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
- 작성일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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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
김동균
차를 마셨어요 둘러앉기까지 많은 계절 지나왔네요 물과 돌 지나서 숲 헤치고 계속 걸었어요 다회가 열린다고 했는데 도착한 곳엔 아무도 없어서 더 많은 물과 돌 지나서 그것이 숲이 된 다음에 아무도 거닐지 않는 숲에서 배울 게 없습니다 시작하는 예절 가르쳐주는 사람 없어요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데 여태 혼자예요 펼쳐진 숲에서 더 짙은 몇 개의 숲이 뻗고 그곳은 마르기도 하고 불기도 하고 이제 스스로 차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다회가 열리는 일은 따로 있어서 지나쳤어요 눈앞에 펼쳐진 더 많은 숲 무성했어요 인기척 났지만 물 흐르고 돌 박힌 곳이라서 더 헤집고 싶지 않습니다 돌이키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는 다회가 열리는 곳에서 결국 만날 테니까 지나쳤어요 풀 스치는 소리 계속 들려도 계속 계속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도대체 차 마시는 곳 있기나 한지 궁금했어요 안개 끓고 꽃 식는 숲에서 물 끊기는 일 없어요 물은 공연(空然)합니다 헐벗으면 가지 사이로 누군가 보여야 했는데 아무도 없어요 한참 전에 나는 지쳤어요 아무래도 차 마시는 일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돌아가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흘러버렸으니까 돌아가면 이도 저도 아닌 날이 지속될 겁니다 물과 돌 사이에서 깨달았어요 물 돌 물 돌 물 돌 반짝이는 그것들 지나서 나는 숲보다 빨리 놓입니다 물과 돌 같은 거 회수되고 숲 무너지는 가운데 다회가 열리는 수순이었지만 아무도 없어서 더 많은 물 돌 물 돌 우거진 숲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았어요 모이는 장소 어딘지 모릅니다 서둘러 돌아가기 바빠요 그리고 하나둘 끊임없이 돌아왔습니다 숲에서 숲으로 숲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계절 지나서 속속 무성해지는 이들과 만나서 우리는 불을 켭니다 검고 흰 얼굴들 보이고 이것을 다회가 아니라 여기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둘러앉기까지 많은 계절을 지나왔다고 조금 전까지 우리는 혼자였는데 옆에 있는 사람 언덕을 넘어왔대요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라 말하고 나는 언덕에 흐르는 물과 물에 비친 돌을 집었습니다 그것이 언덕을 착수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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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시
외출외출 김동균 양우산을 쓴 사람.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얼굴이 있을 거야. 양우산을 접어도 있을 거야. 초콜릿도 먹고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으면 입꼬리에도 묻을 거야. 가방에서 티슈를 찾을 땐 한쪽 어깨를 올리고 목과 어깨 사이에 우산대를 끼우고 있을 거야. 티슈가 없다면 창피한 모습을 가리는 데도 양우산이 쓰일 거야. 아무튼 있을 거야. 없다면 찾을 때까지 양우산을 쓰고 얼굴을 붙인 다음 양우산을 접을 거야. 결국에는 집에 들어갈 거야. 방에서는 드러날 거야. 양우산을 쓴 사람. 한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 사람. 잠들기 전에 얼굴을 떠올려 볼 거야. 전원이 꺼진 모니터에 검은 얼굴이 비칠 거야. 거울 앞에선 적나라하게, 냉장고 문을 닫을 때마다 얼핏얼핏. 그러나 모르는 사람의 이마와 눈과 귀를 어디서부터 조립하고 어떻게 떠올려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양우산을 쓴 사람은 양우산을 쓴 사람으로 깜깜하게 있을 거야. 양우산이 있는 사람은 모두 양우산을 쓴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죄다 얼굴이 있을 거야. 없다면 찾을 때까지 양우산을 쓰고 있을 거고. 얼굴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마솥더위에 밖으로 나오지는 않을 거야.
- 김동균
- 2024-10-01
문장웹진 시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날전부 수용할 수 있는 날 김동균 채점하고 있어. 누가 동그라미를 치고 있어. 초록을 칠하면 청귤이 되고 노랑을 칠하면 우산이 되는 여름 안에서, 점수를 매기고 있어. 청귤도 맞고 우산도 다 맞는 거라면서 연거푸 치고 있어. 동그라미를 보여 주면서 칭찬을 주고받았어. 받은 위로는 돌려주었어. 이번에는 검은 색깔을 써볼래. 섬유 타래로 엮은 트램펄린을 끌고 와볼게. 힘껏 뛰어오르면 용수철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나는, 외국의 낯선 동전들이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그것도 틀린 게 아니라고 그래서 덧칠을 조금 더 해봤어. 자신감을 가지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볼게. 이마에서 솟아난 땀이 턱 밑까지 내려가고 쓰고 있던 모자가 굴러 떨어지고 아직 한 번도 안 쓴 물감들 전부 구멍 안으로 쏟아져서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와중에, 재빨리 구멍 안으로 들어가 볼게. 아무도 없는 굴속으로 이제 막 떨어져 나왔는데 거기서도 누가 채점을 하고 있어. 반듯하게 동그라미를 치고 있어.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날이라고 그랬어.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밖으로 나가 볼게. 가을이었어. 나무가 앙상했어. 청귤 나무보다는 컸어. 청귤 나무가 절대로 아니었어. 다글다글한 동그라미들 전부 오려서 그 나무에 매달아 보았어. 저번 때처럼 사람들이 몰려왔어. 우르르 와서 매달린 것 모조리 따 가지고 돌아갔어. 동그라미가 다 사라진 그다음 날에도 자꾸만 누가 동그라미를 치고 있어. 선생은 아니었어. 선생도 아닌데 점수를 잘 매겼어.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 하고 불러 보았어. 처음이었어.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봤어. 선생님, 하는 산울림이 퍼지고 있었어.
- 김동균
- 2024-10-01
문장웹진 시
청사로 들어간 사람청사로 들어간 사람 김동균 청사는 처음이에요 청사에는 겨울 해변이 액자로 걸려 있네요 많은 풍경이 복도에 늘어서 있네요 처음 방문하세요? 안내하는 사람 있었어요 그것들은 모두 액자에 걸려 있어요 청사 안에는 나무가 없대요 액자에는 비록 많은 것들이 있지만 복도 끝에 청사의 사계절이 설치되고 창밖으론 엠뷸런스가 지나가는 게 보이네요 방문객들이 계속 들어오네요 긴 복도를 지나면 저무네요 공무를 마친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갔어요 붉은빛으로 울연하네요 그리고 청사는 오늘 공개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 김동균
- 2020-07-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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