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마북이의 모험 : 거마북이, 영국에 가다
- 작성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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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거마도서관)
거마북이의 모험 : 거마북이, 영국에 가다
거마도서관 김미경
모험을 시작하며
그림 1 거마도서관의 마스코트 ‘거마북이’
안녕! 나는 거마도서관을 지키는 마스코트 ‘거마북이’야. 거마도서관이 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덕분에, 담당자님을 따라 꿈에 그리던 영국에 다녀오게 되었어.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특히 잠자리에 든 아이들에게 「피터팬」을 읽어주는 조앤 롤링과, 아이들이 동화 속 악당들로 인해 악몽을 꾸자 하늘에서 우산을 들고 날아와 물리쳐 주는 메리 포핀스로 이어지는 연출이 인상 깊었지. 영국문학과 문화가 가진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 같았어. 그런 영국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올해로 스무 살이지만 도서관에서 책만 읽다 보니 해외에 가보는 건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렸어. '거마북이의 모험: 거마북이, 영국에 가다'! 직접 보고 느낀 이야기를 들려줄게.
첫 번째 모험. 거마북이, 날다
14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어. 비행은 처음이었지만 씩씩하게 잘 해냈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껴본 거북이는 아마 몇 안 될걸! 킹스크로스역 앞 숙소에 짐을 풀고, 먼저 도착한 분들과 만나 드디어 이번 연수 완전체가 될 수 있었어.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내일부터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 모두 피곤했지만 설렘 가득한 눈빛이었지. 특히 흥흥 작가님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흥흥 작가님은 2024년에 거마도서관 상주작가로 활동하며 우리 도서관만의 특색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진행해 주셨지. 나 ‘거마북이’를 만들어 주신 것도 바로 작가님이셔. 작가님의 재치와 열정은 도서관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어. 지금 돌이켜봐도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반짝거렸지. 물론 그 때는 우리가 8월의 어느 날 저녁, 런던에서 마주 앉아 저녁을 먹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야.
두 번째 모험. 지식의 바다로의 항해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어린이 채널에서 페파피그와 패딩턴이 나왔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친구들이지. 우리 도서관에서도 자주 보이는 책의 주인공들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런던에서 이렇게 보니 새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어.
오늘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영국국립도서관이었어. 영국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원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북, 셰익스피어 자필본 등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희귀한 자료들을 포함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지. 지식의 바다를 항해한다는 의미로 거대한 배를 형상화했다는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오픈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 평소에도 얼마나 사랑받는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 도서관의 위치와 접근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 살다보면 역세권, 학세권만큼이나 ‘도세권’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거든.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먼저 보안요원들의 가방 검사를 통과해야 했어. 열람실은 모두 출입증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했고 출입증이 없어도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은 역시 빠르게 자리가 차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중앙의 KING’S LIBRARY 주변 좌석은 특히 인기였지.
그림 2 영국국립도서관에서, 거마북이
그림 3 ‘MY LIBRARY IS WHEREVER I GO’
그림 4 「거마북이의 모험」을 선물하다’
도서관 입구에는 영국국립도서관과 영국의 문학작품을 활용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샵이 있었어. 단순히 기념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도서관의 정신을 담은 예쁘고 실용적인 물건들이 가득했지. 마침 나랑 닮은 거북이 친구 굿즈도 있어서 반가웠지 뭐야. 굿즈를 잘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수익 창출을 넘어 도서관의 가치를 알리고 홍보하는 멋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도서관에도 이런 멋진 굿즈샵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봤지. 어쩐지 나와 닮은 거북이 친구 캐릭터도 있어서 함께 사진도 찍어봤어. ‘MY LIBRARY IS WHEREVER I GO’ 정말 멋진 문장인 것 같아.
관내 회의실에서 영국국립도서관 관계자들과 미팅을 진행했어. 영국도서관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Living Knowledge’ 전략을 수립하여 연구자가 아니어도 원한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 방대한 자료 중 3분의 1은 이곳에, 나머지는 요크셔에 위치한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일일 셔틀을 통해 본관으로 자료를 운송하고 디지털 접근도 가능하다고 했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가족,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연령층 및 소외 계층의 포용에도 힘쓰고 있었어. 특히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창작 프로그램 등을 통해 18~24세 젊은 연령층에게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이벤트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는데, 핵심은 도서관의 소장품을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했어. 전시에는 5개월 동안 평균 3~6만명의 관객들이 찾아오고 해리포터, 아가사 크리스티 관련 전시가 인기 있었다고 해. 전시에 따라서는 파트너쉽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빌리기도 하는데, 그 예로 아가사 크리스티 관련 전시는 프랑스와 협력해서 작가의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을 빌려 왔다고 했어. 기획 전시는 보통 유료로 진행되며 토크나 이벤트, 공연 등도 함께 진행된다고 해. 이런 전시들은 보통 6년을 내다보고 계획한다는 것이 놀랍고도 부러웠어. 공공도서관에서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기에는 예산과 인력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지.
