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피로
- 작성일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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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소설의 피로
양지예
노엘 갤러거의 무대를 보며 음악가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Talk Tonight>. 그의 젊은 시절 방황하던 경험과 더불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 여인에 대한 곡이다. 노래는 발표한 지 삼십 년 가까이 되어 가고 무대 위 머리 희끗희끗한 노엘 갤러거에게서는 이제 방황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연주자와 합을 맞추는 모습이 흥겨울 정도다. 아련한 원곡의 분위기 역시 세월을 따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편곡을 입었다.
음악은 어떻게 나에게 올까. 일단 누군가 곡을 쓰고 발표해야 한다. 청자인 나는 플랫폼을 통해 음원을 감상하거나 드물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앨범을 사기도 한다. 음악가에게는 다른 홍보 방법도 있다. 대중음악가라면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거나 음악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때로는 음악과 관계없는 방송이나 행사에도 출연하는데,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겠지만 역시 주는 새 노래 홍보를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신곡은 끊임없이 피로(披露)된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할까.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또한 수만 번은 반복하여 들었을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할 수 있는 걸까.
음악가는 본인 노래의 첫 청자다. 작곡에 참여하지 않는 가수라 하더라도 비슷하다. 곡이 만들어지는 영감의 그 순간부터 완성 후 녹음 과정까지 좋은 기억도 싫은 기억도 낱낱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내면의 갈등뿐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창작자 홀로 만드는 음악이란 없다시피 하다. 사람이 여럿 모였는데 과정이 언제나 매끄러울 수는 없다. 드물게 하늘이 내려 준 노래가 어려움 없이 착착 완성된다 한들 매끈한 표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이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아름답기만 한 창작의 과정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겉보기를 아름답고 멋지게 만드는 일이란 사실 어렵지 않다. 그저 포장 기술이다. 세상에는 정말 엄청난 포장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실 다지기보다는 포장 기술을 익히는 쪽이 빠르다. 포장이 어렵다면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피땀눈물을 삭제해 버린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바라기만 하면 매끈한 성취가 이뤄질 듯한 환상을 듣는 이에게 심어 주는 요령을 수많은 표어와 마케팅 서적이 알려주고 있다. 이런 요령을 활용하면 가수도 어렵지 않게 싫어하는 노래를 즐거운 듯 피로해 보일 수 있을 터다. 삼사 분 정도 꾹 참아내면 그만이다. 케이팝 아이돌들의 화려한 메이크업과 현란한 조명은 혹시 드러날지 모르는 굴곡을 감추는 역할을 남몰래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감정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설령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격렬했다 해도 반드시 그렇다. 싫어하던 노래를 부르던 중에 즐거운 추억이 생기기도 한다. 기억은 뒤섞이면서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다. 날것이던 감상은 무뎌지고 희미해진다. 뜨거울 만치 처절하던 열정도 냉정하게 식는다. 이 변화는 눈에 띈다. 음악에는 피로될 때마다 음악가의 컨디션과 마음이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대마다 달라지는 변화는 원인과 결과로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시간이다. 변화는 시간의 본질이다. 나는 가끔 시간이 음악 속에, 문장 속에 녹아드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음악가는 일단 발표한 노래라도 계속 연습할 수 있다. 음악은 앨범에서 한 차례, 그리고 무대에서 여러 차례 피로되는 덕분이다. 레코드는 고정되어 있을지언정 음악 자체는 무대를 거칠 때마다 진화한다. 그렇게 음악이 또 음악가가 성장하는 과정은 심지어 멋지기까지 하다. 무대에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소설 쓰는 나에게 성장 과정이란 그만큼 멋지지 않다. 나의 성장도 소설의 성장도. 아니, 멋지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때론 추하기까지 하다. 유튜브의 ‘소설 쓰는 브이로그’들이 나에게는 아연하다.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추해지면서 써내어 발표한 소설이 멋진 완성본이라면 좋으련만. 멋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완성본’이라면 좋으련만. 탈고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나의 소설이 결코 완성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노엘 갤러거가 부러웠다. 노래 또한 완성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음악가는 인생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탈고를 거듭하는 과정을 무대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 청자들과 실시간으로 교감하며 함께 작품 자체를 성장시킬 수 있다. 잦은 피로가 주는 커다란 이점이다.
소설 역시 피로된다. 독자에게 읽히는 순간이 그렇다. 하지만 역시 소설의 첫 독자는 소설가 자신이다. 비슷한 점이 있긴 해도 음악에 비할 때 소설의 첫 피로는 내밀하다. 발표 전의 소설을 주변인들에게 널리 읽게 하는 소설가가 과연 있긴 할지 모르겠다. 굳이 꼽아 본다면 발표 전의 소설은 소설가인 나에게 피로되고 편집자에게 피로되고 때로는 또 다른 편집자에게 피로하는 데 그친다. 교류가 있긴 해도 음악만큼의 규모는 아니다. 일 대 일에 가깝기 때문에 덜 부끄러워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일단 발표되고 나면 소설가에게는 수정의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뒤늦게 오류를 발견하거나 신경 쓰여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이 나타나도 어쩔 수 없다. 아니면 소설에 담긴 생각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소설가 개인의 멘탈에 따라서 이건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수라면 콘서트에서 편곡 버전으로만 노래해도 될 텐데 소설가에게는 그와 상응하는 방법이 없다.
