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 작성일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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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문장웹진》은 연초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다시 보고 싶은 《문장웹진》의 작품을 그 이유와 함께 추천받았고 해당 작품은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로 하여금 시각화하였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성혜
김성혜 작가 한마디
고개를 쭉 빼들어 봐, 보이지? 저 대숲. 저기서 만나자, 밤에. 사무치더라도, 미쳐버리더라도.
독자의 한마디
일상의 긴장과 고독을 감각적으로 성찰한 작품
문장웹진 9월호 살펴보기
테이블 위에서 이소 1. 그날 내가 이태원에 갔었으면 어떤 일을 겪었을까. 나는 신촌에 있었어. 이태원이 아니라. 그건 정말이지, 놀랍도록 가혹한 일이야. [······] 기억나? 프놈펜 숙소에서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생중계로 봐야 했던 그날. 나 자꾸 그날이 생각나.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는 건 정말이지, 말이 안 되잖아.1)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이야. 석이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2)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석이와 동이와 혜란은 대학교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위해 떠난 프놈펜의 한 학교에 있었다. 세 사람은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속했던 세계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3)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말을 고르기 어려웠다. 그때의 석이에게 세월호 사건을 “이런 일들”로 묶거나 “세계 곳곳”의 참사와 비교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뉴스와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던 그때, 석이는 모든 비교를 거부했다. 그들이 일하는 학교의 학생이 한국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2010년 꺼삑섬 축제에서 일어난 압사 사건에 관해 말하자, 석이는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라고 선을 그었고, 세 사람 모두 “우리조차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사건을 캄보디아 사람이” 뭘 안다고 “그런 죽음”4) 따위와 비교하는지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이후, 석이는 완전히 달라진다. 석이에게 세월호와 이태원과 꺼삑섬은 신속하게 연결된다. 그러니까 10년이 흐르는 사이, 세월호는 테이블 위로 올라온 것이다. 아무리 충실한 토양학자라 해도 영원히 숲에 머무를 순 없다. 토양학자는 숲의 흙 일부를 추출하고 분류하여 테이블 위에 올려 둔다.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차마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던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얼마만큼의 변형과 생략을 감수하고서라도 유사도에 따라 다른 사건과 함께 배치되고 비교된다. 이 과정이 모두에게 일어난다고, 특히 모든 유가족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에게는, 적어도 어떤 유가족에게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렇게 사건은 다른 사건의 중요한 참고문헌이 되어 주기도 한다. 2005년, 백 명이 넘는 승객들이 사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은 아사노 야사카즈가 ‘사고의 사회화’를 위한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5)을 주장하며 정부와 JR서일본을 상대로 10년간 투쟁한 기록에는 대구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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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봉인 해제된 소녀, 노벨로부터의 이륙 :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 소설’1) 리라이팅을 통해 생각하는 근대 소설(novel)의 변화 김미정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는 그것의 실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소용돌이가 멈추고 낙진이 잦아들 즈음, 변형된 지형지물과 그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켜켜이 쌓여 가는 시간의 무늬는 다시 새로운 지층을 이루고, 그것은 또 다른 소용돌이를 만날 때까지만 안전하다. 그럼에도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훗날 교정되어야 할지 모를 오류에마저 몸을 내맡겨 보는 일이 어쩌면 비평의 일이다. 1. novel 혹은 근대인의 인식 체계 이 글은 지금 소설(novel)이라는 장르를 둘러싼 어떤 소용돌이의 체감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하지만, 이야기의 양식이 모두 동일할 리는 없다. 그 양식을 무어라 부르건 거기에는 늘 각 시대의 인식·정서 체계가 구조화되어 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지배적 이야기 양식은 말할 것도 없이 ‘소설’이다. 그런데 이때의 소설은, 한 세기 이전에는 ‘literature’나 ‘novel’과 같은 말로 막 들어오기 시작한 서구의 낯선 문학 양식이었고, 한자문화권에서는 그것을 두고 설왕설래하며2) 각고의 번역의 노력을 통해 제도화한 것이다. 2000년대 이래 한국 문학 연구가 주목한 것도 이러한 제도로서의 문학에 대한 것이었음도 잠시 덧붙여 둔다. 그렇다면 근대적 이야기 장르로서의 소설에 담긴 인식·정서의 체계란 무엇일까. 그것을 밝히는 것 자체가 이 글의 목적은 아니고 간단히 적을 수도 없다. 이 글에서는 ‘인식 체계로서의 소설’만 생각해 본다. 이때 주목하는 것은 우선 소설 속 서술자, 곧 앎(인식)을 독점해 온 주체의 자리다.3) 달리 말해, 텍스트 안에 구조화된 재현 주체/대상의 역학이 이 글의 관심이기도 하다. 서술 시점이나 그에 따른 리얼리즘적 묘사란 근대 소설의 핵심이다. 이것은 예컨대 근대 회화의 소실점, 원근법의 발명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과 묘사를 가능케 하는 것이 주체/객체(=서술자/서술대상·객관세계)의 도식이었다. 소설에 구조화된 근대적 인식 체계란 바로 이런 원리에 근거한다. 서술자의 문제란 소설의 세부 요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대표·재현·표상 원리에 상응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이미 소설을 소설로 성립시켜 온 그 인식 체계가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유동하고 있는지는 폭넓게 질문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래 독자-작가 모두 질문한 것은 예컨대 ‘누가 말하고 있는가’, ‘어떤 자리로부터 무엇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 즈음부터의 독자-작가는 리얼리즘적 시선 너머에 은폐된 화자의 존재를 질문했다. 