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 작성일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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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문장웹진》은 연초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다시 보고 싶은 《문장웹진》의 작품을 그 이유와 함께 추천받았고 해당 작품은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로 하여금 시각화하였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성혜
김성혜 작가 한마디
붉은, 푸른, 뾰족한, 무딘 둘
독자의 한마디
물 흐르듯 들어가 잊히고 있는 여러 재난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 한 가족, 개인에게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침투적으로, 그러나 무심하게 수영하는 듯 서술되며 전개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24년에는 23년보다 재난과 먼 삶을 살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역사를, 주변을 잊지 말고 잃지 말자는 의미로 다시 보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8월호 살펴보기
세차장과 폐차장 신이인 새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르지 어둠 속에 앉아서 내가 왜 지루했는지 심해 생물처럼 덤덤했는지 도대체 뭘 더 알고자 했는지에 대해 천착하는 일은 멀쩡한 접시를 벽에 던져 부쉈을 때의 희열과 낭패 찌릿한 안타까움 그 행동이 실은 욕심에 의한 것이었다는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나는 이보다 더한 것을 깨닫게 될까 두려워 차 안에서 나오지 않기를 결심했다 엔진이 낡은 자동차 더는 옛날처럼 성내지 않는 자동차 크게 사고 난 적 없어 아직 내 것이나 겨우 이런 것이 내 것이라니 고속도로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거나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차에 갖다 박아버리고 싶기도 했던 엔진이 낡은 자동차 하나 너는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 으레 연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애들이 그렇듯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인생에 단 한 병뿐인 샴페인을 따서 나누었네 한 번뿐인 폭발 그리고 술에 젖은 채, 이것이 무엇인지 어떤 맛이라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그리워했다 참 훌륭했는데 무엇이 훌륭하고 형편없는지, 모르는 첫 삶이었으면서 아무래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페인트 붓이 차창 밖에서 손짓하도록 이봐, 이름이 뭐야 난 시간이라는 미장이라네 여기부터는 내 구역이다 저것의 숱한 촉수들이 우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나면 어떤 색이 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움직였다 차창이 검게 틀어 막힌 이래로 네가 어디쯤에서 어떤 날씨를 가로지르나 얼마나 잔잔하게 또는 뜨겁게 구르거나 일어서는가 행복할 때 그 기분을 처음 가져 본 것처럼 기뻐하는가 궁금해하지 않았던 적 없다
- 관리자
- 2024-08-01
방주 신이인 그때는 고분고분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바닷물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뛰어 들어갔다. 듣던 것과는 다른 진한 황토색 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황토색이네요? 내가 말한들 귀담아듣는 이 없었다. 먼 과거에 스스로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으나 소용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배운 이들이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파도를 탔다. 처음 나는 물을 몇 번 먹어야만 했다. 그들이 모래 바닥에서 발을 구르며 뛰어오를 때 같이 뛰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더 뛰어도 덜 뛰어도 안 된다. 빨리 뛰어도 늦게 뛰어도 안 된다. 뛰는 법이 몸에 익은 다음부터 어쩌면 고통만큼은 사라진 듯했으나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나는 또 묻고야 말았다. 바닥이 발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거북스럽게 바라봤다. 우리는 수영을 하러 온 거야. 앞을 봐. 저 멀리서. 수평으로 헤엄치고 있는 선각자들을 봐. 저렇게 멋지게 나아가고 싶지 않니? 빛을 내는 수평선과 하나 된 듯이. 멀리 있는 물은 푸른색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저들은 저기 가 닿을 거야. 이미 닿았을 거야. 중얼거리며 혈안이 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우글우글 있었다. 끝없이 수영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교인들이었다. 그쯤에선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들이 배로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배를 만들고 부모와 친구 좋아하는 개 고양이까지 싹 태워 출항시켰다. 그들이 찾는 것은 전부 바다에 있다. 나는 바다에 없다. 나는 느끼고 싶다. 발에 단단하게 닿는 흑색 바닥. 바닥이라면 내 무게를 질 수 있다. 언제까지나. 배에 든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으며 여전히 사랑한다. 이토록 육중하게 나 여기에 있다. 있다. 여기에.
- 관리자
- 2024-08-01
어쩔 줄 모르고 최문자
- 관리자
- 2024-08-01
이응의 세계 최문자 침묵할수록 입술은 이응처럼 순한 발음이 필요했어 창밖에는 내다버릴 발음으로 가득한데 나무들은 그대로 자랐어 거대하게 이응을 빼버리면 난 쓸 말이 거의 없어 이응의 세계는 한없이 부드럽지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응 이응” 여러 번 소리 내서 읽어 봐 나무가 보여 터지고 싶은 풍선 사이로 헤어지기 싫은 마음도 생겨 너와 나 사이 헤어져야 살아나는 것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알을 까고 있는데 어제 저녁 개미들이 이응같이 생긴 둥근 빵을 물고 돌아왔어 물고 온 분홍 꽃잎들이 개미들이 나를 함부로 건너 다녔어 새끼 개미가 물어도 내 피는 둥그렇게 엉겨 있었지 종일 사람들이 꾹꾹 밟고 지나간 자국을 보다가 발자국이 되었던 발등은 무겁다가 그냥 슬프다가 이응 같은 자국이 생겼어 이응은 상처까지 둥그랬어 하다 포기한 생각처럼 저녁 8시 이응이 아닌 개미들에게 끝, 끝 하고 말했어 물고 뜯는 것도 끝만 남았지 불이 꺼지지도 켜지지도 않는 거실에서 이응의 세계를 시로 썼어 주로 이응같이 생긴 사람들이 읽어 줄 거야 이응이 이응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어
- 관리자
- 2024-08-01
