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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 작성일 2025-08-01

   새로운 인생

 

유진목

 

   거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허리를 숙여 지폐 한 장을 두고 갔다. 그것을 돌려주려 했지만 그는 빠르게 걸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지폐를 주머니에 넣을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거리를 떠돌던 개가 가까이 다가와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몇 몇 사람들이 동전이나 지폐를 내려놓고 갔다. 동 틀 무렵 나는 돈을 세어 보았다. 이대로 내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개와 함께 수퍼마켓에 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조금 샀다. 그러고 그것을 나눠 먹었다. 아침이 되자 분주한 사람들이 돈을 두고 갔다. 돈을 주는 사람보다 주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개와 나는 서로의 목덜미를 베고 잠이 들었다. 삶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삶이 죽음 말고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것처럼. 나는 뒤척이는 개에게 사람의 말로 속삭이고서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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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 유진목 나는 달린다. 천천히 달려간다. 바라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골목은 못생겼다. 아무렇게나 생긴 곳에서 살아왔다. 거기에는 우산을 쓴 남자가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이 구름 모양의 콘을 내밀고 있다. 나는 달려간다. 죽지 않고 살아왔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사랑만 남고 다른 것들은 천천히 말라 죽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손에서 녹고 있다. 아이가 운다. 여자는 아이스크림을 빼앗는다. 거리에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출발하실 분들은 지금 바로 게이트로 모여 주십시오. 담배 한 보루를 사러 갔던 그가 오고 있다. 어제도 그랬다. 그는 담배를 사서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갔다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남긴다. 나는 달려간다. 도시는 못생겼다. 죽지 않고 살아왔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나는 사진을 열어 본다. 그가 웃고 없다.

  • 유진목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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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서 벗어나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유진목 1.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나에게 사적으로만 기능했던 질문을 수집해 공적으로 발화해 볼 생각이다. 내가 겪은 폭력은 기묘한 방식으로 성별을 구분하고 그중 취약한 쪽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2. ‘나’라는 주체가 폭력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놀랍게도 언제나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3.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여성’이라는 사실과 만날 때 힘을 얻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테면 부족한 재능을 조롱하거나 물질적 빈곤에 수치심을 가하거나 마땅한 실수를 찾아내 비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를 겨냥한 폭력이 집중하는 것은 나의 성별 즉 ‘여성’이었다. 4. 나는 여성이고, 앞으로 던질 모든 질문은 여성으로서 발화하는 것이다. 5. 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폭력은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 질문 뒤에는 얼마간의 침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당장 선언할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는가? 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가? 6. 질문과 침묵이 반복되는 사이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삶을 복원하는 일이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원치 않는 폭력에 훼손당한 삶을 복원하는 일이다. 앞선 물음에 대답하자면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능하기도 하고 가능하지 않기도 하다. 그렇다면 삶을 복원하는 일도 그에 따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복원 또한 가능하기도 하고 가능하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의 가능 여부보다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폭력은 애초에 있을 필요가 없기에 한없이 비박하고 삶은 복원되어야 하기에 더없이 절박하다. 7. 삶을 복원하는 일은 폭력과 삶을 분리하는 일이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과 삶을 복원하는 일조차 분리하는 이유는 절망과 비관에 삶을 함몰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로 인해 폭력은 좌절하지 않지만 삶은 좌절한다. 폭력은 애초에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운 것이며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희망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이다. 삶, 그러니까 폭력 이전의 삶을 폭력 이후의 삶과 분리시켜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에게 그런 삶이 있었는지조차 희미해지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폭력 이전의 삶을 상기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재의 삶을 진단하여 폭력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도 말이다. 8.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그것대로 가장 힘든 일이고 그것대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며 그것대로 가장 절망적인 일이다. 그것이 아니고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9. 그런데 많은 경우 폭력은 타자의 진단으로만 성립된다. 그는 폭력을 가한 사람이다, 라는 문장은 성립하지만 나는 폭력을 가한 사람

  • 유진목
  •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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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유진목 여기, 살던 대로 살고 싶은 자와 다른 삶을 원하는 자가 있다. 살던 대로 살려 하는 자의 이름은 김철수이며 다른 삶을 살려 하는 자의 이름은 김철수이다. 김철수는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똑같은 복장. 반복되는 규칙. 먹고 자는 것 외 금지된 것. 갑작스런 소등. 자위. 섹스. 남들은 강간이라 부르는. 그 후. 살인. 죽어야지. 밤늦게 혼자 걸어갔으니. 나와 마주쳤으니. 김철수는 돌아갈 날짜를 세어 본다. 가만히 저항하면서. 살던 대로 살 날을 기다린다. 김철수는 다른 삶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과 다른 자신을 증명하는 것. 무엇으로. 끊임없이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삶을 사나니 다른 삶을 구하는 자에게 신의 축복이 있으라. 김철수는 새벽 기도를 간다. 김철수는 성경을 읽는다. 김철수는 신문의 사회면을 본다. 김철수는 글을 쓴다. 김철수는 쓴 것을 읽는다. 김철수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인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김철수는 밤마다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을 걷는다. 김철수의 집은 거기에 없다. 이런 씨발. 좆같은 동네보다 더 좆같은 동네에 김철수의 집이 있다. 김철수는 더러운 걸목을 걸어 문짝 가티도 않은 것을 문이랍시고 열고 들어가는 사람을 본다. 거기에 달린 자물쇠를 본다. 이런 씨발. 좆같은 집에 살아도 문을 잠근다. 김철수는 웃는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철봉소리. 김철수는 일어난다. 이런 씨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김철수는 다시 밤을 기다린다. 가만히 저항하면서. 이번엔 또 어느 좆같은 동네에 도착할지 김철수는 알 수 없으므로 매일 새롭다는 것을 매일 새롭게 알아 간다. 철봉소리. 피해자가 없는 강간. 시체가 없는 살인. 김철수는 돌아갈 날짜를 세고 있다. 김철수는 카메라를 켠다. 눈물을 흘린다. 김철수는 아무나 자신을 보기를 원한다. 눈물은 김철수가 다른 사람이 되면서 동시에 생겨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고 난 뒤 김철수는 아무 때나 눈물 흘릴 수 있다. 김철수는 머리를 숙이고 흐느낄 수 있다. 아무나 같이 울어 주길 바란다. 김철수는 댓글을 읽는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이 영상을 보신 분께서는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은 네 사람이 되고 네 사람은 여덟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김철수는 안경을 쓴다. 잠시 침묵. 김철수는 카메라를 끈다. 김철수는 철봉을 들고 여느 좆같은 동네에 서 있다. 김철수는 철봉을 들어 담벼락을 그으며 걷는다. 김철수는 길바닥에 나붙은 창문을 하나씩 넘겨다본다. 모두가 잠들었으며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발아래 있다. 죽어도 한참을 모를 사람들이 발아래 있다. 없어져도 모를 사람들이 발아래 있다. 김철수는 안다. 철봉을 들면 아는 것이 생겨난다. 김철수는 철봉을 옆구리에 끼고 오줌을 눈다. 김철수의 오줌이 길바닥에 나붙은 창틀에 고인다. 김철수는 매일 다른 사람으로 깨어난다. 어제 다른 것에 오늘 다른 것을 더하면서 내일 다를 것을 궁리

  • 유진목
  •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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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차윤영

    뒤척이는 개에게 뭐라고 속삭였을까요? 죽음말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냐고 물었을까요? 서로의 목덜미를 물지 않고 베고 잠든 세상, 그런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으면. 그 꿈으로 내일도 사고 모레도 살 수 있었으면.

    • 2025-08-05 13:37:14
    차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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