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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국가의 가장자리에서

  • 작성일 2025-02-01

   문화와 국가의 가장자리에서

   ―검열과 복종, 혹은 비평의 장소


최진석



   1. 표류하는 현재, 폭력의 가시


   2025년 1월 19일 현재, 한국 사회는 격랑 위를 떠다니고 있다. ‘선진국’이자 ‘문화국가’라는 호명을 받아들인 지 수년 만에 벌어진 이변이 아닐 수 없다. 계엄과 탄핵, 그에 대한 헌법적 판단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은 그 누구도 미래를 예단하기 힘든 불확정의 시간만이 흐르는 중이다. ‘현재’라는 좌표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에 놓일지 짐작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문학과 문화, 비평에 관한 이야기는 짐짓 사치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든, 지금-여기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파도의 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예측할 수 없어도,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후에야 도착에 대한 기대나 불만, 감동이나 좌절, 혹은 두렵지만 새로운 출발도 가능할 테니까.

   지금의 사태와 문학장(場)을 연관 지어 말한다면, 아무래도 2023년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학과 출판 시장의 현황을 널리 알리는 국제적 행사의 홍보대사로 소설가 오정희가 위촉된 것에 대해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와 블랙리스트이후(준) 등이 항의 성명을 발표했고, 개막일 행사장에서는 송경동 시인 등이 반대 의사를 밝히다가 강제로 끌려 나갔던 사건이 그것이다.1) 알다시피 오정희 소설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깊이 연루된 문인이었고, 그에 대한 분명한 사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다시금 한국문학과 출판을 대표하는 행사의 얼굴을 맡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2) 블랙리스트, 즉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의 불길한 기운이 다시 한국문학을 뒤덮으리라는 불안과 공포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돌아보면 최근 2년 사이에 문화예술 창작에 가해진 검열은 수없이 많다. 2022년 5월 13일 광주광역시의 ‘호명(呼名) 5‧18거리미술전’에서 보조금 지원사업의 취지를 빌미로 후원이 취소된 것이라든지, 같은 해 9월 26일 부마민주항쟁 기념재단이 기획한 행사에서 가수 이랑의 노래가 배제된 것, 그로부터 며칠 후인 10월 4일 한국만화진흥원이 주최한 ‘전국 학생 만화공모전’에서 〈윤석열차〉의 의도를 문제 삼아 엄중 경고가 내려진 것 등이 그 출발점이다. 2023년에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판하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거나 지원 배제당했고, 2024년에는 도서관에 비치된 성평등·성교육·페미니즘 도서 2,528권 폐기되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차세대 미래 관객 육성 사업에서는 정치적 이념 문제가 조건으로 내걸리기도 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떠올려도, 최근의 시점까지 검열이 작동했음을 확인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곧장 우리 시대를 ‘검열의 시대’라고 단정짓기에는 무언가 불충분해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 법조문의 어느 조항에도 검열이 합법이며, 누구에게든 무엇에 대해서든 검열을 자행해도 좋다고 적혀 있지는 않다. 검열은 구체적인 법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작동한다는 데 대한 대중적 감응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또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스스로 묻고 저어하게 만드는 비가시적 권력의 문제라는 뜻이다. 블랙리스트가 한창 문제가 되었을 때 우리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그것이 나를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무엇이든 할 마음조차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예견되어 작동하는 불안과 공포에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검열은 곧 내적 복종의 강요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현재 진행 중인 이 사태가 정리되는 시점이 온다면, 요 몇 년 동안 언론과 공중, 문학장에서 실행되던 검열이 실제로 어떤 사건과 연결되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분명히 밝혀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실증적 보고서의 형태로 그 전모를 밝히고,3) 창작과 비평에서 갖는 파급 효과가 무엇인지 따져 보는 작업은 일단 기다려 보자. 지금은 문화국가라는 현대성의 영예로운 이름에 어떻게 검열이라는 폭력의 가시가 박히게 되었는지, 그것은 통치성의 관점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 차분히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는 비판으로서의 비평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장소를 타진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2. 검열, 감시와 처벌의 근대적 기원


