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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국화

  • 작성일 2025-12-01

   내일의 국화


임솔아


   씨발년이었나, 썅년이었나.

   그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마냥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에는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러고는 그랬구나 했다. 국화가 처음으로 전한 진심이었다. 몇 번인가 궁금한 적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씨발년이나 썅년 같은 거라고 여겨 온 것은. 비로소 진심을 전하기로 한 계기가 뭐였을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게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지금 나는 왜 굳이 국화를 만나러 가는가.

   오후 두 시에 기차에서 내렸다. 약속은 내일 오후 세 시였다. 내가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게 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국화만을 위해 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것이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국화도 만나는 것이어야 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막상 갈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건 빵집뿐이었다. 이 도시는 볼 것 없고 놀 것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주공아파트나 지금은 없는 개와 함께 산책을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 삥을 뜯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팬시용품점 뒷골목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는 싫었다. 이미 다 가 봤으니까.

   이 도시를 떠난 지 십 년째가 되었던 일월 일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분주히 존재하던 나의 동네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기억을 가볍게 만들고서 다시 기차를 타고 내 원룸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굣길마다 찾아갔던 비닐 천막 떡볶이집이 거기 계속 있다는 것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여전히 떡볶이를 푸짐하게 퍼서 접시에 담고 있었다는 것에 나는 반가워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섰을 때 한눈에도 위생 상태가 처참해 보였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천막 안에 기름 쩐 내가 떠다녔다. 떡볶이 맛도 형편없었다. 씹자마자 어떤 냄새가 코끝을 쏘았다. 옆에서 아이들이 컵떡볶이를 냠냠 먹고 있었다. 남아 있는 국물을 먹기 위해 종이컵 속에 혓바닥을 밀어 넣고 있었다. 이토록 맛이 없는 떡볶이를 그토록 맛있게 먹었던 건지, 시간이 지나 떡볶이의 맛이 변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안에 있는 것만 삼키고 천막을 나왔다. 간판이 유난히 깨끗한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들이 가게 입구에 쪼르륵 놓여 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였다. 그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 동안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방 카운터에 앉아 있는 주인 할머니, 주방 안쪽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젊은 여자, 그리고 카운터와 주방을 오가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아이. 창가에 다육이를 놓는 건 어때. 깔끔한 게 낫지 않니. 할머니 나 이 다육이가 뭔지 알아. 같은 말이 오갔다. 어른들의 대화는 아이 때문에 자주 끊겼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아이의 말이 끼어들면 어른들은 대꾸를 하느라 대화가 띄엄띄엄 흘러갔다. 그 점이 나는 편안했다. 국수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주방에 있던 여자가 나왔다. 내 앞에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귤 한 개와 포도알 몇 개, 파인애플 몇 조각이 담겨 있었다. 새로 오픈을 했으며 곧 배달도 시작할 거라고 했다. 자주 와 달라며, 카운터에서 가게 전단지와 투시팝스 스틱 캔디 여러 개를 꺼내 왔다. 그때 나는 여자를 알아보았다. 이 여자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내가 두 학년 후배였다. 그 시절 나는 이 여자에게 뺨을 맞았다. 여자는 나를 못 알아보았다. 나는 여자가 내어 준 과일을 다 먹고 국숫집에서 나왔다. 초콜릿맛 스틱 캔디의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으며 생각했다. 딸을 낳았구나. 좋은 엄마로 사는구나. 그 순간 오래 들러붙어 있던 기억 하나가 소거됐다.

   나는 역 앞 광장을 가로질러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엉겁결에 내일의 약속 장소를 말했다. 그곳은 가 본 적 없는 동네였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난 후에 개발된 동네였다. 택시는 시내 중앙로를 지나 로터리를 돌아 터널로 진입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터널은 무척 길었다. 오랜만에 국숫집 여자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그동안 그 여자를 떠올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했다. 그 여자에게 맞은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국화도 그때 내 옆에서 그 여자에게 뺨을 맞았다.

   그때 국숫집 여자는 국화를 콕 찍어 따라오라고 했다. 국화는 여자를 따라갔고 나는 국화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에는 선배들이 모여 있었다. 선배들과 국화는 서로를 알았고 나는 그들과 초면이었다. 넌 뭐니. 선배들이 물었다. 나는 국화의 친구라고 답했다. 선배들은 의자를 내주었다. 착하게 앉아 있으라고 했다. 선배들은 돌아가며 국화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국화를 때릴 거면 나도 맞으면 안 되냐고 부탁을 했다. 굳이? 선배들은 내 옷매무시를 훑어보았다. 너 공부 잘하냐? 누군가 물었다. 존나 잘하게 생겼다고 다른 누군가 말했다. 반에서 몇 등이냐고 묻기에 나는 등수를 말했다. 쟨 때리지 말자. 그런 대화가 오갔다. 자기가 맞고 싶다잖아. 국숫집 여자가 끼어들었다. 너가 부탁해서 들어 주는 거다. 국숫집 여자는 내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한 대를 때릴 때마다 더 맞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더 잘 조준해 보겠다는 듯 내 뺨에 손바닥을 대었다 뗐다를 반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화가 맞는 걸 앉아서 구경하는 것보다는 이게 덜 고통스럽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맞자 더는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더 맞을 수 있겠냐고 묻는 여자를 보며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곱씹어 온 장면이었다. 나는 그 이후의 일들을 기억해 보았다. 선배들은 왜인지 나를 토닥여 주었다.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기까지 했다. 수고했다는 말도 들었다. 내 숨이 잦아질 때까지 그랬다. 국화는 한쪽 볼이 벌게진 채로 저편에 서 있었다. 두 손은 다소곳이 모았고 눈빛은 비어 있었다. 선배들이 떠나자 국화도 혼자 가 버렸다.