혹 북 토크 같은 기회를 통해 소설에 대해 부연할 기회를 얻는 운 좋은 작가도 있다. 한데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명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소설가는 없을 듯하다. 굳이 발표한 내용을 뒤집거나 그에 부언을 붙이는 건 자존심 상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소설가도 사람인지라 내 소설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러면 그렇게 방어 태세로 지켜낸 내 소설을 나는 좋아하는가. 독자분들께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위에도 썼듯이 내 소설이란 모조리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좋아하기에 소설은 나보다 너무 큰 존재이다.
아니다. 솔직해지자. 소설가는 음악가와 달리 도망칠 수 있다. 북 토크나 낭독회를 진행한다 해도 소설 전체를 다시 피로할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자신의 소설을 다시 펼쳐 읽을 필요가 없다. 드문 피로가 주는 장점 아닌 장점이다.
소설이 음악보다 덜 피로되는 이유라면 일단 시간상의 문제가 가장 클 듯하다. 가요 기준 요즘 러닝타임은 삼사 분. 청자가 음악에 집중하든 안 하든 그 시간이 지나면 음악은 끝나 있다. 소설은 다르다. 어쨌든 문자 위로 눈알을 움직여야 하고 뜻을 해독해야 한다. 제아무리 난해한 음악이라도 그 시간이 지나면 끝나기 마련이지만 난해한 소설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다음 단락, 다음 문장, 심지어는 다음 단어로도 넘어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수록 의지에 불타는 독자도 있겠으나 책을 덮어버리는 독자도 많을 터다. 실물 음반 시장이 침체된 요즘, 음악은 물리적 형체를 벗고 자유롭게 어디든 날아다닌다. 일시정지했던 음악도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다시 들을 수 있다. 반면 소설은 아직까지 이북보다 실물 책이 대세인 모양이다. 읽다 덮은 책을 다시 펼치기 싫어하는 마음은 나도 잘 안다. 묵직한 책의 존재감은 어딘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바쁜 시대라 그렇다. 단편소설이라도 공들여 읽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 있기도 한다. 최근에는 짧은 소설을 쓰려는 움직임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짧은 소설 쓰기를 시도해 봤다. 처음에는 성격 급한 내게 제격으로 보였다. 결론은 실패였다. 짧은 소설을 쓰기에 나는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시간말고도 소설에는 언어라는 제한도 있다.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몇몇 노래 가사들이 좀 얄밉다. 음악도 화성과 박자를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영역이 있긴 하지만 언어의 제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가령 아랍어로 쓰인 소설은 내게 소설이라기보다 멋진 조형물에 가깝다. 애초에 문자 언어는 오랜 기간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해 오지 않았던가. 문자 언어를 무기로 삼은 소설가가 피로 무대가 적다고 해서 불평할 처지는 못 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소설가가 된 것이 억울해진다. 소설은 21세기와 맞지 않는가. 나는 21세기와 맞지 않는 인간상인가. 스멀스멀 자괴감도 밀려온다.
소설에는 소설 나름의 장점이 있다. 음악이 ‘악흥의 순간’에 집중할 때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하나의 장소로 고정될 수 있지만 시간적 배경은 다르다. 소설 속에서 시간은 반드시 흘러가야 한다. 시간이란 변화다. 소설 한 편은 사랑에 빠지고 배신을 당하고 이별을 한 후에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그다음 순간 격렬한 증오에 타오르는 마음의 변화를 그려낼 수 있다. 놀랍게도 일견 모순되는 모든 입체적 순간마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짧은 순간순간 소설 속 인물과 공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란 그 공명의 순간마다 피로될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무더위라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탓에 끝내 유죄 판결을 받은 한 남자를 떠올리기 적당할 듯하다. 아니면 장마 동안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사돈의 이야기라든지, 이탈리아의 푸른 하늘 아래 낯선 손님과 만나 사랑을 시작한 소년의 이야기라든지.
나는 분홍빛으로 물든 구름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그래서 소설에 분홍빛으로 물든 구름에 대해 썼다. 덕분에 누군가는 어스름의 그 순간 분홍 구름을 발견하고 내 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속 꼭짓점이 몽골몽골 둥글게 깎여 동그래지는 기분이다. 한편으로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어디든 숨을 구멍을 찾고 싶어지기도 한다. 멋지려면 이런 순간을 견디어야 할 텐데 나는 자신이 없다. 멋지지 않은 것은 소설 쓰기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거슬러 올라가면 문장 짓기가 멋지던 시대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은 유명한 시를 외거나 이러저러한 제한을 두고 문장 짓기를 겨루며 여흥을 즐기지 않았던가. 소설가로서 그런 문화가 끝말잇기나 삼행시 수준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아쉽다(나에게는 즉흥적으로 문장 짓는 소질이 없음에도).
