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호
- 작성일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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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를 열며]
저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물론 ‘좋지 않다’라는 건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상대적인 법입니다. 그래서 정확히는 이렇게 정정해야 하겠군요. “저는 우리 부모님 직계 가족 가운데 시력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유전적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직계 가족(부모님, 여동생)은 시력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십 대 초엽 어느 시점부터 제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친구들과 축구할 때 자주 공을 놓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리 직계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왜 갑자기 제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부모님은 그 원인을 책에서 찾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겁니다. 제가 안경을 쓰게 될 즈음부터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제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저만 아는 진실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열한 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미니컴보이(닌텐도 게임보이의 한국 발매판)가 제 급격한 시력 저하의 주범입니다. (당연히 부모님 몰래)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아날로그 흑백 도트 화면에 푹 빠져 밤새 게임을 했던 나날이 떠오릅니다. 그게 성장기 시력에 끼친 ‘악영향’이 꽤 컸습니다. 하루하루 제가 체감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시절처럼 밤새워가며 게임에 몰입하던 시절은 제게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미니컴보이 시절’의 열정과 체력이 없습니다. 그 시절은 제 몸에 시력 저하라는 형태로 새겨져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눈 나빠질 정도로 책을 좋아하더니 결국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유년 시절 독서보다는 저의 시력에 게임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종종 읽고 쓰기와 게임(플레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합니다. 백지에 새겨진 잉크 얼룩(문자)을 눈으로 더듬어 갈 때 혹은 워드 프로세서로 하얀 스크린을 나만의 흔적으로 메꿔 나가는 순간이 흑백 도트 화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유년기 게임 체험의 연장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실제로 읽고 쓰기에 따른 시력 저하가 심해지고 있는 터라, 이런 감각이 갈수록 짙어집니다.
물론 이는 아무 근거 없는 개인적인 경험의 발로이지만, 여기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시절일지라도 진심을 다한 몰입이나 애호는 인생 전체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쳐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비록 시력 저하처럼 일견 좋지 않은 형태일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미니컴보이를 원망하거나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때만큼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절이 없거든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시력과 맞바꾸어 미니컴보이를 택할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세계상의 시력 저하가 만성으로 굳어지고 있는 듯도 합니다. 이런 비루한 시대가 우리의 한 번뿐인 인생에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될 것임이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힘을 쏟고 즐거운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요즘 같은 시대에 문학을 찾아 굳이 이 글까지 읽어주실 분들에 한하여, 그것이 대체로 옳은 일일 거라는 데 내기를 걸고 싶습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각자의 몸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ㅡ 윤재민 문학평론가 외 문장웹진 편집위원 일동

2026년 5월호 <Game Over?> ⓒ 피츠(pits)
5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끊임없는 폭력과 혼돈에 어지러운 매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연의 옷을 입고 찾아오는
정당한 인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문장웹진 2026년 5월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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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Game & Writer] 게임과 작가1) 임가영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림이 좋다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이유로 예술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계 설정에 관여하는 시도들이 좋았다. 더불어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았다. 위대한 창작자의 숙련된 솜씨와 천재적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시도들이 공감이 갔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현대미술을 택했다. 예술을 하기 전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고, 처참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관심이 갔던 과목이 ‘정치철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려(웹툰 어시스턴트와 게임 캐릭터 원화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을 창작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 그림에서 예술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미대를 들어갔고,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미술 갤러리 안에서 카레를 끓여 나눠 먹거나 지역의 경찰과 청소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청소년 범죄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러한 참여형 미술을 둘러싼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담론적 논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어렴풋이,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인 듯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믿고 예술을 시작했는데, 저자는 좀처럼 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교수는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아직 작가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는 ‘자기 일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혹은 그에 준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중심점’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다음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잘 기록해서 다음 전시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교수는 작가가 에고가 강하고 별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작가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은 일종의 폰지 스킴(Ponzi scheme)처럼 나를 가짜 약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아니면 나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을(아무리 이런저런 반작가적 실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담론이 존재한다 해도 결국 제도는 안정적인 창작자–수용자 모델 속에서 지속되며, 이것은 사실 ‘저자의 죽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 같은 걸)
- 임가영
- 2026-05-01
