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커튼이 있는 만찬의 밤
- 작성일 2026-06-01
- 댓글수 5
붉은 커튼이 있는 만찬의 밤
정미주
커튼 뒤에 숨겨 둔 연인을 볼 수 없어 크게 실망했어요 당신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놓친 요리가 무엇인지 맞추었을 텐데요 우린 식탁보 아래 얼굴을 숨기고 당신의 요리를 기다렸을 뿐인데
그래요, 우리는 여럿이 아니면 얼굴을 보이지 않죠 얼굴이 불콰해질 때까지 기다렸어요 메뉴판을 쾅쾅 울리며 웨이터를 다그쳤지요 목이 없는 얼굴들이 식탁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 여전히 우리가 아름다운가요 수치심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감정인가요
우리는 모든 상징을 사랑하는 존재들 목 뒤로 흐르는 불협화음에 당신의 칼질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길 바라는 마음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디어 마이 디어 알고 있다면 우리의 부정을 부정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모든 것이 잘 짜여진 대본이라는 것을 당신은 눈 감을 때까지 알지 못하겠죠
잠들지 않아도 눈 감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먹으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
우리는 왜 인류인가요 짐승이면 안 되나요
아름다운 생을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웨이터가 회전하는 사람이라면
환생을 위해 그를 숭배하겠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지불할 수 있고
그는 떠나는 관성이 없는 사람
내기는 무게가 없고 노름은 패배만 있다지만
우리는 당신을 벗어날 수 없어
먹고 먹으려고 당신을 찾아왔어요
붉은 휘장을 걷어줘요 우리는 요리하는 모습조차 욕망하는데 놈의 연인을 보려고 마음이 큰 대가를 치렀는데 디어 마이 디어 아직도!! 식전주가 안 나왔는데 왜!! 놈은 요리만 하고 있나요 상징이 게임이 된다는 것을 놈은 부정하고 우리는 한가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들 본문이 있는 텍스트를 누가 부정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해부하고 해체당하고 있지만 놈을 기다리고 있어요 제발 안타깝게 무너지는 우리의 친절을 감싸 안아주세요 주저앉아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의 배려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왜 모두가 행복해야 되나요 사랑받는 철학자를 보았어요 제대로 알면 알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사람 우리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완벽한 교육이란 태어난 마을을 벗어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것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것이 인류라는 것
머리가 어지러워요 깨지지 않는 편두통은 완벽한 요리를 기다리는 머리들의 연산 당신은 어디까지 계산하고 있나요 맛과 멋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지만 이 악연이 당신과 우리의 심장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 죽어가는 동물의 애간장을 느끼려는 인간의 역사가 거만하다고요 사랑스럽고 가련한 당신의 희생양을, 발견된 적 없는 귀를 가진 바닷속 분홍 돼지를 이제.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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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시원시원한 발화가 매력적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여름, 메탈, 레모네이드와 어울리는 시네요!
오랜만에 넘 좋은 글이에요 ㅎㅎ!
상징의 심연에 허우적대는 인간은 붉은 커튼 뒤에 숨어 요리하는 셰프가 차려줄 음식이 궁금해진다. 그것이 희귀할수록 인간들은 해석하려는 관성에 매여 먹으면서도 죽어가는, 욕망이 주는 결핍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러한 극단적인 모습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결핍-배아픈 것은-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 없다는 사실-못 참는 것이 인류라는 것이라는 행에 드러난다. 비윤리적일지라도 이성의 합목적성에 부합한다면 찢어 발겨진 채로 발견된 사실도 진리가 되는 것일까? 그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뿐이라면, 그러기 위해 또 다른 타자를 희생해야 된다면, 그래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인류세 시대의 인간은 그저 회전하는 웨이터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