   누군가의 생각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타인이 그것을 미리 열람한 뒤 전달 여부를 결정짓는 것. 이것이 검열에 대한 가장 간명한 정의일 듯하다. ‘누군가’란 자유와 의지를 갖는 임의의 주체라도 해당하며, 전달 과정에는 언론·출판·예술 등 다양한 매체가 포함된다. 그럼, 미리 열람하는 자는 누구일까? 다른 이의 생각을 미리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허락받고자 하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알기 위해서는 권위나 폭력이 행사된다. 따라서 미리 열람할 수 있는 자는 곧 권력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전달 여부의 결정 역시 권력의 소유자가 행사한다. 그렇다면 검열에 관한 앞선 정의는 다음과 같이 다시 기술될 수 있다. “검열이란 언론·출판·예술 등으로 표현되는 누군가의 자유로운 생각을 권력을 소유한 자가 사전에 열람하여 그 전달 여부를 결정짓는 강권적 행위이다.”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검열에 관한 엄격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다. 권력이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는 기제라 할 때 내적이고 외적인 강압이 동원되는 것은 역사의 사실이며, 검열은 언제나 그 핵심 장치로 기능해 왔다. 검열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개념의 정의가 아니라 그것이 지금-여기서 실행되는 실질적 양상에 있다. 헌법이 독재를 승인해야만 독재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검열도 법조문에 그것이 허락되어야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통념과 사실이 놓인 맥락은 다르며, 규범성 너머의 체감적 현실이 독재와 검열을 규정짓는다. 권력을 쥔 통치자가 피지배자의 생각이나 표현을 미리 열람하고 통제해 온 역사는 분명 오래되었지만, 그 실제적 양상이나 모습은 항상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서구 지성사에서 검열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논박으로 알려진 저술은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 1644)이다. 그에 따르면 검열이 행사되었던 최초의 기록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4) 이는 다분히 상식적인 추정과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검열의 대상은 우리 시대와 다르다. 고대 권력자의 사전 열람을 통과해야 했던 저술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신성 모독이나 무신론적인 성격의 글, 곧 신앙과 관련된 문헌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세상만사나 사회에 대해 회의주의적인 철학책이나 풍자문학 등은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진술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고대 세계는 흔히 신정 사회로 구성되어 있었고, 종교적 숭배와 정치적 통제는 한 묶음으로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되어 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모독 행위는 사제장을 겸한 통치자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었기에 반종교적 태도가 곧 반권력적 행동으로 치부될 수 있었다. 관건은 여전히 우리의 시대다.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등의 여러 영역이 독립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대의 기준으로 검열의 역사를 구분하고 분류하려 할 때는 정합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나타난다. 요컨대 검열이 정치적 강압과 폭력의 힘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시대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가 문제시하는 검열은 인간 역사 전체에 걸친 통시적 감시의 시선이 아니다. 검열이 정치적 문제로서 작동하는 지점, 특히 대중의 생각과 의지를 통제하는 통치의 기제가 되는 시점이 관건이다. 여기서 검열은 근대적 기원을 갖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쇄술의 발전과 직결되는데, 어떤 내용을 갖든 책의 형태로 대량 보급된 문서는 특정한 정보를 다수 대중에게 전달하는 강력한 매체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15세기를 전후하여 유럽 전역으로 보급된 인쇄기는 종교 서적뿐만 아니라 각종 세속적인 도서를 널리 퍼뜨렸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비교하게 만들었다. 방물장수를 통해 입수한 책으로 성서적 우주론 ‘너머’를 엿보았다는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나5) 중세적 정신주의 ‘바깥’의 세속적 세계를 전면화한 포르노그래피의 역사는 자유로운 발상을 통제하려는 검열이 우리 시대와 근접한 사건임을 반증한다.6) 검열, 곧 통치술로서의 감시와 처벌은 근대적 기원을 갖는다.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인간주의와 세속주의의 사회적 원칙이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지점이다. 방앗간 주인은 자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서 화형당했고, 포르노그래피는 근대 혁명의 촉발 요소가 되었기에 역사의 음지로 추방되어야 했다. 예의 검열의 작동이다. 근대사회와 국가의 태동과 더불어 검열은 개인의 생각과 의지, 욕망을 규율하고 감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치술로 부각된다.



