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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부동산과 젠더 정치학

  • 작성일 2024-10-01

   대중문화 속 부동산과 젠더 정치학


전지니(한경국립대 교수) 


   * 이 글에는 종결되지 않은 웹툰과 올해 공연된 연극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기와 여성


   이 글은 한국의 부동산 현실, 그중에서도 전세 사기로 집약되는 부동산 범죄를 다룬 웹툰과 연극을 겹쳐 보려 한다. 이를 통해 동시대 대중문화 텍스트 안에서 자산 증식에 대한 소시민적 욕망이 어떻게 젠더화되어 형상화되는지를 살피고, 여성을 범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배치하는 작품 속 시도가 갖는 양면성에 대해 조망한다. 

   논의할 작품은 표제에 부동산을 내세워 비슷한 시기 독자, 그리고 관객과 만난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유기 글/그림, 2024.1.13.~연재 중), <부동산 오브 슈퍼맨>(김수정 작/연출, 2023.10.14.~22.(초연), 2024.6.1.~9(재연)) 등 두 편이다. 부동산과 여성을 관련지어 논의하는 경우는 본격적인 강남 개발 이후인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서민의 박탈감, 중산층 진입의 욕망 등의 문제는 박완서의 강남 아파트를 산 교수 부인의 이야기인 「낙토의 아이들」(1978)에서부터 시작해 재개발을 둘러싼 부녀회의 욕망을 다룬 웹툰 <위대한 방옥숙>(스토리 매미/작화 희세, 2019.05.05.~2020.09.27.)까지 꾸준히 반복되었다. 염두에 둘 점은 <강남 1970>(유하 작/연출, 2015), <염력>(연상호 작/연출, 2018)의 경우처럼 대중문화 속에서 개발·재개발의 역학관계를 다룰 때는 남성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지만, 개발의 수혜를 입고자 하는 소시민의 욕망을 다룰 때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관련하여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불안한 경제상황 속에서 반복되었던 투기는 여성의 것으로 전유되는 일이 빈번했다. 전쟁 이후 사회 혼란의 주범으로 간주되었던 ‘사설계’를 주도하는 부인들이나 1970년대 후반부터 매체에 오르내린 부동산 투기의 주범 ‘복부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근현대사 속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직결되어 있다.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발생한 투기 심리를 여성의 전유물로 간주하며 문제의 핵심을 피해 가고 비판의 대상을 국가와 체제가 아닌 여성으로 지목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여성이 투기에 몰두하는 이유를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기사도 있었다. 한 언론은 “복부인의 욕구 단계는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며 여성이 상대적으로 안전 욕구가 강하고 사회 진출이 부진한 것을 복부인이 생기는 이유로 분석하기도 했다.1) 

   이 와중에 투기를 여성의 것으로 지정하는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1984년 한 신문 독자는 신문 기고를 통해 ‘복부인’은 여성 천시 단어로 공공매체에서 이 같은 유행어를 쓰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는 여성 학대의 사회적 악습에서 오는 콤플렉스를 여성의 사회 유린이라는 감정으로 희석시키려는 ‘투사’ 심리요, 또한 일종의 새디즘을 만끽하면서 ‘사회에 대한 아무런 저항 능력도 갖지 못한 여성’임을 확신한 데서 오는 여성 천시의 관습과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국민성의 병리적 일면"2)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자성의 움직임은 별다른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최시현이 저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3)에서 지적한 것처럼 부동산과 투기에 대한 책임은 오늘날까지도 젠더화라는 굴레를 통해 여성에게 전가된다. 지속적인 집값 상승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똑똑한 한 채’,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를 욕망하는 개인, 그중에서도 가정을 지탱하는 여성에게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국이 모든 부동산 정책에 실패하고 정책이 개인의 투자 욕망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시점, 선거철마다 부동산 이슈가 가장 첨예한 사안으로 떠오르는 이 상황에서 부동산에 대한 개인의 욕망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리고 여성 인물의 시선을 통해 부동산 문제에 접근할 때 기존의 시선을 넘어 무엇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여성이 전세 사기 주범이 될 때,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


   2024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현재의 부동산 문제를 다룬 범죄 스릴러물이다. 작품은 친구 부예지의 아파트에 얹혀살던 직장 여성 방지애가 우발적인 사고 후 부예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 방지애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부모를 잃은 후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부예지의 호의로 그녀의 집에 거주하게 되고, 직장에서는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던 중 부예지가 집 안에서 의자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방지애는 친구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집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시체를 냉장고에 유기한다. 이후 군대에서 휴가 나온 부예지의 동생이 집을 찾고, 방지애는 그가 누나의 시신을 발견하자 차가 고장 난 것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이후 전세 사기의 중심에 놓인 전 남자친구 공인우와 조우한 방지애는 자신이 자살한 것처럼 처리하고 완벽하게 부예지가 되어 더 좋은 집, 완벽한 가정을 욕망한다. 이 과정에 방지애는 자신과 부예지의 동창인 고다은과 전세 사기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나게 되며, 직장 동료이자 어릴 때부터 안정된 집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던 김민철이 방지애의 사기에 동조한다.

