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오늘의 그래픽노블 이야기1 – 열세 살부터 시작되는 여성 생존 보고서

  • 작성일 2021-07-01

[리뷰 - 그래픽노블]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그래픽노블 이야기 1

- 열세 살부터 시작되는 여성 생존 보고서


김유진




1. 열세 살의 여름 바다와 겨울 반달


『열세 살의 여름』(이윤희, 창비, 2019)에서 시작하자. 『열세 살의 여름』은 제목대로 6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해 겨울방학에 끝나는 사랑 이야기다. ‘1998년 여름’이라고 첫 문장에서 밝히고 있으나 작품에서 자전적 성격이 강조되고 있지는 않다. 2021년의 열세 살이 아닌 1998년에 열세 살이었던 이야기가 지니는 의미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1998년의 열세 살에만 집중한다는 것. 그러므로 1998년의 열세 살로 2021년의 열세 살을 넘겨짚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1998년의 열세 살과 2021년의 열세 살은 책 어디쯤에서 반드시 만나리라는 것. 20여 년이라는 시간 차이로 그때의 열세 살과 지금의 열세 살은 다르겠지만, 열세 살은 열세 살이어서 같기도 할 테니까.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동시에 가진 얼굴로 마주할 것이다.
여름방학 때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나 천천히 서로에게 밀려드는 해원과 산호의 마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교차로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우진과 려희의 마음. 매 갈피마다 섬세하게 그려낸 이 마음들은 지금의 열세 살에게도, 이십 년 전의 열세 살에게도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이 작품은 지금의 열세 살과 서른세 살에게 동시에 다가간다. ‘1998년 여름’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열세 살의 연애라 하면 종종 풋사랑으로 여기고 만다. 성인이 된 후 사랑과는 다른 경계에 두고, ‘첫사랑’이란 단어로 이상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사랑은 생생하고 진지하다. 사실 사랑이라 부를 만한 마음은 언제나 그러했다. 가장 처음 시작된 사랑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오롯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열세 살을 무엇에든 오롯할 수 없는 나이라고 보는 편견에 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열세 살의 사랑이 오롯하다면 열세 살의 불안과 공포와 고통도 마찬가지다. “열세 살,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겨울까지 반년 동안 나는 지하 계단 아래 반달 모양의 무대 뒤에 있었다.” 『반달』(김소희, 만만한책방, 2018)의 첫 문장이다. 이 책 역시 열세 살의 이야기지만 똑같은 열세 살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송이는 ‘카시오페아’라는 이름의 지하 ‘라이브 노래 주점’, 반달 모양 무대 뒤, 작은 창고에 산다. 주점을 운영하는 엄마가 밤새 손님들의 안주를 만들 동안 송이는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무대 뒤 창고에 꼭꼭 숨어 잔다. 송이의 반달은 옛 동요에 나오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인 반달,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사는 반달과 멀다.
그러나 이 책은 어두컴컴한 지하 주점의 무채색 배경에서도 줄곧 송이의 후드 티셔츠를 유난히 맑은 초록빛으로 돋보이게 그린다. 송이의 초록색 티셔츠 한가운데 크게 그려진 별은, 송이의 가슴에 가장 빛나는 별이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송이는 비슷한 처지의 선영을 외면하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숙희를 보며 불운의 그늘을 끝까지 확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두운 지하 가방 공장 한편에 살며 컵라면을 내놓는 숙희와, 컵라면을 받아든 송이의 얼굴은 끝내 담담하다. 이 책 『반달』은 열세 살이라고 해서 모두 보름달처럼 환하고 안락한 보살핌 속에 살아가지는 못하는 현실을 비춘다. 반달과 같은 절반의 밝음과 절반의 어두움. 열세 살 아이들이 겪는 반달 같은 시간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지하 창고방의 무대를 닮은 반달 속에서 우리는 웃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저 반달 속에서 우리는 가난하지도 외롭지도 않은 노래를 끝없이 부르고 있었다. 저 반달 속의 친구들을 나는 내내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마지막 문장과 송이의 미소로 이야기는 끝난다. 첫 장에서 ‘1987년 초가을’이라는 배경으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임을 알리며 시작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기억’을 다짐한다. 이 책 『반달』은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삼십 년이 지나서도 비로소 지켜낸 자리가 된다.
‘후기 만화’에서 작가는, 『반달』이 자전적 성격을 지닌 이야기라는 사실을 더 상세히 알리며 강조한다. “송이가 30년 더 나이를 먹은 소희입니다” “우리 집 망했을 때 경험을 만화로 만들까 하는데” “30년 전으로 저를 만나러 갈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여행길에서 저는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작가가 밝혔듯 “어딘가에 있을 송이 같은 친구들을 위해” 가능했던 작업이다. 지금의 열세 살과 언젠가 열세 살이던 모두와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삼십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지켜낸 약속이기에 더 많은 열세 살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는 ‘1998년의 열세 살’을 충실히 그려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여성 작가의 작품 경향 중 하나는 이렇듯 작가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기억하고 재현하는 데서 시작한다.



