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 작성일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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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문장웹진》은 연초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다시 보고 싶은 《문장웹진》의 작품을 그 이유와 함께 추천받았고 해당 작품은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로 하여금 시각화하였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점선면
점선면 작가 한마디
모든 조각들이 다시 태어나고 모여들기를 반복하는 순간
독자의 한마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텍스트라는 단어에 대해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시라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가라면 행간의 힘과 언어의 힘을 언제나 고민할 텐데요, 이 시를 함께 읽으며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11월호 살펴보기
편지 - 비문증 신혜정 눈, 코, 입을 지우고 얼굴을 떠올립니다 막대기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주변을 없애는 모래놀이 바다를 하얗게 떠 놓은 달 국자 한가운데가 텅 비었습니다 빈 곳을 그리기 위해 가장자리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일테면 사건의 지평선 배경을 그리면 부재가 완성되는 복숭아가 있던 정물 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 시간을 하얗게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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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편지 - 에필로그 신혜정 서쪽으로만 뜨는 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져서 서쪽으로만 뜨는 당신의 반대 방향으로만 눕고 반대 방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지고 뜬눈으로 당신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드미러의 붉은 신호등처럼 지나치는 의미 없는 시그널들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가 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나는 눈이 조금 멀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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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불쑥 맹재범 냉장고 깊숙이 마음이 있다면 남은 반찬을 다 먹고 나서야 꺼낼 수 있을까 오늘은 그냥 봄쑥을 캐러 간다 문밖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척하는 계절이 봄쑥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너무 좋으면 울어버리는 버릇이 있고 내가 사랑한 것들은 울음 앞에서 돌아서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것들로 가득하지만 가끔 봄처럼 금방 녹아버리는 4월의 눈처럼 더 깊숙이 넣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잘 버무려서 쪄낸 쑥 한 줌을 접시에 담아두고 너에겐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버릇이 있었지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저녁을 차리며 냉장고를 열면 완전히 익어버린 마음 하나가 쑤욱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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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달팽이 맹재범 여기로 왔네 한 10년쯤 살았던 별이 건빵이 되었을 때 주머니에 넣고 몇 개의 해가 번갈아 뜨는 별 바위가 모래로 잘게 부서지던 별 모래를 모아 빵을 굽고 남은 빵들을 잘 말려서 만든 벽돌로 집을 짓고 배가 고플 때마다 빵을 먹고 벽돌을 먹고 집을 먹고 별이 건빵만 하게 되었을 때 한 10년쯤 잘 있었습니다 살았던 별과 작별하고 주머니 속 건빵은 주머니 속에서 바스러져서 손 위에는 잘게 조각난 별, 후 불면 사랑했던 나의 연인 컴컴한 작업장의 휘파람 소리로 모래 속의 모래가 되어서 나는 한 10년쯤 사랑하고 이제 배고파지네 별의 이주노동자에게 어순이 바뀐 외계어는 없는 사랑과 있던 사랑을 뒤바꿔놓고 이곳과 저곳 사이에 너무 많은 벽돌이 있네 나는 한 10년쯤 사랑하고 이제 일하고 있네 먹지도 못하는 벽돌을 모아 집을 짓고 사람이 살다 가고 집을 부수고 잔해들로 집을 짓고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 모래 내가 사랑했던 단단하지 못한 별이 지구의 모래와 섞였다가 벽돌 안에서 하나둘 녹아가네 구멍이 되네 저 단단한 어둠 속에서 구멍이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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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전자레인지 하린 횟수가 늘어난다 이 무한한 간편 능력 결핍의 부피와 깊이만큼 빈도가 잦아진다 즉석을 꿈꾸는 것들을 나열해 본다 만두 돈까스 치킨 떡 시래기 우거지 고등어 갈치 조기 삼치 오징어··· 그리고 당신과 내가 만든 열망 혹은 멸망 추억은 전자레인지 없이도 녹일 수 있지만 열고 넣고 버튼을 누른다 돈다 부패를 확인한다 버릴 수 있는 것이 된다 마음에도 공복과 허기가 있다는 말 나도 모르게 터득하게 된 지 오래다 그런 날엔 빈 전자레인지가 돌아간다 나는 멍하니 본다 착각에 빠진다 슬픔이 그리움이 상심이 나쁜 생각이 부풀어 오르다 형체도 없이 터진다 기념일마다 비가 오는 날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밤마다 무언가를 먹고 또 먹는다 나의 허무, 오랫동안 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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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아판타시아* 하린 사과를 만졌어요 이해했어요 사과가 사라져요 마음속이든 머릿속이든 상이 맺히지 않아요 그럴 순 있지만 그릴 순 없어요 눈물이 맺혀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땐 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남겨지니 감촉이란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아요 나를 달래려고 당신이 눈앞에 나타나겠지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당신인지 확인하려고 애를 쓰겠지요 촘촘히 천천히 내가 떠오르지 않을 땐 눈을 감고 왼쪽 손가락으로 오른쪽 손가락을 만져 봐 손금에 다 저장되어 있을 거야 소멸의 속도가 감각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걸 당신은 아직 몰라요 성실하게 달아나요 잃어버린 적 없는데 잃어버린 기분 밀려오는 공포와 불안 당신은 정말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사진을 봐요 분명 당신은 당신이 되어 눈앞에 있는데 고개를 돌리면 확신이 사라져요 빙빙 맴도는 실감 절반의 기분 절벽의 기분 우리라는 인칭 속에 있는데 이별이 다녀간 적 없는데 마침내 혼 자 네 요 *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인지장애. 사고력은 정상이며 단지 심상만이 보이지 않는다.
