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 작성일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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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류수연
1. 지금은 웹소설의 시대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일까, 모국어 능력일까? 물론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지만 부득이 한 쪽을 골라야 한다면? 수년 전이라면 당연하게도 ‘외국어’라는 답변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한 초벌 번역이 보편화된 오늘의 관점에서라면, 그 답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바로 2022 한국문학 번역신인상에서 말이다. 웹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40대 일본인의 한국어 실력이 초급 수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당선자는 AI를 활용해서 초벌 번역을 진행했고, 그 뒤 자신이 일본어 표현을 가다듬었다는 것이었다. 당락을 결정한 것은 만화적 표현과 리듬에 익숙한 당선자의 표현력이었겠지만 번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언어능력 없이 AI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뒤로 채 2년도 되지 않아 생성형 AI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으니, 어쩌면 그 혼란은 이러한 기술 변화에 대한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웹 서사의 달라진 위상을 공공연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AI 번역만큼이나 문학번역의 부문에 웹툰이 있다는 점도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웹 콘텐츠에 부여되었던 수많은 평가절하를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웹-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여러 콘텐츠가 등장한 지 불과 20여 년, 그 확장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웹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선발 주자인 웹툰과 후발 주자인 웹소설 모두 대중문화의 절대적 강자로 부각되었다. 거기엔 이들 콘텐츠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 콘텐츠가 다양한 미디어믹스 과정에서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웹 기반 서사가 트랜스미디어의 확실한 강자로 부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웹소설의 경우에는 선발 주자인 웹툰의 원천IP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웹 콘텐츠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회차에 살펴보았던 케이팝 스토리텔링 역시 이러한 웹 콘텐츠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바,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콘텐츠로서 웹 기반 서사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한 정점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중심에는 또다시 이야기가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각축을 벌이는 웹 플랫폼이라는 가상공간, 그리고 그곳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웹소설의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취향의 타파스?
일반 문학과 함께 웹소설을 비평적 연구 대상으로 삼은 지 어언 10년, 최근 들어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과거와 달리 웹소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웹소설을 읽는 사람이든 읽지 않는 사람이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웹소설이 일반화되었음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재벌집 막내아들〉(2022)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전에도 웹 기반 서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전 세대에 고르게 영향을 끼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작품은 한국 웹소설에서 하나의 ‘클래식’이 되어 버린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코드를 사용한 작품으로, 한국사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사건들을 무대로 회귀자이자 빙의자인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드라마의 성공은 원작인 웹소설, 더불어 웹툰까지 이슈화되게 만들었다. 더불어 웹 기반 서사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덕에 지금 이 글 역시도 웹소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힘을 덜 들이면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호모나랜스(Homo-narrans)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인간의 본능임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삼고 말을 통해 표현되었던 이야기가 문자라는 기호를 얻어 종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지만, 본능에 새겨진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문자를 넘어 영상으로, 종이를 넘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오히려 영역을 확장하였다. 어쩌면 이야기의 욕망은 언제나 가장 빠른 매체와 가장 새로운 표현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웹소설의 부흥은 바로 여기에 맞닿아 있다.
웹소설은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만든 결과물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발표되는 장르소설은 오래도록 문학계에서 일종의 업둥이처럼 취급되었다. 하지만 웹 플랫폼이라는 뉴 미디어와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웹소설은 기술 문화의 총아인 디지털 환경 속에서 배태되고 성장한 대표적인 콘텐츠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과의 연계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기존 문학과는 다른 웹소설만의 특수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마땅히 스토리텔링이라는 더 넓은 틀 안에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는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디지털이라는 가상공간이 열리는 그 시작점에서 본격화된 것이니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가.
