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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작성일 2025-10-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노작홍사용문학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노작홍사용문학관 조온윤

   

   “Stories are told eye to eye, mind to mind, and heart to heart.”

   이번 영국 국외연수로 방문했던 에든버러의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에서 운영 철학으로 삼고 있는 스코틀랜드 격언이다. 연수 나흘째 날에 만난 이 말을 나는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떠올렸다. 한국과 달리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상대에게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야기가 눈에서 눈으로, 정신에서 정신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믿음만 있다면 영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외를 나가본 경험이 적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이 짧은 문장 한 줄이 자꾸만 묘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지난 연수를 회고하며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 데에는 영국이니 당연하게도 영어로만 진행되는 스토리텔링 센터의 공연을 보고 ‘이야기는 그저 눈에서 눈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라고 스스로 다독여야 했던 때문도 있을 것이다. 공연의 내용을 전부 해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조적으로 한 말이지만, 자꾸만 강조하게 되는 이 문장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이날 스토리텔링 공연을 관람하고서 알게 된 건, 그 나라만의 문화에 기반한 유머와 뉘앙스가 담긴 모든 대사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이야기꾼이 전하려는 이야기의 얼거리를 비롯해 슬픔과 기쁨, 분노와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림자극과 애니메이션, 노래와 연주가 어우러졌기 때문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무대에서 구연을 맡는 주연 배우, 그러니까 ‘스토리텔러’가 실감 나는 구연과 감정선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상황에 쉽게 이입하게끔 관객들을 끌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관람한 스토리텔링 공연 〈A Wolf Shall Devour the Sun〉은 한두 명의 출연자가 구술로 극을 이끌어가는 공연이었는데, 이런 형식 자체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접해보지 못한 형식이라서 내게는 유독 새롭게 느껴졌다.



   여기에 연극배우와는 성격이 분명하게 다른 듯한 스토리텔러라는 역할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본 이날 공연의 스토리텔러는 Dougie Mackay, 노래와 연주는 Jemima Thewes라는 가수이자 작사가였다. Mackay 씨는 바이킹처럼 길고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이야기를 손에 쥔 공처럼 갖고 놀듯이 그의 읊조리는 짧은 농담에 모두가 웃고, 격앙된 한 마디에 모두가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멋진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어린이 독자에게 동화책을 소리 내어 들려주는 동화 구연이나, 작가가 독자를 만나 자신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으며 소통하는 낭독회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다. 다만 아직은 콘텐츠로서의 공연화가 될 정도로 대중적인 문화로는 느껴지지 않기에 이곳 스토리텔링 센터의 공연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 등이 좋은 모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전 미팅으로 만났던 스토리텔링 센터의 책임 담당자 Daniel Abercrombie 씨에 따르면 그곳 센터에서 새로운 스토리텔러를 지원하기 위해 견습 프로그램으로 멘토링과 무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스토리텔러가 전문 분야 중 하나로 지원을 받고 양성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는 없는 예술 분야의 제도적 차이 중 하나로 참고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에서 켈트족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여러 구전 속 늑대와 늑대인간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지난해 상주작가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어린이 가면극 프로그램 <괴물들의 밤>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전통 요괴에 대해 알아보고 저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괴물을 가면으로 만들어 무대를 꾸며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스코틀랜드와 북유럽 지역 신화의 늑대인간이 곧 우리네 속담이나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격이었다.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어느 나라든 괴물 이야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미를 끄는 듯했다. 나중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또 열게 되거든 공연에서 본 그림자 인형극 같은 연출을 참고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직 중인 시설에서 활동하는 동아리 중 시 낭송회와 낭독극 등을 여는 낭독 동아리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사례로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단순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라 여길 수도 있는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고 전문화한 콘텐츠가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센터에서 소개해준 대표적인 행사로, 매년 10월에 이곳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의 네더보우 극장을 주무대로 스토리텔링 테마 축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스코티시 인터내셔널 스토리텔링 페스티벌(Scottish International Storytelling Festival)을 열고 있다고 했다. 시기가 맞아 페스티벌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욱이 좋았겠으나, 이날 들려준 운영 사례와 공연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모으고 있을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문학의 기원은 스토리텔링, 즉 구비문학일 텐데 지금은 기록이나 출판 매체와 떼려야 뗄 수 없게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나르고 전해 듣는다. 문학으로 지칭되진 않더라도 부모의 유년 시절과 결혼 이야기, 아이들 사이에 사실인 양 떠돌아다니던 도시괴담, 어느 경영인의 성공 신화, 하물며 카페에 모여 나누는 신변잡기까지, 스토리텔링의 형태를 띠지 않은 삶은 드물다. 에든버러가 세계적인 문학 도시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문학의 근원적인 매체인 구전을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이자 콘텐츠로서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문학 작가들의 활동이 단순히 작품 창작과 출판에 그치지 않고 낭독회, 책담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다. 작가가 독자를 대면해 눈에서 눈으로, 생각에서 생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시와 소설을 전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문학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도 영상이나 공연, 전시 등으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에, 여기에 발맞춰 문학 장르의 저변도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쇄된 사각의 지면을 넘어 일상의 문화 곳곳에 문학이 공존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스토리텔링, 다른 말로는 문학이 사람 대 사람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 감정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라는 점에서, 스코틀랜드의 오랜 격언은 지금도 살아 있는 말이겠다.

