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 작성일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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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문장웹진》의 커버스토리는 문학을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특별한 시도입니다. 편집위원이 선정한 작품을 일러스트레이터가 시각화하며, 문학의 감각을 새로운 형태로 확장합니다. 문학과 그림의 만남이 만들어낼 다층적 감상을 기대합니다.
피츠
피츠 작가 한마디
안지가 언젠가 '해괴한 디저트'를 찾을 수 있길
문장웹진 2월호 살펴보기
문화와 국가의 가장자리에서 ―검열과 복종, 혹은 비평의 장소 최진석 1. 표류하는 현재, 폭력의 가시 2025년 1월 19일 현재, 한국 사회는 격랑 위를 떠다니고 있다. ‘선진국’이자 ‘문화국가’라는 호명을 받아들인 지 수년 만에 벌어진 이변이 아닐 수 없다. 계엄과 탄핵, 그에 대한 헌법적 판단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은 그 누구도 미래를 예단하기 힘든 불확정의 시간만이 흐르는 중이다. ‘현재’라는 좌표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에 놓일지 짐작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문학과 문화, 비평에 관한 이야기는 짐짓 사치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든, 지금-여기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파도의 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예측할 수 없어도,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후에야 도착에 대한 기대나 불만, 감동이나 좌절, 혹은 두렵지만 새로운 출발도 가능할 테니까. 지금의 사태와 문학장(場)을 연관 지어 말한다면, 아무래도 2023년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학과 출판 시장의 현황을 널리 알리는 국제적 행사의 홍보대사로 소설가 오정희가 위촉된 것에 대해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와 블랙리스트이후(준) 등이 항의 성명을 발표했고, 개막일 행사장에서는 송경동 시인 등이 반대 의사를 밝히다가 강제로 끌려 나갔던 사건이 그것이다.1) 알다시피 오정희 소설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깊이 연루된 문인이었고, 그에 대한 분명한 사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다시금 한국문학과 출판을 대표하는 행사의 얼굴을 맡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2) 블랙리스트, 즉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의 불길한 기운이 다시 한국문학을 뒤덮으리라는 불안과 공포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돌아보면 최근 2년 사이에 문화예술 창작에 가해진 검열은 수없이 많다. 2022년 5월 13일 광주광역시의 ‘호명(呼名) 5‧18거리미술전’에서 보조금 지원사업의 취지를 빌미로 후원이 취소된 것이라든지, 같은 해 9월 26일 부마민주항쟁 기념재단이 기획한 행사에서 가수 이랑의 노래가 배제된 것, 그로부터 며칠 후인 10월 4일 한국만화진흥원이 주최한 ‘전국 학생 만화공모전’에서 〈윤석열차〉의 의도를 문제 삼아 엄중 경고가 내려진 것 등이 그 출발점이다. 2023년에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판하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거나 지원 배제당했고, 2024년에는 도서관에 비치된 성평등·성교육·페미니즘 도서 2,528권 폐기되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차세대 미래 관객 육성 사업에서는 정치적 이념 문제가 조건으로 내걸리기도 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떠올려도, 최근의 시점까지 검열이 작동했음을 확인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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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1
계속해서 아픔에 대해 말하는 어떤 일상적인 방식 김지윤 1. 치유라는 폭력 “모두가 당신에게 친절하게 대할 거야 당신이 아프면··· 만일 당신이 낫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병에 걸린 것만 아니라면.” 다니엘라 올셰프스카의 시 「thirteenz」의 한 구절이다. 타인의 병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쉽게 던지는 말은 “빠른 쾌유를 빕니다”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은 가능한 한 빨리 치유되어야 하는 것,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병은 이상 징후이며,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상성과 수치심의 구조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을 수 없거나, 낫는 데 매우 오래 걸리는 경우라면 어떨까? 아픈 것이, 불완전한 것이 그냥 삶의 일부라면? 『눈부시게 불완전한』에서 장애 및 트랜스 활동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치유’라는 말에 숨어 있는 정상성에 대한 강박에 도전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눈부신 불완전함’도 충분히 가능하다. 불완전한 상태나 질병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 누군가의 삶이라면 ‘치유’에 대한 기대를 들이미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 난치병이나 낫지 않는 병은 ‘치유’를 전제하는 기존의 ‘정상성’ 서사를 거부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고통과 한계 앞에서, 완전성과 진보를 추구하는 사회적 이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극복이라뇨, 받아들인 거죠.” 최은미 소설 『마주』에서 비활동성 결핵 판정을 받고 코로나 상황에 결핵 치료를 받는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극복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질병이 낫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은 삶을 선형적 발전 과정이 아니라 고통과 불완전성을 동반하는 상태로 바라보게 하며 삶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청한다. 