   그 시절 나는 그런 식이었다. 국화가 벌로 학교 계단에 붙은 껌을 떼느라 웅크려 앉아 있으면, 나도 국화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내 학생증으로 껌을 긁어 떼어 냈다. 지윤이 뭐 하니? 얘랑 친구야? 지나가던 교사가 물었다. 얘가 왜 너랑 친구야? 국화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교사는 다시 물었다. 양손에 시커먼 실내화 주머니와 보온 도시락 가방을 착실하게 들고 다니는 나와 손바닥만 한 크로스 쌕을 둘러메고 버건디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국화가 의아한 조합인 건 나도 알았다. 필통에 색색의 형광펜을 넣어 다니며 메모장에 오늘의 숙제를 꼼꼼하게 적어 두는, 나와 꼭 닮은 아이들이 아니라 굳이 점심시간마다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교칙으로 금지된 봉지라면을 끓여 먹는 국화를 나는 졸졸 따라다녔다. 국화를 꼭 닮은 국화의 친구들과도 차츰 친구가 되었다. 한 친구는 충고했다. 넌 우리랑 다니지 마라. 널 위해 하는 말이다. 친구들은 가끔은 진지한 충고의 방식으로, 대개는 농담을 가장한 조롱의 방식으로 나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내가 그들의 우리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시무룩해진 채 책상에 돌아왔고 반 아이들은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같이 매점 갈까. 반 아이들은 내가 국화 없이 혼자일 때에만 말을 걸었다. 어쨌거나 틈틈이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친절하게 군다면 그 아이들은 그만큼의 친절로 답해 줄 거였다. 그 아이들은 내 효용을 알고 있었다. 그 효용을 허비하고 있는 걸 아깝게 여겨 주었다. 그 점이 국화와 국화의 친구들로부터 내가 꾸준히 조롱을 받는 이유였다. 다른 아이들이 나만 알아봐 줘서. 이들을 아무도 아까워해 주질 않아서.