아시아·아프리카 자료 담당자들과의 미팅에서는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아시아 자료들을 소개받았어. 동아시아의 방대한 고문헌 및 현대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쇄본뿐 아니라 학술지, 신문, 시각 자료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라고 해.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삼강행실도」와 겸재 정선의 화첩도 볼 수 있었지. 번역본이 아닌 한국어로 된 작품을 수집하려 하고 있으며, 한국의 인쇄술이 구텐베르크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 놀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미팅을 마치며 작년 상주작가 프로그램 ‘우리가 만드는 그림책’의 결과물인 「거마북이의 모험」을 전해드리고 왔어. 거마도서관에서 16주 동안 어린이들이 쓴 이야기에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셔서 완성한 책이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나, 거마북이가 주인공인 책이야. 이 책을 함께 만든 우리 어린이 작가님들이 「거마북이의 모험」이 멀리 영국까지 날아와 영국국립도서관 사서들의 손에 놓였다고 하면 얼마나 놀라고 또 기뻐할까? 담당자님과 흥흥 작가님도 정말 뿌듯해하셨어.
리젠트 운하를 따라 걸으며 ‘word on the water’에도 방문했어. 운하 위에 정박 중인 보트 서점이라니!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매력적인 공간이었지, 나무 갑판 위를 걸을 때면 살짝 흔들리는 이 서점은, 작지만 아늑한 누군가의 서재 같은 공간이었어. 책 판매뿐만 아니라 라이브 음악회, 시낭독, 글쓰기 등의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해.
우리는 에든버러로 이동하기 위해 킹스크로스역으로 갔어. 그 유명한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 대기 줄이 너무 길어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새삼 내가 런던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어.
세 번째 모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에든버러
에든버러에서의 아침이 밝았어. 에든버러는 런던과는 다르게 꽤 서늘해서 경량 패딩을 걸쳐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지. 에든버러는 연수에 참가하기 전부터 굉장히 기대했던 도시야.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이자 조앤 롤링이 이곳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했고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도 에든버러 출신이라는 사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매년 8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 예술 축제야.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어 연극, 코미디, 댄스, 뮤지컬, 서커스, 오페라 등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길거리에서도 수천 개의 공연이 열리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공연을 홍보하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펼쳐 보이는 이들과 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어. 원래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단체들이 모여 주변에서 소규모 공연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페스티벌이 되었다니 놀라웠지. 프린지에 참가하는 비용은 오롯이 본인의 부담이라는데 꿈을 좇아서 이 곳에 온 예술가들과 그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그 열정과 에너지에 물드는 기분이었어.
에든버러 북 페스티벌 현장에 도착하니 이른 오전부터 견학을 온 어린이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어. 축제 관계자들은 학교에서 오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작가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어. 이를 위해 기업체나 기관의 후원 등 다양한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이 따른다고. 에든버러 북 페스티벌은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북 페스티벌이고 세계의 작가들을 초청하지만 스코틀랜드 지역 참여율이 40%로 지역 기반의 축제라고 볼 수 있다고 했어. 올해 한국에서는 황석영 작가님이 초청을 받았는데, 티켓이 매진되는 등 열기가 대단했다는 후기도 전해 들었어. 한국에서도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북 페스티벌이나 야외도서관 등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독서문화 증진을 위한 행사 등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는 다양한 이벤트나 행사가 있지는 않았지만 16일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해서 운영하는 부분도 있고, 관계자들의 이야기에서 일회성 체험이나 이벤트보다는 어떤 작가를 초청할지와 책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림 6 에든버러 북페스티벌 현장
그림 5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 기다리는 어린이들
그림 7 스코틀랜드 스토리텔링센터 극장
다시 북적이는 로열마일을 걸어 스코틀랜드 스토리텔링 센터에 방문했어. 이 곳은 구전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이며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해. 실제로 카페와 서점, 전시 공간이 결합 된 자유로운 공간이었지. 지하의 극장은 백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전 문학과 무용, 연극 등 다른 형태의 예술과 함께 협업해서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해. 매해 10월에는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을 여는데 이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이 다음해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에 공연하도록 되어 있어. 우리가 이 날 관람한 공연 ‘A Wolf Shall Devour the Sun’도 작년의 스토리텔링 페스티벌 수상작으로 이야기와 음악, 그림자극이 결합 된 형태였지. ‘이야기는 눈에서 눈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말처럼 이야기를 보존하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서 이어가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도서관에서 낭독극이나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책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추구하는 바는 같을 거야. 이 날 소극장을 꽉 채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이야기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문화를 연결하고 세대를 잇는 힘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지.