최근 ‘치유’ 서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이 대두되고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질병을 인식하기보다는 상처와 고통 자체를 존중하는 접근법이 강조되고 있다. 고통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존재를 깊이 사유하게 하는 계기로 인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질병은 생존뿐 아니라 공감과 공존의 문제와 연결되며 인간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편견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다. 병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여겨지지만, 사실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구조,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하므로 사실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성찰은 새로운 윤리적 책임과 공감의 계기를 제공하며 질병에 부과되곤 하는 낙인과 배제의 문제를 재고하게 한다. 김은정의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후마니타스, 2022)은 한국의 역사, 정책, 제도, 문화 텍스트 등이 장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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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1
○○지역 밖에서 삶 김준현 *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읍내에 있는 지역특산물 홍보관에 대해 한 지역신문의 기사를 접했다. 2022년 12월 준공된 이 홍보관을 두고 “24억 원짜리” “공중화장실로 전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기사의 제목은 다소 자극적일지언정, 내가 보고 겪은 그 건물에 대한 감상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이 홍보관은 완공이 된 이후에도 2년이 넘도록 개관을 하지 못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홍보관 전망대가 바로 맞은편 아파트의 사생활을 침해할 뿐 아니라 건물의 붉은색이 반사되어 민원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2025년 1월 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홍보관 건물은 여전히 주민들에게 별다른 효용이 없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저출산의 현실에서도 이 읍에는 꽤 많은 영유아들이 보인다. 주거 지구치고는 아파트 가격대가 인근 광역시의 학군이 발달해 있는 도심에 비하면 낮게 형성된 편이라 신혼부부 인구와 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도서관이 없다. 시(市)의 경계를 넘어 인근 광역시의 구립 도서관으로 가거나,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이십 분 정도는 가야 시립 도서관에 갈 수 있다. 몇 년간 무용지물이었던 저 홍보관이 지역특산물을 홍보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도서관으로 쓰였을 때 이 지역에 더 많은 미래를, 어린이들의 삶에 조금 더 나은 뭔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나이브한 생각이 된다. 행정이 있고 적법한 절차가 있고 최초의 목적이 있어서 준공되었을 저 건물을, 한 개인의 마음으로 바꿀 수 있을까. 최근 일련의 정치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순진한 것임을 보여주는 현실. 이해 바깥의 것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 단적이고 지엽적인 사례 하나를 가져오긴 했으나, 지방의 현실이 고답적인 구조나 형식의 쇄신을 도모하는 것-변화나 혁신을 꿈꾸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편리한 세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구가 줄어드는 소규모의 도시는 청년들의 정착을 위해 지원 사업을 펼친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지원 사업의 대상이 애초부터 해당 지역에 거주해 왔던 청년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청년들인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자체는 예술가 레지던스나 청년 창업 자금의 지원 등으로 손실되는 청년 인구를 외부로부터 충당하고 보완하려고 한다. 사람이 아니라 인적 자원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적 자원으로서만 유의미한 사람들이 과연 소속감을 느끼며 지방에 계속 머물지는 미지수다. “저런 놈팡이 같은 놈들이 나랏돈을 다 빼먹는다니까.” “멀끔하게들 생겼는데 어딜 봐서 놈팡이고.” “예술가라잖아. 맨날 놀고먹으면서 예술가랍시고 나랏돈 타 먹는 거다. 먼저 먹
- 문장지기
- 2025-02-01
신년 기획좌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 사이에 총 3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책장 업고 튀어 - 2차 :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 3차 :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5년 신년 기획좌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ㅇ 일 시 : 2024년 11월 29일(금) 11:00~12:30 ㅇ 장 소 :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참여자 - 사회자 :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 참여자 : 강백수(시인), 구현우(시인), 성현아(문학평론가), 송지현(소설가) 〈개회〉 이병철: 반갑습니다. 질문이 좀 추상적인데, 개떡같이 여쭤도 찰떡같이 대답해 주시는 분들이어서 큰 걱정은 안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좌담 테마를 ‘연재 작가의 기쁨과 애환’이라고 지어 보았는데요. 작가들 중 연재하는 분이 굉장히 많은데, 연재를 한 번도 안 해 본 분도 많더라고요. 