2. 혼자인 스무 살을 기르는 자리


이제 열세 살은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김정연, 창비, 2017)에서 “안동에서 서울로 도망치듯” 상경한 스무 살은 아주 작은 고시원에 짐을 푼다. 인테리어 회사의 막내 사원으로 일하며, 야근을 밥 먹듯 하고, 햄스터를 기르며, 고시원에서 월세방으로 집을 옮긴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독립해야 하는 과제는 누구에게나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스무 살 여성을 짓누르는 건 경제적 곤란만이 아니다. 독립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성마르고 분노 가득한 얼굴과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라고 물을 게 빤한 어머니의 걱정이 더욱 무겁다.
『자리』(김소희, 만만한책방, 2020)에서 “미대 졸업 후, 독립을 결심하고 (…) 작업실을 찾고 있”는 두 명의 이십대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인트로 포함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제목은 이들이 살았던 집 혹은 새 집을 구하면서 보고 다녔던 집들의 이름이다. 빨간 머리 앤의 창문 집, 할머니네 마당 집, 예술가들의 집, 터가 좋은 집……. 제목만 봐서는 낭만적이고 따듯하지만, 얼마 안 되는 보증금과 월세로 서울에서 웬만한 집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은 빤하다. 이 책에서 그래픽노블이란 장르는 청년 주거 빈곤의 현실을 생생한 이미지로 재현하는 데 매우 적합한 형식이 된다. 미처 상상치 못할 만큼 빈곤한 주거 형태를 한 집, 두 집 확인하며 독자들은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두 발 뻗고 잘 ‘자리’ 하나 없는 현실이 나의 삶의 ‘자리’라는, 뼈아픈 인식을 함께한다.
그런데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그러했듯 이십대 여성의 독립은 주거 빈곤, 저임금 노동, 노동착취 등 청년 계층의 노동과 복지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부장제라는 이중의 억압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자리』의 주인공들이 혼자만의 힘으로 작업실을 찾고, 만화와 그림책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부모는 매번 그들의 의기를 꺾는다. “얌전히들 지내다 시집가”라고 종용하며,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고 “헛바람만 들어서 시집 못 가”기 십상이라고 다그친다. 예술 노동자인 이십대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의 과제는, 현재 필요한 생활비와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 더해 미래를 예비하는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까지도 요구한다. 언제 소득으로 전환될지 모를 노동에 시간을 투자하고, 기회비용을 감수한다. 그때 자본과 가부장제는 모두,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이 젊은 여성에게 매우 차갑고 혹독한 전쟁터가 된다.
작가는 이 책 후기를 통해 “『반달』에서 10대의 송이를 그리고 『자리』에서 20대의 송이를 그리면서 이것은 ‘고난 시리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작품 역시 자전적 이야기임을 밝힌다. 친구 ‘순이’가 ‘고정순’ 그림책 작가라고도 명시한다. 고정순 작가를 아는 이라면 작품 속 ‘순이’가 개인전을 여는 갤러리 뜨쥬, 로베르네를 보고도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겠다.(『반달』에서도 고정순 작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실존인물인 동료 작가를 등장시키는 이 작품에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 예상보다 더 많이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과, 최근 출간된 고정순 작가의 산문집 『그림책이라는 산』(만만한책방, 2021. 이하 『산』으로 표기)을 나란히 두고 보면, 두 여성 작가의 이십대가 작품 속 두 주인공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집도 가까운 순이가 이런 생활을 할 필요가 있을까.(『자리』, 20면)
나는 스무 살에 집을 나왔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작업실이 있었고, 점점 집보다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산』, 10-11면)


