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 작성일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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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전윤호
왜군이 독립군의 목을 작두로 자를 때
가족들을 교회에 몰아 놓고 불을 지를 때
지진이 났다고 조선인을 사냥해 죽일 때
사내들은 잡아가 탄을 캐게 하고
처녀들을 잡아가 노리개로 삼을 때
쌀은 다 실어가고 콩깻묵을 먹일 때
무슨 공덕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김구를 죽이고
소녀상을 욕보이고
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왜놈 편이 되는 게냐
배워서 친일하고
정치해서 친일하고
이 나라 군대 계급장 달고 친일하면
누구에게 칭찬 받고
누구에게 충신이 되는 게냐
홍범도가 만주에서 왜놈들을 무찌를 때
총알 하나 보태지 못한 것들이
유관순이 안중근이 옥에서 죽어갈 때
입도 뻥끗 못한 것들이
무슨 낯으로 지금 이 땅에서
푸닥거리나 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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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택-토 김지윤 당신은 O와 X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O를 고르는 순간 상대는 X가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 상대는 당신에게 결코 닿을 수 없다 상대를 막고 대립하라 모든 선들이 일어나 벽이 되도록 당신의 길은 상대에겐 벼랑 O와 X는 같은 칸 안에 존재할 수 없다 당신의 세계엔 칸수가 정해져 있으니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라 참 멋지네요, 그렇죠? 당신은 승리하고 싶어요. 그렇죠? 이것은 O와 X로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O를 골랐다 당신은 계속해서 칸을 채울 수 있다 빈칸이 남김없이 사라질 때까지 그러나 당신이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둘 다 지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게임 너무 작은 세계의 너무 단순한 규칙 당신들은 서로 지나치게 닮았으므로 반복해도 결과가 비슷할 것이다 한 수를 잘못 두어도 다음 수가 남아 있지만 당신은 상대를 방해하느라 정신이 팔려 번번이 기회를 놓쳐 버린다 당신은 규칙을 바꿀 수 있지만 정녕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 관리자
- 2025-04-01
파레이돌리아 김지윤 어떤 결정은 문을 등진 채 해야 한다 길이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이다 흩어진 구름의 문양을 알아볼 수 있다면 그림자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면 어두워져 가는 시간도 그리 지루하진 않다 모든 물방울들이 거울이 되어 내가 되기 전의 내가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내가 그 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흘러야 할 것은 흐르게 하자 괜찮아, 라는 말을 버리고 싶은 날 종말 한 시간 전 꼭 해야 할 말처럼 삼킬 수 없는 언어가 있다 참을 필요가 없는 재채기처럼 좀 헛되이 다급해져도 좋다 비 내린 후에 다시 비가 오고 땅이 마를 틈 없이 젖게 놔두자 진흙 위 남은 발자국들이 지나간 걸음의 무게를 기억하듯이 어떤 슬픔은 형태를 만들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단단한 테두리를 그려 놓는다 부서진 마음도 마음이다 잃고 싶지 않은 슬픔도 있다는 게 오늘의 희망 길이 없는 데선 별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된다
- 관리자
- 2025-04-01
택시 이원석 새벽마다 나를 태우려는 택시가 집 앞을 지나갑니다 나는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고 있습니다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택시는 밤거리를 달립니다 기사는 라디오를 켭니다 채널이 한 바퀴, 두 바퀴 돌기 시작합니다 치익-칙 한곳에 머물고 음악이 흐립니다 비가 옵니다 와이퍼가 작동합니다 소매로 우는 아이처럼 빗물을 닦습니다 기사는 어디까지 가는지 묻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아니 현실입니다 아니 꿈입니다 아니 마음입니다 차가 멈출 때마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됩니다 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봅니다 아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누군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빨간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택시가 나를 내려 줍니다 높고 긴 벽을 끼고 돌아 언덕 위입니다 멀리서 한 사람이 올라옵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맞습니다 손을 들어 알은체를 합니다 당신이 가까이 옵니다 나는 손을 내밉니다 당신이 내민 손을 바라볼 때 택시가 옵니다 집 앞에서 택시가 나를 지나칩니다 당신이 타고 있습니다
- 관리자
- 2025-04-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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