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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스트럭

  • 작성일 2025-10-01

   썬더스트럭


이유리


   일 톤 트럭의 조수석에 올라타며, 장석원 씨는 이 모든 것이 몽골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는 장석원 씨의 환갑이었으나 그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의견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이 먹은 게 뭐 자랑이라고 호들갑을 떠나 싶은 쪽이었고, 때문에 아들 내외가 선물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저 심상하게 글쎄다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오히려 신이 난 건 장석원 씨 아내였다. 더 늙기 전에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우기며 패키지여행을 보내 주기로 확답을 받아 낸 것도, 밤낮으로 홈쇼핑 채널을 시청한 끝에 최저가라는 삼박 사일짜리 몽골 여행 패키지를 찾아낸 것도 아내였으니까. 그리하여 여행 날짜가 착착 다가왔으나 장석원 씨는 여권 갱신이며 짐 챙기기 등의 잡다한 여행 준비를 아내에게 내맡겨 버렸다. 심드렁히, 지난 육십 년간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성실하게 살았고 결혼이며 육아며 내 집 마련과 부모 봉양, 아무튼 남들이 하는 건 다 했지만 그중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주선한 선 자리에 나온 비슷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했고 장인어른이 철학관에서 받아다 준 이름으로 첫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가진 돈으로 넘볼 수 있을 만한 동네에 집을 샀고 거기서 십오 년을 살다가 아내의 불평에 리모델링해 십오 년을 더 살았다. 몽골 여행도 그에겐 마찬가지였다. 썩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았다. 

   여행 전날, 기대와 설렘으로 전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던 아내와 달리 장석원 씨는 평소처럼 눕자마자 잠들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도, 몽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는 잠만 잤다. 눈을 뜨고 있었던 건 오직 기내식을 나눠 줄 때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그가 받은 비프 도시락이 너무 달아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깨닫자마자 뚜껑을 덮고 도로 잠들었으므로 오 분도 안 됐을 거였다.

   칭기즈칸 국제공항 입국장에는 몽골인 가이드가 여행사 로고가 쓰인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내외는 함께 여행을 할 사람들과 안면을 텄다. 총 여덟 명의 한국인들은 모두가 쌍쌍이 부부인 데다 나이도 전부 비슷한 듯했다. 가이드는 양 떼 몰듯 그들을 공항 밖으로 데리고 나가 미니버스에 태웠고 출발한 버스 안에서 여행 일정을 간략하게 읊어 주기 시작했다.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몽골 대자연 관광, 무슨 사원과 무슨 박물관, 고비 사막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멋진 무슨 사막‧‧‧ 그리고 게르에서 자고 허르헉을 먹으며 유목민 생활 체험‧‧‧ 및 기타 등등. 장석원 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심상하게 생각했다. 저 아가씬 생긴 건 토종 몽골인인데 한국말을 참 잘하는구먼. 

   첫날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배정받은 게르에 짐을 풀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많은 일들을 했으나 크게 즐거운 건 없었다. 커피는 쓰디썼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으며 물건들은 죄다 너무 비쌌다. 하지만 이런 곳에선 으레 그렇기 마련이겠지. 밤에 장석원 씨는 별을 보러 나가자고 하는 아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일찌감치 게르에 드러누워 잠들었다. 아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사교적인 편인 그의 아내에겐 남편보단 같이 여행 온 비슷한 처지의 아내들과 어울리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장석원 씨는 그날의 첫 일정에 꽤 좋은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었다. 그들은 승마 체험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아침을 먹고 나서 밖으로 나오자, 몽골 전통 복장을 한 남자 세 사람이 말 여러 마리를 끌고 다가왔다. 가이드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승마에 대해 설명했다. 소리를 질러서 말을 놀라게 하지 말 것,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말의 움직임에 내 몸을 맞출 것, 속도를 높이거나 달리려고 하지 말 것. 그러고는 모여든 사람들을 훑어보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여러분 중에선 그럴 분이 없을 것 같지만요.” 