   

   *

   

   에든버러에서의 첫날 구시가지를 걸으면서는 놀라운 건축물도 하나 만날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주변 건물들 위로 웅장하게 솟아 있어 에든버러의 랜드마크임이 분명한 첨탑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단 한 명의 문학 작가, 에든버러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월터 스콧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탑이었다. 월터 스콧은 우리나라로 치면 윤동주나 이상 정도의 인지도와 대표성을 띠는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라고 했다. 탑에 대해서도 좀 더 찾아보니 빅토리아 시대에 고딕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고 그 높이가 약 61미터로 한 명의 작가에게 헌정된 기념비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건축물이란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다.



   이튿날 방문한 에든버러 작가 박물관(The Writer’s Museum)에서도 내부 공간마다 월터 스콧을 비롯해 로버트 번스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 스코틀랜드 대표 작가들을 기념하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기념탑에 이어 그들을 기리는 박물관을 보고 있노라니 이렇게 문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드높이는 곳이기에 문학의 도시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게구나 싶었다. 재직 중인 시설이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자 복합문화시설인 터라 한 도시 혹은 국가가 그곳을 대표하는 문인을 기리는 규모나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작가를 기리는 기념물의 크기로 그의 문학적 유산에 대한 가치의 척도를 매길 수는 없을 테지만, 이 정도 규모의 탑이라면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속으로 정말 대단한 위인인가 보다 하고 경외심을 품게 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 나는 이번 연수가 영국의 시문학과 이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에 대해서도 배워보는 시간이길 바랐다. 어디까지나 시설 담당자로서 참여하게 된 연수이기는 하나, 시를 애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그런 기회를 바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든버러 일정 중에 만난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 문학부서의 책임자 Alan Bett 씨가 주력 장르로 아동문학과 공상과학소설, 그리고 시를 소개했을 때 그 말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한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시 앞에 주력이라는 단어가 붙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스코틀랜드에서도 시가 상업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장르는 아니라고 했다. 시집이 높은 판매율을 띠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문학의 양식으로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를 쓰는 시인들은 항상 많다고 했다. 덧붙여 스코틀랜드의 문학 산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문학 작가를 초청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모멘텀(Momentum) 프로그램과 함께, 최근에는 젊은 시인들이 에든버러를 찾아 시를 공연으로 재창작해 무대를 올렸다는 사례도 들려주었다. 문학이 지면을 벗어나 독자를 만났다는 데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끄는 얘기였는데, 미팅 시간이 다 되어 구체적인 공연화 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질문을 잇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서 에든버러를 알리고 있는 단체인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와의 미팅에서도 몇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단체의 총괄 담당자이자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Harriet MacMillan 씨는 에든버러를 비롯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영국 내 도시들과 그곳에서 진행했던 문학 활성화 사례를 여럿 소개해주었다. 개중에는 엑서터에서 출판사와의 협업으로 정류장 곳곳에다 책 자판기를 설치해 도서 마케팅과 공익적 효과를 둘 다 잡았다는 사례, 에든버러에서 성벽을 활용해 문학작품의 문구를 미디어 파사드로 만들었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았다.

