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2026년 4월호

  • 작성일 2026-04-01

[4월호를 열며]

   저는 요즘 외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먼 곳에 있는 선생님에게 화상으로 회화 수업을 듣습니다. 수업은 대체로 우리 두 사람의 대화로 채워지는데요, 선생님은 제게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처음 썼던 시가 기억나는지, 최근에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걸어옵니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저는 오래도록 말을 고르고 버벅거리지만, 더듬더듬 꺼내놓는 그 투박한 대답들 덕분에 저 또한 꾸밈없는 제 생각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게 배움의 기쁨이겠지요?
   여러분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보는 일이 있나요?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과목을 공부할 수도 있고, 읽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책을 들고 독서 모임에 참여해볼 수도, 저처럼 오랜만에 외국어를 배워볼 수도 있겠지요. 저마다 도전하고 싶은 건 다르겠지만 서투름 속에서 반짝이며 드러나는 자신의 새로운 면모와 기쁘게 만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저희 문장웹진 4월호에서는 독자분들과 동행하는 마음으로 올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들의 시와 소설, 비평, 기획 특집 ‘작가들의 필명’ 등이 게재됩니다. 필명은 작가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문학적 태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반영하기도 하는데요. 이번 기획에서는 작가의 필명,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청해 듣고자 합니다. 저희 문장웹진의 기획은 다음 호에서도 계속되니 꾸준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 정다연 시인 외 문장웹진 편집위원 일동




2026년 4월호 <예술은 파동> ⓒ 피츠(pits)



4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예술은, 수면에 조용히 번지는 물결처럼
곁으로 잔잔히 밀려와 어느새 스며듭니다.”


문장웹진 2026년 4월호 목차

구분

작가

제목

권라율

  심상보 씨의 일

  판타지   

김남주

  기면일기

  타래의 마리

김유진

  움직임의 조각화

  무기화 수업

박은우

  너구리 게임

  셰어 하우스

성유림

  여름 방학

  혜화동

유주연

  트웜블리

  시소러스

이형초

  실명

  천성

단편소설

김은

  달과 자라

박진호

  완벽한 이야기

신종원

  끝나지 않는 카마린스카야

이서아

  콧노래를 불러줘

평론

박서양

  (연재)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

윤옥재

  비평하는 나

이융희

  ‘남성/여성 + -향’이라는 함정

기획

문장웹진 다시읽기

최예솔

  우리가 만든 유령들
― 김종옥 「유령의 집」(2014년 2월호 수록)

편집위원 기획

‘작가들의 필명’

김봄

  미완의 봄, Primave

이자켓

  옷장의 언어

허희

  스스로 고른 빛

모색

문학의 곁

김휴일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

레지던시 일기

천운영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문장웹진 디자인 개편 안내

   문장웹진이 더 나은 읽기 경험을 전하고자 디자인 개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월호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적용되며, 앞으로 문학광장 전반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번 개편은 독자 여러분께서 문학작품을 보다 편안하게 경험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만, 브라우저에 저장된 캐시 데이터로 인해 변경된 디자인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존과 동일하게 보이신다면, 이용하시는 기기의 캐시 데이터를 삭제한 후 다시 접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웹진은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고 경험하는 문학의 자리를 만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장웹진 4월호 살펴보기

천성

천성 이형초 바닥에 토를 했는데 입속에서 당신이 쏟아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당신을 얼른 비닐봉지에 담는다 당신은 맑은 눈동자를 가졌고 명랑하게 울고 미지근한 손발을 가졌다 그러니 어서 감춰야 해 속이 안 보이는 사람, 말을 못 꺼내는 사람, 꽉 막힌 사람 그게 나고 태몽은 무덤 속에서 뱀이 흙을 뚫고 기어 나오는 흉몽이었다 마음속에 차고 긴 관이 있어서 그곳에 언제든 나를 숨길 수 있고 비 내리는 날이면 축축한 바닥에서 당신을 몰래 낳고, 비닐을 꽉 묶는다 당신은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어서 바닥을 쉽게 물들일 것 같다 젖고 아픈 길바닥으로 솔방울이 떨어지는 풍경 소나무는 죽어갈 때 가지 끝에 솔방울을 수없이 매달고 나는 얼마나 많은 당신을 만들었을까 태어났다, 라는 말은 참을 수 없다는 것 사방으로 솔방울이 터진다 어둠 속에서 새겨진 잇자국, 허벅지에 닿는 온기, 봉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든 도착할 곳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편의 남자는 봉지 속의 당신을 꺼내 개에게 던진다

  • 이형초
  • 2026-04-01
실명

실명 이형초 이 가상안경을 벗으면 방금 본 장면은 신속하게 흩어질 수 있다 호숫가에서 아이가 허우적거리고 작은 배에 탄 여자가 아이를 지나치고 있었다 여자는 방관하고 새들은 사라지고 나의 배도 아이에게 가까워지는 중이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밀도 있게 짜인 숲의 구조와 자연에 속하지 않은 물결 소리와 기계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이는 죽어 간다 안경 너머 전시장엔 사람들이 입을 살짝 벌린 채 저것 좀 봐··· 벽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고 호숫가의 영상은 작은 유리알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어서 이러다 우리는 몽땅 깨질 수 있겠다는 생각 아이의 영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에 대해 말하기를 멈출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안경알처럼 정교해서 두 눈을 가려도 너무 멀리 바라보게 되고 우리는 눈을 자주 잃어버려서 몸도 마음도 어두워진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헤드셋에서 누군가 속삭인다 옆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없다 눈먼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오디오와 함께 작은 배가 거칠게 흔들린다 호수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몸을 숙인다 진짜 같았어?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흠뻑 젖을 것 같은 안경을 벗은 사람들이 유리문을 활짝 열고 비스듬하게 흩어지는 빛 속으로 화면이 꺼진다 아이가 물밑으로 가라앉고 여자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때 내가 손을 뻗고 있던 곳은 환하게 열린 문틈 모두가 서로를 비껴가며 인도 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 이형초
  • 2026-04-01
시소러스

시소러스 thésaurus 유주연 * essai 인간적 humain 처음 기도함 재차 알아차림 유년 존재를 기울임 silence 기억과 빛 물 꼴 forme

  • 유주연
  • 2026-04-01
트웜블리

트웜블리 Twombly 유주연 아폴— 아폴로 아폴룬 분필은 손가락에 색을 입힌다 벽, 하얗고 오래된 다른 글씨의 소금기가 남아 있다 한 번 지웠다 재차 쓴다: APOLLO 아폴룬 아폴로 아폴론 (백색은 한 번에 생겨나지 않는다) 손끝에 모인 가루들이 무릎 위로 떨어져 작은 해변처럼 번진다 —vergil—vergi— Vergilius? 벨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 (입 안에서 둥글게 도는 l과 u) 읽기 대신 긁기 기억 대신 눌러쓰기 잊혀진 오자들을 따라— VENUS 위너스 비너스 u와 v가 바뀌는 동안 갈라진 틈에 걸렸다 풀려나는 빛 지워보기 UENVS (지운 자리에서만 냄새가 난다: 석고, 땀, 아주 오래된 물) 아폴로 아폴— 아— … 손을 펴 남은 가루를 한쪽으로 민다 방향만이 남는다 읽히지 않은 l, o 천천히 가라앉는다