   다분히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웃기만 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모두가 나이 지긋했고 말을 달리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장석원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장석원 씨는 사실 말을 타고 싶지조차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가이드와 몽골인 마주들이 그들 여덟에게 각자 말 한 마리씩을 나눠 주었다. 장석원 씨에게 온 말은 온몸이 밤색이고 이마에만 흰색 십자 모양의 털이 나 있었다. 장석원 씨를 비껴 쳐다보는 주먹만 한 눈은 흰자위 없이 새까맸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에서만 봤을 뿐, 살아있는 말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장석원 씨는 조심스럽게 말의 이마 한가운데를 쓰다듬어 봤다. 판판하고 거칠었다. 이윽고 몽골인 마주가 말에 올라타며 시범을 보였다. 아내가 먼저 엇차, 하며 올라타자 장석원 씨도 탔다. 두꺼운 천을 대충 접어 만든 안장 위에 엉덩이를 비비며 편한 자세를 잡았다. 선두에 선 마주가 나머지 여덟 마리 말의 고삐를 하나로 묶어 쥐고 출발했고, 그리하여 드디어 장석원 씨의 말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 그때였다. 장석원 씨는 갑자기 가슴 속에 뜨겁게 북받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처음에 장석원 씨는 그 감정을 단순하게 해석하려 했다. 말에 올라타니 시야가 쑥 높아졌고, 덕분에 그전까진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테를지 국립공원의 광활한 자연이 한눈에 들어왔으며, 그것이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거라고. 확실히 말을 타고 보는 풍경은 땅에 서서 보는 것보다 훨씬 근사하긴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 흥분과 희열은 그걸론 설명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리드미컬하게 걷는 말, 그 리듬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는 몸, 허벅지 안쪽으로 느껴지는 말의 단단한 잔등 근육‧‧‧ 그런데 이게 뭐지. 대체 이게 뭘까. 장석원 씨는 어안이벙벙해진 채로 그 모든 것을 그저 감각하며 말에 실려 갔다. 갑자기 누군가 장석원 씨의 모든 감각기관을 억지로 열고 감각들을 때려 붓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대열이 캠프장을 벗어나 널따란 길로 접어들어, 말이 아주 조금 더 속도를 냈을 때는 그게 수백수천 배로 증폭됐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자리에서 부르르 떨며 몸을 조금 솟구치기까지 한 뒤 장석원 씨는 스스로 그랬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잽싸게 주변을 둘러봤다. 물론 아무도 장석원 씨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때 가장 앞에 걷고 있는 몽골인 마주의 허리춤이 눈에 띄었다. 마주는 뒤따르는 말들의 고삐에 맨 줄을 커다란 고리에 묶어 허리에 걸고 있었는데, 매듭들이 꽤 헐거워 보였다. 장석원 씨는 자기 말고삐에 묶인 줄을 눈으로 찾아낸 뒤 밧줄을 살살 당겼다. 그러자 매듭이 스르륵 풀렸다. 마치 그러기로 약속이라도 돼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직후, 장석원 씨는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달리고 싶다, 그렇게 염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장석원 씨는 말이 자신의 소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건 장석원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그 둘은 말과 인간이 아니라 그저 두 마리의 동물이었다. 장석원 씨의 입에서 이랴! 비슷한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 외침에 응답하듯 말은 더 빠르게 달렸다. 둘은 쏜살같이 길을 벗어나 초원을 향해 오른쪽으로 앞서 나갔다. 장석원 씨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납작하게 숙여 말 잔등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훨씬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순식간에 멀어진 뒤쪽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영원히 지치지 않을 것처럼 힘센 말의 네 다리가 대지를 박차는 순간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강인한 발굽이 초원의 무른 땅을 사정없이 찍어 대며 사방으로 진흙을 튀겼다. 드넓은 벌판이 눈앞으로 끝도 없이 열렸다. 장석원 씨는 황홀경에 사로잡혀 계속 달렸다. 귀를 울리는 발굽 소리, 어쩌다 말이 길게 점프하여 낮은 바위를 뛰어넘었을 때 그 도약은 마치 자기 몸으로 해낸 것처럼 짜릿했다. 말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말의 속도로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득 아까 몽골인 가이드가 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뭐, 여러분 중엔 없을 것 같다고? 막상 들었을 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그 말이 지금에 와선 평생 들어 본 모욕 중 가장 심한 모욕인 것만 같았다. 하하하하! 장석원 씨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그래 봤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오랜만의 폭소였다. 속이 시원한 그 웃음을 몽골의 초원에 뒤로 남겨 두고 장석원 씨와 말은 계속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장석원 씨가 말에서 내린 건 그 이후로도 약 두 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는 심지어 길을 잃지도 않았다. 말이 어찌나 영특한지, 실컷 달리고 난 뒤엔 온 길을 되밟아 스스로 캠프 쪽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물론 그때도 장석원 씨는 말이 스스로 되돌아갈 작정임을 알 수 있었으므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말이 가는 대로 내맡겼을 뿐이었다. 게다가 돌아왔을 때 그가 받은 건 돌발행동에 대한 질타가 아니라 극진한 사과였다. 일행들은 밧줄이 우연히 풀린 탓에 말이 제멋대로 달려 나간 거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거였다.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던 아내는 장석원 씨를 붙잡고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엉엉 울었고, 가이드는 승마 체험 비용을 전액 환불해 줄 테니 나쁜 후기만은 남기지 말아 달라고 쩔쩔맸다. 다만 몽골인 마주만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장석원 씨를 흘겨볼 뿐이었다. 장석원 씨는 그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괜히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이틀 내내, 장석원 씨는 게르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둘러댔지만 물론 핑계였다. 그의 몸은 오히려 평생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상태였다. 아내가 패키지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돌아다니는 동안 장석원 씨는 와이파이가 빵빵한 게르에 앉아 부지런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어딘가에 여러 통의 전화를 걸기도 하고, 때로는 열띠고 긴 통화를 나누며 게르 주변을 빙빙 돌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가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앓는 소리로 드러누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 여러 장만 애꿎게 붙었다 떨어졌다 했다. 

   그리하여 오늘, 내외가 몽골에서 돌아온 지 열흘째 되는 날, 장석원 씨는 일 톤 트럭 조수석에 앉아 그날을 가슴 뿌듯하게 추억하고 있었다. 

   운전수는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트럭에 타기 전 장석원 씨는 그에게 삼십만 원을 계좌 이체했다. 약속한 금액은 그게 전부였지만, 그는 가외로 봉투에 오만 원을 담아 윗옷 안주머니에 품고 있었다. 모든 일이 잘 끝난 뒤에 팁이자 입막음 비용으로 줄 생각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돈을 더 받으면 불평하지 않겠지. 

   그건 당연히 짐칸에 실려 있는 말에 대해서였다. 

   썬더스트럭. 