   3. 리바이어던, 통치성과 주체성


   검열의 핵심적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없다. 자기 생각을 표명하려는 자의 신체를 구속하고 훼손하여 의지를 꺾고, 제삼자에게 이를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표현의 싹을 아예 잘라 내는 것이 통제의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니. 통치 양식으로서 폭력은 근대 이전까지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표출하여 자유로운 생각을 짓누르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푸코가 ‘호화로운 신체형(刑)’이라 부른 고문과 살해의 기술이 그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1975)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유명한 대목을 잠시 인용해 보자. 그것은 1757년 3월 2일, 루이 15세를 시해하려 했던 다미엥에게 내려진 처형의 기록이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 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7)


   수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다미엥의 처형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죄수는 처형 전까지는 두려움 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였지만 막상 처형이 시작되자 공포에 떨며 끊임없이 자비를 구걸했고, 수 시간에 걸쳐 처참하게 죽어 갔다. 이 장면을 죄수와 선고자, 처형 담당자 등 몇 사람만이 연출했을 리는 없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처형은 운집한 군중을 배경으로 두고 ‘쇼’처럼 집행되었다. 소집 명령과 호기심에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좋든 싫든 다미엥의 죽음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아야 했으리라. 공개 처형은 일종의 질문이다. 당신도 이자처럼 반역을 저지를 텐가? 이렇게 끔찍하게 죽을 텐데? 따라서 처형은 외적 검열의 행사에 비견할 만하다. 테러를 전시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다미엥에 대한 길고 자극적인 묘사를 마무리 지으며 푸코는 묻는다. 18세기 이후, 이렇게 화려했던 신체형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확실히 근대사회에 진입하며 공개적으로 죄수를 사형에 처하고 그것을 구경거리로 삼는 관습은 소멸했다. 만약 어떤 사회가 다미엥의 처형과 같은 법 집행을 쇼처럼 벌인다면, ‘우리 문명인들’ 대부분은 그에 혐오를 표시하고 그 사회의 무지몽매함을 비난할 것이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국제 뉴스는 우리와 관습과 규범이 다른 나라에서 그 같은 일들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며, 우리의 개탄을 이끌어 내곤 한다. 이때 ‘멀다’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 근접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서 있다고 굳게 믿는 ‘선진’과 ‘문명’, ‘문화’로 표방되는 근대성/현대성에 대한 거리감이다. 이 기준으로부터 멀면 멀수록 심리적 거부감은 증가할 것이다.

   푸코는 이 같은 처형의 공개성과 유흥성을 야만이나 무지의 소산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전(前)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통치 기술이었다.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진행한 강의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밝혔던바, 전 근대사회는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통치술에 의지했다. 즉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죽여서 그 싹을 잘라 버리고, 순종하는 자는 건드리지 않은 채 연명하도록 놔두었다. 저항의 태도를 겉으로만 나타내지 않으면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복종의 강요가 핵심이다. 반면, 근대사회는 정반대의 통치술을 채택했다. 이는 ‘죽게 내버려두고 살게 만드는’ 방식이다.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도태되는 자들의 삶은 ‘과감히’ 포기해 버리고, 순종하며 체제 내에 동화되려는 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생존의 기회를 주는 방식이 그것이다.8) 여기서는 자발적 복종이 관건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제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열심히 ‘노오력’하는 자들만 구제해 줄 테니 알아서 잘 따라오라는 것. 이런 지배의 전략에서 과거와 같은 잔혹한 고문과 살인의 전시는 더 이상 유용한 통치술로 인식되지 못한다.

   정치철학의 용어로 근대사회의 통치술을 주체화 과정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주체로서 개인과 집단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에 의해 호출받고 부름 받을 때 비로소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주체가 되라고 불러 줄 때 비로소 주체로서 자신을 인정한다. 주체화는 이와 같은 호명과 믿음의 기제이며, 권력이야말로 주체의 원천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푸코를 비롯하여, 알튀세르 같은 철학자들은 그러한 주체화의 명령자로서 국가를 지목했다.9) 군왕 개인의 자의적 통치에 의존하는 전 근대국가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추상적이며 관료제 기계에 의해 무감동하게 작동하는 리바이어던적 존재로서의 근대국가가 우리를 주체, 즉 국민으로 형성시킨다는 뜻이다. 

