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호
- 작성일 2026-03-01
- 댓글수 0
3월호 여는 말
한 달 새, 그러니까 최근의 일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무려 (각각의) 네 사람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마음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답했는데요, 불안으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설렘이라니?) 그동안의 저라고 하면, 설렘이 일 퍼센트쯤 있었을까요. 그저 불안해하기 바빴던 것입니다. 미래(未來)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앞으로 올 때”로, 후에 여러 글들을 찾아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은 거의 (당연하게) 한 쌍처럼 여겨지는 감정이었습니다.
저만 몰랐던(?) 걸 알게 되는 동안 계절은 겨울에서 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꽃을 품고 가을과 겨울을 보냈을 목련 꽃눈을 보았다는 식물 화가로부터 “이제 곧 산수유 꽃도 피겠지?”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그 순간 매우 명백하게 제 안의 일 퍼센트의 설렘이 몸을 부풀려 불안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 호 문장웹진에서는 시와 소설, 비평과 함께 각자의 삶을 통과하는 날들 곁에 존재했던 음악과 문학을 둘러싼 자유롭고 고유한 이야기와 선율들을 준비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봄으로 가는 분주한 날들 가운데, 문장웹진 3월호와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장웹진 편집위원 이주란 소설가 외 편집위원 일동

2026년 3월호 <막과 막 사이에서> ⓒ 피츠(pits)
3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우리는 모래성을 쌓으며 희망을 노래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문장웹진 2026년 3월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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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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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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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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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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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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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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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단편소설 |
이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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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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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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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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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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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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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웅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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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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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3월호 살펴보기
[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비비디바비디부 홍순인 이거 제가 쓴 건데 들어 보세요. 나는 ‘네튤농’이라는 포크 밴드에 소속된 ‘작가’다. 밴드에 작가가 웬 말이냐고 따진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네이버에서도 네튤농을 등록할 때 밴드에 작가라는 포지션은 있을 수 없다며 결국 나를 퍼커션으로 소개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작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인간 유형을 분류하는 건 신봉하면서 전 세계 보편적인 밴드 구성에 반기를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뭐, 고분고분 인정하면서도 서운하긴 했다. 참고로 나는 INFP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시를 써 가면 죄다 디테일한 묘사뿐이라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던(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화성학의 기초도 떼지 못했지만 밴드의 일원으로서 약 100회가량의 공연을 해낸 돌팔이 음악가이자,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는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런, 정말 그런 내가 포크 밴드에서 ‘작가’로 살아가게 된 어떤 우연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축제 위원장을 맡으며 학교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였다. 당시 학교 축제 기획에 도움을 주었던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진짜 시에 대해 공부하고자 했지만 너처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상에 앉아 있겠냐는 주변의 만류로 기분 좋게 기획사에 입사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히 ‘이규범’을 만났다. 나와 같이 하루하루 일을 쳐내 가며 밤이 되면 야근을 하다가 술을 마시고 좁은 방에 여럿이 구겨져 자고 다음 날에는 이걸 또 반복했다. 대학원에 가면 불행해진다지만 기획사에 가도 불쌍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런 의미 없는 날들 속에서 이규범이 나와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규범에게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싱어송라이터가 된단 말인가. 이규범은 노래도 못 했고 가사도 못 썼다. 나는 회사의 기획서와 제안서 내의 글과 카피를 대부분 담당하고 있었고, 평소 인디 밴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규범은 가사와 관련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는 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을 제안해 줬고 종종 밤늦게까지 회의실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기보다 나도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보면 어떨까 막연한 상상을 해 보던 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규범은 회사를 떠났다. 정이 많이 들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규범이 첫 앨범을 낸다며 찾아왔다. 나는 그 앨범의 소개 글을 써 주었다. 솔직히 좋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안티팬의 입장에서 소개를 하는 글을 써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담은 글로 편하게 족발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이규범은 두 장의 앨범을 더 냈고, 나는
- 관리자
- 2026-03-01