파손 이실비 모래시계를 들고 당신이 왔습니다 삶이 너무 짧다고 나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하얀 빨간 모래 알갱이가 다투며 내려오는 밤 당신 어깨에서 연필심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연필심이 뾰족하게 돋아나는 시간 당신이 아파했습니다 바닥을 뒹굴면서 마루를 죽죽 그었습니다 당신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어서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당신 어깨에 큰 종이를 대고 문질렀습니다 계속 문지르면 밀려 올라오는 연필심은 없었습니다 내가 이제 매일 종이를 줄게 좋은 종이를 줄게 한 사람을 위해 견딘다고 생각하면 밤이 길어서 종이를 채우는 검은 선들로 충분한 밤이라고 믿는 일 그렇다고 그렇게 익숙해지자고 어깨를 잡고 구르는 사람에게 밤을 버티는 기쁨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새로 그려야 하는 그림과 새로 써야 하는 시는 아침에 찾아오니까 어떤 음악은 한낮에 들어야 더 충격적이니까 충격은 흐르게 두어야 하니까 모래시계를 깨트려 모래를 쏟았습니다 하얀 빨간 모래가 흩뿌려진 산 멀리서 보면 분홍입니다 로맨틱합니까? 그 산을 타고 오르는 아주 작은 당신과 나를 떠올려 봐요 발을 디딜 때마다 분홍이 우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산 아래 가장 마지막에 떨어지는 모래 알갱이 하나는 하양일까요? 빨강일까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침까지 궁금해 하기로 합니다
- 관리자
- 2024-08-01
항미증진제 김민지 이 기록은 기억과 일치하는지 읽으며 돌아오는 기억이 말리지 못한 젖은 몸 같은지 지금 이 시간의 내리쬐기 기억의 맨살이 따가워질 때쯤 기분을 억지로 걸치는 대낮 그 대낮부터 그 생각을 했단 말이죠? 어떤 날 뿌린 향수는 따갑고 어떤 날 바른 로션은 미끄럽다 그 어떤 것에도 작용하지 않을 어떤 날인 양 살아가고 있지만 더운 공기와 함께 퍼지는 아스팔트 냄새 찌꺼기로 빚어낸 거리에서 뛰지 않고도 넘어지는 상상을 한다 뛰지도 않고 몰아쉬는 숨 같은 몸 퍼뜨리는 재주 하나 타고난 몸에 해가 들었다 진다 무엇도 수놓지 않은 밤이 씨앗 심긴 토양을 껴안고 간다
- 관리자
- 2024-08-01
오해와 오후의 해 이실비 해바라기는 새카맣게 탄 얼굴을 가졌지 우는 사람의 두 볼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 눈물이 신나게 미끄러지는 한낮 두 손을 모아 앉는다 오늘은 아무도 울지 말라고 하지 않기를 오늘만큼은 실컷 울 수 있기를 우산 없이 빗속을 걸으며 속옷까지 젖기를 컵에 담긴 물을 쏟기를 엎질러진 물을 치우는 손이 자신의 손이 되기를 평평한 손톱 끝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수천 개의 발걸음이 지나간 해변의 모래를 만져 보듯 그렇게 웃는 사람의 잇몸을 더듬어 보던 혀처럼 그렇게 동시에 숨고 동시에 뱉어지는 파도 같은 웃는 사람의 잇몸 열려 있는 발코니 용과와 칼 테이블과 선베드 해변의 산책자들 모르는 정수리들 웃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듣던 선셋 인 더 블루 만약 태양을 깎을 수 있다면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기쁨과 고단함이 몸을 섞으며 쏟아내는 붉은 즙을 삼키고 반의 반으로, 반의 반의 반으로······ 깎은 태양을 한 조각씩 바다에 퐁 퐁 퐁 빠트릴 수 있다면 장관일 거야 난도질당한 태양 껍데기는 그냥 버려지겠지 칼 한 자루만 남기고 웃는 사람이 우는 사람의 입에 용과를 잘라 넣어 주면 훔친 알을 먹는 기분이었다 해바라기가 새카맣게 탄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지 사랑에 얼마나 더 많은 오해가 필요한 건지 우는 사람은 흰 종이를 펼쳐 반으로 찢고 또 반으로 찢고 찢고 찢는다 더 이상 가늘어질 수 없을 만큼 찢어지는 소리가 빗소리 같아서 흐르고 모이고 고이는 소리를 이해하고 싶어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젖는 얼굴이라서 찢은 종이를 뭉쳐 얼굴에 비벼도 아프지 않다고 웃는 사람에게 말했지만 웃는 사람은 궁금했다 아무리 옆에서 웃어도 배를 잡고 굴러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흥건해진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당연하다면 대리석에 반사되는 전구 오너먼트가 당신과 함께 울어 준다고 믿는다면 웃는 내가 왜 필요해? 태양을 삼킨 밤바다 서로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어둠 서로의 웃음을 겨우 짐작할 수 있는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해변의 즐거운 사람들 사이로 더 이상 서로를 찾지 않는 일도 일어나고 우는 사람은 생각했다 만약 바다에 둥지를 틀 수 있다면 높은 산에서부터 하나씩 모인 물길들이 선이 되어 엉키고 서로를 위해 웅크린다면 부표처럼 떠다닐 물의 둥지 마지막 태양 한 조각을 그 안에 넣을 수 있다면 태양은 고맙지 않을 것이다 그저 천천히 식어 가겠지
- 관리자
- 2024-08-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학과 예술의 경계, 그 사이로 ‘그냥’ 뛰어들기 : 강혜빈 시인 편 문장서포터즈 채미나 시도, 사진도, 강의도, 타로도 결국 타인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잖아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강혜빈 시인 강혜빈 시인. 사진가 ‘파란피paranpee’. 뉴 노멀이 될 양손잡이. 빛과 컬러를 중심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발명하고 있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밤의 팔레트』가 있으며 사진 산문집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외 다수를 펴냈다. 최근 새로운 자아가 추가되어, 타로마스터 ‘강이도’로 활동 중이다. 문학의 탈경계 현상이란 무엇인가? 문자로만 이뤄진 글에서 벗어나, 다른 예술의 형식이나 본질을 섞어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탈경계 현상은 문단을 더욱 융합적인 예술의 장으로 데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을 향유하고 싶으나 작품 이해 혹은 흥미 느끼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에 필자는 ‘탈경계’의 한가운데에서 문학과 사진을 횡단하며 자기 세계를 자유로이 펼치고 있는 한 시인을 만나 보았다. 안녕하세요, 혜빈 님! 반갑습니다. 혜빈 님은 현재 시인으로도 ‘파란피’(사진가)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두 가지 일을 함께하면서 느꼈던 기쁜 점이나 고충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강혜빈, 그리고 파란피입니다. 저를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쎄요, 두 가지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거. 그리고 지금처럼 누군가가 저를 궁금해 한다는 거요. 벌써 짜릿해요. 내가 왜 궁금하지? 나에 대해 뭘 알고 싶지? 하고요. (웃음) 그동안 제 행보를 독특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시인과 사진가의 겹쳐진 얼굴로 살아가다 보니 입체적인 아이덴티티가 생기더라고요. 작업을 하면서 색이나 빛을 섞는 행위와도 비슷하다 느끼고요. 아무래도 텍스트나 이미지를 함께 다루다 보니, 시를 쓸 때도 사진을 찍듯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돼요. 사진을 할 때도 짧은 텍스트를 함께 배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두 장르를 섞는 작업이 제겐
- 관리자
- 2024-08-01