   국가라는 괴물은 신체를 고문하고 살해하는 물리적 폭력성을 뒤로 감춘 채 우리의 마음을 공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과거에는 군왕을 능멸하는 자의 혀를 잘라 냈다면, 이제는 권력자를 비난하는 자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이를테면, 아무리 억울한 상황에 처했거나 잘못된 처분을 받았어도 먼저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당신의 그런 행위는 혹시 국가의 적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국가를 비판하고 잘못을 들추려는 내 행동은 비도덕적이지 않을까? 국가를 비난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더 나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행위가 되어야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국가는 언제나 나 자신보다 우위의 실체는 아닐까? 내적 검열은 우리 마음 깊이 스며들어 생각과 감각의 자유로움을 박탈하는 힘이다.



   4. 문화와 국가, 지배의 역학


   오늘날 ‘문화’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삶의 양식을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언어와 문학, 역사와 전통, 생활관습 일체를 공유하는 집단이 갖는 특징을 통상 문화라고 부른다. 한 민족이 오랫동안 함께 모여 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관습과 규범의 총체가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을 문화 개념 속에 겹쳐 놓는 현상은 18세기 이후에나 벌어진 일이다. 그 이전까지 유럽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라틴 문명이나 한자 문명 같은 공통적 기반 위에서 각자의 민족적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라고 부를 만한 ‘민족문화’라는 것이 뚜렷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시대이다.

   유럽의 경우, 18세기 낭만주의의 도래는 곧 내셔널리즘의 확산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타민족과 구분되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야기했다. 문학과 언어, 역사, 전통에 대한 ‘발견’이 그 시기에 유행했고, 이를 포괄적으로 ‘문화’라는 이름 아래 통합했던 것이다. 유럽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뒤늦게 이 과정에 동참한 동아시아 역시 비슷한 역사적 행로를 밟아 왔다. 문화와 민족, 국가는 근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동체의 본질적 요소처럼 간주되었다. 가령, 문화를 갖지 않는 민족은 아예 민족의 정체성이나 실체조차 모호한 것으로 치부되고 기록될 가치도 갖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개념의 쓰임새와 역사를 잘 추적해 보면, 문화는 자연적이거나 본래적인 실체가 아니라 이웃한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구별하고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구성된 규범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가령, 문화라는 용어가 ‘밭을 경작하다’라는 단어에서 기원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외에는 별다른 함축 없이 오랫동안 방기되어 있다가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며 오늘날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주로 독일어권에서 이런 현상들이 벌어졌다.10) 이유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독일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이 ‘후진적’이라 간주되었던 탓이다.

   15세기 이래 유럽 중부에서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고 정치·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오랫동안 분열된 채 존립했고 프랑스만큼의 중앙집권적 통일성도 누리지 못했다. 이는 사회적이고 물질적 수준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발전 수준이나 생활양식을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했던 것이다. 중세 후반에서 근대 초까지 이루어진 ‘문명화 과정’은 야만적이던 중세 유럽인의 생활관습이 정치·사회적 성장 및 물질적 발전에 힘입어 ‘예법’(etiquette)의 차원으로 고양되는 과정을 가리켰다.11)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후진성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루쉰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일종의 ‘정신 승리법’에 해당하는데, ‘저들은 물질적으로 우세하지만 우리는 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관념적 자위행위가 그것이다. 괴테나 쉴러 등 18세기 문호들은 이런 태도를 통해 독일 민족의 정체성과 자기 확신, 미래적 전망을 확보하려 했고, 이것이 오늘날 문화(Kultur) 담론의 중요한 기축을 이룬다. 유사한 사례들을 우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통념과 달리 문화는 민족적 본질과 삶의 터전으로부터 자생적이고 자발적으로 자라난 정신적 성과물이 아니다. 역으로 그것은 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개인을 통합시키고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통치의 산물이었다. 흔히 ‘미풍양속’이나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개인에게 강제되는 다양한 규범들을 떠올려 보자.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집단에 충성하라는 요구,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교의는 진정 숭고한 것일까? 그것은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집단의 역사와 전통, 가치가 위대하면 할수록, 그것의 문화적 정체성이 공고하면 할수록 소속원들은 그것이 규율하는 내면의 검열에 늘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복종의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는 민족이든 국민이든 ‘우리’라는 공동체에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맹목적 믿음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한민족의 일원이자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민족의 동일성과 국가의 동일성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러한 믿음을 물리력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르쳐 무의식적으로 몸에 새겨 놓는다면, 그런 믿음은 개인의 인생과 분리 불가능해진다. 문화의 기능이자 힘은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의 체계를 개인의 마음과 신체에 각인시켜 결코 배반할 수 없는 ‘주체’를 양성하는 데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본격화된 근대적 문화 관념은 하층계급을 교화시켜 상층계급에 대해 진심으로 복종할 수 있는 주체를 만드는 데 있었다.12) 만약 거역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것은 법적인 처벌 이전에 양심의 통제에 먼저 걸려들고 가책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 개인의 내면에 그 같은 검열 기제를 심어 두는 것은 근대의 문화국가가 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문화와 국가가 결합함으로써 만들어진 복종의 진정성이 그 산물이다. 요컨대 근대인은 내면의 자기 검열을 통과함으로써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주체로 거듭난다.

