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선배하고만 하고 싶은데
- 작성일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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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배하고만 하고 싶은데
원재운
혹시나 이상한 생각부터 든 당신이라면, 덮어요. 읽지 마.
아니다. 꼭 봐요.
순백의 깃털 같은 이야기를 보게 될 테니까.
1
경찰 언니가 시커먼 가방을 들고 나타난 건 약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운동용 제품이었다. 보기보다 묵직한지 테이블에 올려 둘 때 소리가 둔탁했다. 지퍼가 열리고 나타난 건 터져 나갈 듯 넘치는 돈이었다. 몇 다발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황금색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비현실적이었다. 천 원짜리 돈 뭉치는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놀라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무도 떨어진 현찰 뭉치를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을 잇는 언니를 빼고는 그랬다. 새파란 다발을 챙긴 언니는 대본을 낭독하듯 말을 뱉었다.
습득한 물건을 신고하지 않고 사유하면 절도죄(형법 제329조)나 점유이탈물횡령죄(형법 제360조)로 처벌받는다. 회사에 들고 가려다 문득 여기가 떠올랐다. 어차피 천 원짜리다. 엄청 큰돈도 아니다. 부담 없이 한 판 하자. 모두 비밀을 지킨다는 전제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경찰 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새소리가 났다. 진열장 한가운데의 붙박이 시계는 멀쩡했다. 말썽은 위쪽의 뻐꾸기 몫이었다. 뻐꾸기는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을 무시했다. 멋대로 튀어나와 울어댔다. 울음의 크기와 횟수도 엉망이었다. 가끔은 누구의 혼백이라도 담겼나 싶을 정도였다.
“민중의 지팡이가 그래도 돼?”
이죽거리는 마스터였다. 경찰 언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디든 인공지능 탑재가 유행이잖아요. 지팡이라고 다를 것 있나.”
“지금은 보행 보조보다 재밋거리가 우선인 게 문제군.”
“진짜 문제는, 범법이잖아요.”
용인하려는 듯한 마스터와 달리 선배는 단호했다. 창을 타고 스며든 달빛이 선배의 윗도리를 푸르스름하게 적셨다. 뭐가 얹혀도 무너지지 않을 듯한 어깨였다. 동시에 언제든 스러질 것처럼도 보였다. 달그림자의 마법에 나는 살짝 도리질을 쳤다. 경찰 언니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모범생의 할아버지께선 생각이 달라 보이는데.”
“하고 싶어요. 해도 돼요?”
할아버지가 눈망울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나는 방금의 도리질보다 흐릿하게 숨을 뱉었다. 선배는 할아버지를 말렸다. 소용은 없었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마스터가 게임 테이블의 딜러 자리에 앉았다. 마스터의 카드 다루는 솜씨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딜러로서는 훌륭했다. 모였던 칩 더미가 네 패로 재차 나뉘었다. 정확했고, 능숙했다.
“각자 돈이 아니니 캐시 게임은 못 되겠고, 그냥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저 가방 갖는 걸로. 다들 동의하지?”
나는 카드 더미를 쥐어 보았다. 오버핸드 후에 리플, 이후엔 한 손으로만. 코팅이 잘 된 카드는 파로 셔플을 아무리 해도 생채기 하나 돋지 않았다.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카드가 손에서 달아나기 일쑤였는데, 이젠 한눈을 팔면서도 여유로웠다. 할아버지가 열렬히 손뼉을 쳤다. 나는 갈무리한 카드를 마스터에게 건네며 말했다.
“고마워. 마스터는 안 하게요?”
“딜러가 있어야지. 난 재밌는 구경만 하면 돼.”
“하긴, 어차피 가게도 늘 적자일 텐데.”
“그래도 영업정지는 싫어. 다들 신고하지 마.”
마스터는 입매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들락거리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인 펍이었다. 이미 경영의 영역이 아니었다. 취미, 놀이, 장난, 그 비슷한 어떤 것이겠지. 뭐가 됐든 나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선배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슷한 형태의 고마운 일로 따지면 더 있지만.
“괜찮아?”
자리를 옮겨 앉는 중에 선배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부터 나, 선배, 할아버지, 경찰 언니 순이었다. 할아버지는 의외로 내 옆에 앉겠다고 생떼를 쓰지 않았다. 시작도 전에 몰입한 것 같았다. 마스터의 셔플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 새삼스레 펍을 크게 둘러보았다. 오늘만큼은 처음부터 기억해 두자. 처음, 그러고 보니 오늘보다 전의 맨 처음은 어디였더라. 처음을 생각하면 늘 처음이 아닌 것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난 이 테이블의 누군가처럼 알츠하이머 환자가 아니었다. 아직까진, 다행히도.
척 보기에도 허름한 펍이었다. 벽을 따라 나붙은 철제 계단이 걸음마다 신음을 흘렸다. 층층대를 다 올라 미닫이문을 열기 전까진 술집인지 자취방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먼지들이 은은한 재즈 선율을 타며 떠다녔다. 사람 얼굴 같은 벽지 얼룩 위로 조명이 뿌옇게 내려앉았다. 엉망으로 선 의자들이 몇 안 되는 테이블과 진열장을 경호했다. 진열장에는 바랜 라벨이 붙은 술병과 때 탄 조리도구, 표지 끝이 말린 패션지와 도색잡지가 섞여 자리했다. 지저분해.
늘 지저분했다. 그래서 편하기도 했다. 무슨 짓을 해도, 이를테면 카드 게임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철 지난 유행곡에 맞춰 춤을 추거나, 진열장 가운데의 붙박이 시계를 통째로 뽑아다 버려도 혼나지 않을 것 같았다. 로마자가 그려진 시계 위에는 서부극에서나 볼 법한 스윙도어가 붙어 있었다. 저기서 튀어나오는 뻐꾸기를 데려가도 아무 일 없겠지. 앞의 둘은 몰라도, 맨 뒤는 정말일 거다. 마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중고로 대충 산 진열장인데, 시계에 뻐꾸기가 달린 줄은 몰랐어. 저따위로 울 줄도 당연히 몰랐고.”
“애초에 도박하는 곳이잖아요. 시계 달린 진열장을 고른 것부터 성의 없네.”
“저렴했으니까.”
너무 성의가 없었다. 일반적인 도박장에는 시계가 없다. 암막 커튼으로 창문도 다 가린다. 그래야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 마스터는 콧등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엄연한 멘탈 스포츠야. 거 영화에 나온, 뭐냐. 섯다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마.”
나는 스윙도어를 열고 튀어나와 흑싸리 위로 날아가는 뻐꾸기를 상상했다. 괜찮아, 뻐꾸기야. 그리 따지면 섯다도 건전할 수 있어. 돈만 오가지 않으면 멘탈 스포츠라는 거니까. 마스터에게 내 상상을 말하진 않았다. 아무튼 섯다는 공식적인 세계 대회가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얼마 전에는 유명 프로게이머였던 한국인이 가장 권위 있는 텍사스 홀덤 대회에서 우승했다. 상금으로 십억 가까운 돈을 한 방에 쥐는 모습에 나는 주머니 속의 카드를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마술사보다는 프로갬블러였나. 카드 만지는 건 같은데.