- 관리자
- 2024-11-01
추분 신원경 꿈속에서는 오래전에 사귀었다가 알 수 없이 헤어진 친구들이 측백나무의 몸통을 끌어안고 잠들어 있다 수확 철이 다가오면 잡초 없는 들판 속에서 그들이 살아 있는지 확인한다 나무는 다 자라도 끝났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떨어진 잎을 주워 살펴야 한다 그 나무가 무덤가에 심어진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어 담장 너머로 몰래 흘겨본 붉은 얼굴들 잠들었을 때 살아 있는 게 느껴져 생명은 질긴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지 측백나무에는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는 힘이 있다 질투는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햇볕보다 깊숙이 들어서 있고 오늘은 낮과 밤의 시간이 같은 날 완전한 동물도 식물도 아닌 것들은 당장 내일 죽는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뛰어다닌다 추분의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찾으면 가장 잘 익은 밀감을 나눠 먹기로 결심한다 우주의 부피는 어떤 것으로 잴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자 그럴 때만 깨어나던 초등학생들 친구들은 꿈속에서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 달은 해와 다르게 눈을 찌르지 않지 그래서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측백나무는 결국 우리 집에서 가장 나중에 죽게 될 것이다 강가에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흰 실내화 떠 있다 울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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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하농이거나 체르니 신원경 천천히 밝아 오다가 추락하는 음 그런 것이 한 장의 악보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도서관에서 무심코 펼쳐든 책에서 나온 엽서처럼 시작되는 이야기가 여기 있다—네가 해주는 말이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는 해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네가 졸업 전까지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그들 사이에 표기된 악상 기호 중 화음을 차례대로 풀어서 연주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싶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이미 지나간 다음이다 어쩌면 수신자는 편지 없이도 스스로에게 누군가를 위로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무덤가를 걷는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둘을 상상한다 —“복도에는 언제나 종 치기 전까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던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의 얼굴은 이제 전혀 기억나지 않아” 우리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나란히 먹으며 비어 있는 창가를 바라본다 그 애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무릎을 가졌다는 것 자신만의 리듬으로 차가운 철망을 두드리는 것 두드리다 보면 소나기가 쏟아지고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흙은 천천히 젖어 갔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애는 어딘가로 사라졌어 다음 교시는 체육이야 선생님은 어울리지 않는 체육 교과서를 들고 와 시험 범위를 알려주셨지 나는 그 순간을 잠시 신이 우리에게로 내려앉은 날이라고 기억해 “모든 장소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아날 수 있게” 그건 내일 전학 가기로 예정된 네가 한 말이다 “하지만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춰야만 하잖아” 그건 두 사람 사이에 나란히 서 있던 내가 거세진 빗줄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말이다 학교의 스피커로 태풍이 상륙 중이라는 안내가 들려오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난 뒤에 어떤 사람의 얼굴은 젖어 있기도 할 것이다 손수건을 건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상의 우정을 상상하던 내게도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고 올라가기도 했는데 단 하나의 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창밖에서는 예정에 없던 비가 내리고 나는 이미 입학한 적 있는 모든 학교를 졸업한 사람인데 어쩐지 갑자기 그만둔 것처럼 좋지 않았다 빈 교실로 돌아가 놓고 온 가방을 챙겨야만 할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누가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인 음으로 이뤄져 하농 같기도 체르니 같기도 한데 어느 구간에서 자꾸만 틀려서 몇 번이고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누군가 내게 괜찮으냐고 물으며 손수건을 건네온다
- 관리자
- 2024-11-01
왜가리 고영민 아파트 관리실에서 단지 내 연못에 금붕어와 비단잉어를 풀어 놓고 그 위에 그물망을 덮어 놓았다 얼마 전부터 연못가에 왜가리 한 마리가 온다 덮어 놓은 그물망 때문에 금붕어나 비단잉어를 잡아먹을 수 없는데도 왜가리는 매일 온다 매일 와 외발로 서서 노니는 물고기를 쳐다본다 그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듯 한동안 금붕어와 비단잉어를 미동도 없이 쳐다보다 큰 날개를 펼쳐 어딘가로 날아간다
- 관리자
- 2024-11-01
빛 장례식장 고영민 광주 송정역 건너편 빛 장례식장 빛이 죽으면 어둠일 터 조문객이 되어 나는 생각하고 사나흘, 이 고장에서 지내다 보면 빛이 태어나 살다가 어떻게 죽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눈을 감고 묻네 물항아리에 담겼던 죽은, 오늘 빛의 장지를
- 관리자
- 2024-11-01
걸어도 걸어도 김행숙 제자리 걸음, 생각보다 운동 효과 있습니다 눈감고 제자리 걸음, 생각보다 멀리 걸어갔습니다 눈을 감으면 혼자가 되는 남자와 눈을 감으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고 엄마가 빗방울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여자가 40년 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물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두 개의 돌멩이처럼 엄마가 없는 아이와 엄마가 같이 살았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와 우는 엄마가 눈을 감고 산 사람과 눈을 뜨고 죽은 사람이 20년 후에 헤어지기로 합니다 암만 눈을 비벼도 보이는 게 없는 밤길처럼 뒤돌아보니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네, 그러니 가볍게 비질을 하세요 꿈속에서 다 잊어버린 꿈처럼 10년 후에 걷기, 달리기, 계단 오르기가 힘들면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걸음, 그것도 생각보다 힘이 들고 운동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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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응급실 가는 길 김행숙 올여름은 모든 게 다 체온과 비슷하게 35도, 36도, 37도쯤에 매달려 있어. 삐죽삐죽한 초록, 초록, 초록의 잎들도 38도쯤. 상갈파출소 사거리의 신호등도 39도쯤. 붉은 신호등처럼 피에 젖은 단 한 사람의 눈동자도 39.5도쯤. 축 늘어진 아이 를 업고 세상은 응급실에서······ 응급실로 뺑뺑이를 돌고 있어. 만져지는 것들이 다 피 같고 피떡 같고······ 제기랄, 나는 내가 더러운 누비옷 같은데 벗겨지지 않아 질질 끌리네. 또 한숨도 못 잤어. 잠을 못 잔 사람들이 40도의 잠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아. 거리에서 너를 사랑했던 이유로 너를 미워하고······ 여름을 좋아했던 이유로 다 함께 정오의 여름을 증오하며 그늘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이 물끄러미 자기 그림자를 응시하는 순간이 있어. 그것은 가장 짧은 그림자. 그러나 긴 다리를 녹슨 가위처럼 벌리며 계속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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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서울은, 서울은 고형렬 새들이 사는 숲속의 일몰처럼 두런거리는 시민들의 말소리와 자동차 소음이 들려온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 저녁도 그들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어둠이 묻은 구멍가게는 어느 청춘들의 퇴근하는 등을 닮아서 아직도 개숫물 같은 불빛을 길바닥에 내쏟는다 그 시대의 풍경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의 달고 쓴 삶의 독설은 절망을 잃고 일몰의 능선은 불타지 않는다 가로수엔 새가 살지 않고 어둑한 골목엔 아이들이 없다 그들의 서울은, 서울은 우리의 희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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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얼음 반달 고형렬 나는 반달이 어디로 가는 반쪽인지 알고 있다 반달은 더 어려지지도 않고 더 지혜로워지지도 않았다 하현으로 갈 때나 상현으로 갈 때나 같은 반달 너의 얼굴도 나처럼 되려고 중학교 이학년 그날 낮부터 파란 하늘 낮반달 반낮달이 되었더구나 녹고 있니, 얼음 반달은 얼고 있니, 반달 얼음은 반달은 아직도 덜 기쁘고 아직도 덜 슬프단다
- 관리자
- 2024-11-01
