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 작성일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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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오성인
나는 금방 모였다가 흩어지곤 했다 쉽게
손을 잡았다가 놓쳤고 빈번히 발을
헛디뎠다 늘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계절을 피해 어제는 한 무리의
새 떼가 떠났고 오늘은 한 무리의 별이 졌으며
내일은 한 무리의 영혼이 떠날 것이다 멀어지는
이들로부터 나는 한참 멀리에 있었다 균열된
세상의 모든 애인들을 호명하면 뼈 깊은 곳이
욱신거렸다 입안에서 자꾸만
넘어지는 혀, 출혈이 일듯 미완의 단어와
문장들이 쏟아졌다 결여된 나는 벌어진 상처를
도무지 꿰맬 수 없었다 텅 빈 몸은 줄곧 균형을
잃었다 시작과 결말, 앞과 뒤, 생과 사가 불분명한
날들이 수차례 지나갔다 어긋나버린 세계에서
내가 안착할 곳은 어딜까 아버지의 여자와
어머니의 남자는 어떻게 오래 서로였을까 내가
비집어 낸 그들의 틈은 견고해졌을까 내 안에
서식하는 바람과 물과 풀과 흙은 더 이상 나를
옹호하지 않는다 타인들의 숨소리가 멎어버린
황폐한 심장으로 감히 누구를 지탱할 수 있는가
차갑게 식은 피를 덥히기 위해 알맞은
조각들을 찾아야만 한다 결여된 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돌고 돌기만 하는
미완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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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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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6-03-01
인노첸시오 8세의 불멸 김혜순 먼지로 흐린 유리창 때문에 밖의 나무도 흐리고 안의 남자도 흐리다 벌레의 주검들로 거무튀튀한 유리창 때문에 피아노 소리도 거무튀튀하고 방안의 남자도 거무튀튀하다 더러운 주전자에 물이 끓고 남자는 주전자가 타도록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선은 늘어져 있고 주전자를 태우는 불꽃만은 싱싱하다 검은 연기 속에서 시간을 가득 먹은 파리가 날고 전국의 공중전화 박스들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흘러드는 연기로 폐는 쿨적거리고 눈물도 쿨적거리지만 그의 핵은 뛰고 있다 때 묻은 나무의 새로 돋은 이파리들은 방을 엿볼 생각이 없다 방의 남자도 밖을 내다볼 생각이 없다 태양이 거머리빛으로 창을 기어가면 창 안쪽에서 해파리들처럼 먼지구름들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인노첸시오 8세는 영원히 살아 있다 먼지로 흐린 유리를 열고 아무도 그를 방문하지 않지만 볼록한 배 검은 진주로 변한 눈동자 그는 나무였으나 기괴한 광물이 된 몸 안에 살아 있다 그의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고 그의 목을 조르는 형광타원형들이 계속해서 천정에서 떨어진다 인노첸시오 8세가 먹은 세 소녀의 피 창밖에 억울한 장미 세 송이 영원히 피어 있다 나는 그의 몇 번째 시녀인가 밤이 오면 등불을 끄고 집을 쪼개는 금들이 몰려드는 것을 그대로 둔다
- 관리자
-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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