   웹툰은 좋은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이 우연한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1회는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방지애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프리랜서 부예지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대조해서 보여준다. 이어 웹툰은 시선을 옮겨 두 사람이 거주하는, 202X년4) 현재 시세가 10억 원에 육박하는 ‘서울시 부동구 기유동 기유센트럴아파트’를 원경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같은 회 부예지가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모든 일은 하루라는 시간, 작품상으로 1회 안에 발생한다.

   고시원에서 지내며 부동산을 갖고 싶다는 방지애의 욕망은 부예지와 조우하고 그녀가 죽음에 이르면서, 상황을 파악한 부예지의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점점 더 극악해진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에는 살인과 시신 훼손 및 유기, 방화 등 자극적인 사건이 이어지지만 흑백으로 처리된 웹툰에서 그 잔혹함은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지 않는다. 방지애가 부예지의 사체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부분이나 예금 인출을 위해 손가락을 잘라 지문인식을 하는 행위 역시 자극적이고 구체적이기보다는 만화적으로 압축되어 묘사된다. 

   주목할 점은 작품 속 방지애가 주도적으로 범죄를 도모하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동조자를 찾는 과정에서 더 큰 범죄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연재 중인 웹툰에서 부예지와 그녀의 남동생을 비롯해 사건에 관계된 네 명의 인물이 사망했으며, 누구 하나 추가로 사망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독자는 이 작품의 결말이 방지애의 파국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지만, 동시에 이 아슬아슬한 범죄 행각을 긴장감을 갖고 지켜본다. 실상 방지애는 독자 입장에서 몰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부예지의 동생에게 상황이 발각되자 사고를 방조했고, 공인우의 전세 사기 계획을 들었을 때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욕망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동참하여 자신을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다.

   현재(2024년 8월 30일, 유료 연재분 포함)까지 연재된 35회를 기준으로, 17회부터는 이야기의 핵심에 추격자로서 형사(20회)와 전세 사기 피해자인 방지애의 고등학교 동기 고다은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처럼 추격자와 피해자가 동조하여 가해자를 쫓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독자 입장에서도 방지애의 심리에 몰입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조망하게 된다. 이전까지 독자가 방지애의 시선을 경유하여 사건과 맞닥뜨렸다면, 이제 고다은의 시선을 통해 쫓아가는 것이다. 이에 더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같은 성별, 계층의 인물인데다 극악성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집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자 입장에서 누구 한 명을 응원하기가 어려워진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의 복잡성은 이 지점에서 형성된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평범한 직장인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전세 사기 집단의 소위 ‘바지사장’이 되고 살인까지 도모하게 되는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전개해 간다. 1회에서 이미 부예지가 사망하고, 이야기 중반에 이르면 방지애는 전세 사기에 가담해 빌라퀸이 되어 스스로 죽음을 위장하고 피해자를 양산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모든 출발점을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한 소시민적 욕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지애는 부예지의 집을 본인의 집처럼 이야기하면서 “바로 앞에 마트가 있어서 장보기 편하고, 근처에 호수공원도 있어요. 역세권이어서 지하철 타기도 편하고요.”(1회 중)라고 설명한다. 방지애가 부예지의 사망을 감추고 시신을 유기한 것은 그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방지애가 점점 극악해진 데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부예지를 동정했지만, 이제 부모님 사망 후 물려받은 부동산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부예지를 질투한다. 이 같은 일상적이고 익숙한 욕망이 우연한 사고와 맞물리게 되면서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회사 동료로 방지애와 엮이게 되는 김민철은 네 명의 동생을 둔 장남으로, 어릴 적부터 전세로 거주하며 계속 이사 다녀야 하는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서울의 직장에 취직한 후 가족과 절연한다. 그는 애초 부예지의 시신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계획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방지애에게 동조하지 않지만,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함께 움직이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에 더해 방지애가 범죄 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부예지의 집에 불을 지른 이후, 아파트 주민들은 그 집을 찾은 김민철에게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며 빠른 리모델링을 권한다(32회 중). 그렇게 이야기는 속물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공화국’ 속에서 잘살고 싶다는 인물들의 욕망이 어느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극의 중반 이후 사건의 피해자이자 추격자가 되어 방지애를 쫓는 고다은 역시, 애초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빌미로 방지애에게 아파트 명의 전환을 요구할 만큼 스스로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움직이고자 하는 인물이다.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부동산 시국이 초래한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을 형상화해 가며, 이 시기의 누구도 그 욕망으로부터 초연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작품에 대한 댓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다수 독자가 거리를 두고 방지애를 비난하는 동시에 그녀의 행각이 탄로 나는 것과 관련해 긴장감을 갖고 이야기를 지켜보게 된다. 너무 빠른 시간에 극악해져 가는 인물을 다루고 그 흐름의 개연성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현재의 독자들과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방지애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 캐릭터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적은 월급과 대조되는 사치스러운 소비를 강조하는 점이다. 곧 웹툰은 소비 지향적인 젊은 여성에 대한 온라인상 고정관념을 반복한다. 여성의 눈을 통해 한국의 부동산 현실과 여기서 파생된 범죄를 직시하는 웹툰이 여성의 소비와 저축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이 같은 소비 습관을 인물의 치명적 결함이자 이후의 범죄와 연계시키고 있음은 아쉬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은 여성 범죄자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기보다 그 욕망의 근원과 결과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여성 서사를 만들어낸다.   



