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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읽는 ‘시’간 속에

  • 작성일 2024-12-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서로를 읽는 ‘시’간 속에


문장서포터즈 팅팅


   삭막한 회색의 도시를 잊게 하고, 쉼을 허락해 주는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시. 내가 사랑하는 자연과 시가 어우러지는 곳이 있다면, 내가 그곳에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평창엔 깨끗한 날씨, 고요한 풍경, 그리고 시를 통해 소통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가을, 각자의 시를 품은 그들은 그곳 대관령에 모여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찍어 주신 분의 작은 실수 덕분에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



   ‘어느 가을, 시가 내게 말을 걸었다’라는 이름의 이번 시 캠프는 서울의 책방 ‘풀무질’과 ‘초록길 도서관’, 그리고 평창의 책방 ‘선인장’이 협력하여 ‘문학주간 연계 권역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시를 매개로 점점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때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 캠프에서 마주한 풍경과 가장 어울리는 색이 있다면 가을의 황금빛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게 가을의 빛깔은 단체 사진 속 사람들의 웃음에 담긴 따스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관령으로 출발하는 날, 태풍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아침의 바람은 유난히 세차게 불어왔다.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여름의 더위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대관령에 도착했을 때, 서울에서 불던 바람은 대관령까지 나를 따라와 후덥지근한 늦여름을 어느새 선선한 초가을로 바꾸어 주었다.





   그날 오후, 낭독회가 시작되기 전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책방 ‘선인장’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방 밖에서는 강아지 방글이의 짖는 소리가 우리를 환영하는 듯 반갑게 들렸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대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방글이의 발톱이 나무 바닥을 탁탁 울리는 소리가 우리가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메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분명 소란스러운 듯했지만 그 속에서도 생동감 넘치는 이 소리들은 낯선 장소에서의 긴장된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켜 주었다. 문득 이번 낭독회에서 함께 읽을 김고니 시인의 시들 중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숨을 쉬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 외롭지 않다고.”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며칠 전, 잠 못 이루던 어느 밤이었다. 잠을 잃은 그 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과 홀로 내쉬는 숨소리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방 나무 의자에 앉아 모두와 함께 있었다. 김고니 시인이 천천히 시를 낭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 밖의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사람들의 머리끝을 스치고, 손에 들린 시집의 부드러운 종이를 스쳤다. 서울에서 대관령까지는 대략 세, 네 시간 걸리지만, 어쩌면 그 시끄러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단지 시집 한 권을 펼치는 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시인들의 낭독 소리를 제외하고 이날 가장 많이 들린 소리는 아마도 웃음 소리였을 것이다. 안현미 시인이 "외계인 침공 시, 시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보여 줬을 때, 민구 시인이 시의 한 구절을 읽다가 어릴 적 "영구, 맹구, 망구, 탁구" 등 별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리고 안현미 시인의 마이크를 넘겨받은 어린이 시인이 용감하게 나서서 자신의 시를 낭독했을 때. 깊은 산속의 이 작은 책방에서, 시에서 시작된 이야기와 웃음은 우리들 사이를 흐르며 하나의 아카펠라를 이룬 듯했다.





   그곳에서 나는 왜 사람들이 낭독회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 혼자 시를 묵독하는 시간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들리는 시는 마치 감미로운 노래처럼 느껴졌다. 시집 속 문장들이 시인들 각자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그 목소리에 담긴 그들의 감정은 시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들의 인생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고요한 밤, 낮에 함께 시를 읽던 사람들은 숙소 밖으로 나와 달 아래에서 오리온자리를 찾으러 나섰다. 원래 계획된 일정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별을 보고 싶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별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세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와 별, 낮과 밤이 어우러져 대관령 산속 작은 길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깊은 잠을 자고 맞이한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밤하늘의 별들에게서 시를 찾던 우리들은, 이제 숲으로 시를 찾으러 갔다. 참가자들은 이번 모임을 서로의 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시를 찾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만의 시를 찾아가는 길, 그 첫 걸음은 바로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 위에서 시작되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월정사의 일주문이 나타났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금강교가 보인다. 길 옆 오대천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숲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퍼져 나갔다.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월정사가 고요하게 자리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일은 아스팔트와는 사뭇 다른 감촉을 선사한다. 흙길의 촉감을 온전히 느끼려 신발을 벗고 걷는 이들도 보였다. 길 양쪽의 전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솟아오른 덕분에 숲속 공기가 한층 더 맑고 신선했다. 





   이 숲은 고려 말부터 지금까지 1000년이 넘도록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오직 나무들만이 이곳에 남아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들을 보러 여기 오지만, 나무들 또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산사 옆에 우뚝 선 나무들이 묘목에서 숲으로 성장한 천 년의 시간 동안, 우리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옆에 계셨던 안현미 시인이 내 감탄을 듣고 고개를 돌려 웃으며 내게 말씀하셨다. “그런 생각 자체가 바로 시예요.” 

   시를 찾는 여정이 끝나갈 즈음, 우리는 둘러앉아 각자의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시들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이미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 속에, 아니면 상처 입은 새 한 마리에 대한 애도의 마음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는 그렇게,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방인인 나는 모국어가 아닌 시를 원어민만큼 깊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시들 속에 담긴 인간의 공통된 감정은 언어의 경계를 뛰어 넘을 수도 있다. 시를 통해서 이전까지는 멀고 어색했던 얼굴들이 서로의 곁에 앉아 비로소 목소리를 나눌 수 있었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우리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부드럽게 흐르는 시구의 숨결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었다. 나 또한 함께 존재하고 있는 일원일 뿐이었다. 오대천에 바닥에 깔린 수많은 돌 중 하나가 나일 수 있고, 전나무 숲 속에 서 있는 많은 나무들 중 하나가 나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시를 읽은 사람일 뿐이다. 시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시를 읽기보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앉은 서로를 읽고, 창 밖 꽃들이 줄기 위에 새겨놓은 무늬를 읽으며, 여름의 꼬리를 타고 천천히 다가오는 대관령의 가을을 읽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가을 우리가 대관령에서 함께 쓴 시들을 다시 펼쳐 보게 되었다. 문득 월정사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날개 다친 새가 생각났다. 그 새는 다시 나무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시를 반복해서 읽을 수록, 시의 문장은 마치 나무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것이 월정사로 향하는 길처럼 보였다. 길 위에는 사람 그림자와 나무 그림자가 어우러지고, 고개를 들어 올리니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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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감동했어요

    아름답고 세세한 묘사가 빛을 발하는 글이네요… 이렇게 마음 깊숙이 와닿는 글은 오랜만입니다. 글을 따라, 시를 따라 읽으니 저도 대관령을 같이 다녀온 듯해요. 앞으로도 팅팅 작가님의 글을 자주 읽고 싶습니다.

    • 2024-12-27 01:03:07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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