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 작성일 2026-01-01
- 댓글수 0
문장웹진 2026년 첫 호를 열며,
12월 초에 많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고 오한이 나서 간신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a형 독감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 할 일이 산더미인데 하필 이런 때 독감이라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몸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도 정신적으로 저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는데,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절대적인 안정과 휴식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오한과 기침도 사라졌고 약간의 컨디션 난조만 빼면 괜찮습니다. 와병 중에 저를 초조하게 했던 업무도 그렇더군요. 며칠 쉰다고 크게 잘못되거나 제게 큰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저 제 마음이었죠. 내년에는 너무 스스로를 밀어 붙여가며 살지 말고, 치열할 땐 치열하더라도 제 몸과 마음을 더 돌봐가며 생활해야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해봅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난 호를 뒤적거리다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야 할 일”(손유미, <윤유월 성곽 돌기>(12월호))이라는 대목에서 잠시 멈칫, 했습니다. 애쓰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내년에도 ‘죽어라’ 살고 있을 제 모습이 스쳐 지나가서요. 한편으로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면서도, 바로 그럴 거기 때문에 나 자신을 더 돌봐야겠다는 기특한 다짐도 하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신년 에세이를 준비했습니다. 총 4인의 저자가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개인적인 소회를 들려줍니다. 이번 기획은 저희가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의 연말연시는 어떠셨나요. 어쨌거나, 2026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문장웹진 편집위원 윤재민 평론가 외 편집위원 일동

2026년 1월호 표지 그림 <새해돋이> ⓒ 피츠(pits)
문장웹진 2026년 1월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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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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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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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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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1월호 살펴보기
[문장서포터즈] 가능성의 길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 -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이성 1 안녕하세요.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네요. 개인적으로는 문장서포터즈 2기 ‘쓰담’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학 콘텐츠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문학을 매개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 무척 보람찬 시간이었죠. 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실 때쯤이면 새해가 밝아있을 텐데요. 저는 이번 원고를 구상하면서 파일 제목을 ‘세밑에서 새해로’라고 붙여놓았대요.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과연 새해에는 또 어떤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새해에도 역시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쓰담’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처럼 무엇보다 가능성을 믿는 한 해가 된다면 좋겠네요.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엄마, 나 소설 안 쓸래.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래.”1) (엄마는 이렇게 답하죠. “쓸 거면서 또 저런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앞의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렸어요. 일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인물의 태도가 미래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어쩌면 때로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다짐이 우리를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저도 이제 새해라는 가능성을 향해 첫발을 내디뎌보려 하는데요. 그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새 출발을 앞두고 있던 제가 문학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얻었던 순간이죠. 새해로 도약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 중인 분들에게 세밑에서 전하는 저의 후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 그 순간을 전해보아요. 2 지난 2025년 가을, 일상을 지속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는 문학주간 행사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 물리적으로 문학과 멀어져 있던 시기였기에 문학의 힘을 빌려 조각난 일상을 수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문학주간과 관련된 글을 찾아 읽고, 저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 기획의도 우리가 만약 어떤 트랙을 달리고 있다면 그리 머지않은 곳에 구름판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견고하고 상상할 수 있지만 막상 상상한 대로는 닿지 않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은 몹시 중요합니다. 높이 뛰어오르려면 적당한 타이밍을 생각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죠. 문학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구름판을 감각하게 해줍니다. 내가 아닌 삶과 삶으로 이루어졌기에 분명 나인 세계 같은 것들이요. 문학은 자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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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 중국 천진(天津, Tiānjīn) 책기행 문장서포터즈 2기 박소희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서점이 있다. 서점이 없다면 책 한 권이라도, 책 한 권도 없다면 문장 한 줄이라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어디를 가든 서점이 있다면 꼭 가보는 사람에 속한다. 비록 그곳이 해외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현재 중국 천진에 위치한 남개대학교(南开大学) 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지난 몇 년간 배워왔음에도 곳곳의 한자들은 낯설었다.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낯선 생활 방식까지. 나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름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곳에는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이름만 남아있었다. 천천히 생활에 적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점이었다. 이곳에도 책방이나 서점이 있을 텐데 어디에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나는 지도를 켜서 서점들을 하나씩 찾았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이틀간의 천진 책기행을 적어본다. 