그만두기 연습 차현지 올리브는 무언가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마다 적외선 치료기의 빨간 불빛을 떠올리곤 했다. 훈련이 끝나면 이비인후과에 가서 대기실 벽 한쪽에 나란히 걸려 있던 길쭉한 원통형 기계의 전원을 켰다.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수화기를 들 듯 치료기를 한쪽 귀에 대고 꾸벅꾸벅 졸았다. 염증으로 늘 귓구멍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뜨겁고 날카로우며 압력이 가득 차는 듯한 통증은 아직도 생생했다. 언젠가 잠수 훈련을 하던 날이었다. 손가락으로 모자이크 타일을 하나씩 짚을 수 있을 만큼 수영장 바닥 가까이 내려가 잠영하던 중,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면서 뭔가가 찢기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수경 너머로 연한 선홍빛 액체가 서서히 퍼지는 것이 보였다. 올리브의 오른쪽 귀에서 난 출혈이었다. 몸을 밀어 올려 수면 위로 향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올리브는 생각했다. 이제 더는 지금처럼 수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즈음 올리브는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다. 하루에 많게는 반나절 가까이 물속에서 체력을 다 소진한 탓에 베개에 늘 침 자국을 잔뜩 내며 꿀잠에 들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잠에 드는 것이 어려웠다. 누우면 자꾸 잡생각이 났다. 하계 수련회에 갈 때 버스는 누구랑 같이 타지. 정혜는 짝을 구했나. 왜 나는 단짝 친구 하나 없는 거지. 이게 다 수영 때문이야. 아, 수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금세 자정이 가까워졌다. 훈련하느라 올리브는 늘 혼자였다. 친구들이 모닝글로리에 가서 샤프펜슬을 살 때도, 삼삼오오 모여서 만화를 그릴 때에도 올리브는 그들 사이에 끼지 못했다. 심지어 같이 수영을 시작한 친구들이 샤워실에서 그녀를 못 본 척 짝지어 수영복 물기를 짜고 있을 때도. 넌 선수반 갔잖아, 이제 우리랑은 못 놀지. 그 애들이 샤워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올리브는 연신 샴푸질을 했다. 거품이 많아져 눈꺼풀에까지 흘려내려도 쓱쓱 닦아내면서. 그러고는 아무도 없을 때 수영복의 물기를 짰다. 너무 많이 짜서 손아귀가 얼얼할 만큼. 됐어, 혼자여도 괜찮아, 까짓거. 주문을 외듯 혼잣말을 하면서. 올리브는 물속에 있는 것보다 물 바깥의 생활이 더 갑갑했다. 레인 안에서 일렬로 쭉쭉 직진, 턴, 직진, 턴만 하면 되는 반복적인 훈련이 그리웠다. 오로지 숫자와 기록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사회적 교감 따위 없는 속 편한 물속이. 너무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면 올리브는 심야 라디오에 편지를 썼다. 직접 손 글씨를 쓰며 사연 받을 주소를 불러주던 디제이가 더듬더듬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며 나직하게 말을 이을 때면 올리브도 똑같이 편지지 봉투에 주소를 또박또박 적곤 했다. 사연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중학생은 너무 어리단 건가. 그래서 다음엔 대학생인 척 보내보았다. 봄이 되면 새내기 대학생들 사연을 자주 읽어주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올리브는 성별과 직업을 바꿔가며 계속 사연을 보냈다. 우푯값이
- 차현지
- 2026-05-01
[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 이태형
- 2026-05-01
[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모르면 죽어 박서련 근황 얘기에 영 소질이 없다. 웃길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를 박장대소하게 하거나 전혀 어두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소재로 분위기를 망치거나. 요즘은 게임도 그렇게 재미 있지가 않아요. 최근에는 이 말을 좀 자주 했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지만 듣는 분마다 놀라셔서 내가 더 놀랐다. 헉 진짜요? 서련 씨가요? 작가님이요? 그게 그렇게 의외이실까, 약간은 머쓱해하다가 내가 한 말이 왠지 ‘요새 밥도 맛이 없어요’처럼, 그러니까 중증 우울증 환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음을 조금 의식하곤 했다. 그럼 이제 여가 시간에 뭘 하세요? 요즘엔 뭐가 재미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게임을…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요 재미있지는 않아도 그냥… 해요. 전보다 게임 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습하듯 덧붙이곤 최근에 삭제한 어떤 게임을 떠올린다. 영주가 되어 한 도시국가를 경영하고 연맹의 일원으로서 왕국 간의 전쟁에 참전하는 콘셉트의 모바일 게임이었는데, 삭제하기 직전 확인한 플레이 타임은 대략 700시간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였나, 한국인 유저가 별로 없을 때 시작해서 다국적 연맹에 가입했고 이따금 인도네시아에 사는 여성 연맹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게임에서 아시안 여성 게이머를 알게 되어서 좋아요. 나도 그래요. 연맹원들에게 내가 한국인 여성인 것을 밝히고 받은 메시지는 대체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나요?’ 같은 것이었고, 그 사람과 내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대화도 내가 잘 모르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서 역시 크게 관심 없는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에 대한 거였다. 상대방이 아주 슬퍼했기에 나는 그 주제에 그리 관심이 없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 며칠 후에 별다른 개연 없이 그 사람이 다른 왕국(이 게임에서 ‘왕국’은 서버를 의미한다)으로 이주했다. 뒤따라 이주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없으니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성은 연맹 내 등급이 차츰 떨어진 후에 연맹에서 자동 탈퇴될 거다. 그러면 연맹 사냥터 인근 개꿀 자리에 위치한 내 성이, 연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물처럼 여겨질 거다. 그럼 연맹원들이 내 성을 공격하겠지. 성이 충분히 데미지를 입으면 왕국 내 랜덤 위치에 자동 이동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한 일주일 걸리려나? 길면 2주? 이 게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기 직전 나는 전투력 1억을 막 넘긴 상태였다. 축하해, piupiu.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연맹원이 연맹 채팅 채널에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성의 전투력이 그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내 성을 공격할 때 연맹원들은 애를 좀 먹으려나? 아니겠지, 우리 연맹에는 일
- 박서련
- 2026-05-01
거짓을, 너에게 - 당신이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궁금증을 느꼈겠지만 차마 에서 답을 찾지는 못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전철희 1. 환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김애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2005년에 출간됐다. 이 책을 처음 볼 당시 나는 애니메이션 (이하 으로 약칭)이 떠올랐다. 그때의 문단에서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미래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문학인들이 고담준론을 나누는데 초신성의 소설에서 애니메이션을 연상한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 20년이 지났고 김애란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나는 등단을 했고 평론가의 책무가 비약과 과장이라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연식을 쌓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20년 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김애란의 작품들을 복기해 보려 한다. 거두절미하자면 『달려라, 아비』의 주제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다. 이 책의 표제작 「달려라, 아비」는 편모가정에서 자란 딸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래전 가출했다.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1)이었던 아버지는 가족부양의 책무를 벗어던지겠다는 무책임성 내지는 다른 여자를 만나려는 욕망 때문에 집을 나간 것으로 보인다. 딸은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전 세계를 누비면서 달리기를 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소설의 뒷부분에서 아버지의 허접했던 인생이 폭로되지만 그럼에도 딸은 자신의 상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맹목적 ‘믿음’은 자기방어 기제의 산물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무능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패배자의 피가 흐름을 긍정한다는 뜻이고, 아버지가 금의환향해서 명예나 재산을 상속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아버지가 이기적인 무뢰한이었다면 버려진 가족들로서는 그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불신과 미움은 본인을 병들게 하는 감정이다. 아버지가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거짓된 믿음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라이너스의 담요로 유용하다. 당시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였던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는 소녀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라고 묻는다. 농담에 가까운 거짓말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진실을 말하려던 찰나 소녀는 잠이 들고 자신의 탄생에 대한 상상을 시작한다. 소녀가 아버지의 답을 회피한 이유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답은 밋밋하고 초라하다. 남녀가 성관계를 할 때 정자가 난자에 착상과 수정을 해서 아기가 생겼다는 생물학적인 설명은 낭만적이지 않다. “부모님이 사랑해서 자식이 태어났단다”라는 말은 손발이 오글거리고 “너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났단다&rdquo