속으로 하는 말 권희진 1 “무슨 생각해?” 승언의 질문에 나는 원숭이 우리에 갇혔던 남자를 떠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여자가 갇힌 게 아니고?”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보면서 그 안에 갇혔던 건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던가, 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그게 이상했습니다. 내 생각을 읽었나? 아니, 그것보다 승언도 그 영화를 아는구나, 그런데 어떤 영화였지? 또 그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강변에 앉아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중이었습니다. 밤에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승언이 둘만 있을 수 조용한 곳을 가고 싶다고 했고 나는 지금은 너무 늦었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실망하기에 나는 택시를 불러 그녀와 함께 뚝섬으로 갔습니다. 우리 둘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이라면 다른 사람은 없으니 조용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 승언은 다시 기분이 풀어진 것 같았습니다. 새벽 2시에 거기에 갈 생각을 한 걸 보면 아마도 주말이었을 겁니다. 그곳엔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 말고도 산책하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지 않았는데도 커플처럼 보였습니다. “새벽은 좀 이상한 시간인 거 같아.” 승언은 그들을 보면서 말했고 나는 이건 누구 노래야?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가수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영국 그룹이고 두 사람은 커플이라고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 가수도 노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노래를 다시 들려준다면 난 아마도 이건 누구 노래죠? 라고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그게 누구 노래건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드문드문 대화도 나눴습니다. 원숭이 우리에 갇힌 게 누구였을까 하는 것 같은 엉뚱한 주제들이었죠. 손을 잡은 채로 말입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우리는 커플이었지만 새벽은 좀 이상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손을 잡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문득 승언은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는 먹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글쎄, 먹으려고 잡는 거 아닐까? 라고 하자 그녀는 “난 못 먹을 거 같아.”라고 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물고기는 물고기였다가 잡히는 순간 생선이 된다는 거야.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가 어항에 햄스터를 키우는 남자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어항에는 수초와 모래가 있고 조명과 여과기도 설치돼있지만, 물고기는 없고 낚시하는 햄스터 인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남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물고기가 없어? 라고 물었더니 물고기를 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 영원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 햄스터 인형을 두었다는 거죠. “그 햄스터 인형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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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구하고 원하는 자에게 윤치규 조사실 안에서 윤구민은 호주에 관해 생각했다. 호주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고 정확히 말하면 호주가 섬인지 대륙인지 고민했다. 만약 아버지였다면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간단히 호주는 섬이면서 동시에 대륙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구민은 그것이 이치에 맞는 말일지라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마찬가지로 호주가 자체적인 지각판 위에 있다거나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고 있기에 대륙이라는 주장도 마땅히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정답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었고 마다가스카르도 섬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륙이 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쪽 해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어야만 했다.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영국의 왕립학회도 미지의 남방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찾아내야만 했다. 영국이 호주를 신대륙이라고 선언했을 때 다른 나라는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은 호주가 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중 윤구민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린란드보다 큰 섬은 앞으로 대륙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정답을 찾은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낸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방식이야말로 정답이라는 것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지도 몰랐다. 호주의 원주민이었던 애보리진에게 호주는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니었으며 그저 완벽하고 절대적인 단 하나의 세계일 뿐이었다. 영국이 호주를 침략하고 호주는 대륙이 되었고 애보리진은 현생 인류 중 가장 진화하지 못한 열등한 종족이 되었다. 생김새가 오랑우탄과 흡사하고 뇌 용량이 다른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다는 게 이유였는데 윤구민은 궁금했다.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이 그토록 수많은 애보리진을 죽인 이유는 그들이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여 놓고 보니 너무할 정도로 많이 죽여 버려서 애보리진을 인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스스로 속이게 된 것일까? 1996년 전두환에게 사형이 구형된 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다음 해 사면되는 과정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윤구민은 거짓말이라는 것도 뻔뻔하게 반복하다 보면 정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구민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한 거짓말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호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거나 친구 부모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어 볼 때마다 윤구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왜 하필 호주였을까? 아마도 미국이나 중국처럼 너무 뻔한 나라보다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 더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무렵 캥거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유년 시절 윤구민이 나쁜 길로 어긋나지 않게 보살펴 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듯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예의 바르게 굴었으며 옷차림에도 신경 썼다. 윤구민은 비싼 브랜드 옷을 입을 수 없어도 가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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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숲 바깥쪽으로 김선재 1. 선을리가 서쪽 산의 중턱 어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출발한 지 40분 남짓 되었을 무렵이다. 섬 서쪽은 산세가 험해 동쪽보다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거길 가는 거라고 소영은 말한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 선을리 근방을 훑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낯선 동리나 동산의 지명뿐이다. 선을은 식당이나 카페는커녕 편의점조차 없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위치한 모양이다. 도착하면 투어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작 30여 분의 시간이 남는다는 걸 확인한 나는 맥이 빠진다. 30여 분 동안 먹을 수 있는 게 뭘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검색했던 여러 메뉴를 떠올린다. 블로그에서 본 해물찜은 재료가 실해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고 한치도 한창이라고 했다. 또 해풍에 말린 해초를 주재료로 한 수타 우동은 너도나도 후기를 남길 만큼 유행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지만 30분은 그런 걸 먹기에는 어림도 없는 시간일 거다. 홀쭉해진 배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메뉴를 고르는 건 고사하고 뭘 먹을 수 있기는 할까. 늦은 아침을 먹은 후로 뭘 먹은 기억이 없다. 몇 달 만에 만난 소영과 회포를 푸느라 평상시보다 늦게 잠들었다가 느지막한 시간에야 일어났다. 산책 시간도 여느 때보다 길었다. 날씨 때문이었다. 오늘은 정말 온종일 보기 드물게 시야가 좋고 바람도 잔잔한 날이다. 