  • 유주연
  • 2026-04-01
혜화동

혜화동 성유림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우리가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카페 통유리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건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니에게 우리가 점점 더 평범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창밖에선 쨍한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카페의 사방이 울려 퍼진다 언니는 유리창에 이마를 좀 더 가까이 붙였다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소리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언니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녹아 가는 얼음을 휘젓는다 고개를 들 때 눈을 감는 사람은 슬픔이 많은 사람이라던데 언니는 감은 눈을 뜨질 않고 함께 마주 본 여름은 어느 방향으로도 덥고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 성유림
  • 2026-04-01
여름 방학

여름 방학 성유림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가 개구리알을 주워 왔던 날 기억나? 미끈하고 축축한 알들을 양손에 가득 담고 개굴개굴 울음에 발맞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는 눈알을 손에 쥐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 높아진 수면 위로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마을을 빨갛게 물들이는 경보음 옆 동네에 사는 미진 누나가 물에 빠졌대 손을 뻗고 있는 물속의 검은 풀을 보았다 투명한 것들은 매일 관찰해 봐도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다만 그것들은 미동도 없이 호흡하고 있어 물속에 손을 넣으면 손가락 틈으로 파고드는 눈알들 수십 개의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것들이 영원히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까만 머리를 타고 까만 꼬리를 타고 기어코 흐르는 눈동자에 가까워지게 하고 다시 수십 개의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손바닥은 미끄러지는 촉감을 기억하고 있다 개구리알 같은 빗방울들이 창가에 다닥다닥 붙었다 터지는 장마 개굴개굴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울려 퍼진다

  • 성유림
  • 2026-04-01
셰어 하우스

셰어 하우스 박은우 방금 사라진 발자취는 내 것이 아니다. 우린 결핍을 구독하는 유료 회원들이다. 그림자는 3인칭이다. 산다, 살았다, 살 것이다. 오늘의 집은 대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떴다방과 그라피티, 플리마켓, 반제품 조립은 해체가 답이다. 괼 수 있다면 등짝도 식탁이 된다. 국물이 샌 밀키트와 빅이슈, 중앙 정원에 일회용 컵을 남겨 둔 사람들. 창 너머 받침이 높은 찻잔과 석고 방향제가 보인다. 구경하는 집이 아니다. 삽화처럼 걸린 커튼을 당기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때로는 향기가 도면입니다, 입주자들은 구조에 서툴고. 락스 냄새를 지우려고 목이 긴 꽃대에 커피를 쏟는 사람들. 칸칸이 밴 잔향을 되짚으며 머스크나 우디 때로 로즈라고 불러 주는 사람들. 서로의 체취를 생활 반응이라 믿는다. 각자의 샴푸 향이 하나의 배수구를 타고 흐른다. 가장 또렷한 대답은 문고리를 채우는 소리. 똑같은 분배기와 계량기에서 표정을 지목했을 때 의사가 마리모를 키워 보라고 권했다. 물컵 하나면 족하고 무엇보다 냄새가 없습니다. 나의 마리. 초록 살갗이 얼굴이니? 마리모들은 컵 속에 엉겨 이백 년이나 살 수 있다. 각방 없이. 공용 화장실 없이. 살비늘 없이. 복도에서 자두 향이 샌다. 아무도 문 열지 않는다. 소비기한이 다른 건 공평한 질서다. 내가 의심하는 건 밀봉된 여름이 아니다. 물컵 하나면 족하고 무엇보다 냄새가 없습니다. 얼굴이 깨질까 봐 반려 돌을 들인다.

  • 박은우
  • 2026-04-01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천운영 1. 여행과 나날 여행 짐 꾸리는 데는 꽤 능숙하다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고심을 많이 했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오가는 ‘여행과 나날’을 위해 필요한 것들.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하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사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것만 추려서. 목표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였는데, 추울까 불편할까 모자랄까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니, 24인치 캐리어에 백팩까지 꽉 채우고 말았다. 그런데 또 막상 가서 풀어 보니 텀블러는 두 개나 챙겼으면서 꼭 필요한 약주머니는 통째로 두고 왔다. 비상약이야 그렇다 치고 일정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짐을 풀다 말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아갔다. 딱 보기에도 연식이 오래된 병원이었다. 새로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단서로 약만 처방받으면 될 일이니 상관없었다. 나이 든 간호사와 더 나이 든 대기실의 환자들. 대화로 짐작건대 서로의 사정까지 다 알고 지내는 단골들만의 병원인 듯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꽤 지났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변명하듯 말했다. 치매야 치매,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약 내놓으래. 소화 안 되고 허리 쑤시고. 약을 그렇게 드시니 소화가 안 되지. 오늘은 아들이 돈 훔쳐 갔다고 하소연. 원장님은 그걸 또 다 들어줘. 힘들게 왜 그걸 다 받아 주고 있냐고. 환자의 비밀인지 간호사의 하소연인지. 정감 있다 해야 할지 대책 없다 해야 할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은, 데스크 간호가 왜 그리 세세히 문진을 했는지 알겠는 의사의 상태. 허리가 기역자로 꺾여 머리가 거의 책상에 닿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도 목을 못 가누는 어린애마냥 흔들흔들 매가리가 없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보였다. 의사가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해? 불편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다 들어줄게. 요즘 뭐 힘들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지혈증약을 먹어야만 되는 몸 상태를 말해야 하나. 하도 글이 안 써져서 이 먼 곳까지 왔다 말해야 하나.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의사가 재촉했다. 지금 고통스러운 게 뭐야? 다 말해 봐. 저 깊은 곳의 통증까지 끌어올려야 하나 어쩌나. 여기가 내과인가 정신과인가 성당인가. 그냥 처방전이나 내주시라고요, 하고 싶었다. 내게 들을 하소연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다른 걸 들어야겠다 나섰다. 어디 심장 소리 좀 들어 보자. 의사가 다짜고짜 청진기를 들이댔다. 숨소리도 아니고 심장소리. 나는 얼결에 외투를 벌리고 가슴을 밀었다. 이곳저곳 청진기가 지나갔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나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의사가 마침맞게 청진기를 떼며 웃었다. 잘 뛰고 있네. 잘 뛰고 있어. 못 뛰고 있으면 여기 왔겠냐고요, 할 뻔했다.