- 전철희
- 2026-05-01
우릴 떠난 채식주의자와 불을 끄는 돼지들 김아인 1 산길의 고지를 넘자, 훅 안개가 끼는가 싶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권은 전조등을 상향으로 바꾸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늦여름이면 곧잘 있는 일이었다. 권은 턱을 당기고 운전대를 단단히 잡았다. 좁은 2차선 도로에 굴곡마다 급커브를 도는 가파른 산길이었다. 늦은 새벽에 비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익숙히 오가는 길이라 해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권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시 반이었다. 이대로면 집에 들어가는 건 세 시나 되어서일까. 권은 어금니를 맞붙이며 나오는 하품을 흘려보냈다. 왠지 평소보다 몸도 찌뿌둥하고, 눈도 뻑뻑한 기분이었다. 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걸어가든 기어가든, 일단 굴러가곤 있다는 게 중요했다. 회사 차량─주행거리 36만 킬로미터의 다마스 트럭이 말썽을 피우거나, 도로가 끊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권은 눈살을 찌푸렸다. 축축한 기억 하나가 머릿속 깊은 곳에 얽혀있는 배관 속을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지나갔다. 권은 그것이 뒤로 남긴 끈끈한 발자국을 되짚어 다시 한번 그 냄새와 습기를 떠올려냈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그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2 권의 별명은 권이었다. 권. 태극권. 영춘권. 북두의 권. 사실 그가 다니는 곳은 주먹질과는 거리가 먼 유도 도장이었지만, 또래 아이들에겐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권이었고, 전혀 다른 곳에 가도 권이었고, 유도가 뭔지 알 만큼 아는 이들 사이에 속해도,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권이었다. 권이 유도를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열여섯은 선수를 목표로 하고 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그에겐 소질이 있었다. 우선 신체적 조건이 좋았다. 체격이 크고, 힘과 유연성이 좋았다. 처음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한 말에 따르자면 균형감각이 굳세고 순발력도 탁월했다. 하지만 진짜 소질은 따로 있었다. 권은 상대 선수의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거나 여러 파훼법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도, 본능에 따라 승리를 위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관장은 그걸 두고 재능의 영역에 있는 감각이라고 말했다. 머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그런 본능적인 감각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란 거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너는 생각하기 시작하면 굼떠져. 알겠어? 그 순간의 판단을 믿고 바로바로 움직이라고. 너는 그게 맞아.” 권은 그 말을 따랐다. 그는 반년 만에 청소년부를 떠나 성인부에 들어가게 됐고, 일 년이 좀 더 지나선 체급과 나이를 통틀어 지역 내에 붙을 만한 상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학교나 시설,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할 때도 주목받을 만큼 두각을 드러냈다. 관장은 권을 자랑스러워했고, 권도 자부심을 느꼈다. 추천으로 체육대학에 입학한 후, 권은 더 많은 시간을 유도에 쏟아부었다. 자잘한
- 김아인
- 2026-05-01
[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게임에 대한 글 김승일 1. 내 친구랑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담배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담배를 끊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자고 각오를 다진다.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뇌신경에 게임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기계가 나올 거다. 그 기계로 VR MMORPG를 해야 한다. 적어도 그게 나올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아직 해보지 않은 게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도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작품이다. 그래서 시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직접 아직 없는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게임을 만드는 모임도 만들었다. 셋이서 10년 동안 게임을 구상하기로 했다. 10년 후에 무조건 게임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10년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계속 미루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원래 ‘베이퍼웨어 프로젝트’였다. 근데 혹시 언젠가는 진짜로 게임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모임 이름을 ‘언메이드’로 정했다. 우리는 일단 우리가 만들 게임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내기로 했다. 2.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게임에 대한 글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에 대한 글은 게임을 죽이는 글이다. 게임을 죽여서 세상에 없는 게임으로 만드는 글이다. 나는 게임 방송을 딱히 즐겨 보지 않는다. 게임 방송은 게임을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가 게임을 직접 하는 대신 게임 방송을 본다. 그것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게임에 대한 글이라고 별다른 것도 없다.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게임의 공략, 비평, 에세이를 읽으면 언제나 그 게임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글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울수록, 이상하게 게임을 실제로 구매하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게임의 근본적 재미는 직접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게임 방송의 시청자가 게임을 구매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리어하는 데 100시간 걸리는 게임의 방송을 100시간 동안 시청한 시청자가 다시 100시간의 모험을 떠나기 위해 게임을 구매할 확률은 확실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 방송이 게임을 죽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 방송이야말로 게임을 가장 생생하게 잘 전달하는 매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플레이하면 다양한 변수들이 생길 수 있지만. 어쨌든 게임 방송을 본 다음 게임을 하면 방송에서 본 것들을 똑같이 만날 수 있다. 오히려 게임에 대한 글이 문제다. 게임에 대한 글은 게임을 결코 생생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게임 에세이는 이미 서비스가 종료된 온라인 게임에 대한 글이다. 내가 오늘 원래 쓰고자 했던 글도 라는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였다. 시인은 추억을 죽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추억을 풀어놓으면 추억은 실제보다 단순
- 김승일
- 2026-05-01
끝에서 두 번째 폭력 - 최은미의 「김춘영」과 현호정의 「달빛」 이미진 1.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도로 데려오기 위해 타르타로스로 내려갔다. 그의 슬픈 음악을 들은 하데스는 잔인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에우리디케가 햇빛에 안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를 따라 캄캄한 통로를 올라갔고, 오르페우스는 자기가 햇빛에 안착한 그 순간 비로소 그녀가 아직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영원히 잃었다.1) 팔레스타인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온 일본의 비평가 오카 마리는 『기억/서사』에서 탈 자아타르 포위와 학살 사건을 다룬 리아나 바드르의 소설 『거울의 눈(1991)』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베이루트 교외에 있는 탈 자아타르 난민 캠프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쫓겨온 사람들이 30년간 난민 생활을 하고 있던 곳으로, 1975년부터 1976년에 걸쳐 레바논의 기독교도 우파 민병대에 의해 몇 개월간 지속적으로 파괴되었다. 『거울의 눈』은 이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작가가 7년에 걸쳐 인터뷰한 증언들을 토대로 집필된 소설이다. 오카 마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소설 중반부 돌연 등장했다 사라지는 ‘나’라는 인물이다. 