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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작성일 2021-01-01

꿈 이야기

임유영

사월의 한낮이었다. 벚꽃이 절정이라기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벼운 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가려니 기분이 좋았다. 걷다가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둘러 가기로 했다. 여학교를 지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감색 세일러복을 입고 달려가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시각인데 아이는 멀리 공원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역시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자전거를 대고 기다리다가 여자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사거리에서 그만 사고가 났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여자 아이는 죽어버렸다. 나는 그날 꽃은 못 보고 돌아가던 길에 교복집 하는 늙은 남자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죽을 징조를 벌써 보았다고 주장했다. 첫째로 그날따라 여자애의 그림자가 무척 옅어서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했고, 둘째, 하얀 토끼인지 개인지 작고 사람은 아닌 것이 날래고도 사납게 그 뒤를 쫓고 있었고, 셋째로 사람이 달리는데도 한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만은 전혀 흔들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영감의 말을 곧이 믿지는 않았다. 무릇 꿈이란 뇌에서 배출된 찌꺼기에 불과한데, 그런 꿈을 해몽한다는 자들의 말 또한 사람을 현혹하는 얕은 수일 뿐이다. 그 증거로 나는 사월의 화창한 대낮에 꽤 오래 걸었음에도 전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붓을 들어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었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 두었다. 후에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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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유영
  •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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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misfits

    뭐랄까.. 솔직히 말하면 이 시는 너무 무섭고 끔찍하게 느껴져요. 저는 이 소녀를 화자의 소녀기, 동심, 순수했던 시절, 무의식 정도로 해석하려 합니다. 사월의 한낮은 따뜻한 봄이고 꽃이 무성하게 피는 시기겠죠. 벚꽃이 절정이라던데 벚꽃은 사후세계에서도 많이 볼 수 있고 빨리 지는 꽃이잖아요. 나들이를 가려다가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수업도 끝나지 않았는데 도망가는 것을 봅니다. 남자애의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나서 죽었대요. 이것을 소녀기의 죽음, 내면의 순수성 상실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결국 꽃을 보지 못했고 꿈 얘기를 하는 교복집 늙은남자에게 해몽을 듣습니다. 여자아이의 그림자는 옅었고(발버둥치는 이미지가 그려져요. 그림자가 춤추듯이..) 마치 앨리스의 무의식의 안내자인 토끼를 연상시키는 하얀 토끼나 개가 사납게 쫓고 있었대요. 경고하듯이. 처녀성과 순수성, 또는 샤머니즘 적으로 신과의 연결을 뜻하는 한 갈래의 땋은 머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즉 생명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늙은남자의 말을 믿지 않아요. 저에게도 소녀에게 뒤집어씌우는 변명같이 들리는걸요. 도대체 아이들의 교복을 지어주며 프레임을 씌우는 남자가 소녀에게 무슨 짓을 한걸까요. 왜 같이 자전거를 탔는데 여자아이만 죽었을까요. 화자는 자신 또한 땀을 흘리지 않았다며 이 모든 이야기를 꿈처럼 말합니다.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 강하게 와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털어놓듯이, 고발하듯이 벽에 글을 붙여둡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화자는 그것을 돈을 받고 팔아요. 소녀기의 극치였던 순수성을 잃어버린 화자의 냉소적 자학이 보이는 듯 해요. 늙은남자가 너무 의뭉스럽고 무섭습니다. 소름이 돋았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5-03-27 19:25:19
    misf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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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sfits

    제 친구의 해석도 같이 남깁니다. 벚꽃이 절정이다 = 환상의 세계가 있다 (여자가 안전한 세상이아닐까)집을 나섰다 = 나도 경험해보려 했다.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둘러갔다 = 환상의 세계까지 가는 길이 설렜다. 더 머무르고 싶었다. // 급한일이 아닐거라고 생각한 것?달려가는 여자애 (소녀) = 현실과의 경게 / 현실을 리마인드해주는 역할 수업이 끝나지 않을 시간 = 화자가 꿈에서 깨고싶지 않다는 뜻? (보통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해? 라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굳이 학생인 것을 파악했고, 지금이 학교가 끝나지 않을거라고 한 점은 대상에 대해 깊이 생각한 흔적) // 올것 같지 않은 현실이거나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현실 멀리 공원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아직 나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라는 생각? 나중에 보니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태우고 가 사고가 났다 = 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현실이었던 것. 내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 아니면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에게 일어난 사고?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믿었던 대상이 아닐까 (남자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그냥 어른일수도 있을 듯. 순수하지 못하니까) 꽃을 못 봤다 = 환상의 세계에 도달하지못했다. (여자가 안전한 세계따윈 없었다) 교복집하는 늙은 남자 = 피해자를 탓하는 방관자 (가해자일거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고 사건을 전해듣고 피해자를 탓하는 일반적/대다수의 사람- 꼭 남자일 필요는 없지)옅어보이는 그림자 = 존재가 옅어져 가는 것?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수많은 사람중에 하나인 것. 하얀토끼= 무의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자의 무의식이 도망치라고 말해주는 것 흔들리지 않는 머리카락 = 여자아이가 가졌던 흔들리지 않는 믿음..? 어른들은 자신을 지켜줄거라고 생각했던 믿음? 영감의 말을 믿지 않은 나 =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꿈을 해몽한다는 자들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 = 다수의 방관자들이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며 피해자를 탓하는 게 잘못된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래 걸어도 땀을 흘리지 않은 나 = 나 조차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현실을 보았지만 아직도 환상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내가 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붓을 들어 이야기를 썼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팔았다 = 나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예를 들어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복잡해서 헷갈릴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래디컬페미니즘을 보면서 이게 맞는건가라고 고민했던 것처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걸 글로 쓰기로 다짐을 했고 용기를 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사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있었다.

    • 2025-03-27 19:34:35
    misf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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