   ‘훈육’은 푸코가 근대국가에서 문화가 수행하는 기능을 요약적으로 제시해 붙인 명칭이다. 내적 검열의 계기로서 훈육의 중요성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Matrix, 1999)에서 네오가 해커로 일하는 자신의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감히 벗어나려 들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의 진실성에 대해 각성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이 문화적 훈육의 과제이다. 정신을 지배하면 몸을 지배할 수 있다지만, 거꾸로 몸을 지배해도 정신은 지배된다. 18세기 이래 일반화된 초등보통교육은 체육 교과를 의무적으로 포함시켰고, 군대에서도 실제 전투와는 거리가 있는 제식훈련을 기본 훈련으로 수용하게 했다. 신체의 군상이 빚어 내는 시각적 화려함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와 행하는 자 모두를  주체화한다. 쉽게 말해, 주어진 규율에 스스로 복종하게 만듦으로써 집단 속에 기꺼이 동화되도록 만드는 것.

   습관적으로 몸에 익힌 행동 방식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규범을 쉽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복종을 아름답고 건강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조형한다. 복종하지 않는 자는 위선적이고 타락한 자이며, 공동체에 대한 반역자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24시간 깨어 있는 채 우리를 감시하는 내적 검열관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무의식적 검열 기제를 대중의 마음에 무차별적으로 이식하는 힘은 오직 국가의 권력에 있으며, 문화국가라는 이상은 그러한 폭력을 은폐하는 화려한 휘장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으나, 마음도 신체를 갖는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마음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언어의 힘이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마음은 국가에 복종하는 ‘제식훈련’을 받는 데,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탓이다. 따라서 언어를 조형하고 교육함으로써 마침내 일률적인 개인들의 삶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통치술의 가장 높은 목표에 해당한다. 근대국가는 이런 과제를 이미 ‘탁월하게’ 성취하며 성립했다. 조지 오웰의 『1984』(1949)가 보여 주듯, 언어는 우리를 형성하고 통제한다.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 언어 속에 갇힌 채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주체로 선언한다. 이 모든 것은 ‘문화’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옥에서 벌어지는 사건, 내적 복종에 다름 아니다.



   5. 내적 검열과 자발적 복종


   ‘문화국가’라는 말은 ‘선진국’이라는 경제적 위상을 가리키는 명명보다 더욱 영예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사회학의 고전적인 정의가 폭로하듯, 국가의 실상은 ‘폭력을 공식적으로 독점한 강제력의 집합’일 뿐이다.13) 근대국가는 상비군을 통해 무력을 독차지하고, 이를 합법적으로 운용하는 자기합리화의 거대 기계라 할 수 있다. 문화는 국가가 폭력성을 포장하고 합법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당의정(糖衣錠)에 가깝다. 물리적 폭력의 직접성을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정신 속에 녹여 버리는 간접적 폭력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렇게 문화는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지배의 규율 장치로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문화는 프로파간다, 즉 정치적 선전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그것은 비싼 비용을 요구한다.”14)