   특히 엑서터의 책 자판기는 한국에도 특유의 문고본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펭귄북스 출판사의 대표가 엑서터 시에 먼저 제안한 사업이라고 했다. 어느 날 그가 기차를 타기 전 급히 책을 구하고 싶었는데 살 곳이 없었던 경험으로 역마다 음료를 사듯 책을 살 수 있는 자판기를 아이디어로 제안해 실현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수익은 다른 독서 프로젝트나 작가 지원사업에 재투자한다고 하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여러 프로젝트로 브랜드 평판을 높이고 행정기관에서는 공공의 성과를 내고 시민들은 자판기로 책을 사 읽는 편의를 제공받게 되는 셈이었다. 출판사도 기업이기에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순 없겠으나, 시민 복지를 책임지는 정부 부처와 출판사 모두 독서의 가치에 공감하는 만큼 공공의 영역에서 적극적인 협업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MacMillan 씨와의 만남에서는 럭비로 유명한 웨일스의 한 지역에서 시인들이 럭비를 주제로 시를 창작하고 경기 전에 낭독했다는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럭비를 위한 시라니, 보통은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스포츠와 문학이 그런 방식으로 가까워질 수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어떤 물건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으면 한번은 눈길이 머물게 되듯이, 시나 문학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럭비 팬일지라도 럭비에 관한 시라면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거였다. 이날 미팅으로 얻은 사례들은 모두 문학과는 거리가 먼 대중과 자연스럽게 문학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것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에든버러에서의 이야기만 죽 늘어놓은 듯하지만, 영국의 또 다른 유네스코 문학도시인 노리치에서 보고 듣고 걸으며 얻어온 것들도 잊을 수 없다. 연수 닷샛날 일정으로 방문한 노리치의 국립문예창작센터는 손수 준비한 차와 선물로 우리를 가장 환대해준 곳이기도 했는데, 이전에 한국 작가들이 여럿 레지던시로 머무르다 돌아간 자취가 남아 있어 더욱이 반가운 기분이었다. 시민들을 위한 창작 워크숍과 문학 행사를 열고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내어주는 등의 운영 방식이 우리나라의 문학관과 가장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건물의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도 있었다. 국립문예창작센터의 별칭은 드래곤 홀(Dragon Hall)로 15세기에 한 상인에 의해 거래소로 지어졌고, 당시에는 지붕에 용 장식이 달려 있어 드래곤 홀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었다고 했다. 이후 상점이나 주택 등 여러 용도를 거치고 오랜 시간 술집으로 운영되다가 20세기에 공사를 거쳐 복원, 2015년에 이르러서야 노리치 작가 센터로 인수되었다. 이후 2018년에 다시 노리치 작가 센터에서 품을 넓혀 국립문예창작센터로 명칭을 바꾸며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덧붙여, 드래곤 홀의 나무 기둥에는 그을음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위치스 마크(witch’s mark), 마녀 심판이 있던 시대에 마녀를 내쫓기 위한 일종의 주술로서 남긴 자국이라는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별관에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는 레지던스 공간도 구경하고 보니 이전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던 해외 레지던스 사업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언젠가, 이곳 노리치의 국립 문예창작 센터에 레지던스 참여자로, 그게 아니면 관광객으로라도 또 한 번 올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겠으나 만일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들이 들려준 드래곤 홀의 연원이나 위치스 마크 같은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런던의 영국도서관, 에든버러의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 북 페스티벌,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 등 다른 방문 기관이나 단체도 모두 비슷하긴 했지만, 특히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강조되는 듯한 단어는 커뮤니티, 소셜, 네트워킹이었다. 지역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곳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매달 노리치의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참여 작가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문학을 통한 독자, 지역민과의 네트워킹은 국립 문예창작 센터 같은 시설뿐만 아니라 문학과 관련한 곳인 도서관, 서점, 출판사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 작가의 활동 양상이 작품 집필에 그치지 않고 낭독회나 책담회 같은 소통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듯이, 이제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할 또한 자신의 문학 콘텐츠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동일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매개자라는 역할이 따라붙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참여했던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또 더더욱 발전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연수의 마지막 이틀은 런던에서 보냈다. 귀국하기 전 런던에서의 시간은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지난해 상주작가 지원사업과 함께 이번 연수를 정리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상주작가 지원사업의 시설 담당자로서 정란희 상주작가님과 합을 맞추었던 지난 2024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이다. 한국인에게 2024년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로 기억될 테지만 내게는 하나 더, 정란희 작가님과 함께하며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된 해로 남아 있다. 물론 우수시설 선정은 정란희 작가님이 문학관 상주작가로서 보여준 열정과 전심에 의한 결과지만,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약간의 수고를 거들었던 내게도 이 일은 분명하고 커다란 기쁨이다.