[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대먹튀 시대에서 예술의 쓰임에 관하여 오웅진 벨라 타르가 세상을 떠났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번역 신간이 집에 도착한 직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어 공교롭다는 생각을 했다. 소식을 듣고 멍청하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라 타르의 1994년도 영화 〈사탄탱고〉의 한 주인공 이리미아스 역할을 했던 배우(Víg Mihály)가 동시에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이었다는. (실은 주인공 같은 건 없다, 감독에 따르면 자신의 영화에서 굳이 주인공이라면 ‘시간’ 정도)1) 작품에서 그가 분(扮)한 역할을 설명하자면, 아니 그를 쉬이 욕할 수 있도록 거칠게 요약하자면 ‘곗돈을 들고 튄 계주’쯤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죽는다. 아이의 죽음, 그로 인한 공통의 슬픔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 가장 깊숙한 곳에 박아 두었던 돈을 모으게 되는데, 계주는 그 돈을 들고 튐으로써 스스로를 사탄과 편히 겹쳐 보게 돕는다. 소설은 카프카의 짧은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2) 앞서 언급한 떠난 계주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도, 작품 속 마을 사람들 삶의 대부분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음악이란 게, 혹은 춤이라는 게 실은 곗돈을 들고 튄 저 악마 같은 계주쯤 되는 것은 아닌지 말해 보고자 한다. 소설 『사탄탱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5년, 그의 최근작 『헤르슈트 07769』가 쓰인 것은 2021년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가 좀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펼쳐보고 안도했다. 짧은 문장 한 줄이 나를 반겼다. “희망은 실수다.”3) 그가 여전히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 그를 믿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다수가 음악인인데, 이는 독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예컨대 누군가 주말마다 부장님에 의해 호출되어 산을 탄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어쨌든 그가 산에 성실히 오르고 있으니 산악인이라 충분히 불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이라면, 이 소설 속 다수의 인물을 또한 능히 음악인이라 불러도 좋다. 소설에선 부장님 대신 ‘보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인들의 리더를 달리 부른다. 보스는 바흐에 관하여 얘기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단원들 역시 보스가 바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그들이 바흐에 관해 듣길 좋아한다는 말과는 사뭇 다르다. “보스는 그들이 바흐에 대한 보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리허설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카나 심포니는 아마추어 음악가들로 자기 악기에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루긴
- 관리자
- 2026-03-01
[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 아를 lilysacredlily · 20251228_slowslofi playset 최초의 기억은 들렸던 것이다.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 할머니는 늘 자기 전에 적혀 있는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른 생경한 목소리와 리듬으로 그것들은 발화되었고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거기에 분명히 있었지만 어느 영겁 너머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작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기에 그 소리의 흐름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 또한 내가 무엇인지, 내가 있는 곳을 잊어버렸다. 그 뜻 모를 말들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거의 기도처럼, 주문처럼, 노래처럼 들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고 또 쓰인 것들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로 전해졌고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어설프게나마 소리 내어 보기도 했다. 그 유년의 밤 동안 할머니는 나의 유일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어린 나의 두 귀가 되어 주는 밤의 훌륭한 안내자였다. 구전. 우화. 신화. 전설. 민담.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야기들. 되풀이되는 노래 같은 것들. 요정. 고블린. 거인. 요괴. 도깨비. 기사와 문지기. 바드와 리라. 검과 용사. 광장의 하프 소리. 그것들은 때때로 꿈속을 수호하며 때론 일상의 그림자들이 되어 호출하면 응답할 것만 같았다. 들려지는 것들이 쓰여질 때, 쓰여진 것들이 들릴 때. 적혀 있는 것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귀로 전해지는 것. 반복해서 전해지고 지금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 어느 날 들렸던 하나의 목소리가, 어느 한 구절이 누군가를 살렸다면, 그로 인해 살아갈 수도 있다면 그것은 신앙과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빌어 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계속 갈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로부터 지금도 계속되는 어떤 순간들이 지속될 수 있었을 뿐이고 그다음이 있기를 그 순간들로부터 감히 바랄 수 있었던 것이다. 늘 목숨처럼 붙들고 있지만 동시에 늘 너무 아득하기만 한 것에 대해 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 고민의 끝에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정신이 몇 번이나 나갈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셀 수 없을 정도로 꿈을 정말 많이 꿨는데 잠깐의 꿈에서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소리였겠지만 귓가에서 목소리는 오래 머물렀다. 병실의 침대가 아니라 이제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나는 온 건가? 눈을 뜨면 나의 옆에 누워 그것을 읽어 주는 할머니는 없었지만 나는 들었다. 이곳을 넘어서, 시간을 넘어서, 세월을 넘어서. 그 밤 이전의 무수한 밤들로부터, 그 밤의 영겁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던 목소리를. 초연해지고자 열망하는 마음을 이미 초월해 있는 곳으로부터 목소리는 들린다는 것이. 나의 뼈의 일부는 부러졌고 언제까지 누워 있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부서진 건 뼈뿐
- 관리자
- 2026-03-01
[문장웹진 다시 읽기] 다 한때 ㅡ 「리 반 클리프」(2013년 1월호 수록) 현재(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라는 소개를 달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뭔가 아직도 어색하고 민망스럽다. 평소 문화생활이랑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인지라··· 나는 내가 비평을 하고 있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다만 좀 섬뜩한 타입의 독자였을 뿐. 다독하는 독자는 결코 못되고, 그렇지만 한번 꽂힌 것에 대해서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흔히 말하는 전작주의를 앓는 타입. 20대 전반을 방구석에 처박혀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사이버 스토킹했는데, 당시 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내가 디깅할 수 있는 루트란 루트는 모조리 다 동원해서 작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그들이 읽는 책과 같은 책을 읽고, 그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그들과 같은 동선을 따라가 본다(비록 내가 방을 나서는 일은 한 달에 한 번뿐이었지만). 그러고 나서 그 모든 것들을 강박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한다(다시 쳐다볼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등단을 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비평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찾아 읽게 된 『비평적 의식』에서 소위 주네브 학파의 일원인 조르주 풀레는 다음과 같이 서두를 떼고 있었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어라, 근데 이거 난데···. 풀레에 따르면, 어쩌면 나는 적어도 의식만큼은 타고난 비평가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스토커형 비평가. 지금도 내가 비평문을 쓸 때 첫째로 하는 일은 자료 조사다. 보통 비평이란 작품을 ‘잘’ 읽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나에게 작품은 비평가가 경유할 수 있는 일차적인 경유지에 불과할 뿐, 나는 내가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말하자면 그의 ‘체취’를 맡아볼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낱낱이 찾아보며 가능하면 그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런 글들을 쓰게 되었고 또 지금도 그러고 살고 있는지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한번 느껴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왜인지 그와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는데, 심지어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이미 지겨워져 버린 사이도 있다. 마치 못 볼 꼴 다 보고 난 뒤,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다짐하며 헤어진 오래된 친구나 연인처럼. 