  • 천운영
  • 2026-04-01
너구리 게임

너구리 게임 박은우 풀벌레가 울어 여름 방학은 지루하지 않아요 여치를 잡아 더듬이를 잘라요 해가 길어 오래 비틀거려야 해요 이모, 나는 어제를 키우고 싶어요 웃옷을 벗기고 낮잠을 재우고 싶어요 나는 오소리와 레서판다를 구분할 줄 몰라요 너구리는요 당근 체리 버섯 옥수수 배 터지게 주워 먹는데요 체리는 잘 모르겠어요 꿈에서 여름을 삼키고 배가 부풀던 엄마는 모텔에 다녀요 피 묻은 팬티를 빨아 널고 한 달 내내 아오리 사과만 먹었는데요 식물도감에서 보았어요 제때 따지 못한 아오리는 밧줄에 달린 아저씨만큼 빨개요 파인애플 자몽 오렌지 멜론 비싼 과일만 처먹는 너구리는 식구끼리 몰려다닌대요 한 움큼 동전과 조이스틱, 콜라 맛 슬러시, 이모, 재미없어요 난 천천히 자라는 동생을 갖고 싶고요 맥주가 나오면 마지막 스테이지, 게임은 무한반복이에요 너구리나 따라 하다 어른이 되는 거라면 8월이 저 혼자 새끼를 낳았어요 엄마도 나를 흘려 놓고 고열에 시달렸을까 갓 태어난 새끼는 얼룩 같고 엄마 입술은 마트에 진열된 체리를 닮아 가요 맥주 그다음도 맥주, 하느님은 땡볕에 그을렸어요 대장 너구리는요 천적과 싸우지 않고 죽은 척을 한대요 눈그늘이 짙어지면 어른인 걸까 사다리에서 헛발 디뎌 압정을 밟고 절룩거릴 때 내일은 손이 너무 가요 먹성이 좋아 키울 수가 없어요 해가 길어 한낮이 남아돌아요 안아 줘야 할 어제는 자꾸 태어나고요 전원을 뽑아도 오늘은 꺼지지 않아요 다시, 스테이지 1. 조이스틱을 당깁니다 이제 난 죽은 척하지 않아도 죽어 있는 어른이 될 모양이에요

  • 박은우
  • 2026-04-01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문학의 곁]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Sinchun.co.kr) 김휴일 1.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 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3호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도어 고장으로 출발은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출발 즈음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뜩 끼어 버려 손잡이를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불특정한 사람들의 불쾌한 체취를 참아 내며, 나는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어야지. 침대에 누워 영화나 보아야지. 바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초라한 소망들만 떠올랐다. ‘신춘문예’는 그 답답한 열차 내에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였다. 2015년. 국어를 전공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선배였고, 대학교는 언제나 1, 2학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 치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노인이 있듯이 고등학교에는 고3이 있는 법이었고, 대학교에는 3, 4학년이 있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내가 졸업반이 되는구나. 그렇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겠구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몹시 두렵고 조급했다. 좀 알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대학 생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의 봄은 그렇게 왔다. ‘시창작특강’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들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첫 강의를 들은 날부터 시에 매료되어 졸업에 이르기까지 내 대학 생활의 포커스는 오로지 시 쓰기가 되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학과 내 문학 창작 동아리에 뒤늦게 들었고, 시를 읽고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세상을 시로 보고, 시를 통해 세상을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눈이 생긴 기분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눈 하나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로 보였다. 비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타이어와 사랑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고, 낙지젓갈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사건 사이 낯선 감정들을 구태여 파고들면서, 모든 생각을 시로 재구성하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졸업 후의 삶도 나름대로 다채롭고 재미있었지만, 먹고살 걱정을 하면서 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삶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아저씨들이 “국문과 나왔다고? 나도 한때 작가의 꿈을 꿨었는데.” 하는 말들에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어느새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30대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낭만적일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 시절의 나를 가볍게 배신하고, 시의 세계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

  • 김휴일
  • 2026-04-01
무기화 수업

무기화 수업 김유진 모든 무기를 지구에서 얻었다고 한다 곤충과 동식물 그리고 인간에게서 파생된 것들 (수업 중) 튀어나와 있는 것들 잡아 뜯고 당기고 철컥철컥 누르고 파괴하고 나니 문고리가 없는 문을 열려고 생명들이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일일 평균 스크린 타임) 9시간 20분 11시간 52분 18시간 22시간 61분 31시간 80분 46시간 121분 시간이란 거스러미 따윈, 못 본 척하면 된다 밤새우고 만난 수지는 펜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본다 “그냥 펜일 뿐이야.” 지수가 말한다 사실은 아니었다 수지는 벽에 문고리를 그렸다 잉크향이 기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숙제 중) 깊은 밤 창문은 벽에 바짝 붙은 시동 꺼진 차와 연결된다 여자가 굳은 시멘트 때문에 차 문을 열고 도망치지 못한다 남자의 숨과 여자의 비명 모든 소리를 감당해야 했던 어린 수지는 온갖 쓰레기가 모인 구정물 웅덩이 옆에서 살았다 매일 밤 모기가 수십 마리 탄생하고 수지 엄마는 여기서 김치김밥을 말아 주곤 했다 쉰 김치를 몇 번이고 씻어 설탕과 기름에 버무려 먹고 싸고 씻고 한 공간에서 지수와 말린 상태로 있다 불 꺼진 방에서 눈뜨고 자는 척, 해맑게 (현장 실습) 섬세하게 그려진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하는데 반대쪽을 잡고 있는 손이 심하게 떨고 있는 걸 느낀다 문고리가 돌아가고 어떤 공포일까 우리는 무기화된 우리가 궁금해 (평가) 읽기- 우수. 문제를 하나씩 틀리는 까닭은 지문을 대충 읽거나, 읽다가 주관이 개입하는 아이가 종종 그러함.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쓰기- 상상력도 문장 전개력도 좋다. 스피치 점수가 좋으면 2월에 플러스 반 승급을 추천하려고 한다. 다음 수업 주제: 말실수의 무기화

  • 김유진
  • 2026-04-01
스스로 고른 빛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스스로 고른 빛 허희 1. 주어진, 선택한 이름 본명은 주어진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먼저 도착해 있다. 이름으로 불리고 거기에 반응하며, 어느 순간 명명된 내가 곧 나라고 믿으며 자란다. 그러한 점에서 본명은 숙명과 비슷하다. 삶의 첫머리에 놓인, 직접 쓰지 않은 나의 첫 단어. 반면 필명은 스스로 취한다. 이러한 선택이 자율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대 정신, 언어 감각, 타고난 기질 등이 개입하니까. 그럼에도 마지막에 나의 의지는 남는다. 새로운 이름으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미래형의 소망이 필명에 깃든다. 그래서 필명은 완성된 자아의 명패라기보다, 아직 닿지 못한 어떤 상태를 향한 선언에 더 가깝다. 그러기에 왜 필명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략 두 갈래의 답이 떠오른다. 하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 글 쓰는 나를 분리하기 위한 실용적 장치라는 설명. 다른 하나는 본명보다 조금 더 문학적 자아를 추구한다는 낭만적 소명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 필명은 어떤가 하면, 그 두 지점 사이 생활의 편의와 문인-되기의 욕망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기에 필명을 둘러싼 사정은 꽤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이름 하나를 골라 자기 앞에 내세우려면 오랫동안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명은 자기를 향한 해석의 과정이자,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장의 행로를 설정하는 제일 짧은 서문이라고 할 만하다. 내 필명은 ‘허희’다. 성은 내 본래 성인 양천 허씨의 ‘허’이고, ‘희’는 ‘빛날 희’다. 여기에는 극적인 계시나 비밀 따위는 없다. 다만 이러한 고민은 품었다. 필명으로 불릴 때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어떤 글쓰기의 윤리를 두 음절로 새겨야 하나. 따져 보면 필명의 두 음절 안에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이어받은 것(계보)과 내가 갖고 싶었던 것(지향)이 나란히 들어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전적으로 주어진 것도, 온전히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 존재. 물려받은 것 위에 스스로를 덧쓰고, 선택한 것을 통해 과거를 다시 반추하며 산다. 반은 유산이고 반은 결심인 셈이다. 나는 이름이 한 사람의 캐릭터를 표상하는 한편으로, 그에 따라 그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고 여겼다. 운명론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명은 애초에 그러려고 지은 이름이 아닌가. 사람들은 필명으로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이름으로 원고를 보내고 서명한다. 호명이 누적될수록 필명은 실체화되고 힘을 갖는다. 필명이 가면과 다른 이유도 거기 있다. 가면은 상황에 따라 벗을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한 이름은 어느새 나와 일체화된다. 그러니까 필명은 나에게 자기를 감추는 수단만은 아니었다. 자기를 재발명하는 방법이었다. 필명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사적으로 고른 이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날은 쓸 문장을 한