   말이 씨가 되었던 걸까? 가끔 일이 몰려 힘에 부칠 때마다 작가님과 나는 지지난해 우수시설 선정 팀이 떠난 스웨덴 연수를 떠올리며 내년에 우리도 스웨덴엘 가자는 말로 서로를 북돋곤 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주고받던 말이긴 해도 어쩐지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 스웨덴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님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열심히’ 그리고 ‘다정히’라는 부사를 양쪽 어깨에 달고 있다는 게 여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화 창작 수업의 수강생들을 위해 수업 밖에서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프로그램에 온 어린이들을 위해 조그만 간식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던 그 마음이 우수시설 선정의 비결이라면 비결일 테다.



   6박 8일 동안의 연수도 돌이켜본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해외를 나가본 적 없던 내가 그 먼 나라에서 여섯 밤을 보내며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데에는 연수에 동반했던 선생님들의 숨은 노고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후기보다는 개인적인 소회로 빠지게 되는 듯하지만 연수 내 가까이서 함께한 그들의 사려와 대화로부터 배운 것들이 많기에, 앞에서는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감사의 말들을 이렇게나마 남기고 싶다.



   후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또 하나 전해보려 한다. 다시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에서 들은 것들을 주워섬겨 보자면, 구전되는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입에서 입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점점 더 새로운 이야기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이야기는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각색되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을 갖게 된다. 내가 쓴 후기 또한 영국에서의 엿샛날을 완벽히 그대로는 담을 수는 없고 어떤 부분은 장황해지고 어떤 부분은 생략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왜곡이나 변질이 아니라 이야기꾼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는 점은 이번 영국 연수의 숨은 의의이기도 하겠다. 이번 연수에는 우수시설 선정팀과 더불어 여러 일정을 계획하고 지원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생님들, 통역과 인솔을 맡아주신 코디네이터님까지 모두 아홉 명의 일행이 함께했으므로, 우리는 모두 아홉 개의 이야기를 새로이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버전으로 주어진 영국 연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시설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문학의 나라 영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를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6박 8일간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문장웹진–모색 10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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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11-01
시를 배우는 교실, 그리고 은하수 같은 무대

