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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노첸시오 8세의 불멸

  • 작성일 2026-03-01

   인노첸시오 8세의 불멸


김혜순


   먼지로 흐린 유리창 때문에

   밖의 나무도 흐리고 안의 남자도 흐리다


   벌레의 주검들로 거무튀튀한 유리창 때문에

   피아노 소리도 거무튀튀하고 방안의 남자도 거무튀튀하다


   더러운 주전자에 물이 끓고

   남자는 주전자가 타도록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선은 늘어져 있고

   주전자를 태우는 불꽃만은 싱싱하다


   검은 연기 속에서 시간을 가득 먹은 파리가 날고

   전국의 공중전화 박스들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흘러드는 연기로 폐는 쿨적거리고

   눈물도 쿨적거리지만 그의 핵은 뛰고 있다


   때 묻은 나무의 새로 돋은 이파리들은 방을 엿볼 생각이 없다

   방의 남자도 밖을 내다볼 생각이 없다


   태양이 거머리빛으로 창을 기어가면

   창 안쪽에서 해파리들처럼 먼지구름들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인노첸시오 8세는 영원히 살아 있다

   먼지로 흐린 유리를 열고 아무도 그를 방문하지 않지만


   볼록한 배 검은 진주로 변한 눈동자

   그는 나무였으나 기괴한 광물이 된 몸 안에 살아 있다


   그의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고

   그의 목을 조르는 형광타원형들이 계속해서 천정에서 떨어진다


   인노첸시오 8세가 먹은 세 소녀의 피

   창밖에 억울한 장미 세 송이 영원히 피어 있다


   나는 그의 몇 번째 시녀인가

   밤이 오면 등불을 끄고 집을 쪼개는 금들이 

   몰려드는 것을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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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순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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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구포대교

    좋다

    • 2026-03-04 10:42:28
    구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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