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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위로를 만난 순간, 민바람 작가의 <낱말의 장면들>

  • 작성일 2024-09-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늑한 위로를 만난 순간, 민바람 작가의 <낱말의 장면들>

   -서점 카프카에서.

문장서포터즈 주은


   안녕하세요.

   한껏 온화해진 공기 탓에 잠깐 스친 바람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지는, 초여름에 이야기를 보냅니다.


   전주는 책의 도시라고 합니다. 다양한 색을 가진 독립 서점과 동네 책방, 그리고 도서관들이 도시 곳곳에 선물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동네 책방에서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기회로 6월 7일, <서점 카프카>에서 민바람 작가님과 작가님의 우리말 에세이, <낱말의 장면들>을 만났습니다.





   서점은 7시에 진행되는 북토크를 위해서, 조금 이른 6시 30분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평소에는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리하던 공간에 북토크를 위한 의자들과 빔프로젝터가 놓여있었습니다. 몇 자리 안 되는 의자가 조금씩 채워지고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북토크를 시작하며,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서점 카프카>와의 첫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범상치 않은 입구와 간판을 보고 끌려서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밟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 판자의 소리, 판자를 직접 칠해 꾸민 인테리어와 곳곳에 걸린 그림들, 또 세월과 따듯함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소품들. 작가님은 서점이 되기 전, 북카페였던 카프카의 모습을 그리듯이 묘사하며‘이 공간에서 조용히 쉬었다가 가는 것만으로도 치유될 것 같은, 안전지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던, 사랑하는 공간에서 북토크를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이 쓰신 글의 온도는 작가님이 사랑하는 이 공간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이라는 부제목에 꼭 맞게도, 들여다보고 낱말을 가만히 곱씹는 것만으로 내면을 차분하게 하는 따듯한 힘이 있습니다. 공간이 가진 다정하고 따듯한 정서가 작가님의 진솔하고 단정한 이야기와 꼭 맞아서 이 순간에 푹 빠지도록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낱말의 장면들>은 순우리말의 단어들과 민바람 작가님의 글, 신혜림 작가님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우리말 사진 에세이입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차분한 속도로,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풀어놓았습니다. 문학과 말놀이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한국어 강사로서의 일에 몰입했던 순간과 무너졌던 순간, 그 과정에서 겪었던 성인 ADHD와 사회 불안장애, 우울 장애, 공황까지. 해오던 일을 정리하고 글을 통해 두 번째 삶을 시작하고자 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우리말 사전이 <낱말의 장면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작가님은 순우리말 단어들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끄집어내고, 구체화해 정화하는 힘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만나고 의미를 곱씹는 과정에서, 그와 관계된 상황들이 떠오르면 미처 소화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생각과 감정들이 그 단어로 응축되고, 낱말을 통해 이해한 것은 다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매개가 무엇이든, 모두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구 엉켜서 일상을 힘들게 하는 내면의 것들을 파고들어 찾아내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회피하고 싶은 과정입니다. 하지만 꼭꼭 숨어있던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고, 괴롭더라도 직면해 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전보다 훨씬 견딜만해지곤 했습니다. <낱말의 장면들>에 실린 단어들과 문장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작가님을 보며, 지난한 사투를 끝내고 몸은 지쳤지만, 훨씬 단단해진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다음은 참여한 사람들이 직접 책을 낭독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구절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북토크에 참여한 독자들이 그것을 뽑아 낭독하고, 다시 그 문장에 엮인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구절들은 그 자체로 작가님이 준비한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덮쳐오는 생각과 감정은 바닷가의 바위를 덮는 파도와 같다.]


   제가 뽑은 구절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한 번 한 번이 나를 덮치고, 내가 그 속에 빠져있으면 그게 진리처럼 느껴지지만, 파도가 밀려나듯 나의 감정과 생각도 순간의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입니다. 낭독이 끝난 뒤 작가님이 엮어서 풀었던 인지 왜곡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타인과 상황에까지 전이되어서, 나만의 생각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느껴져 괴로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은 경험과 생각을 거치고 나서 나온 문장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순간 무작위로 뽑은 종이쪽지와 그 안에 적힌 구절이 꼭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은 이가 이미 같은 생각을 지나왔다는 것, 그저 그렇게 살아갔다는 사실이 작은 힘이 됩니다. 낱말은 그 말을 만들어내고 사용한 사람들이 했던 생각의 흔적이니까요.]


   여는 글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낱말을 사랑하고, 거기서 위로를 얻는 이유입니다. 그런 소중한 낱말을 적은 작가님의 글을 통해 저도 같은 위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위안과 용기를 독자에게도 그대로 나누어줄 수 있는 작가님의 글은 그 다정한 의도를 담뿍 담고 실천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 역시 단어를 사랑합니다. 단어는 꼭 견고한 알에 아주 작게 난 구멍 같습니다. 절대 알 수 없는 타인의 세계를 조금 엿보여주는 작고 소중한 틈이지요. 따듯하고 다정한 공간에서, 낱말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 작가님을 만난 이 순간이 오랫동안 아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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