어떻게 해서 연재라는 시장에 진입 가능한가, 연재라는 글쓰기가 창작과의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분들이 꽤 많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문학적 글쓰기와 연재 지면을 염두에 둔 글쓰기가 결이 다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해 보았습니다. 다들 연재를 해 보셨거나, 지금 하고 계신 분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 그리고 현재 혹은 지금까지 어떤 연재를 해 왔고,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지현: 저는 소설 쓰는 송지현이고요. 지금까지 《한국일보》에 매달 책 리뷰를 쓰고 있어요. 이번 주도 한 달이 돌아와서 써야 하는 주입니다. 강백수: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강백수입니다. 연재는 몇 번 해 보았는데요. 지금 현재는 《경북매일》이라는 매체에 사회와 문화에 대해 이병철 시인과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쓰고 있고요. 이전에는 《한겨레21》에 음식과 관련한 글을 연재한 적 있고요. 《웨딩뉴스》라는 매체에서 연애 관련 연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성현아: 안녕하세요. 저는 평론 쓰는 성현아입니다. 저는 《경향신문》에서 매달 이라는 연재를 하고 있고요. 이전에는 《조선일보》에서 코너에 짧게 연재했었습니다. 구현우: 저는 시 쓰는 구현우라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연재라고 할 만한 것은 《아이스크림에듀》라는 곳에서 청소년의 글쓰기를 도와주는 칼럼을 격주로 연재했던 것인데요. 그게 4~5년 전 일이라 조금 오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병철: 저는 《경북매일》에서 2015년부터 칼럼을 써 왔는데요. 2년간 매주 썼었고, 《경향신문》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 적이 있고요. 《조선일보》에 세계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경북매일》에서 강백수 시인과 격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또《머니투데이》에 월 1회 칼럼을 쓰고 있고, 《매일경제》에 이번 하
- 문장지기
- 2025-02-01
빙점을 만지다 강보라 직선으로 뻗은 도로 양편으로 수확을 막 끝낸 포도밭 풍경이 길게 이어졌다. 열매는 없으나 여전히 무성한 포도나무들이 바람결에 가지를 흔들며 잎에 묻은 햇살을 털어 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그 아래 연필로 그은 밑줄처럼 도드라진 도로의 색 대비가 너무 강렬해서 현기증이 났다. 속도를 높이자, 열린 창틈으로 캘리포니아의 온기가 밴 가을바람이 스몄다. 알맞게 식은 목욕물처럼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지금 이 바람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저 단조로운 풍경에 잠겨 익사했을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자 가라앉았던 마음에 가벼운 상승감이 일었다. 같은 풍경이 지루하게 반복되어 졸음에 빠진 운전자들이 자주 사고를 일으킨다는 29번 고속도로에서 그처럼 시적인 문장으로 생각을 간추린 스스로가 뿌듯했다. ‘익사’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있잖아. 나 여기서 사고 낸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으응, 신음한 양미가 잠결에 몸을 뒤치며 웅얼거렸다. “···뭔 마음.” “경치가 너무 단조롭잖아.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멎을 정도로. 이대로 계속 달리면 저 풍경 속에 익사할 것 같지 않아?” “···오빠 취한 거 아니지.” 조수석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킨 양미가 “춥다, 최 기사 창문 좀.”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를 향해 돌아누운 양미의 입술 안쪽에 검붉게 말라붙은 와인 얼룩이 보였다. 취해? 내가? 어이없어 내쉰 한숨에 눈앞의 앞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렌터카로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세 곳을 연이어 방문한 오늘, 취해 가는 양미 옆에서 묵묵히 최 기사의 본분을 다한 사람은 나였다. 내가 양미의 가르침대로 ‘오로로로’와 ‘퉤’를 반복하며 맥주잔만 한 타구통을 가득 채우는 동안 양미는 그 많은 시음용 와인을 뱉지도 않고 족족 받아 마셨다. 입술을 조붓하게 오므리고, 입에 머금은 와인을 혀끝으로 ‘오로로로’ 굴리며 그간 부지런히 익힌 지식을 뽐냈다. 2019년에는 작황이 좋았던 모양이에요. 2020년산 샤르도네랑 비교하니 미네랄의 질감이 확실히 다르네요. 와인 메이커의 선택이 달라서만은 아니겠고, 역시 수확 직전의 기후의 차이가 가장 크겠죠? 의례적인 미소로 와인을 따라 주던 에듀케이터들이 양미의 남다른 질문에 “굿 퀘스천”, “이그젝틀리” 감탄하며 이전보다 한층 깊이 있는 설명을 이어 갔다. 양미의 열정에 감동해, 시음 프로그램에 없는 귀한 와인을 서비스로 내어준 에듀케이터도 있었다. 뭐 한편으로 신기하기는 했다. 에듀케이터가 와인에서 흙냄새가 난다고 하면 내 혀끝에서도 두엄처럼 비옥한 땅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양미가 정향과 육두구 향이 난다고 하면 정말로 와인에서 정향과 육두
- 문장지기
- 2025-02-01
관종들 김혜진 정해는 남편 영기에게 가져다줄 전복죽을 포장해 오는 길에 그 애를 봤다. 추운 날이었다. 한겨울은 아니지만 제법 겨울이라고 할 만한 공기가 아파트 단지 내의 풍경을 빠르게 바꿔 놓는 중이었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는 여름내 노인들이 점거하다시피 애용하던 팔각 정자에 누군가 두고 간 인형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찌그러진 음료 캔, 지저분한 돗자리, 마른 낙엽 같은 것들과 나란히 놓인 아이의 모습이 이상한 방식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건 날씨에 비해 얇은 아이의 옷차림 탓인지도, 어쩐지 울적해 보이는 표정 탓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건 정해의 성격 탓이 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을,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해는 아이에게 다가갔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 뭐 하니, 여기서? 아이의 자그마한 코가 빨갰다. 