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추 코어
- 작성일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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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추 코어
강상헌
나는 제목 학원에 앉아 있었다. 차례가 되자 암기하던 쪽지를 구기며 교실 앞으로 나갔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제목은…… 「수용성 공주」, 「다짐의 왕자」, 「테너가 되고 싶은 아침」,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화장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선생님이 지나가다 교실 문을 쾅 열었다. 안을 쓱 둘러보더니 칠판 앞에 서 있는 내게 소리쳤다. “얘, 너는 제목들이 왜 다 똘추 같니?” 교실은 꺄하하 웃는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이 제목 학원은 특이하다. 다른 학원에서는 이상하거나 웃긴 장면을 보여주고 어울리는 제목을 붙이는 식으로 공부한다. 이 학원에서 장면 같은 건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제목만을 발표한다. 무엇에 붙이는 제목인지는 상관없다. 장면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제목을 읊으면 나머지 학생들은 그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한다. “오……” “별론데?” “죽어!” 선생의 역할은 아이들의 판단을 확증해 주는 일. 그것이 가르침이다. 아이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호불호의 판단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는 걸 알려준다.
나는 그 학원을 떠나왔다. 같이 다니던 애들은 모두 사기꾼이 됐고 나는 시인이 되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건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라는 것은 너무도 청량해서 진짜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평가의 말들은 아무리 좋더라도 웃음보다 아래 위치했다. 언젠가 봤던 일본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여 비웃음을 산다. 그걸 애정이라고 착각하고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굴다 자존의 추락을 겪는다. 나의 성장은 이와 다르다.
똘추라는 말을 통해 학원 교실에 더 많은 웃음이 울려 퍼졌다는 점에서 발표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학원에 다닌 적 없다. 내가 다닌 학원이라곤 단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매질을 하고, 학원 버스에서 단어장을 보며 멀미하다 구역질한 기억만 남겨준 곳이다. 같이 엉덩이를 맞던 애들은 이제 풍파를 맞고 있다. 세월과 직장과 혼사의. 나는 풍요로운 백수다. 유년기의 외상을 밝고 웃긴 장면들로 덧칠하여 일관된 자아상을 회복했다. 요즘 만나는 누나는 “우리 똘추……” 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똘추의 어원이 스모 선수의 뒤를 닦아주는 하인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틀렸다. 스모 선수는 유연해서 자기 똥을 닦고도 남을 거다. 서구인의 스모라고나 할까, 레슬링에선 몸을 풀 때 뒤구르기와 옆돌기에 뒤통수를 땅에 박고 활처럼 허리를 늘인다. 처음 갔을 때 백이십 킬로짜리 동갑내기가 나를 깔아뭉개고 두 팔로 겨드랑이를 팠다. 아늑한 중압감. “할 만해요?” 거칠고 다정함.
학원의 마지막 날, 나는 아이들에게 제목이 다가 아니라고,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너희는 다 가짜라며 울분을 토했다. 첫 시집이 나오고 출판사 대표에게 충고했다. 노벨상을 받을 게 아니었다면 문학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금부터 건물 알아보셔도 돼요. 올해의 패션 트렌드는 포엣 코어다. 핵심은 시인. 시인처럼 옷을 입자. 대학교 때 같이 옷을 사러 다니던 친구는 이제 패션 유튜버다. 나는 첫 시집을 내고 넌지시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쳤다. 그는 한 시인이 자신의 유튜브를 인상 깊게 보고 있다며 보내온 메시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일주일 뒤 성공한 작가의 채광 좋은 작업실에서 영상을 찍고 있다. 나는 다 떨어진 가죽 재킷. 금테 안경. 중학생 때 산 스웨터를 입고 있다. 그의 부인이 감동할 정도로 부드러운 다정함으로 네 시간 동안 옷과 책을 나누던 우리는 다음 날부터 서로의 인스타 게시물에 하트를 달아준다. 애인이 데려간 공연에 시집을 챙겨 가 음악가들에게 찔러준다. 십 년 전부터 팬이었어요. 만드신 앨범과 진행하신 라디오도 다 들었고요. 돌아서서 애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나, 저 새끼 십 년 전에는 좆밥이었어.” 술이 덜 깬 아침, 면식 없는 영화 평론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뜬다. 괴팍한 그 평론가는 만만한 나의 친구에게 줄곧 전화해 한국 문학은 이제 다 망했다고 빈정거렸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친구에게 그 인간 좀 그만 받아주라고 나무랐다.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월이다. 일 년 전부터 아빠는 죽어가고 있다. 작년엔 나도 끝났구나 싶었지만 이제는 면식도 없는 인간의 장례식에 갈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화가 나면 왜 아직까지 살아있냐고 빈정대는 멘탈도. 산골짜기 병원 캠퍼스에 내려 직원을 붙잡고 길을 묻는다. “병원이 참 넓고 좋네요.” “장례식장 가는 거 맞으시죠?” “제가 벌써 한잔해서 오버했습니다.” 지갑에는 오만 원짜리 한 장. 방명록에 이름은 박찬욱으로. 육개장 두 그릇째. 그의 제자였던 젊은 평론가들이 서로를 반가워하고 있다. 식장에서 악수하는 게 매너가 아니라지만 죽은 평론가도 매너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제자들 중 하나가 내게 와서 인사한다. 나는 미국 고전 영화감독 이름을 열거하며 그들을 알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분이기에 왔다고 답한다. 얼마 전 장례식에 갔을 때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오는 게 아니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또 다른 장례식에서는 잡귀가 붙으면 안 된다며 친구들끼리 소금을 뿌려주었다.
