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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하루,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 작성일 2024-12-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선물 같은 하루,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문장서포터즈 배연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선선해진 날씨가 마음을 사색에 잠기게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는 ‘가을’하면 독서 말고 떠오르는 게 또 있다.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단풍으로 물든 마로니에공원. 약간 쌀쌀한 아침 바람 냄새. 외투를 입고 접수처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나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가할 때마다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올해 42회째로 개최됐다. 보도 자료를 보면 ‘미등단 여성이 참여 가능한 국내 여성 백일장 중 가장 오래된 대회’라는 수식이 붙어 있곤 하다. 그 의의를 빼고 보아도 백일장이 42회째 사라지지 않고 지속해서 열리는 건 크게 가치 있는 일이다. 42회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고지에 자신의 마음을 펼쳐 놓고 갔을까. 헤아려 보면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존재 자체가 문학계의 한 역사 같다.





   나도 그 역사에 38회부터 함께 하고 있다. 올해까지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5회 연속 참여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백일장이 열렸다. 백일장 당일 실시간으로 글제가 공개되었고, 시간 내에 원고지 형식 한글 파일에 글을 써서 제출했다. 친구를 만나러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노트북을 펴고 참여했던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었지만, 역시 백일장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즐기는 게 더 좋았다. 2022년부터는 원래 역사대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 중이다.

   백일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 구성과 이벤트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작년에는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이 신설되었고, 올해는 당일 프로그램 중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어린이 도슨트 투어’가 생겼다. 이처럼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은 글만 쓰고 끝나는 단순한 백일장이 아니라 참여자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도 사전에 열린 ‘제2회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의 대상 수상자 분을 개회식에서 뵐 수 있었다.





   이재숙 님은 환한 미소를 띤 채 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씀하셨다. 개회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제2회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마로니에공원에 오시면서 많이 설레셨을 것 같아요.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온라인 서핑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우연한 만남이 마로니에공원까지 이어졌네요. 백일장 글제가 ‘내 인생 가장 문학적 순간의 기록’이었잖아요. 저는 ‘문학적’이라는 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달라서 어려운 글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제를 보고는 어떠셨어요?


   모든 글 자체가 문학이라고 생각을 해서 특별히 ‘문학적’이 뭔지 고민하지는 않았고, 제가 쓰고 싶은 걸 썼어요.


   어떤 내용을 쓰셨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엄마 얘기를 썼어요. 엄마가 서른아홉에 혼자 되셔서 오 남매를 키우셨는데, 감자 부침개를 강판에 갈면서 몇십 년을 사셨어요. 그랬더니 등에 근육이 뭉쳐서 꼽추처럼 되셨어요. 우리 오 남매가 엄마의 그 등으로 공부를 했는데 한 사람도 그 고통을 펴 드릴 생각을 못했어요. 그게 늘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엄마의 삶에 대해서, 엄마의 가슴에 항아리처럼 담겨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썼어요. 


   저도 얼른 읽어 보고 싶네요.


   나중에 실리면 읽어 보세요.(웃음)

  ‣ 「엄마의 곱사등이」, 이재숙, 제2회 마로니에 온라인 백일장 대상 수상작 바로가기


   처음에 대상 소식 듣고는 어떠셨어요?


   믿기지 않아서 “정말요?”라고 했어요. 기대를 못했어요. 이 상이 내 노년을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아요. 

   그동안 책을 많이 읽기만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거든요. 남편이 몇 년 전에 은퇴를 했는데, 저한테 ‘이제는 읽지만 말고 당신도 써 봐.’라면서 적극적으로 응원해 줬어요. 제 필명도 지어 줬고요. 저는 이제 열심히 쓰기만 하면 돼요.


   필명이 어떻게 되세요?


   ‘은곡’. ‘숨은 골짜기’라는 뜻이에요. 그 골짜기에서 무궁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당신은 그동안에 표현을 못하고 살았는데 무궁무진한 글이 당신의 삶 속에서 나올 거라고, ‘은곡’이라고 지어 줬어요.