   도로 양옆으로 고층 건물들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디냐고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신시가지라고 기사가 답했다. 언제 이렇게까지 많은 건물들이 생겼지. 나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도시의 유명한 빵집을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저렴하다는 이유로 특히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택시 기사와 나는 마음이 통했다. 거기가 원래 제일 비싼 빵집이었잖아요. 내가 말했다. 지금도 싸다고는 생각 안 해요. 택시 기사가 말했다. 동쪽의 신시가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곳에는 논밭만 있었다고 내가 말했고, 택시 기사는 아무리 옛날이라도 광역시 한복판에 무슨 논밭이 있었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 논밭을 걸었던 날의 기억을 전했다. 눈이 몹시 많이 내린 뒤였고, 친구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논두렁을 한참 걸었는데, 어떤 부분은 얼어 있고 어떤 부분은 파인 채로 진흙이 고여 있어 다들 땅만 보고 조심히 걸어야 했다는 것을.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나오는 거냐며 국화는 투덜거렸다. 다른 중학교를 찾아가던 중이었고, 친구 중 한 명이 집안에 일이 생겨 이사를 갔는데 뭔가 몹시 나쁜 일이었는데 그 나쁜 일이 뭐였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를 만났고 표정이 밝았던 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다소 연극적이었지만 연극을 할 만큼의 정신은 있다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마음이 놓였다. 친구는 이 동네 애들은 쓰레기 같은 새끼도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캐는 알바는 한다며 웃었다. 무슨 쓰레기 같은 새끼가 고구마를 캐냐며 뻥 치지 말라고 다들 반응했다.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며 정말이라고 했다. 삥 뜯는 대신 선배들이 고구마 대신 캐라고 시킨다니깐. 자기가 대신 캐 준 고구마가 몇십 박스는 될 거라고 했다. 그때 우리는 그 고구마 우리가 다 캐 주겠다고 했다. 같이 가서 쓰레기 새끼를 혼내 주겠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같이 고구마를 캐 주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말뿐인 약속이었어도 나의 친구들은 허풍에 대해 선을 지켰다. 친구는 다음에 고구마 캐야 되면 부르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후로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은 잠시 정적이 생겼다. 기사는 손을 뻗어 라디오를 틀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기는 사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택시 기사가 말했다. 택시를 하며 듣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라디오를 듣다 보면 그 음악이 언젠가 다시 흘러나오기도 하고, 느닷없이 좋은 음악을 새로 알게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국화가 만나자며 알려 준 카페로 들어갔다. 국화가 자주 오는 곳일까. 아니면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낸, 국화에게도 낯선 장소일까.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내일 이 시간이면 국화와 앉아 있게 될 거였다. 연락이 끊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이전에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랑을 늘어놓다 느닷없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어떤 사람과는 드문드문 겨우 대화를 이어 갔다.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고 헤어졌다. 그 말 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심이긴 했었다. 어떤 사람과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깔깔거리며 즐겁게 수다의 향연을 누렸다. 몇 번인가 더 만났고 깔깔 웃었고 무언가가 시들해지자 소식은 다시 툭 끊겼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마다 그런 식이었다. 오래 보고 싶어 한 사람을 만났으면서 세상 지루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을 앞에 두고 핸드폰으로 SNS 피드를 보았고 쓸데없는 것을 검색했다. 별 감정도 없었던 사람에게 짜증을 표출해 버린 적도 있었다. 정말 아니다 싶었던 사람의 손을 붙잡고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추모 행사장에서였다. 나는 야외 행사장에 플라스틱 의자를 나열하느라 부산했다. 의자가 부족할까 염려했는데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았다. 의자에 앉았던 사람도 오래 자리를 지키지는 못할 만치 추운 날이었다. 사람들은 예의를 차릴 만큼만 앉아 있다가 떠났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손을 덥썩 잡고 말았다. 그 사람은 배낭에서 백화수복 한 캔을 꺼냈다. 추우니까 이거라도 나눠 마시자고 했다. 웬만한 앙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순간이 이 세상에 따로 존재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살면서 만들어 낸 악연들을 모두 추모 행사장에서 만난다면 내 인생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연보다 더 치명적인 독연을 야기하는 장소도 이런 곳이긴 했다. 캔에 입술이 닿지 않도록 정종을 마신 후 그 사람은 캔을 내밀었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 사람이 말했다. 처음에는 한두 번 참여만 해 볼 마음이었다. 퇴사를 하고 실업급여를 받고 지낼 때, 주말마다 대형 집회가 있었다. 해야 할 일도 없었고 시간도 많았고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들 속에 함께 있을 때의 소속감이라도 얻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을 때 나는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베개 커버나 운동화 따위를 세탁한다거나 납부 기간이 지나기 전에 공과금을 제때 내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빈손으로 가지 않기 위해 손 피켓을 만들었다. 써먹을 일이 없었던 전공을 이렇게라도 써먹는구나 하면서. 출력을 맡기는 김에 백 장 정도를 인쇄했다. 내가 만든 손 피켓을 낯선 사람들이 양손에 들고 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 무엇인가가 마냥 고마웠다. 그 순간으로부터 십 년이 지나 어느 무던한 저녁, 나는 종량제봉투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발렌타인데이, 어버이날, 스승의날, 수능이나 졸업식 시즌··· 특별할 게 없는 날이었다. 유동 인구가 없다시피 했다. 일부러 유동 인구가 없는 곳에서 꽃을 팔고 있는 걸까. 어쩌면 많이 팔 생각은 없었던 걸까. 이미 저녁인데 남은 꽃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꽃을 한 묶음 샀다. 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꽃들을 그 사람은 신문지로 둘둘 말아 건넸다. 꽃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요즘에는 내가 좀 평화로워졌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일인가. 좋은 일이니 꽃도 샀지. 나는 신문지의 구겨진 부분을 빳빳하게 폈다. 신문에 적혀 있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치즈가 충치 예방에 좋다고 적혀 있었다. 그 페이지는 사회면이었다. 좋다고 하면 다 좋아할 줄 아나. 씹어 뱉듯 중얼거리다 나는 깨달았다. 어떤 일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뭔가가 다시 일어나기를. 그게 뭐가 됐든 간에. 갈등이 심각해지기를.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오기를. 그 간절함에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얼쩡였던 집회 활동은 어느새 나의 중요한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난개발, 참사, 재난, 산재, 해고, 성폭력, 성매매, 성소수자, 장애, 동물권, 기후 위기···. 나는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갔고 어떤 이슈든 시간이 흐르면 세상으로부터 묻혀 갔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랬다. 한번 잊힌 이슈가 재조명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 목소리도 세상에서 인멸되는 느낌이었다.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의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해져 갔으며 소소한 일상에서 삐져나오는 별것 아닌 것들에 대해 쉽게 이죽거리고 있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사네.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상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서로를 다독였고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려내라고 외쳤지만 정말로 어떻게든 끝내 나의 일상은 되돌려져 있었다. 죽은 식물들이나 곰팡이가 핀 욕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쓰면 벅벅 지우려 들면 지워지는 곰팡이처럼 무언가가 동시에 지워졌다. 그게 무엇인지는 나중에야 서서히 알게 되었다. 망가졌으나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패배감이 있었으나 그래서 누가 이겼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답할 게 없는. 내 분노는 점점 사사로워졌다. 치즈와 충치 같은 것에 대해 내가 발끈할 때 나는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어딘지 모르겠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점점더 마음이 더러워지고 있다고. 다른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는 듯했고 끝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데에 마음을 둔다는 건 포기 혹은 도망 같았다. 나는 대기실의 긴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처럼 되어 갔다.