   희생자이자 선동자로서 여성이 자리할 때, <부동산 오브 슈퍼맨>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부동산 사기 피해자가 된 영웅 슈퍼맨(이강호 분)의 수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극 중 슈퍼맨은 전쟁과 근대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분기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극단 아르바이트 및 소일거리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슈퍼맨이 전셋집을 구하게 되고 비로소 안정된 생활에 이르나 고지도 없이 집주인이 바뀌면서, 그리고 그 집주인이 전세 사기의 중심에 있는 ‘빌라왕’임이 드러나면서 수난사가 시작된다. 과거 슈퍼맨과 함께했던 영웅들, 그중에서도 슈퍼맨이 사모했던 원더우먼은 부동산 ‘일타강사’가 되는 등 영웅들 역시 세속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슈퍼맨은 재난 같은 전세 사기 속에서 피해자는 보호받을 수 없음에, 그리고 영웅이었던 자신은 무엇도 할 수 없음에 좌절한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을 제작한 극단 신세계의 경우 “이 시대가 불편해하는 진실들을 공연을 통해 자유롭게 하고자 한다.”5)는 것을 목표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망각댄스’ 시리즈), 성매매의 역사(<공주(孔主)들>), 장애와 약자 차별(<생활 풍경>) 등의 문제를 아우른 바 있다. 실제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된 작/연출 김수정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의 제도적 맹점과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다. 특히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렉처 퍼포먼스(강연과 공연을 결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공연의 형태)의 형식을 빌려 한국의 부동산 제도, 관련 용어, 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연극의 전반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한 슈퍼맨이 부동산 제도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결말과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는다. 초연과 재연의 구성 방식은 흡사하지만, 재연의 경우 공연 (2024년 6월) 직전 전세사기특별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면서 2부를 전폭적으로 수정했다. 

   2부는 배우들이 관객의 일부처럼 객석에 앉아 부동산 시국에 대한 각자 입장을 역설하는 토론 형식으로 시작하며, 이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의 논쟁과 그 앞에서 절규하는 피해자들의 형상을 대조하며 정치 혐오와 비판 메시지를 드러낸다. 이에 더해 세 개의 거대한 모니터를 통해 관련 뉴스와 부동산 정보, 그리고 슈퍼맨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겹쳐지며 연극이 갖는 함의는 보다 복잡해진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이 젠더 문제를 전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은 전적으로 슈퍼맨의 시선에서 극을 이끌어 가고, 관객과 슈퍼맨 사이에서 거리를 조정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역시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연극에는 슈퍼맨의 옆집 거주자이자 역시 전세 사기 피해자인 김명희(김보경 분)의 존재감이 부각되어 있다. 작품에는 영웅 캐릭터가 만드는 판타지, 부동산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정치 풍자 코미디, 그리고 강렬한 파토스를 이끌어내는 멜로드라마적 파국이 뒤섞여 있다. 이 중 김명희는 슈퍼맨의 옆집 주민이자 남편과 함께 고기집을 경영하는 소시민으로 등장하여 관객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낸다. 김명희는 같은 입장에 있는 남편보다 늘 앞장서서 움직이고, 분노하며, 또 먼저 무너진다. 가게를 잘 운영해 아이들과 함께 좀 더 큰 집으로 옮겨가고 싶다는 욕망은 전세 사기로 무너지며, 그는 결국 남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이 암시된다. 관객 입장에서 가장 이입하기 좋은 캐릭터였던 김명희가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함께 사망하면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비극성이 배가되는 것이다. 이처럼 극은 어떠한 판타지도 제공하지 않은 채 현실 자체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다만 김명희가 온전히 피해자로서의 위치에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연일 화두에 오르던 시기에 무대에 오른 재연 중 후반부 관객도 함께하는 토론 장면에서, 김명희는 사안의 보고자이자 회의의 중재자로서 자리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규합하고자 한다. 이어 그는 국회 밖에서 시위를 하며 전세 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에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곧 극 중 김명희는 범죄의 피해자이자 경우에 따라 선동의 주체가 되어 극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가졌던 부부, 그중에서도 김명희의 자리를 강조하며 피해자의 서사를 반복한다. 이에 따라 결말부에 이르러 김명희의 위치는 다시 피해자로 고정된다. 곧 그녀는 그렇게 사회적 재난의 희생자로 고정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람들을 규합하고 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선동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이 같은 복합적 위치는 창작진이 작금의 부동산 현실과 여성을 재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반복되어 온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를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불안을 감각하는 여성들