그가 캠프 밖에서 안으로 잠입했다는 설정은 그간 비인칭의 시점을 따라 캠프 안의 상황에 몰입했던 독자에게 갑작스러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거리감은 캠프 안의 전사 중 한 사람인 하산이 캠프 밖의 전사들을 비판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변된다. “뜨거운 물 속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은 찬물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느낄 수 없다.”2) 오카 마리는 하산의 말보다는 캠프 밖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안의 사람이기도 한 ‘나’라는 인물이 놓인 이중적인 위치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거울의 눈』의 작가가 왜 ‘나’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혼란을 초래하는지를 말이다. 『기억/서사』에는 또 다른 소설 발자크의 「아듀」도 등장한다. 이 소설은 귀부인이었으나 전쟁 중 처참한 일을 겪어 기억을 잃어버린 스테파니와 그녀를 사랑한 필립의 이야기다. 재회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스테파니를 보고 절망한 필립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그녀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하지만 힘겹게 기억을 되찾은 스테파니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3) 2. 나는 쫓겨날 것이다.4) ‘사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건’을 온전히 말할 수 없으므로5)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는 『끝에서 두 번째 세계』의 이라는 챕터에서 에우리디케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를 역사가로 호명함으로써, 그에게 ‘상실 이후’의 임무를 부여한다. 오르페우스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 이미진
- 2026-05-01
모래 유원지 김소라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매일 오후의 풍경이 그렇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저벅이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할아버지는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투명한 아스피린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동그란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덜어내 입안에 톡 털어 넣고는 물도 없이 삼켜버렸다. 아주 보란 듯. 때때로 입이 말라 단번에 삼키지 못하면 얇은 입술에 힘을 주고 한참을 우물거려 침을 모았다.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았다. 그다음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닮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귀담아들을 정도로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영영 소식이 끊긴 아들이라든가 단골손님이라든가. 또는 이 동네에 관한 것, 그리고 저 동네에 관한 것. 전파사 문 앞에 놓인 접이식 철제 의자가 할아버지의 자리였다. 앙상한 다리를 꼬고 구부정하게 앉아 주절주절, 내가 탈 마을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중얼거렸다. 말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이 대화가 아주 일방적이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 나는 늘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는 ‘결국’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 사실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그러다가 결국엔 말이야. 결국 이렇게 된다구. 그 말버릇 때문에 할아버지는 마지막을 다 아는 듯도 했고, 모르는 듯도 했다. 기대하는 듯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가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마지막을 기다리게 된다. 결국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을 길잡이 삼아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를 기꺼이 따라가곤 했다. 천변을 따라 마을버스가 느리게 다가왔다. 이 버려진 동네는 물이 바짝 말라버린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알파벳 U자를 길게 늘여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나와 할아버지는 가장 끝, 휘어진 부분의 막다른 곳에 살았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올망졸망한 단층 건물들을 굽어보는 유일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3층엔 내가 세 들어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딱 알맞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다. 2층엔 건물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살았고, 1층엔 오래전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가 문을 닫은 채 남아 있었다. 이 깊숙한 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승객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푸쉬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올라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게 되어 있거든, 결국. 버스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가 뻐끔거렸다. 여전히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U자 모양의 천변길을 벗어나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지하철역이 나왔다. 단 두 정거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그 사이 풍경은 TV 채널을 돌린 것처럼 완벽히 바뀌었다. 고르게 망해버린 천변과 달리 지하철역 주변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럴싸한 카페와 서점, 은행, 최신 휴대폰을 파
- 김소라
- 2026-05-01
박서양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3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ㅡ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3) 박서양 1부에서는 「빈집」을 중심으로 쓰레기가 공적 처리 시스템에 들어가기 이전, 사적 공간에서 수행되는 ‘버림 노동’과 그 경계의 문제를 살피고, 『자작나무 숲』에서 할머니가 거주하는 쓰레기 집을 통해 쓰레기의 인접성과 배치의 정치성을 검토했다. 2부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손녀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개연성이 무엇을 서사로 승인하고 무엇을 배제하는지를 살피며,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쓰레기와 인접하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이제 연작의 마지막이 될 3부에서는 이러한 배제와 잔여를 가능하게 해 온 서사의 구조를 검토하며, 수직적 깊이에 기반한 개연성의 조직이 어떻게 흔들리고 수평적 배열로 전환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1. 개연성과 중심: 서사의 수직적 구조 주지하듯 개연성은 사건들이 인과적 필연성에 따라 조직되며 서사적 설득력을 획득하는 원리다. 그러나 이 인과는 서사를 하나의 구심점에 수렴시키기 위해, 핵심을 향해 응집되지 못하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과관계에 맞지 않는 사건은 이야기에서 제거되고,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 신체의 미세한 감각, 명확한 동기로 설명되지 않는 충동들은 쓸모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진다. 다시 말해 개연성은 서사 내부에서 질서에 어긋나는 요소들을 걸러내는 원리로 기능한다. 이때 서사의 개연성을 따르지 않는 것들은 언어화되지 못한 채 잔여로 남아 서사 바깥의 영역을 형성하고, 이는 매끄러운 서사 구조에 균열을 내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실재한다. 하지만 이때 무엇을 개연적인 서사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개연성의 원리는 때로 현실의 권력관계와 결합하여 특정한 인과를 필연적인 것으로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불균등한 배치를 정당화하거나 재생산한다. 물질적 층위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배제가 일어난다. 더 이상 사용되거나 교환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쓰레기로 간주된다. 요컨대 서사의 구조에서 탈락한 경험과 물질의 층위에서 배제된 쓰레기는 세계를 하나의 중심으로 정리하려는 질서가 필연적으로 남기는 잔여다. 『자작나무 숲』에서 개연성의 질서에서 벗어난 서사적 잔여와, 가치의 질서에서 배제된 사물(쓰레기)이 나란히 놓이며 공명하는 것은 이들이 동일한 배제의 구조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인물이 명확하고 일관된 동기를 가져야 하고, 뿌려진 복선은 회수되어야 하며, 결말은 갈등의 원인을 해명해야 한다는 소설 작법은 목적론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를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는 무엇이 이야기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쓰레기 집을 만들고 사체를 은닉하는 할머니의 행위나,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열정 속에서 부유하는 여성들의 궤적은 이 기준 앞에서 개연성이 결여된 것으로 처리되며, 괴담이나 소문으로만
