먹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에 손님은 없었다. 경수가 정식 이 인분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자 경수가 부모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좋아해서 제사상에는 그걸 올린다고. 파와 양파를 잔뜩 넣고. “엄마는 술을 안 드시는데 아버지 제삿날은 꼭 술을 드셔. 두루치기를 안주로.” 경수의 이야기를 듣다 내가 우리도 한잔하자고 말했다. “그럼 그럴까?” 경수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사실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라고 경수가 말했다. 그래서 헛제삿밥이라도 먹고 싶었다고.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고추부각을 먹었다. 경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소고기 산적을 먹었다. 가지를 싫어하던 경수가 가지나물을 먹어서 내가 놀렸다. 이제 어른이 되었네, 하며. “아직 멀었어. 어른이 되려면.” 그렇게 말하고 경수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오 년 전에 결혼할 뻔했는데 파혼을 했어.” 경수가 말했다. 신혼집을 구하다 그렇게 되었다고. 가격과 위치가 적당한 집이 있다고 해서 가 봤는데 놀이터가 바로 앞에 있었다. 경수는 시끄러운 게 싫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더더욱 질색이었다. 그래서 대출을 더 받더라도 다른 집을 구하자고 했더니 여자 친구가 싫다고 했다. 자기는 그 집이 마음에 든다고. 무엇보다 창문을 열면 노는 아이들이 보이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그러면서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태권도장이 하나 있는데 그 상가 건물 앞에 서서 아이들의 기합 소리를 듣는 게 취미라고 했다. 태권. 그렇게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용기가 생긴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거야. 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어서 엄마 핑계를 댔어. 엄마 이야기만 하면 다들 나를 떠나니까. 나 바보 같지?” 나는 경수와 헤어질 때 했던 모진 말들이 생각났다. “응, 여전히 바보 같다.” 나는 말했다. 사장님이 비빔밥을 가지고 왔다. 고추장을 넣지 말고 탕국 국물을 넣어서 밥을 비벼 보라고 말했다. 나는 탕국 국물을 서너 숟가락 비빔밥에 넣었다. 경수가 두부도 같이 넣어 봐, 라고 말했다. 그래서 두부도 같이 넣었다. 나는 일부러 비빔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입안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리고 경수에게 장례식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힘들 때면 세계여행을 다니는 어떤 아이의 이를 상상해 보자고. 경수의 다음 여행지는 제주였다. 제주 한림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천지연 폭포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그렇게 두 장이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 가거든 산방산에 아래 놀이공원이 있어. 거기서 바이킹을 타. 우울증에 효과가 좋대.”내 말에 경수가 자기는 우울증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니 미리 예방하라고, 하고 대답했다. 나는 경수에게 엄마가 제주도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언젠가 엄마가 해 준 김치찜을 먹고 경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그 말 때문에 엄마는 경수를 예뻐했다. 바이킹을 구경하다 엄마와 경수도 우연히 만날까? 서로 알아볼까? 식사를 마친 뒤 택시 두 대를 불렀다. “잘 지내.” “너도 잘 지내.” 식당 마당에서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4
그다음 주에는 원주에 갔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기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가자고 했더니 손두부 식당에 내려 주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많았다. 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놓고 식당 앞 평상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식당 검색을 해 봤더니 내가 좋아했던 먹방 유튜브가 지난달에 다녀간 곳이었다. 횡령을 하고 도망간 그 커플도 아직 먹방 유튜브를 보는지 궁금해졌다. 유튜브에 나온 식당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에 초등학교가 보였다. 운동장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구름이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그걸 보자 자동으로 노래가 떠올랐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나는 동요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미루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 내가 느티나무요? 하고 다시 물었다. “내 고향이 예산인데 거기에는 천 년 넘은 느티나무도 있어. 저거는 한 백 년 되었을까.” 그렇게 말하고 할머니는 부채를 펴서 부채질을 했다. 바람이 나한테까지 전해졌다. “천 년 넘은 느티나무를 보다 저걸 보면 시시하겠어요?” 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시시하다면 다 시시하고. 근사하다면 다 근사하지.” 할머니가 말했다. 그때 딸로 보이는 사람이 할머니를 불렀다. 엄마 자리 났어, 하고. 할머니가 들어간 다음 나는 노래 가사를 바꿔 불러 보았다. ‘느티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그렇게 부르고 하늘을 보니 구름은 어느새 멀리 사라졌다. 내 차례가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두부전골을 주문했더니 이 인분 이상이라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종업원이 말했다. 남으면 포장해 주겠다고. 그랬는데 맛있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 청국장과 순두부를 하나씩 포장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청국장 냄새가 계속 났다.