객관을 표방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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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에세이] 불행한 사람이 살고 있다 유진목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이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까지 석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기로 적은 산발적인 산문을 정리하던 중에 어렴풋이 ‘불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불행은 나일까? 곧장 미간이 찌푸려졌다. 글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나는 짐짓 모른 척했다. 수기는 간결하고 가슴 아팠다. 타인의 이야기였다면 거기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나는 정말로 불행하구나.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에 순응했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마침표. 쓰는 행위는 시간을 보내는 고통스러운 방법 중 하나다. 글을 쓸 때면 자꾸만 손목시계의 초침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모든 것을 흘려보낼 수 있으면서도 글을 쓴다. 심지어 그것을 타인에게 공개한다. 그 역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다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벌인 일로부터 태연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온갖 괴로운 일들을 책에 쓰고서 태연하게 살아간다. 마치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한다. 나는 쓰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잊는다. 오로지 살기 위해 고통을 기억에서 지우듯이 그렇게 한다. 한때 내 전부였던 것들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잊고 난 후에 무엇이 찾아올지 알고 싶어서 쓰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온통 글을 쓰는데 쓰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무엇과 맞닥뜨리고 싶다. 이 글은 바로 그때 끝날 것이다. 나는 내심 그때를 기대한다.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알맞은 때를 기다린다. 나는 내가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짧게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원래 모양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생각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 거울을 보며 자기혐오에 빠질 나를 생각하며 진저리를 친다. 불행에도 기쁨에도 공평하게 무감해지는 대신 불안을 적극적으로 견뎌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짐작과 가늠으로는 판단해 볼 수 없는 영역에 나의 불안이 있다. 지난 가을에는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11월의 후쿠오카는 여름의 끝자락 같아서 챙겨간 가을 니트들은 모두 캐리어에 넣어 둔 채로 반팔 티셔츠를 사서 입고 발이 퉁퉁 부을 때까지 돌아다녔다.(나는 항상 여행 옷을 챙기는 데 실패한다.) 9월에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혼을 확정 받았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짧은 질의에 대답하니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에게 손을 높이 들어 인사했다. 그날 밤에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소리 내 울었다. 10월은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11월이 되자 후쿠오카에 가고 싶었다. 남편과의 좋은 추억들이 있는 곳이었다. 도무지 혼자 갈 엄두가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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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욕조 안의 볼드모트 권혜영 내가 아홉 살이고 동생이 여섯 살이던 무렵,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차를 타고 항아리 바위가 있는 계곡에 갔다. 집에서 차로 20분은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산마루의 고갯길을 여러 번 넘으며 비포장 도로 옆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계곡 주변 바위의 형질이 급변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세차게 흐르는 물 사이로 솟은 기암괴석들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걸 지리학 전문 용어로는 포트홀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항아리의 입구처럼 홈이 패었다고 해서 항아리 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가운데에 물이 고인 구멍에는 올챙이나 송사리가 서식했고, 물이 마른 구멍에는 이끼 낀 자갈돌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의 볼드모트는 항아리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를 열심히 챙겨보다가 붙이게 된 아빠와 엄마의 별명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뒤에서 남몰래 부르는 호칭이긴 했지만. 어쨌든 볼드모트는 민물고기를 잡는 행위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볼드모트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영농후계자였다. 그런데 농사일엔 소홀하고 밤마다 물고기를 잡는 데만 혈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어딘가 병적으로 집착한 구석이 있었다. 한밤중에. 집 앞 냇가도 아닌. 자동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산골짜기를 밤마다 출근했던 것이다. 볼드모트는 그렇게 매일 거센 물살을 헤치고 수심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향했다. 볼드모트가 양동이 한가득 물고기를 잡아오는 동안, 벨라트릭스와 나와 동생은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곡 입구에서 기다렸다. 벨라트릭스는 앞좌석에 앉아 ‘Now’와 ‘Max’ 같은 빌보드 최신 팝송 믹스 테이프를 듣곤 했다. 어린 동생은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가져온 책을 읽고 싶어서 조명을 켜달라고 졸랐지만 벨라트릭스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깜깜한 도로 위에서 불을 켜면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되어 그러는 건 아니었고,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그러는 거였다. 나는 할일 없이 벨라트릭스가 틀어 놓은 2000년대 초반 히트 팝송을 들으면서 시커먼 계곡 아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가끔씩 차들이 고갯길 사이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날 때마다 묘한 긴장과 흥분을 했다. 테이프가 A면을 훑은 다음 까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B면으로 뒤집힐 즈음이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 볼드모트가 손전등을 들고 물가 멀리서부터 걸어오면 희미했던 불빛이 점점 커지다가 계곡 입구의 갓길을 환히 밝혔다. 