   샌드위치를 마저 먹었다. 나는 지금 여행을 왔다. 택시를 타고 이 카페에 온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여행 가방이 내 옆에 있었다. 나는 여행을 하기로 했고 여행을 할 것이다. 비록 꺼내어진 기억들에 치여서 대단한 일과를 치른 것처럼 지친 상태지만 가볍고 보송한 설렘 같은 게 없어도 여행은 가능하다. 노트북을 꺼냈다. 서면 인터뷰에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줄곧 받아 온 질문들과 유사한 질문들이었다. 처음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경험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는 질문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이미 퇴사를 하고 실업급여를 받던 도중에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질문을 정정했다. 이번에도 지면에는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끈질기게 이 질문의 내용을 정정하고 있었다. 처음 손 피켓을 만들었던 때, 사람들이 그 손 피켓을 들고 있던 때, 그때 느꼈던 정체 모를 고마움을 나는 상기했다. 나의 역할은 나만큼이나 순진하게 우연히 집회에 참여할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누구든 집회에 참여해 연대 활동의 경험을 하게 되면, 함께하지 않았던 그 이전의 시간들을 커다란 그림자처럼 뒷모습에 끌고 다니게 된다. 함께 위험을 감당한 흔적만으로도 거의 영원에 가까울 우정 같은 게 마음 깊이 비치된다. 균열되고 실패하고 누군가가 개인의 영광으로 사유화하고 밖을 향해 외치던 공동체의 분노는 내부로 향하고 그리하여 무기력해지고···. 이 기나긴 무력감의 늪으로 한 발 더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깊이 휘말려 더 밑바닥까지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 패배감이 자신을 좀먹게 되고 무어라 설명할 길 없는 자잘하고도 질긴 더러운 마음들에 사로잡히는 것. 일상적인 평화가 위험한 순간보다 더 위험하게 여겨져서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내 곁에 더 많아지는 것. 그게 내게 남아 있는 희망이었다.

   답변을 작성하다 말고 넷플릭스 어플을 켰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영화 예고편을 랜덤으로 틀어 두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내가 가장 즐기는 취미 중 하나였다. 눈을 감고 영화의 예고편을 소리만 랜덤으로 듣는다. 그리고 영화의 장르와 내용을 예상한다. 선입견이 이끄는 쪽으로 유추하든, 선입견을 물리쳐 가며 그렇게 하든, 나의 예상은 거의 틀렸다. 틀렸구나 싶을 때마다 내가 들어온 예고편의 소리들에게 고마웠다. 퀴즈에서 계속 틀리면서도 틀리고 있는 것이 매번 반가운 것은 이 게임이 유일했다. 어떤 예고편에서는 오르골 소리가 들렸다. 아름답고 순정한 피아노 연주도 들렸다. 요정이라든가 놀이동산의 회전목마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어린이용 판타지 애니메이션일까. 막상 눈을 떠 보면 1950년대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하는 남성 퀴어 영화였다. 어떤 예고편은 남자의 독백만 들렸다. 위스키를 마시는지 얼음이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의 목소리는 중후하고 깊었으나 슬픈 목소리였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하소연을 하고 있는 듯했다. 독백이 이렇게까지 긴 것으로 보면 예술 영화겠지 싶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술집과 오크통, 노동자의 작업복과 흙 묻은 워커 같은 것이 떠올랐다. 눈을 떠 보니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여겨 왔던 옛날 마피아 영화였다. 남자는 마피아에게 살인을 청부하던 중이었고, 값비싸 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어떤 예고편은 두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했다. 여자와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교차되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 벽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밖에 누군가 없는지 남자가 외쳐 보는 듯했다.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으로 보아 층고가 높거나 텅 빈 넓은 건물 안인 듯했다. 첩보 영화일까 싶었다. 두 사람이 미로 같은 건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상상됐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에는 자그마한 가정집의 현관이 보였다. 벽에는 포스터와 겉옷이 걸려 있고 뒤쪽 협탁에는 휴대폰과 펜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를 떠날 거냐고 묻고 있었다. 여자는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화를 담아 간청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소리는 교묘하게 사건을 은닉하고 진실을 지연시키고 관객의 예측에 균열을 냈다. 그것이 소리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터뷰에 다시 답변을 이어 적을 수 있었다.

   이메일을 발송하고 카페에서 나왔다. 바깥은 어둑했고 배가 고팠다. 종일 샌드위치 하나만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예약해 두었던 디자인 호텔은 방에 거울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장까지도. 실내 온도를 아무리 높여도 차가운 방.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국화를 만나야 할까. 시간이 유난히 더디 흘렀다.

   나는 나를 ‘굳이’형 인간이라고 대답해 본 적 있었다. 대학을 입학할 무렵이었다. 면접 과정에서 교수의 질문에, 제가 굳이형 인간이어서요, 하고 얼버무리듯 답했다. 잘하지 않는 회화 전공을 굳이 선택하냐는 질문에 딸려 나온 대답이었지만 나는 나의 오래 묵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에 결론을 내린 기분이었다. ‘굳이’라는 단어가 나를 광범위하게 설명해 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연극을 할 때에 굳이 옆 마을 할아버지 역을 고집한 것도 그래서일까. 다 쓴 볼펜을 굳이 모아 둔 것, 오른손에 굳이 시계를 차는 버릇, 죽은 화분에 물을 주던 아침들도 굳이의 마음이었을 것 같았다. 수학을 제일 잘해서 굳이 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다거나. 같은 맥락에서 전공 수업보다 시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걸까. 짝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굳이 나를 방기하며 들뜬 세월을 보내 온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내가 거쳐 온 굳이의 목록을 만들어 두었다. 굳이 왜 그랬나 싶은 리스트, 굳이가 만들어 낸 헛수고와 실패의 리스트, 상처들의 리스트, 굳이의 또 다른 면면들까지. 나의 굳이스러움 때문에 나쁜 경험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도 뿌듯한 굳이들. 최선을 다해 본 굳이들. 달라지려고 노력한 굳이와 굳이의 집요함과 굳이의 좋음.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게 만든 경험들. 나는 굳이 해야만 했던 일과 굳이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굳이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하려 노력했다.