다음으로 개관 100주년을 맞이한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서관,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에 방문했어.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자료들에 대해 보여주는 ‘Treasures of the National Library of Scotland’와 개관 100주년 기념 전시 'Dear Library'를 통해 책과 도서관, 사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어. 독자, 도서관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기획했다는 이 전시는 우리의 삶에서 책과 도서관이 가지는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었지. 특히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겠다.’, ‘당신의 세상을 확장하고 생각을 확장하겠다.’는 사서의 약속이 기억에 남아. 작가인 Joseph Coelho가 213개의 도서관을 방문하며 독서를 장려하고 지역 도서관을 방문하도록 독려한 ‘Library Marathon’ 미션에 대한 소개도 보았어. 작가가 방문했던 도서관에서 수집한 도서관 카드들을 전시한 것이 재미있었어. 마지막에 도서관에 편지를 쓰는 코너가 있어서 담당자님과 나도 거마도서관에 대한 애정을 담아 편지를 쓰고 왔지. 'Dear Library'를 통해 책과 사서, 도서관과 연결된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 정말 ‘도서관에 보내는 러브레터’ 같은 전시였어.
그림 10 전시 ‘Dear Library’
그림 8 ‘Library Marathon’
그림 11 에든버러 중앙도서관
그림 9 ‘LET THERE BE LIGHT’
예정에는 없었지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에든버러 중앙도서관에 방문했어. 스코틀랜드 출신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카네기는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재산의 90%를 교육과 문화를 위해 기부했고 전 세계에 2,509개의 도서관을 지었어. 이곳 역시 철강왕 카네기의 기부를 통해 1890년에 개관한 공공도서관이야. 에든버러 중앙도서관 정문에도 카네기 도서관의 모토,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가 새겨져 있었지. 국립도서관과는 달리 자료실에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어서 도서관을 잠시 둘러보았어. 그 중 Central lending library는 여전히 책 뒤에 꽂힌 도서대출카드를 이용한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었어. 자료 분류 또한 일반적인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책등에 판타지, SF소설, 호러 등 장르별 이미지 분류 라벨을 붙여 시각적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지. 복잡한 분류 대신 직관적으로 장르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인 것 같았어. 잠시였지만 조금 더 일상과 닿아있는 지역 도서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지.
네 번째 모험. 책에 진심인 사람들
오늘 아침은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의 관계자와의 미팅으로 시작되었어.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는 문학 네크워크를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문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비영리기관이야.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에든버러는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했고, 문학창의도시들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 트램에 시를 전시하고 기차역이나 보도에 작가의 말과 문구를 붙이는 등 문학을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 영국 내 또 다른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엑시터는 출판사와 협력하여 책 자판기를 설치하고 스코틀랜드 시인이 럭비 경기 시작 전 쓴 시를 발표하는 이벤트 등을 하고 있다고 해. 에든버러에서도 문학창의도시에 대해 어떻게 더 홍보하고 다른 도시들과 협력하며 교류해 나갈지가 가장 큰 과제라고 했어. 신진작가를 위해 도서관에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이나 영향을 미친 작품을 읽어주는 활동을 통해 이력에 넣을 수 있는 경력을 만들어 주고, 프로필 사진 준비를 지원해 준다는 것도 흥미로웠지.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창의적인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 지속적으로 문학창의도시에 대해 알리고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한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부천과 원주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꼭 방문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지.
테사 랜스퍼드 시인에 의해 설립된 스코틀랜드 시 도서관은 오롯이 시를 위한 도서관이었어. 아담하지만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부드러운 공간이었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류정리함에 모아둔 크고 작은 시집들이었어. 정식 출간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가제본 타입의 책들을 포함해서 많은 양의 시집들이 따로 분류되어 있었어. 영화 상영회 및 토크, 공개 시 낭독회, 글쓰기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도 홍보 중이었는데 지금은 고요한 이 도서관에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지.