- 박서양
- 2026-05-01
[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 포엠맥
- 2026-05-01
[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 구돌
- 2026-05-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 하가람
- 2026-05-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빛의 카르토그라피 임택수 여행지의 호텔에 며칠 묵게 되면, 나는 꽃을 샀다. 야생의 빛 같은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은 나를 밀어내듯 납작해졌다. 유리컵이든 값싼 꽃병이든 물을 담아 꽃을 꽂아두면, 방 안에 없던 높이가 생겼다. 오늘은 미모사 한 줄기. 만지면 부서지고, 멀어지면 공기 속으로 풀어질 것 같은 꽃송이들, 흩어지기 직전의 햇빛 알갱이 같다. 모네처럼, 아버지처럼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었지만 나는 여러 장소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주소는 자주 바뀌었고, 도착한 곳의 계절은 늘 막 시작되거나 막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무는 일보다, 잠시 머문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지나가는 빛이나, 금세 사라질 장면 쪽으로 조용히 서게 되었다. 서울프린스호텔에서 걸어서 오륙 분, 남산 초입에 모교가 있다. 언제나 열려 있는 정문, 비좁은 마당, 대극장의 파사드. 창의 배열과 입면의 분절이 만드는 리듬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스물다섯에 입학한 학교는 경기도로 이전했고, 옛 건물은 부속 캠퍼스가 되었다. 오래전, 이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담장에 바투 붙어 걷던 뒷모습 같은 것. 그리운, 스승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주먹만 한 물방울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 같은 음악. 이해한 만큼 오해한 시간. 나는 입을 다문 채, 늘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같다. 겨울이므로, 칼바람이 분다. 조금 더 늙은 기분이 든다. 뺨부터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다. 밤이 내려오자, 명동의 창들은 하나둘 불을 밝힌다.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 위로 맥락 없이 떠올랐다 끊기는 장면들.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이 잠시 눈앞에 머무른다. 어떤 기억은 슬픔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십 대에 일했던 을지로입구 인쇄골목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 삼십 대의 직장과 디가 살던 충무로 적산가옥. 각각의 시절이 명동 주위의 위성처럼 가물거린다. 무력한 그리움. 명동이 아니라면, 나는 더 기꺼이 미쳤을 것이다. 저만치, 남산타워가 붉게, 느리게 깜박인다. 눈이 녹은 길 위에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큰길의 경사는 그대로인데, 안쪽 골목은 말끔히 정비되었다. 지워진 자리일수록 정돈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술관은 기억보다 작게 보이고, 주변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들어섰다.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들과 생소한 언어들이 궤도를 따라 떠다닌다. 어떤 식당에서는 히잡을 쓴 단체가 치킨을 먹고 있다. 닭을 볼 때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떠올린다. 오래 머물지 못한 빛. 어쩌면 그가 남긴 짧은 밝음이야말로 우리가 통과한 벨 에포크였는지도 모른다. 네온이 쏟아지는 밤거리는 눈이 시리다. 불 꺼진 환전소 앞이 별안간, 환해진다. 눈을 떼면 사라질 것 같은 세 사람이 빛 속에 서 있다. 담배를 문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본다. 그의 두 눈에는 이미 끝이 와 있다. 현실은 늘 늦는다. 시는 그보다 먼저 간다.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내
- 임택수
- 2026-05-01
보희 공현진 * 아이돌을 넘어 훗날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글로벌 스타가 될 연습생 보희는 세 달 넘게 생리를 하지 않았다. 네 달이었나? 가물가물한 만큼 보희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체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다. 두 달을 넘기기는 예사였고 반년 가까이 생리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해 불안하게 여겨본 적은 없었다. 보희를 불안하게 하는 건 피 따위가 아니었다. 일주일 단위로 레벨 테스트가 치러졌고, 월말마다 방출과 잔류가 결정됐다. 노래와 춤 연습을 치열하게 하는 건 당연했다. 땀은 흘리되 먹지는 않아야 했다. 탄수화물이 극도로 제한된 식단을 유지했다. 습관이 되어 어렵진 않았지만 간혹 컵라면이나 순댓국 같은 게 불쑥 머릿속을 떠다니면 명상에 들어갔다. 소용없으면 밖으로 나가 달렸다. 가로수와 반짝이는 건물들과 주인을 앞지르는 개들을 지나며 달렸다. 토할 때까지 달렸다. 먹은 게 없어도 몸 안에서 쏟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몸 안에 들인 적 없는 것 같은 토사물을 확인하며 보희는 안도와 두려움을 느꼈다. 반신욕을 하며 두려움도 몸 밖으로 쫓아내고자 애썼다. 피곤도 근심도 없어 보이는 맑은 피부를 위해. 살면서 노력이 배신당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속상하고 억울해도 별수 없다. 세상은 노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다행히 보희는 노력이 배신당하지 않는 특별한 쪽에 속했다. 타고난 능력도 있었다. 아름다운 몸, 보희는 자신의 몸이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간혹 몸을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운운하는 이들도. 보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잠시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엾게 여기지 않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보희 역시 몸은 껍데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껍데기라 하여 왜 중요하지 않은가. 외면과 내면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보희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곤혹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열여섯 살의 보희는 특출나게 아름다웠다. 저녁이 되어 소속사 근처 샐러드 가게에 가면 가게 사장은 보희가 세계적 스타가 될 거라고 단언했다. 사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이 걸어오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수많은 연예인을 보았지만 보희가 뿜어내는 찬란한 빛은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얼굴에 아무것도 하지 마. 네 나이 때는 네가 얼마나 예쁜 줄 모르겠지만 말이야.” 보희는 소스를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먹으며,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은 사장의 말에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보희는 모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리고, 얼마나 예쁜지. 보희는 꽤 객관적으로 자신의 외모와 매력을 판단했다. 자기 객관화가 상당했기에 자신감과 불안이 함께했다. 소속사에서 가상으로 데뷔 그룹의 조합을 짤 때마다 늘 그 안에 들어갔다. 대개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보희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자신을 망치지 않았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결국 이
- 공현진
- 2026-05-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기 고혜원 익숙함을 좋아하는 수동적 도전자 나는 익숙한 경로를 좋아한다. 산책을 가더라도 평소에 자주 가던 길로만 가고 글을 쓸 때면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작업한다. 그 카페에 자리가 없다면 2순위, 3순위까지 정해져 있다. 사실 노트북과 글을 써야만 하는 내가 있다면 어느 카페든 상관이 없겠지만 나의 발걸음은 익숙한 곳을 향해 간다. 언제였을까.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직 전 회사와 이직 후 회사는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중심으로 정반대에 있었는데, 자연스레 이전 직장 방향 지하철에 몸을 실으려는 걸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내렸던 적이 있다. 아직 내 삶의 경로가 바뀐 걸 몸이 인식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만큼 몸에 배어있는 행동들이 나를 지배한다.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 회사 또는 집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디로 가야지’라는 어떠한 의지가 배제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멍을 때리다가도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회사로 나가기 위해 합정역 10번 출구 쪽으로 몸이 향한다. 몸이 기억하는, 현재진행형인 내 삶의 경로다. 그래서 주말마다 작업하기 위해 가는 장소도 대부분 정해져 있다. 주말인데 글 쓰러 나왔다고 말하면 오랜 지인들은 ‘오늘도 거기?’