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 작성일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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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강하라
내가 아직 젖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우산을 건네줍니다
이건 너무 친절한 예언이어서
가끔은 겁이 납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지
나보다 먼저 아는 사람들이
창문 밖에 서성입니다
이별 노래가 먼저 도착해 있는 밤에는
어김없이 이별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이 계절을 밀어냅니다
따뜻한 수프를 젓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었는데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젤리 컵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유리 파편이 눈에 튄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교복 입은 어린이가 튀어나와 어른 춤을 춘다 나에게 총구를 겨누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속도로
어른 춤이란 건 대체 뭔지
아쉽지만 비명은 내지를 영혼이 없고
슬픔과 귀여움이 재난과 농담이랑
한집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슬픔은 표정을 짓기도 전에 떠나가 버립니다 그가 두고 간 일기장을 훔쳐본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슬프다고 적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휴지를 건네줄까요?
우리는 서로의 날씨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를 안아줄 수 없어요 해가 종일 떠 있거나 눈이 오는 일들은 빈번하고 나는 그런 세계의 사람들이 부럽거나 밉습니다
펼친 우산에는 아직 떼지 않은 가격표가 붙어있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지금 휴지가 반값 세일을 한다고 친절히 일러줍니다
나의 결핍은 계산된 것입니까, 발명된 것입니까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세계를 구경만 합니다 내가 원한 적 없는 사랑이 내 방 가득 눈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젖지도 않고 유리 벽 너머의 날씨를 믿지 말자고 다짐하는 말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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