큰 귀를 펄럭거리며 공을 물고 해변을 뛰어다니는 마이가 너무 즐거워 보여 좀처럼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를 좀 채워야 할 텐데. 나는 운전 중인 소영이 들을 수 있도록 전방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늦어도 30분 전까지는 입장해야 한다고 했던 거, 잊어버린 거 아니지? 소영이 상기시킨 건 리플릿에 적혀 있던 세 가지 주의사항 중 첫 번째다. 아. 나는 짧은 탄식을 터트린다. 뭘 물으면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게 그 애의 말버릇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소영의 질문은 자주 비난이나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크고 작은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네가 삐뚤어져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소영은 종종 그렇게 물었다. 기우는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진다. 상반신과 무릎 언저리가 뜨겁다. 나는 달려오는 일몰을 선바이저로 가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안선에 늘어선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수평선이 빠르게 흘러간다. 과감한 디자인의 알록달록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거주민과 관광객은 대개 옷차림으로 구별된다는 걸 이제 안다. 당분간 저 풍경 속에 내가 낄 일은 없을 거다. 오늘의 끼니를 고민하고 마켓에 올라오는 구인 목록을 살펴보다가 해가 질 무렵에는 마이와 함께 동쪽 해안가를 쏘다니는 게 요즘 내 일과의 대부분이다. 생존과 생활. 요즘 나는 밥그릇 앞의 마이가 그런 것처럼 무섭도록 그 단어들에 집중하며 지낸다. 투어가 끝날 즈음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을 텐데. 불안을 삼키며 소영을 흘깃거린다. 흰색 테두리의 검정 선글
- 관리자
- 2024-11-01
불안을 모르는 마누엘 임택수 마누엘은 이면도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호수에 손을 넣으면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클라멘 화분과 청소 도구를 챙겨 공동묘지 후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더위에 지쳐 가는 온몸의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실눈을 뜨자 통행로에 깔린 흰 자갈이 잔설처럼 보였다. 알록달록한 조화와 반듯한 형태의 무덤들이 대낮의 정적에 갇혀 있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한번 쓱 둘러보았다. 전과 달리 어딘가 훤해진 느낌이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북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마누엘은 묘지의 청청했던 나무들이 대부분 잘려 나간 것을 알아차렸다. 이 주 전 이곳에 들렀을 때 해충 때문에 골치가 쑤신다고 불평하던 관리인이 떠올랐다. 외래종 날벌레라며 여기서 성장한 해충이 지역의 포도밭까지 퍼져 심각한 피해를 준다며 구시렁거렸다. 마누엘은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서쪽 구역으로 걸음을 떼었다. 수돗가 나무 그늘에 있던 벤치도 보이지 않았다. 마누엘은 그 벤치에 앉아 아버지의 무덤에 닿은 가죽나무 그림자가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었다. 문짝만 한 자주색 평석 위에 놓인 화분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마누엘은 애도의 문장이 새겨진 책 모양의 석판과 시든 화분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평석을 솔질했다. 여기저기 굳어 있는 새똥을 손톱으로 긁어낸 뒤 페트병을 열어 물을 뿌렸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토도독 떨어졌다. 마누엘은 평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 주위로 석판과 시클라멘 화분을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만족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게 제자리에 놓인 것 같았다. “아버지, 저 가요.” 그는 빈 페트병과 솔을 챙기고는 사인을 보내듯 발끝으로 평석 옆면을 툭툭 건드렸다. 묘지의 나무가 사라지자 묘지의 그늘도 사라졌다. 햇빛이 정수리를 달구고, 등과 겨드랑이가 끈적거렸다. 지붕을 얹은 석실 안 조각상들은 눈을 내리깐 채 만돌린을 뜯고 있었다. 마누엘은 버릇처럼 망자들의 이름을 읽어 나가다 한 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매번 처음 발견했던 때처럼 발길이 멈춰졌다. 평석 없는 무덤은 미처 장례를 다 끝내지 못하고 서둘러 묻은 것처럼 맨땅을 허술히 드러내 보였다. 색 바랜 조화가 땅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고, 그 뒤로 달걀만 한 흑백 사진을 박은 묘비가 기우뚱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은 동양 남자였다. 망자의 가운데 이름은 Chang, 이었다. ‘창’은 푸르거나, 창문이거나, 무기가 아니면 노래일 거라고 언젠가 문규가 알려주었다. 꽃다발을 든 초로의 여인이 중앙 구역까지 와서는 중얼대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묘지 분위기가 달라져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마중을 나올 수도 없을 텐데.” 마누엘이 혼잣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길을 헤매던 여인은 정문 앞 키오스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관리인이 나와 그녀에게 뭐라 묻더니 팔을 뻗어 북쪽
- 관리자
- 2024-11-01
모로 김영은 개수대의 뚜껑 아래에 언제 생긴 것인지 모를 초파리 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틈에 손톱만 한 자두 조각이 껴 있었다. 규민이 엊그제 저녁에 마트에서 특가 세일로 산 것이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알을 제거한 후 과탄산소다를 섞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 초파리가 생긴 것은 무더위와 습기, 자두 조각 때문이었지만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규민에게 초파리 알이 가득한 개수대 사진을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모습까지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내친김에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널린 옷가지들을 고이 개켜 두었다. 밀린 빨래를 하고 분리수거를 한 다음, 창틀 먼지를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오 평 남짓한 원룸은 금방 깨끗해졌다.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분주히 움직였건만 고작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선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전자 담배를 꺼냈다. 인위적인 복숭아 향이 콧속을 간질였다. 거리의 소녀, 사회의 품으로. 워드 파일 속 굵은 글씨체로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정 선생님께서 전달해 준 것이었다. 그는 가출 청소년을 심층 취재하고자 쉼터를 드나드는 기자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가출 청소년 중에서도 우수한 사례에 속했다. 유년기의 상처와 중학교 시절부터 지속된 방황, 쉼터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재수 끝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은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이 기관의 관심과 도움으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된 훌륭한 결과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쉼터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 터라 외면하기 어려웠다. 가출 청소년 ‘이후’의 스토리가 담긴 긍정적인 기사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세금이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파일을 받은 지 이 주가 지났음에도 간단한 답변 하나 작성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규민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다가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방송 PD를 꿈꾸며 프리랜서로 영상 편집 일을 하는 규민은 솔직함, 날것, 진정성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나는 선풍기의 바람 세기를 더 높였다. 복숭아 향이 빠르게 흩어졌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답변을 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띄운 워드 파일 속 커서를 응시했다. 커서가 점멸등처럼 깜빡였다. 질문은 열두 개였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가출하게 된 계기, 가출하는 동안 겪었던 사건이나 어려웠던 점, 기억에 남는 일화, 가출을 후회했던 적, 지금 상태에 대한 만족도, 대학 졸업 후 구체적인 진로 계획, 쉼터에서 받은 도움 등등이었다. 그러나 거리의 소녀, 그 문장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mi
- 관리자
- 2024-11-01