   한 걸음 더 나가 본다면, 근대국가의 문화는 국가주의적 폭력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폭력마저 포괄한다. 이 폭력은 국가가 일으키는 비즈니스에 시민을 유혹하고 참여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강제력을 말한다.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 행사의 경제적 구성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상적’ 생존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를 앞세우며 국가가 수행하는 각종 사업을 생각해 보라. 올림픽이나 월드컵, 엑스포, 국제회의 등 거대 단위의 국가적 행사가 문화를 빌미 삼지 않고 행해진 적이 있는가? 그 대부분은 수익성 행사를 통해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를 동반한다고 포장되곤 한다.

   예컨대 국가가 엑스포 준비를 위해 토지를 매입하고 도로를 깔거나 행사장을 건설하며 이런저런 시설물을 구축할 때, 이 흐름에 반발하여 예전의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각종 지역문화 축제, 시도별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건립, 시민 인문학 강의 등을 내세운 문화 행사 대부분은 국가가 관여하는 ‘비즈니스’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는 시민의 정서 함양이나 학습 계발을 위해 ‘공공’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수행되는 것은 특정한 계급적 이익에 기반을 둔 국가적 강권일 따름이다. 달리 말해, 문화국가의 요점은 직·간접적 강압에 근거한 ‘돈벌이’가 되기 십상이다.

   사정은 문화를 내세운 여타 영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의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지난 2년간 정부는 문화를 대내외적 국가정책과 사업의 근간처럼 앞세웠음에도, 어떠한 구체적인 비전이나 전망도 제시하지 못한 채 빛 좋은 개살구처럼 이 단어를 반복하기만 했다. 장기적 비전이나 전략, 방향성에 대한 정의도 없이 80~90년대식의 복지사업과 정부 주도의 공급사업, 개발 정책들이 문화의 이름으로 내세워졌던 것이다.15) 당연한 말이지만, 문화에 대한 충실한 개념이나 내용이 관건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를 비즈니스화하는 정책 속에서 문화가 대중을 홀리는 기제로 작용했고, 나아가 대중의 자기기만과 예속을 위한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며 한류가 일으킨 바람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한류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는 한국인 모두가 ‘한류 비즈니스’의 영업사원으로 뛰도록 강제하는 심리적 기제가 되었다. 한류는 우리의 영광이자 과업인 셈이다.

   한류는 자본주의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는 브랜드가 되었고, 이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가의 품격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개인 개인이 모두 ‘한국의 흐름’에 동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가치에 동일한 일치를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정이나 긍정의 단일한 이항 선택 중 하나로 자신의 생각을 통일할 수도 없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성싶다. 이 점에서 한류가 한국의 경제와 문화적 외양에 주는 긍정적 기여와는 별개로, 그것이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분출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단일성은 섬뜩한 것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이 흐름의 연장선에서 흡인하여 곧장 축하 연회 초청장을 보냈다가 거절당한 대통령의 이야기는 우스꽝스럽다 못해 씁쓸하다. 최종 지지율이 2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국가와 대통령을 동일시하고, 탄핵을 망국과 직결하는 심성은 탐욕이나 어리석음의 발로라기보다 오랫동안 국가에 길들여진 내적 검열, 또는 자발적 복종의 효과에 가깝다.

   이런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어딘지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우리 마음속의 여전한 국가주의를 의심해 볼 법하다.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은 근대국가의 수립을 통과하며 ‘네이션(nation)’ 즉 국가와 국민, 민족을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이나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리잡은 국민 형성 교육은 국가를 우리 정신과 신체의 지주로 각인되도록 강제했다. 지금 국가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쁘거나를 가릴 여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때, 그것은 다른 방식의 생각과 행동을 감추고 삭제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의 여러 길목에서 우리가 국가에 반대하는 한편으로 국가를 요청하고 또 의존했던 것은 우리가 국가의 이념에 매여 있고 국가라는 감각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예의 내적 검열과 복종의 상관 관계가 그것이다. 푸코의 권력 이론이 보여 주듯, 검열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촉발하며 주체로서 조형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방식의 생각과 특정한 방식의 행동, 그리고 특정한 방식의 주체일 뿐이다. 그에 결박된 채 머문다면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다른 주체로의 길은 영원히 열리지 않으리라.