그때마다 눈뽕을 당한 나는 팔을 들고 이마에 차양막을 쳤다. 볼드모트는 양동이 속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비추며 자랑했다. 동자개, 꺽지, 쏘가리, 모래무지, 메기.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지금껏 그때 잡혔던 어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볼드모트가 하도 우쭐거리며 말했기 때문에 세뇌당한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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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리뷰 안미옥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바닥에 앉았다가 바닥을 짚고 일어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에게 서툰 사람처럼 창문을 열어도 닫아도 기어코 날아 들어와 부딪혀 떨어지는 미래처럼 어디에나 무거운 문 있다 질문을 멈출 수 없다 왜 온몸으로 밀어야만 열리는 문으로 만들었을까 탁자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 물자국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기억하기로 했다 떨어진 한 방울이 있었다는 것 한 방울로 시작되는 물계단도 있다는 것 그러나 물은 온통 깨져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각자의 일을 했다
- 관리자
- 2024-09-01
이거 무슨 꿈인가요 안미옥 * 이유는 모르겠고 한여름 땡볕에 밖을 걸어야 했는데 정수리가 너무 뜨거웠어요 친구가 그림자를 밟으며 걷자고 했어요 골목길엔 건물 그림자가 있었고 큰길엔 나무 그림자가 있었어요 덥고 뜨거워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도 못 하고 걸었어요 그러다 그림자 없는 길이 나온 거예요 어떡하지? 하다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가자고 했어요 친구가 갑자기 엄청 뛰어서 저도 엄청 뛰었어요 그림자 밟으려고요 밟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려고요 근데 쫓아가기 힘들어서 헉헉 숨 몰아쉬고 왜 뛰어? 왜 뛰어? 친구에게 소리치며 뛰었어요 ** 부엌에서 프라이팬으로 야채를 구웠습니다 버섯 가지 양파 당근 파프리카 그리고 처음 보는 것도요 아무리 구워도 잘 안 구워져서 그냥 먹으려고 담을 접시를 찾았습니다 찬장에 흰 접시가 빼곡했어요 전부 크기가 달랐습니다 접시 하나를 꺼냈는데 이가 나가 있었어요 다른 것을 꺼내도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이가 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보니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 모두 이가 나가 있었고 누군가 날카롭지 않게 이 나간 부분을 전부 갈아 두었습니다 손으로 만져도 베이지 않게 얼굴만 한 접시에 설익은 야채를 담았습니다 담자마자 쩍 소리가 나면서 다 쏟아졌어요 발등 위로요 ***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어요 누구세요? 하자마자 이야기를 쏟아냈어요 모기떼를 만나 도망쳤다고 어금니가 전부 쪼개졌다고 계단만 오르면 무릎이 깨지고 흰 새가 모여들어 발을 쪼았다고 한번 죽었는데 계속 다시 태어난다고요 음…… 좋은 거 아닐까요? 고민거리가 해결되고 큰돈 벌 일만 남았네요 막혀 있던 문제가 풀리고 원하던 목표를 이룰 것입니다 새사람이 된 것처럼 다르게 살 수 있겠어요 말해 줘요 말하느라 목이 다 쉬었는데 말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또 와서 물어 볼까 봐 **** 아무리 멀리 가려고 해도 두 발은 끝없이 집으로 돌아와요 이 모든 걸 꿈이라고 생각해요
- 관리자
- 2024-09-01
진딧물의 맛 나희덕 잎꾼개미나 고동털개미는 농사를 지어요 일개미가 가져온 나뭇잎을 씹어 죽처럼 만들고 거기에 균류를 심지요 여왕개미가 입속에 보관한 종균을 퇴비 위에 뱉어 버섯 농사를 짓는 거예요 개미는 전쟁도 처절하게 하지요 어느 한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싸워요 꿀단지개미는 적을 생포해 노예로 부리거나 애벌레들에게 먹인다고 해요 개미는 다른 곤충을 기르기도 하지요 개미가 목이 마를 때마다 마시는 진딧물의 즙 개미가 더듬이로 진딧물을 자극하면 진딧물은 달콤한 즙을 내놓지요 개미는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 주고요 공생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착취하는 거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하지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모든 생물종은 설계되었다고, 그들에게서 이타성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바람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요즘 내가 궁금한 것은 진딧물의 맛 개미의 더듬이가 진딧물을 스칠 때 진딧물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즙을 내뿜는지 과연 개미는 개미 자신을 위해서만 진딧물은 진딧물 자신을 위해서만 물기 어린 손을 잡는 것인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인지
- 관리자
- 2024-09-01
닭과 나* 나희덕 닭과 나는 털이 뽑힌 닭과 벌거벗은 나는 함께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오그라든 팔로도 만질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듯 말라빠진 다리로도 걸어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듯 닭에게 두 날개가 있다면 나에겐 두 유방이 있지요 퇴화한 지 오래이거나 조금은 늘어지고 시들긴 했지만 날개와 유방은 우리를 잠시 떠오르게 할 수 있어요 시간을 견디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힘이지요 닭과 나는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고 서로의 손발이 되어 주고 서로의 바닥이 되어 주고 서로의 방주가 되어 주고 서로의 뮤즈가 되어 주고 서로의 비유가 되어 주고 나의 머리가 점점 닭벼슬에 가까워져 갈 때 닭의 목은 점점 나의 목처럼 굽어져 가지만 닭과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서로를 태우고 앉아 같은 곳을 보고 있어요 우리가 도착하게 될 그 먼 곳을 *수나우라 테일러, (2012)
- 관리자
- 2024-09-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아늑한 위로를 만난 순간, 민바람 작가의 -서점 카프카에서. 문장서포터즈 주은 안녕하세요. 한껏 온화해진 공기 탓에 잠깐 스친 바람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지는, 초여름에 이야기를 보냅니다. 전주는 책의 도시라고 합니다. 다양한 색을 가진 독립 서점과 동네 책방, 그리고 도서관들이 도시 곳곳에 선물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동네 책방에서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기회로 6월 7일, 에서 민바람 작가님과 작가님의 우리말 에세이, 을 만났습니다. 서점은 7시에 진행되는 북토크를 위해서, 조금 이른 6시 30분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평소에는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리하던 공간에 북토크를 위한 의자들과 빔프로젝터가 놓여있었습니다. 