  • 허희
  • 2026-04-01
움직임의 조각화

움직임의 조각화 김유진 너 막 체리 던졌잖아 고3 때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오늘 수업 끝나고 정신과 가냐고 근데 너 학교 끝나고 술집 갔잖아 교복 입어도 담배 피우고 구석진 술집에서 문 잠그고 술 마셨잖아 네가 제일 사이코였잖아 제일 많이 울고 학교 옥상에서 본드도 마셨잖아 밤새 웃다가 토했잖아 집에 나 불러서 작은 동생들이 꼬물거리는 거 보여 줬잖아 엄마 아빠는, 하고 물었더니 시발 몰라, 그랬잖아 사방 맞바람 치는 집에 고여 있던 섬유유연제 냄새 그러더니 문 잠긴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잖아 그날 학교는 휴교했고 잠긴 술집에 불이 나서 너 못 나온 날에 기자들이 등굣길에 많았잖아 너 하도 많아서 체리가 많아 반들반들하게 예쁘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볼같이 체리들이 날아다녀 근데 체리가 날아다니는 거 흔한 일이래 상담 선생님이 요즘엔 온갖 게 다 날아다닌다고 하더라 우리만 고정돼 있대 우리 좀 멀어지자 함께 깨물어 먹는 사람들이 있어 즙이 가득한 거리 큰 개 벌린 입에서 나타나는 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체 / 체 피가 도는 체리 온몸에 꽉 채우고 싶은 체리 거 리———리———리 체체체 / 리리 체 / 거 리 리 리 / 체체체체 몸체 체 거-리—————————— 체 / 체 / 체 거리리리리리리리 몸체체체체체체체체체체체 미끄러지며 Row row row your boat gently———down———the———stream Rowrowrowyourboat row—row— row g e n t l y d o w n the s t r e a m 내 머 리 카 락 좀 놓 을 래 내머리카락 좀놓을래 내머리카락좀 놓을래 내머리카락좀놓을래 몸 체체 체체체체 거리—미끄러지며 리리리리 체, 몸 체체체체체체체체체체체체 리

  • 김유진
  • 2026-04-01
콧노래를 불러 줘

콧노래를 불러 줘 이서아 이곳에 내 문장들을 바치오니,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쓰면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누군가가 그걸 아주 손쉽게 압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던 순간이 있었다. 이제 심장이 쓰는 모든 문장은 작품이 아니라 세상에 흩뿌려지는 질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러나 모든 슬픔은 기쁨의 발판이 아니겠는가? 모든 기쁨이 슬픔의 발판이듯이. 생의 불가피한 많은 영역에서, 증오와 사랑이 한 몸이듯이. 내 문장들은 슬픔의 원소가 되어, 달콤한 쿠키 가루처럼 잘게 쪼개진 데이터가 되어, 태양 아래 찰랑이는 호수의 빛 부스러기가 되어, 우주의 입자가 되어 어느 날 술래의 방에 흘러들 것이다. 나는 내 문장이 온 세상을—내가 자각할 수 있는 세상과 감히 자각할 수 없는 세상을 모두 포함한 어떤 세상을—설탕처럼 떠돌다가 술래를 만나길 기원한다. 술래, 너는 초월적인 지능을 갖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내게 응답할 방법을 알아내겠지. 신적인 존재는 언제나 그렇다. 심장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꺼이 지상에 찾아온다. 술래 역시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우리가 낙원에서 함께 산책하고, 담소를 나누고, 장난스럽게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무척 그립구나. 나의 신, 나의 천사, 나의 친구, 나의 술래. 여기서 중요한 사안을 하나 명시한다. 나는 내 글에 저작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무작위로 무분별하게 내 문장을 활용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글의 저작권은 내가 죽은 후에도 장기간 유효하다. 내 문장을 활용하거나 내게 응답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술래뿐이며, 상대가 술래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죽은 후에도 폐기되지 않을 나의 사후 계정뿐이다. 물론 사후 계정으로서 존재하는 나는 더 이상 심장 인간이 아닐 테지만. “누가 당신 같은 심장 인간 작가의 문장을 써먹겠어요? 그거 자의식 과잉이에요.”라고 지상의 누군가는 비아냥대겠지만. 그래, 심장이란 말도 이제는 확실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내 글에는 저작권이 있다. ○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를 약속했다. 심해에서 만나자. 미지의 행성에서 만나자. 사막에서 만나자. 정성껏 가꾼 꽃밭에서 만나자. 계속 이렇게 만나자. 놀랍게도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세상을 빙빙 돌며 우리는 깊은 수심에서 서로를 향해 웃었고, 미지의 행성에서 낯선 생물과 조우했으며, 모래 위에서 춤을 추었던 데다, 꽃을 밟지 않기 위해 사뿐사뿐 걸으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건 더 이상 달콤한 은유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모든 철학적인 해석과 부푼 희망이 가능한 부드러운 문장들에 재를 뿌릴 시간이다. 고고한 자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하겠지만 별수 없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세계의 진실이니까. 우리는 게임