   녀석의 이름은 썬더스트럭이었다. 올해로 열 살이 된 서러브레드 종으로, 어느 관광지에서 말타기 체험을 하는 데 쓰이다 지금은 승마장에 위탁되어 있던 말이었다. 나이가 좀 많지 않나 싶었지만 초보자에겐 오히려 성격이 안정되고 경험이 많은 이 정도 나이대의 말이 좋다고 했다. 팔려고 내놨다는 세 마리의 말 중 장석원 씨는 단박에 이 녀석으로 마음을 정했다. 늘씬한 밤색 다리와 이마의 십자 모양 흰 털이 그가 몽골에서 탔던 말과 아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을 데려오기 위해 장석원 씨가 지불한 돈은 딱 구백만 원이었다. 몽골에서부터 열심히 조사한 시세에 대강 부합하는 금액이긴 했지만, 녀석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했을 때 에누리를 시도해 볼 여지가 없지도 않았다. 하지만 장석원 씨는 마주가 제시한 가격에서 한 푼도 깎지 않았다. 그건 왠지 말을 타는 사나이가 할 짓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좋은 거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짐칸에 포장을 쳐서 가린 전용 트럭에 말을 싣는 동안 승마장 사장은 중고 굴레, 고삐, 안장 등의 승용구 일습을 함께 실어 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말을 돌봐 본 경험이 있느냐고. 장석원 씨는 엉겁결에 그렇다고, 젊었을 적에 승마를 했었다고 둘러댔다. 다행히도 사장이 뭐라고 더 물으려는 찰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운전수가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서울시 상계동‧‧‧ 자세히 말하려다 말고 장석원 씨는 급히 말꼬리를 흐렸다. 거의 다 와 갈 때쯤 자세한 주소를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였다. 상계동에 마방이 있어요? 휘둥그렇게 뜨고 묻는 승마장 사장의 눈이 꼭 말 같았다. 설명 대신 장석원 씨는 트럭 조수석에 올라타 문을 힘껏 닫았다. 트럭이 출발했다. 사장의 말 눈이 멀어졌다. 장석원 씨는 눈을 감았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다는 안도감이 사르르 찾아왔다.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내 등 뒤에 말이 있다. 

   내 소유의 말.

   장석원 씨는 품속에 넣은 오만 원짜리 봉투를 손끝으로 더듬어 본 뒤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부터 바삐 돌아다닌 탓이었다. 꿈에 떨어지자마자 그 즉시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봤던 푸른 초원이 펼쳐졌고‧‧‧ 장석원 씨는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날듯이 초원을 달렸다. 실제로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달린 건 트럭과 운전수였지만. 이윽고 운전수가 그를 흔들어 깨운 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에 접어들기 직전이었다. 

   “마주님, 다 와 가는데요. 그 마방이 상계동 어딘가요?”

   순간 장석원 씨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마주님이라고 불린 것이 기뻐서였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그는 표정을 가다듬고 최대한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그‧‧‧ 상계동 B아파트라고 찍으면 나오는데.”

   “네? 아파트요?”

   “그, 마방으로 옮기기 전에 누굴 좀 만나야 돼 갖고. 일단 거기 내려주면 다른 트럭이 와서 바로 실어 가기로 했어요.” 

   운전수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더 묻는 대신 내비게이션을 켰다. 장석원 씨는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윽고 몇십 분 뒤 트럭은 장석원 씨가 평생을 살아온 낯익은 동네로 접어들었다. 

   “저기, 저기 세워 주시면 돼요.”

   장석원 씨가 아파트 정문을 손가락질했다. 운전수는 이번에도 묵묵히 시키는 대로 트럭을 세웠다. 차에서 내려 짐칸으로 향한 그가 말을 내렸다. 장석원 씨는 날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차를 타느라 지친 듯 보였지만 썬더스트럭은 여전히 위엄 있고 멋진 모습이었다. 말, 멋진 말, 그의 말이 그가 사는 아파트 정문에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장석원 씨는 황급히 품에서 봉투를 꺼내 운전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운전수는 봉투를 받고 고개를 꾸벅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주님, 이상한 짓은 안 하실 거죠?”

   대답은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트럭에 올라탄 운전수는 그대로 가 버렸다. 

   썬더스트럭과 장석원 씨만이 남았다. 장석원 씨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켠 뒤, 말 굴레를 부여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말은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체념한 듯 그를 따라 걸었다. 아파트 단지 안의 아스팔트에 말발굽 소리가 경쾌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장석원 씨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보냈다. 멀리서 그들을 본 초등학생 무리가 소리를 질렀다. 뭐야 저거 말이야? 말! 진짜 말! 우와! 말이다! 대박! 존나 멋있어! 장석원 씨는 계속 걸었다. 가슴이 그대로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당연히 장석원 씨는 모든 것을 계획해 두었다. 우선 장석원 씨가 썬더스트럭을 집으로 데려온 건 아내가 노래 교실에 가는 날이었다. 그런 날 아내는 같은 반 사람들과 어울려 노느라 저녁이 늦어서야 들어오곤 했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그였지만 그날은 아내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잽싸게 행동을 개시했다. 강원도로 출발하기 전 우선 아파트의 무인 택배함을 통해 주문한 압축 건초와 말 사료, 그리고 물통으로 쓸 커다란 양동이를 핸드 카트에 실어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미리 치워 둔 작은방에 놓았다. 아들이 독립하고 난 뒤부턴 휑뎅그렁 비어 있던 아들의 방이었다. 작은방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크게 작지도 않은 데다 베란다까지 딸려 있어 말을 키우기에 딱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집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일어났다. 썬더스트럭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거부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닥에 시끄럽게 발굽을 부딪으며 도리질할 뿐이었다. 하긴 녀석 입장에선 좁고 환한 저 공간에 굳이 몸을 비집어 들어가야 할 이유를 모르기도 할 거였다.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간 발굽에 차여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장석원 씨는 차분하게 말을 달래려고 애썼다. 자, 임마 괜찮아, 한번 들어갔다 금방 다시 나오면 돼. 하지만 녀석은 주먹만 한 눈으로 장석원 씨를 원망스레 바라보며 히히힝, 하고 목 놓아 울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말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장석원 씨는 진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주민이 이 꼴을 본다면‧‧‧.