도서관에서 나와 골목 안쪽에 있는 에든버러 작가 박물관을 찾아갔어. 17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박물관은 아담하지만 고풍스러웠어.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세 명의 작가들 - 월터 스콧, 로버트 번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삶과 작품에 대해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었지. 자필 원고, 편지, 유품, 초판본, 심지어 신문에 실렸던 부고장까지 있어 작가들이 바로 이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했어. 에든버러에 처음 오고부터 눈길을 사로잡던 스콧 기념탑. 하늘로 높이 치솟은 거대한 고딕 양식의 탑이 한 작가를 기리기 위한 탑이라는 것이 놀라웠는데, 오늘 작가박물관에서 지역의 작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괜히 첫 번째 문학창의도시가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모든 일정 속에서 에든버러는 책과 작가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라는 것을 느꼈어. 단순히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가려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음이 느껴졌지. 아쉽지만 에든버러를 뒤로 하고 노리치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기차에 올랐어.
그림 14 스콧 기념탑
그림 13 에든버러 작가 박물관
다섯 번째 모험. 글과 마음을 교류하는 곳, 노리치
거리에 어둠이 내릴 때쯤 도착한 노리치는 런던이나 에든버러와는 달리 한적하고 조용한 인상을 주는 도시였지. 이번 연수의 중요한 방문지 중 하나인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의 드래곤 홀은 14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부유한 상인이 무역의 장소로 쓰던 곳이었다고 해. 지붕 장식에 용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드래곤 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향신료나 물고기 등을 교류하던 장소에서 이제는 글과 마음을 교류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어왔어. 지금은 문학 관련 워크숍, 강연, 축제, 교육 프로그램, 가족 창작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문학 창작과 교육,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해.
그림 14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
그림 15 프로그램 및 「거마북이의 모험」 소개
사전예약을 통해 작가들에게 무료로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작가들을 위한 실용적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작가가 이곳에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레지던시 사업은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해. 머무는 동안 개인 작업은 물론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거나 행사를 진행해 볼 수도 있지. 작가가 선정되면 빠르게 접촉해서 작가의 관심사,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 소통하고 최대한 맞춤형 지원을 하려 노력한다고 해. 그 예로 2023년 이연주 극작가의 경우 극장과의 교류를 원하여 노리치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극장 관계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온라인 공간 ‘writing hub’를 통해 관련 기사나 작가 인터뷰, 팟캐스트, 영상 콘텐츠 등 작가들에게 영감과 실용적인 자원을 제공하고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에서 머문 작가들의 콘텐츠도 공유하고 있어. 레지던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이나 작가 지망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의 상주작가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소개했어. 거마도서관의 ‘우리가 만드는 그림책’, ‘놀자! 그림책 캠핑’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거마북이의 모험」 책도 전달했지. 노리치의 도서관과 협업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지만 역시 기금 조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어디에나 예산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의 직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 일행을 환대하고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 해외에서의 작업 경험을 가지고 싶은 작가 분들에게 이곳을 추천하고 싶어.
센터에서 나와 걸으며 Waterstones 서점에 잠시 들렀어. 도시를 이동하면서 가장 많이 본 서점으로 한국의 대형서점들처럼 잘 정돈된 책들과 다양한 문구류 등을 갖추고 있었어. 시간이 허락한다면 느긋하게 책을 고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 마켓을 지나 노리치 중심부에 위치한 노퍽 앤 노리치 밀레니엄 도서관에 도착했어. 높은 천장과 전면 창을 통한 채광이 아름다운 현대적 건물이지만, 창밖으로는 노리치의 예스러운 모습이 어우러져 도시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었지. 도서관은 북적였고 특히 어린이 도서관은 책을 탐색 중인 아기들로 가득했어. 1층의 카페는 도서관과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약간의 소음은 있었지만 불편하기보다 자연스러워 보였지. 사업 창업과 관련된 정보나 특허, 지식재산권 관련 자료 및 교육도 제공하고 있었어. 관내에 미국 도서관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노퍽과 서퍽 지역에서 복무했던 미국 제2항공사단을 기념하여 설립하였다고 해. 지역의 역사를 잊지 않고 도서관에서 기록, 보존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어. 자료실에는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에 대한 도서들을 포함한 LGBTQ+ 코너가 있었어. 이번 연수에서 영국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왔는데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
다음으로는 14세기에 설립되었다는 역사적인 장소, 노리치 대성당 도서관에 방문했어. 도서관 투어를 통해 도서관 내부 서고를 살펴보고 소장 중인 고서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 신학, 문학, 지역 역사와 여행 등 다양한 주제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고문서는 물론 현대 신학자료도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다고 해. 종교 시설의 도서관 방문은 처음이었는데 지역의 종교적, 학술적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유서 깊은 도서관에 대해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 근처에서 특색 있는 큐레이션과 아늑하면서도 재미있는 인테리어 요소가 돋보였던 독립서점, The Book Hive를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런던으로 향했어.
