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야
- 작성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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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
이다희
안녕. 사랑해.
내가 키야에게 가르친 단어는 단 두 가지.
그 외에 모든 저주의 말들은 나에게서 자연스레 배운다. 외출을 할 때 나는 키야를 한참 바라보고 나온다. 안녕. 사랑해. 어디 갔어? 나쁜 년. 지옥에서 만나. 키야는 나에게 배운 두 단어에 항상 무엇인가를 얹어 준다. 나는 웃으며 혀를 찬다.
키야를 이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키야는 통통 걸어가 먹이통에서 사료를 쪼아 먹는다. 우연히 시장 골목을 지나가다 노점상 옆에 있던 키야를 본 순간 나는 새장을 그대로 들고 시장 골목을 나섰다.
키야를 처음 본 순간 키야라는 이름만 생각이 났다. 주인이 키야를 키야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을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키야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때 키야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나 또한 키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 사랑해.
나는 두 단어를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그 외에 저주의 말들은 키야가 알아서 배웠다.
안녕. 사랑해. 어디 갔어? 나쁜 년. 지옥에서 만나.
나는 키야가 하는 말들을 모두 받아 적고 싶다. 그게 설령 지리멸렬하고 괴로울지언정. 키야는 키야. 나는 오래된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피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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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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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11-01
눈물 이현아 무덤 나란히 다섯 개. 풀숲이 무성해질 때마다 집안 남자들이 찾아가 깎았던. 이곳은 연안 이씨 가문의 선산이고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은 크고 무겁다. 조상의 무덤을 파 본 적 없지만 무덤 안은 깊을 것이다. 아빠는 그곳에 부모를 묻었을 것이다. 묻다니. 묻는다니. 아빠는 오른쪽 무덤을 가리키며 엄마라 부르고 왼쪽 무덤을 가리키며 아버지라 부른다. 아빠는 무덤 앞에 납작 엎드린다. 나도 납작 엎드린다.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 안은 김장독처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 그곳에서 시체는 천천히 썩어 갈 것 감히 나를 묻다니 나는 무덤 안에 있고 아빠는 내게 납작 엎드린다. 엄마도 오빠도 선생도 친구도 엎드리고 내 남자 친구는 저 옆에 서서 오열하고 내 전 남자 친구도 찾아오고 저들끼리 엄숙하고 슬프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위에 엎드리는 당신들을 보며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만 나는 그저 크고 봉긋할 뿐이다. 당신들은 나를 두고 떠나며 이제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갈 뿐이다. 나는 언덕에서 내려와 밤을 줍고 차를 타고 선산을 떠난다. 아빠가 죽으면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묻어 줄까 태워 줄까 묻고 아빠는 자기를 데리고 다니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차 사고가 났다. 나는 봉안당 안에 있고 이곳은 계약 기간이 20년이라는 관리자의 말과 부모님이 늙으시면 관리를 못 하실 테니 저희가 하겠다는 당신들의 포부와 매년 찾아오겠다는 눈물의 다짐과 이제 당신들은 식사 중 나도 식사 중 내가 죽는다니 난 안 죽어 여긴 봉안당도 선산도 장례식장도 아니고 차 사고 따윈 없었고 아무도 죽지 않았으므로 그곳들은 다 텅텅 비었고 장례 업체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여긴 그냥 극장이야. 죽음에 대한 영화도 아니야.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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