   그때 묘안이 떠올랐다. 장석원 씨는 말고삐에 묶인 줄을 비상계단 손잡이에 묶고는 잽싸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금세 숨을 헉헉거리며 돌아온 그의 손에 랩에 싸인 당근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아파트 앞 상가 슈퍼에서 사 온 거였다. 장석원 씨는 허겁지겁 랩을 벗겼다. 썬더스트럭이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얘야, 이거 봐라. 당근이다. 당근 좋아하지. 여기 타면 이거 줄게. 두 개 다 줄게 응.”

   상행 버튼을 누르자 닫혀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 유치한 꾐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불쾌하다는 듯 콧김을 한번 히힝 뿜은 뒤, 녀석이 제 발로 엘리베이터에 탄 거였다. 목을 똑바로 세운 고고한 표정으로. 어찌 된 영문인지야 몰라도 장석원 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 타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말은 다시 콧김을 뿜었지만 얌전했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구겨 타느라 썬더스트럭의 가슴께에 얼굴이 눌린 채, 장석원 씨는 왈칵 흐르려는 눈물을 참았다. 이렇게 똑똑하고 젠틀한 동물이라니. 그 동물이 이제 내 소유라니. 아들 방이었던, 이제는 마방이 된 그 방에 썬더스트럭을 집어넣은 뒤에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일이 잘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계획에 장석원 씨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아내였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집에 돌아온 장석원 씨 아내는 말을 보고 현관에서부터 까무러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저 말이 다 뭐냐고 주저앉은 아내에게 장석원 씨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뭐긴 뭐야, 말이지. 샀어.”

   아내는 기가 막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장석원 씨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저걸 집 안에서 키우겠다는 거야 당신은?”

   “그래.”

   “당신, 당신 미쳤어? 어머 나 어떡해, 이 사람이 진짜 미쳤네?” 

   “뭘 미쳐. 아파트에서 집채만 한 개들도 잘만 키우더만. 그리고 말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마. 자극하면 애 성질 나빠져.”

   아내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린 건 그때였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방금 말했건만, 아내는 현관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 다리를 뻗고 큰 소리로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걸 어째. 나 이제 어떡해.”

   당황한 장석원 씨는 꼼짝 않고 서서 눈만 굴렸다. 싫어할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통곡을 할 줄은 몰랐다. 이런 아내의 모습은 지금껏 평생을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도, 아들이 입대할 때도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사람이었는데. 장석원 씨는 난감해서 썬더스트럭을 흘끗 쳐다보았다. 녀석은 방 안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 아내를 신기한 생물 보듯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이 사람이 환갑 지나 드디어 미쳤네. 평생 조용히 살던 영감이. 아이고, 이제 어떻게 하나. 성주야, 성주야 니 아빠가 미쳤다. 어떻게 하니. 이제 난 어떻게 사니‧‧‧.”

   다음 순간, 장석원 씨는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썬더스트럭이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몇 걸음 걸어 나와 아내 앞에 우뚝 섰고, 그러자 아들 이름까지 목 놓아 부르며 울던 아내가 눈물을 뚝 그쳤다. 말을 올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치는 걸 본 순간 장석원 씨도 확 겁에 질렸지만 그건 기우였다. 말은 아내의 머리통 위에 자기 머리를 턱 하고 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럽게 고개를 휘저으며 아내의 정수리에 제 밑턱을 비볐다. 장석원 씨는 단박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위로였다. 말은 우는 아내를 위로하고 있었다‧‧‧. 동물과 동물 사이에서만 통하는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눈물이 아직 고인 아내의 눈이 장석원 씨와 마주쳤다. 아내도 알아주는 걸까? 몽골에서 느꼈던, 말과 나의 감정이 합치되는 그 순간의 감동을? 당근 없이도 엘리베이터에 스스로 타던 이 녀석의 영특함과 아름다움을? 이윽고 말 머리를 자기 머리에 얹은 채, 아내는 아주 작고 느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장‧‧‧.”

   장석원 씨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몸을 숙였다. 아내는 천천히, 장석원 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장‧‧‧ 이 말 대가리 치워. 얼른. 빨리. 당장.”

   썬더스트럭이 고개를 들었다.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고는 이번엔 장석원 씨에게로 머리를 쭉 뻗었다. 장석원 씨는 얼른 손을 내밀어 말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말은 장석원 씨의 손을 요령 좋게 피하고는 쭉 내민 입을 그의 옆구리 쪽으로 갖다 댔고, 그러자 작게 아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장석원 씨는 멀거니 그쪽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아까 장석원 씨가 겉옷 주머니에 넣어 둔 당근을 꺼내 씹고 있었다. 


   많은 것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쭈그려 앉아, 장석원 씨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는 그냥 말을 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몽골에서 말을 달리던 순간만큼의 희열을 느낄 수는 없으리라는 것쯤은 예상한 바였다. 여긴 드넓은 초원이 아니라 도심, 그것도 서울 한복판이니까. 그러나 도심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장석원 씨의 조사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상 말은 차(車)와 같이 취급됐다. 그러니 교통신호에 따라 도로로 다녀도 합법이었고 과속하지만 않는다면 달릴 수도 있었다. 혹시나 싶어 다산콜센터에 전화까지 해서 확인했었다. 그와 통화한 상담원은 아주 친절하게 타셔도 된다고, 차가 많은 시간은 피해서 이왕이면 새벽에 타시라고 조언까지 해 줬었는데‧‧‧.

   문득 바로 옆에서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났다. 