여섯 번째 모험. 사라지지 않는 책의 힘 - 런던이 지켜온 이야기들
그림 17 노퍽 앤 노리치 밀레니엄 도서관
그림 19 노리치 대성당 도서관
그림 20 노리치 대성당 도서관의 고서들
그림 21 The Book Hive
그림 20 빅벤과 거마북이
다시 돌아온 런던! 런던아이와 빅벤을 바라보며 템즈강을 건너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버킹엄궁을 따라 걸었어. 영국에 오기 전 날씨를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오늘도 파란 하늘과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지. 오늘은 영국의 서점들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로 했어. Foyles는 영국의 대표적인 대형 서점으로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는 도서를 보유하고 있고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야. 가장 현대적인 서점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특히 한국 문학 작품과 한국어 서적 코너가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반가웠어. 번화가 피커딜리 거리에 위치한 Hatchards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1797년에 문을 열었다고 해. 영국 왕실에 책을 납품하는 왕실 지정 서점이어서 여왕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지. 희귀본을 따로 보관 중인 책장도 있었는데, 직원에게 요청하면 살펴볼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지. 1912년에 문을 연 여행 전문 서점 Daunt Books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뽑힌 곳이기도 해. 이 서점의 특별한 점은 책을 국가별로 진열하고 큐레이션 한다는 거야. 모든 서점들에는 공통적으로 런던에 대한 그림책부터 여행 서적 등을 모아둔 코너가 따로 있었어. 그리고 서점마다 고유한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지.실제로 현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다양한 서점의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서점들이 여전히 건재하며, 어느 곳이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는 점이야. 온라인으로 쉽게 책을 살 수 있는 시대인데도 직접 서점에 와서 책을 고르고, 읽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원하는 책을 찾는 진지한 모습들이었지. 서점마다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고, 그래서 그 서점을 찾는 이들이 있기에 작은 서점부터 큰 서점까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 같아. 영국의 책 사랑은 단순히 흘러간 문화나 잠시 지나가는 유행 같은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림 25 Hatchards
그림 22 셜록 홈즈 박물관 내부
그림 27 Daunt Books
베이커 스트리트 221B, 셜록 홈즈가 살았던 바로 그 하숙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셜록 홈즈 박물관은 기대했던 일정 중 하나였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작품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지. 홈즈의 파이프, 바이올린, 책상 위에 놓인 실험 도구들과 벽에 있는 총탄 자국 등... 마치 홈즈의 집에 찾아온 의뢰인이 된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홈즈와 왓슨이 거실에서 대화를 나눌 것만 같았어. 작은 공간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온 셜록 홈즈의 팬들을 보며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오랜 문학 콘텐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지.
일곱 번째 모험. 책장을 넘어 펼쳐진 마법의 세계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눈을 뜨는 순간부터 아쉬웠지만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날이기에 기대감도 컸어. 담당자님은 동네의 작은 서점에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처음 집어 들었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해. 유행하던 연예 잡지를 포기하고 아껴둔 용돈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권을 구입해 단숨에 읽고서 “아, 이건 정말 내가 보고 싶었던 이야기야.”라고 생각했다고. 비록 호그와트에 가진 못했지만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삼총사의 모험을 마음으로 함께 하며 어른이 되었다고 말이야.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정말 영화 속 해리포터의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었어. 그리핀도르 기숙사, 덤블도어 교수의 집무실, 그린고트 은행, 더즐리 하우스와 나이트 버스, 다이애건 앨리 등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었지. 의상부터 각종 모형, 소품들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했어.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를 생생히 구현한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책에서 시작된 세계관이 영화, 관광, 문화산업으로 확장되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었어.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좇아 영국에 방문하고 있지.
지금의 나는 서울 송파구의 조그만 거마북이지만, 계속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키워 나간다면 나 역시 잊히지 않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와 이야기를 만들며 자란 친구들과 함께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을 테고, 그 친구들은 거마북이를 통해 도서관을 추억할 수 있겠지.