(순이는-필자 주) 주말에 경륜장 매표소에서 알바를 해요. 형광주황색 투피스가 유니폼이래요.(『자리』, 109면)
마침 올림픽 공원 내에 있는 경륜장에서 매표원을 모집했고 나는 1년 8개월 동안 어울리지 않는 살구색 스리피스 제복을 입고 간이 매표소 안에서 경륜장 입장권을 팔았다.(『산』, 13면)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하는 워크숍인데 (…) 소개로만 받는데 언니가 해준대!(『자리』, 110면)
(…) 그때 내게 유일한 희망은 이화여자대학교 후문에 있는 ‘초방책방’ 워크숍뿐이었다. 사노 요코 그림책을 알려준 작업실 이웃 언니의 고급 정보에 의하면 그곳에서 그림책 워크숍이 곧 열리고 워낙 소수 인원을 모집하니 재빠르게 접수해야 한다고 했다.(25면)


순이는 워크숍뿐만 아니라 그림책 까페에서 평일 알바까지 구했다.(『자리』, 111면)
초방책방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경숙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까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그림책을 공부하며 돈을 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산』, 27쪽)


『자리』에 나타난 ‘순이’의 이야기와, ‘순이’의 모델인 고정순 작가의 에세이는 크고 작은 설정에서 매우 꼼꼼하게 일치한다. 양쪽 책에서 굳이 이를 찾아 인용한 이유는, 『자리』가 작가의 경험에 근거해 현실을 기록하는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제 그들이 함께 살거나 보았던 여러 집과, 예술 노동자로서 겪어야 했던 일들은 픽션보다는 보고서로 읽게 된다. 이십대 여성들의 독립과 생존에 관한 보고서인 것이다.