   장석원 씨는 기겁하며 앉은 채로 펄쩍 뛰었다. 썬더스트럭의 다리 사이에서 싯누렇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오줌 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짜식, 무슨 폭포네 폭포. 장석원 씨는 옷에 사정없이 튄 말 오줌을 손바닥으로 털어 냈다. 순식간에 바닥에 고인 오줌 웅덩이가 보도블록의 홈을 따라 지그재그 무늬를 그리며 화단 쪽으로 흘러갔다. 저거 저대로 놔둬도 되나. 오줌이 독해서 조경이 다 상할 텐데. 그러나 어쩔 방도가 없었다. 기저귀를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 종일 시달린 탓에 이젠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장석원 씨는 원망스럽게 위쪽을 노려보았다. 이미 해가 저문 지 오래였으므로 올려다본 장석원 씨 집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잔뜩 독이 오른 아내가 소파에 앉아 씩씩대고 있을 거였다. 

   빠르게 충격에서 회복한 아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새어 나오는 황당한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아들 역시 장석원 씨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게 확실했다. 아들의 지지에 힘입어 아내는 남편의 애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저걸 계속 집에서 키우겠다면 당장 이혼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아니 요즘은 이혼이 아니라 졸혼이라고 한다지, 아내는 안 그래도 졸혼한 노래 교실 언니들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아주 잘 됐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백 퍼센트 진심이라는 게 팍팍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꼼짝없이 말고삐 하나 달랑 쥐고 집에서 쫓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다시 엘리베이터에 태워 데리고 나오기까지 또 어마어마한 실랑이를 해야 했지만‧‧‧ 그건 그 뒤에 이어진 실랑이에 비하면 차라리 즐거운 수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끌고 아파트 밖으로 나온 장석원 씨는 주변을 둘러보다 일단 건물 옆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로 갔다. 거기라면 그나마 한갓진 구석이라 눈에 덜 띌 것 같았고, 옹색하나마 지붕도 있으니 마구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석원 씨가 말고삐를 자전거 거치용 쇠기둥에 묶으려는 순간 무슨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났다. 썬더스트럭이 거치대 옆에 똥 한 무더기를 푸짐하게 싸 제쳤고, 그 똥이 푸드득 하며 보도에 부딪히는 순간 저 앞 꺾어진 골목을 돌아 막 걸어오던 경비가 그것을 똑똑히 목격한 거였다. 그리고 그 뒤로 몇십 분간 두 사람은 말똥 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며 큰 소리로 다퉜다. 

   “선생님, 여긴 자전거 보관소지 말 키우는 데가 아닙니다.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대체?”

   “아니 여기 자전거도 세워 두는데 말을 세워 두면 왜 안 됩니까? 말도 자전거처럼 타고 다니는데요?”

   “자전거 보관소라고요, 자전거! 말 보관소가 아니잖아요!”

   “아이참, 여기 자전거만 있는 것도 아니구만! 유모차도 있고 그리고 이거 뭐야 이거, 씽씽이도 있는데 왜 이건 놔두고 말한테만 난립니까? 치우려면 이것도 다 치워야지!”

   지나던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기웃거리는 사람들 중엔 아내의 오랜 친구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있었다. 못 견디게 창피했지만 그럴수록 더 뻔뻔해져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 지 몇십 분, 마침내 경비원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그럼 말똥이라도 좀 치우세요, 이게 다 뭡니까 대체. 어휴, 벌써 파리 꼬인 것 좀 보세요.”

   “알았어요, 내가 똥 싹 치우고 아주 조용히 있다가 갈 테니까. 아무튼 당분간 여기 좀 있읍시다. 우리 말이 덩치가 커서 그렇지 얼마나 순한지 알아요? 똑똑하기는 또 얼마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원은 손을 내젓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모여든 사람들도 하나둘씩 발길을 돌렸다. 모두들 장석원 씨의 얼굴을 기억해 두려는 듯 빤히 바라보다 갔다. 수군거리며 멀어지는 말들 가운데 ‘노망’이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박혔다. 아내가 가지고 내려와 준 위생 장갑을 두 겹 겹쳐 끼고, 김장용 비닐 봉투에 차게 식은 말똥을 퍼 담으며 장석원 씨는 노망, 노망,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가, 노망인가 나. 단지 말을 타고 달리는 게 좋았을 뿐인데. 다시 한번 그래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하지만 동시에, 장석원 씨는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말을 타고 싶은 거였다면 그냥 승마 체험장에 가도 됐을 것이다. 내가 굳이 말을 사서 번거로운 이 짓을 하는 건‧‧‧ 그러니까 그게‧‧‧ 장석원 씨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뭔가 마음속에 떠도는 단어들이 있긴 했으나 그게 뚜렷한 문장으로 합쳐지지는 않았다. 

   “야, 너는 아냐? 내가 왜 이러는지?”

   장석원 씨는 옆에 선 썬더스트럭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썬더스트럭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거친 아스팔트에 네 무릎을 굽혀 앉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금세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고, 눈 주변엔 진물 같은 눈곱이 엉겨 축축했다. 그러고 보니 종일 물만 좀 마셨을 뿐 건초나 사료는 전혀 먹지 않은 녀석이었다. 지금이라도 건초를 좀 가져다줄까 싶었지만, 장석원 씨는 대신 자신의 얇은 겉옷을 벗어 말 등에 덮어 주었다. 말은 진저리 치며 옷을 떨어뜨리곤 앞발로 짓이겨 밟아 버렸다. 

   장석원 씨가 드디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건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배가 고프고 다리는 뻣뻣했다. 아내는 일찌감치 잠들었는지 올려다본 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뭐 상관없었다. 오히려 방해하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장석원 씨는 긴 기지개를 켠 뒤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정신은 맑았고 가슴은 뛰고 있었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겠지. 아파트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그들 주변에 알짱거리며 말을 구경하던 어린애들 무리, 자꾸 말을 걸던 노인들, 멀리서 그를 흘겨보던 경비원들도 모두 자러 가고 없었다. 아파트 앞 대로에도 다니는 차가 거의 없을 거였다. 바로 지금이 말을 달려 볼 기회였다. 