동생 기다려요. 동생이 어디 있는데? 집에요. 집에? 그럼 집에 있지 왜 나와서 기다리니?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을 그녀는 알아보았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단속하듯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이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어렸다. 그건 그녀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완강하게 입을 다문 아이를 간신히 관리사무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전복죽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정해는 냄비에 죽을 데우며 (남편 영기는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 아이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냄비를 태울 뻔했다. 애가 혼자 정자에 있었다고? 이 날씨에? 며칠 전, 대장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영기는 숟가락으로 죽을 맥없이 휘젓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평생 설비업자로 일한 그는 재주에 비해 늘 아쉬운 대우를 받았지만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정해는 바로 그 점(소박함이라고 해야 할지, 아둔함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이 그의 삶을 고만고만하게 만들었다고, 더 높이 도약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여겼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뭔가를 수리하고 복구하고 바로잡는 것에서 그가 큰 희열을 느낀다는 걸 알았으니까.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가 그런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맞다. 그에겐 뭐든 고칠 수 있다는 자신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은 그에게선 이제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해는 그가 잃어 가고 있는 것이 다만 자신감 하나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정해는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날은 저물어 있었다. 정해는 아이가 입고 있던 얇은 바지와 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 구멍이 숭숭 뚫린 슬리퍼 같은 것들을 떠올렸고 미안함을 느꼈다. 아이를 떠넘기듯 관리사무소에 맡기고 돌아올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뭔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들어서였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봐. 누가 와서 애를 데려갔는지. 영기가 재촉했고 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곧바로 연락하지
- 문장지기
- 2025-02-01
쌍두몽(雙頭夢) 구병모 굴속에 두고 온 겨울잠이 나를 엄습한다. 한순간 새의 노랫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채는데, 그것이 숲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건지 내 몸속에서 흘러나온 건지 알 길이 없다. 바람과 모래와 나무 사이에서 닳아 가는 의식이 육(肉)의 허물을 벗겨 낸다. 소리만이 텅 빈 몸속에서 진동한다. 한 마리의 새는 광막한 하늘에서 탈각된 가피(痂皮)일 뿐이다. 정처 없던 사고는 짓이겨져 새의 몸을 살찌우고 그 날개 아래 영원히 유폐된다. 나는 내 존재에 그어진 선명한 취소선 두어 줄을 느낄 수 있다. * 시간의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살갗마다 앉은 흉터 아래를 탐침하고자 하는 이들이 기억 집담회에 모인다. 이는 기억의 회의라고도 하고, 기억 세미나 혹은 기억의 제의라고도 불린다. 그들은 기억이 열리는 나무 밑에 둘러앉아 나무 열매를 따서 나눠 먹고—그 씨앗은 다시 땅속에 묻는다, 그것이 무엇으로 열리든지, 그대로 흙의 일부가 되더라도—손을 잡고 앉아 기도를 올리는 것 같은 몸짓을 유지한 채 서로의 이야기를 듣거나 말하는데, 이는 체온을 전달하기 위한 행위로, 축축한 땀이 차오르는 타인의 손바닥을 신경 쓰는 이는 참석이 불가하다.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혹은 영원히 떠나보내기 위한. 어쩌면 이미 휘발되어 떠나간 지 오래여서 창궐하는 유령처럼 사방을 배회하며 약탈할 몸을 찾는 기억을, 원래의 소유자에게로 다시 데려오기 위한. 그러므로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단순 건망증이 있는 이들, 빈지 워치 시대의 보편적인 디지털 중독자들, 인지증 진단을 받은 이들. 최초의 기억 집담회가 자생적으로 싹텄을 때는 인지증 환자와 그 보호자들을 위한 나눔과 위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약간의 포즈, 실제로 기억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행위들. 누군가는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암송하고 (틀리거나 일부 구절을 건너뛰어도 좋다), 누군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영화 속의 인상적인 한 장면을 묘사하고, 누군가는 40년 전 자기가 입었다던 삭기 일보 직전의 배냇저고리를 공개하면서 여밈 부분에 묻은 얼룩의 기원을 상상하여 들려준다. 상상은 기억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까. 좌우로 기우뚱하는 고개들. 기억은 자신의 해석에 따라 변형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상상과 크게 다른 범주라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간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기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라면, 상상은 웬만큼 도움이 되리라고, 사람들은 수긍한다. 처음 문턱을 넘을 때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흔히 있는 최면 센터일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면 마음 다스림을 빌미로 삼은 장삿속. 유쾌한 기억,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 잊고 싶은 기억, 왜곡된 기억 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번드러운 말로 시선을 끌고 기억전시회라는 것을 열어서 그림과 소조(塑造)와 글로 기억 구조물이라는 것을 세워다가 춤, 노래, 연주, 꽃 무엇으