사진1. 무명서점 무인도 서점과 무명서점 책기행의 시작은 늘 가는 학교 근처부터다. 학교의 서남문으로 가면 작은 책방이 두 곳 있다. 하나는 무인도 서점이며 하나는 무명서점이다. 중국의 몇몇 장소들은 건물 내부에 있어 이곳이 맞나 헷갈리기도 하다. 처음 간 무명서점도 그랬다. 또 두 서점 모두 벨을 누르거나 노크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운영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러니 중국의 작은 책방을 방문할 때면 의심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면 된다. 분명 안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들어간 서점 내부는 아늑하고, 따뜻해서 마치 가정집에 초대된 손님이 된 것 같았다. 고양이들이 있었고, 곳곳에 책이 있었다. 책방지기는 “여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이곳에는 오래된 책들만 있다”고 말했다. 역사‧법‧소설 등 여러 종류의 책이 있었으나 주로 경영 도서가 있었고, 중국 문학이나 한국 문학은 비교적 적었다. 비치된 도서 중 비교적 문학의 비율은 적다는 말에 조금 더 구경을 하고 서점을 나섰다. 책을 읽고 싶을 때나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사진2. 무인도 서점 그리고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무인도 서점으로 향했다. 이곳도 벨을 누르니 책방지기가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어쩐지 조금 더 환영받는 느낌도 들었다. 이곳은 무명서점과 달리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저런 소품들이 있었고, 무명서점보다 문학, 과학 등 각 분야와 관련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한일문학 코너에서는 한강 작가와 김애란 작가 등의 작품과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가 있었다. 다만 한국 문학은 일본 문학에 비해 비교적 수가 적었다. 내가 아쉬움을 표하자 책방지기는 원한다면 직접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김애란 작가가 유명하며,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란 작품을 추천해 주었다. 한편 무인도 서점은 대출카드를 만들어 책을 빌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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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무명(無名)의 상품, 번역의 연쇄 : 네트워크 시대의 시와 저자성 이성주 1. 저자성의 균열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시 비평의 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는 저자성(authorship)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 쓰기에 인공지능을 포함한 다중 행위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저자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입장 역시 강하게 존재한다. 두 입장 사이에는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고, 그에 따라 저자-시-독자의 관계나 독창성(고유성)을 둘러싼 논의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관련 논의를 모두 정리하거나 판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성 비판이 오늘날 어떤 형식과 논리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최근의 평문 가운데 하나인 박상수의 「영원한 베타 테스트로서의 여름」(『문학동네』, 2025 가을호)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 비평은 2010년대 이후 한국 시에 만연해진 ‘납작함’의 감각을 핵심 문제로 진단하며, 저자성 해체 담론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 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참조가 된다. 박상수가 말하는 ‘납작함’이란 최근 시에 나타나는 시적 주체의 무력함, 대상에 대한 비관여성(非關與性), 타자와의 상호작용 약화, 그리고 ‘메타적 인식의 과정’만이 부각되는 경향 등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박상수는 최다영의 비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시의 생산 주체를 비인간 행위자와 기술 장치까지 포함하는 연합적 모델로 긍정하는 최다영의 논리가 결과적으로는 주체의 저항과 행위 가능성 혹은 내면의 복잡한 역학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본 글의 맥락에 맞춰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자성 해체’를 동시대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승인할 때 타자성이나 윤리적 긴장이 소거된 ‘납작함’ 역시 쉽게 수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다영의 입장에 서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박상수의 글이 지닌 문제의식에 많든 적든 공감하지 않기란 어렵지 않을까. 확실히 최근 시에서 ‘타자와의 접촉면’이 얕아지고 있음은 박상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인터넷상에서 실수나 실언 하나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뒤집고 때로 그것을 근거 삼아 혐오를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박상수가 ‘무엇’을 주장하는가에 있다기보다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의 글은 맥락이 다른 다양한 이론과 담론을 빠르게 호출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가령 한병철과 마크 피셔가 별다른 매개 없이 나란히 놓이고, 현대 신학 담론의 어휘들은 그것이 형성된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문학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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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등 돌린 김은자의 이미지와 무등산 김서라 1. 등 돌린 김은자의 사진 이미지는 그것을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 자체보다는 사물이나 사건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쉽게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에 동일시되기가 쉽다. 이 문제에 맞닥뜨린 근대 철학자들은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고 인간의 지각 방식 자체를 문제시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론과는 별개로,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의 방식으로 이미지가 그 사물, 사건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 때문이다. 이미지는 그 사물이나 사건과 마주한 시간을 보존한다.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였던 뒷산이 야트막한 산에 불과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미지의 역사는 사실이나 이념이 아니라 ‘낙차’나 ‘문턱’처럼 감각되곤 한다. 적어도 발터 벤야민은 낙차나 문턱의 감각으로 이미지 속의 역사를 파악한 바 있다. 지금도 그 방법은 유효하다. 어떤 사진이 주어진다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나 피사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나 분석보다, 그 사진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진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이 ‘그때’나 ‘지금’을 사진보다 더 또렷하게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1964년 4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있다. 흰 천을 쓰고 한복을 입은 듯한 여성의 뒷모습이 타원형 프레임 속에 있다. 마치 옛 초상 사진의 프레임 속에 수수한 차림의 여성의 모습이 담겼지만, 이 여성의 뒷모습만 가지고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진 아래에는 작은 활자로 “무명옷을 입은 「어머니」 김 여사는 사진 찍기 마다고 흰 수건 쓴 머리를 돌려댔다.”고 쓰여져 있다. 이 사진이 함께 실린 기사는 그를 ‘어머니’로 소개하면서 등 돌린 뒷모습을 포착한다. 기사의 제목으로는 ‘숨은 나이팅게일’, 부제로는 ‘삼밭실의 무등원, 죽음을 이긴 새마을의 어머니’라고 달았다. 이 사진과 관련한 기사 내용은 이 무등원과 ‘김 여사’를 다음처럼 소개한다. “광주 무등산 중턱 삼밭실 일대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2백30명에 달하는 폐결핵환자, 앉은뱅이, 간질병환자, 정신병자 등 불구자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진 38동의 집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의 영도자는 연약한 한 사람의 중년부인, 의지할 곳 없는 환자들에게는 어머니이자 누나요, 구세주이기도 하다. ···(중략)··· 「가톨릭」 재단의 손으로 운영되는 제중병원은 가난한 결핵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왔으나 나을 수 없는 환자를 언제까지나 입원시킬 수는 없어 이들에게는 부득이 퇴원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병 때문에 패가망신이 된 환자들에게는 유리걸식밖에 할 길이 없었다. 이금