   여행 가방을 열어 세면도구와 충전기 따위를 방에 비치하고 있었다. 민채가 동영상 링크를 보내왔다. 동영상 속에서 바다사자가 자기보다 커다한 물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물고기는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바다사자가 떠나고 살점이 너풀거리는 물고기만 남았다. 이번에는 그 살점을 뜯어 먹으려고 오색의 열대어들이 몰려들었다. 물고기는 마찬가지로 저항하지 않았다. 이게 뭐냐고 나는 민채에게 물었다. 버티는 쪽으로 진화했대. 우리 같지. 민채가 대답했다. 바다사자 같은 팀장에게 오늘도 옆구리 한 입 정도를 뜯어 먹혔다고 민채는 말했다. ‘냥냥펀치로 악어에 맞서는 고양이 동영상'이나 '재떨이로 사용되다가 발견된 백제시대 투구 사진’ 같은 것들을 민채는 보내곤 했다. 우리 같다면서. 이어서 누군가의 악행에 대해 말했다. 지윤아, 옛날이 그리워. 민채가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기라도 했는데. 팀장 머리끄덩이 한 번만 잡아 보면 어떨까. 머리끄덩이를 잡고 싶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내 인터뷰 기사에 달려 있던 댓글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 마음 안다고 답했다. 너는 알 리가 없지 않냐고 민채가 되물었다. 너는 옛날에도 사람 못 때렸잖아.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너도 마찬가지 아냐? 내가 반박했다. 민채는 아니라고 했다. 국화 걔 머리끄덩이 내가 먼저 잡았는데. 기억 안 나니.

   나처럼 필통에 색색의 형광펜을 넣어 다니던 아이들. 내가 혼자 있을 때만 말을 걸어 줬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민채였다. 몇 번인가 나는 민채와 모눈종이에 오목을 두었는데, 어느 날 국화가 가까이 오자 민채가 오목을 두다 말고 일어나서 휙 가 버렸다. 국화는 그런 민채를 보고 눈만 껌뻑이며 서 있었고, 한 박자 늦게, 그러나 선명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지랄하네. 민채는 뒤를 돌아 국화를 한참 보았다. 이후로 민채와 국화는 서로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친구는 민채뿐이었다. 언젠가 나는 민채에게 그때 오목을 두다 말고 왜 가 버렸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국화 때문에 간 게 아니었다고 민채는 답했다. 나와 오목을 둘 때에 국화가 다가왔던 적이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오목을 두다 말고 일어나 국화와 어딘가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민채에게 내일 국화를 만나기로 한 것을 말해야 할지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하게 됐다. 잘 만나고 오라고 민채는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에휴, 너는 정말 못 말리는 우파 탐지기야.

   민채는 종종 나를 우파 탐지기라고 불렀다. 민채가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을 내가 만날 때. 그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 후회하고 있을 때. 그래 놓고 또 만나러 갈 때. 약간의 만류와 질책, 그리고 체념을 담아 민채가 건네는 한 마디였다. 민채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우파 여자한테만 끌렸다. 나는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잘 몰랐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박은 클럽에 갈 때 나를 데려가는 걸 좋아했다. 디제이 쪽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춤을 출 때 박은 디제이를 등진 채 반대 방향으로 서서 춤을 췄다. 사람들의 뒤통수가 아니라 얼굴을 보고 싶다면서. 박이 남자를 고를 때 얼굴을 미리 보기 위해서라는 건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박은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자주 사라졌다. 한편 남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가 싶으면 보란 듯이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연락을 한동안 끊고 지내면 박은 봉사활동을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박은 클럽에 가는 것만큼이나 봉사활동도 좋아했다. 자기 방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들이 쌓여 있어도 독거노인의 방을 깔끔하게 청소했다. 대선이 있던 날 저녁, 나는 박으로부터 ‘그건 아니지’라는 말을 들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같은 후보를 찍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박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의아해한 건 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만난 노인들 기억 안 나? 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난 그분들이 잘살았으면 좋겠어. 누구나 동의할 법한 말을 박은 내게 유독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잘산다는 것에 담긴 내용이 박과 나는 너무 달랐다. 혼자서도 잘살 수 있어야지. 남한테 기대는 건 오래 못 가. 그건 그냥 지나가는 거라니까. 현실적이지 않잖아. 선의처럼 불안정한 것에 기대는 건 무책임하지. 새마을운동의 효과가 얼마나 분명했는지 사람들이 다 잊은 것 같아. 그게 안타까워. 박은 말했다. 지지 정당에 대한 견해 차이가 애인을 만날 때에 중요한 문제가 되리란 걸 그때까지는 상상도 안 해 봤다. 박은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살아 있는 척을 해서 징그럽다고 말했다. 변리사 자격시험 준비를 오 년째 하고 있었던 박은 모두가 죽은 척을 해도 삶이 간당간당한데 저렇게까지 산 척을 한다는 게 반칙 같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박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헌신적인지 시간과 애정을 얼마나 쏟는지만 중요하게 여겼다. 그 후론 은연중에 나를 동정했다. 상장 폐지될 주식에 올인하는 사람 정도로 대했다. 박은 점점 더 꿰뚫어 보는 사람이 되어 갔고 내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동시에 위악적인지 다 알겠다면서 베푸는 듯 이해를 표명했다. 어쨌거나 박에게 나는 이해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편안한 관계가 되면, 내가 자신과 아주 똑같은 속내를 자연스레 보여 줄 거라고 박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아챈 점은 가끔 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내가 끌렸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나는 눈빛 같은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내가 박과 왜 대화가 잘 되지 못했는지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예상되지 않아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새로이 만난 송은 박과는 다르다고 나는 민채에게 말했다. 정확히 송의 어떤 점이 박과 다르냐고 민채는 내게 질문했다. 자신의 오랜 친구들을 내게 선뜻 소개해 주는 점이라든가 그 친구들이 나와 송을 의아한 조합이라 직설적으로 말할 때도 나를 감싸 주는 점이라든가 그 친구들과 다 같이 걸을 때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내 옆에 와서 걷는다든가. 내가 다른 점을 나열하자 민채가 답했다. 그건 너무 국화잖아.