   장석원 씨는 말을 묶어 둔 밧줄을 풀었다. 썬더스트럭이 짜증스럽다는 듯 발을 쾅 소리 내며 굴렀다. 그 기세에 심장이 바짝 졸아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순간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푼 밧줄을 손에 쥔 채, 장석원 씨는 주머니에서 이때를 위해 따로 갖고 나왔던 것을 슬그머니 꺼냈다. 내외가 아침마다 하나씩 먹곤 하는 개별 포장된 세척 사과였다. 비닐을 뜯자 썬더스트럭의 코가 벌름거렸다. 사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 틈을 타서 장석원 씨는 고삐를 힘껏 쥐고 등자에 발을 걸어 올라탔다. 좀 비틀거리는 바람에 폼은 안 났지만 어찌저찌 안장에 올라앉을 수 있었다. 그러자 말의 몸이 금세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을 많이 태워 본 말이었다. 몸을 한번 힘껏 털기만 하면 등의 인간을 떨어뜨려 버릴 수 있다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인간은 죽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 말. 장석원 씨는 중얼거렸다.

   자, 너도 달리고 싶지?

   시야가 쑥 높아지니 기분도 따라서 고양됐다. 반평생 넘게 보아 온 아파트 단지 안의 풍경이 지금은 너무나 생소했다. 이랴! 장석원 씨가 기세 좋게 소리치며 운동화 발꿈치로 말의 배를 쿡 찍었다. 썬더스트럭이 마지못한 듯 걷기 시작했다. 따그닥따그닥따그닥, 고요한 아파트 안에 아스팔트에 부딪는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이 켜진 몇몇 창문마다 사람 실루엣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다보는 거겠지, 혹은 노망 난 노인네가 말 타는 걸 구경하려는 걸 수도 있고. 뭐든 상관없었다. 다행히도, 자전거 거치대가 있던 좁은 길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넓은 길로 나아가자 말은 약간 기분이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장석원 씨 주머니에 들어 있는 사과를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장석원 씨는 조급해져 다시 한번 이랴! 소리쳤다. 달리고 싶었다. 아니, 달릴 수밖에 없었다. 말과 함께 달린다는 게 뭔지 알아 버린 이상에는. 

   그리고 썬더스트럭은 그 욕망에 부응해 주었다. 내내 굶어 배가 홀쭉한데도, 종일 스트레스를 받아 매끈하던 털이 푸석해졌는데도. 속도를 내기 시작한 말이 이내 아스팔트 위를 뛰기 시작하자 얼마 남지 않은 장석원 씨의 주변머리가 밤바람에 휘날렸다. 발굽 소리가 그야말로 지축을 울렸다. 흥분으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와중 말은 마치 길을 아는 것처럼 아파트 정문을 벗어났다. 그 앞은 바로 팔 차선 도로였는데, 썬더스트럭은 장석원 씨의 지시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차량 진행 방향에 맞춰 도로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더니 심지어 차선까지 지켜 가며 계속 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검은 도로, 장석원 씨는 상체를 앞으로 비스듬히 굽히고 똑바로 정면을 보려 애썼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자꾸 흐려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이 미물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읽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얘야, 말아, 정말 고맙다. 고마워. 그는 들릴 리도 없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은 빈 도로를 계속 달렸다. 드문드문 마주치는 차들이 창문을 내렸고 배달 오토바이들은 깜짝 놀라 긴 호를 그리며 그들을 피해 갔다. 달리는 길을 따라 스포트라이트처럼 켜진 가로등, 뭔가 되려는 날이었는지 신호도 자꾸자꾸 파란불로 바뀌었다. 눅눅하고 상쾌한 밤바람에 땀이 나자마자 식었다. 머리가 하도 흔들려 어지러웠으나 장석원 씨는 허벅지 안쪽에 힘을 더 꽉 주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남은 생이 길지 짧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욕심만큼 길지 않을 것임은 명확했기에. 평생 처음으로 장석원 씨는 더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대로 영원히, 이 말과 함께 달리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을 영원히‧‧‧.


   그리고 몇 시간 뒤, 장석원 씨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휴대폰이었다. 장석원 씨의 휴대폰이 어슴푸레한 거실에 사방으로 빛과 소음을 뿌리며 울려 대고 있었다. 어기적어기적 휴대폰을 향해 움직이며 장석원 씨는 벽시계를 봤다. 오전 일곱 시였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일어나서 샤워한 뒤 신문을 읽고 있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계제가 못 됐다.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간 아내 탓에 침대는 언감생심,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던 참이었다.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을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말하자마자 장석원 씨는 얼굴을 확 찌푸리며 휴대폰을 귀에서 멀찍이 떼어 놓아야 했다. 마치 굵은 바늘이 튀어나오듯 엄청난 데시벨의 욕설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몇 동 몇 호 살아, 당장 튀어나와 이 씨발 새끼야! 야! 으아악! 아아아아악!”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어안이벙벙해 장석원 씨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마치 거기에 지금 욕설을 퍼붓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있을 거라고 믿는 듯이. 물론 그런 것은 없었고, 귀에 대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지르는 괴성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야! 아 씨발, 아 씨발 진짜, 개새끼야! 나오라고! 나와! 내려와!”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잠귀 밝은 아내가 깬 모양이었다. 불안한 얼굴의 아내가 입 모양으로 뭐야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다. 장석원 씨는 아주 침착하게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여보세요?”

   해독할 수 없는, 그러나 욕설임은 확실한 괴성이 또다시 길게 이어졌다. 이윽고 전화를 넘겨받은 누군가가 말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경빕니다. 말 묶어 놓은 곳에 좀 내려와 보셔야겠는데요. 그‧‧‧ 큰일이 났어요.” 