멋이 있든 없든 나는 나의 할일을 할 뿐이다. 문장을 그러모아 소설을 쓴다. 모든 문장이 소설 속에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따로 두었을 때도 하나하나의 문장이 모조리 멋졌으면 좋겠다. 번역가를 고심하게 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 인공지능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단어와 문장을 발굴하고 싶다. 잠깐 망설인 기술이 곧 나의 문장을 따라잡게 되더라도. 따라잡힌 그만큼 소설이 더 커졌다고 믿으면서.
맞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상징과 의미를 찾아낼 때마다 소설은 피로의 기회를 널리 얻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화하더라도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며 새롭게 피로되는 것이 좋은 소설일지도 모른다. 이에 따르자면 좋은 소설이란 결코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 읽힐 때마다 새로워진다니 그걸 과연 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진다.
소설을 완성해야 하지만 결코 완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완전히 오리무중이라면 좋을 텐데 가끔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깨달은 듯한 그 순간, 나는 다시 깨달음에서 멀어져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그런 나는 멋지지 않다. 소설 쓰기는 멋지지 않다. 아직 소설 쓰는 나를 좋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쓰는 소설을 좋아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 역시 뭔가 억울하다. 소설가인 나에게도 뭔가 멋진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노엘 갤러거에게도 음악 자체에서 기인한 남모를 고민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너무 잦은 피로 때문에 나 같은 소설가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걔네는 한번 쓰면 끝이잖아? 똑같은 노래를 나처럼 지겹게 반복할 필요도 없고 말야.” 내가 읽지 못한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고민하는 록스타는 내 상상보다 훨씬 멋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런 상상을 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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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소심록(素心錄)』, 그 마음의 울림과 여운 정혜경 연주홍빛 표지 배경에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고 있다. 표지 왼쪽에는 한자 세로쓰기로 素心錄(소심록) 柳達永(류달영) 著(저)라고 저자가 직접 쓴 글씨가 굳건하게 새겨져 있다. 성천(星泉) 류달영의 수상록 『素心錄(소심록)』(경문사, 1961)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우선 성천의 수상록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웠고, 소박하면서도 여운 있는 표지가 마음을 끌었다. 장정을 맡은 월전 장우성은 농민이 ‘생각하는 민들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성천의 뜻을 이렇게 담았다. 1961년 초판본 민들레 씨앗 하나가 이제사 마음터에 내려앉았다. 저자 성천 류달영(1911~2004)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농촌 계몽의 최용신 소전』을 저술해서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양정고보 스승이었던 김교신은 최용신을 만나 보았던 성천에게 이 책을 쓰도록 권유했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직 중이던 성천은 제자들에게 최용신 전기를 읽히고 싶었다. 일본 경찰 검열을 의식하며 어려움 속에 완성한 최용신 전기는 초판 1천 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품절되었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민족 사랑과 계몽 운동의 불씨를 심어 준 책이었다. 그 시절부터 성천의 글은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어 6·25전쟁과 4·19혁명 후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발표했던 성천의 글이 했던 역할을 『소심록』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소심록』은 ‘평소의 마음을 기록한 책’이란 뜻으로 근래에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모아 내었다는 겸손한 제목이다. 성천은 이 글모음이 자신에게만이라도 사람다운 사람을 위하여 훗날까지 격려하는 힘을 가질 것으로 믿었다. 그 ‘격려하는 힘’은 충분히 전해져 강렬한 울림으로 왔다. 가로 12.5cm 세로 19cm의 이 아담한 책 405쪽에 51편의 글이 빼곡히 담겨 있다. 『소심록』의 글들은 1959년 3월부터 1961년 2월까지 이 년 동안 《사상계》, 《새벽》, 《사조》, 《신태양》, 《식량과 농업》, 《여원》 그 밖의 여러 잡지와 《조선일보》, 《대학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에 발표한 것이다. 이 책은 1961년 5월에 출간되었으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지 일주기가 되는 시점이었다. 마지막 장 ‘사월혁명’의 다섯 편은 혁명 때 쓰러진 꽃다운 젊음들과 같은 행진 속에서, 거친 호흡을 함께 하면서 쓴 글들이었다. 성천은 4·19혁명은 학생들의 피로 성공했으니, 그 정의로운 피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깊은 존경으로 명복을 빌었다. 성천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특별했던 점은 나라의 현실에 대해 고뇌하면서 비전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현실에서의 타개책까지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성천은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 중 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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