- 관리자
- 2026-01-01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3 -오늘의 한국문학과 문학 시장에 대하여 류수연 1. 노벨문학상의 낙수효과? 2020년대 미디어믹스의 원천IP로 주목받는 것은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웹 콘텐츠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그러한 매체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콘텐츠가 요구되었고, 웹상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현재 웹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로 콘텐츠인 동시에 또 다른 콘텐츠의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활자로 된 스토리텔링이 영상미디어로 2차 가공되는 일은 비단 최근에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다. OSMU나 미디어믹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실 이러한 방식의 콘텐츠 확장은 일상적으로 있었다. 무엇보다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은 가장 오랫동안 원천IP로 각광받았던 이야기 그 자체였다. 하나의 소설이 극이 되고, 또 다른 소설의 영감이 되고 패러디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과정이다. 트랜스미디어 환경이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을 더욱 가속화하고 확대하였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이야기의 구전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의 신체라는 미디어를 활용한 확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발생된 2차 가공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로 인해 편집과 각색이 더 시시각각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애초에 이야기의 고유 속성이라 할 만큼 아주 익숙한 방식에 가깝다. 문자에서 이미지와 극으로, 다시 영상과 미디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그 무엇보다 문학이 가장 잘 해 왔던 일이니 말이다. 문학의 영상화는 영화산업의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미디어믹스에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1960년대 문예영화일 것이다. 영화산업이 부흥하면서, 당시 많은 문학작품이 영화의 원천 텍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부터는 TV 단막극을 통해 많은 문학 텍스트가 영상화되었고, 이러한 시도는 2020년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금희 원작의 (2018), 장류진 원작의 (2020)과 (2025) 등의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트랜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예측되는 문학의 미래는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하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문학의 위기론은 40년 가까이 논의되는 동안 이제는 잊을 만하면 꺼내는 해묵은 불편함이 되었지만, 웹 콘텐츠의 등장 이후에는 위기론 자체도 언급되지 않을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읽기’의 위기를 기정사실화했다면,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에는 ‘쓰기’의 위기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생성형 AI가 문해력까지 대체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근현대문학사의 여러 굴절마다 제기되었던 문학의 위기론은, 어쩌면 그래도 배
- 관리자
- 2026-01-01
겨울 산을 오르고 박현옥 기제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일은 산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반 거리에 기제의 아버지가 살았다. 거기서 차로 삼십 분을 더 가면 기제의 아버지가 소유한 선산이 나왔다. 12월 중순, 눈이 내리기 전에 다녀오자며 기제의 아버지가 기제에게 말했고, 이어 기제가 내게 주말에 같이 아버지 댁에 내려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따로 챙길 건 없으나 다만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신발장엔 바닥이 얇고 발목이 드러나는 단화나 굽이 높은 구두뿐이었으므로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트래킹화를 하나 주문했다. 이튿날 저녁에 택배로 받아 본 신발은 정말로 단단했다. 뒤축이 특히 단단해서 기제가 차를 세워 둔 집 앞의 큰길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벌써 뒤꿈치가 쓸렸다. 선산엔 산주였던 기제 고모의 산소가 있었다. 기제를 몇 년 동안 만났는데 고모 이야기는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해도 뜨기 전인 새벽에 뻥 뚫린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제는 조잘조잘 떠들었다. 십수 년 전에 남의 집 선산이었던 걸 고모가 7억을 주고 샀다고. 시장에서 방앗간을 하던 고모는 인근 광역시의 국제공항이 그 산으로 이전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평생 모은 목돈을 죄다 털었다. 산주의 처가 쪽 친척이 도시개발과 과장으로 일한다는 말에 홀린 듯 산을 사 버린 것이다. 그러나 뜬소문이 으레 그렇듯 이전이 거의 확정이라던 공항은 여러 번의 공청회 끝에 무산됐으며, 선산 역시 원래의 값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원래는 얼마였는데?” “6천만 원.” “세상에.” 누군가는 기제의 고모에게 선산에서 송이라도 나면 일 년에 한 달만 일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기제의 고모는 혹시나 하나는 마음에 몇 날 며칠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으나 산에는 소나무는커녕 상수리나무만 잔뜩 심겨 있었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와 달리 속이 물러 목재로도 쓸 수 없고 숯으로도 못 만든다고, 기제가 말했다. 고모가 그 산에서 발견한 건 송이도 아니고 산삼도 아니라 지천에 떨어진 도토리뿐이었다. “근데 고모도 방앗간에서 도토리 가루를 팔았거든.” 앙금을 말려 가루 낸 것으로 킬로에 만 원을 받았다. 묵으로도 쒀 먹고 전으로도 부쳐 먹고, 효능도 모르는 채 매일 티스푼으로 한 숟갈씩 퍼먹는 사람도 있었다. 기제는 그러니까 고모가 도토리를 8억 원어치 산 것이나 다름없다며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다음엔 그 이듬해 고모가 산 중턱에서 제초제를 먹었다고 말했고 그때는 웃지 않았다. 히터를 세게 틀어 놓아 겨드랑이와 등과 발가락에서 땀이 났다. 뒤꿈치가 쓸린 곳에 땀이 닿아 한층 더 따가웠다. 내가 자꾸 발을 꿈질거리자 기제가 발이 시리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기제는 진작 말을 하지 그랬느냐며 히터를 더 올려 버렸다. 나중에는 엉덩이와 오금에도 땀이 났다. 짧게 깎은 기제의 옆머리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 관리자
- 2026-01-01