그다음 주에는 삼척행 버스를 탔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어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 왔어?”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 엄마로 짐작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리가 나는 칸 앞에 가서 말했다. “엄마는 없는데. 무슨 일이니?” 내가 묻자 아이가 배탈이 나서 엄마가 약을 사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엄마가 올 때까지 화장실 앞에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그래서 오른발을 앞으로 밀었다. “이 발 보이지? 걱정 마. 언니가 여기 서 있을게.” 내가 말했다. 나는 오줌이 마려웠지만 참았다.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참았다. 그건 수학여행을 가던 날 연경이 알려 준 방법이었다. 버스에서 민정이 오줌이 마렵다고 하자 연경이 애국가를 부르라고 했다. 그러면 경건한 마음이 들어서 오줌을 참을 수가 있다고. 그러자 민정이 자기는 한국이 싫다고 대답했다. 애국하는 마음이 없으면 애국가로 오줌을 참을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연경이 그럴 경우에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스승의 은혜를 불러 보라고 했다. 자기는 다 해 봤다고. 그래도 애국가가 최고라고. 그건 4절까지 있으니 길게 참을 수 있다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어제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나 먹어서 배탈이 났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혼났다고.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참을 수가 없다고. “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해져요. 그래서 슬픈 마음이 들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해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제 얼마나 슬픈 일이 있었기에 다섯 개의 아이스크림이 필요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이 엄마가 와서 나는 얼른 옆 칸으로 들어갔다. 오줌을 누고 나오니 아이도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휴게소 편의점에서 부라보콘을 사 먹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도 이기지 못하는 슬픔은 찾아오지 않길 기도했다. 그다음 주에는 함양에 갔다. 맨발 산책로가 있어서 나도 맨발로 산책을 했다. 내 앞에는 두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나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리고 부부에게는 두 번 이혼을 한 아들도 있고 영화 공부를 한다고 의대를 그만둔 손주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가 한숨을 쉴 때마다 할아버지가 힘차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갑다 합시다.”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맞아요. 맞아요. 속으로 대답했다. 맨발로 걸어서 그런지 밤에 잠이 잘 왔다. 나는 지압 슬리퍼를 사서 화장실에 두었다. 충주에서는 물놀이를 했다. 터미널에 내렸더니 초등학교 운동장에 무료 물놀이장을 개장한다는 안내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다. 물이 무섭다며 발을 담그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 아빠가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해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수박 모양이 그려진 귀여운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 가져 보는 수영복이겠지. 태어나서 처음 맞아 보는 비. 처음 만져 보는 눈송이. 처음 들어 보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그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의 모든 처음을 다 기억하면 어떤 사람이 될까? 왠지 슬플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로 자랄 것 같았다. 미끄럼틀장에 갔더니 안내 요원이 성인이라 탈 수 없다고 했다. “딱 한 번만요. 오늘은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서 그래요.” 내 부탁에 안내 요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딱 한 번만입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니 안내 요원이 내게 물을 뿌렸다. “이왕 노는 거. 푹 젖어야죠.” 그러고는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젖은 옷을 말리려고 학교 운동장을 계속 돌았다. 울산에 가서 수목원을 구경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푯말에 적힌 식물 이름을 불러 보았다. 부룬펠지아. 켄챠야자. 송 오브 인디아. 낯선 식물 이름을 천천히 발음하면서 산책을 하니 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어느 나무 앞에서 웃고 있었다. 궁금해 가 봤더니 아이들이 나무 푯말을 가리켰다. ‘소세지 트리’ “나무 이름이 소세지래요.” 아이들이 말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매일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을 나무 생각을 하니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걷다 보니 천사의 나팔꽃이 있었다. 너는 좋겠다. 이름이 예뻐서. 나는 나무에게 말했다.