혹은 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내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며, 나야말로 그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내 말이 맞다는 걸 당신도 곧 알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위험한 착각이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이상한 장르가 유독 이런 관계 망상을 잘 유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극히 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마찬가지로 아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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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박서양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3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부패하는 기억의 공간 ㅡ 『자작나무 숲』과 쓰레기의 정치학 (1) 박서양 0. 연재에 앞서 본고는 김인숙의 장편소설 『자작나무 숲』을 중심으로 쓰레기라는 물질이 공적인 처리 제도와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 그리고 기억과 서사의 경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단계적으로 고찰하는 3부작 비평이 될 예정이다. 1부에서는 단편소설 「빈집」을 살피며 쓰레기가 공적 처리 시스템에 편입되기 이전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수행되는 분류 노동과 그 젠더화된 정동을 분석할 것이다. 2부에서는 쓰레기를 배제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하려는 배제의 원리가, 서사에서 개연성을 통해 사건을 정합적으로 배열하려는 충동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살핀다. 3부에서는 지워진 여성들의 언어와 역사, 그리고 쓰레기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며, 재개발과 쓰레기집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여성 고딕적 상상력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논할 예정이다.1) 1. 쓰레기집의 사회적 상상력 곡교동 산1번지의 쓰레기집은 소설 『자작나무 숲』의 공간적 배경이자 독자를 압도하는 오브제다. 개발과 투기의 욕망으로 들끓는 재개발 예정 구역 한복판에 우뚝 선 이곳은 그 강렬한 존재감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흔히 ‘집’이라는 단어에서 안식과 보호, 정돈과 재생산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이 공간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 집과 집 아닌 것의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 이질적인 장소에서, 자본의 생리에 따라 버려져야 할 물건들은 한데 뒤엉켜 완강한 물질적 현존을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의 축적은 단순한 불결함이나 미관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일상적 분류와 질서의 법칙이 멈춘 어느 공간에서 소설은 사물의 퇴적과 부패를 집요하게 드러내며, 집의 장소성을 ‘언캐니(uncanny)’하고 낯선 심연으로 변주시킨다. 집은 물리적으로 내부를 보호하고 외부를 차단하는 경계로 구성되며, 무엇을 수용하고 배출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분류 체계 위에 성립한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끊임없이 순환되어야 하므로 ‘쓸모’를 다한 물질은 즉각 폐기되어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집이 수행하는 선별의 원리와 닮아 있다. 이때 집은 어떤 사물이 여전히 인간의 일상에 머물 자격이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장소로 존재한다. 산1번지에 위치한 그곳이 문제적인 이유는 이러한 소비주의 시스템과 분류 기제가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무력화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사물의 분류 체계도, 공간의 경계 논리도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퇴적되고 방치된 사물들만이 거대한 물질 덩어리로 합쳐져 뒤엉킨 채 굳어간다. 이처럼 쓰레기 더미가 인간의 거주 공간을 잠식하는 장면 속에서 독자는 익숙한
- 관리자
- 2026-03-01
그해 겨울은 내게 백가흠 방안에 어둠이 번지며 축축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퍼진다. 가스가 끊긴 지 두 달 전이다. 조금만 견디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내게는 겨울이 ‘가혹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겨울을 내 생에서 다시 맞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매일 나는 마음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마흔다섯 번째 겨울을 나는 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원룸 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웬만한 추위를 견디는 데 불편이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엄청난 한파가 시작된 뒤로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에 붙어 나를 괴롭힌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읽는다는 일거리가 있어서 좋다. 나는 휴대용 버너에 물을 올린다. 텐트 안에 습기가 차며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 누워 밤이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지루한 삶의 권태와 살이 갈라지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 사이 내 밤이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와 생의 존속을 위한 고통 사이 내 하루가 있다.1) 핸드폰은 정지된 지 몇 주가 지났다. 내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친구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일 빼면 전화기는 내게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평생 내가 맺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 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세 주전자가 울기 시작한다. 고요함이 물러간다. 가끔 이는 소란스러움이 내게는 퍽 소중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신다. 추위가 잠시 녹는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꼭 껴안는다. 다른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얼어붙었던 하루의 고뇌가 녹는 것 같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배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허기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제는 한 끼라도 먹었으니, 어제, 오늘은 굶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굶었다. 끼니를 때우는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소주 두 병과 담배를 샀다. 마지막까지 나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다. 소주와 담배만큼은 쉬이 참을 수 없었다. 술이 없으면 한잠도 잘 수가 없고 담배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담배는 허기를 채워 주는 묘약이다. 소주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 관리자
- 2026-03-01
핸드폰 박형준 핸드폰을 어디다 두었는데 찾지를 못하겠다 밤 산책을 나갔다가 길에 흘렸는지 풀숲에 앉아 있다가 빠뜨렸는지 고물 자전거를 타고 김포바다에 가 보거나 한강 하류 시골 읍내처럼 생긴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높은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갈 때 삐걱대는 페달에서 다리를 떼고 속도를 즐겼다 울퉁불퉁한 산길의 초지를 달리다가 핸드폰을 빠뜨려 먹고 집에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대여섯 시간을 되돌아가 기적처럼 핸드폰을 찾아왔다 술 많이 먹던 시절 택시에서 핸드폰을 두고 내리던 때가 생각난다 다음 날 택시 기사와 간신히 내 전화로 통화가 되어 무슨 비밀작전처럼 택시 기사가 지정한 곳에 가서 구멍가게 옆 자판기 밑에 놓아둔 핸드폰을 찾고 사례비를 놓아두고 온 적도 있었지 운이 좋아 소중한 것을 모를 때가 많았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잃을 때야 비로소 내 자신을 투명하게 본다
- 관리자
- 2026-03-01
완화계 박형준 님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종이를 만드네 그 위에 한자 한자 글씨를 쓰네 떠내려가는 물에 종이를 씻네 글씨들이 물에 풀려 완화계 푸른 물에 봄을 불러일으키네 완화계(浣花溪) 거닐며 두보를 닮으려 초막을 짓고 산 두 남녀의 사랑을 떠올리네 그들의 사랑이 새겨진 망강루(望江樓) 올려다보니 누각 사이로 테니스 코트가 보이네 서로 주고받는 공 소리가 연신 울리네 서로에게 전해지지 않는 편지를 쓰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지 누각 사이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테니스공 치는 소리에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잠자리 날개처럼 바스라질 듯 부드럽게 내 손에 잡히네 한 남자는 떠나고 한 여자는 종이를 만들며 그 위에 글씨를 쓴다네 쓰기만 하고 부치지 못한 편지는 완화계 시냇가에 창포 꽃잎으로 흘러가네 * 완화계 시냇가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중국 당나라 시인 설도에게서 착상을 얻었으며 인용 부분은 〈동심초〉 가사 중 일부임.