시작을 위한 커튼콜 송희지 ❋ 2025년은 내게 변화와 도전의 해였다. 짧지 않은 학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두 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지난 이삼 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작업물과 사유들을 털어 냈다. 문화센터 등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만났고, 창작촌에 입주하며 잠깐의 서울살이를 해 보기도 했다. 또 그 변화와 도전의 한 축에는 극(劇)이 있었다. 새해 첫날, 신문을 통해 첫 희곡 「탐조기」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도 연극에 대한 지식이라곤 소나기 오는 날 도로변에 생기는 웅덩이만큼이나 얕았던 내겐 그 일이 어떤 사건처럼, 무척 고되고 생경한 모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희곡이 무엇인지, 연극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해 동안 고군분투했었다. 많은 희곡을 읽었고 많은 연극을 보았다. 한 명의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손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 특히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나는 『화염』을 각기 다른 극단의 낭독 공연과 무대 공연으로 한 번씩 봤고, 희곡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또 한 차례의 무대 공연과 한 번의 낭독 공연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몸소 익혔다. 시나 소설은 작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그의 손으로 옮겨지고, 그의 품 안에서 완결된다. 희곡은 그와 다르다. 희곡의 완성은 실연(實演)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며, 그것은 연출과 배우, 드라마터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비로소 몸과 숨을 얻는다. 두 번의 공연 연습에 참여하면서, 나는 배우들의 호흡과 몸짓이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연출의 창의적인 시선이 어떻게 무대를 빛나게 하는지, 드라마터그의 예리한 질문이 어떻게 희곡의 골간을 드러내도록 이끌어주는지를 보고 배웠다. 공연으로 다시 만난 나의 희곡은 내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나를 작가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동하고 환호하게끔 만드는, 기분 좋은 낯섦의 생기였다. 처음 신년 에세이 청탁을 받고,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주제를 접하고 나서 자연히 지난 202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나간 일상에 관해 떠올리기보다는, 내 ‘씀’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몸을 바꾸어 왔는지를 주로 되짚은 듯하다. 이를테면 이전까지는 거의 시만 쓰고 발표해 왔던 내가, 희곡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익히게 되면서 겪은 생각·언어·감각의 변화에 대해서, 또 그것이 내 시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해서.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키워드 아래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초점도 분명 그곳을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지난 1년간 내 변화한 내 ‘씀’에 관한 내밀한 살핌, 일종의 고백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기억 하나를 먼저 꺼내 본다. 지난가을 나는 연희동의 단란하고 아름다운 창작촌 작업실
- 관리자
- 2026-01-01
소망, 반성, 시작 김상규 1. 소망 여러분은 언제부터 새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1월 1일을 새해로 생각하실 것이며, 또 어떤 분은 설 명절을 생각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또 어떤 분은 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새해의 시점으로 잡으실 수도 있겠군요. 저는 새해의 시작을 정월대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과학적으로 분명하거나 이론적으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할머니는 늘 정월대보름이 되면 가족 수에 맞게 하얀 종이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지(燒紙)라고 불렀습니다. 준비된 소지를 앞이 두껍고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접고 나면 우리 집 정월대보름 준비는 끝마친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나를 부르시곤 그 소지에 가족의 나이와 이름을 적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소학교도 나오지 않으셨기에 글을 더듬더듬 읽을 줄 아나 쓸 줄은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불러 이 일을 시키신 것이지요. 잘 정리된 소지와 초 하나를 들고 할머니는 마당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불을 태우는 방향을 해마다 바뀌었는데 아마 동네 용한 무당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리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남쪽이 흉하면 남쪽으로 소지를 태우고 북쪽이 흉하면 북쪽으로 소지를 태우는 것입니다. 준비가 다 되면 할머니는 이름이 적힌 소지를 순서대로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원이 무엇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기도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기도가 다 끝나면 가슴에 품었던 소지를 촛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더 멀리 소지의 불꽃이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습니다. 제주 중간산 마을의 거친 겨울바람을 타고 훨훨 오르는 종잇장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제 소지는 제가 가슴에 품고 불을 붙일게요.” 할머니는 흔쾌히 제 말을 따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우리 집안 종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잔병치레가 많아 유난히 병약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와 삼촌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빨리 어른이 되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가슴에 품었던 하얀 종이를 촛불에 붙여 하늘로 올려보냈던 기억과, 제 소원이 담긴 소지의 불꽃이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을 휘저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 반성 소지를 태우며 빌었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요? 불행하게도 그 기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했으며 저 역시 혈족의 굴레 속에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 관리자
- 2026-01-01
한 해의 뒷면 최현진 첫 눈이 내린다. 나의 글쓰기 방에 난 창문으로 흰 원들이 신호등과 선로 위에 앉는 걸 본다. 눈과 바람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외투를 되살리며 종종종 걸어간다. 눈이 쌓인 지면은 세상으로부터 떠 있는 것 같다. 사물의 형체를 지우며 공백에 가까워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공백(空白)에서 찾아온다. 이 글은 지난겨울에서 다시 첫눈이 내리는 동안의 이야기다. 아홉 살 때 ‘단감’이라는 시를 써 본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내 꿈은 작가였다. 2025년은 꿈을 이루며 시작했다. 나의 첫 책이 나온 것이다. 출간 이후의 삶이 책의 질량만큼 가벼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연초 문학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바터팽대부암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으셨다. 시상식 가는 길이 앞으로 펼쳐질 투병과 간병의 길처럼 더디고 어려웠다. 이른 봄, 나는 희미한 감각으로 수상과 첫 책의 기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최종 교정지를 만지는 날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고층 병동에서 쏟아지는 폭설을 보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얼룩이 책에 인쇄되어 나올 것도 아닌데 참을 새 없이 눈물이 푹신 떨어졌다. 나는 서운했다. 내 삶에. 작가는 어떻게 가족구성원 내에서 돌봄이라는 균형을 지키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가. 휠체어를 끌다가 메모를 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노트북을 켜 타닥타닥 불씨를 지피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불과하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중지해야 한다’는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거린다거나, 환자에게 무뚝뚝하게 군다 거나. 