5
장례식장에서 지혜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 민정에게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모르는 영상이 전송되었다. 확인해 봤더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네컷사진을 찍는 영상이었다. 오렌지 모양의 안경을 쓴 아이. 똥 모자를 쓴 아이. 뭉크의 절규 표정을 흉내 내는 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민정은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래오래 재미나게 지내라, 하고. 그리고 며칠 후 모르는 사람에게 부고 문자가 왔다. 혹시 거래처 사람일지도 몰라 회사에 물어봤는데 동료들도 모두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주일 후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또 받았다. 메시지에는 월요일 아침에는 늘 밝은 색의 양말을 신게 했던 어머니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덕분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그런 어머니를 위해 조문을 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 메시지를 읽자 민정은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랬다는 게 생각났다. 월요일이면 가장 예쁜 핀을 머리에 꽂아 주었다. 민정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민정은 우리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다. 한번은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민정이 답했다. 자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 아버지가 마음 편히 재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일이 찾아왔고 민정은 동네 빵집에서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민정은 비를 맞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러다 집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바닥에 떨어져 먹을 수 없게 된 케이크를 보니 민정은 슬퍼졌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 슬픈 것은 아니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걸 떠올려 보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일 날도 비가 왔다. 민정의 생일날도 비가 왔다. 민정은 지혜가 해 준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그 후배처럼 자기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어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현관 센서등도 고쳤어. 현관이 어두우면 더 그런 마음이 들까 봐.” 민정이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현관 센서등은 2년 전에 고장 났었는데 민정은 여태 고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민정에게 주말에 아무 버스나 타고 떠나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정이 혼자는 겁이 난다며 나보고 같이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제천시장에서 민정은 빨간 오뎅을 스무 개나 먹었다. 삶은 달걀은 네 개. “너 먹는 거 보면 우울이 왔다가 도망갈 거야.” 내가 민정에게 말했다. 민정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말하면서 고갯짓으로 옆 사람을 가리켰다. 군복을 입은 남자 앞에 나무 꼬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군대에서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민정이 내게 속삭였다. 가게 주인이 남자에게 인삼튀김을 서비스로 주었다. “정훈이도 지난주 휴가 나왔다고 여기서 먹고 갔어.” 가게 주인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서비스 안 준다고 뭐라 하지 마요. 여긴 하나에 200원일 때부터 우리 집 단골이야.” 그러면서 자기네 빨간 오뎅을 먹고 큰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이 되었다고 사장님이 말했다. 오뎅을 먹은 후 우리는 시장 구경을 했다. 오뎅 가게에서 만난 군인이 수박을 사고 있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군인을 따라가 보았다. 군인은 시장을 나와 길을 걸었다. 능소화 핀 어느 집 담벼락에 서서 셀카를 찍고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냈다. 바닥에 분필로 그려 놓은 사방치기 놀이판이 보였다. 군인은 수박을 내려놓고 혼자 게임을 했다. 허공에 돌을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그리고 다시 수박을 들고 언덕길을 올라가더니 파란색 대문집으로 들어갔다. 민정이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와 사방치기 놀이를 했다. 나는 민정이 1번 2번 3번을 차례로 정복하는 걸 구경했다. “근데 저길 뭐라 불렀지?” 민정이 7번과 8번 위에 그려진 반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늘!” 내가 말했다. 민정은 5번 6번 7번도 성공했다. 8번 칸에서 돌이 금을 살짝 벗어났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그리고 마지막. 민정은 다섯 번 만에 하늘 칸에 돌을 넣었다. “하늘 정복. 끝!” 민정이 외쳤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기뻐하는 민정의 모습을 찍었다. 그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엄마가 산방산 바이킹에서 경수랑 닮은 사람을 봤다는 말을 했다. “바이킹을 타고 또 타고 또 타더라고. 세 번이나.”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경수일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울한 사람인가 봐.”내가 말했다. 엄마가 뭐하냐고 물어서 민정이랑 논다고 답했다. “니들은 좋겠다. 재미나게 놀아라.”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영상 하나를 보냈다. 어떤 남자가 바이킹을 타고 있는 영상이었다. 바이킹에는 남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영상이 흔들려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민정에게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진주에 갔을 때 사실 경수를 우연히 만났다고 고백을 했다. “닮은 거 같아?” 내가 묻자 민정이 영상을 확대해서 보았다. “닮았는데 안 닮은 것 같다고 하자. 혼자 저기서 바이킹을 타고 있을 거 생각하면 짠하잖아.” 그러면서 민정이 덧붙였다. 헤어진 연인이 짠하게 느껴지면 답 없다고. 나는 민정이 들고 있는 돌을 빼앗아 사방치기의 하늘을 향해 던졌다. 한 번에 골인.