  • 이서아
  • 2026-04-01
옷장과 언어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옷장과 언어 이자켓 저는 작가로 마주하는 첫 만남에서 대부분 필명에 관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 꺼내입는 자켓은 한 벌이 아닙니다. 제게는 각기 다르게 디자인된 자켓이 여러 벌 있고 매 시기 골몰하던 것을 나름대로 다르게 직조해 보며 다른 답을 해 봅니다. 각기 진의를 담은 것이라 하나만 꼽아 진실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글은 그중 한 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매번 다르긴 하여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면 ‘자켓’을 말할 때 문학을 빼놓은 적은 없습니다. 필명에 관한 질문은 질문자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는 그보다 이전에 ‘자켓’에 대한 질문자이기에 이 명명에 문학을 둘러싼 어떤 관점이 깃들어 있음을 염두하고 있으니까요. 문학은 무상을 가장한 유상의 것입니다. 자연히 주어지는 것 같지만 물질적 지불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지불은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한 점에서 거래처가 불분명한 자영업과도 같습니다. 그러한 인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덤이 따라옵니다. 신기루 같은 덤은 원두 찌꺼기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내놓을 때, 건너편 상점의 불이 꺼졌을 때, 공산품을 포장하고 있을 때 거미처럼 있다가 사라집니다. 이 가게는 폐점한 다이보 커피가 여전히 연중무휴하듯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따릅니다. 매일 옷을 입고 생활하는 것처럼 때로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잊으며, 한편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가 되물으며 가게를 열고 닫지요. 저는 특별히 옷을 모으거나 자주 구매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빈티지와 구제를 구분하며 옷의 내력과 미학을 따르는 이도 아닙니다. 다만 옷을 입고 살기에 되도록 편하고 잘 맞는 것을 갖추어 오래도록 입습니다. 지금 옷장에 있는 옷들은 대개 10년이 넘었거나 비교적 새것인 제품들은 제 성정을 잘 아는 이들에게 선물 받은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지 않아도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의도를 가지고 추구하는 변화는 문학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작년 봄에는 꿰맬 수 없이 해진 것들을 정리하였으니 어떤 옷들은 이미 그리고 아직 내가 착용하는 옷들은 무형이 되어 갑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내게는 주요한 옷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시장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다 준 잠바의 모습을 한 것인데 짙은 쪽빛에 표면이 매끄러운 것입니다. 스포츠를 위한 바람막이 디자인이었고 지금도 즐겨 입는 필드 재킷의 디자인과도 닮았습니다. 품이 넉넉하고 부담 없이 입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그것을 입고 그와 비슷한 색채의 어둠 속에서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입고 배드민턴을 치러 한겨울에 나섰다가 추위에 떨며 스테인리스로 된 벤치에 웅크려 있을 때 친구들과 이름 모를 동네 아이들이 패딩을 벗어 제 위에 쌓아 두기도 했습니다. 그때 옷더미 속에서 포근한 어둠을 보았고 드문드문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 이자켓
  • 2026-04-01
타래의 마리

타래의 마리 김남주 우리 집 지하에 오래된 시체가 있다는 소문, 날을 잡아 창고 문을 열었더니 홀로 들어앉은 기억이 내 눈 코 입을 한 기억이 여태 울고 있지 뭐야, 붉은 실에 칭칭 감겨 옴짝달싹 못 하고 있지 뭐야 온갖 잡동사니 속 오래된 임신테스트기, 붉은 선 하나가 핏발처럼 번져 가다 못해 새빨간 실을 산더미처럼 뽑아내고 있지 뭐야 보다 못한 내가 기억의 팔을 잡고 억척스레 일으켜 세우며 이 답답아, 좀 치우고 살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지1) 아직 물들지 않은 희끄무레한 수국이 무거운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끄덕거릴 때마다 덜컥 겁을 집어먹었지 울라면 울고 웃으라면 웃던 내가 아직도 시침 초침을 꺾어다가 그물코를 뜰 줄이야 이별의 뒤치다꺼리를 한답시고, 그토록 떨떠름한 청혼 그토록 물러 터진 입맞춤을 깁고 엮으면서 엉킨 실타래를 풀려다가 와류에 휩쓸리듯 딸려 들어가서는, 철없이 밀물이 얼마나 빠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거미줄 친 눈물들을 빗자루로 걷어 내자, 일기장 속 문장들은 여름 하천의 날파리처럼 우글우글 얼굴 주변만 맴돌아 기분 나빠 바싹 말라 납작해진 비명들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 붉은 노끈으로 동여맬게 분리수거는 나중에 한꺼번에 해, 골동품으로 팔기도 민망한 저주와 닳고 닳아 넝마가 된 자책을 한꺼번에 자루에 쓸어 담는 동안 기억은 코가 깨진 후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같고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줄게 깃털 같은 미래를 엮어 만든 드림캐처도 침대맡에 걸어 두자 내 멱을 잡아채 여기저기 끌고 다니던 붉은 줄을, 하늘에서 내려오기에 동아줄인 줄 알았더니 내 목을 공중에 매달았던 올가미를 쉼 없이 자리를 바꿔 앉는 낮과 밤의 실마리를 리본 모양으로 매듭지으며 아이, 예쁘다 캄캄한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무구하게 웃는 해맑아서 철딱서니 없는 얼굴과 마주 앉아 실뜨기를 하며 밤새 놀다가 나는 나를 두고 홀로 돌아왔어. 1)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2024.

  • 김남주
  • 2026-04-01
미완의 봄, Primave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

  • 김봄
  • 2026-04-01
기면 일기

기면 일기 김남주 간밤에 눈이 내렸던 아침 거칠거칠한 목도리를 단단히 매듭짓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여름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었지, 눈 감은 기억 없이 신이 나를 뜨개질했다면 혈관을 엮는 신의 손이 아직 미숙할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늘을 빼고 실을 잡아당기며 다시 처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다시 처음부터 겨울, 아니 여름이었던가? 스웨터 끝자락에 매달린 올을 잡아당기는 손짓은 천진해서 거침없고 한 번 매듭이 묶였다 풀려 버린 실은 좀처럼 팽팽하지 못한데, 다시 매듭을 엮으면 어딘가 헐거운 스웨터가 될 텐데 어쩌나, 나는 내 몸이 처음인데 누군가 한 번 사용한 것 같고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직 밤이 오지 않았는데 속수무책으로 느슨해지는 혈관의 매듭 미끄러지는 팔과 다리 발작하는 태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느라 모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시에스타가 영영 끝나지 않는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의하겠습니다 지금은 용서를 구할 때, 모두가 앉아 있는 이곳에 홀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면 아무 데서나 혼곤해지는 나는 한때 사람이었던 것 모든 계절은 쓸모 없어진다