간병 일수를 줄여 보자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기에 내 직업은 출퇴근이 따로 없는 작가이고 또한 애매한 태도가 걸림돌이었다. 수상과 첫 책의 행운이 함께 왔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쉽사리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축하해 줄 때였다. 병원 앞에 뜬 부드러운 점선의 구름을 보며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기쁨의 전부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문학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작가가 무엇인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나는 빠져나갈 출구를 찾고 있었다. 첫 강연은 부산이었다. 책을 내고 공식적으로 들어온 첫 번째 일이었다. 식구들에게 떳떳하게 통보하고 짐을 쌌다. 얼마나 걸리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강연은 두 시간이었지만 부산까지 가는 데 오고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짐을 싸냐고 물어보셔서 간 김에 글을 쓰고 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내가 초청받은 곳은 시외에 위치한 고등학교였다. 따뜻한 땅에서 올라온 연둣빛 들판을 거쳐 봄 멸치를 잡던 배가 묶여 있는 작은 항구와 벽돌로 쌓은 젓갈 공장을 지나서 달려간 곳에 아늑한
- 관리자
- 2026-01-01
동그라미 그리기 최은영 얼마 전, 김창환 님이 쓴 글을 읽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글의 제목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 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를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1)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위로받았고, 하루를 원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하루가 동그랗게 완성되며, 시간은 마냥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은 여러 개의 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일 년··· 한 해를 사는 것을 동그라미 하나 그리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나는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셈이다. 앞으로 이 동그라미를 몇 개나 더 그릴 수 있을까. 끝의 끝이 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이 돌아온다는 걸 연말이 오면 매번 깨닫는다. 만족하며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새해는 거저 주어진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듯이.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려 봐’ 하면서. 그러면 마흔셋이 된 나는 다시 손에 연필을 잡고서 새로운 페이지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여전히 동그라미 그리기는 막막하고 어렵다. 언제부터 동그라미 그리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새 시간, 다시 주어진 기회, 새로운 삶···.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삶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 중에서는 가장 덜 힘든 시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십 대와 이십 대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나는 마흔셋이 되었는데, 사는 일이 극적으로 쉬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너의 삶보다는 훨씬 더 평온하다고. 마흔세 번째의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아서 ‘시간을 되돌린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는다. 한때는 바보 같은 선택을 거듭한 어린 나를 용서하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미워질 정도의 어린 나를. 하지만 그게 그 아이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나니 더는 그런 내가 미워지지도 않았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같은 가정을 하지 않게 됐다. 내
- 관리자
- 2026-01-01
잊고 있고 잇는 진연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지냈다. 한 칸짜리 방. 침대가 있고 책상이 있고 책장과··· 새 둥지가 있는. 2년 전의 새는 죽었다. 좁은 방범창 안에서. 이틀을 울다가. 구구 쿼쿼. 소리가 줄어들면서. 약해지면서. 나는 소리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러고도 며칠을 더. 안전해질 때까지. 며칠 더 기다렸다가. 숨이 죽을 때까지. 숨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당황하면 안 되니까. 당황이 수습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곤란한 일이니까. 며칠 더 기다렸다가. 딱딱해진 새를 치우고.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거둬 내고. 방범창의 패널을 깨고. 다시는 새가 갇혀 죽는 일이 없도록. 패널을 깨고. 새는 왜 나가지 못했을까. 들어왔는데 왜 나가지는 못한 것일까. 날개를 펴서 도움닫기를 할 만큼. 공간이 충분히 넓지 않았기 때문일까. 창문의 반을 가릴 만큼. 충분히 높았기 때문일까. 방범창이. 폴리카보네이트 방범창.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카. 나는 꿈을 꾸고 새가 죽고. 꿈에서 매번 새가 죽고. 구구 쿼쿼. 소리가 줄어들고. 약해지고. 꿈을 꾸고 새가 죽고. 매번. 나는 그 새가 알을 밴 상태였고 새가 죽으면서 알도 함께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슬퍼졌지만 그러한 조금 더의 슬픔이 죽은 새에게는 약간의 좋은 일이겠거니 했다. 그렇더라도 내게 그 새의 죽음은 시간의 궤도 바깥에서부터 시작된 파열음처럼 당혹스럽고 얼떨떨했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마주한 삶의 필연적 결말.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여기였을까. 처음부터 죽음을 예견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새가 마침내 남은 삶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라고, 구구 쿼쿼 우는 소리가 그러한 안간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켜보거나 지켜보지 않는 일만이 나의 것이었으나 그렇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그 새의 삶에 또는 죽음에 개입했어야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어야 하나. 나는 한동안 가장 익숙한 골목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둥대고 우물쭈물하고 두려워하고. 새로운 새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난 여름이었다. 지독하게 습하고 더운 여름의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반쯤은 정신이 나간 듯 갈팡질팡하며. 나는 새가 나뭇가지와 나뭇잎과 비닐 같은 것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는 한동안 가만히 앉았다가 황급히 목을 빼 주변을 둘러봤고 부리로 털을 고르거나 몸을 움직여 자리를 고르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떠나지 않다가 돌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멈추고 날아오르는 일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곳에서 작은 알 두 개를 발견했다. 덧문 밖의 햇살처럼 뽀얗고 눈부신 데다 아주 정교하게 빚어진 도자기처럼 매끈한 것, 완벽한 형태의 생명이 그야말로 덜컥, 거기 있었던 것이다. 철골조와 앙상한 밑바닥만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방범창의 한구석에 말이다.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장소, 그 둘의 대비가 너무도 강렬해서 섬뜩하게 느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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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태양에서 멀리 김채원 지금부터 아침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질 것이었으며 당연하게도 솔지에게도 주어질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어떠한 저항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부지런히 그 시간을 사는 일. 