그림 해리포터 스튜디오
모험을 마치며..
흥흥 작가님은 「거마북이의 모험」 후기에서 ‘거마북이의 모험은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니에요, 거마도서관에서 거마북이의 모험은 계속될 거예요.’ 라고 쓰셨어. 어쩌면 그 말이 우리를 영국으로 데려다 준 ‘포트키’1)였던 것 같아. 작가님과는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올해에도 거마도서관의 문학상주작가 사업은 계속되고 있어. 상주작가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가 도서관에 7~8개월을 머무르며 담당자와 함께 기관의 성격이나 이용자 특성을 파악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짜임새를 고려하며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각 기관마다 얼마든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야. 작가와의 일대일 북토크, 어린이와 엄마들을 위한 창작 프로그램, 여름방학 그림책 특집 등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상주작가 사업을 통해 실현되고 있어. 어쩌면 우리는 미래의 작가를, 좋은 독자를, 도서관의 수호자를 길러내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작가님들과 사업 담당자들이 모여 한 해의 사업을 돌아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며 연대할 수 있었던 이번 연수는 정말 큰 의미가 있었고 새로운 힘과 영감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영국에서 보고 느낀 책과 도서관에 대한 애정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더 많은 사람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서관을 또 하나의 기지로 삼아 꿈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더 좋은 일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야. 나, 거마북이도 열심히 도울게!
* 거마북이는 <2024년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 거마도서관 상주작가 흥흥 작가님과의 거마X흥흥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거마도서관과 함께 올해 스무살이 된 도서관의 오랜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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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시설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문학의 나라 영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를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6박 8일간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문장웹진–모색 10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1)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 기물로 이 기물에 닿는 사람을 지정된 장소로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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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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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1-01
[문장서포터즈] 2020년대 문장웹진 중간결산 특집 좌담 ─신인 작가가 바라본 요즘 시와 소설 문장 서포터즈 2기 김이성 1. 안녕하세요. 두 번째 인사드리네요. 지난 9월 1일 게재된 편은 어떻게 보셨나요? 문학이라는 ‘다정한 네트워크’를 매개로 더 많은 분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저의 바람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닿았다면 좋겠네요. 저는 1차 활동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2차 원고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어요.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이전보다 더 특별한 활동을 기획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지난 며칠간 《문장웹진》에서 기획했던 여러 콘텐츠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어요. 소설과 시, 비평과 기획, 모색 코너까지 전체적으로 훑어보면서 작고 사소하지만 확실하게 《문장웹진》의 지난 20년을 돌아보았지요. 오늘은 《문장웹진》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다가 흥미로운 콘텐츠 하나를 발견해서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보려 해요. 바로 2020년 1월 《문장웹진》 ‘기획’ 코너에 올라온 시리즈인데요. 시집, 단편소설, 장편소설 부문으로 나누어 평론가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호명된 작품을 대상으로 젊은 작가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 좌담이에요. 해당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동료 작가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직접 들어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부문별로 해당 시리즈를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020년대의 절반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비슷한 형태로 ‘중간 결산’을 해보면 어떨까. 10년이라는 시간을 총결산하는 것도 좋지만, 중간 시기에 한 번쯤은 어떠한 흐름과 경향이 두드러지는지 파악해 보고 그와 함께 무심코 놓쳐 버린 과거의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곧바로 계획을 세웠지요. 대상 작품은 지난 5년(2020~2024) 동안 《문장웹진》에 게재된 시와 소설로 한정했고, 작년과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작가님들을 섭외해 해당 주제를 가지고 함께 좌담을 진행해 보았어요. 아래 좌담을 따라가며 여러분들도 함께 《문장웹진》의 2020년대를 추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2. 이번 좌담은 지난 5년간(2020~2024) 《문장웹진》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함께 읽고 해당 기간 우리 문학을 중간 결산하여 지나간 과거와 나아갈 미래를 동시에 살펴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젊은 작가 두 분을 섭외하여 작품 선정을 부탁드렸고, 그렇게 해서 선정된 9편(시 5편, 단편소설 4편)의 작품을 가지고 함께 얘기 나눠 보려 합니다. 본 좌담에서 언급된 작품은 본문 아래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이성: 안녕하세요. 문장 서포터즈 2기 김이성입니다. 오늘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작가님들을 모시고 ‘2020년대 문장웹진 중간결산 특집 좌담’을 진행해 보려 합니다. 먼저 작가님들 한 분씩 자기소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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