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ography
- 작성일 2026-05-01
- 댓글수 1
Topography
연우
큰사람이 되렴,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걸었던 아름다운 주문
주름은 온몸 되어
나는 정말 큰 사람이 됐고
몸이 이렇게 자라다니……
칫솔로 이를 긁으면 잇몸에서 흐르는 모래
더 커다란 샤워기가 필요해
발치에서 개미들 수근거린다
길을 달리면 검은 뒤통수의 개미들, 끝없는 굴 속으로 도망친다
내가 재난이라니! 팔과 다리가 매일 아침 한 뼘씩 자란다
방에서 나와 걸음을 떼면
엄마가 종이비행기처럼 접힌다
펴지지 않는 선분
신비로운 보랏빛 무늬가 돋아나는 엄마 등도 온통 주름
축축한 솜처럼 누가 뭉쳐다 버린 구름처럼
엄마 여전히 바닥에 누워 계신다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몸을 접는다
두 번
네 번
여덟 번
(왜 더 접히질 않는지!)
반듯해진 끝에서 만나요
도시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 모퉁이를 접어 두고 간 숲이 나온다
미루나무보다 미루나무 그림자가 더 빨리 자라는
나의 등뼈 너머로 우거지기도 하는 숲은 집이 되어
나는 영영 커져서
산이 된다
숲 한가운데 누워 젖은 구름 덮고 잠들어도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바깥의 꿈
끓는 솥에서 피어오르는 상한 옥수수 연기와 빗물 새던 집은 경험한 적 없다고 적는다
큰사람보다는 이름표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잠들기 위해 침대의 태도를 이해하는
울고 있는 사람의 등에 딱 맞는 굴곡의 가슴을 가진 사람
텅 비도록 가득 찬 괄호가 불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생일에는 가족들을 숲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너무 커버린 나를 보지 못했다 낮에는 산책로를 걷고 밤에는 바위에 앉아 별을 봤다고 했다 며칠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았다고 그랬다
나는 그때
밤이 나의 초능력인 듯
간만에 무서운 게 없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커진 나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랐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친 얼굴로 이제 됐다며 돌아가려 한다 참을 수 없는 건 그들이 나의 등 밑에서 며칠을 보내다 내가 엎드려 울던 그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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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드라이한 문체인데 호흡이 유려한 게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