- 문장지기
- 2025-02-01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김인숙 그즈음 유자는 자주 암벽 공원을 찾았다. 동네에 그런 곳이 있었다. 넓은 공원 한 곳에 높은 암벽을 세우고, 예쁜 색깔의 조약돌 같은 돌들을 색색이 박아 놓았다. 사람들이 그 돌을 손으로 잡고 발로 짚으며 올라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몇 달 가까이 그 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즈음에는 거의 매일 공원을 산책했음에도 암벽은 늘 아무 방해 없이, 아무 매달리는 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 멈춰 서서 고개를 쳐들어 꼭대기를 바라보는 사람도 대체로는 그녀뿐이었다.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안전 요원 없이 등반을 금지한다는. 아마도 특정한 날에만 운영을 하는 시설인 것 같았다. 그녀가 그곳을 산책하는 시간은 그 특정한 때의 밖이거나. 아니면 그녀의 시간이 특정했을지도. 그녀는 ‘특정’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그즈음에는 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험한 말을 많이 듣게 된 탓일 수도 있었고, 그 말들을 그릇 씻듯이 좀 씻어 버리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암벽 접근을 막는 펜스 바깥에는 벤치가 있었다. 잔디밭 바깥에 있는 벤치가 아니라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평생 ‘밟지 마세요’라는 표지판만 보고 살아온 유자는 걱정 없이 잔디를 밟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그 벤치가 좋았다. 그게 실은 들어가 앉으라는 것이 아니라 조경용이라는 걸 몰랐을 때까지는 그랬다. 그 후에도 가끔씩 잔디밭 안으로 들어갔지만 전처럼 생각 없이 그곳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암벽 앞에도 벤치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암벽을 등지고 앉아 잔디밭 한가운데의 벤치를 바라보았다. 잔디를 밟을 때의 폭신하고, 미끌하고, 심지어는 바삭하기까지 한 감촉이 그리움처럼 남았는데, 그게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기억인지 금지된 것을 안 후의 느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때때로 발밑이 아찔한 것을 보면. 가끔씩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암벽 앞을 지나갔다. 개도 사람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암벽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가 그곳에 앉아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암벽 사진을 찍으려는 듯 핸드폰을 들어 올렸던 사람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다시 손을 내렸다.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는 지나치게 좋은 자리, 혹은 지나치게 나쁜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혹은 그녀가 그런 사람이거나. 그렇다고 해서 일어설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일어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딱 그곳에 앉았을 때만 들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소박하고 희미한 저항. 낯간지럽고 귀여운 의지‧‧‧. 그렇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얼마나 징그러운 사람이면, 아직도. 유자는 그 벤치에 앉아 말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생각하다 보면 타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장기 말도 생각하게 됐다. 그녀는 말을 타 본 적이 없었다. 달리는 말을 본 적은 있었다. 제주 어디 해안에서였는데, 곧 폭풍이라도 몰아칠 듯 어둑한 해변을 말 한 마리가 달려왔다. 유자는
- 문장지기
- 2025-02-01
E-1027* 김서치 바깥에 부슬비가 내린다 이곳은 미술관이고 당신과 나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다 수백 점의 그림과 사진이 걸린 회랑을 걸어온 끝에 우리는 같은 시점 앞이다 완벽히 자유로운 구조의 파사드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힘을 품고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에메랄드빛이 넘실대는 지중해의 절벽 연인과 함께 지낼 하얀 별장은 사랑의 끝과 동시에 완성되었고 건축가는 연인에게 너를 위해 지었으니 네가 가져가라고 한다 요즘 우리는 주소를 지우는 일에 익숙하다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이 하나둘씩 문을 닫아서 남은 건 음식과 커틀러리의 어렴풋한 질감과 디테일 그리고 조명에 의한 왜곡된 색감 너는 밤 10시쯤 마시는 커피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네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걸 알고 있다고 요즘도 기타를 치냐는 말에 아니 요즘은 안 친다고 낭만은 비싸고 잠은 부족해서 잘 안 되고 있다고 죽어 버린 시절을 향한 애도를 보내고 싶다 그때 갑자기 어깨에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곧 전시관 안으로 폭풍우가 들이쳤다 쏟아지는 재앙에 머리카락이 블라우스가 흥건히 번갯불 속으로 젖어 들고 네가 뭐라 말하는데 인상을 써 봐도 그게 잘 들리지는 않고 뭐라고? 뭐라고? 소리쳐도 너는 너의 말만 하고 순식간에 물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깜빡이는 샹들리에 아래로 나와 당신과 액자들이 휩쓸렸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흠뻑 젖어 얼굴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순간에 나는 헤어질 때 우리가 함께 쓰고 온 우산은 누가 가져가야 할지 생각했다 * 에일린 그레이가 그의 연인 장 바도비치와 보낼 달콤한 휴가를 꿈꾸며 남프랑스에 지은 은신처..