잠깐 스친 생각이었다. 여기가 홀덤펍이긴 하지만, 갬블러를 꿈꿨다면 시설도 좋고 사람도 많은 곳을 찾았겠지. 이 가게는 발견조차 못 했을 거다. 외양부터 내부까지 이 모양인걸. 마술사를 꿈꾸었으니 마술학원에 다닌 거였고, 돌아오는 길에도 카드 셔플을 연습하다 길을 잃고선, 낯선 철제 계단 앞에 선 선배의 뒷모습을 발견한 거였으니. 아늑한 봄볕 아래 벚꽃잎처럼 흩날리는 카드 사이로 시선을 건네며 했던 생각. 마술아, 역시 고마워. 저 널찍하고 든든한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됐구나. 저 등, 어깨를.
첫날과 같이 오늘도 세 사람이었다. 게임 테이블 중앙에 앉은 마스터는 언제 보아도 요정 같았다. 귀엽고 깜찍해서가 아니었다. 재떨이의 요정이 있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팅커벨처럼 생기진 않았겠지. 하얀 연기 같은 수염을 달고선, 걸걸한 목소리로 항아리나 캔 커피의 요정에게 따질 것이다. 야, 너희들 자꾸 영역침범 할래? 마스터는 그야말로 이 홀덤펍의 요정이었다. 외모는 추레하고 말투는 툴툴대지만, 속내는 깊고 넓었다. 들어선 나를 발견한 마스터는 묵묵히 바 쪽으로 향했다. 별다른 말 없이도 마스터는 내 취향의 칵테일을 갖다 줄 것이다. 감미롭고 달콤한 것. 오늘은 조건 하나 더.
“무알콜로 해줘요, 오늘은.”
고개를 까닥이는 마스터를 확인한 뒤 테이블로 향했다. 한 사람이 의자째로 몸을 돌렸다. 다시 만났던 날에는 몰랐다. 보면 볼수록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보다 왜소했다. 여전히 넓은 어깨였지만, 그랬다. 반가운 건 같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선배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뭔가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순간이었다. 허공의 먼지마저 솜털같이 느낄 만한 포근함에 싸인 나를, 나머지 한 사람도 돌아보았다. 재떨이의 요정 같은 노인이 걸쭉하게 외쳤다.
“엄마!”
솜털이 아니라 진눈깨비였나 봐. 진열장의 술병들이 모조리 얼어붙다 못해 깨져 나갈 듯한 냉기가 흘렀다. 선배는 추위에 멈추려던 심장을 간신히 붙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뻐꾸기야, 고마워. 마침 울어 줘서. 뻐꾹, 뻐꾹, 뻐꾹…… 총 여섯 번이었다. 일곱 번인가? 모르겠다. 확실히 저 뻐꾸기는 시곗바늘과는 다른 때를 살고 있다. 울음의 꽁무니를 쫓던 정신을 붙잡으며, 나는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아들. 밥은 먹었어?”
이번엔 엄마구나. 할아버지 옆에 앉는 내게 선배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평소보다 조금 젖은 눈동자였다. 그만큼 미안함이 더 잘 엿보였다. 고스란히 미안함뿐이었다. 괜찮았다. 선배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으니까. 알츠하이머를 겪는 할아버지까지 함께라 해도. 돌아온 마스터는 내게 잔을 내밀었다. 발갛게 번지는 주홍빛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조명이 밝았다면 더 예뻐 보일 것 같았다.
“얘는 이름이 뭐예요?”
마스터는 대답하며 카드를 잡았다.
“레드 시 선라이즈. 데킬라 대신 레모네이드.”
“이름 예쁘네.”
프리 플랍. 마스터의 손이 플레이어들에게 카드를 두 장씩 나눠줬다. 한 핸드를 받아 챙기면서도 할아버지는 쉼 없이 입을 놀렸다. 엄마, 엄마는 모르죠? 개울가에서 석구랑 놀았는데, 그 자식이 나한테 돌을 던졌는데, 돌에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물이 튀어서 옷이 다 젖었는데, 그게 엄마가 전날 사준 새 옷이었는데, 엄마는 모르죠…….
선배도, 할아버지도 기본 베팅. 나 역시 따라가고, 모두의 칩이 맞춰졌다.
플랍. 마스터는 두 장을 내려놓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조작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버닝의 과정이었다. 이어 세 장의 카드가 테이블 중앙에 깔렸다. 클럽 팔, 하트 퀸, 다이아 삼. 농민과 성직자와 상인이라. 기사를 뺀 셋이 나타난 테이블을 바라보며 선배는 폴드, 할아버지는 약하게 레이즈. 나는 내가 쥔 핸드를 다시 확인했다. 클럽 칠, 하트 오. 턴과 리버가 잘 나온다면 스트레이트도 가능했다. 나는 칩을 내밀며 말했다.
“왜 몰라. 엄마도 다 아는데.”
할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 저녁에 없어졌잖아요?”
집 나간 엄마가 되었다. 엄마인 적도 없는데, 가출을 감행한 심경까지 헤아리라니. 두통이 올 것 같았다. 결국 석구와 싸우다 찢어진 새 옷을 부여잡고 엉엉 울며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를 달래 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배가 있었다. 할아버지 곁을 묵묵히 지키는. 선배의 관자놀이는 어떨까.
턴. 돌아가려면 지금이었다. 네 번째 카드는 다시 성직자, 하트 십. 미리 포기한 선배는 건너뛰고, 할아버지는 칩을 헤아렸다. 주름진 손이 앞으로 내민 칩은 정확히 삼십만이었다. 내 스트레이트는 죽었다. 페어도 한 장 없었다. 내가 쥔 핸드의 최고 숫자는 클럽 칠. 높지 않았다. 돌아가려면 지금. 죽느냐, 나아가느냐. 할아버지 쪽이 블러핑일 수도 있으니까. 저 베팅라인이라면 충분히. 나는 다시 한 번 칩을 맞췄다.
“언니는요?”
내 물음에 선배는 뻐꾸기, 그러니까 시계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이제 오실 때가 된 것 같아.”
선배의 말에 마스터가 코웃음을 쳤다.
“경찰 주제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꼴이라니.”
“뭐 어때요, 마스터. 도박 아니고 스포츠라며.”
“그 여잔 근무 중에 오는 거잖아.”
말하면서도 마스터의 손은 쉬질 않았다. 리버. 루비콘 강을 건널 차례였다. 다섯 번째 공유 카드는 클럽 사. 할아버지는 레이즈. 거침없이 금액을 훌쩍 올렸다. 나는 칩을 한참 어루만지다 내 핸드를 뒤집어 마스터에게 내밀었다. 폴드. 할아버지 역시 본인의 카드를 뒤집었다. 하트 킹, 클럽 구. 아무것도 못 만든 건 할아버지도 같았다. 선배가 말했다.
“히어로 폴드였네.”
마스터는 웃었다. 비웃을 만했다. 히어로 폴드란 내 패가 정말 좋은데도 상대가 나보다 더 좋은 패를 가졌으리라는 추리가 들어맞을 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방금 내 패는 그저 낮을 뿐이었다. 만약 할아버지보다 더 크게 블러핑을 쳤다면 어땠을까.
“엄마를 이겼다!”
환하게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할아버지의 치아가 누렇게 떠올랐다. 나는 저 입이 여태껏 불렀던 이름들을 떠올려 보았다. 다경, 미순, 영선…… 또 누구였더라. 가끔은 창작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대도 상관없었다. 증발하는 뇌세포 속에서 발견된 낯선 이름으로 처음 불렸을 때부터 다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선배의 뒷모습을 좇아 이 펍에 들어섰을 때, 내가 고등학교 후배인 줄도 몰랐던 선배와 마침내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괜찮아요.”