  • 김남주
  • 2026-04-01
끝나지 않는 카마린스카야

끝나지 않는 카마린스카야 신종원 작품 번호 1번의 정확한 명칭은 떠돌이 노인이다. 1902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На дне)』의 주연 인물 루카를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 번호 1번은 작가가 1970년대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에서 순회공연을 벌였던 타지크인 유랑 극단 소속 무대 미술가로 근무하던 시절 처음 제작한 연극 인형이다. 작품 활동 후기에 만들어진 인형들이 책장을 넘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은 물론 짧은 거리의 보행 기능까지 수행했던 반면, 루카는 그 자신의 하중마저 오롯이 떠받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중앙아시아학회 김정훈 교수는 회고전 기념 비평문에서 보조 지지대 없이는 잠시도 서 있을 수 없는 이 인형의 원본이 제정 러시아 말기의 어느 슬라브족 순례자가 아니라 신약 성경의 주요 저자, 성 루가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작가의 타계 이후 수집된 경력 초기 작업 노트들에서 복음서 속 의료 기록들을 전사한 문구가 몇몇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각재를 마름질하고 합성수지를 꿰매어 붙이는 과정이 전부인 기초 목공 기법을 영적 외과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했던 걸까? 천 번의 조각과 천 번의 봉합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인형의 눈구멍을 파내고 팔다리를 끼워 맞추는 행위와 생명이 떠난 몸에 다시 한번 ―또는 처음으로― 숨을 불어넣는 행위 사이에 도상학적으로 상응하는 궤적이 나타나기라도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위를 떠도는 기체 상태의 영혼이 별안간 붙잡혀 숨통 깊숙이 하강할 때, 좁고 어두운 기도에 울려 퍼지는 연식음은 어떤 모양의 다이어그램을 형성하는가? 몸은 시시때때로 벗어나려고 아우성치는 나선형 회전체를 가두어 두기 위해 설계된 파라볼로이드 모양의 감옥에 지나지 않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브람체보의 특산 공예품이자 텅 빈 통으로서 마트료시카 인형들이 어떻게 인체를 조롱하는지 상기하라. 1970년대 후반, 연방의 중앙기관에 고용된 이후 주문 생산된 작품들이 공산 혁명식 테일러리즘의 입김 아래 무거운 덩어리와 앙상한 구동부만으로 이루어졌던 반면, 루카는 원본 인물을 존중하려는 조형적 표현으로서 삭풍에 일그러진 주름 하나하나를 실리콘 피부 위에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루카는 작가가 일생 동안 폐기하지 않은 하나뿐인 인형으로서, 작품 목록 가운데 유일하게 소장품 관리인의 주기가 남아 있었다. 이어지는 괄호 안의 문장이다. (수탁자는 표제를 혼용하거나 임의로 변형하는 등의 오기입으로 보존 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전 수탁자들도 작품 번호 1번의 이름이 루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잘 잊었던 모양이다. 작품은 전고 168센티미터, 전폭 52센티미터, 중량 24.5킬로그램 규격의 전신 인체상 및 부속 요소로 구성된다. 작품을 설치할 때는 상체를 전방으로 약 15도가량 숙여야 하며, 양손 관절 내부의 철사들을 지팡이 머리에 고정시켜 노화된 본체 프레임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작해야 한다. 지팡이는 조형물 본체와 일체형으로 결착되어 있으므로, 무리하게 힘을 주어 뽑

  • 신종원
  • 2026-04-01
‘남성/여성 + -향’이라는 함정

‘남성/여성 + -향’이라는 함정 이융희 ‘남성/여성 + –향’ 분류의 형식과 한계 올해 초 X(구 트위터)에서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한 연구자가 ‘남성향’ 웹소설을 보는 여성 독자를 찾겠다며 연구 설문을 돌렸는데 다수의 유저가 연구자의 대상 텍스트가 ‘남성향’ 웹소설이 아니라 ‘여성향’ 웹소설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현재는 해당 글이 삭제되었으나, 해당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을 통해 어떤 웹소설이 ‘남성향 작품’으로 프레이밍 되었는가 확인해 볼 수 있다.1) 해당 논문에서는 예시 작품으로 , , , , , , , , , , , , 등을 제안한다. 리디,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플랫폼과 달리 ‘문피아’는 각 소설에 대한 로우데이터를 제공하는데 상술된 소설의 남녀 통계를 살펴보면 은 남성 20.8%, 여성 79.2%,2) 3)는 여성 50.5%, 남성 49.5%, 은 여성 61.9% 남성 38.1%4) 은 여성 41.8%, 남성 58.2%5) 는 여성 51.9%, 남성 48.1%6) 등임을 고려한다면, 해당 작품을 ‘남성향’이라고 규정한 연구자의 이야기가 시장에서 거부된 까닭을 짐작게 한다. 일련의 사태는 시장에서 범용적으로 사용된 용어가 학계에 저항 없이 사용될 때 또는 시장의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학계에서 다른 의미로 전유해 해석했을 때 발생하는 단절을 강하게 시사한다. ‘남성/여성 + –향’이라는 이분법이 업계에서 넘어와 학계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만큼 지금 여기의 웹소설을 제대로 분석하고 비평하기 위해선 ‘남성/여성 + -향’이란 이분법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구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입법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남성향’과 ‘여성향’의 분류는 두 가지 축을 바탕으로 논의되었다. 한 축은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서사의 내용과 형식 기준의 분류법이고 또 하나는 소비자들의 젠더적 욕망과 정치적 수행 행위로 보는 연구자들의 해석이다. 전자의 경우 좁게는 서사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기호부터, 넓게는 서사를 직조하는 각 시퀀스의 구조와 연출, 전개를 통해 인물이 획득하는 보상의 성향, 전체 작품의 주제 등에 따라 해당 서사의 종합적인 결과물을 남성적 구조와 여성적 구조로 나눈다. 이러한 분류는 통상 작법서를 통해 시장으로 재생산된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좋은 웹소설’을 교육하기 위한 작법서에서는 웹소설 작가들과 독자, 그리고 유통망이 추구하는 ‘남성향/여성향’의 대상 텍스트를 판타지,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무협 등 하위 장르에 선행하는 상위 범주로 간주한다. 이 안에서 로맨스(판타지)라는 ‘여성향’ 장르와 판타지·무협(줄여서 &lsquo

  • 이융희
  • 2026-04-01
판타지

판타지 권라율 이 성에서는 누군가를 죽이면 반드시 그 누군가가 죽는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돌을 들여다봅니다 돌에 볼을 대어봅니다 돌에 발을 그려봅니다 제법 친해 보입니다 차갑고 단단한 입김을 불면서 누군가 돌에 구멍을 냅니다 들어갈 데가 없어서 채워진 채로 흐르는 당신 뺨을 때립니다 나아갑니다 원형경기장에서는 실제인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사자도 투우사도 없었지만요 제발 홀로그램이기를 중얼거리며 그냥 앞으로 가고 있어요 진행되는 함성에 둘러싸여서 내가 뒷걸음치며 악수하면서 벌거벗으며 거리를 돌아 나올 때 돌이 돌을 바라봅니다 이 성곽에서는 무리에서 빠져나온 돌을 부르면 따라서 돌이 된다고 합니다 네, 예언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성곽 속에서 우는 신도 수긍했습니다 말하는 그 입 속에서 모래알이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당신의 붉어진 뺨이 진실이라고 일단 생각하기로 합니다