타향에서 온 책, 타향에서 온 사람 문장서포터즈 팅팅 "이 근처에 중국인이 하는 중문 책방이 있던데, 너 아니?" 밖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현관에서 우산을 닦으면서 말씀을 꺼내셨다. 휴가차 한국에 놀러 오신 어머니는 마지막 날 저녁 내가 사는 동네를 혼자 산책하시다가 '시절'이라는 책방을 발견하셨다. 어머니 덕분에 한국에서 유학한 지 6년이 넘은 나는 서울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문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음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나는 곧바로 그 중문 책방으로 향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는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떠나기 전, 공항의 높은 유리벽 너머로 수없이 많은 빗방울이 비행기가 이륙하는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로부터 '엄마 이제 비행기 탔어 우리 딸, 혼자지만 스스로 자기를 잘 챙길 수 있도록 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집에 도착한 후, 어머니가 알려준 책방을 찾아갔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줄곧 내리던 비가 마침내 나를 따라 쫓아오지 않았다. 사실 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휴대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아 어머니가 알려준 방향을 되짚어 보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을 떠나 걸어온 지 약 30분, 왜 어머니가 내비게이션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글로 쓰인 다양한 간판이 가득한 거리에서 이 책방의 간판만이 자신의 얼굴에 한글보다 더 큰 한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拾光中文書店’,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에게 확실히 이 책방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책방의 정문은 도로를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먹구름 때문에 흐려 보이는 거리와 따스한 노란색 불빛으로 뒤덮인 책방이 얇은 유리문 하나로 분리되어 있었다. 찾기 쉽지 않았던 시절 책방은 내비게이션의 데이터 세계에서는 미처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책방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나만의 9와 4분의 3승강장을 찾은 기분이었다. 시절 책방은 고려대 근처, 서울 동대문구 제기로 10(현재는 휴대폰 지도에 등록되어 있다)에 위치하고 있다. 책방 주인 락천은 고려대의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책방으로 운영되기 전 건물엔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시절 종종 커피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이었지만, 나중에 이곳에서 책방을 차리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학창 시절 동안 알게 된 친구들이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락천은 여전히 서울에 취업하여 머무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가 지금 일하는 본 업무는 근무 시간이 자유로워서 일 외의 모든 에너지를 이 책방 운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중국어 책을 봤을 때의 반가운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그땐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하지만 모국어
- 관리자
- 2024-08-01
[에세이] 황당한 청탁 손세실리아 몇 해 전 일이다. 모 공공기관의 잡지 외주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편집 담당 아무개라 자신을 소개하곤 산문 청탁 건으로 연락했단다. 마침 산문집 준비 중이었고, 써야 할 글감이 몇 있어 흔쾌히 수락하곤 착실하게도 마감 날짜를 지켜 넘겼다. 언제 끝날지 모를 팬데믹 상황에서의 거리 두기, 인원 제한, 방역 등 여러 규제와 제약으로 인해 경영난에 허덕이는 책방카페 운영자로서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냈던 것인데 담당자로부터 게재 불가 통보를 받았다. 두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와 소시민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만한 내용인지라 어리둥절했더니, 자신도 당혹스럽다며 사과하고선 기획위원들의 반대라서 하는 수 없단다. 이유를 묻자 제목 때문이라며, 재난지원금은 정부에서 지급했는데 어째서 돌아가신 시부가 지급한 것으로 표현했느냐는. 혹여 불온한 내용은 아닌가 상상할 수도 있어 간추려 말하자면, 공간 오픈 10년이 지나도록 번듯한 영업용 커피 기계도 없이 꾸려 오던 중, 코비드19 장기화로 인해 한가해진 틈을 타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중고 기계를 설치하며 겪게 된 일이다. 하는 김에 서가 리모델링도 감행했던 건데 빠듯한 형편을 알고 있다는 듯 작고하신 후 팔리지 않아 오래 비워 둔 시부님의 시골집이 처분돼 자녀 넷이서 공평하게 나눴다는 사연을 유산이라는 상투적 표현 대신 재난지원금으로 비유했던 것. 실제로 그렇게 여겨지기도 했고. 생전에도 이과 성향이셨는데 여전하시구나 싶게 액수도 타이밍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보다 처지가 더 어려운 이들에게 양도할까 하다가 유산이라기보다 어쩐지 시부님께서 보내 주신 재난지원금 같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주위에 휴업과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나마 문을 열고 있는 가게도 대부분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 듯한 분위기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보니 ‘어렵다’는 푸념도 금기어다. 오죽하면 천국에서 보내 준 재난지원금을 넙죽 받았겠나. (중략) 각설하고, 팬데믹이 아니었음 앞만 보고 내달렸을 내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주위에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살피고, 미력하나마 챙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내 모습이 저승에 계신 시부님의 마음까지 흔들었을지도. - 졸저 『섬에서 부르는 노래』 중 「천국에서 지급된 재난지원금」 일부 은유를 팩트로 읽고 내린 결정이 어처구니없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게 구차해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며 실소하는 내가 이해심 많아 보였던 걸까? 최종 편집까지 열흘쯤 여유가 있으니 다른 글을 써준다면 기다리겠단다. 지면의 앞부분에 실리는 꼭지라서 비울 수 없다며. 담당자가 무슨 죄냐 싶어 수락했다. 비록 전화 통화와 이-메일로 나눈 대화였지만 내 글을 꼭 싣고 싶노란 그의 정중하고도 간곡함이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론 어차피 책에 수록할 산문 한 꼭지가 더 생기는 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손님 뜸한 가게의 며칠 매출 총액보다 원고료가 후했다. 이
- 관리자
- 2024-08-01
[에세이] 아홉수는 레벨업 이나리 1. 한동안 웹소설을 많이 읽었다. 웹소설은 이천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인소’(인터넷소설)와 달리 핸드폰으로 보기 때문에 서사의 호흡이 색다르다. 일명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으로 불리는 특정 서사 조건이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회빙환’이 최근에 유행하는 웹소설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가령 ‘환생’은 불교와 힌두교의 종교적 교리에서 나온 윤회전생의 개념으로 이미 친숙한 서사적 요소다. ‘회귀’는 또 어떤가. 오래된 영화 중에 (1993)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필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하루를 겪는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살이라는 선택까지 시도하지만 반복되는 시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필이 반복된 하루 안에 갇혀서 깨달은 것은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는 것. 