[에세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로맨스 손진원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그러면 지금 너의 연애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야?”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난, 2017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던 내가, 드디어 장르문학과 웹소설을 펴내는 출판사와 계약해 원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근황을 전한 것이다. 이를 전해 들은 친구들이 축하의 말을 건네던 중에 나온 말이었다. 마침 나는 한창 연애 중이었으며, 막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참이었다.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농담이었다. 내 일상과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장르가 이렇게 적절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누구든 던질 법한 농담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저 농담에 가볍게 대꾸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소설 내용을 듣고 싶어 하는 동기들의 기대를 애써 외면하면서, “설마, 내 연애사에 관심 있어 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소심한 대답으로 일축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도, 정작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필명은 비밀이라고 덧붙이면서. 동기들의 행동이나 발화의 내용이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움이 더 컸다고 해야 할까. 웹소설과 로맨스라는 말을 듣고도 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동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무척 놀라웠다. 우리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여러 수업을 같이 들었다. 수업에서 다룬 소설과 시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동시대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며 잡담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K팝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나 마블의 영화 시리즈, 혹은 최신 일본 연재만화까지. 꽤 폭넓은 관심사를 공유했던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심도 깊이 읽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많은 텍스트에 열광했고, 그 콘텐츠의 팬을 자처하며 진지하게 그것들을 읽었다. 우스갯소리를 남발하는 것 같았지만 대중적이거나 마니악한 텍스트에 대한 나름의 ‘리스펙’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다. 그렇지만 동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웹소설, 로맨스라는 영역만큼은 문외한이었다. 뭐,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면 내 글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이 장르가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하면 되는 일이니까. 문제는, 그걸 설명하려는 것이 부끄러워서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맨스 팬이면서, 심지어 창작까지 시작한 내가 이걸 부끄러워한다고?’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에 반발심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튀어 오르던 반박의 말은 금방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로맨스라는 장르를 진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는 것보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로맨스를 공들여 설명하는 것을 새삼스러운 일처럼 여겨야 할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소위 B급 텍스트들에 대한 ‘리스펙’을 공유했던 동기들 앞에서조차 말이다. 부끄러움에 대한
- 관리자
- 2024-11-01
[에세이] 애도편지 - 내 것이 아닌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나를 김종연 1 믿음의 가장 큰 일은 믿음이다. 2 누리의 없음을 지체 없이 받아들였다, 라고 쓰고 그날은 무엇도 더 적지 않았다. 무용함의 유용함, 그 얇은 가지를 누군가 뚝, 뚝 부러뜨려 주고 있어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가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잃고 있었다. 무관심을 잃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가능성으로 비어 있다는 말과 같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불가능성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3 알고리즘은 상실을 알지 못한다. 까치발을 들고 불 꺼진 거실로 나가 물을 따라 마실 때, 나는 이것이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와 언제나 쉬이 잠드는 아버지 그 사이에, 눈과 귀를 잃은 누리가 누워 있곤 했는데. 가장 나중에 떠나는 것은 목소리일까 생각했다. 안락사를 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귀가 살아서 모든 소리를 듣고 간다는데, 들었으니 해야 하는 말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해서라도 토해 내야 하는 그 마지막 말은. 불을 켜면 그 목소리가 들릴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누워 듣는다. 밤의 혼곤 속에서 들려오는 낑낑거림을.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그 소리를. 4 시(의) 구조는 무수한 병렬의 직렬로 존재한다. 불이 켜진 A가 불이 꺼진 B를 마주하여 밝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B의 밝음은 아니다. 그때 보이는 것은 B의 어두움이며, 동시에 B에게서 어두움이 발견될 만큼 충분히 밝지 못한 A의 어두움이다. 그 순간 둘 사이에서 C가 나타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그렇기에 존재를 주장할 권리를 가장 강력하게 획득하게 되는 그것. 그것은 몸 없이 보는 자다. 기관도 없이 기능하는 자다. 지워진 자는 무(無)가 아니다. 그것의 시선은 그것을 보려는 자의 시계에서 존재한다. 5 네가 기뻐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겠지만,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이다. 6 우리가 관찰하려는 것이 공기와의 접촉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조건을 마련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0%를 시작할 수 있는가? 0이라는 것의 공간을 어떻게 완벽히 비워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보여주기를 그만두고 비유가 되어 비유를 중단할 수 있는가. 7 누리를 보기 위해 카메라 앨범을 되감는다.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끈다. 선언의 힘은 실패에 있다. 탑은, 사람이 아니라 탑에 의해 쌓이기 때문이다. 누리는 개의 나이로 백 년을 살았지만, 사람의 나이로 이십 년을 살았다. 나는 누리의 나이로 백칠십 년을 살았다. 너무 긴 시간은 종종 너무 짧게 축약된다. 누리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모두 삶으로 이어진다. 불가능이 있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가능성이 없어서 죽는 사람만이 있다. 꿈을 읽는 방법을 배운 뒤로 꿈은 내게 지나치게 직설적인 장면만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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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에세이] 바다는 요약이 없다 이서안 “샘, 꼭 전문 다 읽어야 해요? 수능에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매 수업마다 이런 대사를 읊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전문 줄거리 요약한 건 없나요?” ‘요약한 것?’ 가슴 언저리를 뭔가 콕콕 찌른다. 시간이 부족해 그것도 걷기 중에 영화 줄거리와 결말을 보는 내 모습이 돌연 떠오른다. 나에게 꼭 집어달란다, 수능에 나올 작품들만. 중편 분량에도 못 미치는 소설을 혹 가다가 추천하거나 충분한 시간을 주어 과제를 내면 “이걸 언제 다 읽어요?”라며 지겹다는 낯빛을 단번에 드러낸다. 현대소설은 너무 길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데다 주제가 애매해 문제 풀기 어렵다나······ 고전소설은 글자가 아니라 기호 같다고······ 지겹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며 한껏 신나 가르침에도 괴로운 표정으로 시간을 견디는 학생들에게 나도 조금씩 지쳐 간다. 비단 소설 외에 다른 장르라고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이야기꾼 전기수들은 낭독의 귀재들이었나. 그들은 얼마나 맛깔나게 지은이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 상상력을 더 보태 구연했을까? 소설책을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시대의 애독자들은 세책점에서 신간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가슴 저민 스토리에 같이 공감하고 감동 어린 몸짓으로 전기수들에게 반응했다. 장터나 마당에 앉아 전기수에게 귀 기울이는 애독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어진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게 놀랍지 않나요? 옛날에는 남성 중심 사회였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만난 홍계월전에서는 무엇보다 오랑캐와 싸우는 계월, 평국의 활약이 두드러지죠······.” 오늘 읽은 고전 소설은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앞서가는 근대적 가치를 담을 줄 아는, 진보적 소설인 동시에 핫한 소설이었다. 도적 때문에 강에 버려진 계월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구출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남장한 긴장 모티브도 있었고, 여성이 중심인물이 되어 나라를 구한 박진감 넘치는 활약의 절정과 사이사이 평국과 보국의 쿵쿵 로맨스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해피 엔드까지······. 