   “큰일요? 이 새벽에 무슨 큰일이 났단 말입니까?”

   “그게‧‧‧ 내려와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지금 당장 좀 오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끊고 나서야 장석원 씨는 방금 그 목소리가 왠지 낯익다고 생각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까 낮에 자신과 말다툼을 했던 바로 그 경비원이 틀림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큰일이란 게 뭔데? 승주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혹시?”

   휴대폰을 내려놓자마자 아내가 다다다 물었다. 장석원 씨는 고개를 저었다. 

   “말‧‧‧ 말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봐. 다녀올게.”

   아들 일은 아니라는 걸 안 아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그것이 왠지 안심이 됐다. 장석원 씨는 겉옷을 주워 입으며 심호흡했다. 별일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거울 속 자기 얼굴에 대고도 이야기했다. 이 정도 일에 쫄지 마라. 진정해. 너는 말을 타는 사나이야. 


   장석원 씨의 눈에 말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인파였다. 언뜻 보아도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전거 거치대를 둘러싸고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돌아본 누군가가 저기 왔다! 외치자 그들 모두가 한꺼번에 장석원 씨를 쳐다봤다. 그 눈빛들에서 느껴지는 적의에 의아해할 새도 없이 인파가 확 갈라지며 두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쪽은 아는 얼굴, 그러니까 그 경비원이었으나 다른 쪽은 모르는 남자였다. 삼십 대 초반쯤일까, 머리를 짧게 올려 깎았고 현란한 그림이 있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덩치도 아주 좋았다.

   “야, 너냐? 그 말 새끼 여기다 쳐 갖다 놓은 게?”

   남자가 삿대질하며 걸어왔다. 아들보다도 어린 게 분명한 놈이 어떻게 이렇게나 무례할 수 있는지, 장석원 씨는 항의하기 위해 마주 걸어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갈라진 인파 한가운데에 제물처럼 놓인 하얗고 빨간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이며 자신이 여기 왜 불려 왔는지 어렴풋하게 깨달은 다음 순간, 붕 소리가 나더니 눈앞이 번쩍했다. 장석원 씨는 억 소리 내며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굴렀다. 

   “너, 너 이 새끼 내가 오늘 죽여 버릴 거야. 아무도 말리지 마. 말리는 놈도 죽일 거야. 다 꺼져.”

   그러지 않아도 말릴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어 보였다. 장석원 씨는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남자 뒤에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경비원과 눈이 마주쳤다. 경비원이 우물쭈물 말했다.

   “이분이 아까 강아지 산책을 시키시는데‧‧‧ 말이 이분 개를 보고 흥분했는지‧‧‧.”

   “아니 아저씨, 나랑 우리 개는 멀찍이 떨어져서 저쯤 걸어가는데 그 미친 말 새끼가 뛰어오더니 그냥 뒷발로 냅다 깠다니까? 내가 몸으로 막았는데 그 말 새낀 끝까지 날뛰면서 우리 개만 찼어! 일부러 그랬다고!”

   남자가 길길이 날뛰었다. 검붉어진 남자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 자국이 선명한 것이 그제서야 보였다. 개를 지키겠다고 미쳐 날뛰는 말을 몸으로 막다니. 그 와중에도 장석원 씨는 그게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내나 아들이 말에 깔린 모습을 상상하려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코 밑이 축축했고 입으로 찝찔한 것이 자꾸 흘러들고 있었다. 장석원 씨는 비틀비틀 일어나 입가를 문질렀다. 옷소매에 스미는 새빨간 피가 저 앞에 누운 하얀 개의 몸 아래에도 웅덩이로 번져 있었다. 네 다리를 각자 이상한 방향으로 뻗고 있다는 점을 빼면 개는 그냥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몸에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개. 하네스를 차고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어릴 적 보행기를 타던 시절에 신던 것과 꼭 닮은 작은 신발. 장석원 씨는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려다 그만두었다. 

   “우리 개‧‧‧ 불쌍한 우리 뽀리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씨발, 세상에 저렇게 착한 애가 없었는데 저 악마 같은 말 새끼가‧‧‧ 아아‧‧‧ 아아아‧‧‧ 뽀리야아‧‧‧.”

   뒤에서 애끓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제서야 장석원 씨는 썬더스트럭에 생각이 미쳤다. 말! 말이 어디로 갔지? 허겁지겁 자전거 거치대로 달려갔다. 분명 쇠기둥에 단단히 묶어 놨었고, 행여나 풀릴까 봐 여러 번 힘껏 당겨가며 확인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 말을 묶어 뒀던 자리에는 이빨로 씹은 듯한 자국만이 나 있을 뿐이었다. 

   “그‧‧‧ 시시티브이 확인했는데, 자기가 풀더라고요. 배고팠는지 멀리는 안 가고 이쪽에서 풀 뜯어먹고 놀다가‧‧‧.”

   경비원이 거치대 옆, 둥글게 깎은 철쭉뿐인 보잘것없는 화단을 가리켰다. 

   “그, 그럼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 시시티브이로 봤어요?”

   “보긴 했는데 계속 돌아다녀서요. 지금 다른 경비들이 다 나서서 찾고 있는데 이거, 119에 신고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차도로 나갔다가 치이기라도 하면‧‧‧.”

   차에 치이다니? 마음 같아선 장석원 씨는 화를 버럭 내고 싶었다. 그 녀석이 얼마나 똑똑한데 차 따위에 치인단 말인가. 어제 녀석이 도로를 달리는 걸 봤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차선을 지켜 가며 정가운데로 달렸고 신호등에 주황 불이 들어오면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일 줄도 알던 말이었다. 하지만 장석원 씨는 입을 꼭 다물었다. 남자의 주먹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개, 그 작은 개가 신고 있는 더 작은 신발‧‧‧. 