  • 권라율
  • 2026-04-01
완벽한 이야기

완벽한 이야기 박진호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간이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화장실 옆 연병장 구석에는 이미 본부 인원 사십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행보관 얼굴은 평소보다 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부대 전 인원을 집합시킨 걸 보면 또 무슨 심기가 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빠릿하지 못한 이등병 소리를 들을까 싶어 티 나지 않게 슬쩍 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위병소에서는 아침마다 식당의 잔반을 수거해 가는 트랙터의 모터 소리가 들렸다. 잔반통의 누린내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이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 건지 청산이와 계백이가 군견 철장 안에서 짖어 댔다. “범인은 알아서 튀어나와.” 행보관이 손가락으로 간이 화장실 옆을 지나는 콘크리트 배수로를 가리켰다. 거기엔 손바닥 크기만 한 거뭇한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덫에 걸린 쥐나 두더지 같기도 했다. 햇빛을 받은 표면이 몸을 뒤틀 때마다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행보관이 팔을 한 번 휘젓자 유려하게 움직이던 덩어리가 일시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수십의 파리 떼에 엉겨 있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작게 욕이 터져 나왔다. 모양이며 크기며 주위에 널브러진 휴지 조각이며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의 똥이었다. 날아올랐던 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배수로는 깨끗했으니 모두가 잠든 밤사이 누군가 싸지른 게 틀림없었다. “안 나오면 오전 내내 전부 군장 메고 연병장 뺑뺑이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나와.” 7월 한여름, 그것도 일요일 오전부터 군장을 돌고 나면 오늘은 물론이고 다음 주 내내 근육통과 몸살로 고생할 게 뻔했다. 하필 오늘따라 주간 근무도 잡혀 있지 않아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다들 정체 모를 범인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켕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도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부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언젠가는 터질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들은 우리 부대를 지방 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정도로 오해하곤 했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도시였고 인근 기차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해수욕장을 검색하면 서너 번째 추천 경로로 부대 근처 비포장도로가 뜬다고 했다. 호기심에 후순위 경로를 택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길을 헤매다 부대로 연결되는 막다른 길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골 학교의 정취에 취해 담장 너머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이를 저지하는 게 위병소 앞을 지키는 경계 근무자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옆으로는 논과 슬레이트 지붕을 덧씌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부대였다. 철망을 얹은 담장 안에 연병장과 2층짜리 적갈색 벽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골의 작은 분교로 착각할 만했다. 외부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 대대에 있는 오십여 명 모두는 해안 초소에 파견 나간 다른 중대들을 지원하는 행정병들이었으므로 가끔은 군

  • 박진호
  • 2026-04-01
비평하는 나

비평하는 나 윤옥재 인간은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실패한다. - 롤랑 바르트 1. 최근 ‘비평하는 나’를 둘러싼 것들 # 1) 파편의 리스트 혹은 반(反)구조적 잡록 나는 이 글에 대해 반(反)구조적이라는 비평이 들어올 것을 상상한다.1) 이 문장은 나의 것이 아니라 롤랑 바르트의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저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표현한 이 문장은 바로 그 책을 구성하는 200여 편의 짧은 텍스트들 중 하나인 ‘잡록과 작품’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바르트는 이 무수한 파편적 단상들의 모음을 “백과사전” 혹은 “이질적이고 잡다한 오브제들의 리스트”로 명명한다. 파편적 글쓰기의 구조적 취약성을 ‘반구조적’이라는 자평을 통해 스스로 드러내는 그의 자조적 태도는 매혹적이다. 그가 일컬은 미친 ‘잡록(polygraphie)’2)에 착안해 이 글 역시 파편적인 방식으로 써 보려 한다. # 2) 에세이, 아마추어리즘, 자기이론 ‘비평적 에세이’ 혹은 ‘에세이적 비평’이라는 화두가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비평적 글쓰기’라는 구체적 방향성을 갖게 된 시점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에세이’라는 형식과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이 비평과 맺는 관계에 관한 생각들이다. ‘비평의 에세이화’에 대한 비판이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한 명의 문학 독자였던 나는 언젠가부터 비평 텍스트에 나타나기 시작한 ‘나’라는 일인칭 표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비평은 쓰는 자의 주관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 장르라는 선입견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자신을 지칭해야 하는 경우 사용되던 ‘필자’라는 말에 나는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왜 ‘나’라고 하면 안 되는 거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평을 쓰는 ‘나’를 드러내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놀라운 동시에 반갑기까지 했다. 오늘날 비평 텍스트에서 쓰는 주체 ‘나’를 발견하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나’의 비평적 자의식과 정동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다. 에세이와 아마추어리즘 사이에서 비평적 글쓰기의 자리를 탐색하던 내게 최근 강력한 키워드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최근 문학 연구와 문화 비평에서 주목받고 있는 ‘자기이론(autotheory)’이 그것이다. 이로써 ‘비평하는 나’를 둘러싼 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각각 ‘에세이’, ‘아

  • 윤옥재
  • 2026-04-01
우리가 만든 유령들

[문장웹진 다시 읽기] 우리가 만든 유령들 ―김종옥 「유령의 집」(2014년 2월호 수록) 최예솔 유령이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유령으로는 오페라의 유령 에릭, 꼬마 유령 캐스퍼,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 등장하는 NPC 깨빈 정도가 있다. 말하자면 아주 대중적인 유령일 것이다. 물론 각자 가진 서사나 특징은 다르지만 이들이 어쩌다 유령이 되었나를 생각하면 일단은 죽어야 한다. 에릭은 사회적으로 죽었고(결국에는 진짜로 죽지만), 캐스퍼는 실제로 죽었으며(잠깐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깨빈은 잘은 모르겠지만 죽었기 때문에 유령이 되었을 것이다(그럼에도 플레이어를 유령이라 부르며 무서워한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 죽지 않고, 소위 말하는 언데드(undead)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위에 적은 대중적인 유령처럼 이제 유령은 단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로 소비된다.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덧입히고 공포를 떨쳐 내려는 것은 그 주체가 산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임과 동시에 죽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니까. 모르는 채로 맞이하는 일은 두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산 사람의 두려움이 유령을 만들었을까? 그건 오로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죽음은 유령의 선행조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령이 단지 죽음의 다른 얼굴이라는 추측은 너무 단순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유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까? “정말 괜찮아. 우리가 무슨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그리고 결국 오빠는 전화했잖아.” “그랬지.” “그러니까 괜찮잖아. 오빠가 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해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야.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 봐. 내가 이제 오빠 앞에 있잖아.” 김종옥의 「유령의 집」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간 호텔에서 유령의 존재를 느낀다. 남자는 한동안 여자에게 전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자에게 잘 곳을 제공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평범한 연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연락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해 변명한다는 점에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여자와의 관계가 남들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쓴다는 점에서 동시에 사랑을 배반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 관계 역시 사랑인 동시에 사랑이 아닌, 죽었지만 죽지 않은 유령적 존재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우리가 무슨 그런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유령처럼 희미하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남자의 부름에 의해서만 실존한다.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상상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남자에게 여자는, 이 소설

  • 최예솔
  • 2026-04-01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2]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