몇 자리 안 되는 의자가 조금씩 채워지고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북토크를 시작하며,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와의 첫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범상치 않은 입구와 간판을 보고 끌려서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밟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 판자의 소리, 판자를 직접 칠해 꾸민 인테리어와 곳곳에 걸린 그림들, 또 세월과 따듯함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소품들. 작가님은 서점이 되기 전, 북카페였던 카프카의 모습을 그리듯이 묘사하며‘이 공간에서 조용히 쉬었다가 가는 것만으로도 치유될 것 같은, 안전지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던, 사랑하는 공간에서 북토크를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민바람 작가님이 쓰신 글의 온도는 작가님이 사랑하는 이 공간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이라는 부제목에 꼭 맞게도, 들여다보고 낱말을 가만히 곱씹는 것만으로 내면을 차분하게 하는 따듯한 힘이 있습니다. 공간이 가진 다정하고 따듯한 정서가 작가님의 진솔하고 단정한 이야기와 꼭 맞아서 이 순간에 푹 빠지도록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 순우리말의 단어들과 민바람 작가님의 글, 신혜림 작가님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우리말 사진 에세이입니다. 민바람 작가님은 차분한 속도로,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풀어놓았습니다. 문학과 말놀이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한국어 강사로서의 일에 몰입했던 순간과 무너졌던 순간, 그 과정에서 겪었던 성인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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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글로벌, K-컬처와 김기태의 소설이 말하는 것들 류수연 1. 대문자 K의 시대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은 ‘한류, K-wave’라는 말로 귀결된다. 1990년대 후반 일본과 대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한류라는 용어는, 벌써 그 연원이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결과 오늘의 우리는 한국에서 생성된 모든 콘텐츠가 그 자체로 세계화되는 시대, 말 그대로 대문자 K가 지향을 넘어 실재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싸이와 방탄소년단(BTS), 영화 , 그리고 OTT 플랫폼 드라마 까지. 이것은 2010년대 이후 한류를 대표하는 콘텐츠들이다. 그 인기의 정도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K-컬처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뉴미디어였다. 주지하다시피 K-콘텐츠는 코로나19 이후 시작된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확장이라는 거대한 지각변동으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았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그리고 의 성과는 SNS와 OTT라는 뉴미디어 산업의 영향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 때문일까? 때때로 K-컬처의 성공은 매우 드라마틱한 이벤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러한 K-컬처가 전 세계의 주류적 대중문화의 하나로 인정되기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 속에 완전히 스며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세대라는 시간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열정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2024년 오늘의 우리는, 바야흐로 대문자 K를 붙인 많은 것들이 하나의 유행처럼 전 세계를 관통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토록 화려한 성공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대문자 K라는 문화가 만들어낸 뜻밖에 ‘낯섬’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한류의 유행을 단순히 한국 문화의 승리로 치부하는 것에는 커다란 모순이 존재한다. 대문자 K의 출처는 분명 Korea이지만, 그것이 글로벌 대중에게 향유되는 순간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문자 K 문화의 글로벌 유행은 대중문화의 소비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오랫동안 대중문화의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 그리고 그러한 미국 문화에 내포된 서구 근대성이라는 보편성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조영한, 「한류와 팝 글로벌리즘」, 『황해문화』 115, 2022 여름, 27쪽).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대문자 K의 시대는 때때로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과 꼭 닮은, 그러나 자신과는 이질적인 도플갱어를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대문자 K로 지칭되는 모든 문화는 역설적으로 그 출발점인 Korea, 그리고 한국인에게 가장 낯선 풍경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대문자 K의 가치를 발견하는
- 관리자
- 2024-09-01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게 부끄러운지 심완선 ‘제일 좋아하는’ 하나를 꼽아 보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작가님은 제일 좋아하는 SF 소설, 작가, 영화, 게임이 뭐예요? 하나만 골라 본다면? 그럼 나는 시야의 한쪽 구석을 노려보며(사람이 고민에 빠질 때 흔히 나오는 얼굴이라고 들었다) 고심하는 표정을 짓곤 한다. 답변은 대체로 이렇게 흐른다. 너무 어려운데요. 어떻게 하나만 고를 수가 있죠.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은데. 조건을 조금 바꿔서 대답할게요. ‘제일 처음 읽은’이나 ‘제일 여러 번 본’ 아니면 ‘최근 접한 것 중에서’라면 말할 수 있어요. ‘최애’(최고로 애정을 쏟는 대상)가 확고한 분야가 아닌 이상 나의 1순위가 무엇이라고 내세우기는 정말 어렵다. 적어도 나는 적잖이 갈팡질팡하는 편이다. 게다가 솔직히, 남들이 듣기에 그럴싸한 이름을 대고 싶다는 욕망도 약간은 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는 체면을 차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를 너무나 쉽게 대변한다. 예를 들어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인셀’(비자발적 독신의 약어로, 주로 인터넷 하위문화와 여성혐오 및 적개심을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혐의를 산다. 은 상당히 대중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레즈비언 영화의 고전 명작이 되어 가는 중이다. 영화사를 말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하는 건 꽤 젠 체하는 발언 같다. 아니면 평범한 씨네필의 발언이거나. 만약 누가 를 말하면 나는 ‘흠······’ 하며 잠시 의심을 품을 테고, 를 말하면 슬쩍 거리를 둘 것이며, 을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여상하게 넘어갈 것이다. 