하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다른 색깔의 언어로 학생들을 간곡하게 유혹해야 했다. “얘들아, 홍계월전 만화책으로 나온 것도 있으니 그걸 보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거야.” 학생들에게 제시한 유혹 계책에 씁쓰레하면서 ‘지금의 학생들은 영상세대들이잖아. 난 합리적 제안이라고 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잠깐이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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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시는 음악을 듣는다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2020)를 톺아보며, 정원 1. 시를 읽고 때로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허연의 경우, 그것은 감각의 왈츠와 같아 때론 휘몰아치고 때론 내리누르고 멈추게 하고 가만히 걷게 하는, 어떤 리듬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허연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파토스는 대개 화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어 독자는 그 색채와 무늬에 매료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 허연의 시의 마력은, 감각의 형식을 재현하는 파토스가 리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죽었다 살았다 하는 깜박이는 보안등 아래서 얼굴 반쪽이 있다가 없기를 반복한다”(「이별은 선한 의식이다」)는 문장은 ‘죽었다’와 ‘살았다’의 상반된 감각을 ‘교차’하고, 그와 비슷한 모양의 보안등이 ‘깜박’거리는 이미지와 불빛에 의해 ‘있다, 없다’ 하는 얼굴 반쪽의 이미지를 ‘중첩’하면서 감각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말하자면 감각을 ‘교차’하고, 이미지를 ‘중첩’시키면서 시의 음악성-리듬과 그 의미를 ‘증폭’하는 이 감각의 형식으로 하여금 허연의 시는 그 파토스를 분화(噴火)하고, 독자는 그러한 시의 리듬과 시집의 멜로디 라인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다. ‘자유시’ 개념이 들어온 이후로 이처럼 현대시는 나름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음악성을 실현한다. 2009년 월간 『현대시』에서 기획한 ‘한국시의 리듬이 탈옥할 순간이 왔다’라는 제목의 특집은 현대시의 음악성-리듬에 관한 연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의 자유시 개념을 한층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김춘수는 “자유시에서의 자유란 이러한 운율로부터의 자유”1)라고 지적하면서 리듬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렇듯 운율과 같은 외연적인 음향 요소로부터 해방된 자유시는 대개 내연적인 방면에 핀트를 주는 건축적인 구조를 지향하면서 형식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해 왔다. 중요한 점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을 형식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정형적인 틀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에서이지, 형식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한 편의 시가 지어지면 하나의 형식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운율에서 벗어난 현대 자유시는 개척의 재평에서 생각보다 많은 잠재적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성의 근거로 허연의 시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의 시가 가지는 특별한 음악성 때문이다. 그것은 음악의 음악성을 타진하면서 시의 음악적 효과를 강화한다. 음악의 음악성이란 곧 리듬이다. 멜로디나 하모니를 가지지 않는 음악은 있어도 리듬이 없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음악성을 타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리듬은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이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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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셰익스피어에서 젠더를 끄집어낼 때 : 2024년 무대에 오른 셰익스피어 연극과 ‘칼 든 여자들’1) 전지니 (한경국립대학교 교수,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Visiting Scholar) ‘여성혐오적’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소환하는 것 몇 차례 언론에서 보도될 만큼 올해 눈에 띌 만큼 빈번하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무대화됐다. 이 같은 흐름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2) 국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보다는 비극이 선호되는 편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사회 불안과 관련한 대중의 심리, 한동안 현장성이 강한 작품이 선호되면서 부차화되었던 ‘이야기성’의 복원, 중장년층 관객의 유입 등을 꼽았다.3)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소위 ‘성격 비극’은 주로 매체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의 연극 출연을 독려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배우 황정민이 셰익스피어의 사극 와 에 연이어 출연했고, 조승우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 공연될 예정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2025년 봄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덴젤 워싱턴과 제이크 질렌할의 가 관객과 만난다. 이 글은 2024년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연극, 그중에서도 ‘젠더’ 문제를 전경화한 국내외 작품 3편에 대해 논의한다. 물론 셰익스피어 연극의 ‘여성혐오’가 논의된 것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희비극을 가리지 않고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의 보수적 분위기와 조응한 가부장적 정서나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2000년대를 전후하여 몇 편의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4) 의 구성을 해체하여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 중심으로 재구성한 한태숙 연출의 심리극 (1998년 초연) 역시 일정 부분 원작에 대한 비판의식과 맞닿아 있다. 물론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할 때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저작권이 진작에 소멸된 만큼 창작진의 초점과 문제의식에 따라 자유로운 각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편성이 있는 문제를 다루며, 극장을 잘 찾지 않은 관객이 진입하기에 용이한 데다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그중에서도 국내 관객이 선호하는 극적 파토스를 조성하기에 적절한 비극이 빈번히 공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은 국립극장 제작 (김미란 각색·연출_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24.6.13.~16.), 국립극단 제작 (정진새 각색·부새롬 연출_명동예술극장, 2024. 7.5.~29.), 그리고 어바인 대학(UC Irvine) 뉴스완 셰익스피어 센터(New Swan Shakespeare Center_이하 뉴스완 센터)5) 제작 Measure for Measure(adapted and directed by Beth Lopes_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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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기억하는 사람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최의진 1. 기억 당신이 나의 일상에서 멀고, 당신의 고통을 내가 곁에서 함께 겪을 만큼 가깝지 않다면, 당신이 기억난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 지나면 어느덧 제삼자가 된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먼발치에서 살아왔다는 것. 잊으려 애쓴 적 없고, 오히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그 기억 곁에 항상 머물러 살지는 않았다는 것. 물론 이는 분명 망각과 구별되며, 머릿속 어딘가에 당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억함’과 닮았으므로 우리는 때로 외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는 ‘기억남’이나 ‘떠올림’을 다른 누군가 없이도 당신을 계속해서 내 안에 간직하는 ‘기억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4·3, 5·18, 4·16··· 혹은 제주, 광주, 팽목항···처럼 뭉툭한 날짜와 지명으로 적히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살아 있는 당신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기억함’이라 믿어 왔던 모든 순간은 다시 의심에 넘겨진다. 어디선가 당신의 이름을 마주치거나, 때가 되면 당신이 기억났지만, 그 이상으로 지속되지 않았던 기억의 공백들은 당신을 계속해서 기억하려는 의지가 내게 없었음을 짚고, ‘기억남’과 ‘기억함’의 사뭇 다른 무게를 증명한다. 