사실 스토리텔링은 서사를 지칭하는 내러티브와 그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과 짜임을 가진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내러티브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 그 자체, 즉 ‘이야기하기’라는 동적인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는 디지털 시대의 초입에서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자로 만들어진 텍스트와 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 디지털 기호와 그 가상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발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디지털이라는 기반 위에서 다양한 서사가 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개념을 통해 이야기의 외연은 거침없이 확장되었다. 허구와 실재, 언어와 기호만이 아니라 그림과 소리, 더 나아가 눈빛과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 안에 흡수되었다. 각기 다른 장르와 매체로부터 도출된 모든 이야기가 그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문화적 샐러드 볼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토대 위에서 탄생한 웹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페인 요리 타파스와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안주 혹은 전채요리를 뜻하는 타파스는 적은 양의 음식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다. 언뜻 우리의 밑반찬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그 맥락은 전혀 다르다. 두루 나누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먹는다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웹소설은 이러한 타파스처럼 개개인의 취향에 꼭 ‘맞춤’ 되고자 하는 텍스트이자 콘텐츠이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맞춘다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 조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웹소설이 그 무엇보다 웹이라는 디지털 환경 위에서 탄생했다는 바로 그 점이다. 디지털 가상공간으로서 웹은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물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에 가까운 자유를 가진다. 하루에 웹에 업로드되는 콘텐츠의 양도 어마어마해서 전체 가짓수를 하나하나 세는 것은 불가능하다. 트래픽의 양으로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웹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는 웹 콘텐츠로서 웹소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웹소설 시장은 포털을 기반으로 성장한 메이저 플랫폼인 네이버 시리즈나 카카오페이지, 전통(?)의 강자 문피아와 조아라, 성인 독자를 표적 독자로 삼아 성장한 리디 외에도 우후죽순 등장한 플랫폼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레드오션을 이루고 있다. 이들 플랫폼에는 매일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업로드된다. 하지만 거기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직접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읽고 있던 작품의 회차가 종료되는 지점에 유사한 작품들이 추천되기 때문에 고민 없이 다음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 웹 플랫폼이 자신의 취향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있다는 데 따른 거부감을 눌러둘 수 있다면, 원하는 만큼 자기 취향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권당 결제가 아닌 회당 결제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 손해 없이 독서를 중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웹 기반 서사의 등장은 2000년대 전후로 본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미디어가 변화되면서 웹이라는 매체 위에서 구축된 웹 서사의 초기 형태는 ‘인터넷 소설’로 불렸으며, PC통신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마추어리즘에 근간한 서사 양태로 평가되었다. 웹페이지에 연재되는 인터넷 소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해서, 인터넷 소설을 지칭하는 ‘인소’라는 말은 사실상 멸칭에 가까웠다. 일부 작가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 대중적 인기가 그대로 평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였다. 웹 플랫폼을 기반으로 등장한 웹툰은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웹툰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웹소설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인터넷 기반 장르소설이 플랫폼의 주요 콘텐츠로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웹소설은 기존 인터넷 소설과 그 태생은 유사했지만, 양육 조건이 완전히 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2차 가공 없이는 작가로서의 대우도 실질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인터넷 소설 작가들과 달리 웹소설 작가들은 자신이 쓴 작품으로부터 실질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창작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산업 기반의 변화는 그렇게 웹소설의 창작 및 유통에 개입된 여러 작업을 ‘직업’으로 호명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창작 활동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산업에 끌어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웹 플랫폼이라는 전문 작가의 무대 역시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웹소설이 이렇게 ‘취향의 타파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많은 작가가 플랫폼에 유입할 수 있도록 만든 수익 구조 덕분이라 할 것이다.
3. 웹소설이 이끄는 환류
웹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그것이 그 무엇보다 미디어믹스에 유용한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이는 단시간 내에 가장 멀리까지 그 파급력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 장르이며, 동시에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산출할 수 있는 산업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웹소설의 강점은 작품 생산에 필요한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크다는 점이다.