그제야 필은 회귀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필에게 회귀는 일종의 저주와 같다. 회귀에 관한 이러한 관점은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영화 (2004), (2017), (2018) 등은 타임루프물로 불리며, 반복되는 시간을 주인공이 겪는 형벌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웹소설에서 등장하는 회귀는 이와 다르다. 주인공이 겪는 ‘루프’는 형벌이라기보다는 인생의 기회이고 다른 선택지다. 말하자면, 이미 오답 노트를 모두 작성한 주인공에게 문제 풀 기회를 다시 준 셈이다. 주인공에게는 이미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삶을 더 행복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다. 큰 맥락을 보자면 ‘빙의’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읽었던 책 속으로 들어가 해당 등장인물에 빙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안전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의 독자로서 나는 이 ‘안전한 불확실함’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진진하게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빙환’의 요소들로 인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안전장치를 믿었다. ‘안전한 불확실함’이라는 이 모순적인 요구를 충실히 지켜주는 서사라니. 서사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확실하게 안전하기를 바라는 모순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내 현실이 팍팍할수록 그들의 안전한 모험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2. 미래를 안다는 것. 그건 인간사에서 항상 선망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미래를 알고자 한다. 알지 못한 상태로 미래를 기다리는 현재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중 하나는 선지자, 웹소설 방식으로 말하자면 예지자를 찾는다. 하늘이 내린 신통한 능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예지해 주는 존재를
- 관리자
- 2024-08-01
[에세이] 괴담의 시작과 끝 현찬양 나는 중학교 졸업식에서 귀신을 본 적이 있다. 운동장에서 사백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그 두 배쯤 되는 부모들이 조회를 하듯이 서서 식순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지루해서 우리 반 교실 창문을 보고 있었는데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처음엔 얼룩인 줄 알았는데 점차 뚜렷해지면서 교실 창문 너머로 얼굴 같은 것으로 변했다. 얼굴 모양의 흰 얼룩인지 흰 얼룩 모양의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반 누가 아직 나오지 않았나, 싶었지만 얼굴이 너무 하얘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눈은 움푹 들어가서 보이지 않고 얼굴의 윤곽은 뚜렷한데 몸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교복을 입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키를 보면 우리 또래인가 싶기도 한데······.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맞아? 나는 옆에 애를 손으로 쿡 찔러서 “저거 보이냐?”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 약간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 애 눈에도 그것이 보였다. “으아 저게 뭐야.” 그 소리에 주변이 일순 소란해졌다.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그것을 보았다. “뭐야, 저게.” “누구 안 내려왔나 보네.” 같은 소리들로 시끄러워지자 단상 옆에 있던 담임선생님이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아이들이 창문을 가리키자 담임은 우리 반 애들의 숫자를 세보고는 실장(우리 학교에선 반장을 그렇게 불렀다)더러 올라가 보라고 했다. 실장이 올라가서 귀신이 비치는 창문 너머에서 손을 엑스자로 그었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실장은 다시 내려왔지만 여전히 귀신은 그곳에 있었다. 하얀 얼굴로 졸업하는 아이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제야 선생은 제법 당황했는지 실장에게 유리창을 닦아 보라고 했다. “애들이 창문 너머로 분필 지우개를 터니까 그게 묻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창문을 닦으면 돼.” 그 말은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실장은 걸레를 가지고 가서 창문을 닦았다. 그래도 사람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술렁였지만 졸업식이 진행되자 점차 귀신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햇빛이 반사된 것일 거라는 둥, 잘 닦이지 않는 얼룩일 거라는 둥, 하는 소리도 들렸다. 합리적인 듯 보이는 가설들이 몇 가지 나왔으나 식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무엇도 검증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과 친한 몇몇 아이들이 “우리 교실에서 사람 자살한 적 있어요?” 하고 직설적으로 물어 보았지만 물론 선생님들은 대답하지 않았는데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찡그린 얼굴로 자기들끼리 소곤거렸을 뿐이다. 학생회장이 연설하고 동창회장이 연설하고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까지 한마디씩 하고 나자 몇 명이 표창장을 받았다. 꽃다발을 수여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는 동안
- 관리자
- 2024-08-01
기울어진 자리, 돌봄과 공생의 겹 ― 안보윤, 「수미」 정우주 1. 오늘날 한국문학장에서 돌봄이 뜨거운 화두라는 사실을 말하는 일은 이제 익숙히 합의된 현상이 되었다. 다양한 양상으로 돌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서사들에서부터 아예 돌봄을 키워드로 내세운 비평 특집들까지, 지금 돌봄의 외연은 빠르게 팽창하는 중이다. 이렇듯 돌봄 담론이 확장되는 흐름에는 특히 팬데믹을 지나오며 돌봄 공백의 문제가 수면화 되었고, 누구든 서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취약성을 절실히 체감하게 된 배경이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돌봄은 기본적으로 주체와 타자, 제공자와 수혜자라는 복수의 행위자 사이에 일어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두가 취약하므로 상호의존해야 한다는 공동체의 관계적 가치와 자연스럽게 접속한다. 그런데 근래의 논의에서는 오히려 돌봄을 보편적인 사회 윤리로 치환할 수 없는 무언가로 지칭하려는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돌봄에서 연대나 윤리만을 찾기보다 그 속의 지난함과 불쾌함을 들춰내는 데 주목하는 작업1)이나, 상호적 돌봄을 이타성이나 선함이 아닌 미성숙한 두 존재가 “서로 폐를 끼치고 받는 위험한 관계”로 정의한 목소리2) 등은 모두 사회 구성원들에게 매끄럽게 적용되는 도덕적 가치로써 돌봄의 불가능성에 방점을 둔 시도들이다. 다만 이처럼 돌봄의 관계가 지닌 온정적이고 친밀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갈등과 착취의 요소에 천착하는 일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돌봄이 바로 그 ‘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다시 말해 돌봄은 철저히 사회구조적으로 배치된 역학관계에 토대를 두고 수행된다. 