아, 히치콕, 취향을 적당히 가릴 만한 무난하고 점잖은 대답이죠. 물론 진심으로 히치콕을 좋아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요. 나는 영화를 매우 드물게 보는 사람이지만 무난하고 점잖게 주워섬길 만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기는 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를 봤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상영시간 내내 커피와 담배가 줄창 나오거든요. 전 비흡연자고 그때는 커피도 거의 안 마셨는데 스크린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중독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내용은 특별할 게 없는데 촬영 방식이나 분위기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죠. 아, 을 뒤늦게 봤는데 말이죠. 거기 나오는 대사들이 따로 떼놓고 보면 유치하도록 낭만적인 게 많잖아요. 그런데 상영관에서 실물을 마주하니 영화가 뿜는 그 분위기에 빨려들더라고요. 제가 몰랐던 세기말의 조각을 그제야 확인한 느낌이었어요. 좋아하는 감독이라면, 저는 기회가 된다면 아이다 루피노가 찍은 영화를 모두 섭렵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배우는 버스터 키튼이 아닐까 싶네요. SF 영화 중에서 좋아하는 걸 고르라면, 글쎄요, 는 분명 정교하게 만든 영화지만 아무래도 에 정이 갑니
- 관리자
- 2024-09-01
[에세이] 소설의 피로 양지예 노엘 갤러거의 무대를 보며 음악가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 그의 젊은 시절 방황하던 경험과 더불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 여인에 대한 곡이다. 노래는 발표한 지 삼십 년 가까이 되어 가고 무대 위 머리 희끗희끗한 노엘 갤러거에게서는 이제 방황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연주자와 합을 맞추는 모습이 흥겨울 정도다. 아련한 원곡의 분위기 역시 세월을 따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편곡을 입었다. 음악은 어떻게 나에게 올까. 일단 누군가 곡을 쓰고 발표해야 한다. 청자인 나는 플랫폼을 통해 음원을 감상하거나 드물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앨범을 사기도 한다. 음악가에게는 다른 홍보 방법도 있다. 대중음악가라면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거나 음악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때로는 음악과 관계없는 방송이나 행사에도 출연하는데,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겠지만 역시 주는 새 노래 홍보를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신곡은 끊임없이 피로(披露)된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할까.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또한 수만 번은 반복하여 들었을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할 수 있는 걸까. 음악가는 본인 노래의 첫 청자다. 작곡에 참여하지 않는 가수라 하더라도 비슷하다. 곡이 만들어지는 영감의 그 순간부터 완성 후 녹음 과정까지 좋은 기억도 싫은 기억도 낱낱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내면의 갈등뿐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창작자 홀로 만드는 음악이란 없다시피 하다. 사람이 여럿 모였는데 과정이 언제나 매끄러울 수는 없다. 드물게 하늘이 내려 준 노래가 어려움 없이 착착 완성된다 한들 매끈한 표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이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아름답기만 한 창작의 과정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겉보기를 아름답고 멋지게 만드는 일이란 사실 어렵지 않다. 그저 포장 기술이다. 세상에는 정말 엄청난 포장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실 다지기보다는 포장 기술을 익히는 쪽이 빠르다. 포장이 어렵다면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피땀눈물을 삭제해 버린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바라기만 하면 매끈한 성취가 이뤄질 듯한 환상을 듣는 이에게 심어 주는 요령을 수많은 표어와 마케팅 서적이 알려주고 있다. 이런 요령을 활용하면 가수도 어렵지 않게 싫어하는 노래를 즐거운 듯 피로해 보일 수 있을 터다. 삼사 분 정도 꾹 참아내면 그만이다. 케이팝 아이돌들의 화려한 메이크업과 현란한 조명은 혹시 드러날지 모르는 굴곡을 감추는 역할을 남몰래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감정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설령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격렬했다 해도 반드시 그렇다. 싫어하던 노래를 부르던 중에 즐거운 추억이 생기기도 한다. 기억은 뒤섞이면서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다. 날것이던 감상은 무뎌지고 희미해진다. 뜨거울 만치 처절하던 열정도 냉정하게 식는다. 이 변화는 눈에 띈다. 음악에는 피로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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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친구의 그런 말 윤유나 술집 여자 이름 같다 내 이름이 더 술집 여자 이름 같아 미란은 개명했고 나는 문득 벙커에서 나와 언덕 아래를 바라본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까 꿈에 빛나던 블랙 사슴벌레 등껍질, 프라다 리나일론 호보백의 광택 눈빛과 공기의 화창한 좋네 아침에 노르웨이숲 고양이 포획 장면을 보았다 나보다 좋은 여자 만나 엄마아빠는 쌍방 바람을 피더니 이혼했어 너는 성우가 되지 않았고 전설의 프로젝트 그룹 는 실패했다 다 알고 있었어 그럴 수 있으니까 우리는 처음 온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좋네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묻지 않는 상태로 놔두는걸 말 많은 너의 이야기가 부쩍 말이 많아진 너의 이야기가 가득 차올라 먼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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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산사람 윤유나 그냥 구름이야 손도 없고 n양이 내 목소리에 대고 말한다 며칠 후 산을 바라보며 산에 엄마와 오르고 있는 산에 울먹이는데 산이 엄마가 웃었어 목 뒷덜미에 모기가 득실거린대 재밌다 며칠 후 관리사무소를 지나는데 몸에 땀이 흥건했어 내 곁에 잠시 머물다 노래 불렀지 산이 가까워 입안에서 이가 시리대 산에 올라 n양은 오지 않는 마음보다 기다리지 않는 마음 옆에 서고 싶대 며칠 후 n양은 또 산에 가고 만다 꿈속이 해부하는 돼지감자의 온몸이 흥건하다 산의 자리에는 원래 산이 있고 산양 속에 살고 있는 벌레의 신호에 여름이 어디까지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는데 며칠 후 n양이 짐작한 대로 뽀얗게 눈물 흘린다 알같이 살얼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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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아주 작은 부분 구현우 선반에는 한 바구니 귤이 있고 그러나 이는 단지 정물이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므로. 무감하게 본다. 보리차를 마신다 목을 축이는 정도로. 한 모금만 혀 밑에 머금고 가만있으면 어쩐지 오늘은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인용 식탁에 일인분이 되지 않는 샐러드를 둔다. 나는 네가 있을 적에도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했고 혼자 남아서도 하나밖에 안 되는 마음을 소분하곤 한다. 점심을 거른 이유는 그저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네가 나눠준 것에 대해 곱씹었다. 정오의 나른함 같은 것을. 나는 그것을 여태 아껴 먹고 있다. 아몬드 세 알을 입에 넣고 이후에 할일을 생각했다. 열두 시가 되면 오늘이 끝난다는 것을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