   뒤에서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장석원 씨를 거칠게 돌려세웠다. 그대로 멱살을 꽉 잡힌 장석원 씨는 순식간에 목이 졸려 컥컥댔다. 

   “찾아. 당장 찾으라고 그 새끼. 지금 당장 여기로 데려와.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니 눈앞에서, 우리 뽀리 앞에서 아주 처절하게 죽일 거야. 내가 직접 대가리를 깨부술 거야.” 

   마지막 말은 숫제 울음이었다. 남자가 멱살을 홱 팽개치자 그는 고무 마네킹처럼 개 시체 옆에 풀썩 쓰러졌지만 벌떡 일어났다. 말을 찾고 싶은 건 장석원 씨도 마찬가지였다. 찾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면, 만나서 썬더스트럭의 그 새까만 보석 같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이 개를 걷어차 죽였는지,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 녀석이 가만히 지나가는 개를 굳이 다가가서 해쳤을 리가 없다. 개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말을 보면 사람도 놀라는데 개라고 얌전했을까. 분명 짖거나 물려고 들었겠지. 장석원 씨는 바닥에 누운 개 시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가만히 누운 뭉툭한 옆얼굴은 아무래도 장난꾸러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야, 뭐 해? 찾으라고.”

   남자가 장석원 씨의 등을 툭 밀었다. 그 서슬에 두어 걸음을 걸었고 그 김에 그대로 계속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차라리 영영 몰랐으면 싶기도 했다.

   “제대로 안 찾아? 이름이라도 불러.”

   을러대는 말에 경비원이 소심하게 덧붙였다. 

   “그래요,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말이 똑똑해서 이름을 부르면 오기도 한다던데요. 선생님이 부르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말 이름이 뭡니까?”

   장석원 씨는 신음하듯 뇌까렸다.

   “‧‧‧썬더스트럭.”

   “네?”

   “썬더스트럭. 썬, 더, 스, 트, 럭.”

   남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장석원 씨는 자기가 썬더스트럭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물로 나온 말들을 수십 마리 봤으나 그 이름들은 대개 유치하고 이상했었다. 썬더스트럭도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었다. 장석원 씨는 남자의 표정을 곁눈질하며 의아해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러나 그는 곧 그 생각을 멈추었다. 어차피 평생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티셔츠의 현란한 그림은 사실 호주의 유명 록 밴드인 AC/DC의 로고와 얼굴이었고, 그들은 남자가 최고로 꼽는 뮤지션이었으며, 남자는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썬더스트럭(Thunderstruck)〉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어 기타 학원까지 다니는 중이었다는 사실들 따위는. 장석원 씨는 평생 알 수 없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평생 알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아니, 내가 아는 게 있기나 한가. 아무것도 모른다. 썬더스트럭이 대체 무슨 뜻인지, 개가 먼저 말을 괴롭혔는지 아니면 말이 미쳐서 개를 걷어찼는지, 아니 그전에 자신은 왜 그렇게 말을 타고 달리고 싶었는지. 장석원 씨는 문득 발밑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육십 년, 한 갑자 동안이나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니.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 역시도 그렇다니,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게 될 거라니. 

   “우물거릴 시간 없어요, 곧 출근 시간이라 정신없어져요. 빨리 찾아야 돼요.”

   경비원이 재촉했다. 장석원 씨는 개의 시체를 등지고 아무 방향으로나 걷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모여 있던 인파가 갈라지며 길을 텄다. 

   “썬더스트럭.”

   몇 걸음 걸어간 장석원 씨가 별안간 크게 외쳤다. 뒤따라오던 경비원과 남자가 동시에 움찔했다. 

   “얘야, 썬더스트럭. 나와라. 어디 있니.”

   장석원 씨는 경보하듯 빠르게 걸으며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물론 말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썬더스트럭.”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를 다시 한번 외치며, 장석원 씨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말이 나타나지 않기를. 제발 나타나지 마라. 잡히지 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으니까 멀리멀리 가라. 마음껏 달려, 아니 달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발 도망가.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말을 타지 않을 거라고 장석원 씨는 다짐했다. 그 아름다운 말이 어디로 갔는지 살아는 있는지 개는 왜 죽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속도와 바람과 희열을 다시는 바라지 않고 살아가다 죽기로, 말이 무사히 달아나기만 한다면. 

   “썬더스트럭!”

   이르게 출근하던 사람들이 별 이상한 노인네 다 보겠다는 듯 그를 힐끔거렸다. 장석원 씨는 이제 아예 뛰기 시작했다. 말을 먼저 발견하면 도망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석원 씨가 뛰자 남자와 경비원도 뛰기 시작하며 그를 바짝 따라붙었다. 세 사람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아파트 단지를 달렸다. 그 순간 장석원 씨가 생각한 것은 썬더스트럭이 그야말로 썬더, 즉 천둥처럼 빠르게 달릴 줄 아는 말이었다는,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단 하나의 사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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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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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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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이유리의 아버지는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그간 소재로 다뤄온 오이디푸스적인 성향을 공격하기 위한 적대적 아버지 또는 이와 반대로 남성 젠더 지향을 전복시키는 역할의 수행자인 동성애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꽤나 감성적인, 식물과도, 동물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인류세 시대를 넘어서는 자연 친화적인, 가이아와도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라는 전근대의 형상을 포스트 모던하게 사물화하여 기성 남성 담론의 장벽을 다른 방식으로 허물어 버리는 묘사의 탁월한 힘이 이유리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 2025-11-05 22:03:13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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