팬데믹 시기 이전부터 돌봄 노동이 가정 내 여성에게 전가되고 사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젠더 편향의 측면을 지적받으며 비판적 담론이 형성되어 왔음을 상기해 본다면, 현시점에 ‘돌봄 제공자가 돌봄 수혜자보다 권력의 우위를 점한다’는 비대칭적 관계의 구조를 역설하는 것은 그간 축적되어 온 페미니즘적 돌봄 논의에 역행하는 입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돌봄의 위태롭고 끈적끈적한 지점을 부각시켰던 앞선 비평들이 돌봄의 가치가 공동체적 연대의 이름으로 단순히 포섭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즉 “돌봄이 총체적 위기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처럼 쓰이진 않을지"3) 우려하는 관점들이 빠르게 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돌봄을 둘러싼 권력관계의 비대칭성을 구태여 강조하는 행위 역시 돌봄 개념의 다층적인 결을 구분하지 않은 채 끝없이 확대되는 양태를 경계하려는 의식적 흐름과 맞닿는다. 무엇보다 돌봄은 사회학과 밀접히 결합한 실천의 영역이므로 구체성과 현장성이 중시되지만, 한편으로 지속되는 팽창이 상징하듯 돌봄에 내재된 의존과 책임이 교차하는 원리는 인접 의제와의 유의미한 연결 가능성을 가진다.4) 그렇다면 이제 돌봄을 확장하되,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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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SF들 - 흄의 당구공과 천선란의 식물에 대하여 임지연 사고실험 SF의 매력 중 하나는 사고실험이다. SF에서 사용되는 외삽(外揷)은 과거와 현재의 익숙한 사실에 특정 가설을 투여하여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외삽을 통해 SF는 새로운 사고를 펼쳐내며 새롭고 낯선 세계를 예측하거나 대안적 세계를 재현한다. 인간의 합리성 속에 끼어든 비합리성 혹은 이성의 끝에 존재하는 비이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혹은 왜 불가능한가와 같은 문제를 SF는 다룬다. 나의 문제의식은 SF가 과학을 넘어서 비과학이 될 경우, 그것을 왜 좋은 SF라고 하지 않는가이다. 그리고 인간인 우리가 비인간 존재들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의 문제다. 비인간 타자가 인간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런 존재와 인간은 어떻게 조우하고 서로 인정할 것인가? SF는 사고실험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가? SF가 극단적인 사고실험을 함으로써 인간의 인식 능력 밖의 사물을 사유할 때, 과학 혹은 비과학은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덜 과학적이고 더 대중적이어서 SF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덜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을 합리적 법칙으로 제한할 때 가능한 말이지만 말이다. SF의 하위 장르로 하드 SF, 소프트 SF와 같은 구분법을 받아들일 때의 효용성 위에서 가능한 말일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하드코어 SF 작가나 철학적인 SF 작가 테드 창 정도의 이름을 거론할 때, 충실하고 세련된 SF 독자의 덕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덜 과학적이거나 덜 철학적인 SF가 새로운 SF의 가능성을 열어 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되었다. 과학이 인간 이성의 최고치를 가리키는 지표라면, 하드 SF는 오히려 휴머니즘에 충실한 이야기가 아닐까? 외계인, 로봇, 사건의 지평선 등 지구 밖 이야기가 지적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인간을 넘어서는 비인간 존재들과의 낯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 가능한 지적 능력에 기대어 있다. 그렇다면 고도의 과학지식으로 무장한 SF는 얼마나 인간으로부터 멀어져 낯선 비인간을 상상하게 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과학의 숭고한 낯설음에 대해 과도하게 신뢰했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적이라는 수사는 너무 많은 관대함을 허용하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 열광했던 TV 시리즈 , 나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는 과학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소녀의 덕성을 부여했다. 그것들은 대체로 어린이 공상과학소설의 범주에 드는 장르물이었다. 그저 소녀였던 나는 과학시대의 임무를 떠맡아야 할 사명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학소녀처럼 그것들을 보고 읽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시들해졌는데, 중고등학생이 되자 그것이 공상과학이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더 세련된 문학소녀로 돌변했다. 문학소녀는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법. 공상과학소설은 상상력보다 급이 떨어지는, 덜 과학적인, 말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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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외따로이 김민지 강아지아강 고양이양고 개애개애개 인간은인간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어요 누구나 그렇구나 하는 사실 같은 거요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지금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정말 많이 좋아해요 영원히 그럴 것처럼 듣고 있죠? 풀의 입장에서 뜰은 뜰의 입장에서 풀은 흔들리죠 북적거리고 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가끔씩 이런 이벤트로 감동을 줄게요 좀처럼 깊어지지 않는 생각 헤엄치지 않는 꿈 어제 꿈에서 왜 그랬어? 영문도 모르고 사과하려는 그대에게 일어나 현실을 부둥켜안는 목소리를 줄게요 들려줄 수 없다면 두들겨 줄게요 잎을 먹는 벌레 벌레를 먹는 잎 전환되는 구조 그런 관계에서 우리 모두 쏟아지는 비가 될 것도 지금은 알고 싶어요 유익하죠 인간은 모든 이야기 끝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저기 고독의 최전선에도 간간이 인간만 죽으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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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등에 쓴 글자 천운영 그녀는 발가락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발바닥 오목한 아치 부분에 저릿한 느낌이 올 때까지 발가락을 꽉 오므렸다가 활짝 펴기. 몸의 좋은 기운은 바로 그 오목한 곳에 모였다가 나간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스트레칭으로 잠기운을 지우고 나면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린다. 오전 일곱 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알람이 있는 게 아니라, 알람을 끄기 위해 그녀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두유 만들기. 