- 관리자
- 2026-03-01
인노첸시오 8세의 불멸 김혜순 먼지로 흐린 유리창 때문에 밖의 나무도 흐리고 안의 남자도 흐리다 벌레의 주검들로 거무튀튀한 유리창 때문에 피아노 소리도 거무튀튀하고 방안의 남자도 거무튀튀하다 더러운 주전자에 물이 끓고 남자는 주전자가 타도록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선은 늘어져 있고 주전자를 태우는 불꽃만은 싱싱하다 검은 연기 속에서 시간을 가득 먹은 파리가 날고 전국의 공중전화 박스들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흘러드는 연기로 폐는 쿨적거리고 눈물도 쿨적거리지만 그의 핵은 뛰고 있다 때 묻은 나무의 새로 돋은 이파리들은 방을 엿볼 생각이 없다 방의 남자도 밖을 내다볼 생각이 없다 태양이 거머리빛으로 창을 기어가면 창 안쪽에서 해파리들처럼 먼지구름들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인노첸시오 8세는 영원히 살아 있다 먼지로 흐린 유리를 열고 아무도 그를 방문하지 않지만 볼록한 배 검은 진주로 변한 눈동자 그는 나무였으나 기괴한 광물이 된 몸 안에 살아 있다 그의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고 그의 목을 조르는 형광타원형들이 계속해서 천정에서 떨어진다 인노첸시오 8세가 먹은 세 소녀의 피 창밖에 억울한 장미 세 송이 영원히 피어 있다 나는 그의 몇 번째 시녀인가 밤이 오면 등불을 끄고 집을 쪼개는 금들이 몰려드는 것을 그대로 둔다
- 관리자
- 2026-03-01
베들레헴 크리스마스 김혜순 겨울, 잘생긴 죽음. 겨울, 몸속에서 나와 몸 바깥에서 살아가야 하는 추위. 우리 집이 한 꺼풀 좌악 벗겨진다. 집의 알몸이 드러난다. 차가운 바닷물로 지은 집에서 커피를 끓이는 일, 차가운 바람으로 지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 차가운 어둠으로 지은 집에서 한숨을 데우는 일. 차가운 공기로 지은 집에서 열병을 만드는 일. 잘생긴 죽음이 비명을 지른다. 바깥을 처음 만난 거대한 신생아처럼. 탯줄이 끊어지고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겨울엔 그 비명 소리가 공기 중에 꽉 찬다. 여름에 묻어 버린 태풍의 울음소리 같다. 모자를 푹 눌러쓴 행인들이 그 비명을 참고 걸어가고 있다. 엄마 없는 거대한 아기. 영하의 라듐. 내 불면의 무한한 냉동. 눈사태처럼 나를 파묻는 이 감정. 흰 꽃들이 중추신경을 따라 만발한다. 눈송이들끼리 서로 치러 주는 이 만발한 탄생일의 장례식. 차가운 은제 식기들이 우울한 우라늄처럼 굴러다니는 하늘 아래 죽음이 말구유에 눈사람처럼 누웠구나. 동방박사들이 낙타를 타고 멀리 엄마가 아직도 처녀인 차가운 아기를 경배하러 오는구나.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1)그 유리병을 열지 마! 하늘 대신 흰 천 하나. 땅 대신 들것 하나. 너무 추운 이 항구 대신 빙하기의 자궁 같은 거대한 냉동 서랍 하나. 나는 막 태어난 엄마 없는 겨울 아기의 손을 꽉 잡는다. 차갑다. 더 꽉 잡으니 더 차갑다. 정말 이곳은 춥다. 1) Maria Salomea Skłodowska, 마리 퀴리의 폴란드 이름.
- 관리자
- 2026-03-01
명상을 시도하다가 쓰는 시 여한솔 제목을 명상 앞에서 라고 하려다 아니지 그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 같으니 지운다. 유튜브와 검색창에 명상하는 방법을 치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늙고 말았네. 명상은 하지 못한 채 젊음이 다 갔다. 늙음도 가는 중이다. 요가 선생과 심리학자가 등장해 명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알려 주지만 나는 티끌처럼 작은 상상에도 날아가고 만다. 적절한 슬픔이란 참 요란하다. 담요 위에서 단아해진 나는 명상에 대한 시작과 과정과 결론이 담긴 제목을 붙인다. 비로소 시를 쓰는 새벽이 있다. 기쁘게도 실패한 명상은 어떤 비유도 할 수 없구나. 명상을 위해 떠올렸던 진녹색 산 두 덩어리. 강물을 따라가는 메아리. 계절이 바뀌어 설산이 되는 광경이 있었는데 한 스님이 와서는 얘 그건 명상이 아니다 망상이다, 한다. 그렇지 나는 행운동의 한 건물 안에 앉아 이 느리고 따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망상을 했더라지. 나는 새가 되고 서늘한 폭포가 되고 나비의 눈이 되어 조용히··· 세상을 내려다보는데 기척도 없이 현관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봄바람과 친구들. 나는 동요하지 않고 머릿속에 무작위의 산을 늘린다. 나무 심기 나무 심기. 느티나무 벚나무. 한 아름 향기로운 사과꽃. 조금씩 피고 있는데 친구들 뒤로 어린 강아지와 고양이, 북금곰과 거북이 줄줄이 따라 들어온다. 쉴 틈 없이 들이치는 친구들. 빌라의 복도를 채우는 종이 가루 꽃가루. 금방이라도 내 집이 터질 것 같다. 숲 생각 숲 생각. 평화로운 숲 생각. 이글대는 숲 생각. 그 애들이 모닥불처럼 춤을 추는 것을 느낀다. 하모니카를 불고 작은 북을 두드리며 집안을 빙빙 맴돌지만 나는 명상을 하느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물을 마시러 온 서퍼와 제철 채소를 담아 온 농부가 좁은 집에 자리를 잡네. 어림없지. 바닥을 울리는 진동에도 나는 흔들림이 없지. 책장의 책들을 모조리 떨어트린 소리에 나는 잠시 놀랐지만 코알라 한 마리가 식물도감을 펼칠 때도, 그 안의 조각목을 꺼내 먹을 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포개 놓은 두 손바닥 위로 작은 새가 누워 잠잘 때 친구들은 나를 찰칵찰칵 찍어 대고 있지만, 애들아 나는 극야로 가는 중이다. 야트막한 눈꺼풀 너머 내가 아는 사물들이 넘실거린다. 그걸 쥐고 싶다는 상상을 지운다. 지운다. 엎질러진 우유. 책장에서 떨어진 해양도감이 펼쳐졌을 때 머릿속으로 커다란 잇자국이 피어올랐다. 그런 거 나도 있었어.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처럼 나는 물길 같은 사람 속을 가로지른 적 있다. 그게 나의 일인 줄 알았다. 나는 자주 너덜거렸다. 무너지는 몸. 기울어지는 밤. 명상은 깨끗한 풍경으로 시작됐었다. 그걸 조금씩 망가뜨리는 나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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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서울 순례 여한솔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저녁이 왔네. 내 등 뒤로 흘러내리는 물비린내 검푸른 하늘, 네 등 뒤에는 푸른 십자가가 두 개나 보여. 교회들이 빼곡한 동네다. 가난하고 믿음이 충만하고 불 켜진 집들은 자기도 모르게 별이 되는 동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으며 나는 관심도 없는 신앙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우리 앞에 별이 이렇게 많은데 북적이는 피자집과 알전구 늘어뜨린 상점에 나는 매료되는데, 너는 솔아 여기 서 봐, 사진을 찍어 주다가도 길을 떠나면 다시 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서울의 거리가 너에게는 순례길이구나. 너의 골목은 참배로 아득하구나. 2호선에서 한강을 마주할 때 내 마음도 그랬어. 너의 신앙처럼 나에게도 간절한 것이 있지. 저녁의 거리는 뭐든 믿고 싶게 만들고 아니 불신하게 만들고, 집을 별처럼 읽는 착각도 늘어난다. 멍이 드는 일처럼 밤사이 탄생되는 어떤 일기는 기억도 없이 아프기만 해. 정신병자들이 튀어나오는 세계에서 나는 매일 소름이 돋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이란 게 있지. 네가 찾는 신처럼 나도 사실은 무언가 찾고 있어. 황홀하고 자유로운 조각. 비행기도 장미정원도 알려 주지 못하는 완성에 가까운 환상. 나에게도 부끄러운 환상이 있어서 너의 신앙 이야기는 도무지 신화 같지 않고, 그냥 지금 쓰는 이 일기 같기만 하다. 그래도 너는 무거운 피아노로 사랑의 무게를 말하는 데 가까워졌지만 내가 짓는 상상은 쉽게 깨지고 부질없어서 결국 네 앞에서 지는 것 같아. 피아노 앞에서 네가 기도 노트를 보여 줬을 때 나는 알았어. 네가 어떤 착한 신의 손바닥에서 조금만 더 헤매도 좋겠다고. 네 가방에서 쏟아지는 악보로 네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는지 내게도 그런 선율이 있다는 걸 너 때문에 알았다는 걸 너는 알까. 