나는 할아버지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선배의 손을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저는 마술사거든요. 정확히는 지망생이지만.”
할아버지 곁에 앉은 나는 총력을 기울여 정다운 대화를 나눴다. 마스터의 권유로 게임이 시작되고서야 할아버지는 내게 머물던 관심을 조금 거뒀다. 그러고도 이따금 나를 향해 혼자만의 기억을 늘어놓곤 했다. 유심히 듣지는 않았다. 아마 마을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다 실패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나를 진숙이라 부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선배도 내게 사과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으세요.”
“마술사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뭔지 알아요, 선배?”
“선배요?”
“네. 저 의암고등학교 나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반가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초면인 사이에 그러면 안 되죠.”
“저한테는 초면 아니에요. 편하게 해주시는 게 더 좋아요.”
“음, 그래.”
“네, 그래요.”
“질문이…… 마술사한테 제일 필요한 것?”
“네.”
“글쎄, 뭘까. 좋은 장비?”
“그것도 맞지만.”
“뭔가요? ……아니, 뭔데?”
나는 선배를 향해 한껏 웃으며 대답했다.
“연기력이요.”
그때도 뻐꾸기가 울었던 것 같다. 중고품인 진열장에서 새하얀 건 뻐꾸기뿐이었다. 각종 물건으로 채워진 칸들도, 시계의 숫자와 바늘까지도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맞은 듯 시커멨다. 오늘 언니가 들고 나타난 가방처럼.
2
시커먼 시절이었다. 자칭 의로운 바위에 올랐던 때는.
학교는 언덕에 있었다. 언덕 또한 바위라면 바위였다. 그러니 巖이란 한자는 대충 들어맞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교명이었다. 이름은 달랐지만, 언덕만은 갖췄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나로서는. 십 년 넘게 오르는 높다란 언덕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학창 시절을 가리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때라고들 한다. 언덕 위에 학교가 많은 이유는, 어쩌면 주체 못할 활력을 아침부터 미리 소모하도록 만들려는 수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실로 폭력적이었다. 그 시점에서 義는 어디에도 없었다. 활력이 넘치지 않는 학생은 어쩌라고.
예컨대 공부도, 운동도, 연애도, 우정도, 인기 스타도, 만화나 게임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어디엔가 에너지를 쏟기엔, 애초부터 배터리 총량이 보잘것없이 적은 사람. 내가 그랬다. 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면 시야 한편에 나와 같은 사람이 몇이나 보였다. 꿈이 뭐냐? 라고 물으면, 되는 대로 살다 되는 대로 죽겠습니다, 라고 적을 것만 같은 동급생들. 아침부터 시시포스가 된 기분을 느끼고 나면 온종일 책상 위에 엎드려 있지 않고는 하루를 견딜 수 없는.
칙칙해. 어둡잖아. 회색빛이야.
巖보다는 暗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날들이었다. 영원처럼 펼쳐진 불모지를, 바위를 굴려 가며 한없이 산책하는 느낌. 아무리 되는 대로 살다 되는 대로 죽겠다고 생각했다지만, 정말로, 이렇게? 하는 물음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럭무럭 싹을 틔우던 때. 그러다 그 싹마저 잠든 듯 더는 자라나지 않던 때. 딱 그런 때에, 아무도 깨우지 않은 날이 있었다. 눈을 뜨니 창밖으로 노을이 발갛게 물드는 중이었다. 조금 추웠다. 언제부터 잤더라. 내 마지막 기억은 육교시가 막 끝날 무렵이었다. 윤리 선생이 전자칠판으로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 였다.
검은 마스크를 뒤집어쓴 남자가 무대 위에서 마술을 펼쳤다. 달라붙는 옷을 걸친 금발의 미녀들이 마스크를 쓴 남자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몸을 꺾었다. 마스크 쓴 남자는 간단하고도 놀랄 만한 카드 마술부터 시작해, 각종 소품과 장비를 이용하여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 화려한 연출, 뒤를 잇는 결과. 잘려 나갔던 목과 몸이 도로 붙고,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가 천장에서 다시 나타나고, 열차 한 량에 검은 천을 씌우고 위로 띄우더니만 통째로 증발시키고. 이어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는 마술을 다시 시연했다. 단, 이번에는 트릭이 전부 보이게. 카드 마술은 빠르고 정확한 손동작의 결과였다. 신체 절단 마술은 유연한 미녀만 있으면 됐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건 비밀통로로 간단히 해결. 열차는 외형을 본뜬 가느다란 프레임만 들어올릴 뿐이었다. 진짜 열차는 무대장치를 따라 바닥으로 사라졌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랐다. 남자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벨 발렌티노라는 건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특유의 몸짓과 동작들 때문이었다. 얼굴뿐 아니라 연기력까지 숨겼어야 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묻자, 발렌티노는 말했다. 마술사들에게 마술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어 더 말했는데, 그때부터 기억이 희미했다. 윤리 선생이 벨 발렌티노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던 것도 같다.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굳어버린 몸 곳곳이 찌릿찌릿했다. 말린 치맛자락을 펴며 일어났다. 가방을 손에 들고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았다. 흩뿌려진 섬광이 몸을 찌그러뜨리던 미녀의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그런데 선생님, 트릭을 쓰는 사이 눈길을 끄는 역할은 역시 매력이 없어요. 그들의 미래는 어디에 있나요. 나이가 들면요, 몸이 굳어 가면요. 그들이 손수 트릭을 쓸 날은 이미 짓밟힌 싹인 건가요. 아니면 틔웠지만 자라지 않은 건가요.
흐무러지던 상념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창밖 어느 광경에 눈길을 빼앗겨서. 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걸음을 옮겼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봄의 부드러움이 묻은 바람 사이로 나른한 풀냄새가 흘렀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건 모두 조화였다. 유리문 근처 양옆으로 늘어선 플라스틱 튤립들이 능청스레 날 맞았다. 옅게나마 느껴지는 녹음의 향은 아마도 언덕 아래로 늘어선 가로수들 덕분일 터였다. 사람이 가져다 성기게 심어 둔 나무들 사이에 혹시 내 자리가 있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걸었다. 언덕 아래로는 가지 않았다. 내 시선을 붙잡았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운동장 구석의 모래판에 제자리멀리뛰기를 반복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할 거리까지, 하지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멈춰 섰다. 알고 있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 순박한 눈동자에 커다란 체구, 유순한 성정에 친절한 태도, 성적도 좋았다. 알고는 있지만, 말 한 마디 나눠 본 적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쑥덕이던 이야기를 들어 본 게 다였다.
제자리멀리뛰기에는 트릭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팔을 휘저으며 허리를 뒤로 당겨 보기도 하고, 그러다 자세를 잡고는 앞으로 뛰어오른다. 무릎을 굽히고 공중을 날다가, 착지 때의 무게 중심은 무조건 앞으로. 뒤로 넘어졌다간 삽시간에 몇 십 센티미터가 단축되니까 말이다. 우직했다. 저렇게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 왜 저렇게 계속하고 있을까. 젖은 옷가지로 보아 이미 한참 동안 뛴 것 같았다. 빛이라고는 운동장 구석마다 선 조명만 남을 때까지, 제자리멀리뛰기는 이어졌다.