전날 불려 놓은 검은콩에 호두, 아몬드, 단백질 분말, 오트 우유와 물 한 컵을 넣고 돌리면 두 잔 분량이 나오는데, 한 잔은 아침에 먹고 남은 한 잔은 저녁 식후에 마신다. 콩 불린 물은 따로 담아 머리 감을 때 헹굼 물로 쓴다. 두유가 완성되기까지 15분. 아침상을 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식사는 가볍게. 한 끼 분량으로 담아 놓은 채소 스틱과 아보카도 반 개, 달걀 두 개. 채소는 색과 식감을 고려해 조화롭게 구성하고, 달걀은 현미유를 사용해 프라이를 하거나 수란으로 먹는다. 입안에서 완전히 가루가 되고 곤죽이 될 때까지 적어도 오십 번 이상 씹어 넘긴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소화기가 약해 생긴 오랜 습관이다. 배변은 하루 한 번 아침 식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 내리기 전에 꼭 변 상태를 확인하는데, 색이나 냄새 단단한 정도가 아주 좋으며, 가끔은 그녀가 먹는 양보다 배출되는 변의 양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지 않아도 몸무게는 이십 년째 변함이 없다. 건강보조제는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들로 두어 가지 유행을 따라가지만, 단백질만큼은 꼭 산양유 초유 단백질로 넉넉히 쟁여 두고 먹는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치면 열 시 반. 집에서 노인복지관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 수업은 11시부터 시작된다. 월요일 수요일은 줌바댄스와 밴드 스트레칭. 화요일 목요일은 노래교실. 수강생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하는데, 다섯 강좌 지원에 셋 성공했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실버 줌바댄스는 40명 선발에 지원자가 123명이었다. 점심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 일반 5천 원, 65세 이상 4천 원, 기초생활수급자 무료. 그녀가 천 원 할인을 받은 지는 삼 년 남짓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반찬 구성이 다양하고 맛도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막 무친 겉절이가 그녀의 입맛에 맞는다. 주 고객층은 70세 이상 남성들로 일찌감치 몰려와 줄을 서는데, 그들을 가리켜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혼자서는 해먹을 줄도 모르는 불쌍한 노친네들’이라고 빈정거린 사람은 노래교실 선생이다. 그날 배운 노래의 흥으로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그녀는 그날 배운 노래는 그 시간에 바로 잊어버린다. 노래를 부른다고 흥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흥을 내려고 춤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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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부활 백온유 0 세주가 다시 나타난 건 반년 만이었다. 그 애가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난 후 내가 분실신고를 하기까지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세주는 370만 원을 사용했다. 그 돈을 지금까지 분할해서 갚고 있는 내게 이번에는 현금 500만 원을 빌려 달라 찾아온 것이었다. 세주는 오만 원 권이 아닌 만 원 권으로 준비하라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퇴근하는 길에 ATM기가 있는 편의점에 들러 100만 원을 뽑았다. 세주는 화분 밑에 있던 열쇠를 용케 찾아내 나보다 먼저 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당장 가능한 건 이 정도야. 더 이상은 나도 힘들어. 미안해.” 내 눈앞에서 돈을 세어 본 세주는 피식 웃더니 서늘하게 뇌까렸다. “이럴 줄 알았어. 너는 항상 말로 때우려 하지.” 미안하다는 얘기말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렇게 하나마나한 말을 건넨 후에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세주는 내 얼굴에 돈을 던지며 악을 썼다.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하지 마. 정말 미안하면 네가 나한테 이래서는 안 되지. 무책임한 건 네 엄마를 닮은 거지? 네가 멀쩡하게 사는 건 다 내가 봐줘서야. 신랄하게 나를 모욕하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꺼진 것처럼 잠잠해진다. 감정의 낙차가 너무 커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지만 세주의 감정 변화를 따라 동요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새어 나가지 않게끔 최대한 웅크린 채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잠시 혼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던 세주는 곧 이성을 되찾았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근황을 얘기했다.(돈은 한 장 한 장 다시 주워 봉투에 담아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오늘 알코올중독 집중치료센터에서 퇴원했다고. “사실 강제 퇴소 당한 거지. 내가 치약 튜브에 몰래 술을 넣어 갔거든. 정말 필요할 때 한 모금 마시려고. 안 들킬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검사할 줄은 몰랐네. 이번에는 정말 포기하지 않기로 아빠랑 약속했는데 실망이 컸나 봐. 내 전화를 안 받아. 이제 아버지도 포기한 거겠지, 나를.” 나는 세주가 술을 마신 게 아닌지 의심했다. 언젠가부터 세주는 취했을 때보다 취하지 않았을 때 더 횡설수설했다. 오늘의 세주는 발음도 또렷했고 나를 마주 보는 눈빛도 차분한 편이었다. 세주의 상태를 가늠하듯 그 애를 살피다가 거실 테이블 아래에 빈 술병이 놓여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아버지 입장도 이해가 돼. 아버지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그때 그 꼴을 보고도 나랑 내 어머니를 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었어. 너희 엄마랑 너희 가족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겠지.” 삶에서 위독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 근원을 나와 내 어머니로 지목하는 세주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느낀 바대로
- 관리자
- 2024-08-01
영원히 숲에 머무를 수 없다면 이소 1. 십 년 전, 한국 문학은 세월호의 침몰을 ‘실재’이자 ‘사건’이자 ‘외상’으로 받아들였다. 잘 짜인 듯 보였던 상징질서가 찢기며 드러난 ‘실재’의 속살이자, 그 이전의 주체와 그 이후의 주체가 도저히 같을 수 없는 압도적인 ‘사건’이자,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외상’. 글을 쓰는 자라면 누구라도 사태의 ‘재현 불가능성’을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한다는 것은 애도의 윤리에 복종하는 동시에 끝내 ‘애도 불가능성’을 증언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가 되었다. 