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놀이
- 작성일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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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놀이
정재율
잘 자고 일어나, 그런 말을 하고 꿈으로 들어간다 너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솜을 쥐고 비틀어 본다 바닥에 흩뿌려지는 흰 것들 우리는 낡은 오두막에서 내리는 눈을 함께 보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타오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벽난로 앞에서
여기가 어디지?
우리가 함께 있지
그렇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거지 너는 따듯한 차를 마시며 타오르는 장작 앞에 앉아 있다 앉아서 작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는 노래 같았는데 전혀 모르는 노래라서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가끔은 아는 사람 같아서 반갑게 인사를 건넬 때도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본 사람이기도 했다 동그란 뒤통수는 너를 닮아서 자꾸만 쓰다듬게 된다 자꾸만
흔들리는 불빛들
타오르는 초들
모난 것들은 끝을 꼭 봐야만 끝이 난다 너는 사라져 가는 불씨를 보며 침대에 가서 눕는다 노래를 멈추고 보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에 들려고 한다
깨우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네가 누워 있다 창밖에선 비현실적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잘 자,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가만히 누워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정물처럼 멈춰 있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나는 가능한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둠을 손에 쥐고 천천히 비틀어 본다
우리의 머리 위로 재가 하나둘씩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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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2월 정재율 이누이트족은 이글루를 완성하고 불을 피운다고 한다 순식간에 녹였다가 다시 얼려서 집 안의 틈새를 막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다 무언가 잃어 본 적 있는 자의 손에선 땀이 자주 흐르고 그의 영혼은 겨울을 놓치지 않는 끈질김에 대해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다 사라진 새들에 대해 눈의 무게를 감당하는 나뭇가지들에 대해 그의 주머니에는 깨진 얼음들이 한가득 들어 있고 완전히 뒤집고 나서야 작은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아주 얇고 가는 실로도 큰 구멍을 메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네모나고 견고하게 뭉쳐진 눈을 차근차근 쌓아올린다 그는 흐르는 손을 잠시 넣어 두고 담배를 피우며 연장을 들고 보수 공사를 펼치는 날들에 대해 따듯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서 계속 눈을 뭉치는 일에 대해 떠올린다 어느 벽돌집 앞에 서서 사실은 이것도 눈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면서 어떤 집은 꼭 이글루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들을 위하여 투명함을 아는 자의 영혼이 눈처럼 내리고 있다 그것은 고요다 허리를 숙이고 아치형 문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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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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