누가 뭐래도 모랫바닥은 불모지였다. 그래선지 영원일 것 같았다. 그만큼 끝은 갑작스러웠다. 뛰어오르기를 멈추고, 무릎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던 선배가 모래판 귀퉁이에 앉았다. 앉는 꼴이 꼭 무너지는 것 같았다. 팔로 상체를 안은 채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던 선배는 이윽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다른 곳보다는 조명과 가깝긴 했다. 하지만 글자를 읽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도 무슨 책인지는 알기 쉬웠다. 지퍼로 열고 펼쳐야 하는 서적은 많지 않으니까.
수군덕수군덕 하던 말들. 그 선배, 얼마 전부터 성경을 끼고 다니더라니까. 신학대학 지망한다던 소문이 있던데. 그럼 신부 되는 거야? 여자애들이 들이대도 다 거절한 이유가 있었네. 하지만 선배가 성경을 다루는 방식은 독실해 보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 책의 아랫부분만 붙잡은, 언제라도 떨어뜨릴 듯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종이가 구겨지거나 찢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람이 멈췄다. 머물던 냄새도 풀풀 흩어졌다. 남은 건 울음을 삼키는 소리였다.
처음엔 울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손에서 떨어뜨린 성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선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나직이 들려오기 시작한 낯선 호흡. 언덕 쪽의 나뭇가지가 스치고 있다거나, 우리 교실의 전자칠판이 사이키 조명처럼 깜빡인다거나, 심지어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며 학교를 등반한다는 편이 믿을 만했다. 내게는 그랬다. 어깨가 들썩이지 않았다면 선배가 우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흔들리는, 넓은 어깨. 금방이라도 더 큰 뭔가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걸었다. 풀냄새 때문이었다. 서 있는 가로수들의 간격이 넓었다. 발길을 서두르다 몇 번 고꾸라질 뻔했다. 의뭉스레 피어나기 시작한 향은 한참을 걸어도 내 뒤를 따라왔다. 플라스틱 튤립도, 얄팍한 가로수도, 멀리서 학교를 감싸듯 자라난 낮은 봉우리들에 듬성듬성 자리한 숲도 아니었다. 또다시 철저한 소거법을 거친 뒤에야 나는 인정했다. 이건 멈췄던 싹이 자라버린 거야. 그래서 나는 냄새라고.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흐느적대며 걷다가, 내 키보다 조금 작은 간판을 붙잡고 섰다. 매직 카펫 라이브 포차. 매직 카펫 라이드의 패러디인 것 같았다. 번쩍이는 간판 구석에는 마이크를 든 여자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저 여자도 나만큼 힘들 거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순식간에 썼다. 가까운 편의점을 찾았다. 냉장고로 향해 수분 보충 음료를 집었다. 문 근처의 계산대로 돌아가던 차에 카드가 보였다.
트럼프 카드. 카드 마술이야말로 모든 마술의 기본이라지. 검은 마스크도 맨 처음 보여준 게 카드 마술이었으니까. 마술이라.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색을 바꾸거나, 내 눈에 색안경을 씌우거나. 나는 카드 한 다발이 든 플라스틱 상자를 집어 들었다.
이상이 선배와 내 이야기의 처음이었다. 선배에게는 최근에야 갑작스레 시작된 거겠지만, 나는 꽤 예전부터였다는 것이다.
3
이렇게 되리라 생각은 했다. 선배가 먼저 일어날 거라고.
“역시 난 잘 안 맞는 것 같아.”
“어련하시겠어, 모범생.”
빈정대는 경찰 언니에게 선배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털고 일어나 게임 테이블 끄트머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 쪽이 아니라 할아버지 쪽이었다. 선배에겐 당연했다. 선배의 몫으로 있던 칩은 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가져갔다. 다음이 경찰 언니, 마지막이 나였다. 나는 혀를 내밀며 말했다.
“마스터, 잘 좀 줘요. 핸드가 어째 계속 이래.”
내 볼멘소리에 마스터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건 텍사스 홀덤이야. 에어카드로도 에어라인을 이길 수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포커 게임과 비교하면 텍사스 홀덤은 운의 역할이 적었다. 최고로 좋은 핸드인 에이스 두 장, 즉 에어라인도 승률은 칠할을 약간 넘기는 정도였다. 손에 쥔 두 장과 테이블에 깔리는 다섯 장, 총 일곱 장을 합쳐 가장 높은 족보가 만들어지는 다섯 장의 카드만 헤아리기 때문이었다. 즉 나의 패, 공유 카드의 상황, 상대의 베팅라인이나 레이즈하는 꼴, 칩의 비율 등을 철저히 계산한다면, 낮은 패로도 에이스 두 장을 손에 쥔 상대를 속이고 또 잡아낼 수 있었다. 손에 쥐는 순간부터 변수는 팻돈뿐인 섯다와는 확실히 달랐다. 마스터가 스포츠라 우기는 이유가 없지는 않은 셈이었다.
“웃겨. 기억 안 나요? 얘가 딜러 잡고, 마스터하고 나랑 헤즈업일 때. 리버에서 마스터 아웃츠가 겨우 세 장이었는데, 그 셋 중 하나가 나왔잖아. 확률 삼 퍼센트를 뚫고.”
나를 가리키며 말을 마친 경찰 언니는 잔을 손에 쥐었다. 칵테일이 가녀린 목을 타고 흘러드는 동안에도 마스터는 카드만 다룰 뿐이었다. 버닝이 끝난 카드를 나눠줄 때에야 마스터는 답했다.
“다른 걸 기억해야지. 칠 스페이드 올인 보고 겁나서 킹 하이 들고도 잡아먹힌 거라든가. 기사에게 목이 베인 왕 씨.”
“하. 어째 난 강렬한 기억이 다 진 것뿐이야. 강렬하게 이겨 보고 싶은데. 근데 방금 말한 그때는 진짜 열 받았어. 이 노인네가 카드 까면서 싱글벙글 웃는데.”
경찰 언니의 무례한 말에도 할아버지는 무표정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건 나를 보면서, 아니면 게임에서 이겼을 때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상대를 농락할 줄 알았다. 블러핑으로 상대를 잡아내면 꼭 자신의 패를 내보였다. 실제 포커에서도 상대의 정신을 흔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의 하나이긴 했지만, 할아버지의 경우는 느낌이 더했다. 주름진 얼굴을 억지로 더 일그러뜨렸다. 검버섯으로 얼룩진 뺨은 구멍이 뚫릴 듯 패었다. 뻥 뚫린 구멍이 선배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노인네라곤 하지 마시죠.”
“자기인 줄도 모를 텐데 뭐. 쟤가 엄마라며. 그럼 엄마, 슬슬 일어나야지.”
“엄마한테 일어나라고 하지 마요!”
“이것 봐. 엄마에는 반응하네.”
내가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 가게 문이 열렸다. 낯선 손님이었다. 이 가게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경찰 언니는 점퍼를 완전히 벗어 의자 밑에 툭 던졌다. 손님들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게임 테이블에 앉았다. 손을 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터는 말했다.
“구경 다 했군. 아쉽네.”
“안 받으면 되잖아요.”
“맞아.”
나와 경찰 언니는 서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텍사스 홀덤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자네, 딜러 가능하지?”
마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갈무리한 카드를 선배에게 내밀었다. 선배는 어설픈 몸짓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규칙이야 알지만, 카드도 잘 못 다루는데요.”
“걱정 마. 돌아가는 판을 보니 얘가 금방 일어날 거야.”
“패 이상하게 준 게 누군데 그런 소리예요. 선배, 나 잘 봐줘요. 내가 판 뒤집을게요.”