솔지에게 그것은 꽤나 쉬운 일이었다. 그치만 어려운 일인데? 솔지는 생각했다. 꽤나 쉽고, 그치만 어려운 일이라고. 알겠습니다, 솔지는 늦저녁에 창문을 열어 두고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선과 악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잘못 걸렸다, 하면서도 끝까지 읽기는 다 읽었다. 치워 없애야만 하는 악이 존재하고 그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됐다. 누가 보아도 선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 에구, 눈부셔라. 에구, 싫어라. 솔지는 이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적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솔지의 약점을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솔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약점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거였다. 솔지는 배신하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배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정도의 배신을 참 잘했다. 최근에 솔지는 세 사람의 친구를 배신했다. 세 사람의 친구에게 차례차례 합성 마약을 권하였다. 세 사람의 친구 민지, 차은이, 가영이가 고등학교 건물 5층 화장실 맨 끝 칸에 모여 차례차례 그것을 받아 보았다. 처음이니까 그냥 줄게. 이게 뭔데? 알지만 한번 물어볼래. 그럼 알려 줄게. 몸에 좋은 약이야. 약의 이름은 해마야. 네가 지었어? 응, 내가. 이름이 영 징그럽고 별로다. 거절해도 돼? 왜? 귀여운데···. 원래 이름은 뭔데? 나도 몰라. 요즘 입시 준비하느라 머리가 아프다며. 생리통도 심하다며. 그런데 나 지금 진짜 돈이 없어···. 괜찮아, 내가 돈이 많아! 내 지갑을 보여 줄게! 솔지의 암호 화폐 지갑은 영단어로 된 열두 개의 암호를 입력해야만 열어 볼 수 있었다. 지갑의 암호는 솔지가 좋아하는 영단어의 단순한 나열이었다. 첫 번째 단어는 window였고 두 번째 단어는 forest 그리고 마지막 단어는 mountain, 산이었다. 겨울 산을 잘게 부순 듯한 흰 알갱이들을 솔지는 차분하게 소분해 가지고 다녔다. 합성이라는 게 둘 이상의 것을 합쳐서 하나를 이루는 것인데··· 정확히 무엇과 무엇과 무엇이 기타 등등 합쳐져 마침내 하나를 이루게 된 것인지는 제조하는 역할이 아니라서 몰랐다. 예전에는 약의 성분이 비교적 단순했는데 이제는 좀 복잡해졌다고들 했다.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면 약의 성분이 계속해서 복잡해져야만 한다고들 했다··· ···전부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솔지의 역할은 제조된 물건을 가져다가 주변에 판매한다고 해야 하나 일
- 관리자
- 2026-01-01
늦은 오후의 일 신연선 1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가려는데 병원 주차장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생전 땡볕 아래에서 맨얼굴 내보인 적 없던 듯 희디흰 얼굴이었다. 떨고 있는 모습이 사뭇 눈길을 끌었다.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진 모습 같기도 했다. 나의 멍한 눈과 그 사람의 흔들리는 눈이 흐린 하늘 아래 잠깐 마주쳤다. 추운데 얼른 타요, 차 안에서 동생들이 소리쳤고 나는 그야말로 쓰러지듯 차에 올랐다. 차는 순식간에 주차장을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갔다. 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창밖 풍경이 뒤로 달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너무나 피곤했다. 누님, 다 왔소. 일어나쇼. 막내 목소리가 꿈결의 경계를 지나 점차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른 동생들을 내려 주고 또 이동하는 내내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바윗덩이가 짓누르는 듯한 어깨의 피로는 여전했다. 습관처럼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차에서 내리자 막내가 뒷자석에 있던 남편의 유골함을 조심히 꺼내 내게 안기고는 돌아섰다. 막내는 장례를 치르는 내내 살뜰했다. 하염없이 넋 놓고 있는 나를 대신해 번거로운 장례 절차를 세심하게 따져 가며 봐주었다. 큰소리 한 번 나지 않게 해 준 것이 고마웠으나 저녁 먹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가 밥을 차린단 말인가. 대충 한 상 차리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눈치가 어땠는지 막내도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걷는 뒷모습이 이십오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꼭 닮아 있었다. 많이 늙었구나. 내가 쟤를 업어 키웠는데. 작기도 작았고, 울기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녀석이 잠시 숨을 고르느라 울음을 멈추면 귀가 멍할 정도였다. 시간은 어째서 쏘아 놓은 화살일까. 그 까칠한 아기가 늙은 아버지 뒷모습을 하고 구부정 걸어갈 때까지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기분이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묵은 공기 냄새가 났다. 그 경황 중에 습관대로 개켜 둔 남편의 이부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현관 한쪽에 유골함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자리를 찾아 줘야 할 것이었지만, 일단 그대로 두자. 집이 적막하다. 남편과 있을 때도 소란한 적은 거의 없던 곳이다. 남편은 말하는 것을 귀찮아했다. 귀찮아하다가 잘 못하게 된 사람. 질문을 하면 행동으로 답하던 사람. 술을 마시면 말이 다소 늘었지만 곧 잠이 들어 버렸으므로 그러는 시간도 짧았다. 그런대로 산 지 사십 년이 훌쩍이었다. 든든하지도 믿음직스럽지도 않은 반려자였는데 빈자리가 이렇게 나나. 신발을 벗고 집에 올라서서 TV부터 켰다.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들으니 어느 정도 평상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운데가 꺼진 소파, 색이 바랜 커튼, 구석구석이 들뜬 장판, 시간에 닳은 채 집의 일부가 된 것들. 이곳도 반짝이던 때가 있었다. 연년생 칭얼대는 두 애들을 데리고 이사하면서도 그때는 힘든 줄을 몰랐다. 평생 처음 가져 보는 내 집이었고, 창틀이니 화장실이니 구석구석 묵은 때를 닦느라 한동안 근육통을 달고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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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음악 —손병걸 시인께 정우신 듣습니다 다만 듣습니다 방법이 없어서 듣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숲 덩그러니 남은 나무처럼 듣습니다 팔짱을 끼면 끝이 없는 어둠의 길목에 놓입니다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 듣습니다 듣는 것만으로 듣는 자세를 바꾸는 계절을 봅니다 어둠의 뒤꿈치를 밟고 있는 얼음을 봅니다 나는 보는 사람들 속으로 흘러갑니다 나는 나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나무의 꿈을 듣습니다
- 관리자
- 2026-01-01
호랑 산책 정우신 흰 꽃잎 짙어지는 향기 하늘이 묽게 번지고 걸었습니다 까치 까치 개 짖는 소리 일요일 아침 병은 무늬처럼 가족을 끌고 다닙니다 강물에 빠진 빛이 입을 뻐끔거립니다 나뭇가지를 모으자 물을 갈아 주자 한 마리 더 키우자 걸었습니다 샤워하고 겨울 이불을 정리하고 강물을 덮고 빛은 물의 얼굴에 남은 슬픔을 마저 다 봅니다 누군가 불러도 나는 돌아서질 못하고 두 딸은 햇살의 긴 꼬리를 따라 미래로 뛰어갑니다
- 관리자
- 2026-01-01