매해 봄이 오면 세월호가 기억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을 넌지시 ‘기억함’으로 여겨 왔으나, 10년을 상실에 꿰뚫린 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살아온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기 위해 삶을 바쳐왔던 사람과 실제로 마주 앉자, 나는 당신들을 기억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기억한다 말하던 자리가 낯설고 무거워지는 것이 ‘나’1)와 당신의 끝이 되지 않도록, 문학은 ‘기억남’에서 ‘기억함’에 이르는 길을 놓는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별하지 않는 ‘기억함’을 단지 당위와 윤리로 여기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억남’이 몰고 오는 고통과 ‘기억함’이 품은 의지가 심장에 불을 켜는 삶 사이를 횡단한다. ‘기억남’은 어떻게 해야 ‘기억함’이 되는지, ‘나’가 ‘기억함’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나’에게 정말 이 길만이 유일한지. 2. 밀물과 썰물 소설의 1부를 이루는 축은 “그 도시의 학살”2)에 대한 책을 집필한 후, 그리고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아 오로지 새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제주의 중산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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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서울국제작가축제 탐방 : 쓰는 사람들 문장서포터즈 채미나 지난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진행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를 다녀왔습니다. 종로를 빙글빙글 도는 버스를 타고, 종로 6가1)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로 서국제가 열리는 장소까지 선선한 바람 맞으며 걸어갔어요. 서울국제작가축제는 국내 독자들의 문학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이 쌍방향 교류하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는데요. 올해는 이라는 주제로 축제가 열리게 되었어요. 입구서부터 서울국제작가축제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어서, 길 잃지 않고 걸음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터벅터벅 입장했답니다. 들어가자마자 날짜별, 시간별 프로그램 타임 테이블이 친절하게 적혀 있는 것이 보였어요. 언제, 몇 시에 프로그램이 열리는지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장 먼저 발걸음한 공간은 1층 미디어 전시관이었습니다. 불 꺼진 전시관에서 을 주제로 한 10분 남짓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어요. 같은 영상을 영사기를 통해 세 면의 벽에 쏘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파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영상은 한글의 자음들이 파도치듯이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나오다가, 국제작가축제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작품 속 아름다운 구절들이 천천히 페이드 인/아웃 되는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입자와 파동의 관계가 문학의 지향점과 닮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입자와 파동의 관계는 거대한 바다를 마주한 작은 나비와 같이 낯선 도전 혹은 작은 시작이 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나비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모순된 것의 공존, 낯선 도전, 나비효과 등을 아우르는 것이 어쩌면 문학의 지향점이겠죠. 문학은 지역/국가/민족/인종/젠더/세대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발하는 다양한 이슈나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예술적 가치를 담아냅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모순적 대립 항을 아우르며 관계성을 사유하게 하고, 새로운 물길을 내는 문학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체험하는 장으로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미디어 전시는 아주 탁월하다고 볼 수 있겠죠. 보는 내내 작은 언어들이 일렁이면서 아름다운 여러 구절을 만들어내는 듯했어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왜 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3층의 프로그램 전시장으로 이동했어요.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는 주제별로 프로그램이 나뉘어 있었어요.
- 관리자
-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북소리처럼 마음을 울리는 소설의 목소리 배연주 ‘책’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것이다. 고요한 독서, 사색, 나만의 정적인 시간. 반면 ‘축제’ 하면 떠오르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활력, 떠들썩함, 생기 가득한 분위기. 각각 연상되는 것만 보더라도 책과 축제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둘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때 나는 ‘책’의 이미지를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한 게 좋았고 ‘축제’의 활기는 소음으로 느껴져서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러 찾아가는 축제들이 있었다. 책과 관련된 축제였다. 합정-홍대 거리에서 진행되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파주북소리축제, 그리고 축제는 아니지만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 나는 이 세 행사를 2013년부터 다녔다. 아쉬웠는지 2013년 팸플릿을 스크랩북에 간직 중이었다 그중 다시 가보고 싶은 축제는 단연 파주북소리축제였다. 나머지 두 행사는 최근에도 다녀왔는데 파주북소리축제는 2013년에 잠깐 들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서울와우북페스티벌과 시기가 겹쳐 합정에서 파주로 넘어갔는데, 학생 때라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 해서 부스만 대강 구경하고 떠났던 기억이 있다.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올해 9월 첫째 주, 파주북소리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보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파주북소리축제는 다양한 공연, 북마켓, 북토크, 강연으로 이루어져 3일 동안 진행되었다. 가장 관람하고 싶은 공연들이 마지막 날에 있어서 나는 9월 8일 일요일에 갔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간간이 불던 2024년 9월 8일 우리 집에서 파주출판도시까지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 30분 거리인데, 이건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을 때의 조건이다. 이 날 나는 7시 30분에 처음 버스를 타서 축제 장소에 10시 54분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버스 배차가 몹시 길었다. 경기도민인 나는 배차 간격이 길기로 유명한, 분명 ‘잠시 후 도착’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경기도 버스의 악명을 잘 알고 있기에 지도 어플의 안내보다 1시간 일찍 출발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파주출판도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이 너무 쌓여서일까, 처음 축제 장소에 도착해서 나는 약간 실망했다. 활기 가득한 거리를
- 관리자
-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입자와 파동이 공존하는 세상 > : 제13회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식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입자 : 국내 독자들이 문학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이 서울을 중심으로 쌍방향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2006년부터 개최했던 글로벌 문학축제지! 파동이 : 2023년까지 총 61개국 361명의 국내외 작가를 초청했군. 입자 : 맞아. 내가 아주 재밌는 곳에 데려왔지? 파동이 :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니? 입자 : 알아. 이 두 가지 성질은 서로 모순되지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각자 고유의 형태로 공존하고 있는 거야. 파동이 : 맞아. 인간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어. 세상은 모순적인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이야기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일이지. 입자 : 응! 문학은 인종, 젠더, 세대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발하는 모순적인 대립 문제를 아우르고, 그 관계성을 사유하게 하면서 어두운 곳을 비추어 줘.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도 문학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체험하는 장으로 준비하였으니 같이 즐겨 보자! 파동이 : 귀찮게 하는군. 입자 : 두 작가는 고전 물리학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에 대한 학설을 되짚으면서 발제를 발표했어. 그들은 ‘어떤 실험 기기를 사용하는지’, ‘관찰자의 관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빛은 입자가 될 수도 있고 파동이 될 수 있다는 학설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세계도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강연 주제를 밝혔지. 이 발제문에 대해 파동이는 어떻게 생각해? 