   송과 사귈 때 나는 이해와 소통의 문턱에서 혼자 고립돼 있었다. 박에게 느꼈던 벽이 또다시 내 앞에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 벽이 조금 더 보드라운 느낌이라는 점이 달랐다. 동성애를 딱히 반대하지 않아 나에게 호감을 보였고 커밍아웃한 유명인에게 관대했으나 동성애를 이성애를 향한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는. 참사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현장에 직접 찾아가 헌화를 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우연한 가슴 아픈 사고였다고 믿는. 송과 나는 가까워지다 멀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낮달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처럼 송은 의심 없는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툭 말하고는 했다. 어떤 생각은 스스로의 의견이라기보다 송의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어떤 분위기에서 도출된 말인 것 같았다. 가치관이 확고하다기보다는 자신이 속해 왔던 준거집단에 계속해서 속해 있고 싶고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이 확고했다. 낯선 걸 즐기지만 문화를 향유할 때만 그랬다. 낯섦 자체를 두려워했고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을 불순하게 취급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꺼내 보이는 속내가 아무리 저 반대편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송은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는 했다. 특이한 장면을 잠시 구경하다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처럼. 송은 그러나 아주 작은 기억 몇 가지로 나에겐 소중하지 않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는 없는 면이 있었다. 송이 어린 시절 영혼의 단짝처럼 느껴졌던 친구와 집에서 내복을 입고서 그림자놀이를 했던 일을 말해 줬던 순간이라거나 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길에서 혼자 흥얼거릴 때라거나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내게 그 노래의 제목을 알려 주며 같이 들어보겠냐고 이어폰 한쪽을 건넨 때라거나.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이어질 때, 와 본 적도 없는 평화가 제멋대로 도착했다고 우기는 것만 같아 속이 뒤틀릴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내 동료보다 송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아무리 힘든 이야기를 해도 송은 대체로 담백했고 때론 끄떡이 없었어서. 내가 모욕감을 느끼는 말을 내게 할 때조차 악의가 전혀 없었어서. 그때 즈음 국화에게 메일을 받았다. 언젠가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민채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괜히 또 깊게 생각하지 말고 〈내일의 아이리스〉 오늘 공개됐으니까 보라고 적혀 있었다. 티브이를 켜서 〈내일의 아이리스〉를 보았다. 내가 민채에게 마음에 든다고 말한 적 있는 배우가 주연이었다. 다음 날 공연을 앞두고 있던 가수가 콘택트렌즈 한쪽을 잃어버리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주인공은 눈물을 흘릴 때도 얼굴을 어느 한 군데도 찡그리지 않았다. 고운 표정 위에 한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 콧물도 나던데. 배우의 눈물은 눈꼬리로부터 떨어져 광대를 타고 흘러내리다 턱 아래로 모여들었다. 레진 치료를 한 어금니나 혓바닥이 보이도록 웃지 않았다. 코앞에 있는 상대 배우의 얼굴을 바라볼 때도 눈동자가 가운데로 쏠리지 않았다. 이 배우의 연기는 매번 똑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챙겨 봤다. 배우의 연기가 언젠가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되었으면 하고 늘 기다렸다.

   나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야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챌 거였다. 납작한 베개 때문에 선잠에서 깨어나 천장의 거울 속 나를 보고 놀랄 거였다. 몇 번 더 그러고 나면, 거울 속에서 국화는 나를 향해 욕을 하고 있을 거였다. 씨발년 혹은 썅년. 쌍시옷을 발음하는 국화의 씰룩대는 윗입술이 거울에 가득 차 있을 거였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먼저 화를 낼 수 있을까. 담담하게 마주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보고 싶다고 말해 주어 고맙다고 예의 있게 말하는 건 어떨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혹시 알았느냐고 말해 볼 수는 있을까. 아침 햇살과 함께 내 호텔방을 점령해 버리는 것은 아니나 다를까 씨발년 혹은 썅년일 거였다. 국화의 메시지에 그때 내가 무어라 답을 했는지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난 네가 잘 살았음 좋겠어. 언제든 연락해. 기다릴게. 욕을 먹고서도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렇게 반응한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다. 아니, 그때가 시작이었다.