- 문장지기
- 2025-02-01
1LUX* 김서치 호수는 자주 얼었다 선한 사람의 유산이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여 그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고 살았다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아이를 낳았다 겨울밤 살 에는 칼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자신이 들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밝은 것을 찾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누군가는 물었다 고작 빛을 쥔다고 호수가 녹겠나요? 움츠러든 어깨들이 옹기종기 가까워지면 1럭스는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씩 수백 개의 깃발이 흔들리고 광장의 지름은 점점 넓어졌다 바람 앞에 초가 꺼지면 등을 두드리는 작은 손짓 그게 누구든 사람들은 품에서 성냥갑을 꺼내 성냥 한 개비를 건네주었다 적린(赤燐)과 심지가 입을 맞추는 순간 일어나던 연쇄적인 발화 빛과 빛이 닿으면 빛을 잉태하고 빛이 빛을 낳고 빛에 빛을 보태 빛을 키우고 그렇게 자란 빛이 빛의 등을 밟고 까만 담장을 넘어 혹한의 밤을 녹일 때까지 계속해서 불어나는 입김과 번지는 열기 동력 없이도 등불은 전능하고 세상의 적정 조도는 손에 쥔 고작 1럭스라는 걸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희번하게 밝아 오는 새벽빛을 보았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덧물이 지고 호수는 녹기 시작했다 * 촛불 하나를 1m 거리에서 바라봤을 때의 밝기
- 문장지기
- 2025-02-01
그런 면들의 세계 김다연 지는 해의 이른 아침, 움직이기엔 빛의 양이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습하다. 안개의 직전이다. 주파수가 맞지 않은 의식의 끝물이다. 그러나 그건 기분일 뿐이라고, 아무도 쓰지 않는 말들의 정령들이 뭐라 속삭이는 것만 같지. 핌 없이 이울어. 우리란 너머를 넘어가라고, 너머의 너머로 가라고, 서로를 지치게 하던 지표였을지도. 그런 면으로 보면 그런 면으로만 보이는, 그런 면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말귀가 어두워진 두 발의 눈빛은 괭하다. 늘 그렇지. 이렇게라도 살아가려고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지. 숨 쉬기 위해 숨만 쉬기 위해 무엇에도 목숨을 걸지 않아서 아직 살아 있는 거라면 그냥 내뱉고 말을 따라가. 모든 걸 말에게 맡겨. 그 말이 사라진다면 그 말과 사라지게. 말의 불을 밝혀. 어떻게든 모이는 희망에 희망을 보태.
- 문장지기
- 2025-02-01
모름의 작은 해마로는 김다연 모름은 찾아갈 수 없어 거기 없다. 제 위치에 없다. 우울 속에서만 살아가는 모름의 작은 해마로는, 모든 얼굴과 사물의 이름이 낯설다. 거리를 두고 있다. 관심은 관심 밖에 있다. 슬픔을 겪을 때마다 해마는 세부를 덜어 낸다. 최근부터 지워 간다. 견뎌 낸 것이 아니라 축난 거지. 자신을 갈아 넣기만 해서 무엇도 남아나지 않은 거고. 바다에 가지 않고 바다를 본다. 손은 손의 기억으로 면을 채우려고 한다. 멈추지 않는 글자들의 행렬 속에서 어조로만 느껴지던 것. 뭔지 모를 느낌으로 뭉뚱그려지던 것. 그러나 다음 장은 파도로 온다. 머리가 부서진다. 머리에서 벗어난 해마가 바다 깊숙이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을 평면에서 펼쳐 보면 나는, 무엇도 태어나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다.