- 관리자
- 2024-09-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악어도 새도 못 되지만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아 - 독립서점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천안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 를 방문했습니다. 는 주로 동화와 시를 다루는 지역 독립서점으로, 책방 주인인 성욱현 작가와 조민주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의 경우, 다른 독립서점들과는 조금 다르게 지역 독립서점이자 청년 문학인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문학인들이 지역에 정착하여 책방을 운영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성욱현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으로, 202 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조민주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현재 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고 성욱현 작가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nterview 책방 악어새 대표 성욱현, 조민주] 분류 독립서점 지역 천안 SNS인스타 @crocodilebird.book 책방 운영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성욱현 : 동화와 시를 쓰고 있는 제가 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던 조민주 작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글쓰기 강연이나 지원 사업 등을 주로 맡는다면, 조민주 작가가 디자인, SNS 관리, 커뮤니티 행사를 주로 담당해요. 특히나 책방 큐레이션의 경우, 동화는 제가, 시와 성인문학은 조민주 작가가 맡아주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책방이 꾸며져 있는데, 이것도 조민주 작가님께서 담당하셨을까요? 성욱현 : 네, 책방 안에 있는 그림이나 책 추천 문구 등은 전부 조민주 작가가 담당했습니다. 추천 문구는 보통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서 책 속의 글귀를 많이 가져와요. 책을 소개받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일부가 나에게 오는 일이자 그가 읽는 책을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잠깐,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궁금해요. 조민주 :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동기 사이인 황예솔 작가와 조민주 작가가 함께한 독립 출간 프로젝트입니다. 서간체로 서로를 &l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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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작야昨夜 구현우 암막 커튼 너머의 세계는 나와 무관하다. 그러므로 방 한 칸이 나의 화원인 셈인데 예이츠 희곡 선집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어제와 같지 않다. 칠월의 은행나무 잎사귀가 침대 맡에 마구 떨어져 있다. 내 것이 아닌 긴 머리카락이 물병에 붙어 있다. 올해의 것이 아닌 여름 냄새가 물에 배어 있다. 타인의 애정이 이곳에 남아 있다. 외부의 빛 없이도 나는 쉽게 죽지 않는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생활에 마감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잠든 사이 누가 내 방을 어지럽힌 걸까. 창틀 아래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빗소리도 없이 빗물이 떨어진다. 회색 벽지는 군데군데 까맣게 멍들어 있고 오래 아끼던 만년필이 먼지와 함께 구석에서 뒹굴고 있다. 미래에도 바깥은 나와 무관해서 다른 육체가 가까워질 일은 없을 것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절교한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 이불을 덮고, 이불에 숨고, 머리를 쿵쿵 벽에 박으면 여기서 밖을 향한 노크, 암막 커튼에 상영되는 어떤 장르의 영화들, 무섭고 어쩌면 우스운, 내가 기억하는 당신들의 세상은 언제나 한낮 사람을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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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해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 성욱현 모두 옷을 벗었다 나도 몸이 있어요 당신도 몸이 있네요 몸이란 게 살펴지는 것이 아니었네요 맨몸으로 수평선 앞에 서서 창밖에 있어도 창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 해변에서는 모두가 가슴을 내밀고 있다 해변에서는 모두가 몸을 버리고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는 해변의 것들에게 빼앗기고 파라솔, 해변의자, 거꾸로 꽂힌 나무막대, 흔들리는 하늘 아래 맨발로 선 관광객들 사이로 슬리퍼 한 짝 떠밀려온다 저 남자는 왜 파라솔 아래에서 밀짚모자를 썼을까 저 아이는 왜 해변까지 와서 말을 탈까 바다로 스스로를 밀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바다수영을 해도 될까 모래알이 산산이 뭉쳐진다 칸칸이 나뉜 간이 샤워장 묶여 있는 샤워 헤드 사람들이 몸을 씻는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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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밀양 성욱현 어머니는 꽃을 키운다 아버지는 꽃을 옮긴다 그러니까 피지 못한 것이 필 수 없는 것을 판다 핀 것은 가다 시들기에 졸업식에서 꽃은 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충분하지 않아서 꽃을 산다 밀양에서 어머니는 꽃을 키우고 자르고 포장하고 꽃을 키우는 사람은 햇볕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고 씨앗을 손끝으로 맺어 심장을 땅속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걸 나는 믿기로 했다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 물을 뿌리고 꽃을 팔러 간다 당신이 성질머리 나쁜 포주 같아요 어머니가 농을 걸었다가 아버지 혼자 안방에 자신을 쟁여 두고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 위로는 때로 전지가위처럼 아려서 꽃들이 눈을 틔워 이름을 가지는 동안 