엷은 웃음과 함께 선배는 딜러 자리에 앉았다.
패가 돌고 돌고, 여러 번 루비콘 강을 건너가고, 뻐꾸기는 또 제 마음껏 울고, 푸르스름한 달빛이 고즈넉이 기울고, 저편의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도 소소하게 떠들어대다 새로 음료를 주문할 즈음, 그래서 마스터가 우리 테이블을 흘긋거리며 지나갈 무렵, 나는 끝났다.
“뒤집겠다더니, 뒤집혀버렸군.”
“일어나세요, 엄마.”
마스터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내게 말을 붙였다.
“아니, 아들. 잠깐, 하. 언니, 그걸 받아요?”
“받아야지.”
“설명 좀. 나 이해가 안 돼. 사십사만을 콜만 하길래 오, 육, 높아도 칠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읽고 올인한 건데, 오를 들고 받는다고요?”
“플랍에 깔린 게 잭, 삼, 오에 무지개였잖아. 색도 다 다르고 숫자도 따로 놀고. 난 세컨드 페어나 키커도 없었어. 그때 네 첫 베팅 있었지. 네가 삼이나 오였으면 콜을 하는 게 맞고, 하이 포켓이나 잭이어도 마찬가지지. 근데 사십사만을 쳤어. 이건 나를 밀려는 블러핑이잖아.”
“그럼 밀려야죠. 언니 말대로 내가 하이 포켓이거나 잭일 수도 있는데.”
“내가 방금 콜이라고 했잖아. 내 칩을 더 끌어내려면 처음엔 작게 쳤어야지. 여기서부터 세게 나온다는 건, 넌 만들어진 게 없는 거야. 아주 높아 봐야 킹이나 에이스 한 장. 그래서 리레이즈 스냅 때 일단 콜만 했어. 턴에서 한 번 더 보자, 하고. 십 나왔는데 넌 바로 올인. 이건 내가 사, 오 맞은 걸로 스냅 콜 했다고 봤으니까, 잭 아니면 십을 내가 들고 있다! 라고 우기는 블러핑인 거지. 텔이 왔다니까.”
“마지막 말이 제일 상처야. 나 연기 잘하는데, 텔이 왔다고요?”
“솔직히 몸짓이나 눈빛으로는 몰랐어. 베팅라인으로 안 거지. 연기는 잘했어.”
“언니는 진짜……. 운빨 탓하지 마요.”
“됐어. 여기서부턴 운 안 따라 주면 끝날 테니까. 나 저 노인네 이겨 본 적 없잖아.”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먹이는 할아버지에게 몇 마디를 건넨 뒤, 테이블을 크게 돌아 선배에게로 향했다.
“수고했어. 고마워.”
“선배도 고생했어요.”
선배는 내 팔을 토닥여 주고는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내내 선배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부드럽게 넘기며 나는 카드를 손에 쥐었다. 질 좋은 플라스틱 카드는 꼭 손바닥에, 손가락 마디에 달라붙는 듯했다. 마스터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명색이 펍인데, 술 진열장은 중고로 최대한 싸게 구했으면서 칩과 카드는 최고급품이었다.
할아버지와 경찰 언니의 헤즈업은 대단했다. 특히 서로 에이스 두 장을 나눠 갖고서 마지막까지 베팅 싸움을 벌인 판이 백미였다. 프리 플랍부터 경찰 언니는 백이십만을 쳤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콜을 끊으며 따라갔다. 플랍에서 펼쳐진 세 장은 다이아 십, 스페이드 퀸, 다이아 킹. 경찰 언니는 이번엔 약하게 레이즈를 쳤고, 할아버지는 한 번 더 따라갔다. 턴에 나타난 네 장째는 다이아 퀸. 또다시 약한 레이즈로 맞선 둘. 리버 카드는 클럽 칠. 다섯 번째 카드 앞에서 경찰 언니는 장고 끝에 올인했다. 할아버지는 곧장이었다. 판이 끝난 후 선배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끝까지 따라간 거예요. 이길 게 없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선배 아닌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저 아줌마 베팅을 보면 적어도 다이아가 있는 에이스와 킹, 그 이상의 패예요. 제가 확실히 지는 건 킹 두 장이고요. 그런데 저쪽이 가진 핸드가 킹 두 장이라면 플랍에서 레이즈를 애매하게 칠 이유가 없어요. 블러핑으로 아예 세게 가거나 체크만 하고 넘겨야죠. 이후도 그래요. 킹스 입장에서는 편치 않은 보드가 됐는데요. 다시 말해 킹스에 최적화된 베팅라인이 아니잖아요. 그럼 내가 이기거나, 저쪽도 에어라인으로 비길 거로 생각했어요. 잘했죠?”
“대단하다, 아들.”
진심이었다. 내내 연기를 해왔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의 재떨이의 요정 같은 얼굴로 환히 미소 지었다. 재떨이의, 요정이라. 할아버지의 말투는 친밀하면서도 위협적이었다. 미소도 그랬다. 여상스럽고도 무시무시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텅 빈 테이블 틈에 손님이 앉아 있는 광경이 낯설었다. 기울어진 달빛은 이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의 밤으로 마음을 던져 넣으며 천천히 카드를 섞었다. 다시 해보자. 오늘도 반드시 끝날 것이다. 그날 밤처럼.
4
그날 선배가 했던 말들 전부를 기억하고 있다.
달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
응, 고마워.
진심이야. 네 마음만은 정말로 고마워.
하지만……. 난 말이야, 지금 누군가의 곁에 있을 수가 없어. 누군가를 곁에 둘 수도 없지. 너도 알리라 생각해. 이해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해 달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이것도 잘 모르겠네. 원래 그렇다고? 그래, 맞아. 불행은 예고장을 보내지 않아.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지 않아. 몰래 등 뒤로 다가와서는 심장을 찔러버리지. 하지만 내가 겪은 불행이 더 불행스러웠던 건, 어머니가 보통은 받지 않는 예고장을 벌써 읽고 난 뒤였다는 거야.
병실에 누운 어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 그때의 어머니와 나를 떠올리면 물에 젖은 편지가 생각나. 금방 찢어질 것 같고, 글자는 흐려져 있고. 다른 것들은 메마른 듯 선명한데 말이야. 연기를 뿜기는커녕 붉은빛만 깜빡이던 가습기, 색감이 부족해서 더 투박해 보이는 그림을 담고 있던 달력,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난간이 달린 철제 침상 같은 것들. 그리고 암이 있었지. 발견이 어려운 암이었다지만, 한 번에 몸 전체로 확 퍼지진 않잖아. 그런 식으로 쓰러지진 않잖아. 칼이, 심장을 아주 느리게 관통하는 거잖아.
그래. 칠이 벗겨지는 것처럼, 습기가 방을 채워 가듯, 천천히. 하지만 몸 구석구석까지 자라는 중에도, 하루의 어느 때고 독한 통증을 겪었을 텐데. 쓰러져서 거동을 아예 못 할 때까지 내게 한마디도 안 했던 건, 아마 숨 쉬는 일의 고단함 때문이었겠지. 그 고단함을 함부로 가늠하려다 나까지 짓눌릴까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어. 아무 말도 못 했던 건. 입을 다문 내게 어머니는 쪽지 하나를 건넸어. 낯선 주소지가 적혀 있었지.
매주 여기에 갔다 오거라.