라며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그럼 나는 ‘네, 마감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거기에 없는 날은 마감이 없거나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날이다. 그럼 이따금 지인들은 글 쓰는 나를 찾아와 지나가다 들렀다며 인사하고 갈 때도 있다. 이럴 때면 마치 게임 속 NPC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머무는 공간에 익숙해져야 긴장이 풀리고 효율이 좋아지는 나에겐 내가 잘 아는 공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꽤 중요하다. 그런 내가 6주 동안 새로운 공간으로 내 몸을 던지는 건, 도전이었다. 굳이 새로운 곳에, 무거운 짐을 풀고 적응해야 하는 곳에 ‘지금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신청할 때는 4주만 신청했었다. 너무 길게는 힘들 것 같아서. 그렇지만 입주 전 통화로 담당자님께서 진짜 4주로 충분하겠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다들 더 지내고 싶어 하신다고. 그 제안에 나는 그렇다면 6주를 꽉 채워 지내보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레지던시 지원사업’에 왜 신청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올 거다. ‘낯선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왜?’ 그러니까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반 페이지에 걸쳐 외쳤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것을 곁에 두는 건, 내 호기심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언젠가 나는 왜 이럴까, 하며 고민하던 내가 나를 정의하는 단어로 ‘수동적 도전자’라는 수식을 만들었다. 익숙한 걸 좋아하면서 이따금 아예 새
- 고혜원
- 2026-05-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날마다 이방인 진보라 그날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서울의 한파가 절정에 달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따뜻한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함박눈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배정받은 방의 문 앞에 내 이름이 적힌 ‘소설가의 방’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본래 호텔 객실이란 철저히 익명의 장소다. 하루, 혹은 며칠 단위로 주인이 바뀌며 앞선 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는 것이 그곳의 가장 큰 책무일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호텔이라는 공간이 지닌 엄격한 불문율일 테고. 그 견고한 익명의 공간이 기꺼이 나를 제 일부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를 위한 소설가의 방은 마치 이 공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다는 정중한 방증 같았다. 집이 있는 부산을 떠나 이토록 긴 시간 서울의 심장부에 거처를 둔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창가로 다가가, 흰 눈의 눈부신 비행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바닥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눈이 세상을 덮으며 명동의 소음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처 없이 서울을 떠도는 유랑자가 아닌, 비로소 머무는 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호텔 투숙객의 90퍼센트는 외국인이었다. 로비에는 늘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들렸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매일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짧으면 이틀, 길어야 일주일 사이에 짐을 싸서 떠났다. 누군가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증발하는 곳. 이 공간의 본질은 본래 머무름이 아니라 스쳐 감에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호텔의 배경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호텔 직원들에게 나는 수많은 익명의 투숙객 중 하나였을 테니. 나 역시 그들의 친절한 마스크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던 어느 아침, 직원 한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작가님, 오늘도 일찍 나가시네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익숙한 이를 발견한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나는 어쩌면 일종의 균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방 번호 뒤에 숨지 못하고, 익숙한 얼굴과 기척으로 호텔이라는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라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위화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역설적으로 내가 여전히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들인 시간보다, 내가 그 공간을 홀로 기억해 온 시간이 훨씬 깊고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용 세탁기가 몇 시에 제일 붐비는지 체감했고, 조식 식당 창가로 들어오는 서울의 아침 볕이 몇 시쯤 따스해지는지를 알아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간 수십 개의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어제 본 눈매를 찾아
- 진보라
- 2026-05-01
애프터 이미지 연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차 밑에서 죽은 고양이를 봤다 친구는 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팔을 괸 채 창밖 바다를 보며 오기로 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나의 얼굴은 상상 속에서만 정확히 떠올릴 수 있는데 도화지 위로 옮기는 순간 전부 흩어져 버린다고 했다 친구는 지우개 가루를 가리키며 얼굴은 사실 이런 것이라고 했다 내가 죽은 고양이를 볼 때 친구는 죽은 고양이의 미래를 볼 것이다 흙에 스며들고 하수구 밑을 흐르다 봄비가 되어 내리는 쓰러진 가로수의 뿌리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친구가 기다리던 사람들의 발끝에 겨우 닿은 길이 되기도 하는 미래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큰 비닐에 담아 흙에 묻었다 아니면 투명한 방탄유리 벽 너머에 박제하자고 기계처럼 견고하게 만들자고 사라지는 것들에게서 들리는 망가지는 소리는 무서우니까 쇠로 적힌 일기와 겨울바람 새어 나오는 악몽을 납땜하면 안전해지는 걸까 더 부서지기 전에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비스듬히 걸으며 흙 속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리 벽 뒤에서 얼굴 잃은 금속 소음이 되어 사는 미래의 친구를 생각한다 다음날 깨끗해진 골목에서 친구를 부르면 친구가 나타날 것 같다 차 밑에 손을 넣으면 젖은 흙냄새 골목 모퉁이를 돌며 길처럼 고요해지는 자세를 연습하고 그늘진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다 지우개 가루가 테이블 위에 흩어진다 이렇게 많은 얼굴이라니 조금 징그럽지 않아? 물으면 친구는 휘파람을 불며 이렇게 많은 얼굴들이 온다니 기쁘지 않아? 물었다 창밖 파도가 잦아들었다 친구의 뺨을 만지면 차갑고 선명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런 건 얼굴이 아니라고 했다 선분으로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잠시 말이 없다 약간 젖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다 네 개의 희고 작은 발이 나란히 테이블 밑에 있다 매번 무섭고 이상하도록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 여기는 조용하구나 친구는 고양이를 고양이에게로 나무를 나무에게로 되돌릴 때라고 한다
- 연우
- 2026-05-01
Topography 연우 큰사람이 되렴,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걸었던 아름다운 주문 주름은 온몸 되어 나는 정말 큰 사람이 됐고 몸이 이렇게 자라다니…… 칫솔로 이를 긁으면 잇몸에서 흐르는 모래 더 커다란 샤워기가 필요해 발치에서 개미들 수근거린다 길을 달리면 검은 뒤통수의 개미들, 끝없는 굴 속으로 도망친다 내가 재난이라니! 팔과 다리가 매일 아침 한 뼘씩 자란다 방에서 나와 걸음을 떼면 엄마가 종이비행기처럼 접힌다 펴지지 않는 선분 신비로운 보랏빛 무늬가 돋아나는 엄마 등도 온통 주름 축축한 솜처럼 누가 뭉쳐다 버린 구름처럼 엄마 여전히 바닥에 누워 계신다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몸을 접는다 두 번 네 번 여덟 번 (왜 더 접히질 않는지!) 반듯해진 끝에서 만나요 도시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 모퉁이를 접어 두고 간 숲이 나온다 미루나무보다 미루나무 그림자가 더 빨리 자라는 나의 등뼈 너머로 우거지기도 하는 숲은 집이 되어 나는 영영 커져서 산이 된다 숲 한가운데 누워 젖은 구름 덮고 잠들어도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바깥의 꿈 끓는 솥에서 피어오르는 상한 옥수수 연기와 빗물 새던 집은 경험한 적 없다고 적는다 큰사람보다는 이름표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잠들기 위해 침대의 태도를 이해하는 울고 있는 사람의 등에 딱 맞는 굴곡의 가슴을 가진 사람 텅 비도록 가득 찬 괄호가 불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생일에는 가족들을 숲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너무 커버린 나를 보지 못했다 낮에는 산책로를 걷고 밤에는 바위에 앉아 별을 봤다고 했다 며칠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았다고 그랬다 나는 그때 밤이 나의 초능력인 듯 간만에 무서운 게 없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커진 나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랐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친 얼굴로 이제 됐다며 돌아가려 한다 참을 수 없는 건 그들이 나의 등 밑에서 며칠을 보내다 내가 엎드려 울던 그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연우