- 문장지기
- 2025-02-01
내마1) -2025년 1월 윤진화 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사람을 방금 지나친 것 같은데 그는 먼 미래의 사람 혹은 다른 과거의 사람 살점만 조심하면 계속 살 수 있어 우리를 빠져나간 사람 한때 빠져나갈 사람 말랑말랑한 몸으로 방금 우리를 지나친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크게 요동치지도 않아 바다로 가는 인파를 뒤로 떨어진 비늘들은 잠깐 반짝 잠깐 반짝 홀로 경계선에 걸친 석양을 향하여 뜯긴 꼬리로 헤엄쳐가는 사람이 아닌 사람 곧 사람이었던 사람 1) 「내마」: 『이강백 희곡전집1』(평민사, 2019. 5. 15), 129쪽부터 212쪽에 실린 희곡.
- 문장지기
- 2025-02-01
아름다운 서사 - 평범한 어느 겨울밤 윤진화 별··· 달··· 해··· 모두 하늘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도 하늘 위에 있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은 말이 없습니다. 거룩한 이야기를 고요히 품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품은 것들에게선 주름이 생깁니다. 우리는 종이 위에 새긴 주름을 문장으로 이어갑니다. 나무도 거친 주름을 덧대며 자라지 않습니까 모두가 신이 발행한 책이 됩니다. 이야기가 담긴 주름을 조심히 읽습니다. 오독하지 않으려고, 깊고 신중하게 읽습니다. 당신, 별의별 고생이 많았습니다. 당신, 초승달처럼 외롭습니다. 당신, 참 ······ 해석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떤 문장이 오가더라도 파닥거리는 책날개를 모으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몸에 새길 것입니다.
- 문장지기
- 2025-02-01
뒤끝 작렬 이위발 너는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며 ‘아름답다’라고 말했지, 뒷모습보다는 말라 가는 꽃잎이 더 성스럽다고 했지, 아니지, 아름다운 것은 한순간이지, 누군가 찰나는 이럴 때 쓴다고 했지, 아니지, 뿌리에서 태어나는 꽃들은 관심과 애정, 신뢰와 믿음이 전부라고 했지, 아니지, 시들어 가는 꽃 속엔 슬픔과 아픔, 증오와 고통도 함께 있다고 했지, 너는 그때 하필이면 판도라를 떠올렸지, 왜라는 의문을 던졌지, 답은 명쾌하게 들렸지, 상자를 열었을 때 일곱 가지 죄악이 나왔다고 했지, 늙는다는 것도 그중에 하나라고 말했지, 시든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동격이라고 했지, 비참하고 비통했지, 아니지,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희망을 마침표 전의 쉼표라고 했지,
- 문장지기
- 2025-02-01
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죽은 것이다 이위발 벌거숭이들 속에서 발에 집착하는 사람, 거친 돌을 잡거나, 때밀이를 잡거나, 제거기로 발바닥을 문지르는 사람, 지우는 사람, 깎는 사람, 허리 굽거나, 백발이거나, 주름이 깊은 사람, 발바닥을 왜 문지르는지, 왜 지우는지, 왜 깎는지 이해 불가능했던 젊은 시절, 살아온 날의 퇴적층이 발에서 갈라지고, 터지고, 벗겨져, 제거하기에 좋다는 경석, 현무암, 화산석으로 문질러 보고, 지워 보고, 깎아 봤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생기는 척추동물의 표피, 물에도 소금에도 녹지 않고, 효소에도 분해되지 않는 단백질, 발에서 분출되는 삶의 흔적, 문질러 지워야만 되는 본능의 몸부림을, “늙었다는 증거”라고 단언해버리는 아내 옆에서, 신문지 펴 놓고 발바닥에 축적된 상피를 문지르자 하얀 눈처럼 흩뿌려지는 내 뼛가루 같은,
- 문장지기
- 2025-02-01
그날 나는 ―K에게 최지인 동산에는 어린 내가 있고 바람 불고 바람 불고 맨발로 잔디밭을 뛰어다니다 벌에 쏘였다 발이 팅팅 부었다 아버지가 암실에서 빛을 건졌다 나는 자라 오래된 빛에 색을 입혔다 오빠는 나를 많이 때렸다 수돗가에서 어머니가 생선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냈다 우리 가족은 고개에서 고개로 이사 다녔다 밤이 되면 박쥐들이 날아다녔다 영국 친구들은 나를 키라고 불렀다 하루는 일회용 라이터로 친구들의 맥주병을 따 주었다 캐시가 내 입에 알약을 넣어 주었다 그때 그 섬에 남았더라면 하지만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지 우주가 잠들고 아이가 태어났다 왼쪽 가슴에 알사탕처럼 만져지는 게 있다 재수 학원에 다녔을 때였다 껄렁껄렁한 남자애 중 하나가 창문을 올려다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알고 있다 동산에는 어린 내가 있고 바람 불고 바람 불고 일단 살고 봅시다 한쪽 가슴을 전부 잘라 냈다 너희 어머니는 네 머리카락이 다 세었다고 걱정하더라 나는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는데 거울 앞에 서서 내 눈을 오래 지켜보았다 너와 많은 것을 약속한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제 너는 없다 