웹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미디어믹스는 바로 웹소설-웹툰 사이에서 발생한다. 현재 노블코믹스(Novel to Comics)라 불리는 웹소설 원작의 웹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였다. 어느 정도 팬덤을 형성한 웹소설들이 인기에 힘입어 웹툰화되었고, 그것은 원작인 웹소설까지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시너지를 야기했다. 특히 빅테크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던 인기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웹툰화가 원작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2019년 이후 인기 웹소설 작품의 웹툰화는 하나의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웹소설-웹툰으로 이어지는 미디어믹스는 웹소설 원작의 영상화 또한 가속화하였는데, 실제로 2010년대 중반부터 2025년 현재까지 방송 및 영화계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봇물 터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웹소설의 어떤 면이 이토록 다양한 미디어믹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원천IP로서의 매력이다. 산업 자체가 커지다 보니 많은 예비 작가가 몰리면서, 그만큼 매력적인 스토리텔링도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의 양적인 증가가 그대로 콘텐츠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양적인 팽창은 확실히 질적 성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소설 시대와는 다르게, 거대한 산업이 된 웹 플랫폼을 타고 흥미롭고 유의미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상업적이거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수준 미달의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이야기로 독자의 관심을 끌며 미디어믹스의 가능성을 내포한 더 많은 작품이 거기에 있다.
이러한 웹소설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웹소설의 하위 분류를 통해 좀 더 살펴보자. 웹소설의 하위 분류는 주로 ‘-물’로 구분된다.1) 물론 거기엔 일관된 기준이 없고 시시각각 작가-플랫폼-독자의 니즈에 맞추어 생성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일단 각 플랫폼에서 자주 언급되는 하위 분류를, 그 명칭이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바를 기준으로 다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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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분류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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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가족물, 먼치킨물, 악녀/악당물, 여주물, 용사물, 착각물(오해물), 천재물, 캐빨물, 피폐물, 후회물, BL(Boys Love)물, GL(Gorls Love), TS(Trans-Sexual)물, 헌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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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빙의물, 연예계물, 육아물, 이혼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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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무협물, 아포칼립스, 오메가버스, 오피스물, 이세계물, 좀비물, 하렘물, 환생물, 회귀물, 던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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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대표적 하위 분류 정리-가나다순>
주목해야 할 것은 웹소설의 이러한 하위 분류 체계가 미디어믹스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웹소설의 하위 분류는 작품의 서사를 직관적으로 나타내는데, 그에 따라 각기 분명한 표적 독자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것이 2차 가공의 진행에 상당히 유리한 지점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최근 흥미로운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K-컬처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원천IP로서 웹 서사의 위상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OTT 플랫폼을 통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인기를 얻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사례를 보면 그 맥락을 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돌 멤버인 류선재와 열성팬인 임솔의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의 원작은 카카오엔터의 웹소설 〈내일의 으뜸〉(김빵, 카카오페이지)이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1회차 3.1%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회차인 16회차에는 5.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방영된 〈눈물의 여왕〉이 5.9%에서 시작해서 24.9%의 시청률로 종결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럼에도 〈선재 업고 튀어〉의 신드롬은 동 시기에 방영된 인기작 〈눈물의 여왕〉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화제성 수치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OTT 플랫폼을 통해 재시청과 입소문을 통해 인기몰이를 이끌었다. 그런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입소문이 확장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원천IP인 웹소설-웹툰이었다는 점이다.