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이 무렵의 문학 비평이 출구 없는 폐허 위에 무릎을 꿇고 써내려간 ‘실재의 윤리’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품은 바가 없다.”1) 다만, 실재를 향하라는 부정성의 요구가 언제까지나 생생할 순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믿기에, 이제 그간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작업들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을, 얼마만큼의 반성과 얼마만큼의 결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쓰였을, 십 년 만에 도착한 한 평론가의 글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실재의 윤리’를 이야기하던 평론가의 반전 앞에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지만, 만약 그의 결론이 어떤 필연적인 경로 끝에 형성된 것이라면 이에 관해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독을 막기 위해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을 중략 없이 길게 인용한다. 십 년 전의 나는 몰랐던 것 하나를 이제는 알고 있다. 세상엔 쓰일 수 없는 문장이 있다는 것. ‘아이가 죽었다’라는 문장은 불가능하다. 한번 태어난 아이들은 계속 산다.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산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장소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곳을 마련한다. 아이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살게 하자는 말은 뻔한 말이다. 그런 말이 아니다. 기억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식 기억’과는 다른 ‘대항-기억’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지만, 이제 나는 ‘인공 기억artificial-memory’의 불가피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예술로 생성되는 인공 기억을 ‘art-ificial memory’라고 부르면 되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매우 허술해서 우리의 뇌 속엔 “기억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말, “생생한 감각적 심상과 강력한 감정이 동반되면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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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탁구 김성규 내가 내 삶을 이기지 못해 탁구를 친다 내가 탁구를 이기려 내가 친 공이 나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내가 친 공이 날아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려 내가 나를 더 세게 친다 내가 친 공이 심장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 내가 내 얼굴이 하얀 공처럼 놀란 모습에 놀라 내가 친 공이 다시 내 심장으로 날아와 내가 친 공이 나의 심장을 찢고 소리를 찢고 내가 탁구를 이기지 못한다고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내가 공처럼 바닥에 뒹굴며 하늘을 보면 내가 친 공이 내 얼굴 옆으로 굴러와 내가 내 괴로움을 지우지 못한다고 내가 공과 함께 바닥으로 구르자고 내가 친 공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자고 내가 나를 계속 치며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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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망향 김성규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며칠째 치우지 못한 방바닥의 약봉지를 버리고 병이 들어도 갈 곳은 없어 내가 살던 옛집을 찾아 아픈 몸으로 모르는 꽃길을 걸어 다니네 걸어가다 보면 골목의 막다른 길 뒤돌아 나가도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느 곳으로 걸어가도 같은 길 집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없어 고통도 희망도 없는 길 걸어가다 보면 수없이 다니던 길 어느 창문으로 아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와 상처 난 팔꿈치에 연고를 바르듯 그칠 때까지 노랫소리 듣고 있네 아무도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에 집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 관리자
- 2024-08-01
음악이 좋은 집 김유수 음악이 좋은 집에서 일하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태어난 게 가정의 축복이듯이 주인의 축복이고 손님의 축복이다 음악이 좋은 집에서 너희들 대화를 듣는다 네가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해 아냐 내가 너보다 먼저 죽을래 그래 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널 죽일 거야 음악이 좋은 집에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아무 말이나 듣고 아무 말이나 적다가 너희들을 내 손으로 죽이는 상상을 한다 동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의 동시에 역시 이 집은 음악이 좋아 주인장 취향이 정말 내 취향이야 근데 커피는 더럽게 맛이 없네 조용히 좀 말해 맛없는 커피를 타는 것은 나의 일이지만 주인 행세를 하는 것도 나의 일이지만 좋은 음악을 트는 건 나의 몫이 아니라 한다 나는 주인 말을 듣지 않는다 내 장례식에서 듣고 싶은 노래야 죽을 때 듣고 싶은 노래야 그리고 이어서 들을 음악을 고른다 너희들이 멀쩡히 살아서 좋아한다
- 관리자
- 2024-08-01
요즘 보고 싶은 영화 김유수 요즘 보고 싶은 영화는 공포영화입니다 귀신 나오는 그런 거말고요 공포가 뭔지도 모르는 무섭게 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는 그런데 반사적으로 주위의 어둠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열린 문을 닫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 볼륨을 조금씩 줄이게 되는 영화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사실 요즘은 너무 많은 걸 추천받고 그것도 안 봤냐고 질문당하는 세상이지만요 이런 밤중엔 좀 출출하거든요 공포영화가 고프거든요 그 외엔 딱히 원하는 것도 없는데 요즘은 음악도 잘 듣지 않아요 이런 글도 거의 쓰지 않아요 요즘은 사랑에 빠져 있어요 요즘의 유일한 소식이랄까 좀 순진하다면 순진하달까 눈치 밥 말아먹었냐는 소리 많이 듣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꼭 귀신이 나와야 공포영화인 줄 알 거예요 소리를 악! 지르게 하는 무언가가 나타나서야 이런 영화인 줄 몰랐잖아! 저를 탓할 거예요 저도 잘은 못 보는데요 주위의 어둠을 돌아봤을 때 누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땐 꼭 누가 없었거든요) 저는 장면이 끊어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요 그 사람은 영화 보다 밥 먹다 화장실 갔다 소란스럽게 다 해요 좀 짜증이 나게 그러니 열린 문이 무서워질 때 심지어는 영화보다 무서워지려 할 때 누가 닫으러 가야 할진 뻔하겠지요? 그것 좀 이해시켜 주세요 그게 왜 무섭냐고 먼저 따지려고 들겠지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혼자 또 잠들겠지만
- 관리자
- 2024-08-01
희소 미래 안미린 눈사람과 눈사람 사이 잠든 눈사람을 녹여서 비워 두는 자리 꿈과 기억에 선을 긋지 않을 때 눈사람에게 흰 볕은 흰 늪은 눈의 눈꺼풀이 녹아내리는 꿈 작고 투명해지는 미래처럼 먼저 오지 않은 곳 오늘 내게 도착할 때까지 오래 걸린 이유였어 고여 있는 눈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여 있는 빛
- 관리자