- 2026-05-01
다면적 인성 검사 심선자 하늘이 움직인다. 개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짖는다. 닭이 알 낳는 놀이를 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당신에겐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습니다. 의사가 말한다. 그게 고민의 시작점입니다. ㄴㄴ 는 네네가 아니라 노노입니다. 가까운 곳의 화분과 약간 멀리 서 있는 소나무 얼마나 자주 물을 주어야 하나요? 때를 자주 놓칩니다. 이유가 없는 게 이유입니다. 어쩌면 제 삶에 이유라는 게 별로 없는지도 몰라요* 당신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입니까? 나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입니다. 길을 걸을 때 바닥의 금을 밟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편입니까? 금을 만나면 뛰어넘기 위해 애를 씁니다. ㅇㅇ 은 응응이 아니라 우웩우웩입니다. 아주 많이 그런 편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게 보인 적 있습니까? 당신이 숨겨온 것들 모두 여기로 가져와 주세요. * 영화 「The Canyon」 중에서
- 심선자
- 2026-05-01
뿌려 심선자 여름이 빵 터지면 그 사이를 빨리 지나간다 손에 쥔 공을 움켜잡으면 손힘이 세진다고, 내가 무서워한 여름 폭우 속을 더 지나와야 한다고, 테니스 코트로 나를 밀어내는 자세로 그는 시작을 외치며 무서워하지 마 팔을 더 크게 벌려서 목을 휘감으면 목을 조르는 팔이 생겨나고 손목이 흔들린다는 말에 내가 흔들리고 있다 테니스 라켓으로 힘껏 공을 뿌리치면 공은 더 먼 곳으로 뿌려지지 않고 어디를 보세요, 공을 안 보고 공을 더 먼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넘어가는 공은 보지 마세요 의지는 의지대로 넘어지려다가 (공을) 뿌려 (공은) 뿌려진 채로, 담을 넘어서 …려다 멈칫하고 오늘은 멀리 가지 않은 것들이 테니스장에 남았는데 어둠이 나를 밟고 지나가려다 그림자를 더듬고 있다 여름을 통과하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흘러내리는 여름을 주워 담고 있다
- 심선자
- 2026-05-01
맹물 샤워 사강은 우리가 수감 중일 때 교도관이 말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여길 나갈 수 없을 거야 그때마다 너는 내 귀 막으며 흘려들어 말과 경고가 묽어질 수 있을까 법과 체계가 적셔질 수 있을까 나는 가려워서 등을 긁었다 아침 체조 시간 운동장 너는 모래에 침 뱉어 진흙 만들고 먼지바람으로 충혈된 내 눈에 발랐지 바른 것 위로 모든 불어 넣을 수 있지 후 하면 숨결로 새 생명도 탄생시키지 너의 가장 더러운 것이 나의 가장 깨끗한 것보다 깨끗하고 빛나 더럽고 진득한 내 눈에서 맑고 묽은 것 태어나 뚝뚝 흐를 때 너는 받아다가 쑥쑥 잘도 키워냈지 정오 자율 종교 시간 너의 기도 한 바가지 퍼담아 내 귀에 뿌리면 모래 한 줌 우수수 떨어지고 내 등 뒤로 지옥불 데워지고 너 혼자 키워낸 것들 하나둘 던져버리고 등줄기에 땀 흘러 냄새가 나니까 나는 얼른 씻으러 가야 해서 어떻게 내가 널 저주할 수 있겠어 내가 죽인 인간들 전부 천국에 살려뒀는데 어떻게 네가 날 구원할 수 있겠어 나만 두고 가석방될 텐데 심심한 너의 구형은 맹탕 같아서 이윽고 천사가 벽을 뚫고 널 데리러 왔잖아 물거품처럼 넌 사라졌잖아 탈옥수 찾던 교도관 눈에 물 튀겨서 눈물 흘렸잖아 난 혼자 씻을 시간 없잖아 너 혼자 천국 갈 때
- 사강은
- 2026-05-01
찬물 세례 사강은 출소 날이 되자 문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밖은 너무 밝았다 어릴 때 분명 빨강으로 칠했던 태양의 흰 줄기 때문에 눈을 감았다 나는 씻지 않아 냄새가 났다 경적을 울리는 하얀 카니발 한 대 욱여넣어 주는 두부 한 모 세게 쥔 채 건네는 자판기 종이컵 커피 한 잔 울면서 얼른 가려 주는 마스크와 낄낄대며 흩뿌리는 밀가루 눈을 뜨면 주위에 온통 흰 것들이었다 하나의 흰 것이 한 사람씩 데려가고 있었다 나 혼자 검게 남아 냄새 풍기고 있을 때 흰 줄기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어디서 본 적이 있지만 전혀 모르는 어딘가 나와 닮았지만 아예 다른 어쩐지 먼 친척 같기도 한 그가 다가와 오백 밀리리터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나는 그걸 마시기보다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냄새나고 가렵고 더럽고 엉망인 것들이 기어다녀서 까맣게 씻긴 적 없는 어깨만 겨우 적셨을 때 그는 친절히 뚜껑까지 따서 한 병을 더 쏟고 쏟고 쏟아지고 쏟아지는 젖지 않고 흘러내리는 여전히 같은 몸 일곱 병째 뚜껑을 열던 손을 붙들고 소용없다고 말하자 그는 태연히 더러우니까 씻어야 하고 물을 쓰면 된다고 희지 않고 투명하게 엎어주고 그는 돌아섰다 흰 속으로 희게 몇 년 만에 돌아온 집 현관문 앞에는 이 리터 생수 여섯 묶음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나는 목이 말랐고 내 몸에서는 여전히 냄새가 났다
- 사강은
- 2026-05-01
일러두기 나하늘 ∙ 굵은 글자체로 된 부분은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표기된 부분이다. 대문자 표기는 강조점을 찍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 이 책의 원제는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다. ‘고통’ 또는 ‘사랑’이라는 직역을 피한 것은 의미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가능한 건조한 표현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이나 생각 따위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독려하는 일이라면, 영어 번역본 제목이 저자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번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곁에 삶이 널려 있다는 점이 삶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 또한 이와 관련한 저자의 후기 저술의 태도를 고려해 이 책에서는 지금의 표현으로 옮겼음을 밝혀둔다. ∙ 괄호( )는 원저자의 것이며, 대괄호[ ]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김희영 역,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의 '일러두기'로부터.
- 나하늘
- 2026-05-01
과흡연자 나하늘 나를 보러 온 친구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디서 흡연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피울 수가 있는 거야 여긴 흡연자들을 위한 도시구나 생각했지 이 도시와는 달리 길 가면서 흡연하기는 정서상 한국에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흡연자의 권리에 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친구는 좀처럼 웃지 않는데 만약 당신이 장수한 애연가 이름을 몇 개 알고 있다면 친구를 웃길 수 있다 먹일 수 있다 입힐 수 있다 씻길 수 있다 재울 수 있다 깨울 수 있다 살릴 수 있다 안을 수 있다 잊을 수 쓸 수 있다 졸업할 수 있다 그 장면에서 고다르가 이따만 한 시가를 피우더라 친구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속죄받을 수 있는 사람 같아 친구는 담뱃갑 앞에 그려진 경고 사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몸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나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라고 벌받을 것 같다고 단 거 먹은 거 그런 생각한 거 밤새운 거 오래 잔 거 미워한 거 좋아한 거 물 마신 거 꿈꾼 거 말한 거 말 못 한 그 장면에서 그 장면으로부터 웃게 만들 수 있다고
- 나하늘
- 2026-05-01
뒤에서 김한규 뒤로 간다 뒤로 빠진다 뒤가 애초다 앞을 지우고 뒤가 앞이다 다시 앞을 없앤다 한 생 따위가 아니다 생을 절멸하였다 뒤였다 뒤에서 일어나는 것을 뒤에서 지웠다 막후의 막후로 뒤가 된다 뒤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뒤다 보이는 것이 없고 볼 것이 없는 뒤로 색을 갖지 않는다 말없는 빛이 섞인다 검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니다 갖지 않은 앞이 발생하는 것을 거듭 돌아서는 뒤다 여지가 없는 시원으로 뒤가 되면서 시원을 없애고 있다 뒷면으로 면의 속사정을 뒤로 지웠다 뒤의 일과 뒤가 필요한 배후를 갖지 않으며 뒤로만 있다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내놓을 필요가 없다 구걸이 없다
- 김한규
- 2026-05-01
아닌 게 아니라 김한규 졸음을 쏟아내며 오고 있다 사후 경직의 콘크리트 사이로 고양이의 발바닥보다 소리 없이 오고 있다 이불을 걷어찰 수도 일어날 수도 없이 온다 조명탄도 방화벽도 소용없이 오고 있다 어떤 것도 들리지 않고 보여줄 필요 없이 오는 중이다 겨우 눈을 뜨고 팔을 휘저어본들 오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질문을 꺼뜨리며 오고 있을 뿐이다 흔적이나 표시 따위도 아무런 실천도 없이 오고 있다 냄새도 징후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채로 오고 있다 올 것이 오면서 오는 것을 모르게 오고 있다 가로막는 무엇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올 뿐이다 예정도 도착도 없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일말의 예감이나 예언도 없이 한 치의 연착도 없이 오는 중이다 팽개칠 것도 담을 것도 없이 오고 있다 끝까지 끝이 없이 오고 있을 따름이다 무엇을 막론하고 오고야 만다 오는 것이 오고 있다 오고 나서도 올 것이 도착하지 않은 채로 있다
