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가을의 일
- 작성일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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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수 없어 다른 자세로 읽었을 뿐이다. 읽기와 쓰기로 점철된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온 것일까. 적어도 자세에 대해서라도. 시간이 누적되어 온 결과가 몸 곳곳에서 나타난다.
3년째 쓰고 있는 장편소설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을 부상당한 채 뛰고 있는 상태랄까. 이미 나는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고 원래 고질적으로 아프던 곳에 통증을 느낀 지는 제법 되었고 새로운 곳도 아프다. 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인생 첫 소설을 그것도 장편소설을 이게 소설이긴 한 건지 의심하면서 한 달 만에 썼던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느리게 뛰면서 완주를 고민하게 되었을까.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 마감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청탁이나 계약이라는 외부적인 마감이 없는 작가였다. 대부분의 마감은 내가 스스로 약속한 마감이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만큼 지키기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스스로 마감을 만들고 내가 만들어낸 마감을 지키기 위해 다이어리를 펼친다. 7월은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지냈다. 올해의 계획은 장편소설을 끝내는 것인데 하반기의 시작이니 아직 여유가 있구나, 하면서. 단편소설 초고를 하나 쓰면서 장편소설의 뒷부분을 고민하면 되겠다 싶었다. 소설에 대한 계획이 언제나 제일 먼저이다. 그러나 파워 J가 무색하게 요즘 나는 되는 대로 쓰면서 산다.
어떤 날은 한 줄 쓰고 오늘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한 것 같은 문장이 있다. 어떤 날은 어떤 생각을 해내고 오늘 할일뿐 아니라 일주일 치를 다 해낸 것 같은 생각이 있다. 나는 한 문장을 썼고 이후에 어떤 문장으로 풀려 나갈지 모를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 문장과 생각이 산책 도중 떠오르면 걸음을 멈추고 메모를 한다.
한 문장과 하나의 생각은 단편소설에서는 제법 큰 부분이지만 장편소설에서는 조금 괜찮은 부분일 뿐이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쓰레기일지라도 초고를 다 써야 마음이 놓이는데 장편소설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나는 2번째 소설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생각이 날 때 단편소설도 써두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편소설에 비해 단편소설의 초고를 끝내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나는 완성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산책을 하면서 에세이에 뭘 쓰면 좋을까도 생각해 본다. 소설이 아니라 가볍기도 하고 아주 오래간만에 쓰는 에세이라 어렵기도 하다. 청탁이 오면 무엇을 쓸까를 생각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에 따른 문장을 틈틈이 모으다가 어느 시기쯤이 되면 파일을 새로 만들고 쓴다.
산책 도중 바라보는 것 중 제일 마음이 쓰이는 건 나무이다. 크기가 주는 존재감 때문일까. 신도시가 시작되는 곳에 이사를 온 이후 나는 나무가 심기고 자라고 죽는 걸 지켜본다. 나무는 새 터전에 자리 잡기를 종종 실패한다. 지난여름 산책에서 나에게 예쁨을 받았던 붉은 꽃이 아름다운 배롱나무들이 올해는 영 시들시들하다.