난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줄 알았어. 일요일마다 사라지곤 했으니까. 그날 난 내게 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신심이 깊은 분이라더라. 신심으로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만물을 사랑하느라 바빠서 어머니를 돌봐주지 못했던 그런 분이라고 말이야. 나는 지금 당신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 당신의 할 말이 남은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어. 돌이켜보면 그때가 나의 유일한, 입을 열 기회였는데 말이야.
그래, 그런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걸렸다는 건, 잔혹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사랑이 이해하는 것이라면, 만물을 사랑하신다던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언제나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분이셨겠지. 그렇다면 알츠하이머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했다는 말을 그대로 전했어. 돌봐줄 사람을 점지해 놓았기에 신께서 이렇게 하신 거겠지. 그 말에 어머니는 나를 떠올렸다는 거야. 이미 어머니 당신은 조만간 몸져누우리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덜덜 떨리던 할아버지의 손이 잊히지 않는다고도 했어.
기본적으로 돌봐주는 일 외에는, 가보면 알게 될 거라고 하더라. 돈도 챙겨 줄 거라면서 말이야. 안 받겠다고 해도 한사코, 얼마씩 가져가라고 내어줬다더군. 개신교의 직업 소명 윤리가 자본주의의 발달을 불러온 것이며, 그래서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니 이 또한 신의 뜻인바, 일한 자가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나.
죽어가는 사람의 말은 평생의 빚이 돼. 그게 어머니라면 더더욱.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뱉은 육성의 내용은 할아버지가 산다는 곳의 주소지였어. 그 말을 끝으로 다시는 의식을 찾지 못했지. 기껏 한다는 말이 쪽지로 이미 전달한 내용이었다니. 그깟 게 유언일 거라고는.
아, 잘 마실게. 마침 목이 말라붙다 못해 아프던 참이었어. 메마르다 보면 아파진다는 거 좀 신기하지 않아? 네가 말했던 그때, 날 발견했다던 때 말이야. 모래 위로 날아오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것도 같아. 이 모래땅도 아플까, 하는. 그제야 울었지, 난. 그때 전까지는……. 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장례를 치르고, 쪽지를 펼치고 걸을 때도 내 눈은 말라 있었어. 아프지도 않았고. 하지만 관통당하는 중이었겠지. 다 꿰뚫리고 나면, 젖은 편지가 되어버리는 거고. 어쩌면 젖은 편지가 되어 찢어지거나, 글자들을 알아볼 수 없어야 다음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
기찻길 근처였어. 한 마디로 값이 쌀 수밖에 없는 집이었지. 문을 두드려도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에게 받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어. 유리창에 드리워진 엷은 커튼에 방은 다소 어두웠어. 여전히 사람의 기척이 없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걷었어. 밖과 달리 내부는 정갈했어. 어머니 솜씨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지. 몇몇 물건을 빼고는 말이야. 철제 침대 구석에 예수상과 성모상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어. 진료용 장의자 위에는 트럼프 카드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고 말이지. 한 장이 없는 걸 빼면 말이야.
처음엔 당연히 몰랐어. 스페이드 퀸 한 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오랜 시간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알게 된 거지. 밤이 찾아와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겁이 났어. 왜 있잖아.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부탁을 처음부터 지키지 못한다는 게. 그때의 나로서는, 그랬어. 유리창을 뚫고 들려온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참 낡고 헤진 목소리였어. 나는 그제야 유리창이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선 밖으로 뛰쳐나갔어.
십 미터 정도 될까. 주택가와 기찻길 사이 자리한 숲의 높이가. 정확히는 언덕이지. 사람보다 살짝 큰 나무들이 촘촘히 자리한. 방벽처럼 늘어선 숲에, 오르막인 판이니 여유롭게 거닐 만하진 않았지. 그래도 들어갔어. 이미 사람이 헤치고 간 흔적이 보였거든. 꺾인 나뭇가지 틈을 파고들며 굵직한 두꺼비나 낼 법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어. 그러다 급작스레 급해졌지. 첫 번째는 목소리의 시발점이 숲이 끝나는 어딘가여서, 두 번째는 열차소리가 바로 뒤를 이었기에. 나뭇가지 하나가 손등을 세게 긁었어.
뛰쳐나오니 꼭 다른 세계 같았어. 땅을 타고 흘러온 매캐한 냄새 때문이었나 봐. 그래선지 철도 선로와 나란히 좌우로 요동치며 움직이는 열차가, 마치 플라스틱 모형 같았어. 열차와 나 사이의 누군가는 레고 블록 마을을 노니는 주민 정도 될까. 앞뒤가 뒤집힌 사제복을 입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구슬땀을 매단 채, 철로 곁에 꿇어앉아 뭔가에 전념하는 노인 말이야. 술래잡기 중이었을지도 몰라. 계속 뭔가를 찾고 있었으니. 어둑한 중에 어떻게 이렇게 다 보였냐면, 열차 헤드라이트가 있었으니까.
비명 같은 경적에 열차의 몸뿐 아니라 연기와 쇳가루마저 떨려 오는 중에, 노인은 몸을 일으켰어. 그리고 선로 쪽으로 다가갔어. 스페이드 퀸이 거기에 있었던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달려 나갔어. 신기했어. 모든 게 느려졌거든. 달려오는 열차는 칼처럼 느리게 박혀 오고 있었어. 그래서 노인의 목덜미를 잡아끌 시간이 너무나 충분했어. 하품이 나올 듯할 정도로. 당기면서 생각했지. 솔직히 힘주어 잡아끌지 않아도 될 거리였는데. 그런 것 같았는데. 앞뒤가 반대인 사제복 탓에, 뒤를 잡았는데도 멱살을 잡은 기분이었어. 어쨌거나, 난 같은 상황으로 돌아갔더라도 사제복을 망가뜨리며 잡아끌었을 거야. 설령 사제복이 아니고,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어도 말이야.
신께서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고.
방으로 돌아온 노인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뒤집어 뱉고는, 스페이드 퀸을 펼쳐진 카드 위에 내던졌어. 비로소 다 모인 쉰두 장의 카드는 주름진 손에 의해 뒤섞이기 시작했지. 카드는 몇 번이고 제각각 제멋대로 손을 탈출했어. 단순히 셔플을 못 해서였을까. 땀에 젖은 손이 플라스틱 카드마저 푹 적실 듯해서였나. 나는 열차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를 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노인의 손은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듯 떨리고 있었어. 안 돼. 이러면 안 돼. 이러면 나는 아버지 곁에 가까이 가지 못할 거야. 뭐라도 해야 해. 뭐라도 해야. 뭐라도 해줘.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형형했어. 반짝여서가 아니었어. 손보다 더, 아까의 열차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떨려서였지. 카드를 쥐기 시작한 건, 신께서도 주사위 놀이를 해서가 정녕 맞을까.
나는 조용히 구석의 책꽂이에서 성경을 꺼냈어. 지퍼라는 게 그렇게 무겁게 열린다는 건 처음 알았지. 껍질이 닳은 지퍼부터 시작해 책 곳곳의 손때로부터 어머니가 느껴졌어. 내게 남긴 당부의 정체까지도. 숨을 쉬는 동안에 하나님을 잊고, 믿음을 부정해버리면 어쩌나. 숨을 거두는 순간에 하나님이 뭐야? 그런 거 몰라, 라고 말해버리면, 천국에 못 가는 걸까.
너와 처음, 아니, 다시 만났을 때 네가 한 말이 있지. 그때 내가 네 말을 미리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사람은 누구나 다 마술사일지도 모른다고,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야.