원작인 웹소설 〈내일의 으뜸〉 2019년 12월15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가 시작되었고 2020년 1월 31일까지 에필로그와 외전이 이어졌다. 연재 1년 반 뒤인 2021년 9월 28일부터 동명의 웹툰이 같은 플랫폼에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웹툰 연재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2024년 4월 8일부터 5월 28일까지 tvN 채널에서 〈선재 업고 튀어〉가 방영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콘텐츠는 동시다발적인 진행을 보인다. 2020년 1월에 외전까지 연재가 종료되었던 원작 〈내일의 으뜸〉은 동명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한 2021년 9월 28일의 다음 날인 29일부터 특별 외전을 업로드했다. 또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방영되기 직전인 2024년 4월 3일부터 4월 16일까지 총 14화의 ‘IF 외전’이 연재되었다. 이것은 원천IP와 미디어믹스 된 2차 가공 콘텐츠들이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시너지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웹소설 〈내일의 으뜸〉(좌), 웹툰 〈내일의 으뜸〉(중),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우)
출처: 카카오페이지, tvN
실제로 카카오엔터에 따르면 ‘원작 웹소설과 웹툰이 모두 드라마 방영 후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웹소설은 조회수와 매출이 4배/8.2배 증가했고, 노블코믹스(Novel to Comics)인 웹툰은 조회수와 매출이 3.6배/5.5배 증가’(김성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인기 IP ‘내일의 으뜸’, ‘템빨’ 2차 창작 성과 공개”, 『게임포커스』, 2024.05.01.)했다고 한다. 이는 하나의 원천IP,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한 2차 가공 콘텐츠까지 다각적으로 향유하는 문화가, 웹 콘텐츠에 대한 일상적인 소비 방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웹소설 〈내일의 으뜸〉과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사이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사실 이것은 웹 플랫폼을 기반으로 형성된 웹소설-웹툰 콘텐츠가 미디어믹스 되었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향유 방식으로, 2020년대 이후엔 웹 콘텐츠에 어느 정도 특화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보고서(「2022년 웹소설 분야 산업 현황 실태조사」, 2023.09.06., 214~215쪽)에 따르면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차 저작물 콘텐츠 이용자 가운데 원천 콘텐츠인 웹소설과 2차적 저작물 콘텐츠를 모두 본 이용자는 46.3%에 달한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과반에 가까운 이용자들이 하나의 원천IP를 다각도로 향유하는 미디어믹스를 웹 콘텐츠에 대한 일상적인 소비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의 향유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빅테크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한국 웹 플랫폼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K-웹 콘텐츠가 글로벌한 IP로 성장해 온, 그리고 향후 성장해 갈 수 있는 잠재성과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4. 인식적 전환의 필요성
이렇게 쓰고 보니 웹소설의 미래는 온통 장밋빛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웹 플랫폼 산업이 거대하게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문제는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웹소설-웹툰은 미디어믹스의 원천IP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 문화 바깥에 존재하는 일종의 아마추어 리그처럼 인식되는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콘텐츠 IP를 중개하고 유통하는 플랫폼에 집중된 시장구조 속에서 콘텐츠 생산자로서 작가와 콘텐츠 소비자로서 독자가 소외되는 측면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더욱이 K-웹 콘텐츠 산업은 현재 중국과 라이벌 구도를 가지며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광대한 내수시장과 엄청난 사용자를 가진 중국의 공세 앞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국은 양적인 측면에서 웹 콘텐츠 IP 산업을 압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다른 형태의 문화상품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 원천IP를 고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웹소설 분야의 성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3년부터 유료 서비스 모델을 출시하면서 태동한 중국 웹소설 시장은 2020년 약 283억 위안(한화 5조 원 이상) 규모를 이루었으며, IP를 활용한 2차 창작물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된 중국 드라마의 60% 이상이 원천IP가 따로 있는 IP 드라마이며, 그 대부분이 웹소설 IP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한국출판문화산업진훙원, 「2022년 웹소설 분야 산업 현황 실태조사」, 2023. 09. 06., 29~32쪽).