그게 얼마나 탐이 났는지 너는 흰 철쭉 같은 신앙 때문에 계속 모르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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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일상적인 예의범절의 문제 심민아 사랑을 했답니다 추신처럼 했답니다 부록처럼 나머지처럼 고운 절취선처럼 내가 가장 예뻤던 때 그때는 좀 더 붐비는 분위기였고 혹시 해 보셨습니까, 삼면경으로 목격하기 내 눈 없는 데를 겨눠 보기 사랑을 했답니다 멀미 나는 후식처럼 했답니다 빙빙 맴돌도록 했답니다 늘 솔직했죠 나 혼자 덜렁 있는 캄캄한 방에서도 솔직했죠 감각과 개념의 진자 운동 양쪽에 얻어맞으면서도 꾸준했죠 의지 있었죠 사랑을 했답니다 털갈이처럼 했답니다 찬물에 싹싹 헹궈 가며 했답니다 러브 바이트로 꼼꼼하게 홈질한 영혼과 내 살 아래의 아수라, 기쁨과 병증만큼이나, 사랑을 했답니다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 광대다운 성격으로 했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살아 있는 사람이 더 많았던 때에 사랑을, 했답니다 에누리 없이 했답니다 용서 없이 했답니다 두둑한 모조 콧수염 아래에서 마음이 축축하도록 했답니다 나의 착함에 잡아먹혀 익숙한 이빨 자국을 가득 달고서 부풀도록, 덧나도록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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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사람의 두겁 심민아 이 대가리적 고통은 무엇 인내를 잃고 기분을 잃고 운명을 잃어 홀딱, 뒤집는 사연 그런데 이제 물구나무나 공중제비는 말고 입 구멍부터 똥구멍까지 홀딱, 확실하게 뒤집는 사연 무두질,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내장을 연행하고 핏줄을 쫓아내어 소금 찜질 모래 찜질 중금속 찜질로 두겁, 훌렁훌렁한 두겁, 두겁이 되자! 가위질 마름질 닦달질로 비겁 기운을 긁어내고 냉찜질 온찜질 바느질로 기겁 질겁을 탕탕 수저질 젓가락질 연애질로 식겁을 에퉤퉤 돌 찜질 담금질 덧손질로 삼겁을 아예 벗겨 두겁! 두겁을 하자! 두겁, 두벅두벅 걸어가는 이리도 낭창한 두겁 무겁한 용감무쌍 두겁된 두겁 댁들아, 가까이들 보십시오 이것이 한때 사람의 두겁 이 두겁은 사람 두겁보다 두겁이라 내장에 멀미하고 선지에 환장합디다 뼈가 없어 는질는질 퍼진 녀석이 무슨 조화인지 벌떡벌떡 잘도 일어납디다 댁들아, 인사들 하십시오 이것이 두겁의 사연 이 두겁은 두겁 중의 두겁이라 검은 털은 질색하고 줄무늬에 환장합디다 남의 정수리 뚜껑만 봐도 코 싸쥐는 녀석이 구경 온 대뇌피질은 제대로 이겨 먹는답디다 두겁, 천만겁을 휘몰아 담는 이리도 텅 빈 두겁 무량억겁을 휘휘 지르고 질러, 무찔러 가는 무겁한 두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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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미래의 킥 이근화 대학생들과 2박 3일을 함께 했다 다섯 개의 특강을 듣는 워크숍이었다 두 개의 밤과 두 개의 아침 사이 여섯 끼의 식사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말을 참 잘하는구나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구나 유행 따라 배워야 할 것들이 많구나 특강자들은 모두 은연중에 킥이라는 말을 썼다 2박 3일 내내 축구공을 상상했다 아이디어에도 프로젠테이션에도 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킥이 필요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권투의 시절이었겠지 장정구를 떠올렸겠지 우리는 킥을 만들기 위해 손흥민을 떠올렸다. 손가락만 봐도 눈만 봐도 등만 봐도 손흥민은 손흥민이다 머리카락만 봐도 장정구가 장정구인 것처럼 미래를 위해 킥이 있어야 하고 한 방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에는 축구장에 대한 상상 축구선수에 대한 상상 축구공처럼 굴러가는 상상 운동장 밖으로는 굴러가지 않으려 한다 링에서 코가 터져도 끝까지 주먹을 들지 않는 것처럼 미래는 손과 발을 꽁꽁 묶는 것 장정구와 손흥민 사이 미래는 어디쯤 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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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백조가 지우는 것 이근화 뚝섬에서 타던 오리배를 오호리에서도 탄다 오리배는 오리를 닮지 않고 백조를 닮았다 뚝섬은 강이고 오호리는 호수이다 백조를 닮은 배를 오리배라고 한다 뚝섬이나 오호리에는 새가 있고 물 위에도 공중에도 새는 있고 새는 무엇인가를 계속 지운다 오리가 지우는 것을 우리가 읽고 백조가 지우는 것을 우리가 읽고 삼십 분간 부지런히 발을 구르다 보면 물 위의 사람은 무력하고 즐겁다 반드시 평지로 되돌아온다 물 위를 걸을 수는 없고 되돌아와서는 여긴 뚝섬, 여긴 오호리 물을 마신다.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은 물새들의 입에도 물고기가 한두 마리쯤 들어가겠지 얼마간 물이 물고기와 함께 넘어가고 삼십 분간 새겨진 물과 새와 발의 기억을 다시 오리배, 아니 백조배는 지우는 것이다 이곳은 뚝섬 또는 오호리 땅 위의 사람들은 물 위에서 배를 탄다 지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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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배후 박설희 비탈에서 도로 위로 갑자기 미끄러져 내린 새끼 멧돼지 여섯 마리 우르르 몰려다니다 갈팡질팡 와이퍼로 빗방울을 지우며 자동차 안에서 셔터를 눌렀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찍고 싶어 무심코 차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제 새끼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 어미는 사방에서 돌진한다 보이지 않는 어미의 눈동자가 발목을 묶는다 커다란 머리로 들이받아 내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사나운 발굽이 등을 내리찍어 척추가 으스러진다 나는 차 안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다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게는 없는 어미가 뼈에 사무쳤다
- 관리자
- 2026-03-01
뒤집다 박설희 삼 개월의 삶도 지루하다고 너는 뒤집는구나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뒤집는 게 어쩌면 제일 쉬울지도 먼저 자신을 뒤집고 온몸에 힘 꽉 주고 직립하겠지 세상을 똑바로 서서 보게 되겠지 뒤집고 뒤집고 또 뒤집다 보면 손바닥이 아니라 양말이 아니라 옷이 아니라 말이 아니라 체위를 전복하고 꿈꾸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지 나를 전복하는 일 그 근육을 키우는 일 가장 어려운 일을 해냈구나 전복된 체위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놀라운지 네가 말을 먼저 배웠다면 얘기해 주겠지 의기양양하게 무거운 고개를 들고 초롱한 눈으로 나를 마주 보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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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꽃잎 떼기 놀이 김헤니 에밀리가 내 손에 꽃을 쥐어 주고 가자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꽃을 들고 달려왔다 이걸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꽃잎을 하나둘 떼어 땅에 뿌려 보기 시작해 친구가 나에게 물어봐 그 남자가 널 사랑하나 안 하나 물어보는 중? 아니 나는 땅을 장식하는 중 방금 막 내가 발명한 꽃의 새로운 용법 나에게 달려온 에밀리 슬픈 얼굴 버리는 거야? 꽃잎이 떨어진 걸 보고 놀라 에밀리, 이건 땅 꾸미기 놀이야 이렇게 에밀리 친구들에게 달려가 놀이를 전해 기쁜 얼굴 에밀리는 절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다 에밀리는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고 나온다 아이는 기어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돌은 먹으면 안돼 아이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구멍 앞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어둠을 만지고 돌아온 소리의 간격이 이상해 꺄르르 웃으며 달려간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네 에밀리는 내 손에 큰 송이를 쥐어 주면서 이건 가져가는 꽃이야 신신당부하며 꽃은 늘 물에다 넣어야 해 에밀리는 나에게 숨바꼭질을 원하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같이 놀 수 없어 에밀리는 아빠도 어른인데 나랑 놀아 줘 너는 어른이어서 거짓말을 하고 있네 에밀리의 아빠는 에밀리가 제안한 놀이가 숨바꼭질이 아닌 만지기 놀이라고 한다 Cache-cache! 까슈-까슈! 숨바꼭질! Casse-casse? 까스-까스? 다 부숴 버려? Touche-Touche 뚜슈-뚜슈 만지기 놀이 에밀리의 친구들은 광장 여기저기 흩어져 저마다 바닥에 꽃잎으로 흩날리는 그림을 그린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 관리자