[문장서포터즈] 시를 배우는 교실, 그리고 은하수 같은 무대 ― 글티너 대리석, 멘토 성현아·서윤빈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2기 이시우 학교 동아리실 같은 공간 ― 글티너 ‘대리석’ “문학광장 글틴에서 주로 시를 쓰고 있는 대리석이라고 해요.” 인터뷰의 첫인사는 담백했다. 글틴에서 활동하는 십 대 창작자로서, 대리석은 자신을 ‘학교 동아리실 같은 공간에서 시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 소개했다. 그는 글틴에서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또래들과 소통하며 글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사진1. 문학광장 글틴(https://munjang.or.kr/teen) 글틴은 한글 ‘글’과 영어 ‘TEEN’이 만나 붙여진 이름으로, 문학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소통을 연결하기 위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5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국내 유일한 청소년 온라인 문학 플랫폼이다. 글틴의 ‘쓰면서 뒹글’은 글틴 친구들이 쓴 시, 소설, 수필, 감상&비평 장르의 작품을 직접 올리고 공유하는 창작 공간이다. 이곳에 글을 올리면 분야별 멘토들이 각 작품에 댓글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작성한다. 이후 다음 달 중순이 되면 담당 멘토들이 월 장원을 뽑아 주시고 월 장원으로 뽑힌 작품들은 이후 문장청소년문학상 후보작들이 된다. 대리석에게 글틴은 우연히 찾아왔다. 먼저 활동하던 친구의 권유가 계기였다. 학교 내신과 시험 속에서 ‘시’는 언제나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졌지만, 글틴에서 만난 다양한 작품들은 그의 시각을 바꾸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쓴 시였는데, 멘토님께서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주셨고, 그 작품이 월 장원 후보에 오르기도 했어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진2. 월 장원 후보 선정 공지 멘토링 경험은 그에게 글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양안다 멘토님께서 현대 시 독서가 부족하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머리가 띵해졌어요. 그전에는 시를 시험공부처럼만 접했거든요. 그때 이후로 시를 더 진지하게 읽고 쓰게 되었습니다.” 사진3. 대리석의 시에 대한 멘토링 의견 글틴 속 또래들과의 관계는 아직 서툴다. “카톡방이 있긴 한데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대신 글틴을 알려 준 친구와 가끔 만나 같이 글을 쓰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각기 다른 색을 발견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기 신념을 담아내고, 어떤 이는 고전 시가 같은 문체로 글을 쓰기도 한다. “매일 올라오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여러 스타일을 접하면서 시 쓰는 재미가 커졌습니다.” 대리석에게 글틴은 단순한 사이트가 아니라, 문학을 처음 제대로 배우게 해 준 공간이다. “학교 동아리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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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01
2020년대 문장웹진 중간결산 특집 좌담

[문장서포터즈] 2020년대 문장웹진 중간결산 특집 좌담 ─신인 작가가 바라본 요즘 시와 소설 문장 서포터즈 2기 김이성 1. 안녕하세요. 두 번째 인사드리네요. 지난 9월 1일 게재된 편은 어떻게 보셨나요? 문학이라는 ‘다정한 네트워크’를 매개로 더 많은 분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저의 바람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닿았다면 좋겠네요. 저는 1차 활동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2차 원고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어요.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이전보다 더 특별한 활동을 기획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지난 며칠간 《문장웹진》에서 기획했던 여러 콘텐츠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어요. 소설과 시, 비평과 기획, 모색 코너까지 전체적으로 훑어보면서 작고 사소하지만 확실하게 《문장웹진》의 지난 20년을 돌아보았지요. 오늘은 《문장웹진》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다가 흥미로운 콘텐츠 하나를 발견해서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보려 해요. 바로 2020년 1월 《문장웹진》 ‘기획’ 코너에 올라온 시리즈인데요. 시집, 단편소설, 장편소설 부문으로 나누어 평론가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호명된 작품을 대상으로 젊은 작가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 좌담이에요. 해당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동료 작가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직접 들어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부문별로 해당 시리즈를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020년대의 절반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비슷한 형태로 ‘중간 결산’을 해보면 어떨까. 10년이라는 시간을 총결산하는 것도 좋지만, 중간 시기에 한 번쯤은 어떠한 흐름과 경향이 두드러지는지 파악해 보고 그와 함께 무심코 놓쳐 버린 과거의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곧바로 계획을 세웠지요. 대상 작품은 지난 5년(2020~2024) 동안 《문장웹진》에 게재된 시와 소설로 한정했고, 작년과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작가님들을 섭외해 해당 주제를 가지고 함께 좌담을 진행해 보았어요. 아래 좌담을 따라가며 여러분들도 함께 《문장웹진》의 2020년대를 추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2. 이번 좌담은 지난 5년간(2020~2024) 《문장웹진》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함께 읽고 해당 기간 우리 문학을 중간 결산하여 지나간 과거와 나아갈 미래를 동시에 살펴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젊은 작가 두 분을 섭외하여 작품 선정을 부탁드렸고, 그렇게 해서 선정된 9편(시 5편, 단편소설 4편)의 작품을 가지고 함께 얘기 나눠 보려 합니다. 본 좌담에서 언급된 작품은 본문 아래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이성: 안녕하세요. 문장 서포터즈 2기 김이성입니다. 오늘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문장웹진》에 첫 시와 소설을 발표한 작가님들을 모시고 ‘2020년대 문장웹진 중간결산 특집 좌담’을 진행해 보려 합니다. 먼저 작가님들 한 분씩 자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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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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