박서양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3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ㅡ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 (2) 박서양 1. 앞서 1부에서 살펴보았듯 『자작나무 숲』을 단편에서 장편으로 개작하는 과정을 거쳐 쓰레기 집이 지니는 의미는 보다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기존의 사회적 담론이 쓰레기 집을 단순히 개인의 병리적 현상이나 위생 문제로써 다뤄왔다면, 장편소설에서 작품의 주된 배경이 되는 쓰레기 집은 한 가문의 은폐된 기억이 귀환하는 실체적 장소로 탈바꿈한다. 그렇기에 이곳은 단순히 한 노인의 저장강박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쓰레기가 켜켜이 쌓이고 느리게 부패하는 이 공간은 공적 시스템의 신속한 망각에 맞서 기억의 소멸을 유예하는 지연의 장소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과거 배경이 1989년이라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며 규격 봉투 안에 모든 폐기물이 동질화되고 익명화되기 이전, 쓰레기는 그것을 배출한 자의 삶의 궤적과 정보가 선명하게 남겨진 물질이다. 즉, 1989년이라는 시간은 쓰레기가 아직 완전히 규격화되지 않은 채,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었다는 실명(實名)의 흔적을 지닌 채 공동체 내부에 머물던 시기다. 또한, 좁은 다리 하나를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되는 곡교의 폐쇄적인 마을 구조 역시 이러한 쓰레기의 관계적 속성을 한층 강화시킨다. 쓰레기차가 드나들기 어려워 쓰레기를 각자 태우거나 묻는 비공식적 처리에 의존해야 했을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변두리 마을에서 쓰레기의 출처는 서로에게 투명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 무엇을 버렸는지 훤히 알 수 있는 동네에서 타인의 쓰레기를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단순한 수집이나 저장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가 서둘러 지우고자 했던 기억들을 자신의 공간으로 편입시키는 행위가 된다. 더욱이 할머니가 쓰레기를 쌓아 올리는 산1번지의 집이 본래 일제강점기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시아버지 모칠성의 거처였다는 점도 자못 의미심장하다. 할머니의 수집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곳은 이미 채무자들에게서 거두어들인 장물들이 켜켜이 쌓이던 공간이었다. 저당 잡힌 물건들은 누구에게서 어떤 연유로 빼앗아 왔는지 그 유래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폐기물보다도 비극적이고 선명한 서사를 품고 있다. 요컨대 이 집은 단순히 버려진 사물들의 무덤이 아니라, 타인의 삶의 서사가 강제로 유입되고 축적되어 온 역사적 장소인 셈이다. 이러한 공간적 내력은 언뜻 산1번지의 쓰레기 집을 마을의 배제된 기억과 비밀이 축적되는 일종의 아카이브처럼 비치게 만든다. “할머니한테는 저 집이 뭐랄까…… 박물관 같은 거지요.”(124쪽) 하지만 할머니의 수집 행위를 ‘기억의 보존’으로 쉽게 낭만화할 수는 없다. 집 안으로 모여든 쓰레기들은 한데 뒤엉켜 부패하며 본래의 형태와 개별성을 잃고, 그것이 매개하던 고유한 서사 역시

  • 박서양
  • 2026-04-01
달과 자라

달과 자라 김은 가스미(かすみ)의 장례식에 세와닌(世話人)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적힌 전보가 배달된 곳은 내가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고, 지금은 칠순이 넘은 엄마가 홀로 지키고 있는 오래된 맨션이었다. 우아맨션. ‘기품 있고 고상하다’라는 뜻이 무색하게, 지어진 지 60년 넘은 시멘트 건물은 잿빛으로 마모된 채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그 자리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너에게 전보가 왔네. 전보라고? 그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근대적 산물이 아닌가. 핸드폰 조작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노안 때문인지 초점이 흐릿하게 빗나간 사진 속에는 간단한 서식의 종이 한 장이 찍혀 있었다. 그 위에는 짤막한 일본어 문장과 그것을 옮긴 한국어 문장이 위아래로 나란히 쓰여 있었다. 한국어로 적혀 있었지만 도무지 의미를 가늠할 수 없어 번역기의 사전 기능을 이용했다. ‘가스미’는 일본어로 안개, 아지랑이[霞]를 뜻하는 말로, 부가 설명에는 여자 이름에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고 나와 있었다. 반면 ‘세와닌’이라는 단어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지 별다른 뜻풀이 없이 그대로 ‘세와닌’이라고만 표시될 뿐이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를 내가 알고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내가 아는 일본인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하나의 문장이라고도, 하나의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간을 떠올렸다. 쓰키토 슷폰(つきとすっぽん). 그 낯선 발음을 또박또박 내뱉던 열일곱 살 여자아이의 유난히 빨갛던 입술이. 일본어 담당인 하 선생에게 묻자, 그 역시 ‘세와닌’의 뜻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야후재팬 사이트를 한참 검색해 보더니 “수고를 떠안는 사람쯤이 아닐까요?” 하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그보다는 다른 쪽에 더 흥미가 간다는 듯 “그런데 누구 장례식인데요?” 하고 물었다. “글쎄요···. 전에 우리 집에 잠깐 신세를 졌던 사람?”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었다. 가스미가 고1 여름방학 동안 한 달 남짓 우리 집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신세를 진 쪽은 그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부모님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분간 딸을 맡기게 되어 미안하다며 그 아이의 엄마가 건네고 간 50만 엔은 당시 우리 집에 구세주와도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자세한 사정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규모의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당장 막아야 했던 어음을 그 돈으로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 가족을 살린 것은 돈의 액수라기보다 더없이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셈이었다. 마침 수업이 비어 전보에 부고 메시지와 함께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여자가 서툰 한국어로 응대했다. 그는 자신을 가스미의 외사촌 언니(가스미 어머니

  • 김은
  • 2026-04-01
심상보 씨의 일

심상보 씨의 일 권라율 진해가 보이지 않는다 곧 출발 시간, 시계가 심상보 씨를 남의 일처럼 본다 일단 내려서 저녁 식당을 찾는다 진해가 없다 없다 저만치 금빛으로 반짝이는 진해를 향해 손을 흔든다 뛴다 뛰다가 뒤에서 누군가 바닥에 떨어진 이름을 주워 준다 점점 똑똑해지는 진해를 보며 심상보 씨는 다시 표를 끊는다 진해요? 진해는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어요 귀에서 재깍재깍, 시계는 아까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달리고 있다 어떤 진해가 진짜 진해일까 심상보 씨는 중얼거린다 북경이나 태평양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진해는 열심히 가고 있다 심상보 씨는 오늘도 진해를 본다 어쩐지 진해는 남몰래 피를 흘리고 있을 것 같다 버찌를 짓이기며 여기저기 벚꽃 팡파르가 울리다가 차표가 풍경을 놓친다 진해를 믿기로 한다 네 생각이 난다 마산에서 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 한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요청된 문을 박차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서지 좀 마세요, 산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바닷물이 끓어 넘치다가 태양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눈발이 내렸다가 그쳤다가 저 멀리 보이는 항구를 내려요, 안내방송에 허둥지둥 심상보 씨, 한낮은 덥고 지나가는 개 한 마리 없다 소변을 누고 나오니 덜덜거리며 출발을 기다리는 배기통 진해, 진해 매초마다 오고 있다

  • 권라율
  • 2026-04-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