- 2026-03-01
증상 아닌 이상형 김헤니 우리가 같은 시기 앙굴렘에 도착했을 때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나는 제일 먼저 너를 발견해 이곳에 하나뿐인 영화관 앞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너를 의식하면서 나를 보는 너를 본 적 없다는 표정을 지어 우리가 서로를 발견한 장면인 줄 알았는데 다음 해 다시 그려 본 그날의 너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어 버스 창문 밖으로 걸어가는 너의 시선은 나를 향해 놓고도 나를 보지 못해 그때 나는 내가 쉽게 다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이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었을 때 우리가 닿지도 않았는데 서로의 팔이 닿았을 때처럼 미친 듯 뛰는 너의 심장 소리가 반가워 너는 멀지만 누구보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 나의 재능을 내가 가야 하는 길을 나보다도 더 멀리 나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일이 너의 타고난 임무라는 듯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를 위해 역에 나온 너의 웃음이 오늘 밤 한잔하러 오라는 친구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해 너는 잘 다려진 옷을 입고 할머니가 해 주던 대로 내게 요리해 줘 내게 무얼 마시고 싶냐고 물어 내가 더 먹어야 한다고 말해 남은 커피잔에 설탕을 녹이는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던 네가 오늘은 느리게 먹는 나를 보며 입술을 다문 채 웃고 있네 너는 설거지를 하다가 내 다리로 향하는 시선을 들켜 너는 내게 바짝 당겨 앉아 다리를 붙이고 나는 버텨 내 잠깐이지만 우리가 함께하면 어떨까? 정신이 아찔해져 내내 키스하고 싶었어 너를 본 이후로 쭉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거든 내 어린 시절이 괜찮대 오늘 두 사람을 고문할 필요는 없대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기도 하냐고 묻는 네가 어쩔 수 없는 이탈리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는 긴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려 왜 예전처럼 머리를 기르지 않아? 나는 키스할 때 너의 얇은 입술에 실망하고 나와 전혀 다른 골격을 만지며 놀라지만 조각 같은 너의 손의 아름다움이 숨이 동기화되는 시간이 잠시나마 나를 구원해 우리는 원한다고 말하는 걸 보류한 사이 노랫말만 주고받는 시시한 사이 말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 맞지? 예전에 나는 생폴역의 출구에 서서 도착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바로 그 자리에 연인을 기다리던 한 여자의 기쁨이 너무도 강렬했던 나머지 여자가 떠난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내 몸에 스민 그녀의 바람이 황홀해 한참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해 여자의 꿈이 남기고 간 선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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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방의 병리학 ㅡ 유선혜와 차현준의 시를 중심으로 송현지 1.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몸 1929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내세운다. 이 요구는 여성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조건을 폭로함으로써 당시에도 강한 호소력을 가졌지만, 그 구체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되곤 한다. 특히 ‘자기만의 방’이라는 표현은 독립을 위한 물질적 요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며 여성 창작자만이 아닌, 청년 등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까지 확장되어 활용되어 왔다.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금융 자기 계발서의 제목이나 그들의 주거 형태를 분석하는 사회학적 키워드로 변주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울프가 제시한 이 조건은 단순히 경제적 여유를 갖추거나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당시 여성의 몸이 가사 노동과 돌봄을 위해 수시로 침범되며 공동의 재화처럼 사용되었음을 떠올려 본다면, 정기적 수입의 필요성은 생존을 이유로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양도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며, 독립된 방에 대한 요청은 몸이 침범당하지 않을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울프가 요구했던 저 경제적·물리적 조건이란 타인에게 뺏긴 자신의 몸을 되찾아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에 기대어 오늘날 청년 세대의 거주 불안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닌, 신체의 주권 문제와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 고시원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정민우가 그들의 불안정한 거주 자체가 아닌, 잦은 이동으로 인해 소유물을 버리는 일에 익숙해진 그들이 삶을 ‘요약’한 채 살게 되었음을 포착한 것처럼 말이다.1) 이처럼 방의 문제가 주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게 되는지를 규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며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을 살펴보는 작업은 소재주의적인 탐색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임대된 방에 머무르는 유선혜 시의 화자와 내면의 방을 관리하는 차현준 시의 화자를 중심으로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고,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그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을 상상하고 변형하며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청년들의 인식 구조를 가늠해 보려 한다.2) 2. 임대된 몸과 구멍의 존재론: 유선혜의 경우 유선혜의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에서 청년 인물들은 주로 좁고(「흑백 방의 메리」), 어두운(「Nirvana」) 방에 머문다. “조립형 서랍장이 쓰러져가”는 방에서 “싸구려 보드카와 오렌지주스를 종이컵에 섞”(「잡종의 별자리」)어 마시고, 여러 개의 방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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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1
