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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엉덩이

  • 작성일 2025-04-01
  • 조회수 660

   허둥지둥 엉덩이 


최민우


   

   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할 때 눈이 번쩍 뜨인다

   고양이가 기분 좋다고 오른쪽 명치를 눌러대고 있어서


   슬기는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고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전날에 남겨 둔 사료를 마저 먹고

   해가 드는 낮 2시쯤 베란다에 앉아 창가를 내다본다


   고양이가 나를 몰아내고 

   나를 대신해 살아가고 있다는 의혹이 들 때


   지난 일기에서 이상한 메모를 발견했다


   나는 캣파워를 들으면서 축제를 준비했다

   얼마 전에 산 캣타워에서 슬기가 영춘권을 연습한다

   고양이과의 특징은 급소를 노리는 것

   넌 어쩜 그렇게 자극적이야


   나도 허둥지둥 엉덩이 갖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뭔가를 차곡차곡 정리할 때만 맘이 편하다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지칠 때까지 샌드백을 치고 싶었다

   타이머가 끝난 걸 알면서도 

   숨이 차오를 때까지 두들기다가


   야옹

   울어 버리는 일 같은 


   슬기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다가

   말라 떨어진 풀잎에 달려들기를 반복한다


   고독하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고집


   이별하기 전에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화분을 버렸는데 너는 씨를 심었네


   내일은 뭐 할까 물으면 슬기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싹이 나길 바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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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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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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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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