   정말 멋진 필명이네요. 이번 상을 시작으로 더 많은 멋있는 골짜기를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축하드리고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해요.(웃음)





   멋진 인터뷰를 끝내고 나도 백일장에 참여했다. 올해 사전 글제 찾기를 통해 모인 단어들 중 추첨을 통해 뽑힌 것은 ‘기다림, 뜨개질, 지우개, 공연’이었다. 나는 가을 날씨가 좋아서 야외에 앉아서 썼지만 백일장 참여 공간이 인근에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예술가의 집,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 스터디카페에서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원활한 작품 활동을 위해 공간을 마련해 주시는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원고를 제출하고 점심을 먹은 뒤 아르코 미술관을 찾았다. 이번 백일장의 ‘문학과 함께하는 가을 이벤트’ 중 ‘어린이 눈높이 도슨트 투어’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야외에서 자녀와 함께 앉아 원고를 작성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도슨트 투어에도 참여하셔서 속으로 반가웠다.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지시문과 영상, 전시물을 따라 관람했다. 어린이들이 같이 전시를 느낄 수 있도록 해설해 주셨다. 보호자와 함께 백일장에 참여하고 미술관을 관람한 어린이들에게 오늘이 즐거웠던 가을날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이 눈높이 도슨트 투어 후에는 장강명 작가님의 문학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연 제목은 ‘늦게 데뷔하는 일에 대하여’였다. 

   ‘37살에 데뷔해서 처음에는 늦깎이 작가 소리를 들었는데 젊은작가상을 받으니 젊은 작가 수식어가 붙더라’라는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강연은 문학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문학은 수학이나 음악과는 달라요. 필즈상은 40살이 넘으면 안 줘요. 40살이 넘으면 수학계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거든요. 음악도 신동이라는 게 있죠. 나이가 엄청 어린데 성인 프로들보다 더 잘하는 천재들이요. 하지만 소설 소년 천재 들어보셨나요? 소설은 왜 소년 천재가 없을까요? 수학과 음악은 인간이나 삶을 몰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라 그렇습니다. 문학은 삶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세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 인생과 인간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는 살면서 계속 늘더라고요.”

   아침에 인터뷰한 이재숙 님이 떠올랐다. 특별히 무언가를 꾸며 내지 않아도 삶 자체가 문학이 되는 것.

   “제 소설이 별로여서, 상심해서 한 일은 소설 쓰기였어요. 소설은 나를 위로해 주는 작업이었어요. 계속 글을 안 쓰고 후회하거나, 쓰고 후회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쓰고 싶다는 욕망은 평생 쫓아갈 거예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썼더니 너무 좋다.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소설이 출판사 같은 곳에서 거절당해도 문제 되지 않아요.”

   장강명 작가님은 노년에 데뷔한 다양한 작가들의 일화를 소개해 주시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일본의 한 작가는 수상 소감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발견되기까지 계속 쓴 마음도,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더라도 내가 사랑해서 쓰는 마음도 모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다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으로 갔다. 퓨전국악밴드 ‘국악인가요’와 어쿠스틱 밴드 ‘세자전거’의 무대가 이어졌다. 백일장 시상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로니에공원을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모여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래하시던 분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모두 선물 같은 하루, 선물 같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그 순간 웃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파란 하늘과 따스한 오후의 날씨가 합쳐져 정말 선물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고대하던 시상식이 진행됐다. 시 부문 심사평에서 “문학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요즘이지만,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아주 든든했습니다. 앞으로도 문학과 더불어 계속 정진해 주시길, 그리하여 함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신 게 인상 깊었다.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곁에 있던 친구들, 가족들, 참가자들이 박수 치며 축하해 주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아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의 풍경이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썼는데,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도 선물을 많이 받았다. 접수처에서부터 필기구와 샌드위치, 음료수, 박카스 젤리를 받았고 돌아갈 때는 기념품이 담긴 쇼핑백을 모두에게 한 아름 안겨 주셨다. 중요한 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날 하루 얼마나 즐거웠느냐, 라고 생각한다. 선선하고 파란 가을 날씨, 짧은 시간 원고지에 펼쳤던 마음, 문학 강연과 음악 공연, 잔뜩 받은 기념품까지. 모두에게 즐겁고 선물 같은 하루였을 게 분명하다. 동시에 다들 생각했을 거다. 앞으로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으로 가을을 시작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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