- 2024-08-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최진영 작가님의 다정한 목격자 되기 − 우리가 작가님의 북토크에 계속 가는 이유 문장서포터즈 배연주 삶에 활력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 아름다운 예술을 접하는 건 일상에서 이벤트가 되어 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특정 예술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작품이나 공연을 계속 보러 간다. 소위 ‘덕질’을 하게 된다. 나는 공연도 전시도 좋아하지만 가장 오래된 덕질 분야는 소설이다. 공연을 보는 일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즐거움을 준다면, 문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파를 남긴다. 읽으면서 마음에 남았던 문장도, 당시에는 와 닿지 않던 문장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동을 준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작품에 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책 출간 직후뿐이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 소식이 들리면 꼭 찾아간다. 최근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자주 다녀왔다. 얼마 전에 내가 또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간다고 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같은 작가님 북토크 가면 항상 똑같은 말만 듣는 거 아니야?” 나는 곧장 아니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최진영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와, 계속 북토크에 가는 이유에 대해 말이다. 1. 독자, 수강생, 팬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2011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2주에 한 번씩 도서관 버스가 왔다.(지금 찾아보니 공식 명칭은 ‘이동도서관’이라고 한다.) 개조된 버스 내부 서가에 있는 책을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최진영 작가님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빌려 읽었다. 이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에 내가 침대에 거꾸로 엎드려서 책 읽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두꺼워서 오래 읽느라 어깨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14살의 나는 분명 ‘소녀’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실제로 내가 겪어 보지 않거나 알지 못해도, 감각으로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멋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기술적으로 분석해서 설명할 능력은 없더라도 마음속에 박히는 것처럼. 가령 이런 문장들이 그랬다. ‘죽는 순간 공포나 고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죽으면 끝이니까. 끝이란 걸 어떻게 아느
- 관리자
- 2024-08-01
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전예진 나는 작년 가을에 태어났다. 세진이 막 취업 준비를 시작한, 피딱지의 말처럼 영 좋지 않은 시기였다. 오른쪽 코 안쪽에 몸을 늘어트린 피딱지는 세진이 한동안 코 파기를 멈춘 시절을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피딱지의 말에 따르면 세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코 파는 습관을 고쳤다. 고등학생 때 밤샘 공부를 하다 가끔,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코를 후비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자주는 아니었다. 코 파는 습관은 세진의 대학 졸업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학창 시절보다 3밀리미터 더 기른 무자비한 새끼손톱과 함께. 우리 중 누구도 피딱지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지 못했다. 피딱지는 세진의 손길에 조금씩 뜯어졌지만, 남은 손으로 피와 이물질을 그러안아 매번 되살아났다. 피딱지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촐싹거리며 점막을 두들겨댔다. 우리는 점막을 타고 울리는 피딱지의 말을 들었다. 피할 길이 없으니 듣는 수밖에 없었다. 무릇 코딱지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 실린 먼지와 세균을 거르며 생겨나는 존재다, 이 말이야. 이 한몸 바쳐 비강을 지키는 역할이라는 거지. 그러려면 세진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걸러 줘야 해. 공기에 바이러스가 있다? 그럼 잡아야지. 세진이 악몽을 꾼다? 그것 또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야. 피딱지는 사람의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비강 안쪽을 향해 소리치면 세진은 잘못 들은 소리나 이명 정도로 생각하고 애꿎은 귀를 후볐다. 기껏해야 늦었으니 일어나라, 자전거 조심해라, 같은 짧은 말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코딱지가 말을 한다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적어도 막 태어난 나에게는 코 아래 입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엔 혀가 돌아다닌다는 말만큼이나 놀라웠다. 피딱지는 심지어 아주 희미하지만 냄새도 맡는다고 했다. 콧속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고,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듯이 오래 버텨낸 코딱지는 냄새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피딱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또 들었다. 피딱지가 하는 모든 말이 흥미로웠다. 그러다 몇 번의 대학살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던 코딱지들이 몇 초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나는 더 이상 아주 작은 코딱지가 아니었고 피딱지의 말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의 잔소리로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피딱지는 말했다.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작고 그럼에도 또 중요한 존재인지. 그날 오후 피딱지는 새끼손톱에 뜯겨 나갔고 그 말은 피딱지의 유언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많은 코딱지들처럼 나도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이 쫓겨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콧구멍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털에 맺힌 먼지와 이물질을 싸잡아 몸집도 불렸다. 마침내 콧구멍과 비갑개 사이, 그러니까 콧구멍 가장 안쪽 천장에 자리 잡았을 때쯤 내 몸은 우리의 숙적 새끼손톱보다 두 배는 컸다. 어느새 나는 오른쪽 콧구멍에서 가장 크고 오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코끝에 붙은
- 관리자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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