   6. 지금-여기, 비판/비평의 장소 


   비판 혹은 비평(criticism)의 어원은 가르고 나눈다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 다시 이것으로부터 저것으로, 저것에서 이것을 또 한 번, 그리고 무한히 분별하는 데 비판/비평이 성립한다. 푸코는 이를 ‘어떻게 통치받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 맥락화했다.16) 통치는 다양하게 갈라진 삶의 행로를 특정하게 구분 짓고 어느 하나의 길만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며 특정한 주체가 되도록 강요한다. 흔쾌히, 자발적인 ‘나’의 동의를 통해. 비판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무작정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길이 특정하게 규정된 길임을 인식하고, 여기 보이지 않는 다른 길이 있음을 아는 것. 거기에 비판의 진실이 있다.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비평의 길이 그에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특정한 방식으로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이며, 항상 ‘다른 관계’를 모색하는 기예(art)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삶의 기예는 외적인 검열뿐 아니라 내적인 검열로부터도 일탈하는 반역이고, 척도 없는 길(an-arche)에 대한 탐색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길 바깥의 길’이자 ‘문화 이면의 반문화’, ‘국가 너머의 무국가’를 향한 자리에 비판/비평이 있을 터.

   지금 우리의 삶에서 국가를 제외한 잉여 지대는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일상생활의 모든 면이 국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깥’과 ‘이면’, ‘너머’의 순간에 대한 요구는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망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말한다면 보이지 않는 지대는 아직 구성되지 않은 시간, 구축되지 않은 공간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을 따름이다. 순전한 가상의 시공간, 존재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에 존재할 수도 있는 지평을 여는 것은 창안하는 사유의 글쓰기일 것이다. 문학적 글쓰기의 장에서는 시인지 소설인지 그 무엇이라 부르든. 지금-여기서 시작하되, 지금-여기를 장악한 것의 이면, 바깥, 너머의 잉여 지대를 가르고 나누어 판별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검열 혹은 복종의 한없는 문답을 중단시키고 다른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 비판/비평이 움트는 장소가 여기 아닐까? 물론,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근대는 이미 저물었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황혼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 저물녘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 수 있기에 안타깝게도 석양만 바라보다 지쳐 소멸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지금-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이 시간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결단할 필요는 있다. 두렵고도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될 테니까.



1) “‘블랙리스트 부활’ 논란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서 문화예술인들 출입 제지”, 『프레시안』 2023년 6월 14일자.

2) 전체 상황을 간명히 요약한 글로는 김미도, 「블랙리스트, 끝나지 않은 숙제」, 『뉴래디컬리뷰』 9, 2023 가을호, 153~165쪽을 보라.

3) 박근혜 정부 시절에 벌어졌던 검열의 진상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가 10권 분량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백서 전체는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열람할 수 있다.

4) 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 박상익 옮김, 소나무, 1999, 2장. 동양사에서 분서갱유가 기록된 것은 진시황 치세인 기원전 213년 경이니 더욱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5)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김정하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126~128쪽.

6) 린 헌트 외,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전소영 옮김, 알마, 2016, 9장.

7)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오생근 옮김, 나남, 1994, 23쪽 이하.

8)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89쪽.

9) 최진석, 『불가능성의 인문학』, 문학동네, 2020, 155~158쪽.

10) 외르크 피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문명과 문화』, 안삼환 옮김, 푸른역사, 2010, 150쪽 이하.

11)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I, II』, 박미애 옮김, 한길사, 1996.

12) 최진석, 『불가능성의 인문학』, 460-461쪽.

13) 막스 베버, 『막스 베버 선집』, 임영일 외 옮김, 까치, 1991, 208쪽.

14) 마르크 퓌마롤리, 『문화국가. 문화라는 현대의 종교에 관하여』, 박형섭 옮김, 경성대 출판부, 2004, 22쪽 이하.

15)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7가지 실정」, 문화연대 누리집 자료실.

16)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오트르망 옮김, 동녘, 2016, 44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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