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게임
- 작성일 2026-04-01
- 댓글수 0
너구리 게임
박은우
풀벌레가 울어 여름 방학은 지루하지 않아요 여치를 잡아 더듬이를 잘라요 해가 길어 오래 비틀거려야 해요
이모, 나는 어제를 키우고 싶어요 웃옷을 벗기고 낮잠을 재우고 싶어요 나는 오소리와 레서판다를 구분할 줄 몰라요 너구리는요 당근 체리 버섯 옥수수 배 터지게 주워 먹는데요
체리는 잘 모르겠어요 꿈에서 여름을 삼키고 배가 부풀던 엄마는 모텔에 다녀요 피 묻은 팬티를 빨아 널고 한 달 내내 아오리 사과만 먹었는데요
식물도감에서 보았어요 제때 따지 못한 아오리는 밧줄에 달린 아저씨만큼 빨개요
파인애플 자몽 오렌지 멜론 비싼 과일만 처먹는 너구리는 식구끼리 몰려다닌대요 한 움큼 동전과 조이스틱, 콜라 맛 슬러시,
이모, 재미없어요 난 천천히 자라는 동생을 갖고 싶고요
맥주가 나오면 마지막 스테이지, 게임은 무한반복이에요 너구리나 따라 하다 어른이 되는 거라면
8월이 저 혼자 새끼를 낳았어요 엄마도 나를 흘려 놓고 고열에 시달렸을까 갓 태어난 새끼는 얼룩 같고 엄마 입술은 마트에 진열된 체리를 닮아 가요
맥주 그다음도 맥주, 하느님은 땡볕에 그을렸어요
대장 너구리는요 천적과 싸우지 않고 죽은 척을 한대요
눈그늘이 짙어지면 어른인 걸까 사다리에서 헛발 디뎌 압정을 밟고 절룩거릴 때
내일은 손이 너무 가요 먹성이 좋아 키울 수가 없어요
해가 길어 한낮이 남아돌아요 안아 줘야 할 어제는 자꾸 태어나고요 전원을 뽑아도 오늘은 꺼지지 않아요 다시,
스테이지 1. 조이스틱을 당깁니다 이제 난 죽은 척하지 않아도 죽어 있는
어른이 될 모양이에요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