나는 활자들을 읽었어. 소리 지르고자 모았던 힘을 아주 조금씩 풀어 놓으면서 말이야. 노인은 다시 카드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어. 밤이 깊어 갈수록 글자도 카드의 문양도 달빛으로밖에 비치지 않아서, 나는 철로에 가까이 있을 때보다 점점 더 겁이 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다행이었어. 적어도 그 노인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거든. 어머니 말대로라면 울어서도 안 되니까. 나는 이 자를, 내 할아버지라는 자를 지켜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고마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마스터한테도, 경찰 누나한테도, 다른 누구한테도 못 했으니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누군가의 앞에서 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증거라지. 좋은 남자? 그거 안 좋은 뜻이잖아. 모든 여자에게 좋은 친구는 되어 줄 수 있지만, 애인은 절대 못 되는. 수많은 드라마의 서브 주인공 자질 말이야. 하하,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도 못 되는 것 같은데.
그래.
지금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너에게, 지금보다 더한 짐을 지울 수는 없어. 할아버지 하나만 해도 그래. 너한테 왜 그러는 건지, 나로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더 미안하고. 지금의 나는 어쩌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미안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래서 정말로, 미안해.
5
드러누운 할아버지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모르죠. 아무튼 끝났네. 그렇죠?” “축하해요, 언니.” “본인이 가져오고 본인이 챙기시네요.” “어…… 이 사람.” “마스터? 왜 그럽니까.” “너, 노인네 간수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냐, 아들. 그 술병 내려놔!” “진압봉 없어, 경찰?” “안 돼, 꺼내지 마요.” “아직 손도 안 댔…… 조심해, 모범생!” “선배, 괘, 괜찮아요, 선배? 어디예요? 손바닥이에요?” “할아버지.” “피 봤네. 그냥 꺼낼게요.” “이 친구가 싫어할 텐데.” “거기 두 분, 좀 도와주세요!”
경찰 언니가 옆 테이블의 손님들과 함께 할아버지를 제압했다.
“난 간 적도 온 적도 없어. 여기만 있었어. 그런데 이러다 미칠 것 같아. 엄마? 엄마도 없어졌잖아. 낯선 사람이야. 난 그걸 알아. 너도 마찬가지야. 난데없이 나타나 모를 말만, 달이 뜨고 지는 사이, 곤봉과 성배와 보석과 검이 휘둘러지며, 신랄한 탄핵을 서로에게 퍼부으며 어우러지는 동안, 넌 내가 미쳐버릴 때까지 말을 뿌렸어.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이대로 계속 살리라 생각하진 않겠지. 널 보면 생각나는, 지긋지긋했던 그 여자처럼. 아냐, 미안해. 미안하다. 얘야. 난 가진 건, 카드 한 다발뿐인, 보다시피 말이야. 이것도 버릴게. 여기 데려와만 주면 돼. 카드 정도는 생소해도 돼. 어차피 모두 낯선 사람이니까. 나는 알아. 우린 모두 운명이 될 거야. 어차피 어디에도 우리 것이라고는, 내 것이라고는, 엄마. 엄마, 엄마…….”
또 뻐꾸기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엉터리 말만 울음처럼 흘러 다녔다.
6
나는 낯선 손님들에게 봉투를 건넸다. 둘은 눈앞에서 속을 일일이 확인했다. 맞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돌아섰다. 경찰 언니의 얼굴은 그새 여윈 것 같았다. 새벽이 깊어지자 가로등도 꺼졌다. 그림자를 만드는 건 달빛뿐이었다. 그래서라고 생각했다.
“잘 챙겼어요?”
경찰 언니는 손에 든 가방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귀 뒤로부터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덕분에 나도 재밌었어.”
“다행이네요.”
“강렬하게 이기는 경험도 했고 말이야. 지나치게 강렬했지만.”
나는 경찰 언니 곁을 지나쳤다. 언니의 발소리가 내 뒤를 따라붙었다. 이내 조용해졌다. 대신 목덜미를 간지럽힌 건, 조금 낮아진 듯한 언니의 육성이었다.
“안 물어 보려고 했는데.”
돌아서 마주선 경찰 언니의 표정은 조금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말했다.
“안 물어 보는 게 조건이었잖아요.”
“나하고 마스터 헤즈업 때, 마스터 리버에서 아웃츠 세 장일 때, 내 승률이 구십칠 퍼센트였을 때.”
이 정도 질문은 괜찮았다. 어쨌거나 방금까지 한 패였으니까.
“맞아요. 연습이었어요.”
“마지막 판, 스트레이트 플러시에,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일도 아니었겠네.”
“말했잖아요. 언니는 이길 거라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문 경찰 언니는 세심한 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인공지능 지팡이면 뭘 하나. 생각할 필요도 없었네.”
재떨이도, 항아리도, 캔 커피도 없는 중에 새벽바람이 담뱃재를 모아 쥐고 달려갔다. 골목 구석까지 닿고서야 바람은 흩어졌다. 공사 중인 작은 건물 근처였다. 샘물 식당. 죽은 화분과 녹슨 자전거 따위로 보아 공사가 멈춘 지 한참인 듯했다. 사람이 올 리 없는 곳이었다. 친절한 바람의 요정이었다. 어쩌면 요정이란 옛날부터 인공지능을 바라 왔던 사람들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고뇌하기 싫은 자들이 제 생각을 위탁하고 싶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줄, 혹은 무력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 누군가.
“반납하더라도 물어 보고 싶어졌어.”
“그럼 돌려줘요.”
곧이어 지폐 다발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다발은 내 팔에 가볍게 맞고 떨어졌다.
“통째로요.”
“어설프게 물어 볼 테니까, 그것만 받아.”
나는 허리를 숙여 바닥의 지폐 다발을 쥐었다. 달빛마저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었다. 지폐의 진짜 색을 알기 어려웠다. 아까 펍에서 보았던 달빛은 분명 푸르스름했는데. 어렴풋한 일 하나와 영 셋, 맞는데.
“이제 정말 마술사가 된 거니?”
벨 발렌티노는 이렇게도 말했다. 한물 지나간 트릭을 거액에 팔아넘기거나,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시전 못 하게 막는다거나, 기껏 만든 트릭을 권력으로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예전의 마술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던 발렌티노는, 본인이 가면을 쓰고서 트릭을 밝힌 마술을 제 이름을 건 쇼에서도 선보였다. 마스크를 썼건 말건, 그의 연기는 같았다. 곁에는 뇌쇄적인 몸짓을 펼치는 미녀들이 있었다. 차라리 인공지능이 저 말을 했다면 믿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멋대로 울어대던 뻐꾸기가 생각났다.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한다면, 마술사는 주사위 눈을 속여야겠죠.”
나는 내가 주운 돈다발을 다시 언니에게 던졌다. 언니는 담배를 든 손으로도 능숙하게 돈다발을 잡아챘다. 또 한 번 흩날린 담뱃재가 아까와 같은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무슨 눈이 나올지도 모르면서, 말이지.”
경찰 언니는 꽁초를 아무렇게나 퉁겼다. 제복 탓인지 그 흔한 동작이 우스웠다. 들러붙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지만, 이런 언니에게도 재미있는 일은 필요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아마도. 언니가 다시 발을 딛었다. 움트는 싹처럼 느린 걸음이었다. 그래 보였다. 나를 지나쳐 갔다. 그러려던 것 같았다.
“모범생을 사랑하니?” 멈춰 선 언니가 말했다.
