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깁스 생활
- 작성일 2026-06-01
- 댓글수 1
슬기로운 깁스 생활
박은형
그만 환부를 뜯어내고 팔을 보살피기로 했다
그러자 선택형 관계 동작과
의무형 생활 동작이 동시에 면제다
부작용 같기도 하고 포상 같기도 하다
일조량 제로인 딸아이 서울 살림에
노란색 비닐 연(鳶)이 끼어 볕 노릇을 한다
길 건너 공원에 가야겠다
짧은 봄날을 붙드는 번 자리라도 얻는다면
쓸 만한 일인용 추억이 될 것이다
누가 매긴 슬픔의 광고 문안이 저리 얇을까
고치 같은 노파가 건네주는 공짜 전단지
아는 사람을 본 듯 인파는 멀찍이 비켜서 가고
금연 구역 현수막 밑 늙고 젊은 끽연가들
소나무 꼭대기에 비 새는 집을 얹는 까치 부부
구애란 단연 부풀리기지 깃털부터 세우는 비둘기
공원에는 각종 심취가 자못 버젓한데
고향 물가에 버려둔 정분인 양 만개한 도화
높다란 건물 사이 짧은 너의 분홍은
신이 젖먹이였을 때 잇몸에 착색된 신표(信標) 같아
자꾸 흘러버리는 내 안의 무언가를
누군가 최선을 다해 이리저리 바꿔치는 오늘 기분은
원래가 들키는 게 사명인 것처럼
문드러진 사랑을 다시 보살필 것처럼
바람도 없이
효율의 문제는 더욱 아닌 채로
제 한껏 들이친 타지의 봄날이 꾸려준 것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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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일상이 멈춘 날, 다시 보이게 되는 것들에 대해 관조하면서 읊은 시. 우리네 삶은 거시적이다가도 뜻밖의 균열을 만나게 되면 그 틈입을 통해 미시적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받아들이고,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것을 다시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은 진정성으로 넘쳐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