따라서 현재 한국의 웹소설은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토리텔링으로서 웹소설이 콘텐츠 시장에서 우위를 점거하기 위해서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웹소설-웹툰-영상이라는 환류가 놓여 있다. 따라서 미디어믹스의 토대를 담당하는 웹소설의 중요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웹소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시장은 성장했지만, 인식은 여전히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웹 콘텐츠 IP 산업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이를 개선하는데 충분하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웹소설의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구조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웹 콘텐츠가 그 자체로 중요한 상품성을 인정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상품을 넘어 동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적 장르의 하나임을 긍정하는 가치가 부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다른 서사 장르와 마찬가지로 웹소설도 한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예술 장르로서 제대로 존중하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학계의 변화가 시급하다. 웹소설은 그 뿌리가 문학임에도 문학의 영역 안에서 가장 외면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웹소설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주류 연구에서는 여전히 일종의 이단아로 취급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뿐이랴. 거대 플랫폼에 지배되는 산업 안에서 비평의 자리는 공백에 가까우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웹소설에 대한 연구와 비평의 확대는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웹소설이 질적인 도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플랫폼의 상업성으로부터 좋은 작품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인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스토리텔링의 한 축을 인식되고 있는 웹소설에, 이제야말로 우리 문학계의 진중한 시선이 모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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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 연재 |
1) ‘-물’이라는 분류의 기원은 일본 만화의 분류 체계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용어가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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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의 상품, 번역의 연쇄 : 네트워크 시대의 시와 저자성 이성주 1. 저자성의 균열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시 비평의 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는 저자성(authorship)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 쓰기에 인공지능을 포함한 다중 행위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저자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입장 역시 강하게 존재한다. 두 입장 사이에는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고, 그에 따라 저자-시-독자의 관계나 독창성(고유성)을 둘러싼 논의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관련 논의를 모두 정리하거나 판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성 비판이 오늘날 어떤 형식과 논리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최근의 평문 가운데 하나인 박상수의 「영원한 베타 테스트로서의 여름」(『문학동네』, 2025 가을호)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 비평은 2010년대 이후 한국 시에 만연해진 ‘납작함’의 감각을 핵심 문제로 진단하며, 저자성 해체 담론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 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참조가 된다. 박상수가 말하는 ‘납작함’이란 최근 시에 나타나는 시적 주체의 무력함, 대상에 대한 비관여성(非關與性), 타자와의 상호작용 약화, 그리고 ‘메타적 인식의 과정’만이 부각되는 경향 등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박상수는 최다영의 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시의 생산 주체를 비인간 행위자와 기술 장치까지 포함하는 연합적 모델로 긍정하는 최다영의 논리가 결과적으로는 주체의 저항과 행위 가능성 혹은 내면의 복잡한 역학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본 글의 맥락에 맞춰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자성 해체’를 동시대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승인할 때 타자성이나 윤리적 긴장이 소거된 ‘납작함’ 역시 쉽게 수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다영의 입장에 서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박상수의 글이 지닌 문제의식에 많든 적든 공감하지 않기란 어렵지 않을까. 확실히 최근 시에서 ‘타자와의 접촉면’이 얕아지고 있음은 박상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인터넷상에서 실수나 실언 하나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뒤집고 때로 그것을 근거 삼아 혐오를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박상수가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있다기보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의 글은 맥락이 다른 다양한 이론과 담론을 빠르게 호출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령 한병철과 마크 피셔가 별다른 매개 없이 나란히 놓이고, 현대 신학 담론의 어휘들은 그것이 형성된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문학 비
- 관리자
- 2026-01-01
