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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내기

  • 작성일 2024-02-01
  • 조회수 1,482

   비워내기


차유오


   오래된 물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목이 잘린 뒤에도 목걸이를 건 귀신을 보며 생각했다 


   깨지기 쉬운 것을 사랑했지 깨지는 순간이 되면 온몸을 다해 조각나는 광경을 더는 손에 쥘 수 없는 작은 유리컵과 이어 붙일 수 없는 뾰족함 


   빽빽하게 솟은 수풀 속에 숨어 하루를 보내는 동물들과 사람의 몸을 한순간에 먹어치우는 동물들 도망가는 동물을 쫓는 사냥꾼들 


   지옥이란 건 몸을 가진 존재들의 공간이야

   몸이 사라지면 다음도 없어


   나는 속을 갈라낸다 


   활활 타서 사라지거나 

   아무것도 없는 몸 중에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내장 속에는 전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 소화되지 않은 슬픔,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기쁨이 있다 비워 둔 내장이 구석에 쌓여 가고 내장과 내장이 쌓여 몸보다 커져 가는 것을 본다 


   안에 남은 게 없을 때까지 

   비워내고 비워낸다


   무엇도 나를 인식하지 못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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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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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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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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