3. 열 살에도, 스무 살에도 끝나지 않는 비밀


힘겨운 과정을 거쳐 드디어 여성은 자립을 이룬다. 『이세린 가이드』(김정연, 코난북스, 2021)는 유능한 음식 모형 제작자 이세린의 이야기다. 매 장마다 캘리포니아 롤, 와플, 비빔밥 등 음식 모형이 하나씩 등장하고, 세린은 각 음식 모형을 만드는 과정과 그에 얽힌 기억을 독백으로 풀어 놓는다. 이 유능한 여성은 첫 직장의 음식 모형 부서에서 직장 선배의 텃세를 견디다가, 실력을 쌓아 독립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며 자신을 능력 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로서 구성해 나간다. 그런 세린에게도 1인 가구로 살아가며 감수해야 하는 주거 안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남자 신발을 현관에 갖다 놓고 배달원이 왔을 때 집에 남편이 있는 척 연기해야 한다. 급기야 어느 새벽 누군가 현관문을 덜컹이는 소리에 경찰을 부르기까지 한다. 세린은 떡국 모형 고명을 만들며 “위에 두 오빠를 둔 나는 줄곧 고명딸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그럴 때마다 두 오빠는 메인이고 난 장식을 맡아 태어난 기분이라 싫었어.”라고 고백한 뒤 “어른들은 셋 중에 내가 돈을 제일 잘 벌게 될 거라곤 예상 못 했겠지. 결국엔 떡이 고명인 파달걀국이었다 이거야!”라고 과거를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지만, 현재의 폭력 앞에서는 난감해한다.
열 살에도, 스무 살에도 여성은 지속적인 억압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폭력의 피해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쓴다. 『올해의 미숙』(정원, 창비, 2020), 『비밀을 말할 시간』(구정인, 창비, 2020), 『기분이 없는 기분』(구정인, 창비, 2019)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에서 끝내 생존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특히 구정인 작가의 두 작품은 여성폭력 피해자의 심리를 낱낱이 드러내면서 생존자로 나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비밀을 말할 시간』에서 아동 성추행 피해자인 은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 가해자에 대한 분노, 잘못된 자책감과 수치심, 엄마와 친구들에게 예상되는 반응 등을 두고 혼자서 고민하다가 결국 성폭력 피해 사실을 친구에게 말한다.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마냥 원만하지 않다. 괜한 걱정까지 더해져 친구와 단둘이 산부인과를 찾아야 했다. 피해 사실을 들은 엄마의 첫 마디는 고작 일곱 살이었던 은서의 행동을 탓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은서는 주변 여성들의 격려와 연대 속에서 피해 생존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됐고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걸, 나는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기분이 없는 기분』은 절연한 아버지가 고독사 한 이후 우울증이 점점 깊어지는 혜진이 진정한 애도의 시간을 거쳐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이 책은 원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한 기혼 여성의 우울증을 심리적으로 살피는 시선을 통해 생애 전반에 걸친 여성폭력이 여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기혼 여성의 삶은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수신지, 귤프레스, 2018), 『곤 gone』(수신지, 귤프레스, 2019)에서 산뜻하면서도 통쾌한 가부장제 비판으로 우리 만화에 전면 등장한 바 있지만 『기분이 없는 기분』은 이와는 또 다른 색깔로 여성 개인에 집중해 여성들의 삶을 말한다.
혜진은 평생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아버지에게 화낸 적 없이 살았고, 오히려 관계 회복을 위해 일방적으로 애써 왔다. 이혼해 혼자 사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방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식사를 챙긴다. 혜진이 분노를 억눌러야 했던 이유가 오래도록 가부장제에서 유지된 ‘착한 딸’ 이데올로기에 있을 때, 혜진의 우울증은 가부장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오래된 공기처럼 당연한 듯 여겨지는 여성혐오와 폭력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스미듯 영향 미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폭력의 역사를 분별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혜진의 지혜와 용기를 기록한다.
최근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렇듯 성폭력과 가족폭력의 경험들이 작품 곳곳에 표현되어 있으며, 성폭력 피해자의 생존 과정을 또렷이 기록해 놓은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나, 여기 있어요』(디담 ·브장, 교양인, 2020)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만화계 성폭력 사건을 다룬다. 작가 브장은 프로필에서, 웹툰계 반성폭력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문화예술계 조직 내 성폭력 해결 방안을 자문하고, 해바라기센터와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안내서〉를 만들고, 여성가족부와 불법 촬영 피해 지원에 대한 만화를 작업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 전문 강사로도 활동하는 작가는, 이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인물이자 성폭력 피해자인 현지로 등장한다. 만화계의 도제식 구조에서 일상적인 가스라이팅과 노동착취에 더해 성폭력과 폭력 범죄의 피해자였던 현지는 생존자로 살아남아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여성 폭력 피해와 생존을 기록하는 성격을 지닌다.