나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죽고 끝내 살아나기도 한다. 나무의 세계는 복잡하다.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본 적이 있다. 반면 전체를 잘 살리기 위해 가지를 쳐야 할 때도 있다. 어떤 나무는 마른 채로 버티다가 정비 사업이 시작되면 둥지가 잘리고 뿌리째 뽑혀 나가서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집 앞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2층에 있는 작업실의 책상 앞에 앉으면 그 나무의 우듬지가 보인다. 작년 늦은 봄 원래 있던 나무가 죽어 새로 심은 나무이다. 그런데 이 나무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병충해에 시달렸다. 나무는 겨울이 되어 잎을 다 떨구더니 봄이 되자 다시 빠르게 잎을 틔었다. 건강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다른 집 느티나무가 잎을 틔워 우리 집 느티나무를 앞질렀다. 그리고 얼마 후 알았다. 우리 집 느티나무의 어떤 가지에는 잎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티나무는 반은 죽고 반은 산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책상 앞에 앉아 새들이 느티나무의 죽은 가지를 오가며 노는 것을 보곤 한다. 나는 요즘 새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다. 예전에 나무와 풀꽃의 이름을 궁금해 했던 것처럼. 오후 다섯 시의 산책로에 어김없이 나타나던 후투티, 공원 산책로에서 내 앞을 통통 뛰어가던 물까치, 그리고 뒷마당에 빨간 열매를 먹던 딱새, 물가를 유유히 헤엄치고 날아가는 오리와 백로까지. 하지만 내가 알아낸 이름들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새가 찾아와 때죽나무 열매를 먹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더위에 지친 나무와 점점 더 무성해지는 풀들을 보면서 아주 가끔 산책을 하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8월 마지막 주 매년 구입하는 다이어리의 전체 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작년 다이어리를 보면서 뭘 살까 고민하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9월이 되면 미리 사놓는 다이어리 때문인지 한 해가 다 갔다는 조급함이 느껴지곤 한다. 추석 연휴도 있고, 그러고 어영부영하면 겨울이고 연말이고 새해이다.
다이어리 구입 시즌이 되면 올해의 목표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거의 매년 같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는 걸 안다. 소설, 운동, 외국어 같은 것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건 어쩌면 소설뿐일지도 모르며 내가 지속하는 것도 사실은 소설뿐이다.
새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내년에는 어떤 삶을 살지 생각하는 것이다. 주간이 가로형인 것이 나을까, 세로형인 것이 나을까. 내년에는 기록할 것이 많은 해를 살게 될까. 그냥 간단한 일정과 메모만이라면 A6로도 충분할 텐데. 루틴을 만들려면 시간 단위가 기록된 것으로 골라야겠지. 한 권에 모든 것을 통합할 건인가, 쓰임에 따라 노트를 분리할 것인가, 등등.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쓰면서도 이 고민을 매번 한다. 올해는 작업과 생활을 분리해서 2권의 플래너를 썼다. 소설 작업만 따로 기록하는 건 내가 지금 뭘 얼마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 괜찮았다. 날짜가 박힌 플래너 외에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노트도 함께 쓰는데 생각만 하고 있던 산책 노트를 내년에는 만드는 것이 어떨까.
고민은 끝나지 않았는데, 다이어리 판매 사이트는 오픈하자 서버가 다운되었다. 일요일인데 다들 이렇게 열심히 내년을 준비하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내년의 다이어리 구성을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구입은 단편소설 초고를 마무리한 후로 미룬다.
일주일 내내 문장 하나가 있는 것이 나은지 없는지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문장이 소설이 시작된 문장이라 있으면 주제가 선명해지지만 그래서 이야기를 한정시키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 일단 초고는 있는 채로 마무리하고 파일을 닫았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고민이 시작되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아 같은 자리를 계속 서성이는 꼴이 되고 만다.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고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초고를 마쳤으니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면 보일 것이다.
이 에세이만 마치면 이제 여름의 일이 끝난다. 조금 쉬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가을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 장편소설을 다시 꺼내고 처음부터 읽고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쓰고 산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의 다이어리를 사서 고이 모셔 놓을 것이다. 그 다이어리에는 ‘아무것도 아닌 날, 축하해’라는 문구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소설을 생각하고 쓰는 아무것도 아닌 날들 가운데 아주 가끔 특별한 날이 오기도 할 것이다.
연말이 오기 전에 초고를 마치고, 그렇게 해서 올 한 해를 이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침내 완성한 해로 기억하고 싶다. 장편소설은 한 번의 완주 후에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니 내년에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든 해야겠지. 내가 충분히 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뛰지 않거나 뛰다가 멈추는 건 괴로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이렇게 주춤거리는 건 반드시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뛰게 하고 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 아무도 시키지 않은 소설을 계속 쓰는 일,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괴로워도 한다는 것, 괴로워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작업. 그것이 오래 소설 쓰는 자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그래도, 그래서 아는 것도 있다. 초고를 마치면 아주 잠깐이지만 뿌듯하고 내가 자랑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완주를 해낸 자만이 느끼는 그 마음을 향해 오늘도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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