   나는 제 시간에 조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갈 것이다. 음식은 놀랍도록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겠지만 모든 음식이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나는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정도 늦게 그 카페에 도착할 것이다. 어쩌면 국화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정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면 약속을 미룰 수 없겠느냐고. 국화는 급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차에 타지 않았다고 답할 것이다. 바빠서 곤란한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머지않아 나를 만나러 자기가 가겠다며 국화는 고마워할 것이다. 나는 그 약속을 믿은 적도 없이 약속이 지켜지기를 줄곧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채에게는 국화를 잘 만났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다. 민채는 국화와 만난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어 할 테고 나는 그 얘기를 지어내 들려줄 것이다. 혼자 갔던 오늘의 카페는 국화와 같이 간 내일의 카페가 될 테고 나는 택시 기사와 나누었던 얘기를 적당히 바꿔 국화와 나눈 얘기로 만들 것이다. 함께 걸었던 논두렁을 국화가 기억도 못하더라면서. 국화가 이제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라디오에서 클래식 채널만 듣는다더라 하면서. 라디오를 듣다 보면 잊고 있었지만 좋아했던 음악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이 좋은 음악을 알게 되기도 한다 했다면서. 나는 그 얘기가 좋았다고 말할 것이다. 민채는 내 이야기를 믿지 않겠지만 믿는 척을 해 줄 것이다. 나는 그러고 있는 민채를 충분히 알아챌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드라마는 이제 겨우 첫 갈등을 잠재우고 후반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드라마 속 배우의 연기에 어떤 변화나 전환 같은 게 있지는 않나 지켜보고 있었다. 입술을 조금 삐죽거리는 대신에 눈빛으로 모든 걸 표현한다거나. 미세한 것일지라도 발견되길 기다리며 나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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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을 오르고 박현옥 기제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일은 산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반 거리에 기제의 아버지가 살았다. 거기서 차로 삼십 분을 더 가면 기제의 아버지가 소유한 선산이 나왔다. 12월 중순, 눈이 내리기 전에 다녀오자며 기제의 아버지가 기제에게 말했고, 이어 기제가 내게 주말에 같이 아버지 댁에 내려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따로 챙길 건 없으나 다만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신발장엔 바닥이 얇고 발목이 드러나는 단화나 굽이 높은 구두뿐이었으므로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트래킹화를 하나 주문했다. 이튿날 저녁에 택배로 받아 본 신발은 정말로 단단했다. 뒤축이 특히 단단해서 기제가 차를 세워 둔 집 앞의 큰길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벌써 뒤꿈치가 쓸렸다. 선산엔 산주였던 기제 고모의 산소가 있었다. 기제를 몇 년 동안 만났는데 고모 이야기는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해도 뜨기 전인 새벽에 뻥 뚫린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제는 조잘조잘 떠들었다. 십수 년 전에 남의 집 선산이었던 걸 고모가 7억을 주고 샀다고. 시장에서 방앗간을 하던 고모는 인근 광역시의 국제공항이 그 산으로 이전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평생 모은 목돈을 죄다 털었다. 산주의 처가 쪽 친척이 도시개발과 과장으로 일한다는 말에 홀린 듯 산을 사 버린 것이다. 그러나 뜬소문이 으레 그렇듯 이전이 거의 확정이라던 공항은 여러 번의 공청회 끝에 무산됐으며, 선산 역시 원래의 값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원래는 얼마였는데?” “6천만 원.” “세상에.” 누군가는 기제의 고모에게 선산에서 송이라도 나면 일 년에 한 달만 일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기제의 고모는 혹시나 하나는 마음에 몇 날 며칠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으나 산에는 소나무는커녕 상수리나무만 잔뜩 심겨 있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와 달리 속이 물러 목재로도 쓸 수 없고 숯으로도 못 만든다고, 기제가 말했다. 고모가 그 산에서 발견한 건 송이도 아니고 산삼도 아니라 지천에 떨어진 도토리뿐이었다. “근데 고모도 방앗간에서 도토리 가루를 팔았거든.” 앙금을 말려 가루 낸 것으로 킬로에 만 원을 받았다. 묵으로도 쒀 먹고 전으로도 부쳐 먹고, 효능도 모르는 채 매일 티스푼으로 한 숟갈씩 퍼먹는 사람도 있었다. 기제는 그러니까 고모가 도토리를 8억 원어치 산 것이나 다름없다며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다음엔 그 이듬해 고모가 산 중턱에서 제초제를 먹었다고 말했고 그때는 웃지 않았다. 히터를 세게 틀어 놓아 겨드랑이와 등과 발가락에서 땀이 났다. 뒤꿈치가 쓸린 곳에 땀이 닿아 한층 더 따가웠다. 내가 자꾸 발을 꿈질거리자 기제가 발이 시리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기제는 진작 말을 하지 그랬느냐며 히터를 더 올려 버렸다. 나중에는 엉덩이와 오금에도 땀이 났다. 짧게 깎은 기제의 옆머리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 관리자
  • 2026-01-01
잊고 있고 잇는