한참을 걸으니 벽화가 그려진 마을이 나왔다. 길마다 테마가 있는 모양이었다. 장생길. 소망길. 출세길. “학업 성취길은 가지 말자. 이미 글렀다.” 민정이 말했다. 벌서는 아이. 오줌 싸는 아이. 술래가 되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세는 아이. 아는 만화 캐릭터가 보여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달려라 달려라 이 세상 끝까지. 그러다 민정이 말했다. “우리 같이 적금 부을까. 한 달에 십만 원씩 그거 모아 세계 일주 가자.”“그렇게 모아 언제 세계 일주를 가?” 내가 되물었다. “이십 년 후? 아님 삼십 년 후?” 민정의 말에 나는 그건 너무 먼일이라고 올겨울에 제주도나 가자고 했다. 가서 바이킹이나 타고 오자고. 세계 일주를 꿈꾼 사람은 연경이었다. 셋이 학교 앞 공원에서 치킨을 시켜 먹던 날 오후 수업을 땡땡이쳤다. 우리는 정자에 나란히 누워서 만약에 놀이를 했다. 만약에 전교 일 등을 하면 어떤 과를 갈 거야? 만약에 새로 태어난다면 어떤 새가 될 거야? 만약에 일 억이 생기면 뭘 할 거야? 연경은 일 억이 생기면 세계 일주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자 바닥에 손으로 세계지도를 그린 후,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들을 선으로 연결했다. 연경이 죽고 연경의 어머니는 우리를 미워했다. 우리가 약속 시간에 늦지만 않았어도 연경이 혼자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옥상에서 떨어진 간판에 머리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령이 된 연경이는 세계 일주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슬플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 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르지. 그 생각을 하자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모든 나라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졌다. “아니다. 가자. 적금 붓자.” 내가 말했다. “으, 변덕.” 민정이 말했다. 그러다 민정이 갑자기 혼자 피식, 하고 웃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민정이 예전에 과외를 할 때 학생이 자주 듣던 노래가 생각나서 웃었다고 했다.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었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새. 주머니에서 새가 나온다니 너무 근사하잖아.” 과외가 끝난 뒤에도 민정은 종종 그 노래를 중얼거렸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있었거든. 그랬는데 지난주에 카페에서 우연히 다시 들은 거야. 내가 노래 찾기 어플로 가사를 찾아봤더니 새가 아니라 세이(say)더라고. 에스(S) 에이(A) 와이(Y). 그 세이.” 진짜 가사를 알고 나니 민정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새라고 믿고 있었던 게 아무 뜻 없는 추임새였다니.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새.”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민정이 나를 쳐다봤다. “그냥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자.” 나는 민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새.” 민정이도 외쳤다.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돈.” 내가 외쳤다. 민정이 내 말에 웃었다. 그리고 민정이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꿈.”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구름.” “내 주머니 속에서 나올 거에요, 너.” 우리는 주머니에서 나올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 물고기 조각상을 보았다. 물고기를 만지면 입신양명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민정이가 물고기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저는 욕심 없습니다. 입신만 하게 해 주세요. 양명은 빼고요.” 민정이 말했다. 내가 민정의 허리를 두드렸다. “입신양명이라니. 그냥 허리나 똑바로 펴고 살자.” 내 말에 민정이 맞다, 맞다, 하고 웃었다. 우리는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걸었다. 민정이가 주머니 속에서 새가 나오고 구름도 나오고 돈도 나오는 이모티콘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서 나는 공짜로 주면 써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천 년 넘은 느티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래 허리나 똑바로 펴고 나무나 구경하자.” 민정이 말했다. 커다란 뭉게구름이 천천히 지나갔고 구름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우리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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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버스데이[단편소설] 해피 버스데이 윤성희 ?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오디오북을 만나볼 수 있어요 1 새벽에 윤석이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휴대폰 화면 가득 꽃가루가 날렸다. 그걸 보자 윤석이랑 같이 보았던 불꽃놀이가 생각났다. 군 입대를 앞두고 우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갔었다. 그때 보았던 불꽃놀이. 그걸 보며 윤석은 말했다. “제길, 이렇게 멋진 풍경을 너랑 보러 오다니.” 그래서 나도 말했다. “다음에는 애인이랑 와라.” 