잠깐 눈을 감으니 나는 아빠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천하의 강땡땡이 죽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옷을 좋아하고 패션 잡지를 모으기 시작하자 그는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죠. 어릿광대 노릇을 즐기던 제가 친구들에게 놀림과 구타를 당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갓 이혼당한 삼촌에게 한탄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너처럼 되면 안 될 텐데……” 시인이 되어 문예지를 갖다주자, 당신은 회장을 맡고 있는 고등학교 동문회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시라는 건 아마 그가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는, 그리하여 제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르였을지도요.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한 것이라고, 그걸 오십 년 동안 우려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잘한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물론 십 년 동안 고시에 낙방한 건 그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요, 아, 이십 년 동안 저희의 보금자리였던 지금의 집에 처음 들어왔던 날 제가 플루트 연주를 해주지 않았다며 죽도록 밟았던 밤도요, 그가 죽을 때까지 어떠한 경제적 능력도 없는 아들을 서포트한 게 가장 큰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어갈 때 하루 종일 수발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저를 백수로 남겨놓은 것 같지만요. 자신이 죽음으로써 제가 가장 증오하는 대상인 어머니의 미래와 죽음을 홀로 감당하게 했지만요.
장례식에 어울리는 말을 드리자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씀은, 아직 돌아가시지 않아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의 죽음은 제 영감의 원천인 바, 제가 최근에 쓴 시 한 편을 낭독해 보겠습니다. 애비가 죽어가기 시작하자, 나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둘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하나가 사라지면 하나 더 필요하다. 지금 내 인생은 엉망이고 진창이다. ADHD 치료를 통해 받은 가장 큰 도움은 세상에 저를 각인시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첫 시집을 내고 어느 정도 미래가 보인 후에 든 확신은, 저의 첫 열정이 있었던 분야에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어만큼이나 시각적 이미지와 옷을 사랑합니다. 글을 진지하게 쓰기 이전부터 지녀왔던 옷과 패션에 대한 애정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으로 귀사에 지원합니다. 아버지 등골을 더 이상 파먹을 수가 없어 데이트 비용을 직접 충당합니다. 앞으로 쓸 시의 제목을 말씀드릴 테니 원고료는 선결제 부탁드립니다. 「수용성 공주」는 저의 페르소나인 오필리아에서 따왔습니다. 여기 백합 한 송이도. 「다짐의 왕자」는 자신의 갈등을 다짐인 양 선언하느라 오필리아를 저버린 햄릿입니다. 「테너가 되고 싶은 아침」은 누나와 충만한 밤을 보내고 느지막이 기어 나온 오후, 도로 한복판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시고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화장실」은 같이 갔던 맥줏집에 붙어있던 글귀. 미소 없이 살아갈 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고, 미소를 누리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저의 역작이 될 「똘추 코어」의 주인공은 누나예요. “우리 똘추…… 언제까지 부모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글을 쓸 거니? 우리 똘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인맥을 만들고 오는 길이니, 알지도 못하는 건 똑같으니 다른 식장에 들어갔다면 더 유익한 인맥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똘추, 유산을 받으면 평창동 자락에 작은 궁전을 짓고 나랑 같이 살겠다며 준비는 하고 있는 거니? 우리 똘추, 도대체 언제까지, 모자람과 깨달음의 굴레 속에서, 우리 똘추, 그게 너의 코어인 거니……”
돌아오는 길. 죽은 평론가가 사랑했던 영화에서는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와 연기하며 오디션을 보고 있다. 이전 장면에서 여자는 자신이 뒷바라지하는 남자 친구와 연기 연습을 했다. 그때는 웃기고 신파적으로 했지만 지금은 너무도 진심으로, 이 오디션에 붙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끝나리라는 직감으로 남자 배우에게 입을 맞추고, 입으로 턱과 목을 더듬고, 그렇지만 남자의 입술은 못 이기듯 피하는 동안, 자신의 기다란 목뼈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 속에서 거의 흰색으로 빛난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배우는 대화는 지하철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십 대 커플의 대화로 더빙된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안 알려줄 거야.”
“네가 맞추면 맞았다고 답해줄게.”
“지금 신분당선이니까 분당?”
“거길 왜 가.”
“서울 숲?”
“아니.”
“성신여대?”
“거긴 네 집이고.”
“상계?”
“거기는 또 어딘데.”
“도무지 모르겠어. 힌트라도 알려 줘.”
“사람들 옷 어디서 사?”
“명동?”
“너는 옷 어디서 사는데?”
“무신사.”
“무신사가 어디에 있는데?”
“인터넷.”
“아니 바보야.”
“아! 성수동.”
“그래 바보야. 우리 성수역으로 가는 거야. 너 옷 사주려고 가는 거야.”
“내 옷을?”
“너 생일이잖아. 내가 옷이랑 신발 사줄 거야.”
“내가 사도 되는데.”
“안 돼. 내가 옷이랑 신발 사줄 거야.”
“성수역은 어디에 있어?”
“네가 아는 식으로 설명해 줄게.
이 분당선이 끝나는 왕십리에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가는 반대쪽으로
동대문 가는 만큼만 가면 돼…… 강땡땡 씨!
요즘 컨디션은 어때요? 좋다면서
림프샘은 삼 미리 정도 두꺼워졌고
원래도 그물이 많던 폐가 더 흐려졌네
전이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런 경우에
교과서에는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적혀있고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지.
종양 수치도 갑자기 올라가고.
그래서 부른 거야.
기력은 어때? 사실 떨어지고 있죠?
거 봐. 기분이 안 좋다니까.
아들은 인바디 검사지 PT 쌤 갖다 드려.
이제 이걸 한 번 꽉 쥐어 보실까.
근육을 더 늘리세요.”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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