   살펴본 것처럼 현대사 속에서 부동산 광풍과 투기는 여성 혐오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맞닿아 있는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과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여성들은 각자 잘못된 부동산 정책 속에서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자리하며 그 문제성을 현시한다. 여기서 안정된 거주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욕망, 몸을 편하게 두고자 하는 심리는 이들의 일상과 선택을 좌우한다. 언론은 자못 객관적인 태도로 상황을 관찰하고, 경우에 따라 그 욕망에 천박함이라는 굴레를 씌워 혐오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염두에 둘 점은 그 욕망이 곧 한국 사회의 부산물인 동시에 개발 시대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 신문 기사는 저축, 친목의 고리인 ‘계’의 성행 및 변질과 관련하여 이 모든 투기 심리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안에서 오는 투기적 영리성과 중산 경제계급 가정부인들이 가계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는 것’이라 설명한다. 해당 기사에서 남편이 6·25  때 북으로 납치되었고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있다는 ‘가정부인’ 신 여사는 “계가 한 나라에 금융에 운영을 좌우하는 무서운 짓인지 알면서도 나날이 폭등하는 물가에 쪼들려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 교육을 중단할 수 없으니 정부에 어떠한 생활의 대책이 없는 한 양심에 울면서 계를 계속하여 생활 대책과 아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형편”6)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투자 혹은 투기 심리는 당국 및 위정자에 대한 불신 및 개인의 불안 심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본인의 위치가 공고하지 않은 자일수록 당연히 그 불안을 더 예민하게 감각한다. 남편의 납북으로 인한 좌익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홀로 아들을 남한 사회에 안착시켜야 했던 신 여사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국에서 죄악시하는 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과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그 불안을 감각하는 여성들을 형상화한다.  

   곧 잇따른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피해 구제책의 부재 속에서 등장한 두 작품은, 그 불안을 가장 가깝게 감각하는 여성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책, 그리고 시대의 모순을 들춰 간다. 웹툰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극단 신세계는 이전 공연을 적극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문화 속에서 전세 사기 가해자와 피해자로 등장했던 여성들, 그리고 그 현실적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이곳의 여성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지점은 어디일까. 극단적이고 과장되어 있을지언정 두 작품은 거시적인 자본의 흐름에서 소외된 자들의 몸부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징후를 드러낸다.  



 

1) 「복부인 왜 생기는가」, 『조선일보』, 1982.11.13.

2) 박양규, 「「복부인」은 여성 천시 매스컴서 안 썼으면」, 『조선일보』, 1984.6.24.

3) 최시현,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창비, 2021.

4) 작품상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연도는 ‘202X’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5) 극단 신세계 홈페이지 중. https://www.dramanewworld.com/intro

6) 「계의 실태는 이렇다」, 『경향신문』, 195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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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1
소설로 촉발되는 신정론(神正論)