제대 후 윤석은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와 연애를 했다. 12월 31일에는 가요대제전을 봐야 한다는 후배를 설득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갔다. 후배는 춥다고 투덜댔지만, 종이 울리자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후배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나니 돌아갈 버스가 끊겼다. 윤석은 여섯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다가 일출을 보았다. 그걸 보자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기도를 하자 미래를 꿈꾸어야 할 것 같았고, 그래서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고시원에 들어간 지 이 년째에 이별을 했고, 삼 년째에 1차에 합격을 했고, 사 년째에 최종 합격을 했다. 합격 발표를 들은 날 우리는 동해로 해돋이를 보러 갔다. 비가 와서 일출은 보지 못했고 비만 맞았다. 그리고 어느 식당에 들어가 곰치국을 먹었다. 국물이 어찌나 시원했는지 술 생각이 절로 났고 그래서 소주를 마셨다. “간이 생생해서 그런가. 술술 들어가는데.” 윤석이 말했다. 윤석은 고시원에 들어가면서 합격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독한 놈.” 내가 말했다. 윤석이가 입원을 결심했을 때도 나는 똑같이 말했다. “넌 독한 놈이니 끊을 수 있어.” 윤석이 두 번째로 입원을 했을 때도 그랬다. “알지? 넌 독한 놈이니 할 수 있어.” 하지만 세 번째로 입원을 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윤석의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어째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알고 있는 걸까. 음력 생일도 아니고 주민등록상 생일도 아니었다. 나는 윤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윤석이 말했다. “나 술 마셨을까 봐 전화한 거지? 걱정 마, 안 마셨어.” 나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내가 묻자 윤석은 헬스장을 다섯 시 반에 열어야 해서 다섯 시면 일어난다고 했다. 지난달에 윤석은 알코올 치료센터에서 퇴원을 한 뒤 여동생이 살고 있는 순천으로 내려갔다. 여동생의 남편이 운영하는 휘트니스 클럽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돕기로 했다며. “나 운동도 시작했어. 이게 마지막 기회 같아.” 윤석은 말했다. “응.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나는 말했다. 말하면서도 그렇게 뻔한 말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전화를 끊기 전
- 윤성희
-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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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여름방학[단편소설] 여름방학 윤성희 * 퇴직을 하던 날,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을 했다. 이병자. 그게 내 본명이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남은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도장은 버리려다 따로 챙겨 두었다. 한자로 새긴 도장도 하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책상 서랍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칫솔과 슬리퍼도 버렸다. 이만 하면 오래 다녔지. 오십이 넘은 뒤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으므로 퇴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내 의지로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붓고 있는 적금이 만기가 되면 사표를 쓸 계획이었다. 목표 금액까지는 몇 달 남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무얼 할 계획이냐고 묻는다면 세계 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퇴직 후의 계획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행이라고는 제주도에 두 번 갔다 온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한 번은 출장을 겸한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고 싶은 나라는 텔레비전에 다 나왔다. 선풍기를 틀고 소파에 누워 사람들이 낯선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내겐 여행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트렁크를 끌고 공항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무서웠다. 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 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이보다 더 한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공항만은 달랐다. 그게 뭐라고. 그 환한 건물이, 수많은 사람들이, 트렁크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무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그 정도 선물은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작별 선물 하나 없던 동료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섭섭지 않게 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들은 집을 떠나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사정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근처 중학교의 행정실에 사무보조 자리를 하나 구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석 달 전이었는데,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졸업을 할 수 있게 처리도 해주었다. 