배우기로 한다 물이 가는 길을 알아보고, 목줄 풀린 개 잡는 법을, 비닐하우스 근처에 와서 죽는 짐승을 자루에 담는 법을, 가족 몰래 꽃을 뽑아간 외지인을 용서하는 법을, 꽃의 몸에 닿는 바람을 바스락 소리를 내며 무너질 눈발처럼 그러니까, 꽃은 오는 것이다 꽃은 시들기 위해 오고 꺾이기 위해 온다 언제나 오고 있는 상태, 언제나 오고 있는 아직 당도하지 않은 사랑처럼 종이상자 안에 가지런히 발 뻗고 누운 꽃들 대처로 팔려 나갈 몸들 단 한 송이로도 불빛으로 순간적으로도 환하게 콧등에 닿는 지금도 꽃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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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마나츠(まなつ) 이도원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종로에서 길을 잃었던 과거(科擧) 공사판 소음에 구분되지 않던 현실(現實) 팥빙수 포장하며 보았던 공원의 노인(老人) 바둑알 미끄러지는 여름의 장면(場面)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편의점 앞에 아이스크림 고르는 초등학생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六) … 잠자리채로 체육교사 목덜미 잡고 애정을 갈구한 기억(記憶) 운동장에서 물로켓 발사하다가 잃어버린 미래(未來) 수돗가 뒤편으로 바보처럼 도망치다 하의가 벗겨진 친구(親舊)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시큼한 침묵(沈默) 여름방학(放學)과 면접용 양복(洋服) 식당 테이블로 날아드는 파리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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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여름날 이도원 여름날 대학교 강의실 설계하는 꿈꿨다. 매트릭스처럼 건물을 쌓을 수 있다고 믿었다. 미로 속의 미로 속의 미로 같은 것을 위하여. 늙은 교수 칠판 아래로 침 흘렸다. 분필은 휘어지거나 선풍기는 육면체 같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내가 본 것을 어떻게 말할지 몰랐다. 은희분식 옆에 소나무가 아치형으로 선회하자 그것은 허공(虛空)이었다. 여름날 아파트 층계 오르며 가벼움 있었다. 숏컷 헤어 찰랑이던 이모의 미역국 형태가 없다. 여름밤 댄스파티 참석한 십대들의 자살소동 뉴스에 나오고. 장례식장 입구에서 나는 희망을 선고(宣告)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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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산수유 - 나의 몽유도원도 전윤호 바람이 진저리를 부르는 아직 아닌 봄 세상은 푸른 소매도 보이지 않는데 노랗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겨울 땅에서 길어 올린 꽃잎들 어디서 본 듯한 얼굴로 뗏목 타고 서울 간 사내라도 있는지 얇은 봄 원피스만 입은 저 여자 헝클어진 머리가 아슬해 보이는데 강변으로 뻗은 길로 내 손을 잡아끈다 동구 밖까지 나가 보자고 바닥이 뚫린 철교를 건너 보자고 아직 이르다 버티는 나를 끌고 간다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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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너는 전윤호 왜군이 독립군의 목을 작두로 자를 때 가족들을 교회에 몰아 놓고 불을 지를 때 지진이 났다고 조선인을 사냥해 죽일 때 사내들은 잡아가 탄을 캐게 하고 처녀들을 잡아가 노리개로 삼을 때 쌀은 다 실어가고 콩깻묵을 먹일 때 무슨 공덕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김구를 죽이고 소녀상을 욕보이고 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왜놈 편이 되는 게냐 배워서 친일하고 정치해서 친일하고 이 나라 군대 계급장 달고 친일하면 누구에게 칭찬 받고 누구에게 충신이 되는 게냐 홍범도가 만주에서 왜놈들을 무찌를 때 총알 하나 보태지 못한 것들이 유관순이 안중근이 옥에서 죽어갈 때 입도 뻥끗 못한 것들이 무슨 낯으로 지금 이 땅에서 푸닥거리나 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냐
- 관리자
- 2024-09-01
행복한 소설가 임현 1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는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대 문학의 출발이 무엇이냐? 자기 고백 아니냐? 그러므로 그것은 핍진성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소설가들이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소설이 잘 써진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분명 주변에 부러움을 살 만한 재능이었는데도 아무도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소설이 써지지 않을 만한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행복한 소설가는 대개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소설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한 인물은 러시아의 대문호가 아니라 어느 늦은 밤 만취한 대한민국 출신의 선배 소설가였다.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쓰려 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그 괴로움에 대해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동안 기어코 완성하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종로구 세종로 소재지의 조도가 낮은 호프집이었고 지하실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유독 심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안주 메뉴로 한치를 굽고 쥐포도 굽고 제육볶음과 어묵탕 등을 조리하는데도 좀처럼 그 눅눅하고 고린 냄새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무얼 씹고 삼켜도 다 비슷비슷한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일간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 뒤풀이 자리가 줄곧 이어지던 것이었으나,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마지막 지하철 운행 시간은 한참 지났고 오히려 첫차를 기다리는 편이 더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런 탓에 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남았는데, 무엇보다 함께 자리한 여남은 사람들 중 그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원고 마감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까 못 쓰는 거잖아요. 근데요, 형. 많이 취했어요? 그거 먹는 거 아니에요.” 주문한 먹태 대신 자꾸 나무젓가락을 씹으려는 선배를 말리며, 나는 나름대로 이 불쾌한 냄새의 발원지를 추적해 보기도 했었다. 고정식으로 설치된 의자와 테이블은 혼자 앉기에는 넉넉하고, 둘이 앉기에는 비좁았는데 어떻게 앉아도 허리가 불편했다. 닦는다고 말끔하게 닦이진 않을 것 같은 지용성 얼룩이 벽마다 눈에 띄었고, 주방의 내부 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태가 어떨지는 대강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곳마다 오래 밴 냄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환풍기 탓인가.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불이 나도 벌써 여러 번은 났을 만큼 먼지투성이였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뭐랄까, 그런 뜬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술만 마시면 진지해지는 선배의 주정을 가만 듣고 있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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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1
