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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언덕 이후

  • 작성일 2025-02-01
  • 조회수 294

   거울 언덕 이후


남수우


   엎드려 우는 사람의 목덜미를 짚으면

   거울이 묻힌 언덕 위였다


   그 언덕에서 얼굴을 비춰 보다

   화들짝 놀라 내려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이에 부딪쳤는지

   이마에 붉은 반점이 찍혀 있고


   한 쪽 눈이 따가웠다


   눈동자에 남은 실금들은

   검은 돌이 박힌 얼음 호수인 듯

 

   그 틈을 비집고 산란하는 빛들이

   엎드린 목덜미를 환하게 뒤덮는데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그가 엎지른 장면이 이미 그를

   저만치 앞질러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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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지기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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