서브리미널 안종성 여러 대의 카트가 교차 레일 지점을 충돌 없이 지나갔다. 높은 위치를 누비면서도 질서 정연히 움직일 줄 알았다. 출로에 다다를 때쯤 천천히 감속하더니 허공에 뚫린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윤무의 눈동자는 천장 주행 장치의 행렬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그 장면으로부터 슬픈 기분을 느끼고는 습관처럼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붙잡아 두는가? 그러나 기록할 도구를 찾지 못한 윤무는 걷기로 했다.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벽과 바닥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흰 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소리와 냄새, 온도, 어떤 예감마저 느낄 수 없었다. 윤무는 이곳을 알 것만 같았다. 얼마 전 필경사와 무한한 흰 공간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필경사는 권면에 들기 전 미리 가서 둘러볼 것을 권했다. 깨어날 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 있을 테지만 영원히 망각한 게 아니라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권면 전의 삶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필경사는 뇌의 저장 용량을 컴퓨터 저장 단위로 환산하면 2.5페타바이트에 달함에도 인간의 상상력이 쉼 없이 활동하므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인간의 신체가 권면과 죽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경사는 기억 편람의 업로드가 끝나면 직계 가족이라 할지라도 오십 년 뒤에나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필경사는···. 구축 아파트에서 볼 법한 편복도를 지날 때 윤무는 재건축 직전의 폐허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호수마다 잡동사니가 나뒹굴거나 무가지가 쑤셔 박혀 있었다. 앞바퀴 없는 자전거도 복도를 비좁게 만들었다. 윤무는 그중 현관문이 열린 곳에 서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곳에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 역시 깨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는지 윤무에게 여러 번이나 같은 내용을 물었고─여기 당신의 집인가요? 다른 누가 또 살고 있습니까? 식사했습니까?─결국 이들은 임장하러 온 일행처럼 나란히 집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부는 따로 특별한 게 없는 가정집이었다. 통유리에 붙은 주먹만 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휠을 돌려 보거나 싱크대 위에 널브러진 여러 가재도구를 들춰 보던 윤무는 커피믹스를 발견하고 남성을 향해 들어 보였다. 포장 비닐이 아침의 배경 앞에서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스스로 마토메라 밝힌 남성은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를 다니고 있지만, 서울 출장 경험이 잦아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윤무는 소파에 앉은 마토메의 다부진 체격,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 외형만큼이나 독특한 건 마토메의 상태였다. 한눈에 보더라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내려다보는데 호흡이 불규칙했으며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윤무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업무차 여기에 온 건가요? 윤무는 낯에 익은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무대를 오며 가며 보았을 조
- 관리자
- 2026-03-01
우주의 영향 아래 임수지 언젠가 우주에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함께 가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방을 보게 될 거야. 팅커벨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면 문 앞에서 두꺼비가 널 지키고 있을 거야. 두꺼비들은 착하다. 두꺼비들은 두껍두껍 울지 않아. 걔들이 울면 동그란 구슬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정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주는 그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네,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 기사는 나를 미림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잠시 바라보다 미림슈퍼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두 번 꺾어 집 앞에 서서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바다 냄새가 몸속 깊이 들어왔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 전화를 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 내가 곧장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가 멋대로 눌려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짜증을 조금 부리다가 곧 이불을 내어주었다. 날 밝을 때 오지, 뭐 하러 이 늦은 시간에 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얼굴과 손발을 대충 씻고 작은방에 깔아 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안방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워 물어볼까 고민하는 동안 내 체온에 맞춰 이불이 천천히 데워졌다. 이불을 코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데운 이불이 다시 나를 데우며 조금씩 따뜻해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일. 오늘 나는 우주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잠들 것이다. * 우주가 내 방에 머물 때 입던 품이 큰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는 잘 개켜 종이 가방에 넣고 옷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나는 그걸 다시 꺼내 본 적 없다. 우주가 쓰던 면도기나 낡은 양말 같은 것들도 진작 정리했다. 이제 내 방에 우주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용 기한이 지난 음식점 할인 쿠폰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쓸고 닦아도 계속 생겨나는 먼지처럼 어딘가에서 자꾸만 하나씩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그런 것들을 찾아낸 날이면 나는 자꾸만 골똘해졌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있다니. 그런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2년이라는 시간은 하루이틀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사실은 하루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이 흘렀다고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서 영화 티켓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에 티켓이. 영화 제목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관객은 다섯 명뿐이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인가. 영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으므로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옆에 앉은 우주에게 작게 말했다. 전세 낸 것 같고 좋은데
- 관리자
- 2026-03-01