4.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앞서 살펴본 작품들 외에도 최근 여성 서사를 내세운 만화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여명기(女命記)』(팀 총명기, 위즈덤하우스, 2020)는 ‘여성 서사 단편만화집’이란 타이틀을 내세운 단편집이다. ‘팀 총명기’는 2019년에 결성된, 12인의 청년 여성으로 이루어진 만화 창작팀으로, 이 책에는 이들의 작품 12편이 실려 있다. ‘기획의 글’은 “로맨스가 중심이 아닌 여성의 이야기”라는 프로젝트 주제 아래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나아가서는 앞으로 살아갈 여성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선언한다. 여성 만화라 하면 순정 만화, 로맨스 만화로 한정되어 온 역사에서 나아가 새로운 ‘여성 만화’의 계보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열두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먼저, 최근 페미니즘의 주요한 실천인 탈코르셋 운동을 모티브로 자매간의 연대(「시스터후드」)를 보여주며 페미니즘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는 작품이 있다. 어느 날 반삭을 해버린 동생과 긴 머리 웨이브를 고수하는 언니의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까지 만화가 여성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또 다른 작품들은 『혼자를 기르는 법』이나 『자리』처럼 여성의 독립과 주거 안정, 가부장제의 구속을 벗어나 실행하는 미래에의 희망을 다양한 장르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플랑크톤의 귀향」, 「어떤 날」, 「세상은 거대한 거짓말」)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하는 여성(「Teller」, 「최저 임금을 위하여」), 전장에 나가 싸우는 여성(「이스파라의 마녀」)의 목소리를 복원하기도 한다.
단편집 『여자력(女自力)』(AJS외 4인, 문학동네, 2021) 또한 여성 주인공의 ‘초능력’을 주제로 한 테마 만화집으로 여성 서사를 표방한다. 여자력(じょしりょく, 女子力)이라는 단어는 일본 사회의 은어로, 원래 뜻은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이 얼마나 여성스럽고 청순하고 매력적인지를 평가하는 말이라고 한다. 『여명기』가 ‘여명(黎明)’의 한자어를 ‘여명(女命)’으로 바꾸며 의미를 확장한 데 비해 ‘여자력(女自力)’은 ‘여자력(女子力)’에 담긴 여성혐오를 삭제하고 전환시킨다. 수록작 중에서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서 작은 생명체로 이어지는 삶의 연대(「함안군 가야리 땅문서 실종사건」), 아포칼립스를 헤쳐 나가는 여성 돌봄 공동체(「조용한 세상의 미소」)를 그린 작품들이 여성 서사의 의미로 좀 더 확연하게 다가온다.
이 두 작품집은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자연스레 기존 만화와는 뚜렷이 다른 지향과 문법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품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로 미루어 만화 장르에서의 새로운 여성 서사의 형태를 추출해 내기는 쉽지 않다. 각 수록작 중에는 여성 서사로 평가할 만한 지점을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만화 장르에서도 이 시대 새로운 여성 서사를 찾고 만들어 나가는 시도를 여성 작가들이 공유하고, 이를 출간으로 완성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 최근 그래픽노블과 만화에서 여성 서사라는 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개 자전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여성 어린이, 여성 청소년으로 성장한 경험과 여성 예술가로서 겪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그것은 가족과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이중의 굴레와 폭력에서 생존한 과정에 다름 아니었고, 가히 여성 생존 보고서라고 부를 만하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2015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운동의 영향일 것이다. 긴 호흡의 서사를 차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래픽노블이란 장르는 이러한 여성 서사를 담기에 적절한 형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여성 서사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웹툰 연재 중이고 출간작으로도 사랑받은 『정년이』(서이레 글, 나몬 그림, 문학동네, 2020)처럼 잊힌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며 오늘날의 이야기로 탄생시키는 작업 등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려 본다. 외국 그래픽노블의 상당수는 여성 서사이며, 이 작품들은 매우 뛰어난 작품성으로 그래픽노블이란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그래픽노블에서도 더욱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












김유진
작가소개 / 김유진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동시인.
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 시집 『그때부터 사랑』, 그림책 『오늘아, 안녕』 등을 냈다. 대학과 여러 기관에서 아동문학, 동시, 글쓰기, 젠더 주제의 강의를 한다.


《문장웹진 2021년 7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 포엠맥
  • 2026-05-01

문장웹진 모색

토끼가 사는 섬

[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 구돌
  • 2026-05-01

문장웹진 모색

내가 만났던 서랍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 하가람
  • 2026-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