파동이 :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좌파와 우파, 찬성과 반대 등 사회는 온통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가치 판단 때문에 우리는 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 갇혀 사는 것 같아. 입자 : 맞아. 나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니까. 세상의 모든 논의는 주관적인 영역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파동이 : 정보라 작가가 말하기를, 인간이 서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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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나, 너의 동료가 될게! - ‘너, 내 동료가 돼라’ 코너 현장 방문 및 연출 유계영 시인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이유빈 2005년 시작된 문학 라디오 프로그램인 문학광장 녹음 현장에 직접 방문했습니다. 동인, 포럼 등 작가들 간의 교류를 기반으로 전개된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는 코너인 1부 녹음이 한창이었는데요, 작은 녹음 부스를 가득 채우는 우다영 소설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 같은 대목에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릴 때 서로 마주치던 눈동자, 웃음소리에 맞춰 박수치는 손바닥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너, 내 동료가 돼라’라는 코너명처럼, 현장의 즐거움을 직접 느낀 이후 저는 기꺼이 의 동료가 되고 싶어졌어요. 연출 유계영 시인과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로 구성된 는 연출부터 진행, 구성작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직 작가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문학 라디오 프로그램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연출을 담당하는 유계영 작가와 ‘문장의소리 연출가’로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시 쓰는 유계영입니다.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썼고요. 782회부터 문장의소리 연출을 맡고 있어요. 가장 먼저 를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알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해서 대학 시절부터 현역 작가들의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특강이나 합평회에 초청된 작가들을 만나볼 기회도 많았죠. 특강에 와주셨던 분 중 조연호 시인을 참 좋아했는데요. 시인이 연출을 맡고 계시다는 사실을 통해 처음 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조연호 시인이 진행자는 아니었지만 음악 선곡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시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사유와 음악 취향 같은 것들을 은밀히 엿보는 느낌으로 방송을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연출을 담당하시던 조연호 시인 덕분에 를 알게 되셨는데, 이제는 작가님께서 연출을 담당하시는 거네요. 신기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연출을 담당하시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그냥 섭외 전화를 받게 됐어요.(웃음) 제 작품을 제외한 다른 것에 대해 ‘연출’이라는 역할을 맡아본 경험이 없어서 걱정이었죠. 연출이 뭘까요?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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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계절 맞이, 어떻게들 하고 계세요? - , 와 함께 여름을 마무리하며 문장서포터즈 주은 한 계절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무렵에는 각자 나름대로 분주해진다. 새 계절을 맞아 새 옷을 마련하고, 서랍 속에 넣어 둔 옷을 꺼내어 거는 동시에 잘 입던 옷들은 다음 연도를 기약하며 개켜 넣는다. 침구를 계절에 맞는 얇거나 두꺼운 것으로 바꾸기도 하고,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철에 맞는 재료로 꾸린 시즌 메뉴를 하나둘 메뉴판에 올린다. 작고 사소한 일상의 변화를 통해 천천히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고 준비하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는 과정이다. 나의 이번 여름 맞이는 특별히 두 권의 문예지가 함께했다. 한여름의 와 와 는 각각 은행나무와 민음사에서 출간하는 격월간 문학잡지다. 올해에는 7월에 출간된 55호와 8월에 출간된 49호와 함께 여름의 절정과 끝을 보내게 되었다. 아예 계절마다 출간되는 계간지의 여름호를 고를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이 두 권의 격월간지를 고른 것은 사실 내가 문예지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읽는 것 좋아하세요? 문학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는 늘 큰 고민 없이 그렇다고 대답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고 난 후에는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곤 했다. 내 머릿속에서 좋아하는 만큼 내 일상과 가까운지는 스스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리에서 진득하게 책을 읽어 나가는 시간이 적어진 만큼 책이 가진 힘에 쭉 휩쓸려 몰입하는 경험을 하기 어려워졌다. 흐름이 끊기는 횟수가 늘수록 다시 책장 열기도 쉽지 않은 탓에 요즘에는 한 달에 제대로 읽는 책이 쉽게 손에 꼽힌다. 게다가 나는 편독을 꽤 하는 편이고, 지금껏 문예지를 접할 기회가 있어도 뒤쪽에 실린 단편소설이나 시 면을 훑어보는 게 다였던 터라 진득하게 읽어 볼 첫 문예지는 볼륨이 크지 않고, 너무 무겁지 않은 산뜻한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 잡지의 형태를 표방하고 있는 신생 문예지 와 를 선택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 악스트 는 2015년 7월에 창간된 은행나무의 격월간 문학잡지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문장에서 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Art와 text, 즉 예술과 텍스트를 아우른다는 의미와 함께 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라는 의미를 담았다. 55호의 주제는 ‘선 긋기’다. 커버 사진은 콘셉트에 맞는 홍기웅 작가의 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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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젊은 작가의 방 한 칸 : 안미옥 시인, 고민실 소설가 ― EP2. 문학창작지원사업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 본 원고는 ‘2024 문학창작실이용지원사업’과 ‘소설가의 방(호텔프린스)’을 이용하는 안미옥 시인, 고민실 소설가와 함께 ‘젊은 작가의 방 한 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글입니다. ― ※ 전 에피소드가 궁금한 분은 큐알코드 또는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문장의 방 한 칸 ― EP1. 창작촌 탐방기 편 : https://url.kr/bq9mfx 문똑이들 오랜만이야! 예버덩문학의집에 입주한 후, 건강한 기운을 받아 문장 웹진에서 등단했어. 문장이는 어느덧 청년 신인 작가가 되었지. 생업에 종사하면서 창작 활동을 겸업하는 젊은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고민이지. 일상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공간,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공간, 창작실 입주가 어려운 작가들에게 출퇴근이 가능한 집필 공간이 필요해. 그래서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새롭게 선보인 ‘문학창작실이용지원사업’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문학창작실이용지원사업은 문학 인구 절반이 넘는 작가가 직업과 창작 활동을 겸업한다는 것을 고려해 현업에 종사하면서도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가에게 집필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야. 서울·경기 및 광역지자체에 작가들이 집필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 작가들이 좋은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야.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누리집을 살펴봐. 난 당장 찾아가 봐야 하니까! 서울 은평구에 있는 문학창작실이야.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공유 라운지지. 1. 안미옥 작가님 공유오피스텔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문장이를 만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안미옥 작가님 :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문장이를 기다리며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하는 산문 원고를 쓰고 있었어요. 2. 2024년 상반기가 끝났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근황과 함께 하반기 소식도 귀띔해 주세요. 안미옥 작가님 : 상반기에는 첫 산문집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출간 작업을 하고, 4월에 책이 나왔어요. 책이 나온 이후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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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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