집이 다 허물어지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재개발구역에 펜스가 쳐져 있다 가난한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가방을 등에 메고 부모를 기다린다 너는 묻는다 애들은 어쩌고 요양 병원에 가는 거야 살려고 가는 거야 솜털 하나하나 이유가 없는 게 없어 둘째를 낳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이마가 꺼진 일이 떠올랐다 이 골목 저 골목 내가 놀던 골목 초인종 누르고 도망갔던 골목 돗자리 깔고 수박 까먹던 골목 인부들이 세탁소 간판을 떼어 낸다 이 년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넓적하고 반드러운 돌을 주워 거기에 자화상을 그렸다 죽는 사람을 많이 봤다 손톱 발톱 다 빠져도 먹어야지 부질없어도 먹어야지 발가벗은 내 모습 나를 잘 모르겠어 나를 제일 모르겠어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쪽 가슴 나는 옥수수 밭길을 걸어 학교에 갈 수 있다 동산에는 어린 내가 있고 바람 불고 바람 불고 느티나무 아래서 낯선 사람이 손짓한다
- 문장지기
- 2025-02-01
회복 최지인 너는 슬프지 않다고 하는데 몇 주 전 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림프샘에 전이된 상태다 네 아버지는 이름난 연주자였다 술에 취하면 너를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 너는 가까스로 화장실에 들어가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나중에 엄마가 그러더라 지나간 일이니 용서하라고 또 그러더라 사촌에게 연락해 진단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보라고 오른쪽 눈에 대하여: 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피를 모조리 다른 사람의 것으로 수혈해야 했다 네 몸에는 모르는 사람들의 피가 흘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네가 돌봤던 아이들 한국어가 서툴렀던 이민자 2세들 한 번도 너희를 잊지 않았어 너희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네 오래된 악기는 집시의 것처럼 보통보다 조금 작고 까맣다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네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첼로를 시작한 뒤로 나는 나를 인정할 수가 없었어 졸업 연주회 마지막 여덟 마디를 남겨 두고 손이 아파지더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무대가 마지막인 줄 알았어 너는 천 년 된 은행나무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큰 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멍울이 자라는 게 느껴져 사람들이 자꾸 내 꿈을 꾼대 네가 왼쪽 눈을 꺼내 찬물에 씻는다 잠깐 깜깜해질 테지만 네가 웃는다 그래, 너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지
- 문장지기
- 2025-02-01
사라지기 산책 남수우 해진 천막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곳은 막 잠에서 깬 눈꺼풀 같을 거야 일어나 보니 모두 끝이 나 있는 빈집들이 이어진 비탈을 따라 걷다가 네가 도착하면 그곳엔 정오의 빛과 갈색 얼룩 고양이 고무 대야 뚜껑 위에 멈춰 있어 네가 뒤집어쓴 입술이 말을 그치고야 발견된 낮잠이었지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네 발아래 흩어져 있을 거야 소리 죽여 고양이를 바라보면 갈빛 옆구리가 느리게 오르내리고 이상하지, 호흡처럼 끝이 없고 영원 같은 잠시 문득 너는 입구를 찾아 두리번거릴 거야 아무도 아니기 위한 뒷걸음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해 네가 빠져나가는 그늘 네가 빠져나가는 정오의 빛 네가 빠져나가는 갈빛 옆구리 다시 돌아간다 해도 만져 볼 수 없는 잠으로부터 너는 * 어느 날 찬비를 맞으며 고양이는 깨어나고 우산이란 낱말은 그곳에선 아무도 모르게 될 거야
- 문장지기
- 2025-02-01
거울 언덕 이후 남수우 엎드려 우는 사람의 목덜미를 짚으면 거울이 묻힌 언덕 위였다 그 언덕에서 얼굴을 비춰 보다 화들짝 놀라 내려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이에 부딪쳤는지 이마에 붉은 반점이 찍혀 있고 한 쪽 눈이 따가웠다 눈동자에 남은 실금들은 검은 돌이 박힌 얼음 호수인 듯 그 틈을 비집고 산란하는 빛들이 엎드린 목덜미를 환하게 뒤덮는데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그가 엎지른 장면이 이미 그를 저만치 앞질러 가 있다
- 문장지기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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