중학교 행정실에서 사무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교를 다녔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일을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삼키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운 좋게 중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와 상업계 여자고등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제법 큰 재단의 학교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이십오 년 전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꽃병을 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찬장을 뒤졌다. 안쪽에서 맥주잔이 나왔다. 호프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0cc 맥주잔이었는데, 어디서 났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잔에 꽃을 꽂고 나니 맥주가 한 잔 먹고
- 윤성희
- 2016-08-04
문장웹진 소설
웅덩이웅덩이 윤성희 1 그녀의 어머니는 쉰여섯 번째 생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어머니에게 그녀는 차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사과 색깔 좀 보세요. 참 붉죠?” 그녀는 사과 두 알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잠을 자는 척하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연립을 오르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삼층을 오르다 말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302호에는 치매에 걸린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걸을 수 있잖아. 무엇보다 어머니는 202호에 사는 젊은 부부에게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현관문 앞에 배달해 먹은 음식 그릇들이 놓여 있는 집이었다. 웃음 소리가 자주 새어나와서 어머니는 계단을 오르내리다 말고 202호 앞에 자주 멈추어 귀를 기울였다. 결혼을 해서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을 어머니는 평생 떠나지 못했다. 십 년 전에는 그녀의 오빠와 셋이 살던 집이었고, 십육 년 전에는 네 식구가 살던 집이었다. 집을 마련하자마자 어머니가 가장 먼저 산 것은 장식장이었다. 단 1%의 금도 들어 있지 않은 싸구려 트로피를 보관하기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한 달 치 월급을 웃도는 돈을 주고 장식장을 샀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신 미쳤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오빠가 넥타이를 가위로 잘랐을 때도 화를 내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 넥타이가 아버지에게 어떤 추억이 담겨 있는 물건인지 식구들은 아무도 몰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찢은 넥타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첫사랑을 잊었다.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쭈쭈바를 빨아먹다 말고 울었다. 오빠는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어머니는 장식장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당신과 결혼한 내가 미친 거지, 라고 중얼거렸다. 육 개월 할부로 장식장을 샀지만 그걸 다 갚는 데는 일 년이 걸렸다. 할부금을 갚은 뒤 장식장과 어울리는 소파를 사리라 결심했지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그 꿈은 멀어졌다. 이십여 년이 지난 뒤, 오빠가 결혼을 한다며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어머니는 예단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대신 소파를 사 주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말에 오빠가 미간을 찌푸렸다. 벽지 색이 누렇게 변하는 동안, 보일러가 터지는 바람에 장판 바닥에 곰팡이가 피는 동안, 변기가 고장나서 볼일을 보면 꼭 세 번씩 물을 내려야 하는 동안, 장식장은 늘 그 자리를 지켰다. 오빠는 가운데가 움푹 파인 트로피 안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넣어 두었다. 나사못이라든가, 빠진 이라든가, 콜라 병뚜껑 같은 것들을. 그녀가 울면 오빠는 트로피를 그녀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그러면 어린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나도 스무 살 땐 빨간 구두를 신었는데.” 어머니가 사과를 깎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과 한쪽을 포크에 찍어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한 입 베어 물고는 시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빨간 구
- 윤성희
- 2010-10-2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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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