길 위에 사는 개 이종산 섬에는 버려진 개들이 많다. 휴가철에는 그런 개들이 특히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섬은 일 년 내내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계절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신이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간다. 개나 고양이, 혹은 사람이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개나 고양이를 버리는 것은 자신이 키우던 아이를 버리는 것만큼이나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섬에는 버려진 개들이 많은 만큼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개의 주인을 찾는 글도 동네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온다. 이 섬에는 걷기 좋은 길이 많고, 그런 길을 걷다 보면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만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항상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길에서 그런 개를 마주치면 나는 매번 아주 당황한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주인이 있는 개는 괜찮지만, 목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개는 무섭다. 그 개가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개는 미지의 존재다. 이빨이 달리고, 나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야생성이 남아 있는 동물. * 지난주 월요일에 나는 새로운 산책길을 걸었다. 내가 지내는 집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아주 맛있는 브런치 식당이 있는데, 그 집이 몇 달이나 문을 닫았다가 이번에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메뉴는 그대로라고 했다. 나름대로 애정이 있던 식당이라 꼭 다시 가 보고 싶었다. 맛이 그대로일지 어떨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그곳에 갔다. 그곳은 버스로 십 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 아주 가깝지만, 걸으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브런치 식당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망스러웠다. 식당이 올린 공지에서 봤던 대로 메뉴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도 맛도 달랐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같은 메뉴 같았는데 직접 먹어 보니 원래 팔던 음식이 아니었다. 내가 그 브런치 식당의 음식을 좋아했던 이유는 맛이 과하지 않고 신선해서였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 그 식당의 음식은 다른 평범한 식당들에서 파는 음식과 비슷한 맛이 났다. 특히 소스가 너무 많고 기름졌다. 전반적으로 짠맛이 강해져서 신선하고 산뜻한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전에 팔던 메뉴와 아예 다른 음식이 된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슬픔을 느꼈다. 식당에서 나올 때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사실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사랑하던 그 식당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주인이 바뀌면 맛도 아예 바뀌어 버리는 것이구나. 나는 그 사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이전의 주인은 그가 만드는 음식처럼 산뜻하고 세련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뀐 주인에게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바뀐 주인의 응대는 무척이나 투박하고 무뚝뚝했다. 이제 막 식당을 열었는데도 활기가 없고 망한 식당을 몇 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인상이 어두웠다.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식당을 할 거라면 왜 저곳을 인수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나는 마치 바뀐 주인이
- 관리자
- 2026-03-01
반복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ㅡ 김엄지론1) 안세진 1. 색소폰 연주와 살아남은 소설들 내가 살고 있는 집 앞 하천 굴다리에는 매일 저녁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가 있다. 처음에는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있었다. 어제도 있었다. 당신은 테이프 반주에 맞추어 끈적한 유행가를 연주하는 중절모 쓴 노신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풍경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벽을 보고 색소폰을 분다. 반주도 없고 관객도 없다. 중절모는 쓰고 있다. 한 이십 년쯤 들었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아직도 그가 대체 매일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 같은 프레이즈가 툭툭 던져지고 호흡을 고르는 듯 어색한 침묵이 길게 흐른다. 몇 개의 음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멜로디가 수십 번 반복되기도 한다. 아무리 들어 보아도 그것은 노래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오래 연주하지도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나면 색소폰을 케이스에 넣고 어딘가로 털레털레 사라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매일 무엇인가를 연주하고 있다. 어떤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유 모를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무엇인가 반복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는 장인(匠人)일까, 아니면 광인(狂人)일까. 언제부터인가 김엄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무엇인가가 소설 속에서 그저 미친 듯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엄지의 연주가 시작된 순간은 언제였을까? 정확히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겠다. 그때 데뷔 육 년 차의 소설가 김엄지는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문학과지성사, 2015)와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민음사, 2015)라는 두 편의 책을 거의 동시에 문단에 상재했다. 전자는 그의 등단작 「돼지우리」부터 시작해 비교적 ‘단편소설’의 통상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는 초기 작품들이 모여 있는 소설집이었고, 후자는 그가 최근 발표했던 각종 소설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만들어진 그야말로 괴이쩍은 장편소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지만 김엄지의 소설은 명백히 전자에서 후자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개념 상태로 널브러져 있”2)는 오피스 맨들의 기이한 무기력은 이미 그의 초기 소설이 잠시 펼쳐 보였던 ‘씹’, ‘뻑’, ‘좆’의 치기 어린 발랄함을 모조리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야흐로 - 이후 김엄지의 소설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규정하게 될 - “삶의 무게, 아니 ‘무게 없음’을 형상화한 듯한 하나의 형식”3)이 발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엄지의 문체(style)는 사실상 그때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성의 없이 툭툭 끊어지는 문장, 몇 페이지를 채 이어 가지 못하고
- 관리자
- 2026-03-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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