슬픔은 나의 힘 문진영 침대에서 겨우 빠져나와 커튼을 걷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에 드리운다. 고양이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히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고양이는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엎드리더니 골골거리기 시작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 아랫집 세탁기가 웅,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 지금 나는 평화로운가. 권태로운가. 판단하지 못하겠다. 주영은 두 달째 부재중이다. 어젯밤 주영의 책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구석에 놓인 일력이 주영이 떠난 날짜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의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장 하나가 적혀 있는 일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뜯어내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문장을 읽고, 종이를 구겨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구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의 탄생은 슬픔의 탄생이다. 장자의 말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문장에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했다. 과연, 나는 한 시절을 사람의 모양을 한 슬픔과 함께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잔디는? 한때 우리 — 주영과 나 — 는 잔디가 고양이의 몸을 가진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아니었다. 잔디도 슬픔이었다. 잔디는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말이 쓸데없이 많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시도 때도 없이 꾹꾹이를 하는 이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아직 이름이 없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너도 슬픔이구나. 너를 슬픔이라고 부를까. * 엄청 웃기는 꿈을 꿨어. 그날 아침 샤워 부스에서 나온 주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뭐가 웃겼는데? 내 물음에 주영이 기억 안 나,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꿈속에서 깔깔 웃다가 잠에서 깼는데, 실제로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고 주영은 말했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섬뜩했고 기분이 나빴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쾌한 기분보다는 그 꿈이 정말로 웃겼다는 것,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진심으로 깔깔 웃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음. 내 생각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데. 네 뇌가 너를 보호······ 주영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내 말끝은 드라이어의 소음 속으로 순식간에 휘말려 들어갔다. 듣기 싫다는 뜻. 주영은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일에 꼭 의견을 덧붙이고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하곤 했다. 나도 그게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걸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 관리자
- 2024-09-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장의 방 한 칸 ― 창작촌 탐방기 〈예버덩문학의집〉 편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안녕! 문똑이들! 나는 문장웹진의 숨겨진 자식 문장이라고 해. 글월 문(文)에 담 장(墻) 담장마다 나의 글을 새기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어주셨지만 그래서 강원도 횡성에 있는 문학 창작촌으로 향하고 있어. 문장웹진 독자들의 열띤 삶을 보면서 나도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거든! 삼면이 주천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숲과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진 흰 집! 한 시인의 개인 사유지가 창작촌으로 만들어졌다고 해. 어딘지 궁금하지? 날 따라와! 바로 〈예버덩문학의집〉이야! 내가 한 달간 묵을 창작촌을 소개할게. 이곳은 작가들과 작가지망생들이 훌륭한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어. 입주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상단의 QR코드로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봐! 잠깐! 저 익숙한 뒷모습은?! 〈예버덩문학의집〉을 관리하는 대표이자 시인인 조명 작가님이셔! 선생님을 따라 창작촌을 둘러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잣나무 숲속에 방강로 3개가 쭉 이어져 있고 오른쪽엔 주천강이 훤히 보이는 야외무대가 있어. 이곳에서 문학 특강, 연주, 연극, 낭독회 등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한다고 해. 참여 작가들에게는 소정의 활동비가 주어진다고 하니 문장이는 지금부터 낭독 연습을 시작할 거야! 안쪽으로 쭉 가면 주천강이 보이는 둥근 마당이 있는데 이곳을 ‘노을버덩’이라고 부른대.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주천강과 노을을 바라보며 심신을 정화하고 싶을 때 문화쉼터로 활용된다고 해. 강물 소리가 들리는 노을버덩, 예쁘덩! 이곳이 〈예버덩〉 본관 입구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야외 테이블! 날씨가 좋으면 이 테라스에서 다 함께 식사해. 공동 도서관부터 둘러보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와 창작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이곳에서 작가를 초청해 특강을 하거나 소규모 작가와의 대화, 낭독회, 예버덩 워크숍을 주최하는 등 여러 가지 문학 프로그램을 연대. 문장이의 방을 소개할게! 입주하는 동안 개인 집필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어. 문장이가 오기 전에 이불도 깨끗하게 세탁해 주시고 방도 청소해 주셨어. 청소도구, 세면도구(샴푸, 린스,
- 관리자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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