소설로 촉발되는 신정론(神正論) 윤인로 신이 하는 일, 하려는 일, 그 일·의지의 정당성·정의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함. 곧, 신이 집행하고 관철시키려는 힘과 뜻의 부정의·부당함·악함을 의로워야 할 신에 근거하여 항소함. 이와 반대로 그런 항소·항고를 불가항력적으로 취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신의 의로움·정당함·선함을 불가피하게 인정함. 부당하고 불의한 신에 대한 항고와 뒤이어지는 그것의 취하·철회, 신의 정의에 대한 변호·변론·변신(辯神). 줄여 말해 신정론(神正論·Theodizee, 신+정의theós+díke의 합성어), ‘신≡정의’라는 상보적 합동체로 구성되는 신의 일·뜻·앎·말·법·힘의 복합체론. 이 복합성의 구축 상황으로서, 그런 상황의 재구축을 위하여,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 일』의 문장들을 다시 배치해 보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사랑이 한 일』(이승우, 문학동네, 2020), 다시 달리 촉발되는 「욥기」. §1. 롯의 환대를 받은 두 방랑자가 실은 소돔을 멸하도록 신에 의해 파송된 천사들임을 밝히자, 그 임박한 절멸 앞에서 롯과 그의 삼촌은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삼촌이 항의하고 호소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삼촌은 의인과 악인을 동일하게 취급해서 같이 죽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그 성안에 의인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 결국 의인이 열 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신의 답을 받아낸다) 롯은 항의도 하지 않고 호소도 하지 않”는바, 불의의 도시 소돔에 “의인은 없기 때문”이다. 일체의 모든 삶·관계에 고지되고 발효되는 정지·절단으로서의 신의 절멸·폭력. 신을 대신해 두 천사가 행하는 의인과 악인의 무차별·무분별, 그렇기에 신의 공정(公正/工程)에 제기되는 항의와 호소, 이에 대한 신의 조건부 응답. 항의자 삼촌과는 반대로 롯은 신의 일·폭력을 변론하는데, 신의 그 공정을 증거하고 보증하는 정초력으로서 그렇게 한다. 아래 두 대목 중 하나는 그런 롯을 표시하며, 다른 하나는 집-주인 아브라함으로부터 부당하게 추방당한 하갈의 ‘울부짖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인용에 의한 배치, 그 배치 속에서 발생되는 모종의 의미를 살펴보게 된다. [a] 사람을 울부짖게 하는 것이 악이다. 울부짖음은 고발이고 증언이다. 울부짖음이 신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유죄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확실한, 어쩌면 유일한 증거이다. 신은 ‘규탄하는 울부짖음’만을 유죄 증거로 인정하고 판결한다는 것이 천사가 롯에게 한 말의 내용이다. 롯은 이 성을 위해 울부짖지 못한다. [b]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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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1
무명(無名)의 상품, 번역의 연쇄

무명(無名)의 상품, 번역의 연쇄 : 네트워크 시대의 시와 저자성 이성주 1. 저자성의 균열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시 비평의 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는 저자성(authorship)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 쓰기에 인공지능을 포함한 다중 행위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저자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입장 역시 강하게 존재한다. 두 입장 사이에는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고, 그에 따라 저자-시-독자의 관계나 독창성(고유성)을 둘러싼 논의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관련 논의를 모두 정리하거나 판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성 비판이 오늘날 어떤 형식과 논리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최근의 평문 가운데 하나인 박상수의 「영원한 베타 테스트로서의 여름」(『문학동네』, 2025 가을호)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 비평은 2010년대 이후 한국 시에 만연해진 ‘납작함’의 감각을 핵심 문제로 진단하며, 저자성 해체 담론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 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참조가 된다. 박상수가 말하는 ‘납작함’이란 최근 시에 나타나는 시적 주체의 무력함, 대상에 대한 비관여성(非關與性), 타자와의 상호작용 약화, 그리고 ‘메타적 인식의 과정’만이 부각되는 경향 등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박상수는 최다영의 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시의 생산 주체를 비인간 행위자와 기술 장치까지 포함하는 연합적 모델로 긍정하는 최다영의 논리가 결과적으로는 주체의 저항과 행위 가능성 혹은 내면의 복잡한 역학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본 글의 맥락에 맞춰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자성 해체’를 동시대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승인할 때 타자성이나 윤리적 긴장이 소거된 ‘납작함’ 역시 쉽게 수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다영의 입장에 서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박상수의 글이 지닌 문제의식에 많든 적든 공감하지 않기란 어렵지 않을까. 확실히 최근 시에서 ‘타자와의 접촉면’이 얕아지고 있음은 박상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인터넷상에서 실수나 실언 하나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뒤집고 때로 그것을 근거 삼아 혐오를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박상수가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있다기보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의 글은 맥락이 다른 다양한 이론과 담론을 빠르게 호출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령 한병철과 마크 피셔가 별다른 매개 없이 나란히 놓이고, 현대 신학 담론의 어휘들은 그것이 형성된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문학 비

  • 관리자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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