잊고 있고 잇는 진연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지냈다. 한 칸짜리 방. 침대가 있고 책상이 있고 책장과··· 새 둥지가 있는. 2년 전의 새는 죽었다. 좁은 방범창 안에서. 이틀을 울다가. 구구 쿼쿼. 소리가 줄어들면서. 약해지면서. 나는 소리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러고도 며칠을 더. 안전해질 때까지. 며칠 더 기다렸다가. 숨이 죽을 때까지. 숨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당황하면 안 되니까. 당황이 수습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곤란한 일이니까. 며칠 더 기다렸다가. 딱딱해진 새를 치우고.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거둬 내고. 방범창의 패널을 깨고. 다시는 새가 갇혀 죽는 일이 없도록. 패널을 깨고. 새는 왜 나가지 못했을까. 들어왔는데 왜 나가지는 못한 것일까. 날개를 펴서 도움닫기를 할 만큼. 공간이 충분히 넓지 않았기 때문일까. 창문의 반을 가릴 만큼. 충분히 높았기 때문일까. 방범창이. 폴리카보네이트 방범창.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카. 나는 꿈을 꾸고 새가 죽고. 꿈에서 매번 새가 죽고. 구구 쿼쿼. 소리가 줄어들고. 약해지고. 꿈을 꾸고 새가 죽고. 매번. 나는 그 새가 알을 밴 상태였고 새가 죽으면서 알도 함께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슬퍼졌지만 그러한 조금 더의 슬픔이 죽은 새에게는 약간의 좋은 일이겠거니 했다. 그렇더라도 내게 그 새의 죽음은 시간의 궤도 바깥에서부터 시작된 파열음처럼 당혹스럽고 얼떨떨했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마주한 삶의 필연적 결말.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여기였을까. 처음부터 죽음을 예견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새가 마침내 남은 삶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라고, 구구 쿼쿼 우는 소리가 그러한 안간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켜보거나 지켜보지 않는 일만이 나의 것이었으나 그렇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그 새의 삶에 또는 죽음에 개입했어야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어야 하나. 나는 한동안 가장 익숙한 골목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둥대고 우물쭈물하고 두려워하고. 새로운 새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난 여름이었다. 지독하게 습하고 더운 여름의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반쯤은 정신이 나간 듯 갈팡질팡하며. 나는 새가 나뭇가지와 나뭇잎과 비닐 같은 것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는 한동안 가만히 앉았다가 황급히 목을 빼 주변을 둘러봤고 부리로 털을 고르거나 몸을 움직여 자리를 고르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떠나지 않다가 돌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멈추고 날아오르는 일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곳에서 작은 알 두 개를 발견했다. 덧문 밖의 햇살처럼 뽀얗고 눈부신 데다 아주 정교하게 빚어진 도자기처럼 매끈한 것, 완벽한 형태의 생명이 그야말로 덜컥, 거기 있었던 것이다. 철골조와 앙상한 밑바닥만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방범창의 한구석에 말이다.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장소, 그 둘의 대비가 너무도 강렬해서 섬뜩하게 느껴질

  • 관리자
  • 2026-01-01
태양에서 멀리

태양에서 멀리 김채원 지금부터 아침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질 것이었으며 당연하게도 솔지에게도 주어질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어떠한 저항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부지런히 그 시간을 사는 일. 솔지에게 그것은 꽤나 쉬운 일이었다. 그치만 어려운 일인데? 솔지는 생각했다. 꽤나 쉽고, 그치만 어려운 일이라고. 알겠습니다, 솔지는 늦저녁에 창문을 열어 두고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선과 악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잘못 걸렸다, 하면서도 끝까지 읽기는 다 읽었다. 치워 없애야만 하는 악이 존재하고 그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됐다. 누가 보아도 선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 에구, 눈부셔라. 에구, 싫어라. 솔지는 이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적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솔지의 약점을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솔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약점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거였다. 솔지는 배신하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배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정도의 배신을 참 잘했다. 최근에 솔지는 세 사람의 친구를 배신했다. 세 사람의 친구에게 차례차례 합성 마약을 권하였다. 세 사람의 친구 민지, 차은이, 가영이가 고등학교 건물 5층 화장실 맨 끝 칸에 모여 차례차례 그것을 받아 보았다. 처음이니까 그냥 줄게. 이게 뭔데? 알지만 한번 물어볼래. 그럼 알려 줄게. 몸에 좋은 약이야. 약의 이름은 해마야. 네가 지었어? 응, 내가. 이름이 영 징그럽고 별로다. 거절해도 돼? 왜? 귀여운데···. 원래 이름은 뭔데? 나도 몰라. 요즘 입시 준비하느라 머리가 아프다며. 생리통도 심하다며. 그런데 나 지금 진짜 돈이 없어···. 괜찮아, 내가 돈이 많아! 내 지갑을 보여 줄게! 솔지의 암호 화폐 지갑은 영단어로 된 열두 개의 암호를 입력해야만 열어 볼 수 있었다. 지갑의 암호는 솔지가 좋아하는 영단어의 단순한 나열이었다. 첫 번째 단어는 window였고 두 번째 단어는 forest 그리고 마지막 단어는 mountain, 산이었다. 겨울 산을 잘게 부순 듯한 흰 알갱이들을 솔지는 차분하게 소분해 가지고 다녔다. 합성이라는 게 둘 이상의 것을 합쳐서 하나를 이루는 것인데··· 정확히 무엇과 무엇과 무엇이 기타 등등 합쳐져 마침내 하나를 이루게 된 것인지는 제조하는 역할이 아니라서 몰랐다. 예전에는 약의 성분이 비교적 단순했는데 이제는 좀 복잡해졌다고들 했다.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면 약의 성분이 계속해서 복잡해져야만 한다고들 했다··· ···전부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솔지의 역할은 제조된 물건을 가져다가 주변에 판매한다고 해야 하나 일

  • 관리자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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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몇 주전에 읽었는데 이제 댓글 다네요. 변화무쌍한 작가님의 스타일과 필력에 감탄을 보냅니다.

    • 2025-12-18 20:02:44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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