“돌려줘요. 통째로.” 내가 말했다.
“대답 안 해도 돼. 대신 잔소리, 아니, 예언 하나 할게.”
“듣고 싶지 않은데.”
“넌 언젠가 그 애한테 큰 상처를 받을 거야. 네가 지금 준 상처보다 더 큰.”
제자리멀리뛰기를 계속하다 울고 마는 광경이 있었다. 반한 순간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루비콘 강을 건넜다. 무슨 눈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례할 만큼 무책임하다는 것도 알지만.
경찰 언니는 대답 없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기지개를 길게 켠 언니가 숨을 크게 섞어 가며 말했다.
“다신 못 보겠네.”
“그건, 미안해요.”
진심이었다.
“됐어. 조용한 것 빼고는 맘에 든 것 없는 가게였어. 마스터가 술을 잘 타지도 않잖아.”
“근무 중에 술 마셔도 돼요?”
“넌 무대 올라가면서 술 마시니?”
“아까는 무알콜이었어요. 레드 시 선라이즈였나.”
경찰 언니는 소리 내 웃었다. 배를 잡고 허리까지 꺾어댔다. 눈가를 닦아낸 경찰 언니는 내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말했다.
“잘 지내. 나, 실은 너 같은 애 좋아해.”
나도요. 잘 가요, 언니.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혼자 남았는데도 해는 뜨지 않았다. 달빛이 완전히 증발한 새벽의 거리는 칙칙하고 어두웠다. 정말로, 이렇게? 길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쪽인 거지. 무심코 담뱃재가 내려앉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샘물 식당. 간판도, 글자도 그늘졌다. 열려 있는 유리문에 걸쳐진 철골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이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마치 새 둥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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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내게 백가흠 방안에 어둠이 번지며 축축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퍼진다. 가스가 끊긴 지 두 달 전이다. 조금만 견디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내게는 겨울이 ‘가혹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겨울을 내 생에서 다시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매일 나는 마음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마흔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웬만한 추위를 견디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엄청난 한파가 시작된 뒤로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에 붙어 나를 괴롭힌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읽는다는 일거리가 있어서 좋다. 나는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린다. 텐트 안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누워 밤이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지루한 삶의 권태와 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 사이 내 밤이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와 생의 존속을 위한 고통 사이 내 하루가 있다.1) 핸드폰은 정지된 지 몇 주가 지났다. 내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일 빼면 전화기는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평생 내가 맺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 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세 주전자가 울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물러간다. 가끔 이는 소란스러움이 내게는 퍽 소중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신다. 추위가 잠시 녹는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꼭 껴안는다. 다른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얼어붙었던 하루의 고뇌가 녹는 것 같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허기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제는 한 끼라도 먹었으니, 어제, 오늘은 굶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굶었다. 끼니를 때우는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소주 두 병과 담배를 샀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다. 소주와 담배만큼은 쉬이 참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한잠도 잘 수가 없고 담배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담배는 허기를 채워 주는 묘약이다. 소주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 관리자
- 2026-03-01
서브리미널 안종성 여러 대의 카트가 교차 레일 지점을 충돌 없이 지나갔다. 높은 위치를 누비면서도 질서 정연히 움직일 줄 알았다. 출로에 다다를 때쯤 천천히 감속하더니 허공에 뚫린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윤무의 눈동자는 천장 주행 장치의 행렬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장면으로부터 슬픈 기분을 느끼고는 습관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붙잡아 두는가? 그러나 기록할 도구를 찾지 못한 윤무는 걷기로 했다.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벽과 바닥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흰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소리와 냄새, 온도, 어떤 예감마저 느낄 수 없었다. 윤무는 이곳을 알 것만 같았다. 얼마 전 필경사와 무한한 흰 공간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필경사는 권면에 들기 전 미리 가서 둘러볼 것을 권했다. 깨어날 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 있을 테지만 영원히 망각한 게 아니라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권면 전의 삶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필경사는 뇌의 저장 용량을 컴퓨터 저장 단위로 환산하면 2.5페타바이트에 달함에도 인간의 상상력이 쉼 없이 활동하므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인간의 신체가 권면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기억 편람의 업로드가 끝나면 직계 가족이라 할지라도 오십 년 뒤에나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필경사는···. 구축 아파트에서 볼 법한 편복도를 지날 때 윤무는 재건축 직전의 폐허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호수마다 잡동사니가 나뒹굴거나 무가지가 쑤셔 박혀 있었다. 앞바퀴 없는 자전거도 복도를 비좁게 만들었다. 윤무는 그중 현관문이 열린 곳에 서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곳에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 역시 깨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는지 윤무에게 여러 번이나 같은 내용을 물었고─여기 당신의 집인가요? 다른 누가 또 살고 있습니까? 식사했습니까?─결국 이들은 임장하러 온 일행처럼 나란히 집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부는 따로 특별한 게 없는 가정집이었다. 통유리에 붙은 주먹만 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휠을 돌려 보거나 싱크대 위에 널브러진 여러 가재도구를 들춰 보던 윤무는 커피믹스를 발견하고 남성을 향해 들어 보였다. 포장 비닐이 아침의 배경 앞에서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스스로 마토메라 밝힌 남성은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를 다니고 있지만, 서울 출장 경험이 잦아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윤무는 소파에 앉은 마토메의 다부진 체격,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 외형만큼이나 독특한 건 마토메의 상태였다. 한눈에 보더라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내려다보는데 호흡이 불규칙했으며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윤무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업무차 여기에 온 건가요? 윤무는 낯에 익은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무대를 오며 가며 보았을 조
- 관리자
- 2026-03-01
우주의 영향 아래 임수지 언젠가 우주에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함께 가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방을 보게 될 거야. 팅커벨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면 문 앞에서 두꺼비가 널 지키고 있을 거야. 두꺼비들은 착하다. 두꺼비들은 두껍두껍 울지 않아. 걔들이 울면 동그란 구슬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정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주는 그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네,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 기사는 나를 미림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잠시 바라보다 미림슈퍼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두 번 꺾어 집 앞에 서서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바다 냄새가 몸속 깊이 들어왔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 전화를 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 내가 곧장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가 멋대로 눌려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짜증을 조금 부리다가 곧 이불을 내어주었다. 날 밝을 때 오지, 뭐 하러 이 늦은 시간에 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얼굴과 손발을 대충 씻고 작은방에 깔아 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안방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워 물어볼까 고민하는 동안 내 체온에 맞춰 이불이 천천히 데워졌다. 이불을 코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데운 이불이 다시 나를 데우며 조금씩 따뜻해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일. 오늘 나는 우주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잠들 것이다. * 우주가 내 방에 머물 때 입던 품이 큰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는 잘 개켜 종이 가방에 넣고 옷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나는 그걸 다시 꺼내 본 적 없다. 우주가 쓰던 면도기나 낡은 양말 같은 것들도 진작 정리했다. 이제 내 방에 우주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용 기한이 지난 음식점 할인 쿠폰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쓸고 닦아도 계속 생겨나는 먼지처럼 어딘가에서 자꾸만 하나씩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그런 것들을 찾아낸 날이면 나는 자꾸만 골똘해졌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있다니. 그런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2년이라는 시간은 하루이틀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사실은 하루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이 흘렀다고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서 영화 티켓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에 티켓이. 영화 제목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관객은 다섯 명뿐이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인가. 영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으므로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옆에 앉은 우주에게 작게 말했다. 전세 낸 것 같고 좋은데
-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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