등 돌린 김은자의 이미지와 무등산 김서라 1. 등 돌린 김은자의 사진 이미지는 그것을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 자체보다는 사물이나 사건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쉽게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에 동일시되기가 쉽다. 이 문제에 맞닥뜨린 근대 철학자들은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고 인간의 지각 방식 자체를 문제시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론과는 별개로,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의 방식으로 이미지가 그 사물, 사건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 때문이다. 이미지는 그 사물이나 사건과 마주한 시간을 보존한다.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였던 뒷산이 야트막한 산에 불과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미지의 역사는 사실이나 이념이 아니라 ‘낙차’나 ‘문턱’처럼 감각되곤 한다. 적어도 발터 벤야민은 낙차나 문턱의 감각으로 이미지 속의 역사를 파악한 바 있다. 지금도 그 방법은 유효하다. 어떤 사진이 주어진다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나 피사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나 분석보다, 그 사진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진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이 ‘그때’나 ‘지금’을 사진보다 더 또렷하게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1964년 4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있다. 흰 천을 쓰고 한복을 입은 듯한 여성의 뒷모습이 타원형 프레임 속에 있다. 마치 옛 초상 사진의 프레임 속에 수수한 차림의 여성의 모습이 담겼지만, 이 여성의 뒷모습만 가지고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진 아래에는 작은 활자로 “무명옷을 입은 「어머니」 김 여사는 사진 찍기 마다고 흰 수건 쓴 머리를 돌려댔다.”고 쓰여져 있다. 이 사진이 함께 실린 기사는 그를 ‘어머니’로 소개하면서 등 돌린 뒷모습을 포착한다. 기사의 제목으로는 ‘숨은 나이팅게일’, 부제로는 ‘삼밭실의 무등원, 죽음을 이긴 새마을의 어머니’라고 달았다. 이 사진과 관련한 기사 내용은 이 무등원과 ‘김 여사’를 다음처럼 소개한다. “광주 무등산 중턱 삼밭실 일대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2백30명에 달하는 폐결핵환자, 앉은뱅이, 간질병환자, 정신병자 등 불구자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진 38동의 집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의 영도자는 연약한 한 사람의 중년부인, 의지할 곳 없는 환자들에게는 어머니이자 누나요, 구세주이기도 하다. ···(중략)··· 「가톨릭」 재단의 손으로 운영되는 제중병원은 가난한 결핵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왔으나 나을 수 없는 환자를 언제까지나 입원시킬 수는 없어 이들에게는 부득이 퇴원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병 때문에 패가망신이 된 환자들에게는 유리걸식밖에 할 길이 없었다. 이금
- 관리자
- 2026-01-01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3 -오늘의 한국문학과 문학 시장에 대하여 류수연 1. 노벨문학상의 낙수효과? 2020년대 미디어믹스의 원천IP로 주목받는 것은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웹 콘텐츠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그러한 매체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콘텐츠가 요구되었고, 웹상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현재 웹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로 콘텐츠인 동시에 또 다른 콘텐츠의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활자로 된 스토리텔링이 영상미디어로 2차 가공되는 일은 비단 최근에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다. OSMU나 미디어믹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실 이러한 방식의 콘텐츠 확장은 일상적으로 있었다. 무엇보다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은 가장 오랫동안 원천IP로 각광받았던 이야기 그 자체였다. 하나의 소설이 극이 되고, 또 다른 소설의 영감이 되고 패러디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과정이다. 트랜스미디어 환경이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을 더욱 가속화하고 확대하였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이야기의 구전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의 신체라는 미디어를 활용한 확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발생된 2차 가공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로 인해 편집과 각색이 더 시시각각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애초에 이야기의 고유 속성이라 할 만큼 아주 익숙한 방식에 가깝다. 문자에서 이미지와 극으로, 다시 영상과 미디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그 무엇보다 문학이 가장 잘 해 왔던 일이니 말이다. 문학의 영상화는 영화산업의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미디어믹스에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1960년대 문예영화일 것이다. 영화산업이 부흥하면서, 당시 많은 문학작품이 영화의 원천 텍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부터는 TV 단막극을 통해 많은 문학 텍스트가 영상화되었고, 이러한 시도는 2020년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금희 원작의 (2018), 장류진 원작의 (2020)과 (2025) 등의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트랜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예측되는 문학의 미래는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하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문학의 위기론은 40년 가까이 논의되는 동안 이제는 잊을 만하면 꺼내는 해묵은 불편함이 되었지만, 웹 콘텐츠의 등장 이후에는 위기론 자체도 언급되지 않을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읽기’의 위기를 기정사실화했다면,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에는 ‘쓰기’의 위기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생성형 AI가 문해력까지 대체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근현대문학사의 여러 굴절마다 제기되었던 문학의 위기론은, 어쩌면 그래도 배
- 관리자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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