기계 천사들이 있었다1)* 신진용 1 너랑 같이 산책하다가 유기 기계 천사들을 봤다 쟤 좀 봐 날개도 후광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게 너무 안됐다 불쌍해 혹시 지금 신앙 좀 가지고 있니 있으면 그거라도 주면 좋을 것 같다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남는 신앙을 가지고 다시 나왔다 아까는 안 보였던 공원 관리원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원 기계는 반복하면서 기계 천사들에게 발길질을 해 댔다 아직 날개가 남은 기계 천사들은 날아서 도망쳤고 날개가 없는 기계 천사들은 걸어서 도망가다 맞았다 부서졌다 관리원 기계한테 물어봤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 그래야만 하죠 2 그래서 구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우리는 가지고 나온 신앙이 아까워서 어쨌든 주고 가기로 했다 공원 한쪽 구석으로 가니까 기계 천사들이 좀 보였다 쟤들은 다 날개 뼈대라도 있네 후광도 있어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지만 누가 관리를 해 주나 봐 기계 천사들에게 신앙을 주려고 오셨나요 관리원 기계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아니었다 기계 천사들에게 매일 신앙을 나눠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설마 그런 신앙을 나눠 주겠다고 가져오신 건 아니죠 기계 천사들에게 매일 신앙을 나눠 준다는 사람이 핀잔했다 그렇게 별론가 근데 저 사람 신앙 봤니 엄청 많고 좋긴 해 그러네 대단하긴 하다 저 사람한테도 한번 물어는 봐 보자 그럼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 진짜 몰라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3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있는 기계 천사랑 마주쳤다 날개도 후광도 다 없었다 처음에 봤던 기계 천사 아니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모르겠다 우리 둘 다 기계 천사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남은 신앙이 없었다 쟤 신앙을 이미 갖고 있는 것 같아 진짜였다 어디서 난 걸까 누가 줬겠지 아님 주웠거나 스스로 구했을 수도 있잖아 설마 그랬으려고 너랑 나는 너무 궁금해서 못 참고 물어봤다 스스로 신앙을 구하신 건가요 당신은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2)** 기계 천사의 음성을 듣는 건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고 기계 천사는 잰걸음으로 도망가 버렸다 우리는 기계 천사가 흘린 신앙을 주워 살펴봤다 꽤 좋은 신앙 같았다 * 서기 1세기경 활동한 초기 교리학자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Διονύσιος ὁ Ἀρεοπαγίτης)의 신학서 『기계 천사들이 있었다(ἦσαν ἄγγελοι μ&
- 관리자
- 2026-01-01
기계 신이 있었다 신진용 우리 둘 다 결국에는 신의 죽음을 견뎌 내지 못할 거라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았다 차라리 빨리 자살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자살했구나 기계 너의 말투는 기계적이었지만 기분 탓인지 묘하게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너도 자살하고 기계에 백업된 거잖아 네가 먼저 자살해서 나도 죽은 거야 거짓말 빨리 자살하는 게 낫겠다고 맨날 그랬으면서 둘 다 똑같은 기계음으로 말하니까 기계 하나가 혼잣말하는 것처럼 들렸고 좀 이상했다 나만 놔두고 죽어 버렸으면서 뭐가 그리 당당한지 모르겠네 그래서 기계 나를 백업해 두고 죽은 거야 나도 그래서 기계 나를 백업해 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안 죽었어도 죽으려고 했다는 거네 사실 나나 신이랑은 상관없이 죽고 싶어 했던 거 아니니 뭐라고 신이 안 죽었어도 죽고 싶었을 거지 맞지 이쯤 하니까 정말 기계 하나가 입력된 텍스트를 줄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류가 난 기분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어 기계 신이 끼어들었지만 기계 너랑 나 둘 다 일단 싸우는 게 급했다 그래서 진짜로 뭐였어 뭐가 신은 핑계고 그냥 죽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기계 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대답이나 해 어이가 없다 신을 혼자 남겨 두고는 절대로 먼저 죽지 않았을 거야 절대로 그 말을 끝으로 기계 너는 전원이 꺼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차라리 전원을 꺼 버릴까 싶었다 그럼 지금은 다 기계가 됐는데 기계 신이 망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전원을 끄지 않는다면 절대로 기계 신만 혼자 남겨 두지는 않을 거지 그치 갑자기 그런 기계음이 들렸는데 기계 신이 말한 거였고 분명 기계 너나 나랑 똑같은 음색과 어조인데도 왠지 조금 다르게 들려서 그런 말을 하니까 너무 겁이 나고 슬프다 그렇게 말해 주려다가 말았다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세 기계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계속 작동했다
- 관리자
- 2026-01-01
즐거운 책무 고민형 늦은 밤 지하창고로 내려갔고 거기서 나의 영혼을 만났다. 나의 영혼은 나와 춤추기를 원했다. 영혼의 머리칼은 삼나무 다발처럼, 물결에 흔들리는 해조류처럼 보였다. 영혼은 땅 위에서 한 뼘 정도 떠서 너울거렸다. 무엇보다 그것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영혼이 바라는 대로 손을 내밀었다. 그것 안에서 수백, 수천 개의 노래가 동시에 들려왔다. 난 놀랐다. 그러자 영혼이 나를 다독였다. 그녀가 내 어깨에 있는 세계를 떼어 갔다는, 자기의 일부를 가져간 존재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들렸다. 영혼의 한쪽 어깨에 나는 얼굴을 묻었고 곧 슬퍼졌다.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였는지. 그렇지만 나의 영혼은 이미 그 문제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일어나 거기서 영혼이 되기로 했던 것 같았다. 내 영혼은 나를 내려다봤다. 난 흔들렸다 그렇지만 그가 들려주는 노래에 맞춰서 나의 영혼은 손을 뻗었고 나는 다시 돌았고 그러면서 영혼이 좀 더 그렇게 나를 가지고 놀도록 두었다 그는 즐거워 보였다 한 번도 슬퍼 본 적 없으며 슬픈 줄 모르는 아이 같았다 슬픈 것은 모두 내 몫이었다 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난 이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여기 남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영혼은 스스로 돌았다 그것은 음악이 고조되면서 더욱 밝아졌고 생기를 되찾았으며 한 뼘보다 더 솟아올랐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언어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정중하게 날고 있었다 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영혼이 손을 들어 내 눈물을 훔쳤다 계속 돌고 돌았다 마치 그것이 영혼의 책무인 것처럼 그렇게 굴었다 난 영혼과 어깨동무했다 마지막으로는 키스했다
- 관리자
- 2026-01-01
거위 뒤의 오리 고민형 걷다가 골목에서 오리를 봤네 백조였던가 거위였나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내게 그게 나타났네 나는 골목을 돌아 빠져나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 그 이후로 다시 보지 못했지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져 나쁜 일은 아니야 나는 지금 풀밭 앞에 앉았어 여기에는 오리나 참새도 없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풀이 있고 당신은 당신이 그렇게 나타난 걸 알아? 난 놀랐지 당신이 처음 나타났을 때 좋은 것 다음에 더 좋은 것이 나타난다는 그런 신호 같았어 그건 뭐랄까 당신보다 더 좋은 당신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징조잖아? 난 특별한 현자일지도 몰라 그걸 보고 결심했지 당신과 평생 함께하기로 거위는 지나갔지만 거위보다 더 좋은 건 안 왔어 하지만 계속 생각나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던 것 당당했지 난 고개를 숙였네 여왕 같아 보였어 그 앞에서 우리는 그곳의 손님이 됐지 당신과 함께 봤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난 당신에게 더 말할 필요 없을 거야 그러면 그건 뭐였냐고 당신은 묻지 않았겠지 그녀가 누구냐고 좋은 것 뒤에 더 좋은 것 거위 뒤의 백조 오리 아래 오리 새끼들 충분함 뒤의 충분함이지
- 관리자
- 2026-01-01
욕탕 방성인 머리들이 욕탕을 떠다닌다 검은 머리와 흰머리와 민머리와 작은 머리 서로 닿지 않고 떠다닌다 검은 돌 두꺼비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물이 반대쪽 배수구로 들어가고 머리들은 실려 떠다닌다 욕탕에 이는 거품 거품이 터진 자리에 이는 하얀 증기 살아 있는 것이 들어 있지 않은 욕탕은 잔잔한 표면이다 머리들이 욕탕을 하나둘 빠져나와 목욕탕 가득한 증기를 맴돈다 머리가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흔들리는 물 피어오르는 거품 증기 밖으로 밀려나 바싹 마른 머리들이 계단 위로 올라간다 안개 걷힌 거리 더 위로 가지는 않는다 뿔뿔이 흩어진다
- 관리자
- 2026-01-01