- 김한규
- 2026-05-01
창조적인 날이면, 금시아 아마 한 때 안개이거나 노을이었을지도 모를 흉터와 얼룩 가득한 저 몸빛, 하염없이, 우두커니, 저 아래 아득한 호수 언저리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헉헉 기슭을 올라오는 먼 산 그림자와도 유독 친근해진다지 그 커다란 몸에서 물풀과 물고기 떼 헤엄치거나 다슬기들 흥얼흥얼 기어다니고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마른 살갗에서 물이끼 향 진동하는 창조적인 날이면, 새들도 곤충들도 그 몸에 들어 은밀히 사랑을 하고 간다지 삐뚤빼뚤한 고대 문자 같거나 벌레가 한입 베어 먹고 남긴 것 같은 문양들 넝마처럼 피어있는 총성들은 애면글면, 오묘하고 신비한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지상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꽃들의 미로라지 총알 바위*, 전장을 지나는 계절의 모진 배후에도 그저 묵연하고 처연한 그 이름, 시간은 무위, 라고 부른다지 * 강원 춘천 배후령에 있는 총알 바위
- 금시아
- 2026-05-01
공기 베틀* 금시아 재채기가 났습니다 첫울음이 태어났습니다 마당가 감나무와 집오리 한 마리가 눈이 맞았습니다 눈이 맞는다는 것은 낯선 두 세상이 체온과 간격과 모양을 엮어 또 하나의 신탁을 짓는 일입니다 공경 말고는 어떤 다정도 절제한 사건은 완벽해서 그들의 신탁은 조화로웠습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칩니다 빈번한 시행착오입니다 좀체 종잡을 수 없어 함부로 흐트러지거나 뒤섞여버린 공기는 혹독하고 무심합니다 똑같은 밀도의 이야기가 없어 무적의 가벼움은 때때로 세상을 벌거벗기거나 실격시켜 버립니다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두 이야기는 분리되었습니다 지그시 감은 눈 속으로 휘청휘청 이야기가 지나가면 눈물은 작은 재채기에도 저 멀리까지 번집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상관없습니다 평온하든 불평하든 또 태어나고 흩어집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무의미가 의미일까요 태어나고 사라진 마당의 질서는 잔혹동화일까요 낮과 밤이 태어난 모든 첫 숨 이야기, ‘공기 베틀’입니다 감나무에 감꽃 흐드러지고 오리들 모여 맛있게 쪼아 먹고 있습니다 뭉쳐지면 재앙 같은 공기라 해도 간절하면 기적도 빈번합니다 전화벨이 울립니다 첫울음을 파툼이라 배웁니다 * ‘공기 베틀’ - 조선 갓셜 『스토리 애니멀』에서 인용
- 금시아
- 2026-05-01
오라클 강하라 내가 아직 젖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우산을 건네줍니다 이건 너무 친절한 예언이어서 가끔은 겁이 납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지 나보다 먼저 아는 사람들이 창문 밖에 서성입니다 이별 노래가 먼저 도착해 있는 밤에는 어김없이 이별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이 계절을 밀어냅니다 따뜻한 수프를 젓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었는데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젤리 컵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유리 파편이 눈에 튄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교복 입은 어린이가 튀어나와 어른 춤을 춘다 나에게 총구를 겨누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속도로 어른 춤이란 건 대체 뭔지 아쉽지만 비명은 내지를 영혼이 없고 슬픔과 귀여움이 재난과 농담이랑 한집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슬픔은 표정을 짓기도 전에 떠나가 버립니다 그가 두고 간 일기장을 훔쳐본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슬프다고 적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휴지를 건네줄까요? 우리는 서로의 날씨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를 안아줄 수 없어요 해가 종일 떠 있거나 눈이 오는 일들은 빈번하고 나는 그런 세계의 사람들이 부럽거나 밉습니다 펼친 우산에는 아직 떼지 않은 가격표가 붙어있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지금 휴지가 반값 세일을 한다고 친절히 일러줍니다 나의 결핍은 계산된 것입니까, 발명된 것입니까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세계를 구경만 합니다 내가 원한 적 없는 사랑이 내 방 가득 눈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젖지도 않고 유리 벽 너머의 날씨를 믿지 말자고 다짐하는 말만 믿습니다
- 강하라
- 2026-05-01
소멸신화 강하라 새하얀 생크림 위로 양말 신은 발목들이 꽂힌다 다 모였니? 손 놓치지 않고 설탕과 공기가 미끄러뜨린 겨울의 언덕 수많은 발자국이 그 위에 찍혔을지도 몰라 그럼 너는 이 유령의 길을 따라오렴 우리는 주저앉아 포크도 없이 손으로 흰 것을 퍼먹는다 입안에서 스러지는 그것은 차갑고 부드러워 너와 내가 험하고 둥글게 잘라먹는 시간의 단면들 곧게 잘리지 않아도 젖은 딸기향과 피의 색은 구분할 수가 없어 네가 눈을 꼭 감았을 때 감긴 눈꺼풀의 핏줄과 미세한 떨림을 몰래 훔쳐보면 방 안의 모서리가 지워지고 작고 뾰족한 빛들만 살아남아 파르르 떨리면서 나에게 무엇인가 묻는데 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고 혀로 입술을 쓸다 보면 지도처럼 발견되는 것 양각과 음각으로 피하려 할수록 이미 닿아버린 미로 속 그렇게 타고난 것들이 우리의 길이 되겠지 바라는 게 없다 해도 바라는 게 있고 바라는 게 진짜 없으면 바라야 할 게 생겨 이를테면 건강 기뻐서 부르는 노래는 어째서 늘 조금 슬프게 들릴까 슬픔을 미리 불러내는 건 슬픔을 물러나게 하는 의식일지도 모른다고 어서 와 나이 든 것을 축하해, 소원을 빌어 병들게 될 것을 환영해, 소원을 빌어 은색 큐빅을 둘러 붙인 휠체어의 바퀴, 수액과 나란히 매달려 달랑거리는 분홍색 토끼, 알록달록한 깁스, 우리의 전시장, 이름 옆에 찌그러진 이름과 하트들 그래, 소원을 빌기 위해 너는 더 아프게 될 거야 이 순간의 불빛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까우니까 괜히 이 세계의 규칙을 위하여 태어났구나 꿈의 멸종, 영원의 방랑, 사랑해 참을 수 없는 가려움 재채기하며 색색의 밀랍이 녹아내린다 시작과 끝의 우리로부터 하얗게 엉망진창 된 기쁜 우리 젊은 날
- 강하라
- 2026-05-01
[문장웹진 다시 읽기] 우아한 세계에서 현관 닫기 ― 황인찬「현관을 지나지 않고」(2015년 10월호 수록) 최예솔 5월의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독한 집순이라는 점이다. 내가 집을 사랑함에 있어서 계절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온이 오르고 꽃이 피고 온갖 가정의 달 행사로 거리가 북적거려도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추우나 더우나 집이 좋다. 집은 언제나 집이고 나는 그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다. 바깥이 유독 불안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집에 있을 때,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깥의 내가 가짜라는 건 아니지만. 바깥의 나는 목이 늘어난 잠옷을 입거나 푹신푹신한 쿠션을 머리와 다리 아래에 각각 두 개씩 끼고 있거나 앞면이 어디든 관계없이 대충 이불을 휘둘러 덮고 있을 수 없다. 몇 시간 동안 누워서 소설만 생각(쓰지 않고!)할 수도 없고 내 베란다의 식물들을 가만 바라보거나 시든 잎을 잘라주면서 혼잣말을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내게 불편한 일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집 밖의 나는 보통 불편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게 사실이라는 점이…… 가장 불편한 일이다. 이제까지 내가 집(보다는 나의 집을 향한 사랑)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은 내가 이번에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시 역시 집에 대한 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읽는 동안 가만히 집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고 그게 내 집도 아닌 남의 집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누구의 집인지도 모른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 시가 그렇게 마냥 편안하고 좋고 재미있는 시였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현관을 지나면, 이 현관을 지나면, 불 꺼진 거실이 보이고, 낡은 소파가 보이고, 그 소파에 누우면 서늘한 기분이 들겠지 식탁이 보이고, 식탁보가 보이고, 빈 의자가 보이고, 의자의 네 발에 씌워 둔 테니스공이 보이고, 꽃무늬 벽이 보이고, 벽에 붙은 두 연인의 오래된 사진이 보이고, 낮은 탁자와 그 위에 놓인 빈 쟁반이 보이고, 낡은 유리장이 보이고, 유리장 안으로 그릇이나 항아리 따위가 보이고, 항아리의 흐린 무늬가 보이고, 유리장은 닫혀 있고, 닫혀 있는 많은 문들이 보이고, 불은 꺼져 있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너는 언제까지나 물을 틀어 두고, 그밖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현관을 지나면, 이 현관을 지나면,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마주하는 일이 자꾸 계속되겠지 현관을 지나면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 그러니 앞으로는 이 집을 나가지 말자 ―「현관을 지나지 않고」 전문 「현관을 지나지 않고」에서 현관을 지나면 보이는(혹은 보이리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게도 화자의 상상을 따라간다. 화자가 그려보는 집 안의 풍경은 그다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친 집 안의 풍경이라고 해도, 혹은 내가 살았던 어느
- 최예솔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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