꽃이 시들지 않는 동안 / 고라니 방성인 꽃이 시들지 않는 동안 테이블 위의 접시가 깨지지 않는다 꽃이 시들지 않는 동안 창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지 않는다 꽃이 시들지 않는 동안 사람이 넘어지지 않는다 붉은 꽃잎 노란 꽃술 중심부의 검은 반점이 시들지 않는 동안 단풍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 밤도 찾아오지 않고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꽃은 꽃병에 꽂혀 있고 담벼락 위에 늘어져 있고 꺾인 채로 바닥에 떨어져 있고 공중에 걸려 있고 꽃 아래 꽃 그림자 아래 누운 사람 만발의 거리에서 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는다 제가 생각하는 꽃으로 가지 않는다1) * 튀어 들어와 꽃을 씹어 먹는 고라니 고라니는 숲에 살아서 고라니의 주위로 숲이 자라나 있다 고라니는 차에 자주 치여 죽어서 숲의 가장자리에 도로가 뻗어 있다 고라니의 입에서 떨어지는 꽃잎 꽃을 부수며 고라니는 멀리 바라보고 멀리가 고라니의 눈을 채운다 멀리는 고라니의 눈동자 색 멀리는 숲 너머 도로 너머 멀리 고라니가 튀어 나간다 도로를 달리는 차 사라지는 고라니 고라니가 튀어 나가며 흔들리는 숲 그대로 유지된다 도로도 그대로 유지된다 숲과 도로는 사유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이미 녹슨 철제 울타리가 녹슬지 않는 동안 울타리는 자신의 안쪽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다 울타리가 녹슬지 않는 동안 울타리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만 지나다닌다 울타리가 녹슬지 않는 동안 고라니가 떠난 자리에 꽃잎이 나뒹군다 1) 이상의 「꽃나무」에서 변용
- 관리자
- 2026-01-01
영원히 김기숙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2학년 2반 칠판 옆에 가곡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종례 전 여중생들은 가곡 한 곡을 목청껏 불렀다 연가의 뜻을 몰랐다 비바람 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대만을 기다리리 그 외침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눈이 기다리고 목이 기다리고 손발이 검게 변해 갔다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나이를 잊은 채 중얼거렸다 사고 목록을 십 년 넘게 기록했고 집착은 접착제처럼 들러붙었으니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철봉에 매달리면 체육 선생님이 그만 내려오라고 했다 주전자의 음영을 넣는데 스케치북이 구멍 났다 버릇을 구명조끼처럼 입고 바다 한가운데 몸이 떠 있었다 그에게 고개 내밀고 흙탕물 세례를 받았다
- 관리자
- 2026-01-01
피정 식탁 김기숙 수녀들이 아침을 먹는다 앞으로나란히 가지런히 앉아 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릿수건 쓴 수녀들은 좌우로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음식 접시에서 눈알이 굴러다닌다 아침은 서늘하게 흰빛이어서 창가 자리의 백로 한 마리 꼿꼿하다 수도원 겨울 마당을 한 발로 걷던 까마귀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주방 뒤꼍의 진돗개는 귀를 세운다 접시와 포크가 부딪친다 머릿수건으로 덮인 수녀 귀가 팔락인다 귀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저마다의 식사 기도 중얼거림이 실내 공기에 섞이고 식당 의자가 비워진다 검은 옷과 흰옷은 회색 사람이 되지 않는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마음 들여다보기 편안한 곳, 규칙 생활은 불편한 것 열흘이 딱 좋았다 까만빛은 더 까맣게 흰빛은 더 희게 유리창의 형상이 지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 관리자
- 2026-01-01
가호 임어지니 식을 올리기로 했다 결혼식을 이후 가장 먼저 베란다에 꽃을 심었다 골목 화단의 꽃들을 옮겨 와 가꾸기 시작했다 잘 자랄 수 있도록 예쁜 말 좋은 말만 해 주었고 화분을 앞에 두고서 다투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책임을 약속할 사이여서 커튼을 몸에 둘렀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체형에 맞추어 매일 조금씩 재단했다 어제보다 더 넉넉해지는 것은 가능했으나 모자라서는 안 되는 법이어서 매일 조금씩 더 왜소해졌다 방에는 조금씩 더 해가 든다 이런 거구나 밝은 미래라는 거 햇살 쬐며 잠에서 깨고 꺼지지 않은 불빛을 수면등 삼아 잠드는 우리의 화창한 생활 어둠에 잠기는 법이라곤 없는 가정 정말 좋다 그 무렵 우리는 신도 하나 들이기로 했다 으레 가정이라면 은총 하나쯤은 깃들어야 하니까 전단지며 물티슈며 가리지 않고 수급했다 가전 알아보듯 이 신과 저 신을 비교했고 판촉하는 이들에게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했다 가끔은 면접처럼··· 숙식 제공 상주 수호신 구합니다 어느 날 만난 신 하나는 인재라고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모셔 가려고 한다고요 교회에서도 성당에서도, 신이라는 게 다 그렇죠 기사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말이에요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그게 있잖아요 생각보다 번듯하고 생각보다 훤칠했다 삼 개월간은 90%만큼의 믿음만 베풀어도 될까요? 생각한 뒤 연락 주겠다던 그에게서는 답장이 없었고 화단에는 새로운 꽃이 심어졌다 지난번보다 조화로운 조합이었다 우리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도 전에 파헤쳐지고 옮겨 심어지는 꽃들을 엿보다 서로의 등을 부둥켜안고 잠에 들었다 일찍 해가 졌다 그랬나? 뒤척일 때마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빛을 구경하며 체온을 감싸안으며 역시 정말 좋구나 가전도 가구도 신의 가호도 들지 않은 집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단잠이었다
- 관리자
- 2026-01-01
섬망과 섬광 임어지니 불빛이 터지는 것을 본 적 있어요? 아니, 폭죽 말고 불빛이요 사람들은 내가 말장난에 능하다고들 합니다 무엇 하나라도 재능이 있다면 다행인 일일까요 나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엄마는 자주 웃었지요 몰두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요? 내 눈은 얼마만큼 구슬을 닮아 있습니까 그보다는 비상구 등이 나은지도 모르겠어요 태양이 깨지는 상상, 부서진 조각을 전구 삼았습니다 그곳에서 지새웠지요 불면은 아니고 온종일이요 낮이고 밤이고 환할 때 얼마큼의 피로는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엄마는 너무 오래 앓았던 거예요 적당히 미치고 적당히 무감하게, 터져 본 사람조차 터지는 감각을 기억하지 못한다더군요 거품 문, 쓰러진, 도트 무늬 속옷과 길들지 않은 신발, 경찰은 금방 돌아갔습니다 나는 차에 앉아 있었고 비가 쏟아졌지요 그때 내리친 거예요 천둥 말고 직감이요 우리에게는 터질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 불꽃 되어 본 적 있나요? 틀린 질문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불꽃을 점지받았으니까요 유구한 농담을 해 보겠습니다 엄마는 재가 되었어요 헛돌고 있네요 심장에는 나사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도로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성이란 건 생각보다 질겨서, 이런 풍경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아요 아직 리허설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터지기까지는
- 관리자
- 2026-01-01
뱁새와 황새 최두석 자기 형편 모르고 무리한 일 저지르는 자 많아 뱁새가 황새걸음 하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농담이 생겼다 하지만 막상 뱁새는 황새처럼 걸을 일 없다 미꾸라지나 개구리나 뱀을 부리로 찍어 사냥하는 황새는 논이나 개울에서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지만 거미나 풀씨 찾는 뱁새는 덤불과 덤불 사이를 잽싸게 날아다닐 뿐 좀처럼 땅바닥에 내려앉지 않는다 뱁새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크고 높이 나는 황새 황새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오종종한 다리와 날개의 뱁새 그런데 요즘 황새는 어느 들에서도 찾기 어렵지만 뱁새는 어느 야산에 가도 만날 수 있다 조류학자들이 붉은머리오목눈이라고 부를수록 어색한 이름을 달아 놓은 뱁새 뱁새의 동그랗고 귀여운 눈을 뱁새눈이라고 마구 놀리지 마라 걷는 뱁새는 본 적도 없으면서 함부로 황새걸음 한다고 욕하지 마라.
- 관리자
- 2026-01-01
고라니 두루미 보듯 최두석 고라니와 두루미가 만나는 모습 보고 나서 ‘소 닭 보듯’에 빗대 ‘고라니 두루미 보듯’이라고 써 본다 소와 닭은 몸집의 차이가 너무 커 비유의 마당이 기울지만 고라니와 두루미는 균형이 잡힌다 닭은 소에게 밟히면 안 되므로 ‘닭 소 보듯’은 성립되지 않는다 고라니와 두루미는 서로 겁내지 않으므로 ‘두루미 고라니 보듯’도 무방하다 소와 닭은 먹이를 두고 다툴 일이 있지만 고라니와 두루미는 다툴 일이 없다 소와 닭은 친숙한데 고라니와 두루미가 만나는 모습은 한탄강이나 임진강에 가야 볼 수 있다 ‘소 닭 보듯’이 식상하다면 야생의 숨결이 풋풋한 ‘고라니 두루미 보듯’을 써 보시라 흔한 비유로만 여기지 말고 겨울날 한탄강이나 임진강에 가서 직접 고라니도 보고 두루미도 보시라.
- 관리자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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